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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책 한권… 가족과 함께하는 지혜의 시간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4-09-12 18:46 게재일 2024-09-1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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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소크라테스’

2022년 11월 챗GPT의 상용 버전이 공개된 이후, 생성형 인공지능은 사회경제적 변화의 선두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어떤 질문에도 척척 답하고 그림을 그려주며 영상을 만들면서 사람들은 진짜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섰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인간과 비슷하거나 넘어서는 일반인공지능 또는 초지능의 출현도 머지않았다는 기대감과 그에 따라 인간은 필연적으로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엇갈리고 있다.

고통과 불평등 속에서도 어떻게 사유해야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를 천착해온 철학자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는 신간 ‘AI 시대의 소크라테스’(휴머니스트)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는 원하는 결과물을 즉각 제공하는 인공지능을 ‘21세기의 소피스트’라고 규정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지혜’라고 강조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진우 교수는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대체할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인공지능은 못 하지만 인간은 할 수 있는 질문을 통해 인간 조건과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기계는 느낄 수 있는가? 기계는 의식을 갖고 있는가? 이진우 교수는 이 세 가지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인공지능 시대 또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간 조건을 성찰하자고 제안한다.

이진우 교수는 챗GPT가 상징하는 기술 진보를 구텐베르크 혁명에 못지않은 지성 혁명으로 파악하고, 인공지능 혁명이 불러일으킨 철학적 전환에 주목한다. 이 교수는 현대의 인공지능이 고대 아테네에서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 지식과 기술을 전수했던 소피스트와 같다고 본다. 실제로 고대의 소피스트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했지만 정작 지혜는 전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대의 소피스트를 비판하고 무지를 고백함으로써 진정한 지혜를 추구한 소크라테스의 질문이다. 이 교수는 “인간이 계산으로 단순화된 사고 체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왜?’라는 질문도 사라진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란 질문은 결국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가’란 질문으로 이어진다”며 “이제 인공지능은 생각을 넘어 공감까지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공지능이 잘하는 것은 인간이 뒤떨어지고 인간에게 능숙한 것은 인공지능이 하기 어려워한다는‘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은 감정이라는 문제로 집약된다. 인간에게는 몸이 있기에 감정을 가졌고 인공지능은 그렇지 않기에 감정에 미숙하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감정 인공지능’이 상식을 바꾸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또 “감정 인공지능은 사용자의 ‘깊은 감정’보다 ‘피상적 감정’에 집중한다. 사용자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하는 감정 인공지능은 영화 ‘그녀(Her)’가 미리 보여준 인공지능과의 우정과 사랑이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진짜와 구분할 수 없는 가짜 감정으로 소통하는 인공지능이 출현하면서 감정이 인간에게 고유하다고 강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며 도덕성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감정을 인공지능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은 인간에게 과연 감정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화’ 

세계적인 불교 지도자이며 평화운동가인 틱낫한(1926~2022) 스님의 ‘화’가 20여 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다. 틱낫한 스님 하면 ‘화’(초판 2002년)가 연상될 정도로, 이 책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음의 불꽃을 식히는 지혜’라는 부제를 달고 최근 번역·출간된 책은 화, 절망, 좌절감 등에서 벗어나 나와 상대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것은 난해하거나 깊은 이론적 공부, 극한의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바로 ‘마음챙김’수행 하나면 된다.

현대인들은 ‘화(분노)’를 촉발, 촉진시키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물질주의, 이기심, 무한경쟁 등이 자리한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가?

스님은 화는 정신적, 심리적 현상이지만, 생물학적, 생화학적 요소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본다. 즉 몸과 마음은 별개가 아니며, 몸이 마음이고 마음이 몸이다.

