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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숲길·물길 따라 퇴계가 사랑한 풍경 속으로

높은 산 아래 맑은 물이 흐르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경상북도 봉화는 이름처럼 맑은 청량산이 커다란 품을 펼치는 고장이다. 청량산 깊은 골짜기마다 이름난 고찰을 품고 있고, 속세를 떠나 산속에서 글을 읽으며 지냈던 선조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산이 가득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붉은빛이 물드는 숲길 따라 물길 따라 봉화의 청량산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12개 봉우리와 27개 사찰 품은 청량산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태백산맥 줄기에 솟아 있는 청량산은 자그마한 금강, 소금강(小金剛)이라 부를 만큼 봉우리마다 수려한 기암괴석이 장관이다. 1982년 경상북도립공원으로,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돼 산천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청량산에는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해 선학봉, 자란봉, 연화봉, 자소봉, 금탑봉, 경일봉, 축융봉 등 12개의 봉우리(육육봉)가 연꽃잎처럼 산을 두른다. 봉마다 학소대, 금강대, 어풍대, 원효대, 반야대, 의상대, 밀성대 등의 대(臺)가 있다. 27개의 사찰과 암자 터도 있다.청량산은 신라시대에 높은 봉우리의 이름을 의상봉, 보살봉, 반야봉, 문수봉, 원효봉이라 부를 만큼 불교문화의 흔적이 가득했다. 유교가 국가이념으로 자리 잡은 조선 중종 39년(1544), 당시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이 청량산을 다녀간 뒤 불교식 이름의 열두 봉우리를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시절에 따라 불가의 산은 유가의 산이 됐다.청량산을 이야기하면서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 퇴계 이황을 빼놓을 수 없다. 퇴계는 어린 시절부터 청량산에서 글을 읽고 사색을 즐겼다. 안동의 도산서당에서 제자를 가르치면서도 틈틈이 산을 찾았다. 서당을 세울 때 청량산과 현재의 도산서원 자리 중, ‘어디에 서당을 지을 것인가’ 고민할 만큼 청량산을 사랑했다. 퇴계의 시조 ‘청량산가(淸凉山歌)’의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훤사(喧辭)하랴, 못 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떠나지 마라, 어주자(魚舟子) 알까 하노라”는 구절에서 청량산이 세상에 알려져 더럽혀질까 걱정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청량산 최고의 풍경 연출하는 응진전청량산 아래에는 낙동강 긴 물줄기가 흐른다. 산 입구에서 바라보면 강을 따라 마치 주상절리를 옮겨 놓은 듯한 절벽이 솟아 있다. 이 절벽은 옛날부터 학이 날아와 새끼를 치고 서식해 학소대라고 부른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학소대와 나란히 서 있는 금강대 또한 비경이다.청량산 입석에서 금탑봉을 향해 천천히 올랐다. 봉우리 사이로 가는 길은 마치 그림 속을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바위가 층층이 쌓아놓은 금탑 모양을 하고 있다는 금탑봉은 3층 층암절벽이다. 암벽 층마다 소나무들이 테를 두른다. 금탑봉은 예전에 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의 이름을 따서 치원봉으로 불렀다. 봉우리 기암괴석 동굴 속에서 최치원이 마시고 더 총명해졌다는 총명수가 샘솟는다. 봉우리 아래에는 절벽이 병풍처럼 두른 암자, 응진전이 있다.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암자로 663년 세워졌다. 가을이면 오랜 세월이 녹아든 응진전에 붉은 단풍 물결이 덮쳐 청량산 최고의 풍경을 만든다.금탑봉보다 높은 곳에 있는 김생굴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글씨의 대가, 김생이 9년간 글씨를 수련했다고 한다. 여기에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어느 정도 실력을 쌓고 하산하려는 김생에게 갑자기 길쌈을 수련한 청량봉녀가 나타나 실력을 겨루자고 했다.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 일화처럼, 어두컴컴한 굴속에서 불을 끄고 서로의 실력을 발휘해 비교해보니 청량봉녀가 짠 천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김생의 글씨는 고르지 못했다. 부족함을 깨달은 김생은 1년을 더 수련하고 세상에 나가 최고의 명필이 됐다고 한다. 이곳에는 김생이 붓을 씻었다는 우물, 세필정도 남아 있다. △전설과 보물 간직한 천년고찰 청량사청량산 자락에는 응진전과 더불어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있다. 연화봉 기슭 구불구불 험한 산길을 따라 거친 숨을 내쉬며 걷다 보면 활짝 핀 꽃 안의 꽃술처럼 청량산 열두 봉우리가 품은 청량사를 만난다. 천년고찰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예전에는 연대사(蓮臺寺)로 불리며 30여 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큰 사찰이었다. 연대사는 무너져 터만 남았고, 연대사 부속 건물 중 하나였던 유리보전이 청량사라는 사찰로 이름을 바꿨다.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유리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소박한 건물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처마 선은 단정하다. 기둥 위에 용머리와 용 꼬리가 장식돼 있다. 유리보전 현판은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왔을 때 쓴 친필이라고 한다.유리보전 앞에는 세 갈래로 가지가 뻗은 소나무가 서 있다. 적막한 산속에서 세월을 꿋꿋이 견뎌온 소나무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원효대사가 청량사를 지을 때, 절 아랫마을에서 논을 갈고 있는 농부와 소를 만났다. 뿔이 세 개나 달린 소는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날뛰고 있었다. 원효대사는 농부에게 소를 시주하라며 소를 받아 돌아왔다. 제멋대로였던 소는 절에 와 고분고분 말을 듣고 청량사를 짓는데 필요한 재목과 물건을 밤낮없이 날랐다. 절의 준공을 하루 앞둔 날, 소는 숨을 거뒀다. 원효대사가 죽은 소를 묻었더니 그곳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랐다. 이를 ‘삼각우송’이라 하고, 소 무덤을 ‘삼각우총’이라 불렀다.오랜 설화처럼 청량사에는 오래된 보물도 있다. 청량사 건칠보살문수좌상은 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삼베를 입혀 칠을 발라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다 일정한 두께가 되면 조각해 만든 불상으로 눈 부위에는 장식을 새겨 넣었다. 보기 드문 건칠불상(종이불상)은 얼굴, 신체, 옷을 입은 모습으로 보아 12~13세기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복장유물은 불상을 만들 때 사리나 경전 같은 유물을 가슴이나 배속에 봉안한 것인데, 건칠불상과 함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청량사 지장전에 봉안된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은 16세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유교 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이 드물다는 점에서 조선 불교 조각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청량사는 지금은 작고 소박한 사찰이 됐지만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을 간직한 거대한 박물관 같다.청량사 유리보전 옆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오르면 하늘과 가장 가까운 다리를 만난다. 산이 하늘 높이 닿을수록 골짜기는 깊기에, 하늘다리를 향해 오르는 산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고생 끝에 오른 청량산의 명물 하늘다리는 2005년 90m 길이로 설치됐다. 해발 800m의 자란봉과 선학봉을 연결한다. 깊은 산속에 설치된 다리를 건널 때 골짜기를 따라 불어오는 바람에 등골이 서늘하지만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펼쳐진 능선을 바라보면 두려움은 금세 사라진다. 같이 가볼만한 곳청량산 물길 매호유원지봉화군 명호면 도천리에 있는 매호유원지는 낙동강과 운곡천이 만나 청량산을 휘도는 부드러운 물길이 아름답다.태백산맥과 일월산맥 황우산의 만나는 곳이라 산수가 수려하다. 산과 물이 만나는 모습이 매화꽃이 떨어지는 모습 같아 매호(梅湖)라 부른다. 범바위에서 내려다보면 한반도 모양처럼 보이기도 한다.매호유원지는 은어와 잉어가 많이 잡혀 옛날부터 낚시터로 이름났다. 산이 깊고, 물길도 깊어 등산하면서 래프팅도 즐길 수 있다.낙동강과 운곡천이 만나는 지점과 가까운 곳에는 옛날 용이 살았다는 못, 용소가 있다. 명주꾸리 세 개를 풀어 넣어야 할 만큼 깊다고 한다.매호유원지 하류 암반에서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용천수도 흘러나온다. 봉화 청량산은 산 좋고 물 좋은, 그야말로 백두대간 천혜의 자연이다./봉화=글·사진 이솔 객원기자

