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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서 만난 편작(扁鵲)

眞易 전병덕(수필가)
등록일 2015-07-01 02:01 게재일 2015-07-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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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장년기에 들어서며 하나둘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40대 초반 명치를 찌르는 십이지장궤양의 통증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비가 내려도 눈이 와도 하루도 거르지 않은 새벽 산행으로 1년 후 득의의 해방감을 얻었다.

50대 후반 어느 날 잠결에 엄지발가락의 촉감이 이상했다. 젖히고 오므리자 극심한 아픔이 전해 왔다. 아,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통풍이로 구나. 새벽 5시 엄지발가락 주위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양말을 신으며 까무러친 고통은 등산화에 발을 밀어 넣자 기어이 눈물이 솟아나왔다. 어금니를 악물고 절뚝절뚝 두어 시간 남짓 산길을 걸었다.

다음날 새벽 5시 스치는 이불자락에 자지러져 선잠을 깼다. 발등까지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꿀꺽 눈물을 삼키며 억지로 등산화에 발을 집어넣었다. 망치로 내리쳐 버리고 싶은 깨어지는 질통, 스물여덟 개 치아 꽉 깨물고 비탈길을 오르며 뚝뚝 가슴속에 더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튿날 새벽 의외로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들여다보니 엄지발가락에 가느다란 주름이 3개나 생겼다. 환한 얼굴로 산길에 들어서자 어제 그제는 들리지 않던 산새 울음소리가 더없이 명징하다. 서너 발자국 앞서 폴폴거리는 까치 한 마리가 더없이 이채롭고 정겹다.

편작(扁鵲)은 중국 전국시대 명의다. 죽은 사람마저 살려냈다고 하니 실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갈관지`에서 그는 자기 맏형은 사람의 표정과 음색으로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해 주고, 중형은 병이 미미한 발병 초기에 치료해 주는데, 자신은 병이 깊어져 사람들이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할 때 비로소 치료해 주기 때문에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고 말한다.

빗물에 씻긴 창밖 풍경이 티 없이 말갛다. 뒷짐을 지고 까치발로 무게 중심을 지긋이 옮겨 본다. 발가락이 발등이 깃털처럼 가볍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구에겐지 모를 탄성이 봉선화 씨앗처럼 터져 나온다. 창밖 이팝나무 꽃송이가 눈부시도록 하얗다. 이 무모한 발상을, 이 지독한 선택을, 사람들은 의사는 뭐라고 할까. 나는 이렇게 기원전 6세기의 편작을 산길에서 다시 만났다.

/眞易 전병덕(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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