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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고 감사한 이유

윤은현(수필가)
등록일 2015-07-22 02:01 게재일 2015-07-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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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내가 다녀온 북경은 소위 `럭셔리`한 도시가 아니었다. 한국인 관광객은 소매치기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특히 대한민국 여권이 거금으로 거래되니 특별히 조심하라고 했다. 거리 곳곳에서는 한국어를 하는 잡상인을 볼 수 있었고, 구걸을 거절당한 여인은 아이를 들이밀어 매달리게 했다. 윗옷을 훌렁훌렁 벗은 남자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돌아다니는데 그야말로 천연 가죽점퍼라 할 만 했다. 어른들은 낡은 점퍼, 아이들은 새 점퍼.

왕후징 거리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꼬지냄새가 심했다. 호객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것들을 찾아먹는 노숙자도 있었다. 그 날이 중국 여행의 첫날 저녁이었는데 중국에서의 대부분 식사시간마다 그 분위기를 떨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은 미국계 대형마트만 가도 지름이 7~80센티는 될 것 같은 피자가 흔하다. 수도처럼 생긴 꼭지를 돌리면 무진장 제공되는 양파며 피클, 무한정 리필 되는 콜라에 공중 화장실마다 손 닦는 종이 타월까지 넘쳐난다. 이렇게 함부로 사용하고 막 버리는 것은, 굶고 있는 제 3세계 어린이들을 생각해서도 환경을 생각해서도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운 중국만 보아도 너무한 일이었다.

한국식 노래방, 한국식 다방 커피 등 한국어 간판이 눈에 띄기도 하는 백두산 아래 숙소 상황도 불편했다. TV에서는 우리나라 뉴스가 나오고 있었지만 왜 그리 먼 곳의 이야기로 들리던지. 음식도 여전했다. 웬만하면 잘 먹는 작은 아이도 입을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식당 바로 앞 복도에서는 한국산 노란색 커피 믹스를 종이컵에 담아 한 잔에 우리 돈 천 원에 팔고 있었다.

어젯밤 도로 휴게소에서 샀던 중국 과일을, 커피 값으로 지불되었을 천 원과 함께 얌전히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나왔다. 내가 가방 챙기는 동안 객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팔다리가 가느다란 호텔 종업원과는 우리말로 인사를 나누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처음 먹는 아침, 아이들이 불만을 표시하려 했지만 나는 당당히 말했다. “중국이라고 생각하고 먹어!” 그 생각을 하면 오래오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윤은현(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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