2022-10-06

‘젊고 힘있는 고령’ 미래 위한 씨앗 뿌렸다

소통과 화합, 현장행정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이남철 고령군수가 오는 8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젊고 힘있는 고령의 미래를 준비하며 청사진을 그려온 이 군수.고령군은 역점시책으로 불리는 5·5·5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한 각종 사업을 진행하며, 청년층 유입과 주거 환경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 또한, 공약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추진계획도 착착 수립하고 있는 상황. 미래세대인 아이들을 위한 교육 환경 개선과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아래에서 민선 8기 100일을 맞이한 고령군의 현재 상황과 향후 미래 계획을 상세하게 알아본다. □ 지역 발전과 지방소멸 대응에 지속적 노력5·5·5프로젝트는 ‘인구 5만-신규주택 5천호-청년인구 5천’을 골자로 하는 민선 8기 고령군의 역점시책이다. 이 시책의 해결 방안은 ‘지속 가능한 산업경제’ ‘사람중심 고령발전 인프라’ ‘사통팔달 교통’ ‘앞서가는 미래 스마트 농업’. 신규 산업단지 조성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신도시를 개발해 대규모 주거단지를 조성함으로써 일자리와 주거, 교육문제로 인근 대도시로 빠져나가는 젊은 층을 정착시키는 동시에 지역으로의 유입과 접근성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령군은 프로젝트의 성공과 지역 위기 극복에 대한 의지로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를 방문해 군에 신규 주거단지와 산업단지 조성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인구 관련 사안은 고령군이 당면한 과제로 군은 특정 부서만이 아닌 전 부서와 전체 공직자가 하나 돼 협력해 나가야 할 중대한 사안임을 인지했다. 또한 지역 주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도 당부했다.한편, 군은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한 스마트 산업단지 조성과 함께 투자유치 업무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조직 개편도 시행할 예정이다. 고령군은 2021년 10월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TF팀을 구성하고,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청년, 농업, 정주여건에 대한 복합적 해결방안을 수립했다. 이런 노력의 결실은 지난 8월 지방소멸대응기금 170억 확보로 귀결됐다. 또한 공모사업의 경우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사업 332억, 농촌공간 정비사업 250억, 다산 청년 복합귀농타운 조성사업 50억 등 민선 8기 출범 이후 3개월 간 총 15건 848억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 군정 방향과 목표 설정 후 현장행정 추진지난 8월 말. 고령군은 민선 8기 공약 및 주요사업 보고회를 개최하고 50여 개의 공약을 확정하면서 향후 고령군이 그려갈 청사진을 공유했다. 군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실질적이고 실현 가능한 공약사업을 시책화 해 앞으로의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발표한 것이다.‘대가야’의 존재가치를 제고하며 가야문화 콘텐츠 글로컬화를 위해 스마트관광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낙동강변 다산 은행나무숲과 같은 자연을 활용한 새로운 관광거점을 개발할 것이며, ‘빛과 꽃’으로 물들이는 전반적인 도시경관 개선 향상을 위해 다각도로 힘쓸 계획이라는 것이 주요 방향. 교육 분야는 ‘대가야교육원’의 운영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고,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해 한 발 앞선 미래를 내다보는 4차산업 대비 교육정책이 반영된 방향으로의 개편이 필수적이라는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를 위해 창의 융복합 프로그램 운영과 센터 건립 등을 구상 중이다.스마트 부자농촌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 시설 현대화 및 과학영농 기술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 거기에 따라 스마트팜 보급 확대와 지역농협과의 협력 및 외국 지자체와의 협약 체결을 통한 인력중개,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 등의 형태로 농촌인력뱅크를 운영해 농번기 인력수급 문제도 해결할 예정이다.민선 8기 출범 후 고령군은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군정으로 대가야역사문화클러스터 1단계, 도시재생 뉴딜사업, 동고령IC 물류단지 조성 등 주요 사업장에 대한 현장 방문을 실시했다.여기서 이남철 군수는 추진상황 파악 후 업무 관계자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시간도 가졌다. 보다 나은 방향으로의 사업을 제안하고 피드백을 받기도 하는 등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예산집행의 합리적 운용과 안전사고 예방에 유의해 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지난 8월 수도권의 기록적 폭우에 이은 9월 초 태풍 힌남노의 북상으로 한반도 전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남부권인 고령 지역도 안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군은 재난 대비 시설물 점검에 앞장섰고, 직원들의 비상대기 또한 이뤄졌다. 그 결과 고령군은 큰 피해 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태풍이 지나간 즉시 재난 취약지대를 확인함과 동시에 민관이 합심해 가로 환경정비 등에 나서 안전한 지역민의 명절 연휴를 지켜낸 것. 고령군은 이에 그치지 않고 수해가 극심한 포항과 경주를 방문해 군수를 포함한 공직자와 민간단체 등 200여 명이 복구지원에 나섰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한 것이다. □ 공감행정 실현과 지방시대 준비이남철 군수 취임 100일. 군 집행부와 고령군의회는 20회 가까이 8개 읍면의 주민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군민들의 의견과 바람을 듣고, 고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SOC, 교육, 도시환경, 복지, 관광 등 주민의 질문과 요청사항은 다양한 분야에서 쏟아졌고, 고령군은 군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와 협심해 군민에게 최상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고령의 미래를 위해 군민의 동행과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민선 8기 공약에도 확정됐듯 군민과 함께하는 소통콘서트는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이게 바로 군민의 마음을 읽는 공감행정 아닐까.‘지방 소멸’의 위기 속에서 고령군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70억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확보했다. 이를 대도시로부터 유입되는 청년들을 위한 전반적인 정주여건 개선에 집중 투자할 계획. 청년 희망이음센터를 건립해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고, 귀농·귀촌 통합플랫폼으로서 다산 좌학리 일원에 3천 평 규모의 스마트팜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는 청년 복합귀농타운 조성사업과 연계해 지원하게 된다.이밖에도 아이나라키즈교육센터 증축, 청년지원플랫폼 문화예술창작소 등 유입되는 청년층과 기존 젊은 세대에 안정적인 삶의 여건을 조성하고자 고령군은 앞으로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열린 지방시대를 맞아 지역 동반성장의 길 또한 함께 걷는다. 이웃 지자체로서 고령과 달성은 상생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상생사업으로 추진한 ‘사문진교 야간경관 개선사업’이 마무리 돼 지난 10월 1일엔 ‘달성 100대 피아노’ 공연에 앞서 공동점등식을 가졌다. 그보다 앞선 8월엔 고령군-달서구-달성군 3개의 지자체가 지역연계 관광사업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주요 관광지를 연계하는 ‘달리고’ 투어버스를 운영하는 등 행정구역을 넘어선 관광체계도 구축됐다. 지자체 간의 이런 협업은 지방시대를 열어가는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 화합과 상생 그리고, 젊고 힘있는 고령고령 다산면과 달성 다사읍을 잇는 강정고령보 우륵교 개통 문제는 수년째 이어져온 지역 현안이다. 생활권과 경제권을 함께 하는 인근 지역민 삶에 직결되고, 또한 지자체 간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이라 고령군은 상호 발전적 방향으로 대응할 여러 접근방식을 모색 중이다. 우선 첫 단계로 강정고령보 개통을 위한 추진대응 TF팀을 구상 중이며, 구체적 운영계획과 실천과제를 발굴해 실행에 옮길 예정. 이 사안에 있어 기관 간의 우호적인 관계 유지에 계속해서 노력을 기울이면서, 민간 차원으로의 접근 또한 확장시켜 문제해결의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고령군민의 오랜 숙원 해소와 지역을 초월한 화합과 상생협력의 가치를 실현시킬 더 큰 행정으로 나아갈 때가 아닐까.펜데믹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와 인구 급감 등 지역의 위기를 극복하고, 젊음의 기운으로 들썩이는 새로운 희망의 바람이 고령에 다시 불어올 수 있을까. 군민과 함께 시작한 100일, 그리고 같이 걸어갈 4년. 화합된 힘과 변화하는 혁신으로 비상하는 고령의 저력이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을지. 이전과 달라질 고령을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고령/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2-10-06

