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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정상에서 내려다 본 형산강 파노라마 뷰, 잊지 못할 감동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해양도시 포항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오밀조밀 펼쳐진다. 주로 서쪽으로 포진한 이 산들은 높낮이를 달리하며 제각각 존재 의미를 뽐낸다. 포항의 주산(主山)은 뭐니뭐니해도 내연산이다. 북구 송라면에서 산맥을 일으킨 내연산은 흥해에서 도음산과 만난 포항을 감싼다. 경주 강동을 끼고 남진하던 도음산은 양학산에 이르러 낮게 깔리며 호흡을 고른다.산맥은 다시 남쪽으로 뻗어가다 형산강에 막혀 형산과 제산으로 분기(分岐)하는데 이곳이 후술할 ‘형산, 제산 전설’의 배경이다. 형산강에서 수기(水氣)를 머금은 후 산세는 다시 남진해 운제산에서 포항의 산맥을 완성한다. 오늘 소개할 형산(兄山)은 포항의 산은 아니다. 그러나 내연-도음-양학의 산세를 이어받아 운제산에 연결되는 산중 정류장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관할구역은 경주(강동면)에 위치해 행정상으로는 포항과 벗어나 있다. 그러나 포항 지곡동, 효자동, 연일읍과 가까워 포항 시민들이 아끼고 오르는 산이다. ◆ 신라 경순왕 때 처음으로 역사서에 등장형산이 위치한 곳은 경주시 강동면 국당리. 강의 남쪽에 자리 잡은 해발 257m의 낮은 산이다.사기에는 신라 왕궁에서 ‘중사’(中祀)를 치르는 북형산성(北兄山城)으로 언급돼 있다. 중사라면 국사(國祀)에 이은 다음 제례로 지금으로 치면 자치단체 축제에 해당한다.동국여지승람에도 ‘중사를 지냈다는 기록’과 ‘영천의 소산(所山)과 통하는 봉수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삼국사기 신라 경순왕 조(條)에 형산은 다시 한 번 역사에 등장한다, ‘강동, 안강 지역에 큰산(형산, 제산)이 붙어있어 매년 수해가 발생해 주민 피해가 컸는데 태자 김충을 시켜 산을 두 개로 갈라 재해에서 벗어났다’는 내용이다. 용이 승천하며 산줄기가 뚫리고, 물길이 열린 후 강동면 일대에 넓은 평야가 드러나니 이곳이 유금들이다.보통 두 산이 나란히 있을 때 큰산, 작은산이나 방위에 따른 동봉, 서봉으로 지칭하는데 이곳은 인칭을 썼고 더구나 형산, 제산처럼 혈연관계로 묶어 놓은 서사 구조가 특이하다.앞서 언급한 형산 설화엔 마의태자(김충)부터 용(龍) 신화까지 등장하는데 그만큼 형산이 신라인들의 의식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방증이다.이후 형산은 역사 속에서 오랜 기간 등장하지 않다가 6·25 한국전쟁 때 ‘포항 형산강 방어전투’ 당시 구국의 요새로 등장하며 다시 한 번 현대사에 전면으로 등장한다. ◆ 왕룡사에서 내려다 본 형산강 뷰 백미형산에는 경순왕 조에 등장하는 형산, 제산 전설 외 크게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실이 없고, 정상에 있는 왕룡사가 거의 유일한 사적이다. 창건 연대나 창립 인물에 대한 상세한 기록도 없어 역사성, 기록성 면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곳이다.그러나 사찰 구석구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뜻밖의 재미있는 사실들과 만나게 된다. 먼저 여행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절 동쪽에 위치한 약사여래불이다. 낮은 가부좌로 동해를 응시하는 부처의 눈길에서 ‘병에서 중생을 구제’하려는 인자함이 느껴진다. 부처를 향해 두 손을 모은 불자들의 모습에서 치유를 향한 강한 소망이 묻어난다.약사여래불 앞으로 작은 광장이 펼쳐지는 데 이곳이 형산강을 조망하는 최고의 포인트다. 연일대교, 형산대교에 이어 포스코의 힘찬 굴뚝과 영일만 앞바다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져 포항의 경관과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곳이다.정상에서 만난 한 시민은 “왕룡사는 형산강의 전체 조망을 드론 뷰 수준으로 관람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오션 뷰에 익숙한 포항 시민들이 다른 감흥을 찾아서 오기에 좋은 장소”라고 말한다. ◆ 태종 무열왕, 김유신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무량수전 옆에 있는 용왕전도 반드시 들러야 할 코스. 이곳엔 아주 특이한 유물이 전해진다. 바로 태종 무열왕과 김유신 장군의 목조상이다. 기록에 의하면 일제강점기부터 전해진다고 하는데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우선 두 인물을 모신 곳이 ‘용왕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보통 역사 속 인물들은 동상이나 초상화, 영정(影幀) 정도로 예우하는데 ‘전’(展)에 따로 모셨다는 것은 이 분들이 위인(偉人)을 넘어 반신(半神)수준의 숭배대상이 됐다는 것을 뜻한다. 중국에서 관우(關羽)가, 한국에서도 최영 장군이나 곽재우 장군 등이 사당에 봉양되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되고 있는 현상과 유사하다. 일설에는 이 목조상이 경순왕과 마의태자라는 설이 있는데 이는 형산 일대를 신라 부흥운동과 연결해서 해석하는 시각이다.미학적 측면에서 이 목상들의 수준은 볼품이 없다. 그러나 삼국통일 위업을 달성한 두 영웅에게 향했던 민초들이 존경심은 조각의 완성도를 넘어 시공을 초월해 이어지고 있다.사찰의 가람 배치에서 재미있는 것이 산신각의 위치다. 아이 출산을 점지해준다는 산신각은 보통 절의 가장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이라는 훌륭한 기도처가 있고 그곳에는 전지전능한 석가모니가 있는데 왜 신도들은 외진 골방으로 찾아갈까.기도자에 초점을 맞춰보면 의문은 금방 풀린다. 이곳 출입자들은 대부분 아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이다. 여인들은 사찰 맨구석에서 신과 1대1로 만나 ‘직거래’로 소원을 이루려한다. 석가모니에 드리던 기도가 총알이 흩어지는 ‘산탄’(散彈) 이라면, 산신각은 단발로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로켓으로써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북당마을-왕룡사-부조정-소형산 코스 인기형산을 오르는 루트는 다양하다. 강동면 북당마을에서 정상까지는 시멘트 포장이 돼 있어 자동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10~30도를 오르내리는 경사도 때문에 익스트림을 즐기려는 자전거 동호인들도 자주 찾는다. 이분들에게 형산은 자전거 라이딩 외 왕룡사 참배나 형산강 뷰 관람이 목적이다.산행이 목적인 등산 마니아들에게도 형산은 다양한 코스를 열어놓고 있다. 정국사 입구-전망대-왕룡사-약사여래불을 돌아보는 2시간 코스가 일반적인 코스지만, 3~4km 코스에 성이 차지않는 마니아들은 왕룡사에서 반경을 넓혀 맞은 편의 부조정터-소형산으로 연장하기도 한다. 단 임도에서 진입로가 불분명하고, 등산로 표지판이 준비가 덜 되어 초행길, 초보 산행자들은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포항 사람들에게 바다는 늘 접하고 부딪히는 일상이다. 생업을 일궈 온 터전이고 삶의 수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늘 가까이에 있고,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기에 일찍부터 도시 발전과 문명을 일구는 기반이 되었다.포항의 문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형산강이다. 고대부터 중국 한군현은 물론, 일본과 통하던 곳도 이곳이었다. 넉넉한 수량은 연일, 오천 뜰의 넉넉한 젖줄이 됐고, 수천년 동안 시민들의 생활용수, 상수원이 됐다.오션 뷰에 잠시 식상했던 독자라면, 다른 자극을 찾고 있던 시민이라면 주말쯤 한번 형산으로 오르길 추천한다.옅은 신록을 배경으로 강물이 은빛으로 일렁이고, 정극후(鄭克後·1577∼1658)가 ‘동방의 적벽’이라고 칭찬했던 형산강뷰가 발아래 펼쳐질 것이다./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5-09

위트와 흥미로 치장된 ‘시와 만화’의 행복한 결합

최근 출간된 오봉옥 시인의 웹툰시집 ‘달리지馬’. 이른바 ‘해방공간’으로 불렸던 1946년. 전남 화순의 탄광에서 미군정의 탄압에 맞서 탄부(炭夫)들이 궐기한다. 36명이 죽었고, 500여 명이 크게 다쳤다. 한국 근대사의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 이 사건이 1989년 스물여덟 살 청년시인에 의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다. 장편 서사시 ‘붉은 산 검은 피’다.당시 한국은 군사정권이 통치하던 시절. ‘붉은 산 검은 피’를 펴낸 출판사와 시집을 쓴 작가 모두가 고통과 수난을 겪는다. 책에는 판매 금지의 붉은 딱지가 붙었고, 시인 오봉옥은 구속된다.이는 20세기 말 한국 문단의 비극적 풍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로도 기록됐다. 그랬다. 1989년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시를 썼다는 이유로 작가를 감옥에 보낼 수도 있는 시대였다.세월은 흘렀다. 비분강개와 결기로 눈동자를 새파랗게 빛내던 젊은 시인 오봉옥은 이제 회갑을 넘긴 예순셋 중년의 교수가 됐다.최근 눈에 띄는 시집 한 권이 출간됐다. 제목은 ‘달리지 馬’. 앞서 언급한 오봉옥의 제6시집이다.헌데, 독특하다. 얼핏 봐선 만화책처럼 보인다. 언필칭 ‘웹툰시집’이란다. “이건 뭐지?”라는 혼잣말을 하며 오봉옥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물론,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이건 ‘변화·발전’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낡은 레토릭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인지하는 사실. 그 변화라는 순리에선 시인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그럼에도 ‘붉은 산 검은 피’라는 무겁고 심각한 시집에서 비교적 가벼운 위트와 흥미로움으로 치장된 ‘달리지 馬’로의 변화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고, 그걸 작가 자신과 독자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다음은 기자와 오봉옥 시인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핵심만 요약한 것이다. 한국 문학, 특히 시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독자들이 ‘시인 오봉옥의 변화’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궁금하다. 웹툰시집 ‘달리지馬’의 내용 중 한 부분. -‘웹툰시집’이라는 단어부터가 생경하다. 필자로서 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또, 만화와 시를 결합해 시집을 낸 이유는 무엇인지.△웹툰시집이 장르 혼합의 개념이니 생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시의 독자층이 줄어들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그건 활자매체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반면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날로 커져가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고, 또 한편으로는 시를 어느 사이 마니아들만 읽는 장르로 만들어버린 시(詩)문단 내부의 흐름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그런 차원에서 고상하다고 할 수 있는 시를 웹툰과 결합한다면 시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웹툰시’라는 개념보다는 시라는 말을 앞세운 ‘포엠툰’이라는 개념을 쓰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그건 너무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말들을 많이 해 그냥 ‘웹툰시’로 쓴 것이다.-기존의 시와 웹툰시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쓴 사람으로서 웹툰시의 매력이나 장점은.△기존의 시들는 시의 여백까지를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하는 측면에서 좋은 것 같고, 웹툰시는 어렵게 느껴지는 시를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시인의 말’에서도 밝혔지만 시적 상상력이 만화에 영향을 주어 재미의 차원을 넘어서게 하고, 만화적 상상력이 시에 또 다른 영감을 줘 시의 세계가 더욱 더 넓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자면 그 둘의 창조적 결합이 중요하다. 웹툰시를 쓴다고 생각하니까 확실히 쉬우면서도 감동적인 작품을 쓰려는 의식이 앞서는 것 같았다.-출간 이후 동료 시인들과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사실 그 부분이 제일 궁금했다. 그런데 의외인 것은 시인들의 반응이었다. 일부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는 시인들이 많았고, 구체적으로 자기도 웹툰시집을 낼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말들을 많이 했다.독자들의 반응은 예상하는 바와 같았다. 쉽게 잘 읽힌다, 시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아이들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더라 등등 긍정적이었다. 얼마 전 ‘북토크’를 한 적 있는데 거기에서 사인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 이름이 아닌 자식들이나 조카 이름을 써달라는 경우가 많아 흐뭇했다.-시집 ‘달리지馬’에선 마(馬) 자가 생물학적 동물부터, 명령형 어미 등 여러 의미로 변용돼 사용된다. 이를 의도했을 것 같은데.△웹툰시집을 낸다고 생각하니 말놀이가 곁들여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놀이는 시를 끌고 가는 시적 화자와 달리 밖에 있는 시인이 시 속으로 들어와서 펼치는 천진난만한 행위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펼치는 동화적 상상력과 같이 시인과 시적 화자가 넘나들고, 시의 안과 밖이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 이번 시집에선 말놀이를 세 가지의 형태로 드러내 보았다. 우선 ‘달리지馬’처럼 언어로서의 말놀이, 시 안의 등장인물들이 구어체로 드러낸 삶의 표현으로서의 말놀이, 말을 거꾸로 세우는 등의 형태로서의 말놀이가 그것이다. 이번 웹툰시집이 실험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독자들 역시 그 부분을 긍정적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어려운 일이겠지만, 이번 시집 수록작 중 딱 한 편만 읽어야 한다면 어떤 작품을 독자들에게 권하겠는가.△맞다. 한 편을 선택하는 게 늘 어렵다.(웃음)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자식 생각’이다.“휠체어 탄 울엄니 등산 간다는 나에게 말하시네./ 산에 가서 구절초를 보거든 그 냄새 쪼깨만 개비에 넣어 온나./ 오는 길에 바다에도 들를 거라는 말엔 또,/ 갯바닥에 가믄 파도소리도 쬠만 귓구녕에 담아오고 잉./ 그럼 구절초 한 다발 꺾고/ 파도소리도 녹음해 올게요 했더니/ 니가 날 걱정할까봐/ 괜시리 한번 혀보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걱정 말라니 원./ 그걸 말씀이라고 하고 계신다.”이 시는 말놀이를 하는 어머니와 자식인 시적 화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말놀이는 단지 흥미만을 자아내는 게 아니라 이 시의 경우처럼 눈물겨운 행위이기도 하다. 휠체어를 탄 어머니는 혼자 등산을 가면서 미안해하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며 ‘구어’로써 말놀이를 하고, 자식은 그런 어머니를 향한 연민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마음들을 잘 헤아려보면 좋겠다. -1985년 등단이니 시력이 40년에 이르렀다.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특별한 성과도 없이 벌써 40년이 흘러버렸다. 글쎄 시는 뭘까? 그림은 손이 불러내는 시, 노래는 목이 토해내는 시, 춤은 몸이 쓰는 시라고 할 수 있는데 시는 정작 시가 아니어서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시는 그저 마음밭에서 절로 풀어지는 길이자 그 길 위에서 어느 한 사람의 순정한 영혼이 불러일으키는 한 줄기 바람일 뿐이다. 시를 쓴다고 생각하는 순간 좋은 시는 탄생하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같은 것, 눈물 같은 것, 하소연 같은 것이 시가 아닐까. 그러니 어느 촌부의 말 한 대목이 시이기도 하고, 어느 노동자의 일기 한 대목이 시이기도 하다.시라는 예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생각한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절로 터져 나오는 것, 그것이 시가 아닐까 싶다.-앞으로의 계획은. 그리고, 100년이 흐른 후엔 어떤 시인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지.△살아서 가진 욕망을 죽은 뒤에까지 가져가고 싶진 않다. 그래서 그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냥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늘 피해가지 않고 부딪쳐서 돌파하려고 했다.첫 시집 ‘지리산 갈대꽃’(창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빨치산 가족사를 전면에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두 번째 시집인 장편서사시 ‘붉은산 검은피’(실천문학)로 군사정권 하에서 필화를 겪고 투옥까지 되었지만 우리 역사에 묻혀있던 한 사건인 화순항쟁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언론계나 학계의 연구로까지 이어지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 같다.그리고 이번에 낸 여섯 번째 시집 ‘달리지馬’ 또한 국내외 최초의 웹툰시집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차원에서 시적 역량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최소한 ‘도전의 아이콘’ 정도로는 기억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뒷방 늙은이가 되고 싶진 않다. 죽을 때까지 아이처럼, 청년처럼 살고 싶다. 아이처럼 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닦고 또 닦아야 한다. 청년처럼 살기 위해선 긴장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5-07

