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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이력(履歷)

김종헌(아동문학가)
등록일 2015-07-09 02:01 게재일 2015-07-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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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러진 화살`이 연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6월 15일 밤 9시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법무법인 사무실 앞에서 한 남성이 퇴근 중이던 박영수 변호사(63)에게 공업용 칼을 휘둘러 목 부위에 12㎝ 가량의 상처를 입혔다. 그 남성은 재판과정에서 `전관예우`가 작용했기에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났다고 보고 이른바 보복의 흉기를 휘둘렀단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요 언론은 하나같이 `변호사`인 박영수 피해자를 `전 고검장`이라 표기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변호사`보다 `고검장`이 더 나은 모양이다. 김승희의 시 `한국식 죽음`에서도 이런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김금동 씨(서울 지방검찰청 검사장), 김금수 씨(서울 초대 병원 병원장), 김금남 씨(새한일보 정치부 차장) 부친상, 박영수 씨(오성물산 상무 이사) 빙부상 - 김금연 씨(세화 여대 가정과 교수) 부친상, 지상옥 씨(삼성 대학 정치과 교수) 빙부상, 이제이슨 씨(재미, 사업) 빙부상 = 7일 하오 3시 10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서 발인 상오 9시 364-8752 장지 선산

그런데 누가 죽었다고? ”- 김승희, `한국식 죽음`전문

시의 형식이 낯설지만 어렵지 않다. 자세히 읽어보면 이 속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담겨 있다. 부고임에도 불구하고 망자에 대한 명복이나 상주에 대한 위로는 없다. 오직 상주의 사회적 레테르가 중요할 뿐이다.

공교롭게도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박영수`이다. 시적 상황은 박영수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의 처가는 시쳇말로 빵빵하다. 처남들이 검사장, 병원장, 신문사 차장 등이다. 동서들도 잘 나가는 자리에 있다. 대학교수, 사업가 등이다. 그의 부인 김금연씨도 가정과 교수이다. 그런데 처제들은 별 볼일 없는 모양이다. 이름 석 자 없는 것을 보니.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지위는 부고에도 이렇게 영향을 미친다. 오직 중요한 것은 상주든 망자든 사회적 영향력이다. 아들아, 아버지는 이런 세상을 살았다. 내가 너한테 공부하라는 이유를 알겠느냐?

/김종헌(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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