진지하거나, 담담하거나… 영화로 사색하다

가을 여행지로 각광받는 유명한 산은 물론 우리가 생활하는 주변 이름 없는 조그만 산에도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간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푸르게 높아진 하늘 아래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데이트 하는 젊은이들의 환한 얼굴이 정겹다. 중년들은 그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본다.가을은 누가 뭐래도 ‘생각하고, 고민하는’ 계절이 아닐까? 그래서다. 오래전 선현들은 이때를 독서하는 시간으로 쓰라고 조언했다.‘활자’보다는 ‘영상’에 익숙한 MZ세대들은 아무래도 책 읽기보다는 영화 보기에 익숙한 듯하다. 인간이란 시대의 변화와 처한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러니, 독서 대신 영화 관람을 선택하는 이들을 나무랄 이유는 전혀 없다.사람들은 시기와 감정 상태에 따라 영화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진다. 더위가 짜증을 유발하는 여름엔 시원한 액션영화나 오싹한 공포물이 인기고, 슬프거나 우울한 날엔 고전 로맨스영화를 찾게 된다. 그렇다면 가을엔 어떤 영화가 어울릴까? 앞서 말한 것처럼 생각할 거리와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조금은 묵직한 주제의 영화가 좋지 않을까.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찾아보기 쉬워진 시대다. 아래 소개하는 영화 2편을 만나며 사색하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지. ‘신과 인간’ 진지한 질문 던지는 ‘에이리언: 커버넌트’인간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온 것일까? 누군가의 피조물일까, 그게 아니면 수만 년에 걸친 생물학적 변화의 산물일까? 존재와 실존에 관해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한 명 예외 없이 떠올렸을 의문이다.인간이 창조된 존재인지, 진화의 과정에 있는 고등한 생물인지를 놓고 벌어진 설왕설래는 인류역사상 가장 뜨겁고 주요한 논쟁 중 하나였다.이른바 ‘창조론-진화론 논쟁’. 수많은 신학자가 이 논쟁에 끼어들어 창조론을 옹호했고, 자연과학자인 다윈(Charles Darwin)과 라마르크(Jean Lamarck)는 탁월한 연구 성과로 진화론에 힘을 실었다.수 세기에 걸친 인간 세상 화두였으니, 문학과 영화에서도 이 두 가지 학설이 갈등하고 충돌했던 것은 불문가지다. 학구적 정열을 간직한 시인이나 소설가 또는, 영화감독은 자기 뜻을 문학·영상으로 정리해 독자와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이런 문제적 작품들은 한쪽의 찬사와 동시에 다른 한쪽의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인간과 구별이 거의 불가능한 AI 월터(마이클 패스벤더 분). 리들리 스콧 감독은 AI를 창조론 옹호의 영화적 수단으로 사용한다.이미 40년 전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디스토피아가 된 미래사회와 인간의 형상으로 제작된 리플리컨트(복제인간)가 겪는 혼란과 갈등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리들리 스콧. ‘에이리언: 커버넌트’ 역시 이전 작품들과 유사한 철학적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고 있다. 이 영화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전작 ‘프로메테우스’와 여러 측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어찌 보면 후속편으로도 읽힌다.영화의 도입부. 인간과 구별이 거의 불가능한 AI인 월터가 자신을 만든 사람에게 묻는다.“당신이 나를 만들었다면, 당신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요?”‘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이에 관한 답변을 생략한 채 전개된다.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보라”는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프로메테우스’는 아주 멀리 떨어진 행성에서 온 외계인의 DNA가 지구의 단세포생물을 만들어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는 진화론을 정면에서 부정하며 창조론의 손을 들어주는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더불어 논쟁을 부를 소지가 다분한 영화적 설정. 리들리 스콧의 창조론 옹호와 지지는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도 연속해 드러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을 외부적 환경변화에 한없이 무기력한 동물로 묘사하고, 우리가 통상 인간의 특질로 이해하고 있는 동정심과 합리적 결단력을 AI에게 부여하는 장면 등을 통해서다. 여기엔 “진화의 결과가 이 정도라면 참혹하지 않은가”라는 환멸의 질문이 깔렸다.리들리 스콧 정도의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라면 갑자기 튀어나온 우주 괴물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유치한 권선징악의 결말이 아닐 것이란 정도는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에 이은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그 예상도 훌쩍 뛰어넘어 무겁고 난해하기 짝이 없다.여든다섯의 영화감독, 이제는 ‘철학자’로 불러도 좋을 리들리 스콧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클래식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결말을 통해 자신이 변하지 않을 창조론자라는 걸 보여준다. 그게 어떤 장면이냐고? 그걸 말해주면 영화 보기가 너무 싱거워지지 않겠나.마지막으로 남는 의문 한 가지. 합리와 과학을 신뢰하는 유럽에서 태어나 생활해온 리들리 스콧이 합리와 과학에 더욱 근접한 진화론이 아닌 창조론에 경도된 이유는 뭘까? 그가 독실한 종교인이라서? 그게 아니면,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운 나이이니 곧 만날 신(神)과의 우호적 관계 설정을 위해서? 노감독은 영화 안과 밖에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그러니,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재론의 여지없이 ‘사색의 가을’에 맞춤한 영화다. 답을 찾기 위해선 어떤 방식으로든 생각을 해야 하니까. 담담한 카메라에 담긴 괴물들의 세상 ‘소리도 없이’미세한 감정의 일렁임, 사소한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몸뚱이 피를 닦고 자루에 넣어 땅속에 묻는 사람.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를 술 섞은 음료수 먹여 장기매매 브로커에게 판매하는 사람. 유괴를 생존을 위한 비즈니스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세상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 행위가 분명함에도 위와 같은 일들은 어제도, 오늘도 있어왔고, 내일도 행해질 것이 분명하다. 싫어도 부정할 수 없다.때때로 현실은 어떤 공포영화보다 끔찍하다. 그런데, 이런 세속 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도 침착함과 평정심을 지킨다? 쉽게 이르지 못할 경지. 이는 ‘소리도 없이’가 주목받는 영화인 이유다.몇 년 사이 개봉된 어떤 한국 영화와도 닮지 않았다. 답습과 반복의 흔적이 없다. 그래서다. 돌올하고 이채롭다. 신인 감독이 보여준 기대 이상의 연출력.거기에 멀쩡한 인간의 얼굴을 하고 끔찍한 짐승의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다. 주연 유재명과 유아인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마지막 장면은 세칭 ‘열린 결말’이라 해석의 가능성이 다양하다. 그랬기에 영화에 관해 이렇다, 저렇다 입을 대는 관객들이 많았다. 좋은 영화는 많은 이들이 논쟁에 참여하게 하는 법.‘소리도 없이’는 법 없이 살 수 없을 듯한 착한 사람들이 법을 어기며 나쁜 짓을 하며 지내다가, 개입되기 원하지 않던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착하고도 나쁜’ 어른 둘 사이에 ‘선악의 포지션이 불분명한’ 열한 살 아이가 끼어든다.그때부터다. 영화는 기존의 상식과 보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의외의 결말을 향해 질주한다. 스토리는 치밀하고, 전개는 정교하며, 앞서 말한 것처럼 배우들의 연기는 핍진하다. 상업적 할리우드 스타일을 답습하는 한국 영화가 가진 약점 중 하나가 과잉이다. 관객이 흥분하기 전 연출자가 앞서 흥분하고, 울거나 웃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울어라” 혹은 “웃어라” 먼저 옆구리를 찌르거나, 뺨을 친다. 이래서는 감동에 가닿을 턱이 없다.‘소리도 없이’의 가장 큰 미덕은 감독이 먼저 흥분하거나, 감정 과잉에 빠져 오버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 싶다. 어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도 홍의정 감독의 카메라는 정중동(靜中動) 담담함을 지킨다.물론 ‘소리도 없이’의 모든 게 다 좋지는 않다. 몇몇 장면에선 앞뒤의 인과가 흐릿하고, 영화에서 벌어진 일의 수습 과정을 납득할만한 설명 없이 건너뛰기도 한다.그러나, 이런 흠결은 전체의 맥락에서 보여준 큰 장점에 비하면 그야말로 소소하게 느껴질 뿐, ‘영화 보는 즐거움’을 깨뜨리지 못한다. 가을 밤, 진지한 표정으로 혼자 보기 딱 좋은 작품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10-04