‘낙동강 7경’ 풍경 감상하며 ‘흥·끼·신명 축제’ 맘껏

안동시와 예천군이 주최하고 경북매일신문이 주관하는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과 ‘안동 어린이 백일장및 사생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지난 3일 차전장군노국공주 축제 개막식 축하무대로 개최된 ‘안동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행사에는 1만여 명이 몰려 본격적인 축제의 개막을 알렸다.기웅 아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무대에는 수많은 팬을 몰고 다니기로 유명한 가수 박서진, 김용빈, 박미영, 단비를 비롯해 여성 발라드 가수의 정점에 있는 백지영 등이 대거 출연해 화려한 무대를 꾸몄다. 권기창 시장은 “차전장군노국공주 축제는 낙동강 문화의 연장선상”이라며 “낙동강 보존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이어 6일에는 안동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안동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가 안동 탈춤공원 일원에서 개최됐다.지난 2007년 시작된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는 미래 꿈나무인 어린이들에게 창작의 즐거움을 전해주기 위한 문예마당으로 경북 북부지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이번 대회는 안동과 도청신도시 등에 거주하는 어린이들과 학부모 등 300여 명이 참가해 그림과 글쓰기 등의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또한, 이날 행사장을 찾은 어린이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과 마술쇼 버블 공연 등의 볼거리가 마련돼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했다.‘제11회 낙동강 7경 예천군 문화한마당’ 행사는 6일 오후 7시 한천체육공원 특설무대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이날 행사는 김학동 군수와 최병욱 군의장을 비롯한 경북도의원, 군의원, 군민 등 2000여명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 응원하고 화합하는 한마당잔치로 치러졌다.이번 행사는 ‘2024 예천활축제’ 마지막을 장식하는 특별 공연으로 혼성그룹 스페이스A, ‘내일은 국민가수’ 최연소 참가자인 김유하, 싱어송라이터 김원준 등 국내 최정상 인기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특별한 공연을 펼치며 지역민과 관광객들에 축제의 즐거움을 선사했다.‘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은 낙동강 수변생태공간을 홍보하고 낙동강 관광·레저 산업 육성을 통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올해 행사는 예천활축제장을 찾은 관람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지역경제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정안진·피현진기자 □ 3일 안동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 6일 안동시 어린이 백일장·사생대회 □ 6일 예천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사진=이용선기자

2024-05-06

수천장 종이비행기 함께 날리며 ‘꿈과 희망’ 활짝

‘2024 포항 어린이날 큰 잔치’가 5일 포항 환호공원 일원에서 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 주관으로 성황리에 개최됐다.‘즐거움이 퐝! 퐝!’이라는 주제로 제102회 어린이날을 기념해 열린 이번 행사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어린이, 학부모 등 4000여 명이 환호공원을 가득 메웠다.기념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김정재 국회의원, 이상휘 국회의원 당선인,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과 김일만 포항시의회 부의장, 박용선 경북도의회 부의장, 김희수 경북도의원, 김형철·김종익 포항시의원, 천종복 포항교육장, 심학수 포항북부소방서장, 류득곤 포항남부소방서장, 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 등 내빈들이 참석해 어린이날을 축하했다. 개막식의 종이비행기 던지기 퍼포먼스에서는 참가자 전원이 ‘비상하는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는 수천장의 종이비행기를 던지는 장관을 연출했다.이날 행사에서는 버블·매직쇼와 방송댄스 등 식전 공연으로 시작해 아동권리헌장 낭독과 모범어린이 시상 등 기념식, 포항소년소녀합창단 어린이날 노래 합창이 이어졌다. 식후 축하공연으로는 지댄스 공연과 삐에로 공연, 퀴즈 대회 등이 열려 어린이들의 흥을 돋웠다.또 ‘경북 어린이 백일장 및 사생대회’도 이날 함께 진행됐다. 환호공원 여기저기에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담소를 나누는 정겨운 모습을 연출했다.오전 10시부터 행사장 곳곳에 마련된 부스에서는 달란트 상점, 인생네컷, 페이스페인팅, 교통안전 증강현실 체험, 심폐소생술, 소방 안전 체험, 전통혼례 체험, 화분 받침대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 행사가 열렸다. 이강덕 시장은 “어린이들의 102번째 어린이날을 축하한다”면서 “우리 포항의 희망이고 꿈인 어린이 여러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김정재 국회의원은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적극적이고 행복한 어린이가 됐으면 한다”고 했고 이상휘 국회의원 당선인은 “공부 보다는 건강하고 밝게 성장하는 어린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백인규 시의회 의장은 “우리들의 미래고 희망인 어린이 여러분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포항을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고 최윤채 경북매일신문 사장은 “날씨가 심술궂지만, 오늘 하루 친구들과 신나고 즐겁고 재미있게 보내길 바란다”고 했다. /장은희기자·단정민 수습기자사진=이용선기자

2024-05-05

묵묵히 걸었던 800㎞ 여정… 길에게 인생을 묻고 나를 찾다

지난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평균 수명이 길어진 21세기. 그에 발맞춰 많은 이들이 ‘걷기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다. 동시에 주목받고 있는 국내외의 ‘걷기 좋은 길들’. 그 가운데 정점을 찍는 걷기 코스는 산티아고 순례길(El Camino de Santiago)이 아닐까 싶다. 이 길은 유럽에 산재한 여러 가지 루트로 출발해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당에 도착하는 유명한 도보 순례 코스.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위해선 꽤 긴 시간이 필요하고, 비용도 적지 않게 사용되지만 의의로 한국에도 그곳을 다녀온 이들이 적지 않다. 기자 주변에도 이미 3~4명의 선후배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거나, 걸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자그마치 800㎞에 이르는 이 순례길에선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를 가지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종교적 신념,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 미래에 관한 불안, 실패한 연애가 준 절망감, 희망과 꿈을 향한 도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들의 가슴 안에는 수만 가지 사연이 담겨있을 터.경북 포항시 청하면에서 태어나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세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김상국 명예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바로 이 김 명예교수가 자신의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체험을 담은 책을 최근 출간했다. 이름하여 ‘잊혀진 나를 찾아가는 길’(도서출판 지식나무).그는 거기서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걸 느끼고 돌아왔을까? 또한, 순례길 체험을 꿈꾸는 다른 이들에겐 무슨 말을 들려주고 싶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제법 긴 질문지를 보냈다. 김상국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는 몇 번의 통화와 이메일 수·발신으로 진행됐다. 아래 그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요약해 옮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이유는.△나이가 들수록 몸과 마음이 무기력해진 시점에서 Y대학 선배 교수의 산티아고 무용담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결심했다. 당시 나는 체중이 100kg이 넘어있었고 약간의 우울 증세도 있었다. 무기력해진 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준비해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젊은 시절의 믿음과 삶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고 싶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념은 늘 잠재되어 있었다. 그것을 다시 찾고 싶어서 결심했다.-순례길 800㎞를 걸었다. 어떤 준비를 했는지.△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했다. 체력은 하루 6~8시간 활동할 수 있는 적응력이 필수조건이다. 다음엔 지루하고 반복적인 활동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들어야 한다. “난, 완주할 수 있다”란 비장한 각오가 필요했다. 이런 습관은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가장 힘겨웠던 구간은.△대부분의 순례자가 첫날 피레네산맥을 넘어오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해발 1500m다. 첫째 날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러야 이 산을 넘어간다. 높은 산들로 몇 시간이고 내내 오르막만 전개되기 때문이다. 평야만 있는 곳에서 살아온 순례자들은 특히 힘들게 느껴진다. 한국의 대청봉, 천왕봉, 한라산 정도의 운동량이라고 비교하면 된다. -반면 가장 감동적이었던 구간은.△순례길은 매 구간 특색이 있어 감동을 준다. 그러나 많은 순례자가 감격의 눈물을 뿌리는 곳은 두 곳이다. ‘철의 십자가’와 순례길 종착지다. 철의 십자가는 순례길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또 3주 이상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자신의 소중한 물건 하나를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수많은 사연을 놓고 간다. 어떤 순례자가 하늘나라로 간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두고 가는 걸 봤다. 이 철의 십자가는 순례자들 소망의 안식처가 되고, 세상의 온갖 죄와 허물을 씻어내는 사랑의 강물이 된다.-순례길에서 만난 이들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나와 여러 번 대화를 나눈 순례자들이다. 그중 약 500㎞를 동행한 미국 제임스 목사와 각별했다. 그는 내게 “Are you a Christian?”이라 질문해 그렇다고 대답하자, 다시 “Are you a born again Christian?”이란 질문을 던졌다. 제임스 목사와 긴 구간을 동행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산티아고의 길과 어우러져 보람과 가치를 느끼게 한 사람이다.-이번 책 ‘잊혀진 나를 찾아가는 길’은 어떤 방식으로 썼는지.△지금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을 3번 완주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최초 방문했을 때 메모해둔 기록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첫 번째 시기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전 약 한 달 남짓이었고, 최근 세 번째 다녀온 건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워진 2023년 봄이었다. 매번 출발은 설렘 반 긴장 반으로 시작되지만, 일단 길 위에 올라서면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 자연이 준 신비한 기운 때문이 아닐까 한다. -책 제목이 흥미롭다.△제목은 직접 지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그 꿈이 마음속에서 선명해질 때 ‘집념과 열정’이 생긴다. 꿈은 가슴에 품는 힘이며, 성공보다는 행복을 만든다. 이러한 에너지, 즉 열정은 인생 후반부터 강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또한 길들여진 익숙한 프레임 속에서 오래 살아가다 보면 꿈과 열정 없이 무미건조한 삶으로 이어진다. 내가 미국 유학 시절에 꿈과 열정을 쏟았던 모습을 다시 살리고 싶은 생각에 ‘잊혀진 나를 찾아서’란 주제를 사용했다.-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던 날엔 어떤 감정이었나.△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다가가면 “아! 나도 할 수 있어”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결과다. 완주를 끝내고 얻은 성취감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안도감과 함께, 건강하게 버텨 준 두 다리에 감사를 느꼈다. 체중이 8kg 빠지고 더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순례길은 신비스러운 바다와 같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녹인다. 바람이 불면 녹색의 파도가 순례자의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순례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에겐 들려줄 조언은.△산티아고 순례길 800㎞는 체력과 마음의 준비가 필수다. 누구나 준비를 잘하면 무사히 완주가 가능하다. 준비 기간은 개인 차이가 있지만 6~12개월이면 충분하다. ‘길에서 만나는 외국인과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라는 두려움보다 자신감에 더 큰 무게를 두면 된다. -앞으로도 길 위에서 삶의 해답을 찾을 생각인지.△나는 걷기를 무척 좋아한다. 올 봄에는 영국 바스(Bath) 지방을 걸으며 힘을 얻고 왔다. 내년에는 남아메리카 태양의 도시 혹은, 잃어버린 도시라고 알려진 페루 마추픽추(Machu Picchu)에 도전하고 싶다. 자연은 명화(名756B)다. 이것을 깨닫는 자는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이게 바로 나를 멈추게 하지 않는 도전의식이다.-여행에 관해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면.△여행은 닫힌 마음을 열어주고, 자기주도적 인생 경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요즘 젊은이들은 익숙해진 편리함을 벗어나야 한다. 그 속에 빠질수록 무기력이 찾아온다. 스스로 배낭을 메고 도전하는 습관은 자신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발적인 여행 습관은 인생을 성숙하게 만든다.-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현대 문명은 인간을 편리함에 익숙하게 만들고, 그 익숙함에 속아 몸과 마음이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다. 건강을 지키는 건 우리들의 고귀한 책무다. 걷기만 잘해도 ‘생활습관병’을 예방할 수 있다. 걷기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돈도 들지 않는다. 건강한 삶을 원한다면 오늘부터 걷기를 시작하면 된다. 건강은 행복의 밑거름이다. 여러분이 찾는 행복은 바로 자신 안에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30

울창한 소나무숲 거닐며 피톤치드 샤워, 건강은 기본 힐링까지

100대 명산을 오르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은? 동네 뒷산을 200번 오르는 것이다. 어느 산이든 곁에 있는 산이 최고이고, 접근성이 가장 큰 미덕이다. 산은 인(仁)과 통하니 수양에 좋고, 유산소 운동인 등산은 자체로 훌륭 한 건강 수단이자 치료제다. 세계에서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다는 한국 중장년들이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것은 그들을 품어주는 산들이 주변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이번에 소개할 산은 바로 이 컨셉에 가장 잘 들어맞는 곳이다. 도심과 가까이 있고 험하지도 않아 운동화와 물병을 챙기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다. 공기나 물처럼 너무 가까이 있으면 소중한 줄을 모른다고 하는데 자칫 이 산도 이런 범주에 들까 염려되는 곳이다. 너른 품을 열어 일상에 지친 포항시민들을 넉넉히 품어주는 양학산(良鶴山)을 소개한다. ◆부학산, 양학산, 방장산 등 다양한 이름양학산은 부학산, 방장산, 연화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본래 이름은 무엇일까. 먼저, 방장산은 방장산터널 일대의 낮은 구릉을, 연화산은 대성사(大聖寺) 인근의 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성, 대표성 떨어짐) 다음 양학산은 ‘양학동’이라는 행정동이 들어선(1966년) 후 정해진 일종의 행정명으로 고유성면에서 실격이다.그런 의미에서 ‘학이 날아오른다’는 뜻의 부학(浮鶴)이 가장 대표성을 띠고, 운치도 있어 본래 이름에 가장 가깝다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산 주변에 학, 황새와 관련된 설화도 많이 등장해 역사, 고증에서도 유리하다. 이 산은 양학동, 대이동, 학잠동에 걸쳐 있는데 동(洞) 유래가 재미있어 잠깐 소개한다. 먼저 양학동은 기존에 있던 ‘득량마을’과 ‘학잠마을’ 이름에서 한글자 씩 따와 이름이 유래됐다. 득량의 기원인 ‘득량곡’(得良谷)은 마을에 득량지(池)가 있어 농사와 양식걱정이 없는 마을이라는 유래를 갖고 있다. ‘학잠’(鶴岑)은 뒷산의 묏부리 모양이 학이 내려앉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비롯됐다고 한다.대이동(大梨洞의) 유래도 재밌다. ‘대잠동’(大岑洞과) ‘이동’(梨洞)의 이름이 합쳐진 것인데, 대잠은 마을 한가운데로 산줄기(岑)가 길게 뻗은 데서, 이동은 마을 입구에 큰 배나무가 있어 이 지명이 붙었다. ◆KCC스위첸-양학연당-포항시청 코스 유명보통 양학산 등산로의 기본 코스는 KCC 양학스위첸으로 올라 부학정-양학연당-산림조합 뒤편으로 오른 후 제3체력단련장-이마트(이동점)-이동삼성아파트-방장산터널-전망대를 거쳐 포항시청으로 내려오는 7.5km 코스가 주류를 이룬다.이 코스의 장점은 크고 작은 소나무숲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 거목들이 군락을 이루거나 역사적 서사를 간직한 것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숲을 펼쳐 산행객들에게 피톤치드 세례를 만끽하게 해준다.전국적으로 소나무 재선충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지만 이쪽은 해풍(海風) 덕인지 아직은 선방하고 있는 것 같다. 20리길 등산로가 성에 덜 차는 준족들은 서쪽 이동산 쪽으로 진행하거나 동쪽 연화재를 거쳐 아치재로 연장하기도 한다.전체 산세는 고도 200m 급으로 낮은 편이지만 지세가 평온해 저질 체력(?)들도 부담없이 오를 수 있다. ◆전망대-양학연당-부학정 등 곳곳에 명소이제 본격 산행에 나서보자. KCC 양학스위첸을 들머리로 잡고 올라 1시간쯤 지나면 아담한 정자가 하나 나온다. 양학동과 대이동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부학정(浮鶴亭)이다. 산세가 학의 형상을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쉬운 것은 정자 이름을 한글로 표기했다는 점. 유감스럽지만 한글 간판으로는 ‘학이 날아오르는 정취’를 전혀 느낄 수 없다. 팝송을 한글로 적어 부르는 느낌이랄까?다시 북쪽으로 20분쯤 진행하면 ‘양학연당’이 나온다. 등산로에서 살짝 비켜서 있어 잠시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여름이면 못에 연꽃이 만발해 주민들에게 눈 호강을 시켜준다. 역시 아쉬운 점은 안내·해설 표지판이 없어 ‘연당’(蓮堂)인지 ‘연당’(淵堂)인지 헷갈린다는 점.길은 산림조합 뒷산을 거쳐 제3체력단련장으로 연결된다. 서쪽으로 이동산을 잠시 조망하며 걷다보면 이마트(이동점)에 이르는데, 여기서 잠시 도로로 접어들어 이동삼성아파트까지 진행한다.이동중학교-방장산터널을 지나 비탈길을 잠시 거친 호흡으로 오르면 전체 등산로 하이라이트 ‘전망대’에 이른다. 양학산 최고의 뷰 포인트로 시티뷰, 오션뷰를 두루 즐길 수 있다. 전망대 난간에 서면 영일만의 푸른 파도, 송도해수욕장과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 포스코 전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서쪽으로 길을 접어들어 하산하면 전체 등산로의 종점 포항시청이 나온다.바다가 민물과 해류를 가려 받아들이지 않듯, 산도 희노애락 정서를 모두 품어준다. 연인, 벗들과 함께 하는 산은 희락(喜樂)일 것이고, 자녀 진로의 고민이 있는 주부나 시름에 찬 중년들이 오르는 산은 노애(怒哀)의 어디쯤 일 것이다.맘대로 따라주지 않는 자식으로 고민한다면, 취업·진로 문제로 우울한 청춘이라면, 직장의 진퇴를 놓고 고민하는 중년이라면, 지금 뒷산으로 오르라. 어진(良) 학(鶴)이 답으로 이끌 것이다. 양학산 일대 재미있는 지명들양학산 일대는 1980년대 이후 대부분 아파트촌으로 변했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전통부락들이 많이 남아 있다. 재미있는 옛 지명들을 소개한다.▷선달각단=옛날에 무과 벼슬인 선달(先達)을 지낸 사람이 이 마을에서 살았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사장골(師丈谷)=문씨라는 선비가 현재 양학초교 근처에서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하는 데 이 일대를 사장골이라고 부른다.▷가마골=마을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름처럼 이 골짜기는 겨울에도 따뜻하고 늘 의식(衣食)이 넘친다고 한다.▷못안(池內), 신지(新池)=득량못 안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다. 이 못은 물이 깨끗해 붕어, 잉어 등 물고기들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큰골, 큰동네=학잠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1974년 포항시 최초 아파트인 학잠아파트(현재 대림힐타운)가 들어섰다. 마을 입구엔 1981년 개장된 양학 시장이 있다./글·사진=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4-25

