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는 할머니는 상냥하기도 하다. 입주민인 내가 불편하지 않게, 밝고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며칠 전까지의 익숙한 얼굴이 아니다. “새로 왔어요….”, “어머나, 수고가 많으시겠네요. 잘 부탁합니다.” 별로 상냥하지 못한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알 수 없는 힘까지 있다.
아침 시간 허둥대며 엘리베이터를 들어서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후다닥 발을 들여놓고 보니 금방 닦인 바닥은 보송하게 마르고 있고 할머니는 몸을 기울여 벽면을 닦고 있다. 가방을 고쳐 메고 신발을 제대로 신다가 놀라 주춤한다. 내가 디딘 자리마다 발자국이 꾹꾹 나 있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금방 닦아놓은 바닥을 막 `삐댔나`보네요. 죄송해요.”, “무슨 말씀을요. 금방 아무렇지 않게 됩니다. 밟아야지 안 밟고 우짭니까?”
역시 깔끔하고 상냥했던 지난 번 청소 할머니가 생각난다. 더 좋은 곳으로 옮겨 갔다고 들었다. 부지런하고 깔끔하기로 유명했으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바쁘게 쓸고 닦는 모습으로 기억되던 그 할머니, 조금의 얼룩도 용납하지 않을 듯 깔끔하던, 그러나 나는 그가 불편했다. 청소하는 옆을 지날 때마다 슬쩍슬쩍 느껴지던 무거운 마음을, 자기 일을 열심히 완벽하게 하는 사람 앞에서 당연히 느껴야 하는 마음이어야 한다고 견뎌왔었다.
훌륭한 사람들은 나를 왜 불편하게 하는 것일까? 어릴 적 착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도, 얼굴이 예쁜 친구도, 운동회 날은 달리기 잘하는 친구까지 능력 있는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것은 순전히 나의 열등의식 때문일까? 훌륭하다는 것은 이런 마음조차 헤아릴 수 있는 것이진 않을까? 깨끗하고 반짝이는 자리, 청소하는 사람의 손길을 언제나 느낄 수 있는 그 자리에 내가 편안함을 누릴 공간은 부족했다. 조금만 더 속 깊은 성실이었다면, 그런 불편함도 느끼지 않을 배려가 있었을까? 새로 온 청소할머니가 참 편안한 아침을 열어준다.
/윤은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