신명나는 공연에 어깨 ‘들썩’… 가족·친구·연인 추억 쌓았다

2022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과 경북매일신문이 주관한 낙동강 7경 문화 한마당 행사가 3일 안동시 경동로 탈춤 축제 메인 행사장 일원에서 열렸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와 다양한 공연 및 체험 행사로 열린 탈춤 축제와 인기 가수의 신명나는 공연이 이어진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의 이모저모를 화보에 담았다. 듀엣 1+1로 활동 중인 가수 김민교와 이병철이 문화한마당 객석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흥겨운 공연을 펼치고 있다./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행사장을 깜짝 방문한 이철우 도지사가 객석에서 시민과 함께 흥겨운 공연을 즐기고 있다. 3일 오후 안동시 경동로 메인 행사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탈 조형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3일 오후 안동시 경동로 거리무대에서 김종흠 명인이 장승 깎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행사장에서 이병철 씨가 객석까지 내려와 시민과 함께하며 신명나는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무대에서 양하영 밴드가 가슴앓이와 갯바위 등 히트곡을 선사하고 있다. 낙동강 7경 문화 한마당 행사장을 찾은 외국인들이 K-트로트의 묘미를 만끽하고 있다.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무대에서 옛 안동역 앞에 노래비가 세워질 만큼 큰 인기를 끈 노래 ‘안동역에서’의 주인공 진성 씨가 자신의 히트곡을 열창하고 있다. 낙동강 7경 문화한마당 무대에서 미스 트롯 출신 강혜연이 자신의 히트곡을 열창하고 있다.

