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니언은 대단했다. 상상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우주가 만들어낸 작품을 경비행기를 타고 돌아보았다. 콜로라도 강줄기를 마치 미니어처 속의 풍경처럼 볼 수 있게 만든 미국인의 노력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오, 잇츠 그랜드! 너무나 대단해서 부르던 그대로가 지명이 되어버렸다는데 가히 머리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내게는더 놀랍고 감동적인 사실이 있었다.
경비행기에서 헤드폰을 쓰면 나오는 5개 국어 안내 방송에 한국어가 당당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상혼이라고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기까지 미치는 영향력이라고 받아들이니 로키산맥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 만으로 흐른다는 콜로라도 강의 길이와 후버댐에 관한 설명도 느긋하게 들렸다. 그뿐 아니다. 그곳에서 놀랍게도 콩나물 해장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해발 4천미터가 넘는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는 산악열차를 갈아타면서 올랐다. 스위스 농가에서 방목하는 소들이 우리나라 워낭의 열 배는 돼 보이게 큰 목걸이를 걸고는, 마치 바위덩이처럼 앉아서 자고 있었다. 알프스의 산기슭에서 그들이 뒤척일 때마다 떨거덩거리는 워낭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친 것 같다. 한여름의 복장으로 출발해서는 만년설 속에 내려야 했으니, 가져간 모든 옷을 다 껴입어도 콧물이 흐를 듯 추웠다. 그곳에서도 매력적인 일은 또 하나 있었다. 매운 냄새만으로도 코가 뻥 뚫리는 한국산 빨간 컵라면이 꽤 비싼 가격의 유로로 팔리고 있었다. 내려와서는 석회가 많이 섞여, 만년설 녹은 뿌연 물빛보다 더 짙은 곰탕과 김치며 고추장 비빔밥까지 먹을 수 있었다.
며칠 전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딸에게 된장찌개를 준비했다. 모처럼 두부까지 반듯반듯 정성들여 썰어 넣었다. “먹어봐, 그립지 않았어? 엄마표 된장찌개!” 아이는 말했다. “웃기지 마세요, 아침마다 `장모님 해장국` 먹었거든요”.
오, 필승 코리아! 우리의 힘, 세계가 좁을 지경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근대산업시설에는 착취당한 우리 조상들의 피와 한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윤은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