동쪽 해변에서 마주한 석양, 장엄하고 쓸쓸함에 ‘뭉클’

매양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시간의 속도는 그 무엇보다 빠르다. ‘푸른 용이 여의주를 물고 온다’는 갑진년 벽두에 술렁이는 마음으로 새해 희망을 설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미 올해의 1/3이 흘러버렸다.외투 깃을 올려 세우던 1~2월 추위가 지나고, 3월엔 개나리와 매화를 필두로 벚꽃과 목련 등 봄꽃들이 피었다 지고, 중국에서 몰려온 누런 황사에 따가운 눈을 부비며 넣어뒀던 마스크를 꺼내 낀 채 거리를 걸었던 4월도 이제 막바지다.때론 날이 궂고 미세먼지가 호흡기를 위협하는 날들도 있지만, 그래도 봄은 산책하기 좋은 계절. 굳이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세상 모든 위대한 생각은 걸을 때 떠오른다”는 문장을 가져다 쓰지 않더라도.멀지 않은 거리에 해변 여러 개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푸른 바다와 부서지는 하얀 포말을 만날 수 있는 포항은 어떤 면에선 축복받은 도시다.한적한 4월의 주말 오후. 양덕동에 자리한 시내버스 207번과 600번 종점에서 20~30여 분만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죽천해수욕장으로 봄 산책을 나선 건 ‘오랜만에 자연 곁에서 걸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에서였다. 감히 니체 흉내를 내서 ‘위대한 생각’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고.□ 한산하고 고적한 죽천해변이 주는 즐거움최근 몇 년 새 각종 드라마와 TV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포항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드라마 촬영지로 이름을 알린 구룡포와 월포해수욕장엔 젊은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찾아와 과메기와 대게를 맛본 후 일본인 가옥거리를 돌아보고, 파도타기 등 해양 스포츠를 즐긴다.한국에선 드물게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영일대해수욕장은 다양한 형태의 카페와 주점, SNS로 유명해진 맛집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어 사철 20~30대 청년들로 북적인다.죽천해수욕장은 앞서 말한 유명 관광지처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해변은 아니다. 그러나, 시끌벅적한 관광지가 아닌 한산하고 고적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만한 공간임에 분명하다.인터넷에서 한국의 주요 여행지와 숙박업소, 소문난 맛집 등을 사진과 함께 간략하게 안내하는 ‘트립인포’는 죽천해수욕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죽천해수욕장은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죽천리에 있다. 광활한 동해를 배경으로 차박을 즐기기 좋은 명소로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캠퍼가 모여든다. 낚시를 즐기는 여행자들도 즐겨 찾고, 여름 휴가철이면 해수욕을 만끽하고자 찾아오는 가족 단위 여행객도 많다. 포항IC에서 가깝고, 주변에 포항 해상스카이워크와 환호공원이 있어 연계 여행에 나서기 수월하다.”직접 가서 확인한 결과 위의 소개 중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였다. 시야가 확 트인 널찍한 모래밭과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 풍경은 동해에 접한 여느 마을처럼 분명 근사했다.하지만, 차박을 준비하거나, 물고기를 낚는 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람이 드물었던 이유는 아직 해수욕장이 진가를 발휘하는 여름이 아닌 이유도 있었을 터. 포항 시내와 그리 멀지 않음에도 인적이 드문 촌락 같은 풍경.조그만 텃밭에서 기른 마늘을 손질하던 할머니 한 분이 처음 보는 낯선 사람임에도 망설임 없이 기자에게 말을 걸어왔다.“어디서 왔어요? 8월에 오면 여기가 해운대나 경포대 못지않게 좋아요. 그때가 되면 내가 저기서 성게국수랑 파전도 만들어 파니까, 한여름에 꼭 한 번 다시 와요.”낯선 거리를 걷는다는 건 이처럼 예상치 않은 소박한 환대와 만나는 기쁨을 주기도 한다. 이런 게 바로 ‘산책의 즐거움’ 아닐지. □ 산책길의 끝에서 떠올린 김광균의 시 한 편따스하고 환한 웃음을 주고받으며 할머니와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눈 후엔 무작정 해변 마을 골목을 걸어 다녔다. 별다른 목적 없이 푸른 파도를 곁에 두고 청량한 봄볕 아래서 1~2시간쯤 걷는다는 건 나이·성별과는 무관하게 꽤 즐거운 일.커피와 아이스크림, 맥주와 칵테일 등을 판매하는 올망졸망한 카페가 2~3군데 문을 열고 있었으나 손님이 많진 않았다.죽천해변의 가장 큰 매력은 ‘한적한 평화로움’이라 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이윽고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바다를 지척에 두고 보는 석양은 비단 서해만 아름답진 않다. 동쪽 바다의 지는 해도 장엄하고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다.죽천해수욕장의 고졸한 풍경 속에서 지켜본 4월 막바지 저물녘은 자연스레 한 편의 시를 떠올리게 했으니, 김광균((1914~1993)의 쓴 20세기풍 노래 ‘와사등(瓦斯燈)’이다.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긴 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 봄날 해변을 걸으며 깨달은 작은 진실북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한에서 죽음을 맞은 시인은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혹은,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서 덧없는 인간의 삶을 읽어냈다.물리적으로 무게가 없는 그림자가 무겁게 느껴지고, ‘어디를 거쳐 어디로 가라’는 신호기가 차단된 세상에서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또한, 고독하지 않은 생(生)도 없을 게 분명하다.죽천해변에서 마주한 석양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진실 중 작은 하나를 새삼 깨닫게 했다. 그건 바다의 가르침이었을까? 시인의 인생 해설이었을까?2005년 4월. 1개월 일정으로 인도 남부를 여행했다. 아라비아해(海)에 접한 고아(Goa)는 1960~1970년대 제도부터의 자유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히피(hippie)들의 성지로 이름이 높았다.1961년까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에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임에도 소고기 요리가 있는 지역. 인도이면서도 ‘인도다움’이 별반 느껴지지 않는 고아엔 수십 개의 해변이 있다.독일과 프랑스, 스웨덴과 네덜란드에서 온 젊은 여행자들은 짧게는 1~2주, 길게는 몇 개월씩 언주나, 팔롤렘, 콜람 등의 이름이 붙은 해변의 허름한 숙소에 머물며 진홍빛 석양과 어울려 논다. 낮에는 수영을 하고 밤에는 파티를 즐긴다.19년 전 바로 거기서 포항 죽천해변과 너무나 닮은 조용하고 한산한 베나울림해변을 만났다. 지는 해가 선사하는 심장 두근거림은 포항 죽천과 인도 베나울림이 다를 바 없었다. 바로 그 두근거림이 주제넘게 니체처럼 말하게 한다.“비록 덧없고 고독할지라도 삶은 포기해선 안 될 빛나는 어떤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23

청정자연·전통문화가 반기는 ‘체류형 관광 1번지’로

청정한 환경에 볼거리와 즐길거리 많은 청송군이 ‘산소 카페’라는 도시 슬로건에 어울리는 문화관광 환경 조성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 다양한 관광 시책사업을 추진해 ‘함께하는 문화관광, 상생하는 산소카페 청송군’으로 도약을 준비 중인 것.지금은 관광의 트랜드가 바뀌고 있는 시대다. 유명세를 떨치는 관광지보다는 관광객이 몰리지 않는 여행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오랜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고택이 즐비하고 다양한 지질 현상이 만들어내는 깨끗한 생태환경이 보존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 받은 청송군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표적 체류형 관광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문화관광도시 조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청송군은 이러한 관광 트렌드에 발맞춰 체류형 관광도시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관광사업을 통해 군의 특징을 살린 문화관광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예정이다. 특히 ‘산소카페 청송군’의 차별화된 청정자연과 유서 깊은 전통문화, 참신하고 다양한 문화 관광 콘텐츠를 융합해 한층 많아진 관광수요에 부합하는 지역 관광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갈 전략을 세우고 있다.청송군은 ‘주산지 관광지 조성사업’, ‘한옥스테이 사업’, ‘골목경제 회복 지원사업’ 등을 통해 유동 인구를 늘리고 지역 경제를 더불어 활성화시킬 복안을 가졌다. 특히 호텔과 글램핑장을 갖춘 이색 숙박시설을 조성해 젊은 세대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지역에 더 오랫동안 머물게 하고, 달기 약수탕 거리 환경 개선과 메뉴 다양화로 관광객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관광정책 다변화를 통해 청송형 관광사업의 외연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이와 함께 지역민들의 여가 생활과 건강까지 책임질 수 있는 청송 아웃도어 골프장과 진보면과 산남지역에 파크 골프장을 조성해 관광객들이 청송의 수려한 자연을 즐기는 공간으로 제공할 계획이다.더불어 청송을 대표하는 ‘청송사과축제’를 적극 활용해 관광 활성화를 이끌어 나간다는 계획도 세웠다. 올해 개최되는 제18회 청송사과축제는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 등 청송사과축제만의 장점과 색깔을 담아내 청송사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청송군의 위상에 걸맞은 최고의 사과축제를 준비할 계획이다.이와 관련해 윤경희 청송군수는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공존하고, 사람의 숨결까지 어우러진 최고의 문화관광 도시를 만들고 지역주민의 일자리를 늘려 관광을 통한 실질적인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루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2024년 12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위 유지청송군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첫 재인증에도 성공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운영위원회는 지난해 9월 현장평가를 통해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관리·운영 현황을 점검했고, 이를 토대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최종이사회에서 재인증을 뜻하는 ‘그린카드(Green Card)’ 부여를 의결했다.지난해 6월 9일 공식 문서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재인증을 확정받은 청송군은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됐던 현장평가 기간을 포함해 2024년 12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라는 세계적 브랜드 도시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집행이사회는 청송군이 2017년 최초 인증 당시 받았던 권고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였을 뿐 아니라, 지질유산과 문화유산의 연계, 지역주민 협력, 인구감소 및 기후변화 대처, 교육관광 프로그램 운영 등에 있어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취지에 맞게 세계지질공원을 관리·운영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지난해 9월 청송군을 방문했던 현장평가단은 “지질공원 발전을 위한 청송군 관계자들과 지역주민의 적극적 지원과 노력이 돋보였다”며 “기후변화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질공원 운영 목표와 지역주민 및 학교와의 협력은 전 세계 지질공원들이 벤치마킹할 만한 우수 사례로 판단된다”고 평했다.현장평가 위원장이었던 트란 탄 반(베트남)은 유네스코에서 세계지질공원을 그 취지에 맞게 운영한 세계지질공원에 부여하는 모범 운영 상(Best Practice Award)을 신청하라는 의견과 함께, 자신이 추천서를 제출하겠다는 의향을 내보였다.청송군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재인증 평가 기간이 조정됨에 따라, 내년에 두 번째 재인증 평가를 받게 됐다.두 번째 재인증을 위해 청송군은 지질공원 가시성 확대, 교육 및 관광프로그램 운영 대상 확대, 인프라 조성, 국내외 교류활동 추진 등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평가기준에 맞춘 지질공원 운영에 노력할 예정이다.□이색 숙박시설 만들고, 달기약수탕 거리 활성화최근 청송군은 경북도가 주관하는 ‘경북형 이색숙박시설 조성사업’ 공모에 최종 선정돼 사업비 100억 원을 확보했다. 이 공모사업은 글로벌 K-관광선도와 외국인 관광객 300만 명 시대를 여는 ‘경상북도 2030 관광 비전 목표’로 추진하는 사업이다.숙박시설 자체만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되도록 유휴시설을 활용해 경북형 이색숙박시설을 조성하는 이번 사업의 대상지는 주왕산면 하의리 일원 청송양원(구 주왕산초등학교)으로 지난 2009년 청송군이 매입해 현재 예비군면대, 산불진화대 사무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총사업비 100억 원으로 건축설계를 공모해 2026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가족형호텔 15실, 청송사과 글램핑장 15곳, 바비큐장 15곳, 트리하우스 4곳, 라비에벨 카페식당, 야외물놀이장, 주차장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호텔의 편안함과 캠핑의 즐거움, 그리고 산소카페 청송군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이색 숙박시설을 조성한다는 것이 청송군의 각오다.또한, 이 사업은 청송의 주요 관광지인 주왕산, 주산지, 얼음골, 유교문화전시체험관 등 지역관광자원 연계와 관광객을 위한 체험관광 프로그램 개발로 이어져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이외에도 청송군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행정안전부 맞춤형 골목경제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프로젝트의 세부 명칭은 ‘달빛 내려앉은 달기약수거리 활성화사업’이다.달빛 내려앉은 달기약수거리 활성화사업은 20억 원의 사업비로 수변테크 설치, 경관조명 설치, 노후된 약수탕 환경개선 등 가로환경개선사업을 진행하고, 관광객들의 체험과 휴식을 제공하기 위한 문화복합공간인 로컬 앵커스토어 건립 등도 추진한다.청송군은 이 공모사업을 통해 과거 달기약수탕의 명성을 되찾고 MZ세대들의 발길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새롭게 단장해 달기약수탕 주변의 골목경제를 활성화 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에 더해 달기약수탕 상가지역 주민과 상인으로 구성된 골목경제 공동체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지역주민과 상인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청송군이 협력해 사업을 추진해 나갈 방안도 마련된다. □맨발 걷기 명소로 주목받는 산소카페 청송정원이미 입소문을 통해 관광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산소카페 청송정원’도 건강을 지켜주는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4만2000평 규모의 백일홍 정원인 산소카페 청송정원은 연간 20만 명이 찾는다. 최근엔 맨발 걷기 열풍이 불고 있어 힐링 건강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실제로 청송정원에선 맨발로 걷는 관광객이나 군민들을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맨발 걷기가 혈액 순환 개선과 활력 충전, 우울감 해소 등에 효과가 있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결과로 해석된다.청송정원의 백일홍 향과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걷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뿐 아니라, 혈액순환 촉진과 항산화 작용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청송정원 산책로에는 태양광으로 밤에도 불을 밝히는 안심가로등이 설치돼 있어 야간에도 안심하고 산책이 가능하다. 앞으로도 청송군은 맨발 걷기를 하는 이들을 위해 안내 입간판, 신발장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걷기 지도자를 초빙해 맨발 걷기의 기본 자세와 주의점 등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앞서 언급된 것처럼 문화관광의 활성화로 지역경제 발전을 모색하는 청송군의 노력은 현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김종철·홍성식기자