2022-10-03

영화 속 전쟁… 슬프고도 고통스런 나날의 기록

지난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의 명령을 받은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공습하며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모두의 기대와는 다르게 긴 시간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서 두 나라의 전쟁은 원유와 천연가스, 곡물 등의 가격을 치솟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세계인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 경제 문제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양국의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은 그것을 결정하는 소수의 통치권자가 아닌, 전쟁이 만들어낼 이익과는 무관한 다수 국민의 희생을 불러오는 비극이다. 엄청난 숫자의 사망자와 난민을 양산하고 있는 이 전쟁은 언제가 돼야 끝이 날까? 조속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간절한 마음으로 비는 이들이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많다. 그들에게 시대와 장소 불문 ‘절대악’이라 불러 마땅할 전쟁의 슬픔과 고통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 2편을 소개한다.태평양전쟁, 한·일 청춘의 비극 다룬 ‘호타루’영화 ‘호타루’를 보고 있노라면 과거사에 관한 미움과는 별개로 일본이 무척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나라란 걸 알게 된다. 눈이 시리도록 짙푸른 가고시마의 바다, 삭막해진 마음을 다독여주는 북해도의 설경(雪景), 흑백의 회상 장면에서 투박하게 빛나는 새하얀 포말….‘호타루’는 반딧불이를 뜻하는 일본어다. 세계 제2차대전 당시 미국 군함을 향해 목숨을 걸고 날아가던 자살특공대(가미카제·神風). ‘호타루’는 반딧불이가 돼서라도 고향에 가고 싶어 했다는 자살특공대원들의 소원에서 따온 제목이다.열여섯 어린 소년까지 ‘국가적 대의’라는 조악한 명분으로 희생시켰던 비극적 전쟁의 역사.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은 반전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호타루’의 전개는 단순하고 간략하다. 1989년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사망한다. 그 죽음은 조용한 어촌에서 전쟁의 상처를 숨긴 채 살아가던 가미카제 대원 야마오카(다카쿠라 켄 분)를 회상으로 이끈다. 연인을 자신에게 맡기고 죽음을 향해 출격했던 한국인 소위 김선재와 지금은 자신의 아내로 살고 있는 김 소위의 여자 도모코(다나카 유코 분), 그리고,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이 죽을 차례만을 기다리던 공간 치란(마을 이름).영화는 현재의 공간 가고시마와 과거의 공간 치란을 오가며, 국가집단의 광포한 메커니즘이 강제한 전쟁이 개개의 인간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상처는 끈질겼다. 맹목적으로 히로히토를 숭배하던 열여섯 가미카제 대원은 백발의 노인으로 변했지만, 일왕이 죽었다는 뉴스를 듣고는 “이제 나의 시대를 끝났다”며 설산(雪山)으로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야마오카는 전쟁 때 죽은 한국인 김선재 소위가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고, 혼란스러움은 깊은 병을 앓고 있던 도모코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44년을 잠복해온 전쟁이 야기한 생채기.‘호타루’는 억지스런 설정과 어색한 강변으로 ‘반전·평화’를 외치는 유치한 영화는 아니다. 다카쿠라 켄과 다나카 유코의 농익은 연기와 감미로움과 비극적 서정을 동시에 표현한 쿠니요시 료이치의 세련된 영화음악, 눈부신 하늘과 바다의 색깔이 어울린 영화임은 분명하다.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게 아름다운 풍경과 감미로운 음악은 메시지가 관객에게 건너가는 길을 차단해버렸다. 거기에 더해진 야스오 감독의 과도한 감정 이입은 영화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일제강점기 식상한 신파극(新派劇)으로 만들어버렸다. 중심을 지켜야 할 감독이 흥분하면 배우도 흥분하고, 덩달아 관객도 흥분하기 마련 아닌가.그런 이유에서다. “자식을 죽으라고 명령하는 부모는 없다”며 어버이로서의 일왕이 아닌 전범(戰犯) 일왕을 힐난하는 할머니의 눈물도, “나는 대일본제국이 아닌 조선민족과 연인을 위해 출격하는 것이다”는 김선재 소위의 장엄한 유언도, 김 소위의 유품을 가지고 경상북도 안동을 찾아가는 야마오카와 도모코의 비장미 가득한 한국 방문도 핍진성에까지는 가닿지 못한다.