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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고를 기다리며

김종헌(아동문학가)
등록일 2015-07-23 02:01 게재일 2015-07-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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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몇 해 전부터 아동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을 맡았다. 그래서 기고 혹은 투고된 원고교정을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때 많은 오탈자가 있는 원고를 읽으면 그 작가의 기본적인 자질을 의심한다. `뭔 글을 이렇게 써서 보내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 `전화라도 한 번 걸어볼까`하는 마음을 먹는다. 혹시 첨부 파일을 잘못 보낸 건 아닌지 싶어서. 대개의 경우 초고 파일과 최종본 파일을 잘 관리하지만, 몇 번 수정과정을 거치다보면 이 파일이 헷갈릴 때가 있다. 물론 이것도 작가의 잘못이긴 하지만.

학위를 금방 받았을 때 모 대학교에 근무하던 선배가 `00논총`에 글을 하나 실어주겠다면서 원고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때, 기쁜 마음에 앞뒤가릴 것 없이 급하게 메일로 원고를 보냈다. 그런데 한 참 뒤에 그 선배가 내게 원고 출력본을 내밀며 “김 선생 원고는 이번에 뺐는데….”라는 것이다. 말끝을 흐리면서 다시 이어가는 선배의 말은 “교정을 좀 보지 그랬어.” 했다. 무슨 말인가 의아해 하면서 선배가 내미는 출력본 원고를 받았다. 아뿔싸, 파일을 잘못 보냈음을 그제사 알았다. 초고파일이었다. 학위를 받은 직후 비록 유명학술지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나오는 논총에 내 이름 석 자를 박아 넣은 글이 실린다는 생각에 흥분했던 모양이다.

순간 내 불찰을 탓하기 보다는 선배가 원망스러웠다. `그냥 뺄 것이 아니라 전화라도 한 번 하시지.` 문제는 이후이다. 당시 그 논총을 책임지고 편집했던 선배의 동료 교수는 내가 글을 지독히도 못 쓰는 인물로 낙인찍지나 않았을까하는 걱정에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지금도.

가끔 선배와 함께 그 교수를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 하는 사이지만, 여태 나는 내 실수를 변명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데 굳이 내가 그때 그 원고는 초고라서 교정이 안된 상태로 보낸 것이라며 변명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차후 내가 쓴 몇 편의 논문을 그 교수에게 전해주었지만, 처음 각인된 나의 글쓰기 능력은 `개판`이라는 생각을 가질게 뻔하다는 생각에 아직도 다소 억울한 마음이 든다.

오늘, 가을호 원고청탁을 마쳤다. 작가들의 잘 교정된 옥고를 기다린다.

/김종헌(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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