2024-04-22

선거 결과에 유권자들 일희일비, 나무 ‘불변성’에서 교훈 얻길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며칠 전 끝났다. 그 결과 야당은 크게 웃었고, 여당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 법무부장관이 만든 신생 정당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 곧 개원될 국회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지게 됐다. 필부(匹夫)에 불과한 기자로선 어느 당이 국회의 패권을 장악하건 입법 권력이 국민들에게 희망과 신뢰를 주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기자의 기억 속에 자리한 첫 국회의원 선거는 1985년 실시된 12대 총선. 유세가 진행된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이 시끌벅적했고, 목소리 높인 후보들 간의 모략과 비방, 선거운동원들 사이의 욕설과 주먹질을 보며 ‘참으로 개판이군’이란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기자는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회의하는 사람이 됐다. 이를 ‘정치 허무주의’라고 비난할 사람도 없지 않겠으나, 어쨌건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에게서 미래와 희망, 믿음과 화합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서 희망과 믿음을 찾아야 할까?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자신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만든다.“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로지 영원한 것은 저 생명의 나무 뿐이다.”이 문장에 등장하는 ‘나무’가 정확히 어떤 상징과 은유로 사용된 것인지에 관해서는 수백 년 동안 견해가 분분했다. 아직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문학의 해석에서 정답이란 없는 것이기도 하고.다만, 다른 예술 장르에선 ‘나무’가 어떤 은유와 상징으로 등장하는지 살펴본다면 해답에 조금은 가까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시인 로트레아몽이 노래한 ‘나무’는…에스파냐어를 사용한 작가 중 ‘19세기 최고의 표상주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이지도르 뒤카스(1846~1870·로트레아몽)가 쓴 단 한 줄짜리 짧은 시가 있다.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나, 정작 그 안에 담긴 함의를 제대로 읽어내기는 어려운 단시(短詩).시인을 꿈꾸던 수많은 문학청년들에게 ‘이런 걸 써낼 수 있어야 한다면 나는 절대 시인이 될 수 없겠구나’라는 깊이 모를 절망과 ‘기필코 나도 인간의 심장을 떨리게 하는 이런 좋은 시를 쓰고야말겠다’는 뜨거운 열망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 ‘나무’라는 제목을 단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나무는 자신의 위대함을 모른다.’겸손할 줄 모르는 오만과 스스로의 능력과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터무니없는 자만에 콧대만 높던 문학소년들에게 로트레아몽의 ‘나무’가 던진 충격은 컸다.하나를 알고도 열을 아는 것처럼 짐짓 목소리를 높이던 문청들을 한없는 자기반성 속으로 이끌었던 이 시는 “나무는 왜 위대한가”라는 의문을 동시에 던진다. 시인을 꿈꾸던 적지 않은 이들이 살아온 시간은 혹시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영화팬들에겐 두려움과 역겨움이 싫으면서도 공포영화에 집착하는 시절이 있다. 커다란 전정가위로 사람의 목을 잘라버리고, 바나나를 먹는 살찐 여자의 목에 나이프를 꽂는 미국 호러물에서부터 하얀 옷을 입은 귀신이 음습한 별장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한국의 괴기영화까지.공포영화에 대한 집착은 인간 외부에 자의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목적의식 때문이었을 터. 원래 젊은 시절이란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열망에 휘둘리는 때이기에 그랬을 것이다.그런데, 그 공포영화들마다 나무가 등장했다. 늪지의 가장자리에 머리를 푼 원귀의 모습으로, 또는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뒤채는 은빛 여우의 울음을 울며.그렇다면 나무의 은유 중 하나인 ‘위대함’이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어떤 두려움을 그 안에 간직함으로써 얻어진 것일까? ▲‘나무’가 상징하는 두려움과 사랑하지만,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위대함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건 아니다’라는 대답을 어렵지 않게 체득할 수 있다.오랜 기간 한국을 철권통치한 군부 출신 정치인 박정희나 전두환이 두려움의 대상일 수는 있지만, 그들이 위대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처럼.길게는 수십 년, 때로는 수백·수천 년을 한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비바람을 견딘다는 불변의 오만함 탓일까. 나무는 영원불멸의 사랑을 은유하는 대상으로도 곧잘 사용돼 왔다.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 노무현 정권 초기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일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현실에서의 그 사례다.저 먼 신라시대부터 20세기 말까지 자그마치 1천5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로 만든 침대에 전생(前生)에 목숨을 걸만큼 절실하게 사랑했던 여인의 혼이 들어있다는 설정(은행나무 침대)과 비록 성치 못한 몸이지만 서로의 아픔과 고통, 힘겨운 영혼까지 온전히 끌어안은 두 사람의 끈끈한 애정을 한밤에 베어지는 나무를 통해 형상화해낸 영화(오아시스).‘은행나무 침대’와 ‘오아시스’는 우리로 하여금 “나무의 위대함이란 불변하는 사랑을 은유함으로써 증명되는 것이 아닐까”란 독백을 하게 만든다.그러나 이 역시 만족스런 해답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남녀 간의 사랑 외에도 불변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이후였기에. ▲희망·믿음,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것1990년대 중반. 우연히 극장에서 만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은 많은 관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나무’에 관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선물했다.“태초에 말(言)이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너는 그와는 무관하게 침묵하고 있구나. 마치 일생 말없이 물속을 헤엄치는 철갑상어처럼.”이 독백으로 시작하는 구 소련 거장의 영화는 “바람 속을 떠가는 구름의 소리까지 카메라에 담아냈다”는 영화평론가들의 극찬과 함께 ‘주목할 만한 20세기 영화’ 중 한 편으로 기록된다.영화 ‘희생’이 전하는 메시지는 의외로 간명하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믿음. 이처럼 간단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의 잠언이 담긴 영화 ‘희생’.그렇다. 오늘날 현실에서 정치와 정치인이 주는 실망과 환멸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건 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희망을 믿는 사람들’을 이길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희생’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이미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면서도 포기하지 못했던 생명에 대한 외경과 부활에의 믿음. 우리의 생은 바로 그런 희망과 신뢰란 벽돌로 축조돼 왔고 앞으로도 그것들로 만들어져 나갈 것이 분명하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16

70층 랜드마크 타워 오르니 ‘야경천국’이 열렸다

일본 여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벚꽃 계절을 맞아 도쿄나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의 대도시로 여행을 떠난다. 요코하마는 도쿄도에 속해있는 매력적인 항구도시지만 의외로 잘 찾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오래전 일본 요코하마를 찾은 적이 있었다. 요코하마 항구도시의 후미진 이자카야에서 경쾌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블루나이트 요코하마’가 반복되는 이 노래는 이시다 아유미라는 가수가 부른 엔카였다. “거리에 네온사인이 너무도 아름답네요 요코하마 푸른 등 요코하마 당신과 두 사람 행복해요 언제나처럼 사랑의 말을 요코하마 푸른 등 요코하마….” 나중에야 가사를 알게 됐지만 당시에도 항구의 불빛은 아름다웠다. 블루나이트 요코하마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에 들어와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다. 20년이 지나 요코하마를 다시 찾으니 항구는 상전벽해를 거듭했고 푸른 등이 반짝이던 항구는 영롱하기 이를 데 없는 불빛이 보태져 빛의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요코하마는 높은 자부심과 빼어난 패션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도시이자 최첨단과 레트로가 뒤섞인 매력적인 도시였다. ◇ 미나토미라이21 계획으로 성장한 도시요코하마는 도쿄를 자주 찾는 관광객도 의외로 잘 들르지 않는 곳이다. 도쿄 인근의 잘 알려진 관광지인 가마쿠라를 가기 전에 들르는 이들은 있어도 작정하고 요코하마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터놓고 이야기하자면 요코하마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관광지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요코하마를 찾은 이들은 요코하마에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요코하마는 원래 16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지닌 젊은 도시다. 에도시대(1603~1867)만 해도 겨우 100가구가 사는 반농반어의 초라한 어촌마을이었다. 개항이 되면서 사람들이 몰렸지만 간토대지진과 미군 대공습(1945)으로 도심 절반이 파괴됐다.요코하마가 일어서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경제 고도 성장기인 1963년 취임한 아스카타 이치오 시장은 국제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도심부를 강화하는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미래의 항구를 새롭게 그리겠다는 뜻을 담은 미나토미라이21 프로젝트는 요코하마가 자립해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수도권 기능 분담을 목적으로 계획됐다. 1.86㎢에 이르는 바다를 메우고 그 땅에 주택지를 조성했다.현재는 쇼핑몰과 미술관 공원이 들어서서 요코하마의 주요한 관광 코스가 됐다. 오산바시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바라본 고층빌딩 밀집지역은 풍경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즐겨찾는 명소 중 하나다. 환상적인 야경 스카이라인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 근대의 상징이 된 뉴그랜드호텔미나토미라이역 21지구의 도심 재개발 사례 중 대표적인 예가 미나토미라이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요코하마 아카렌가 창고다. 붉은 창고라는 뜻의 아카렌가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종종 이용되는 이색적인 곳이다. 아카렌가는 1911~1913년 다이쇼 시대 정부의 보세 창고로 세워진 두 동의 붉은 별돌 건물로 이뤄져 있다. 원래 이곳은 일본 최초의 근대적 항만시설이었다고 한다. 1989년 창고의 사명을 다한 후 9년 동안 역사적 건조물로서 복원공사를 거쳐 2002년 문화상업시설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아카렌가 창고 1호관은 다양한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다.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은 요코하마 베스트나 아카렌가 데포 등이 입점해 있다. 2층은 전시나 파티 공간, 3층은 연극과 콘서트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카렌가 창고 2호관은 층마다 서로 다른 테마로 꾸며져 있다. 1층은 세계 각국 요리를 선보이는 캐주얼 레스토랑과 카페, 소품전문점 등이 있고 2층은 고급 엔티크 가구점, 3층은 중국 요리 전문 레스토랑과 바가 들어서 있다. 아카렌가 창고는 밤이면 더 아름답다. 벽돌 주위로 불빛이 일제히 빛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서구 문물이 들어오던 시절의 유산은 요코하마 곳곳에 근대 서양식 건축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1927년 문을 연 뉴그랜드호텔이다. 간토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땅에 세워진 근대식 건축물은 요코하마를 발전시키고 싶어 한 당시 사람들의 염원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벌써 9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뉴그랜드호텔은 마치 세월이 비켜간 듯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금 촌스러운 느낌이 드는 푸른 융단에 육중해 보이는 돌계단, 마치 천장까지 이어질 듯한 높고 긴 유리창, 탁자와 의자까지 클래식하다. 심지어 90년 전에 만들어진 엘리베이터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요코하마의 역사와 같이한 호텔이다 보니 2차대전 당시 점령군으로 일본을 통치했던 맥아더 장군은 물론 찰리 채플린, 베이브 루스도 이곳에 묵은 적이 있다. 이 호텔 2대 총주방장이 만든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지금도 호텔의 주메뉴일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즐겨먹는 스파게티의 원조가 됐다. 1991년 신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중후하고 클래식한 분위기 때문인지 구관에 투숙객이 더 많은 것은 물론 많은 이가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 요코하마 관광의 백미 눈부신 야경요코하마 관광의 백미는 야경이다. 일본에 수많은 야경 명소가 있지만 요코하마 야경은 3대 야경이니 5대 야경이니 하는 순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요코하마 야경은 이미 다른 야경지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요코하마 사람들은 자랑한다. 요코하마 사람들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야경을 보면 놀랄 만큼 눈부시다.요코하마의 야경 포인트 중 한 곳은 70층짜리 랜드마크 타워에서 관람하는 것이다. 랜드마크타워는 미국 건축가 휴 스티븐스의 설계로 1993년 지어진 296m 초고층 빌딩이다. 오사카의 아베노 하루카스(300m)가 건설되기 전까지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엘리베이터로 약 40초(분속 740m) 만에 69층 전망대에 오르면 요코하마의 전경이 360도로 펼쳐진다. 전망대는 오후 5시부터 야경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저마다 삼각대를 걸쳐놓고 요코하마항과 도쿄 도심까지 알록달록하게 펼쳐진 색의 향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자리 다툼을 벌인다. 요코하마항 풍경도 빼어나지만 후지산을 중심으로 서서히 지는 낙조는 한 폭의 그림처럼 매력적이다.랜드마크타워 바로 옆에는 160여 개의 상점과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대형 쇼핑몰인 랜드마크플라자가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와 일본 디자이너 편집숍이 들어서 있다. 랜드마크플라자 옆에는 로마 원형경기장처럼 생긴 도크야드가든이 이채롭다. 원래 이곳은 1896년에 선박 및 항만 관련 시설 정비용 도크로 지어진 곳이다. 선박들이 점차 대형화되면서 조선소가 옮겨갔고, 제기능을 상실했다가 1995년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다.야경을 찍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소는 아카렌가 창고에서 멀지 않은 요코하마항 오산바시에서 미나토미라이지구를 바라보는 풍경이다. 고층 빌딩들이 일제히 불을 밝히고 대관람차가 시간대에 맞춰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빛의 축제가 펼쳐진다. 이곳이 야경천국 요코하마다. /일본 요코하마=글·사진 최병일 여행전문기자