그러나, 이런 약점도 이해 못할 것 없다. 이것 하나만 잊지 않는다면. 전쟁은 짙푸른 바다와 하늘을 나는 갈매기, 아름다운 설원뿐 아니라 인간까지 파괴하는 악(惡)이다.전쟁을 경험한 바 없고, 스스로 반전평화주의자라 생각한 적도 드물지만 ‘호타루’를 봤던 날, 독일 화가 케테 콜비츠가 제2차대전의 포화 속에서 아들을 잃고 그렸다는 판화의 제목이 가슴을 치는 이유는 뭐였을까?“더 이상 전쟁은 없다!” 전쟁을 이기는 유일한 힘은 사랑이라 말하는 ‘애수’미국이 이라크를 향해 ‘충격과 공포 작전’을 시작했던 2003년 3월. TV 화면이 폭격을 생중계하던 새벽.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 한 명이 전화를 걸어왔다.“우리는 인류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조차 상실했다”고, “잿더미로 변한 바그다드는 우리들의 양심이 불타버렸음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그녀 목소리에 차마 ”나는 자고 있어다“고 말할 수 없었다.그리고 다음날. ‘아아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여’를 쓴 시인 김준태는 천년고도 바그다드에서 미 공군기의 폭격에 사망한 아이들의 피 묻은 눈동자를 곡(哭)했다.며칠 후.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철학자 리영희(1929~ 2010)가 사람들 앞에 나섰다. 그리고는 말했다.“전쟁을 멈출 수 있는 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뿐”이라고. “예수를 믿건, 부처를 믿건, 알라를 믿건 우리는 지상에서 사랑을 아는 유일한 존재 인간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전쟁은 과연 인간의 사랑까지도 파괴할 수 있을까? 영화 ‘애수’를 떠올린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을 갖다 붙이더라도 전쟁은 인간을 파괴하고, 인간이 딛고 선 세상을 황폐화시키는 악이다.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의 불행을 강요할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당시 미국이 이라크를 향해 쏘던 미사일과 폭탄,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땅을 공격하는 미사일과 폭탄은 부정할 수 없는 절대악.미사일과 폭탄에는 아이와 여자를 피해갈 수 있는 눈이 달리지 않았다. 전쟁은 인간 안에 숨어있는 악마를 불러낸다. 우리가 경험한 역사는 피 흘리는 목소리로 증언한다. “아무리 좋은 전쟁도 최악의 평화보다 못하다.”누가 무어라 폄하의 말을 하더라도 사랑은 선(善)이다. 설레는 가슴으로 밤새 서툰 솜씨의 시를 쓰게 만들고, 청맹과니에게 세상을 보게 하며, 음치에게 감미로운 세레나데를 읊조리게 하는 사랑은 부정할 수 없는 절대선. 그런데, 절대악 ‘전쟁’이 인간의 유일한 희망 ‘사랑’을 깨뜨린다면? 마빈 르로이 감독의 영화 ‘애수(Waterloo Bridge)’는 바로 이 최악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처참하게 깨진 청년장교 로이 크로닌(로버트 테일러 분)과 발레리나 마이라 레스터(비비언 리 분)의 비극적인 사랑.영화팬들 귓가에 맴도는 주제곡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의 비장미는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흔든다.세계 제1차대전 와중에 젊은 장교와 예쁜 무용수가 서로에게 끌려 사랑에 빠지지만, 전쟁터로 나간 장교는 돌아오지 않고, 지긋지긋한 전쟁과 자신의 삶에 절망해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하는 무용수.하지만, 전사한 줄 알았던 장교는 살아 돌아오고, 무용수는 연인에 대한 죄책감에 달려오는 트럭에 몸을 던진다.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전쟁은 ‘마이라 레스터’의 행복을 강탈해갔다. 비단 그녀뿐일까? 수많은 연인과 식구들의 헤어짐과 눈물, 이별과 죽음을 강제한 게 바로 전쟁이었다.영화를 앞으로 돌려본다.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마이라를 잊지 못하는 로이는 그녀가 남긴 마스코트(Mascot)를 매만지며 슬픈 표정으로 둘이 처음 만났던 자리를 서성인다.전쟁은 둘의 사랑을 온전히 파괴한 것인가? 한 사람의 가슴에서 다른 한 사람을 영원히 추방하지 않는 한 그럴 수 없을 터. 로이의 사랑은 그때까지도 현재진행형이었으며, 전쟁은 결코 사랑을 이기지 못했다.비극의 극단으로 치닫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인간들 가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사랑으로 인해 해피엔딩의 영화처럼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9-27