따라서 화의 뿌리는 마음만이 아니라 몸에도 존재하며, 결국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어떻게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등 ‘마음챙김 먹기 수행’을 하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돈, 권력, 높은 지위가 행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다 얻고도 불행하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고 스님은 지적한다. 결국 분노, 절망감, 좌절 등을 다스리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스님은 화가 날 때는 수백개의 근육이 긴장해 아름답지도 멋지지도 않은 자기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고 이를 바꾸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 바로 미소 짓기를 해보라고 권한다. 타인의 행동 때문에 화가 치솟을 때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맞대응하는 것을 경계하고 대신 스스로를 돌아보며 화를 다스려야 한다고 알기 쉬운 비유로 깨달음을 전한다.

 

‘부의 설계자들’

‘페이팔(PayPal)’은 전 세계 온라인 지불 시스템을 운영하는 미국 회사다. 일론 머스크, 피터 틸, 리드 호프먼, 맥스 레브친 등 실리콘밸리의 부흥을 이끈 일명 ‘페이팔 마피아’들은 현재 테크 산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직으로 일컬어진다.

테슬라, 메타, 유튜브, 스페이스X, 팔란티어, 링크드인 등 이 시대를 이끈 수많은 기업을 창시하고 투자하고 경영한 이들의 시작점에는 모두 페이팔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미국 논픽션 작가 지미 소니의 신간 ‘부의 설계자들’(위즈덤하우스)은 일론 머스크 등 창업자와 초창기 직원들과의 수백 건의 인터뷰와 수십만 장에 달하는 방대한 내부 문건 분석을 통해 페이팔이 어떻게 태동했고 성공했는지 그 전략을 낱낱이 파헤친다. 언론인 출신인 저자는 페이팔의 창업 과정과 초기 운영을 추적하며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책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페이팔의 역사를 조명한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난민 소년 맥스 레브친이 다소 엉뚱한 꿈을 좇다가 스탠퍼드대학에서 피터 틸을 만나고,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창업에 나서는 데서 전설의 첫 막이 열린다.

그들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그린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같은 발상의 사업을 전개하던 일론 머스크와의 만남, 그리고 두 기업의 합병과 페이팔의 탄생이 이어진다.

페이팔의 사업은 낯선 개념을 고객에게 설득하는 일, 경쟁자의 도전과 음해, 해커와 사기꾼들의 위협에 이르기까지 생존 기반을 뒤흔드는 도전이 계속됐다. 이 속에서 페이팔 구성원들은 갈등과 협력, 원칙과 효율성, 사려와 신속함의 균형점을 찾아가며 성장을 이룬다. 이후 이베이에 매각하고 기업공개를 함으로써 창업자들은 거부가 되고, 종업원들은 안정적 고용 기반을 만든다.

하지만 전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모험에 나선다.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이다. 지분 매각 대금을 바탕으로 스페이스X와 테슬라를 설립했다.

피터 틸은 팔란티어와 파운더스펀드를 설립했으며 페이스북의 최초 투자자가 됐다. 맥스 레브친은 슬라이드와 어펌홀딩스를 만들어 도전을 이어간다. 페이팔 초기 직원들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유튜브 공동 설립자 채드 헐리, 스티브 첸, 자웨드 카림이 모두 페이팔 출신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책의 특징은, 지금은 존경의 대상이 돼 장막 뒤에 숨겨진 피터 틸과 일론 머스크 등의 초년기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됐다는 것이다. 19세의 일론 머스크가 피터 니콜슨이라는 인물에 매료돼 단지 그를 따르고자 스코샤 은행에 인턴으로 들어가 근무한 이야기는 이색적이다. 저자는 이들이 기존 관행을 거부하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남다른 행동을 했다고 말한다.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특별하게 보였다는 얘기다.

이 책은 행운과 불운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는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주인공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했는지를 덤덤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 건조한 진술들은 때로 더 묵직한 통찰을 던져주곤 한다. “옳은 것보다는 틀린 것을 찾아라”, “경계를 부수어라”, “시장을 독식하라” 등 파괴와 혁신을 일으킨 이들의 전략은 현재 디지털 스타트업 문화의 토대가 됐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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