2024-04-11

‘승자와 패자의 드라마’ 볼만한 정치 영화 어때요

“실정을 거듭하는 정권을 심판하자”는 구호와 “야당의 부도덕한 범법자들에게 표를 주면 안 된다”는 주장이 대립하는 2024년 봄이 지나고 있다. 오늘은 22대 국회의원 선거일.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와 뉴스를 통해 연일 들려오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탈법과 불법 사례, 양보와 화합이 아닌 극한 대결로만 치닫는 정치권을 보고 있으면 “봄은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않다”는 끌탕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 모두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유권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정치학자들의 말처럼 ‘선거란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행위’다. 식상한 레토릭이지만 ‘나의 소중한 한 표’가 이 땅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기에 다시 투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들. 일찌감치 투표를 끝낸 독자들이 있다면 오후엔 아래 추천하는 영화를 보며 한국의 정치와 선거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자연스레 현실에서의 국회의원 선거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시민’배우 최민식이 뿜어내는 아우라(Aura)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영화 ‘명량’에서 열세에 몰린 조선 장군의 고뇌를 연기할 때도, 타자의 고통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연쇄살인범으로 변신한 ‘악마를 보았다’에서도, 크나큰 상처를 지낸 채 살아가는 지리산 호랑이 사냥꾼으로 분한 영화 ‘대호’에 출연했을 때도 그는 돌올했다.사람에 따라 평가는 갈리지만, 최민식이 ‘연기 잘하는 배우’란 걸 부정할 영화팬은 많지 않을 듯하다. 그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캐릭터와의 밀착력이다. 감독과 관객이 원하는 존재로의 자연스러운 변신, 영화 속 인물로의 완벽한 몰입.“배우라면 그게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최민식 정도의 변신과 몰입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출연하는 영화마다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온 최민식이 3선 국회의원 출신의 재선 서울시장으로 나오는 영화가 ‘특별시민’이다.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세계 어느 곳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 벌이는 최고의 이벤트라 할 선거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쇼(Show)’라는 단어가 발견될 게 분명하다.‘특별시민’은 눈앞에 닥친 선거의 승리를 위한 정치인들의 복마전과 이전투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유권자들 앞에서는 “국민 행복과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를 외치다가 이내 돌아서서 “나와 가족의 이익을 위하여”라며 음흉하게 웃는 정치인과 선거의 어두운 이면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다. ‘특별시민’의 무대가 되는 공간은 한국의 서울시. 서울시청사는 물론,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청와대까지 거침없이 비추는 연출자 박인제 감독의 카메라는 2024년 4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특별시민’은 상영 시간 내내 영화와 현실의 경계에서 쓴웃음을 짓게 한다. 거듭되는 저급한 수준의 네거티브 공세와 공작 정치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오는 선거캠프의 운동원들, 함량 미달의 정치인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한 억지스러운 미디어 연출… 이쯤 되니 ‘특별시민’은 허구를 재료로 만든 극영화가 아닌 사실에 근거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일 지경이다. 시종 흥미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사실적 연출은 ‘특별시민’을 특별하게 느껴지게 한다. 이는 박인제가 성취한 연출의 승리다.하지만, 박 감독이 이룬 작은 승리의 배후에는 영화 속 서울시장 후보 변종구의 큰 승리가 있다.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래퍼 분장도 마다치 않고, 묘하게 조작된 동영상을 통해 대중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선량한 정치인을 가장하는 변종구. 그러면서도 아내에게는 폭력적이고, 아랫사람에게는 권위적인 이중성을 시시때때로 드러내는 변종구….누구라 특정할 것도 없이 우리는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변종구’를 봐왔던가. 거기서 생긴 실망감이 ‘정치(선거) 허무주의’로 이어졌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최민식은 다중성을 지닌 자신의 극 중 캐릭터 변종구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앞서 말한 능수능란한 영화적 변신과 몰입을 통해. ‘특별시민’이 최소한 ‘재밌는 영화’로는 불릴 수 있는 이유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정치와 정치인을 다룬 이전의 한국 영화들과 달리 ‘특별시민’은 끝까지 선과 악에 대한 감독의 자의적 가치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모호함이 세련됨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오는 건 영화가 주는 덤이다. 부패한 정치인과 조직폭력배에 관한 영화적 성찰 ‘레전드’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용감했던 여기자’를 꼽으라면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오리아나 팔라치(1929~2006)가 바로 그 위치를 점한 사람이란 것에 관해.레지스탕스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뿐이랴. 베트남 전쟁의 포화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들었고, 혁명이 한창이던 멕시코에서는 총에 맞기도 했다.세상 대부분의 남자들이 두려워하던 이란의 아야툴라 호메이니,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미국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신이 주도해 인터뷰를 이어가던 무시무시한 여자.바로 이 오리아나 팔라치가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당신이 만난 권력의 최정점에 섰던 정치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다.“그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똑똑하지도 선량하지도 않았어요. 좋은 가정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상대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게다가 배려와 연민에서는 아주 먼 사람들이었죠. 그들이 가진 능력이라곤,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 했으며,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몹시 악랄한 수단도 마다치 않았다는 것이죠.”유명한 영국의 조직폭력배 형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레전드’를 보면서, 왜 이탈리아 출신의 여기자 오리아나의 진술이 떠올랐는지….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기자가 젊었던 시절 ‘L.A 컨피덴셜’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치고 빠지는 능수능란한 할리우드적 전술로 자국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성공을 거둔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는 브라이언 헬겔랜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은 그가 만들었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레전드’와 만났다.그런데, 결론을 말하자면 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연출에선 힘이 빠졌고, 주연 톰 하디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캐릭터는 이전 이탈리아 마피아를 소재로 한 영화나, 1930년대 금주법 시대를 그린 미국 갱스터영화의 복사판이었다. 영화 ‘레전드’ 포스터. /영화 홈페이지 얼핏얼핏 비치는 ‘깡패도 휴머니티가 있다’는 식의 짜 맞추기식 화면 구성의 동어반복도 눈 높은 갱스터영화 팬이라면 참고 봐주기 힘든 수준.‘레전드’의 꽤 긴 상영 시간을 지겹지 않게 만드는 게 있다면, 1인 2역을 맡아 빼어난 연기로 이를 소화한 톰 하디(레지 크레이·로니 크레이 분)의 열연 정도다.어린 시절 나치의 폭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동생 로니와 그에 비해 훨씬 이성적인 쌍둥이 형 레지의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긴 어려웠을 게 명약관화한 일. 그럼에도 톰 하디는 군계일학의 연기력으로 이를 극복해낸다. 영화 ‘레전드’의 미덕을 하나만 더 꼽으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조직폭력배와 부패한 정치인은 결국 동질이형(同質異形)의 인간이란 걸 재치 있게 보여 준다”고.영화에서 묘사되는 런던의 고위직 경찰 간부와 영국의 상원의원은 추악하고, 위선적인 정도가 깡패와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더하다. 앞서 언급한 오리아나 팔라치의 진술과 유사하게.다행히 ‘우의’를 통한 에두른 세상의 비판이 ‘레전드’ 속엔 눈곱만치라도 담겼다. 이것이 난파 직전의 영화를 구하는 주요한 키워드로 역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엔딩 자막이 올라올 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영화답게 ‘레전드’는 형제 조직폭력배 레지 크레이와 로니 크레이가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 알려준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만약 ‘독설가’인 이탈이라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이런 말을 ‘레전드’의 감독 브라이언 헬겔랜드에게 하지 않았을까.“영국이건 한국이건 조직폭력배와 부패한 정치인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여태 몰랐던 겁니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09

“고사리손도 힘 보태요” 착한 나눔도시 경산 주목

경산은 역사적으로 고대 도시인 압독국의 도읍으로,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곳으로 유명하다.지역에 불교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팔공산 관봉 갓바위가 있으나 지역보다는 대구의 명물로 알려지며 지역 유명세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또 대추와 묘목 등 농산물로 이름을 알리고 10개 이상의 대학과 대학생, 부설 연구기관 등으로 교육도시로 불리고 있지만 지금 가장 다가오는 단어는 ‘착한 나눔 도시 경산’이다.경산의 착한 나눔은 착한 가게 1호가 탄생한 200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이후 지역 경기의 부침에 따라 나눔의 손길에도 변화가 있었지만 어려움 속에도 나눔을 실천하는 손길은 끊이지 않고 15명의 지역 아너소사이어티를 배출한 가슴이 풍요로운 나눔 도시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사회가 우리에서 개인으로 변하고 너와 나의 구별이 명확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작은 나눔이 모여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경산시는 많은 시민들이 작은 나눔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다. □ 착한 가게착한 가게는 중소규모의 자영업에 종사하며 매출액의 일정부분을 정기적으로 기부에 동참하는 가게로 매장을 경영하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가맹점, 학원, 병원 등 어떠한 업종의 가게도 참여할 수 있다.2009년 1호점이 탄생한 지역의 착한 가게는 나눔에 대한 견해가 유명 단체를 통한 국제적인 나눔 등을 선호한 까닭에 2015년까지 45호에 머무는 정체기를 겪었으나 2016년 경산시가 ‘나눔 문화 원년’을 선포하며 활성화돼 경북도 내 1위를 차지했다.이후 2020년까지 543호, 2023년까지 776호까지 증가해 착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나눔을 실천하는 착한가게 주인들은 “비록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생긴 수익으로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 기쁘고 앞으로도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 관심을 가지겠다”고 밝혀 착한 나눔 온도를 지속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착한 일터착한 일터는 직장인의 나눔 프로그램으로 2016년 4월 경산시청 직원 900여 명이 가입을 시작으로 2016년에 6개소, 2017년 55개소가 가입하는 등 현재 73개소의 착한 일터가 있지만, 퇴직 등의 영향으로 현재에는 735명이 착한 일터에 동참하며 경산지역 나눔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착한 일터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0억125만9천955원의 나눔을 실천했다.□ 기부데이 한마당 축제지역의 나눔 문화 확산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경산시가 2016년부터 시작한 ‘기부데이 및 사랑 나눔 한마당 축제’는 지역민과 사회의 관심을 위해 같은 해 8일 8일부터 9월 5일까지 ‘2016 경산시 기부데이 기념표어 공모전’을 개최해 ‘사랑은 행복으로, 기부는 실천으로’라는 최우수 표어를 선정해 시상하고 10월 22일 실내체육관 어귀마당에서 첫 기부데이 행사를 진행했다.이후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과 2021년 개최하지 못했으나 지속적인 개최로 지역의 나눔 문화를 일깨우고 있으며 올해도 10월 26일에 개최할 예정이다.지난해 10월 21일 열린 ‘2023 꽃피다 기부데이 한마당 축제’는 ‘나눔이 있는 곳, 행복이 있습니다’를 주제로 열려 현장 모금 캠페인에 많은 시민이 동참해 공무원 착한 일터 모금액을 포함해 8천819만5천 원의 귀중한 손길을 모았었다. □ 아너소사이어티 15명 배출아너소사이어티는 주로 학업 상으로 뛰어난 학생이나 학계에서 유의미한 연구성과를 이룬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적인 의미이나 사랑의 열매의 아너소사이어티는 1억 원 이상을 기부하였거나 5년 이내 납부를 약정한 개인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을 말한다.즉 사회문제에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참여와 지원을 통해 더 밝은 내일을 여는 사회지도자들의 모임이다.경산지역에서 아너소사이어티의 탄생은 2014년 동원금속(주) 이은우 대표가 1호를 기록한 이후 2014년 1명, 2015년 2명, 2017년 3명, 2019년 2명, 2020년 3명, 2021년과 2022년 1명씩, 2024년 1명의 아너소사이어티가 탄생하는 등 15명의 아너소사이어티가 탄생했지만 안타깝게도 2명의 아너소사이어티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클럽에서 퇴출당했다.경산지역 아너소사이어티 클럽 가입 멤버는 이은우 동원금속(주) 대표, 송병관 은석철강(주) 대표, 손동수 약사암 회주, 권호흥 권치과 원장, 박왕서 삼현이피에스 대표, 반용석 반치과 원장, 이봉희 (주)보성산업 대표, 주재동 동도농산 대표, 김용봉 (주)와이쓰리 대표, 반성명 옥산가스 대표, 프랭크 페이건 목사, 서영수 서광농장 대표, 예선혜 승원치과 대표, 김홍탁 조일산업(주) 대표, 이형주 희성산업(주) 대표 등이다.인구 30만 명 미만의 중소도시에서 15명의 아너소사이어티를 배출했다는 것은 대단히 칭찬받을 일이다.□ 희망 나눔 캠페인세 개의 빨간 열매가 하나로 묶인 사랑의 열매로 대표되는 희망 나눔 캠페인에도 경산시민들은 적극적이다.세 개의 빨간 열매는 각각 나와 가족, 이웃을 뜻하며 열매의 빨간색은 사랑의 마음을 상징한다.그 열매를 하나로 묶은 것은 더불어 하는 사회를 이루자는 의미다.경산시는 ‘희망 2023 나눔 캠페인’에서 11억3천만 원 목표에 13억473만1천207원을 모금해 115%를 달성했고 ‘희망 2024 나눔 캠페인’에서도 12억2천만 원의 모금목표에 14억1천만 원을 모금해 역시 115%를 달성했다.이는 희망 나눔 캠페인 모금액 중 최고액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나눔의 열기가 식지 않은 결과다.나눔의 손길에는 고사리손에서 나온 동전을 모아 온 유치원생들의 저금통, 시민들의 정성 어린 기부, 기관단체들의 십시일반, 시상금을 내어놓은 공무원 등 각계각층의 온정이 넘쳤다. 성금 외에도 식료품과 화장품, 생필품 등 다양한 물품이 기부됐다. 이 밖에도 경산시민의 나눔 활동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안전지원과 회복지원, 돌봄 지원으로 안전한 일상 회복을 위해 사랑의 열매가 추진한 ‘일상 회복 착!착!착! 나눔 캠페인’에서도 경북도 내에서 1위를 기록할 만큼 열정을 보였고 시시때때로 나눔을 실천한 소식이 전해진다.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시, 경산시백천사회복지관이 협약으로 지역의 복지 사각지대의 어려운 이웃을 발굴해 맞춤형 서비스로 생계안정과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조현일 경산시장은 “시민들이 뜨겁게 보여준 나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시민과 기업, 단체들에 감사드리며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소중한 사랑이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희망이 되도록 뒷받침하고 행정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며 “착한 나눔 도시 경산의 시장으로 근무하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4-04-07

이게 라오스 나눔 정신, 새벽 ‘탁발 행렬’에 감동

2008년 루앙프라방에 취재를 왔던 뉴욕타임스 기자의 시야에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여명 속에서 희미하게 행렬을 이루고 있는 탁발승들의 모습이었다.주황색 장삼을 걸친 승려들이 사원을 따라 걸을 때 그들을 맞아주는 또 하나의 행렬, 그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이었다.주민들은 새벽에 정성껏 준비한 과일, 밥, 떡을 승려의 바구니에 넣었고 탁발승들은 합장으로 공양을 받았다. 그날 ‘일용할 양식’이 그릇에 차면 승려들은 다시 밥이며 쌀을 다시 주민들의 바구니에 넣어주는데, 이 밥은 주변 소수민족이나 마을 빈곤층의 식탁에 올려졌다. 주민들의 식량이 절에 올려지고, 그 쌀이 다시 기층 민중에게 내려오는 선(善)순환 구조는 이기주의, 승자독식 시스템에 익숙한 미국 기자에게 경이(驚異) 그 자체였을 것이다.장엄한 의식에 감명 받은 기자는 현장에서 특집을 써내려갔고, 이 기사 덕에 루앙프라방은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할 관광지’에 선정되었다. ◆ 고대부터 라오스 문명을 일군 곳 ‘제2의 수도’ 위상라오스를 ‘시간이 멈추는 곳’ ‘영혼을 치유하는 힐링의 도시’라고 표현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가 루앙프라방이다.해발 700m 고도에 위치한 이 곳은 고대부터 타이족, 라오족이 문명을 일궈 온 곳. 메콩강과 남칸강이 합류해 풍요로운 대지와 용수를 제공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라오스의 ‘제2 수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1353년부터 약 200년간 란싼왕국의 수도로 자리잡은 덕에 당시 왕궁과 불교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사원의 도시’라고 부를 만큼 이들 사찰은 양, 질적인 면에서 라오스 불교문화를 대표해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이런 도시 명성과 위상에 비해 사실 루앙프라방은 인구 6만의 소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라오스 역사 1천년을 말할 때 한 왕조의 탄생지였고, 오랜 기간 라오스의 정신적 지주였던 만큼 사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문화, 전통이 잘 보존돼 있다.이 도시에서 두 달을 머물렀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에서의 사색을 꼼꼼히 적어 내려갔다. 이 책엔 느린 걸음으로 도시를 산책했던 작가의 관조(觀照)가 잘 나타나 있다. 그 결과 루앙프라방은 그의 베스트 여행지 10곳에 당당히 랭크되었고, 책 제목(‘라오스엔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까지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 여명 속 탁발행렬, 라오스의 나눔 정신 잘 나타나전 세계 여행객들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된 루앙프라방의 탁발행렬. 관람의 그 첫 문은 수면(睡眠)을 단축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되는 일이었다. 오전 5시 알람 소리에 잠을 깬 일행은 버스를 타고 사원들이 물려있는 시내로 향했다.아직은 어둠이 사위(四圍)를 삼킨 이른 새벽, 관광객들과 보시(布施)에 나선 마을 주민들이 사원의 담장 밑에 늘어서 있었다.잠시 후 흐릿한 어둠 속에서 주황색 가사를 입은 승려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하루에 첫 출발을 적선(積善)으로 시작하는 보시 행렬이요, 베풂으로 새벽을 여는 나눔의 행진이었다.이런 나눔 덕에 동남아의 최빈국 라오스에서는 주민들이 기아(飢餓)를 면할 수 있었고, 이런 공동체 미덕은 마을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적 지주로 작용했다.승려 중에는 소년들도 많았는데 일부는 잠에서 덜 깬 듯 졸린 눈으로 행진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주민들은 이 동자승을 위해 과자, 초콜릿을 공양한다. 동심은 동심인지라 이들은 바구니 가득 과자, 사탕을 집어넣고 있었는데, 이들 역시 바구니가 차면 마을 어린이들과 나누는 것을 잊지 않았다.미국 언론에 알려질 당시만 해도 이 보시 행렬은 종교, 제의(祭儀) 기능에 충실했지만 지금은 일종의 퍼포먼스, 관광상품 정도로 퇴색되었다고 한다. 일행 중 몇 명이 이 체험에 참여했는데 밥, 바구니와 공양할 자리를 빌리는데 3달러를 내야 했다.이런 상업화의 비난과 관계없이 이 행진은 우리에게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구세군 냄비를 피해 돌아가고, 몇 천원 전화 다이얼링에도 인색한 우리에게 이 행렬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꽝시폭포 비취빛 물빛, 푸시산 노을 감상도 필수 코스루앙프라방이 라오스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기능해 종교, 사상적인 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이 도시는 자연경관, 문화재 등 관광자원 면에서도 빠지지 않는다.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를 닮았다는 꽝시폭포.밀림으로 뒤덮인 숲속에 카르스트 지형이 빚은 계단식 웅덩이에 찰랑거리는 에메랄드 물빛은 관광객들을 동화 속 나라로 이끈다. 옥색 물빛이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 앞에서면 관광객들은 그 위용과 풍경에 압도돼 버린다.일정에 쫓긴 한국인들은 한두 시간 투어로 끝내지만 서양인들은 수영복, 튜브, 간식까지 가져와 반나절씩 머물고 간다.라오맥주(Lao Beer)를 마시며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푸시산도 놓쳐서는 안 될 코스. ‘신성한 산’이라는 뜻의 푸시산은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어 교통의 기준,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총 328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탓에 여성, 노약자, 어르신들은 힘들 수 있지만 대신 노역에 대한 대가는 확실히 보장된다. 관광객들은 이곳에 오를 때 커피와 이곳 특산물인 라오맥주를 가져가는데 이는 석양을 감상할 때 ‘조미료’로 쓰기 위해서다.일행이 도착할 무렵 이미 정상에는 관광객들이 빽빽이 들어차있었다. 바쁜 일정 관계로 일몰을 끝까지 감상하지 못했지만 맥주를 마시며 일몰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자체로 풍경이 되었다.메콩강을 붉게 물들인 노을이 저녁이 왔음을 알린다. 노을 사이로 선착장에 한무리 배낭 여행자들이 내린다. 그 배엔 다시 일정을 모두 마친 여행객들로 채워지며 관광객들이 교차한다.선착장에도 낮과 밤의 자리가 바뀌었다. 루앙프라방의 밤은 아주 천천히 찾아온다. 그 게으른 밤에 의지해 우리도 잠을 청한다.5일 일정이 모두 끝났고, 우리에게 주어진 70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문득 스치는 한가지 의문. 라오스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는데 이 ‘시간의 역설’은 왜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걸까. 더 낮추지 못하고, 더 내려 놓지 못해서였을까. 우리가 느낀 이 시간 지체(遲滯)는 라오스가 우리에게 던져 준 화두였다./글·사진 =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끝