4만2천평 백일홍 화원 ‘청송정원’서 가을 정취 흠뻑

폭염과 폭우가 사람들을 괴롭혔던 이번 여름.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계절은 세상에 없다. 어느덧 아침과 저녁으론 서늘한 바람이 불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가을이다.기승을 부리던 ‘코로나19 재유행’도 다소 누그러지고 있다. 만산홍엽과 천고마비의 시절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가을이면 누구나 일상의 공간이 아닌, 낯설고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기 마련.산 좋고, 물 맑은 청송군은 청량한 공기를 호흡하며 농촌의 서정을 즐길 수 있는 ‘산소카페’로 이미 명성이 높다. 도시 브랜드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산소카페 청송’은 지역에 썩 잘 어울리는 네이밍으로 평가받는다.바로 그곳 청송은 가을여행에 맞춤한 곳이라는 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게다가 지금은 화려한 색채의 백일홍과 코스모가 방문객들을 반기는 시기라 낭만과 즐거움이 더한다.청송정원의 백일홍단지에서 가을날의 추억을 쌓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아래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산소카페 청송의 랜드마크가 될 백일홍정원청송군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역에 어울리는 맞춤형 관광지를 개발해왔다. 이는 지역의 새로운 볼거리와 관광명소를 만들어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느낌과 쉼, 그리고 치유의 공간을 제공하려는 의지에서였다.이런 의지 끝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산소카페 청송정원 백일홍단지. 여행하기 좋은 시절 가을을 맞아 최근 청송군은 지역사회·지역단체와 마음을 모아 조성한 청송정원 백일홍단지를 무료로 개방한다고 밝혔다.운영기간은 백일홍단지가 개장한 지난 8월 29일부터 오는 10월 31일까지 약 2개월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당초 계획되었던 입장료는 코로나19 장기화에 지친 군민과 관광객들의 자유롭고 부담 없는 방문을 위해 별도 매표 없이 전면 무료로 이용하도록 했다”는 것이 청송군의 설명이다.이에 앞서 청송군은 지난해 7월 주민들과 함께 청송정원 백일홍단지를 국내 최대 규모로 가꾸어 9월과 10월 2개월 동안 약 1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했다. 이에 관광전문가들은 “백일홍정원은 청송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했다”고 평가했다.청송군은 지난해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올해는 벤치 그늘막, 사과터널 등 각종 조형물과 포토존을 추가로 설치해 방문객의 볼거리와 편의시설을 확대하는 사업도 펼쳤다.구역별로 백일홍 색깔을 구분해 다채로운 경관을 조성하고, 주말 음악회와 버스킹 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도 개최함으로써 앞으로 청송정원 백일홍단지를 찾는 방문객의 볼거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이와 관련 윤경희 청송군수는 “지역 주민들과 단체가 협심한 결과 이런 대규모 단지를 성공적으로 조성할 수 있었다”며 “지속적인 관광객 유입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청송정원 백일홍단지를 산소카페 청송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에만 8천 명 넘는 이들이 찾은 청송정원화사함을 자랑하는 백일홍단지는 이미 청송의 최고 관광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청송군 파천면 용전천 일원에 조성된 백일홍 화원 ‘산소카페 청송정원’에서는 여행자는 물론 지역 주민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지역의 새로운 볼거리와 관광명소 조성을 목적으로 코로나19 시대에 다양한 관광수요를 예측하고,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을을 만끽하도록 하기 위해 4만2천 평 규모의 ‘산소카페 청송정원’을 조성한 것.독특한 관광지로서의 면모는 올해도 빛났다. 구역별로 백일홍 색깔을 구분해 다채로운 볼거리를 마련한 것이다.입장료 없이 가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청송정원 백일홍단지의 큰 매력이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8월 29일 개장 이후 지역 주민과 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까지 1만 명이 넘는 관광객과 주민들이 백일홍을 보고 간 것으로 집계됐다.특히 추석 연휴기간에만 8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청송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우뚝 선 백일홍단지의 아름다움을 맛본 것으로 알려졌다.“앞으로도 다양한 각종 행사와 공연을 준비할 계획이니 가을여행을 계획한 분들은 청송을 찾아 신선한 공기와 향기로운 꽃 내음 속에서 주말을 즐기고 갔으면 한다”는 것이 청송군의 바람이다.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 청송으로 커가길실제로 청송군에서는 최근 눈에 띄는 행사가 여러 개 열렸다. 지난 17일에는 청송읍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지역 역량강화와 관련해 ‘2022년 청송 느림보대회’가 개최됐다.이 대회는 ‘걷고 싶은 환경조성, 주민의식 개선을 통한 슬로시티 실현’이라는 사업 취지 아래, 만개한 백일홍을 볼 수 있는 청정 휴양명소인 ‘산소카페 청송정원’에서 열려 이목을 끌었다.참가자들은 ‘산소카페 청송정원’의 걷기코스를 거닐며 가을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었고, 이와 함께 청송의 관광명소인 송소고택, 주산지, 청송정원, 청송사과축제를 주제로 한 부스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즐거움을 누렸다.특히 제시된 미션에 성공하면 스탬프를 받고, 스탬프북을 활용해 코스 완주자에게는 상품도 증정했다.대회에 참석한 이들은 “특정세대가 아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돼 가족과 친구가 어울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이번에 보니 청송군이 가진 아름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걸 알았다. 청송이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로 성장하길 응원한다”고 입을 모았다. ▲꽃과 사람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지는 공간얼마 전 20일에는 ‘산소카페 청송정원-백일홍과 함께하는 음악회’가 열렸다.미스터 트롯 출연자 김희재, 류지광과 미스 트롯 출연자 강혜연, 그리고 김범룡, 우연이, 신계행 등 다양한 장르의 가수와 청송문화원합창단이 출연한 음악회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지친 군민과 관광객들을 위로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했다.“군민들과 관광객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가을의 문턱에 선 청송정원의 만개한 백일홍을 전 국민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마련한 음악회”라는 것이 청송군의 설명이다.청송군의 새로운 자랑거리가 된 청송정원은 조성 단계에서부터 군민들이 함께했고, 지금도 관내 18개 기관과 단체, 지역민들이 구역별로 전담해 정원을 관리하고 있다.걱정과 근심이 많았던 코로나시대의 그늘을 잊고 다시 찾은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청송정원 백일홍단지는 지금 꽃의 아름다움과 사람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지는 곳으로 진화 중이다.만약 올가을에 청송을 찾는다면 백일홍단지와 함께 또 하나의 ‘꽃 장관’과 만나볼 수 있다. 주왕산면 하의리 주왕산관광단지에 활짝 핀 코스모스가 여행자들을 반기고 있는 것.청송군은 주왕산관광단지에 1만6천㎡ 규모의 코스모스 단지를 조성해 지역민과 관광객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여기에 더해 진보면 객주공원(5천700㎡)에도 코스모스가 만개해 사람들의 행복감을 배가시킨다. 가을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각자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사진기를 들어올린다.이와 관련 청송군은 “지역 곳곳에 계절별로 화원을 조성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니, 청송에서 잊지 못할 2022년 가을을 보내시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김종철·홍성식 기자

