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등의 추세를 미루어 보면 짐작 못 할 일도 아니었다. 대다수 신문 사설이나 칼럼 따위에 그를 두둔하고 미화하는 글들이 줄곧 다수를 차지해 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흐름이 그를 13일 동안 꿋꿋하고 의연하게 지켜준 원동력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서너 해 전 일이다. 남양주소방서에서 녹화된 경기도지사와 근무자의 음성이 전파를 탔다. 도지사는 아홉 차례 신분을 밝혔으나 근무자는 시종 무슨 일 때문에 전화를 했느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통화는 이어지지 못했고 경기도소방본부에서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는 근무자의 전화 응대를 문제 삼아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났다. 도지사의 권위 의식을 욕하는 글이 도배를 하고 도청 홈페이지가 마비되었다. 급기야 도지사는 인사 조치를 취소시키고 남양주소방서를 방문해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했다. 그러나 본질은 다른데 있었다. 도지사가 신분을 밝혔으면 그 소방관도 당연히 신분을 밝혀야 했다. 그게 의무다. 당시 나는 현직 소방관이었다.
나르키소스(Narcissus)는 그리스 신화 속 미소년이다. 그는 동성과 이성은 물론 님프들에게 구애를 받았으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날 목이 말라 샘을 찾아간 나르키소스는 물속만 들여다보다가 탈진하여 죽었다. 실연의 고통으로 메아리만 남게 된 에코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빌어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도록 만든 결과였다.
통치와 정치가 같을 수 없다. 그는 헌법 운운하기 이전에 국정의 파트너로서, 대통령에 대한 예도(禮度)로서 본분에 충실해야만 했다. 그는 논어의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문구를 다시 한 번 더 새겨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眞易 전병덕(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