2024-04-04

고요하고 아름다운… 한낮의 바다 향연

까마득한 옛날, 그러니까 100여 년 전 어느 봄날. 미국의 젊은 시인 T.S.엘리엇(1888~1965)은 유럽으로 건너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쓴다.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들과 추위를 피해 멀리 떠났던 새들이 웃으며 돌아오는 빛나고 환한 4월을 왜 ‘잔인하다’고 했을까?몇몇 문학평론가는 그걸 세상과 인간을 비극과 한탄 속으로 빠뜨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된 유럽을 떠올리며 쓴 문장이라 했지만, 아직까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왜 엘리엇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혼잣말을 웅얼거렸는지.한 세기를 넘어서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상징 가득한 문장을 쓴 작가는 이미 죽었으므로 그에게 “4월이 잔인한 이유가 뭔가”라고 물을 수도 없다. 망자(亡者)에겐 입이 없으므로.엘리엇이 연분홍빛 봄이 완연한 4월을 잔인하다고 말한 시대를 지난 이후에도 적지 않은 작가들이 봄과 4월에 관한 문장을 썼다. 봄꽃, 봄날의 하늘, 봄 바다…. 소재는 저마다 다양했다.여름 휴가철의 바다는 사람들로 득실댄다. 거기엔 사유(思惟)의 시간이 개입하기 어렵다. 골똘한 생각이란 외로움 속에서 잉태되는 것이기에.겨울의 바다는 그 차가움과 막막한 단절감 탓에 사고(思考)의 뿌리가 뻗어가기 쉽지 않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칠포 바닷가에서 떠올린 백일몽 같은 졸시인간의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는 ‘봄 바다’가 으뜸이라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백일몽(白日夢)’이란 환한 대낮에 꾸는 꿈이다. 또한, 이뤄질 수 없는 열망의 은유로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세속도시의 4월이 너무 갑갑해 지난 월요일 오후 버스를 타고 백일몽을 불러다줄 봄 바다를 찾아 나섰다.시내에서 겨우 40분 남짓 달렸을 뿐인데, 포항 흥해읍 칠포해수욕장은 마치 세상과 아주 멀리 떨어진 피안(彼岸)인 듯 고요하고 아름다웠다.말을 섞을 사람이 없었으므로 홀로 오랫동안 해변을 거닐었다. 보채는 파도 소리가 요요했고, 소나무 사이로 따스한 바람이 술렁이고 있었다.젊은 시절 쓴 ‘백일몽’ 같은 졸시(拙詩) ‘출생의 비밀’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이런 노래다.범선으로 요하네스버그를 떠나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한 아버지는 목덜미에 나비를 문신한 인도계 아프리카인. 파타고니아에서 태어나 해변으로 밀려온 혹등고래를 치료해준 엄마는 마드리드 뱃사람과 아르헨티나 원주민의 피가 섞인 붉은 얼굴의 메스티소였다.바나나를 따서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군도를 오가던 아버지는 초록빛 빙산을 타고 보라보라섬 사촌언니를 찾아온 엄마를 에메랄드빛 산호초가 꺼이꺼이 우는 타히티 북부 갈대숲에서 만났다. 1871년 봄이었다.엄마는 망고스틴 여섯 개를 건네는 아버지의 흙 묻은 손바닥을 얼굴로 가져가 달콤하게 핥았다. 둘이 몸을 섞은 얕은 바다에선 일만 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맹그로브 사이로 뜨거운 바람이 웅얼거렸다. 원주민들은 뜨지 않는 달을 기다렸다.여섯 달 후. 아버지는 조각된 여신상을 실은 목선을 타고 바그다드로 떠났다. 움직이는 섬에 오른 엄마 역시 북서쪽으로 흘러갔다. 외눈박이 숙부가 야자유 일곱 병을 들고 나와 배웅했다. 동아시아 낯선 항구에 도착한 엄마는 백년 후 사내아이를 낳았다. 나는 1971년 부산에서 첫울음을 터트렸다. □ 봄 바다의 일몰은 삶과 죽음 떠올리게 해기자가 동해 칠포해수욕장에서 한낮의 봄 바다가 선물해준 백일몽 닮은 열망에 들떴다면, 또 다른 어느 봄날 시인 문정희는 서쪽 바닷가에서 지는 해를 보며 ‘산다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에 관한 사색을 이어갔던 듯하다. ‘바다 앞에서’라는 시다.문득, 미열처럼 흐르는바람을 따라가서서해바다그 서럽고 아픈 일몰을 보았네한 생애잠시 타오르던불꽃은 스러지고주소도 모른 채떠날 채비를 하듯조용히 옷을 벗는 해안선을 보았네아, 자연당신께 드리는 나의 선물은소슬히 잊는 일뿐더운 호흡으로 밀려오던눈과 파도와비늘 같은 욕망을잊는 일뿐이었네잊는다는 일 하나만보석으로 닦고 있다떠나는 날몸과 함께 땅에 묻는 일이었네.돌아보면 사람의 삶과 죽음이란 ‘잠시 타오르던/불꽃은 스러지고/주소도 모른 채/떠날 채비를 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시인이 서해에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보며 간파해낸 인생의 진실을 여러 차례 곱씹어 행간의 의미를 고민해볼까?그러면, 허위허위 살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인간의 생애 자체가 ‘백일몽’과 다를 바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 같다. □ 한낱 헛된 꿈같은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선이루어질 가능성이 낮은 들뜬 열망 같은 삶. 대낮에 꾸는 잡스런 꿈을 닮은 생애.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이 살아가는 행위 자체를 ‘헛되고 헛될 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가벼이 말할 수는 없는 법.오세영 시인이 쓴 ‘바닷가에서’는 이 부박한 세상 속에서 어떤 삶을 지향해야 인간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바닷가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평안이 거기 있다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바닷가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마침내 밝히는 여명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충족이 거기 있다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바닷가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의지가 거기 있다.노시인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과 만난 봄 바다에서 진지하고 의미 있게 삶을 살아갈 방법을 찾아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4-02

‘새롭게 아름답게’ 대한민국 대표 도자기축제 온다

2024년 대한민국 명예문화관광축제인 문경찻사발축제가 오는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문경찻사발, 새롭게 아름답게’라는 새로운 주제로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에서 개최된다.이번 문경찻사발축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도자기축제로서 자리잡은 전통찻사발의 확립된 정체성에서 더 나아가 생활자기의 대중화를 목표로 새롭고 다양한 도자기 라인업과 전시·체험행사, 특별행사를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신현국 문경시장은 “전통의 가치관을 지키면서도 다변화된 도자기 수요에 맞게 생활자기 라인업으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찻사발축제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도전을 적극 지원하고 응원하겠다”고 말했다.신 시장은 이어 “신속한 축제장 이용을 위한 전용차선 셔틀버스 운영 시스템을 확립하고 축제 구성원 모두 친절하게 축제를 준비해 더욱 많은 관람객이 축제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또 오고 싶은 축제장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알찬 개막식과 실속있는 폐막식문경새재 야외공연장에서 열리는 축제 첫날의 개막식은 문경시 홍보대사인 박서진과 박군, 주미와 더불어 조명섭, 영기가 출연해 흥겨운 공연을 통해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축제 마지막 날 폐막식에는 통일메아리악단과 하랑(구 초코파이브), 윤윤서양이 출연해 축제를 마무리하는 무대를 꾸민다.특히, 올해부터는 야외공연장에 대형 비가림시설이 설치돼 우천에서도 안전하고 쾌적한 관람이 가능해 졌다. 관광들은 날씨 걱정 없이 축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됐다. □ 생활자기 라인업 확대지난해부터 시작된 생활자기의 대중화 시도에 따라 이번 축제에도 다양한 가격대의 찻사발과 도자기를 요장에서 판매한다.특히, 올해는 요장별 개성있는 커피사발을 도입해 축제 기간 중 한정 물량을 판매하고 행사 프로그램에서 경품으로도 제공된다.지역 청년들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과 함께하는 커피사발을 활용한 커피이벤트도 축제기간 중 새롭게 도입해 매년 계속 키워나갈 계획이다.□ 국제교류전과 특별 전시관축제 대표 전시 컨텐츠로 루마니아와 중국 이싱시의 도예작가와 우리시 무형문화재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부스테이너 특별전시관이 문경새재 1관문 앞에 설치된다.이번 국제교류전에는 김선식 축제추진위원장과 해외 도예 시연행사로 연을 맺은 루마니아의 최고 명망있는 다니엘 레스 작가가 참여해 본인의 작품을 전시하고 직접 관람객 앞에서 시연하는 시간도 갖는다.문경시와 해외 자매결연 지자체인 중국 이싱시에서는 촉망받는 젊은 작가가 전시회에 참석해 두 도시의 우애를 쌓고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다.문경시를 대표하는 무형 문화재 특별전에는 백산 김정옥, 묵심 이학천, 문산 김영식, 미산 김선식 등 우리나라 도자기 장인들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 2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 대형LED와 일원화된 광화문 무대이번 축제의 눈길을 끄는 점으로 오픈세트장 내 광화문의 대형LED 설치와 광화문 무대의 일원화가 주목된다.800인치의 대형LED에는 모든 축제영상과 프로그램 소개가 진행되고 망댕이 가마 역시 화려한 영상으로 구현해 웅장한 매력을 표현할 계획이다.또한, 기존 광화문 무대와 저잣거리 무대의 이원화된 무대를 확장된 광화문 무대로 일원화하고 저잣거리쪽은 체험과 먹거리로 구성해 세트장을 구역별로 구분해 세트장 구석구석을 쉽게 찾아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더 커진 광화문 무대에서는 발물레경진대회, 다화경연대회, 읍·면·동 시민의 날 등 축제의 메인이벤트가 진행된다.공간이 비어있는 저잣거리쪽으로는 식당용 돔부스를 설치해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축제먹거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설 투자로 식당가를 구상한다.□ 진화된 특별체험행사특별체험행사로 기존의 ‘사기장의 하루’에서 진화된 ‘슬기로운 도예생활’이 메인 체험행사로 구성된다.정해진 시간 동안 직접 사기장의 제자가 돼 도예 체험을 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된다. 단순히 시연을 지켜보는 프로그램에서 직접 작가들과 함께하는 체험프로그램으로 진화해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그 밖에 ‘찻사발 빚기’와 ‘찻사발그림그리기’, ‘다례체험’, ‘디저트 아트전시’, ‘풍선공연’ 등 가족·연인들이 함께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된다.지난해 처음 도입돼 찻잔 구입권과 축제 내 체험, 경품추첨권, 관내 관광지 할인까지 묶어 판매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시도였다는 평을 받았던 원픽패스권은 올해 개장한 문경새재 어드벤처파크까지 추가돼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찻사발축제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구입시 원래 가격(2만원)에서 할인된 가격(1만5천원)으로 구입할 수 있으며, 선물과 단체 구입도 가능해 사전판매로 축제를 홍보하는 역할도 톡톡히 하게 된다. □ 찻사발축제 부대프로그램 ‘한복패션쇼’축제의 다양한 부대행사 차원에 지난해 처음 도입됐던 ‘한복패션쇼’는 축제기간 중 시내가 공동화된다는 의견에 따라 점촌 문화의거리로 위치를 옮겨 열린다.30여명의 한복 모델들의 패션쇼와 거리행진이 이어진다. 사전행사로 명인의 줄타기와 북소리 퍼포먼스, 도예작가들의 발물레 시연도 함께 진행된다. 향후 지속가능한 축제를 위해 이와 같은 축제 장소 확대 외에도 관내에서 다양한 부대행사를 기획해 변화를 모색할 계획이다./강남진기자 75kangnj@kbmaeil.com

2024-03-31

열기구, 짚라인, 카약킹… 육해공 액티비티 총출동

라오스 관광의 삼각벨트를 이루는 비엔티안, 방비엥, 루앙프라방은 각 도시마다 뚜렷한 특징을 자랑한다.비엔티안이 란싼 왕조 500년 수도로서 역사, 문화 전통을 자랑한다면, 방비엥엔 남쏭강과 아열대 밀림을 기반으로 야외 레저 활동이 잘 발달해 있다. 경주나 교토와 비교되는 루앙프라방은 탁발행렬 같은 사원의 제의(祭儀)를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과 연결된다.오늘 일행이 찾은 곳은 ‘액티비티의 천국’으로 불리는 방비엥. 열기구, 동력 패러글라이딩부터 짚라인, 카약, 보트, 튜빙까지 갖춰져 육해공 레저를 모두 즐길 수 있다. 종류도 많고 대기 인원도 많아 제때 예약은 필수. 남쏭강의 계곡과 블루라군의 에메랄드 물빛 속으로 뛰어들어 보자. ◆ 인구 2만5천명의 한적한 시골마을 ‘배낭여행의 성지’여행객들은 방비엥을 흔히 경기도 가평군과 비교한다. 서울과 가깝고 전원 풍경이 잘 간직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천혜의 물놀이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비엔티안에서 북쪽으로 150㎞ 떨어진 방비엥은 수도와 루앙프라방을 연결하는 중간 기착지로서 의미를 갖는다. 베트남 전쟁 발발 때부터 1970년대까지 미군의 공군 기지가 있던 덕에 마을과 도로망이 잘 정비되어 있다. 인구는 약 2만5천명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도는데도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다.2000년대부터 외국인 배낭 여행객들에게 성지로 알려져 초기엔 호주, 유럽 등 지갑이 얇은 젊은 층들이 값싸게 놀고 가는 장소로 알려졌다. 특히 남쏭강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펼쳐진 넓은 평야와 밀림, 석회암봉은 왜 이곳이 ‘여행객들의 블랙홀’으로 불리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공한다.마을은 우리나라의 읍(邑) 정도로 작지만 카페나 식당, K마트 등이 잘 갖춰져 이들 카페를 배경으로 오버나이트 파티가 연일 벌어진다. ◆ 버기카로 오프로드를 달리는 길, 흙탕물 세례에 동심으로부왕~. 방비엥에서 아침을 깨운 건 거친 동력음(音) 이었다. 숙소 베란다로 나가 보니 카르스트 석회암봉 위로 동력 패러글라이딩들이 고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단독 비행도 있고 3~4팀씩 선단 라이딩도 있었는데 새벽 하늘을 수놓은 총천연색 기체(機體)가 무척 아름다웠다. 지금 글라이더들의 시야엔 방비엔의 그림 같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조식 후 예약했던 버기카(Buggy Car)가 숙소에 도착했다. 버기카는 간단한 조작만으로 동작이 가능해 누구나 손쉽게 운전할 수 있다. 무게 중심이 하부에 집중돼 안정감이 좋은 이 차의 가장 큰 특징은 오프로드를 맘껏 질주할 수 있다는 점. 시골길에 들어서자 비포장도로의 거친 승차감이 오히려 유쾌한 기분으로 다가온다. 전날 비가 와서 인지 군데군데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었는데, 이 덕에 수륙(水陸)양용 버기카의 효용도 실험할 수 있었다. 일행의 옷은 곧 흙탕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다들 이런 해프닝과 일탈을 반길 뿐 불평을 하지 않았다. ◆ 블루 라군 에메랄드 호수에 다이빙, 세계 관광객들 환호온몸의 진흙이 마를 새도 없이 버기카는 우리를 블루라군에 데려다 놓았다. TV에서만 보았던 에메랄드빛 물빛이 우리 일행을 맞았다. 블루라군 호수 주변 카페엔 각국에서 온 수백명의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우선 더위에 지친 몸을 호수에 담갔다. 흙먼지를 씻어낸 후 다이빙 모험에 나선다.수심을 측정하기 위해 1차로 다이빙대로 올라갔다. 2층 난간에 서있는 기분이었는데 생각 보다 높아 보였다.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졌지만 그대로 뛰어내렸다. 짧은 시간에 와~ 하는 함성 소리가 들렸다. (모든 입수자가 점프를 할 때마다 각국 관광객들은 함성과 박수로 응원을 한다)1차 시도에서 자신감을 얻고 본격 다이빙(머리부터 입수) 시도에 나섰다. 다이빙대로 오르는데 내 앞에서 84세 어르신이 먼저 입수를 했다.(그날 최고령) 함성이 계곡에 울려 퍼졌다. 나도 나름 멋진 다이빙에 성공했지만 어르신의 노익장에 밀려 빛이 바래고 말았다.‘글로벌 시민’들의 환호를 다시 한 번 기대하며 다이빙대에 올랐는데 이번에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내 뒤에 뛴 분이 점프 중 부상을 당해 구급차가 출동했기 때문이다. (나의 그림 같은 다이빙 샷은 사고 해프닝에 또 묻히고 말았다.) ◆ 튜브타고 동굴 탐험, 계곡과 계곡을 이은 짚라인도 인기다이빙 흥행 실패로 ‘당신처럼 불운한 분은 처음’이라는 가이드의 조롱을 뒤로하고 튜빙 장소로 이동했다. 튜빙은 말 그대로 튜브를 타고 계곡이나 동굴을 탐험하는 것이다. 동굴 전체에 코스를 따라 밧줄이 설치돼 있어 줄을 잡고 진행하면 된다. 각국 어디든 동굴은 흔한데 이런 천연자원을 레저로 개발한 아이디어가 감탄스럽다. 헤드랜턴 빛을 따라 동굴 내부를 감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구명조끼를 입었고, 수심도 그리 깊지 않아 큰 위험은 없었지만 20여분 탐험 끝에 나타난 출구가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산과 강의 중간지대에서 타잔놀이를 즐길 수 있는 짚라인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필수 템이다. 국내에도 근래 많은 짚라인 코스들이 개발돼 인기를 끌고 있지만, 방비엥의 짚라인은 접근 방법 자체부터 다르다. 계곡과 계곡을 고공 라인으로 연결해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고, 코스가 강 위를 활공해 시원한 리버뷰를 만끽할 수 있다. 규모와 스케일에서도 여타 시설을 압도한다. 일행이 탔던 라인은 200~300m 코스를 7개 구간으로 연결한 코스로 총 연장 길이만 2~3㎞에 이른다.처음엔 극도의 긴장감 때문에 눈을 감지만 주행에 적응되면 바로 감상모드로 전환한다. 덕분에 관광객들은 공포가 감탄으로 대치되는 기막힌 반전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아열대 밀림과 기괴한 석회암 그리고 은비늘로 반짝이는 강물 위를 비행했던 즐거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 석양 노을 바라보며 즐기는 롱테일보트 최고 비경“이젠 줄 위에서 감상하던 그 강물로 뛰어들 차례입니다.” 가이드가 일행을 카약킹 장소로 이끌었다. 이곳 카약은 3인승으로 현지인이 동승해 전 코스를 진행한다. 80㎝ 남짓한 좁은 배안, 자칫 균형을 잃으면 위험해지는 공간에서 관광객들은 배에 몸을 맡긴다. 배는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강물을 따라 내려간다. 가끔씩 여울지대를 만나면 현지인이 방향을 잡아주거나 동승자가 함께 협력해 물살을 빠져 나온다. 가이드가 일부러 옆의 배와 밀착시켜 물싸움을 유도한다. 경쟁심에 자극된 일부 관광객들은 즉석에서 수전(水戰)을 벌이고, 스피드 레이스를 벌이기도 한다.거친 물살을 헤쳐 가느라 피곤해진 어깨를 달래는 데는 롱테일 보트(Long tail boat)가 딱이다. 무동력 카약킹이 관광객을 혹사시켰다면 동력으로 달리는 롱테일 보트는 관광객들에게 노동이나 부역을 요구하지 않아서 좋다.보통 가이드는 보트 투어를 맨 마지막에 배치하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노을에 물든 강을 즐기게 하려는 배려다. 가이드의 설계대로 우리가 배에 오를 무렵 노을은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때마침 주변에서 수십 기의 열기구들도 동시에 떠올랐다. 덕분에 남쏭강가엔 카약과 보트와 열기구의 퍼레이드가 동시에 펼쳐지며 일대 장관을 연출했다. 이번 라오스 여행을 한 컷으로 압축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장면이 아닐까 한다. 강 하류에 이르면 수십마리 물소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낯선 보트들의 공습에 익숙한지 옆으로 다가가도 겁내지 않고 목욕만 즐긴다.40여 분의 보트 투어가 모두 끝나고 현지인들은 배를 정박하느라 분주하다. 땅거미 밀려오는 강 건너로 물소를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농부들의 고단한 발길이 정겹게 느껴진다. 그들의 힘든 노동 앞에 지금 우리의 유희가 조금은 미안하지만 그냥 묻어 두기로 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평온한 저녁을 맞을 것이고, 우리도 여행이 끝나면 모두 생업으로, 생산 현장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내일은 ‘라오스의 정신수도’로 일컬어지는 루앙프라방에서 일정이 시작된다. 방비엥에서의 ‘유흥끼’는 쏙 빼고 승려들의 수행에 참여하면서 구도자로써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짧은 시간에 불현듯 ‘참나’와 만나는 기적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반나절 잠시 ‘나’를 내려놓고 사원 뒷뜰을 거닐어봐야겠다./글·사진 =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3-28

‘不滅’하는 아름다움을 찾아낸 ‘꽃’에 관한 이야기…

꽃샘추위가 며칠을 이어져 넣어뒀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게 만들고, 어둡고 습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궂은비가 잠시잠깐 심사를 우울하게 만들어도 결국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봄꽃의 개화가 늦어지고 있어, 꽃이 없는 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이 방송 뉴스와 신문 기사를 통해 들려오지만 머지않아 겨울이 온전히 사라지고, 봄이 올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는 수천 년간 변하지 않은 세상사 순리.추위는 몸과 더불어 의식까지 일정 부분 마비시키는 힘을 가졌다. 그래서다. 봄에 비해 겨울엔 이런저런 인간의 상상력이 뻗어나가기 어렵다.그것을 증명하듯 완연한 봄에 가까운 지금은 오만가지 ‘생각’이 많아진다. 3월 말 환한 햇살 아래를 걷다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철학자 흉내를 내게 된다. 이는 봄 산책이 주는 선물 같은 것.‘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당연한 이야기처럼, 세상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이를 ‘불멸(不滅)’이라 칭해왔다.‘바람’은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다. 돌도끼로 짐승을 사냥해 불에 익히지도 않고 날고기를 먹던 시절의 바람과 지금의 바람은 그 형태가 다르지 않다. 수백만 년을 동일한 방식으로 어디선가 불어와 어디론가 사라졌다.태양도 그렇다.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시기에 어떤 이유에선가 생겨나 현재도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뜨겁게 이글거린다. 수명이 다하면 빛을 빼앗기는 형광등과 백열등 수천만 개로도 대신할 수 없는 영원성을 지닌 채.인간은 제아무리 잘나봐야 100년을 살기 힘든 ‘유한한 존재’다. 그래서일까? 영원 혹은, 영원에 가깝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외경심을 가져왔다. 바람, 태양과 더불어 ‘꽃’ 또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이미지를 가진 사물 중 하나다.‘봄은 꽃의 전성기’라는 걸 부정하긴 힘들다. 사념과 고민이 늘어나는 이 계절. 인간보다 오래전 생겨나, 인간보다 더 오래 존재할 것이 분명한 꽃을 보며 예술가와 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 생각은 어떻게 문학과 노래로 표현됐을까?‘16세기 조선 성리학의 거두’로 이야기되는 퇴계 이황(1501~1570)부터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시인과 가수가 꼼꼼히 살펴 그 불멸하는 아름다움을 찾아낸 ‘꽃’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돈은 유한하고 꽃은 무한하다… 시인 정호승촉촉한 연민과 감수성 가득한 문장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서정시인 정호승은 지금 이 시기쯤에 벚꽃을 본 듯하다.화사한 연분홍 개화와 무장무장 쏟아져 내리는 무더기 낙화 앞에서 시인은 무한함과 유한함을 동시에 떠올린다. 그리고는 아래와 같은 시를 쓴다. ‘꽃을 따르라’는 그의 명령이 선지자(先知者)의 예언처럼 들린다.돈을 따르지 말고꽃을 따르라봄날에 피는 꽃을 따르지 말고봄날에 지는 꽃을 따르라벚꽃을 보라눈보라처럼 휘날리는 꽃잎에봄의 슬픔마저 찬란하지 않으냐돈을 따르지 말고지는 꽃을 따르라사람은 지는 꽃을 따를 때가장 아름답다.‘피는 꽃’이 아닌 ‘지는 꽃’의 서러운 아름다움을 노래한 이 시의 핵심 문장은 ‘돈을 따르지 말고/지는 꽃을 따르라’가 아닐까?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삶에서 쉽사리 실천할 수 없는 예술가의 청빈한 명령.모두가 알고 있다. 돈은 유한하고 꽃은 무한하다는 걸. 그러면서도 유한한 욕망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사람들. 정호승의 시는 독자들에게 아프게 묻는다. “돈과 꽃 중 어떤 게 불멸할 것인가?” 속인(俗人)들에겐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이다. □ 사랑했던 기억은 불멸하는 것… 가수 양희은1편의 노랫말이 조잡한 시 10편을 압도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한국에는 노래만 잘 부르게 아니라, 가사를 탁월하게 잘 쓰는 가수가 몇몇 존재한다. 양희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옛사랑의 기억을 가슴 안에 지니고 사는 중년들은 해마다 다음과 같은 노래에 매혹된다. 30대와 40대 시절이 그랬고, 더 나이를 먹어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하다. 양희은의 ‘하얀 목련’.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거리에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목련은 어떤 꽃보다 먼저 화들짝 피어나 봄이 왔음을 알린 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 매력을 보여주다가 녹슨 쇠그릇처럼 떨어진다. 그 드라마틱한 개화와 낙화가 우리 모두가 겪었던 첫사랑과 몹시 닮았다.이미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어떤 사랑도 영원히 지속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했던 기억만은 불멸하는 게 아닐까?그래서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는 양희은의 노랫말이 시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는 게 아닐지. □ 사는 내내 매화를 닮으려 했다… 퇴계 이황지금으로부터 454년 전인 1570년 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 이황은 방문을 열고 마당의 매화나무를 바라본다. 그리곤 말했다. “매화에 물을 줘야겠구나.” 이 짤막한 문장은 그대로 퇴계의 유언(遺言)이 됐다.퇴계 이황의 ‘매화 사랑’은 유별났다고 한다. ‘어떤 추위에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절개를 이유로 매화를 선비처럼 대접한 그는 아래와 같은 칠언절구(七言絕句)로 그 꽃을 예찬했다. 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뜰 앞에 매화나무에 눈꽃이 가득하구나風塵湖海夢差池(풍진호해몽차지)티끌 같은 세상살이니 꿈마저 어지럽고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옥당에 앉아 봄밤의 달을 마주하고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울며 나는 기러기 보니 생각이 많아지네.티끌 같은 세상살이에 포박된 인간의 삶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잊힐 유한함 안에 있다. 하지만, ‘달’과 ‘매화’는 퇴계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항상 존재할 무한한 불멸성을 지닌 것.평생을 인간 존재의 본질과 심성의 근본을 찾아 일로매진했던 노학자가 유독 봄꽃을 아꼈던 이유가 뭔지 궁금해진다. 혹, 거기서 불멸하는 어떤 정신을 발견했던 건 아닐까./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4-03-26

“하나 되는 청송·다 함께 잘 사는 청송을 향해 달린다”

청송군은 올해 초 재해 예방과 농촌 일손 부족 문제 해결, 인구유입을 통한 경제 활성화, 도시 공간 정비 사업 등을 핵심축으로 하는 2024년 군정 목표를 설정한 바 있다. 그 계획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궁금한 이들이 적지 않다. 아래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혁신적인 농업 정책으로 지역 발전 견인현재 청송은 변화를 이끄는 농업 정책 추진에 힘을 쏟고 있다. 자주 발생하는 이상 기온은 먹거리 생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자연 재해다. 농업이 주를 이루는 청송군은 봄철 과수 냉해 여부가 그 해 농업 성과를 결정한다.이에 청송군은 냉해 피해 예방을 위해 미세 살수 장치를 지원하고, 지원 한도와 보조 비율을 늘려 농가 부담을 줄여나갈 예정이다. 또한 병해충에 강한 대목을 육성해 보급하고 과수 화상병약을 보급해 과수 전염병을 예방함과 더불어 재해 예방 과수 재배기술을 전파해 농가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여나갈 방침이다.시대에 발맞춰 생산과 유통 환경을 노동력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바꾸는 노력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청송군은 청송사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미래형 과원 조성에 힘을 투여하는 중이다. 또한, 묘목비 지원을 현실화해 다축 및 고밀식 과원을 신규로 조성함으로써 농가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이와 함께 청송군은 군민의 전 생애주기를 책임지는 ‘복지 청송’ 구현을 위해서도 각종 정책을 마련해 시행한다. 노인 인구가 40%가 넘는 청송군이 활력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려면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 조성에 애쓰는 것이다.이를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어르신들의 능력과 요구에 맞는 다양한 일자리 발굴과 참여 기회를 확대한다는 것이 청송군의 계획. 또한 경로당 시설을 개선하고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해 어르신들의 활발한 사회활동을 유도할 예정이다.보건의료원 필수인력 확보를 통해서는 차별 없는 기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이와 부모의 행복을 위해 임신부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청송의 변함없는 정책 방향이다. 이를 위해 부모 급여 지원금 확대 추진, 온종일 돌봄서비스와 방과 후 아카데미 운영 등이 준비되고 있다.더불어 놀이시설이 부족한 지역 청소년을 위해서는 청소년 수련관 앞에 온 가족이 함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야외 문화 체육시설도 조성하게 된다. □ 경제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 마련해 추진넉넉한 지역경제 구축을 위한 정책도 마련된다. 정주인구와 생활인구가 늘어나는 주거환경 조성으로 지역에 맞는 산업을 육성해 청년이 지역에 거주하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청송군의 미래 계획이다.청송읍 월막리에 공공임대주택을 건립해 청송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월막지구와 덕리지구에도 공동주택을 건립해 주택난을 해소한다. 이는 인구 유출을 막는 정책의 첫 단계가 될 것이다.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청송군과 지역 대학, 기업이 힘을 합쳐 청송군 K-U시티 항노화 사업도 추진한다. 지방 소멸 대응기금을 확보해 지역 인재를 육성하고 청년창업을 돕는 항노화 연구센터 건립과 연구원과 기업 직원이 거주하는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 구체적인 복안이다.인구 증가를 기대할 수 있는 문화관광 정책도 준비된다. 옛 주왕산 초등학교 부지에 가족호텔과 글램핑장을 갖춘 숙박시설을 조성해 젊은 세대와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지역에 더 오래 머물게 하고, 달기 약수탕 거리환경 개선과 메뉴 다양화로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게 청송군의 계획이다.산림 레포츠 휴양단지 조성과 한옥스테이 사업, 골목경제 회복지원 사업과 청송사과축제 등 청송군의 특징을 살린 문화관광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된다. 이는 생활인구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복안이다.이와 함께 관광객만이 아니라 지역민들의 여가 생활과 건강까지 책임질 수 있는 청송 아웃도어 골프장을 만들고, 진보면과 산남 지역에 파크골프장을 조성해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다양한 문화관광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편안하고 안전한 도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될 청송군의 미래 청사진이다.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후화된 도시 공간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읍과 면소재지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도록 거점 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이 구체적 계획이다.청송읍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 청송읍 금곡지구 도시재생 인정사업, 진보 진안지구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읍·면 중심지에 행정, 상업, 문화 거점 공간을 만들어 원도심을 활성화시키는 정책도 동시에 추진된다.덧붙여 “도시계획도로 정비, 청송읍 중앙로 회전교차로 설치, 노후 상수관로 정비, 급수구역 확장 등의 사업도 예정대로 착착 진행하게 될 것”이란 게 청송군의 설명이다. 이는 주민 삶의 만족도 향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 문화예술 활성화와 교정시설 추가 건립도 진행여타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청송 역시 문화예술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는 주민들의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주민맞춤형 문화교양강좌 개설, 문화예술단체 활동 지원, 취약계층 문화누리카드 지원, 문화예술단체의 대주민 문화예술활동 참여 프로그램 활성화 등은 모두 이와 연관된 사업이다.청송군이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인 청송백자를 주제로 진행되는 청송백자축제는 청송사과축제와 함께 지역 문화관광축제로 그 위치를 견고히 할 예정이다. 그 외에도 청송문화제, 청송특화공연 등이 풍요로운 문화도시 청송 구현에 기여하게 된다.지역 소비 촉진을 위해 제작·유통되는 청송사랑화폐는 전년과 같이 700억 원 규모로 연중 10% 할인 발행할 방침이다. 또한, 신재생에너지 보급 및 신재생에너지 융복합지원사업을 통해 군민 에너지 복지 실현에도 진력한다는 것이 군의 계획이다.청송군은 1981년 만들어진 보호감호소를 필두로 4개의 교도소가 위치하고 있는 전국 최대의 교정타운이다. 40년 넘게 수용자 교화의 역할을 수행해온 것이다.최근 청송군은 법무부와의 면담에서 경북 북부 교정시설 내 여성교도소를 신축하고, 교정공무원 숙소를 추가로 건립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전달했다.교정시설 인근에는 문화체육센터, 도서관, 키즈카페, 체육공원 등이 자리하고 있어 여성교도소와 교정공무원 숙소 건립에 적합한 위치로 평가받는다. 만약 수용 인원 1천 명 규모의 교정시설이 들어서면 교정공무원 400여 명 정도의 직접 고용효과와 더불어, 지역 물품 구매, 주거, 편의·교육시설 등 인프라 확충이 기대되고 있다.위에 언급된 여러 정책과 사업을 열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윤경희 청송군수는 “하나 되는 청송, 다 함께 잘 사는 청송은 변함없는 군정의 주요 방향”이라며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극복할 과제도 산재했지만, 도전과 노력을 멈추지 않고 희망찬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김종철·홍성식 기자

2024-03-24

“철강·이차전지 쌍두마차로… 노사 ‘원팀’ 초일류 나갈 것”

장인화 신임 포스코그룹 회장은 21일 “친환경 미래로 나아가는 포스코그룹의 새로운 도약과 성장은 소재의 혁신으로 이뤄낼 수 있다”며 “포스코그룹의 새로운 비전은 ‘미래를 여는 소재, 초일류를 향한 혁신’”이라고 말했다.장 회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인류의 가치를 높이는 미래소재와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 정신으로 더 큰 성과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장 회장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철강보다는 미래 소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 전략 방향으로 함께 발표한 철강사업 초격차 경쟁우위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포스코는 철강사업이 기본이고, 이차전지소재사업이 쌍두마차로써 똑같이 초일류로 가야 한다. 단순 철강기업 포스코가 아니고 미래를 여는 소재로 함께해 우리 미래의 국가 경제도 소재부문에서 포스코가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철강부문은 역사적으로 보면 포스코가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여러 어려움에도 포스코는 임직원들이 똘똘 뭉쳐서 역량을 다해 극복해 왔다. 극복한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회삼아 포스코가 더 발전해 왔다. 직원들의 경험과 능력을 믿는다. 직원들과 함께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100일 동안 현장에서 직원들과 같이 있으려고 한다. 포항과 광양 뿐만 아니라 여러 사업회사를 돌아다니며 현장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고, 그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그 와중에 우리가 철강사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상세한 의견을 들어서 잘 실행토록 하겠다.- 후추위 면접 때 당면한 위기돌파 방법에 대해 어떻게 답을 했는지. 철강 업황 부진과 이차전지 해법에 대해 알려달라.△철강업은 전세계적으로 경기가 별로 좋지 않다. 이차전지소재사업의 경우 신사업이 흔히 겪는 캐즘 현상의 초기에 있다고 본다. 철강은 부진이 길거나 깊지 않을 것 같은데 이차전지는 조금 더 길게 갈 수도 있다. 철강도 이차전지도 마찬가지로 둘 다 위기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위기의 순간에 원가를 낮추는 등 경쟁력을 키워 놓으면 경기가 되살아났을 때 우리에게 훨씬 더 리워드가 크다. 이차전지는 최근에 완공된 공장도 많고, 앞으로 준공될 공장들도 많다. 이러한 공장들을 초기에 다잡아서 정상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차전지소재에서도 운이 따르는 게 아닌가 싶다.- 최정우 전 회장이 기업시민이라는 포괄적 경영이념을 선포해 운영해왔는데, 신임 회장이 새로운 경영이념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 중요시 생각하고 있다. 국가의 발전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기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 그것이 사회적 책임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포스코가 해야할 일을 열심히 찾아 성실히 수행하려고 한다. ‘국민기업 포스코’는 얻기 힘든 큰 영예이고,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포스코가 외부에서 볼 때도 반듯이 서있는 회사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겠다.- 새로운 비전을 발표했는데, 조직이나 인사, 기업문화 등 구체적인 혁신 방안이 궁금하다. 신임 회장으로서 가장 먼저 바꾸겠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면.△우선 100일 동안 저희 직원 전체 의견을 듣겠다. 전체 의견을 듣고 난 후 거기서부터 시작하겠다. 기본적인 방향은 조직은 슬림하고 플랫해지고,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조직이 돼야 할 것이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큰 틀 안에서 더 상세한 내용은 나중에 자세히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호주 필바라 광석 리튬, 아르헨티나 염호 리튬으로 공급망 불안에 선제 대응해왔다는 평가가 있는데. 추가로 염두에 두고 있는 해외 공급망 투자처가 있는지.△이차전지, 전기자동차는 지구의 운명이다. 그 속도가 늦어졌다, 빨라졌다 하며 부침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 이것이 흐트러지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이야말로 공급망을 더 강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열심히 잘 살펴보겠다.- 그린 워싱 이슈에 있어서 문제제기를 받아왔고, 최근에도 정부기관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아직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진 못했으나, 포스코가 성실히 노력을 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사회가 바라보는 눈높이에 맞게 열심히 노력해 나가겠다. - 스톡그랜트 이슈가 전임 회장때 논란이 많았다. 이와는 다른 임원 장기 인센티브 체제를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스톡그랜트가 시작된 이유는 책임경영을 강화한다는 의미이며, 스톡그랜트 제도가 꼭 나쁜 제도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회에서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스톡그랜트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의 눈높이에 맞춰 다시 검토하도록 하겠다.- 여전히 이차전지 미래사업을 그룹의 투톱으로 가져가는 것인지. 투자 속도 등에 변함은 없는지.△투자라는 것은 항상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차전지소재사업은 회사가 10여 년간 꾸준히 해왔고, 그동안 포스코가 많은 신사업에 도전해왔는데 가장 잘 한 사업이라 생각한다. 제 생각에 무조건 이 사업을 성공시키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투자에 있어 시장이 나쁘다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다. 적기에 적절하게 투자하겠다.- 포스코 미래 경쟁력은 자체 노력 외에도 외부 조건 변화도 필요하다. 친환경 전력이나 그린 수소 확보 등의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회사가 당면한 큰 문제 중 그린트랜스포메이션이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숙제이다. 이는 회사 혼자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또한 글로벌 협력이 그린트랜스포메이션에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국가가 글로벌 그린트랜스포메이션에 선두주자가 되려면, 국가도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당한 노력을 해야하고, 노력하는 기업들도 도와줘야 한다. 여러 관계 기관과 최대한 협력하며 같이 풀어나가야할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가 풀어가야 할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수소가 그린트랜스포메이션에서 중요한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되기를 바라기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도 이를 새로운 사업기회로 삼아서 그린트랜스포메이션에 선두에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삼아 미래 사업과 연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RD부터 시작하고 필요하다면 투자까지 할 것이다.- 원팀 포스코를 만드는게 중요하다. 노조나 내부 문제들로 부터 원팀을 만들기 위한 회장의 생각이나, 기업 문화는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지.△직원들의 능력과 경험이다. 굉장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 회사를 두 배씩 키워왔다. 지금의 어려움도 직원들과 함께하고 직원들을 믿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노사도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회사를 위해 하는 일에 있어서 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를 위해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먼저 다가가서 신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같이 노력하겠다./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03-21

메콩강 따라 펼쳐지는 란쌍왕조 화려한 유적들

‘라오스엔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물었다.그는 즉답 대신 ‘바로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한 과정으로서 여행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그렇다. 여행은 무언가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을 찾아 나서는 과정인 것이다. 이 테마에 잘 부합하는 여행지가 라오스다.이 일본 소설가는 루앙프라방에 50일을 머무르며 이곳의 자연, 경관뿐만 아니라 라오스의 내면으로 빠져들었다.일본 작가 예찬이 아니더라도 어느덧 라오스는 지구상의 최고 힐링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연간 300만 명 이상이 라오스를 방문하고, 매년 두자릿 수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라오스의 관광산업은 국가경제의 10% 이상 비중을 차지하며 주력산업으로 성장했다.‘지구촌의 마지막 힐링지’라고 불리는 라오스의 도시(비엔티안, 방비엥, 루앙프라방)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라오스와 한국은 고대 알타이어계로 한뿌리우선 라오스와 한국은 연결 고리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연간 교역량도 135억 달러로 주변 태국이나 베트남에 비해 훨씬 적고, 그 흔한 축구 라이벌 관계도 아니다.그러나 역사 시계를 고대(古代)로 돌려보면 뜻밖의 사실과 만난다. 바로 라오족의 조상인 고대 타이족(Thái)이 바로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언어상으로 알타이어계인 우리와 깊은 지리적 배경과 혈연관계를 공유한다.현지에서 만난 가이드는 “라오족, 묘족, 몽족은 모두 한 계통으로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에서 갈라져 나왔다”며 “기원전 무렵에 우리 고대 선조들과 혈연, 지연으로 뚜렷하게 연결된다”고 설명했다.별 인연이 없어 보이던 라오스가 우리 생활 속으로 갑자기 들어오게 된 것은 한 TV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2014년 tvN ‘꽃보다 청춘’에 나왔던 블루 라군의 원초적 풍경과 물빛, 거기서 벌어진 출연자들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프로그램 히트는 바로 라오스 열풍으로 이어졌다. 2014년 방영이후 라오스행 게이트엔 여행객이 줄을 이었고, 관광지의 식당, 노점엔 한글이 걸리기 시작했다.이런 한국인의 ‘공습’은 부작용도 불러왔다. 현지 물가를 순식간에 3~4배나 올려 하루 3~4만원 대의 값싼 관광을 즐기던 외국인들을 대거 축출(?)시키기도 했다. ◆ 라오스의 500년 수도 비엔티안, 사찰-박물관 밀집비엔티안의 현지 이름은 ‘위양 짠’으로 ‘달의 도시’라는 뜻이다. 동남아시아 최대 물줄기 메콩강을 품은 덕에 물고기, 농업용수는 물론 수력발전까지 가능해 라오스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인구는 100만명이 채 안되지만 명실공히 라오스의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특히 이 메콩강을 따라 펼쳐지는 란싼왕조, 비엔티안왕조의 화려한 유적은 마치 시간이 멈춰 선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보통 비엔티안 투어의 출발은 왓 씨싸켓에서 시작한다. 비엔티안의 사원 중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1818년 건립되었다가 1829년 전란으로 소실되었는데 1935년 재건되었다. 왓 씨싸켓을 라오스를 대표하는 사찰로 끌어올린 건 사원 내부 담장에 진열된 6천890개 이르는 불상들이다. 불상들은 은(銀) 또는 토기로 제작된 것으로 상당 부분 훼손되어 있지만 그 원형만큼은 퇴색되지 않고 200년 가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인물들은 같은 모양이 없고 수인(手印)이나 입상(立像) 모습이 모두 다르다. 형상을 이렇게 많이 만든 것은 부처께서 낮은 곳으로 내려와 모든 중생과 불자 하나하나의 삶과 고통까지 살핀다는 뜻일 것이다.라오스 엽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탓 루앙’도 인기 코스다. 라오스 관광 표지 메인을 장식하는 금빛 사원으로, 국가의 상징이자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 되는 곳이다. 부처의 가슴뼈, 사리와 유물을 묻고 그 위에 기둥을 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적멸보궁 쯤 되는 셈이다.사원 앞을 지키고 있는 셋타티랏왕 동상도 눈여겨봐야 할 대상이다. 이 왕은 14세기 라오스를 전성기로 이끈 창 왕조의 군주로, 라오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재위 중에 불철주야 통치를 위해 몸을 돌보지 않았는데, 사후에라도 편히 쉬라는 의미로 앉은 자세로 동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왕,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과 이미지가 겹친다.(세종대왕 동상도 좌상이다) ◆ 라오스인들의 독립정신이 서려 있는 빠뚜싸이비엔티안의 한복판에서 도시의 중심을 잡고 있는 빠뚜싸이는 라오스인들이 독립정신이 서려 있는 곳이다. 1969년 프랑스와의 독립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승리의 문’이다. 모습은 프랑스 개선문과 비슷하지만 내부엔 라오스의 전통 문양이 새겨져 민족의식을 강조했다. 빠뚜싸이가 라오스인들에게 얼마나 상징적인 건물인가 하는 것은 국가 정책에서도 잘 나타난다. 라오스 정부는 최근까지 탑 높이보다 높은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했을 정도다.단, 자주 독립을 기념하는 건축물을 적국인 프랑스 개선문을 모델로 삼았다는 점과 그 비용을 범국민적인 성금이나 국가자본으로 조달하지 않고 미국 원조자금으로 충당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여행자의 단상일 뿐이다.비엔티안 시티투어를 끝내고 방비엥 남쏭강 옆 호텔에 짐을 풀었다. 500년 고도 비엔티안 시내에서의 흥분은 이제 물소리, 새소리에 잦아들었다.석양에 물든 남쏭강이 맑게 흐르고, 강 건너엔 사진에서 보았던 중국 계림, 베트남 하롱베이의 석회암 카르스트산맥들이 옅은 음영으로 펼쳐진다.내일 방비엔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까. 기분 좋은 상상 속에서 고단한 몸을 누인다. 라오스의 문화 코드 ‘뽀뺀양’라오스의 1인당 GDP는 1천800달러 선으로 이웃한 내전(內戰) 국가 미얀마를 제외하고 동남아에서 소득 수준이 가장 낮다.그럼에도 현지에서 만난 라오스인들의 표정은 무척 밝고 평안하다. 이런 평온은 거리, 시장 같은 일상을 물론 개개인의 삶에도 연결된다.라오스에서는 3가지를 볼 수 없다고 한다. 경적소리, 싸우는 소리, 장례식장에서 우는 소리다. 실제로 여행 중 일행을 태운 차가 고장으로 도로 한복판에서 10여 분을 서 있었는데도 단 한 번 빵빵 소리를 듣지 못했다.또 불교 윤회사상 때문인지 ‘죽음을 이생의 업(業)을 마감하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탓에 우리와 같은 애도(哀悼) 문화도 없다.또 라오스에서 ‘싸바이 디’(안녕하세요) 다음으로 많이 듣는 소리가 ‘뽀뺀양’이다. 우리말로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쯤으로 해석된다.사소한 일과 실수에 대해 서로 따지지 않는 문화 덕에 사회적 완충장치를 하는 어법(語法)이다. 이 마법 덕에 라오스에서는 큰 싸움이나 분쟁이 생기지 않는다.혹시 여행 중에 곤란한 일이 생기면 ‘뽀뺀양’이라고 말해 보라. 열에 아홉은 상황이 종결된다.글·사진/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