2022-09-27

붉게 타다 결국 잿빛으로… 2014년 능가하는 최악 상황

소나무재선충병이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경북과 경남은 물론이고 경기도와 강원도 등 서울춘천고속도로를 따라 수도권으로까지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다. 대도시인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등도 감염 확산이 멈추지 않고 있다.녹색연합은 본보 보도 이후 전국 소나무 재선충병 감염 실태 현장조사를 벌여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현장 조사 내용에 따르면 감염 정도가 가장 심각한 곳은 경북 포항∼경주∼울산∼부산 등지로 이어지는 동해안 감염벨트로 확인됐다.특히 경주의 세계유산과 국립공원, 안동의 문화재보호구역 등지에도 붉게 물들어 단풍 든 것 같은 소나무들이 즐비한 것으로 드러났다.서울춘천고속도로와 남양주, 양평, 가평, 춘천 등지와 중앙선 철도 청량리∼서원주 구간에도 재선충병에 걸려 붉게 타들어 가듯이 죽어가는 소나무가 곳곳에서 관찰됐다. 녹색연합은 현재 상황은 소나무 재선충병이 가장 극심했던 2014년 상황을 능가하는 정도라고 밝혔다. □대구 경북 재선충 감염 피해 심각현재 소나무 재선충병이 가장 심각한 경북 포항∼경주∼울산∼부산 등지로 이어지는 동해안 감염벨트는 곳곳이 보기 흉할 만큼 맹폭됐다. 이곳은 동해안을 이동해 보면 도로와 시가지에서 손쉽게 제선충이 관찰도 정도로 감염이 길고 넓게 퍼져 있다. 포항과 경주의 경우 해안선은 물론 내륙의 산지까지 소나무가 단풍든 것처럼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상태다. 산속에 들어가면 지난 겨울에 조사한 감염목을 그대로 내버려 둔 곳도 곳곳에서 확인된다.경주의 경우 세계 유산과 문화재보호구역내에 소나무 재선충병 감염목이 퍼져 있다. 경주 남산은 국립공원이면서 세계 유산인데 남산의 능선과 사면에는 곳곳에 소나무가 재선충병에 걸려 죽어 있다. 감염목들은 잎이 붉게 변하면서 타들어가 회색빛 가지만 남은 채 집단으로 고사했다. 그렇지만 문화재청, 산림청, 경상북도, 경주시, 국립공원공단 등 남산의 소나무와 관련 있는 행정기관들은 모두 손을 놓고 있다. 포항에서 영천을 거쳐서 대구광역시, 고령, 의성, 안동까지 소나무가 분포하는 경북의 주요 도시 곳곳에도 소나무 재선충병이 확산되고 있다. 안동은 세계유산을 비롯해 문화재가 곳곳에 있어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나 소나무 재선충병은 안동 산림 전체로 번지고 있다.  대구와 구미 등지에도 우려 수준을 넘었다. 중앙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 곳곳에서 쉽게 소나무 재선충병의 감염목을 볼 수 있다. 대구광역시는 아파트 단지와 시가지에서도 감염돼 죽은 소나무가 적잖다. 녹색연합은 “포항과 경주를 비롯해 경북의 주요 도시들은 지난 6월부터 산 전체에서 소나무 재선충병 감염목이 확인되고 있었다. 하지만,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대책을 총괄해야 하는 경상북도, 울산, 부산 등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모두 상황을 관망만 했다”며 “세계유산과 국립공원을 이렇게 관리해도 되는지 안타까울 지경이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경남, 강원 등 전국 확산경상남도의 상황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밀양을 중심으로 창녕, 김해, 창원, 진주, 거제, 통영 등 서부 경남 전체의 소나무숲 사이 사이에 재선충병 감염목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비롯해 도시녹지와 주요 산지 곳곳에 재선충이  침범했다. 하지만, 국가적 산지 재해라고 하는 소나무 재선충병 대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치단체는 없다. 녹색연합은 우려스러운 것은 수도권이라고 했다. 경기도 남양주, 양평, 가평, 포천 등지에서 소나무 재선충병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것. 여기에 더해 강원도 춘천과 홍천 등으로 계속해서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수도권에서 강원도 춘천으로 연결되는 중부권 벨트에 소나무 재선충병으로부터 공격당하고 있으나 경기도와 강원도 모두 감염목의 실태조사와 방제에 소극적이라고 밝혔다. 소나무재선충에 밝은 지역의 전문가들은 이런 양상은 올봄부터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소나무는 상록수로 연중 늘 푸름을 유지하는 나무여야 하나 전국 곳곳에서 마치 가을 단풍 든 것처럼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돼 숲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확산이 심각한 광역과 기초 지자체의 산림 당국에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에 나서기에는 현재 무리이고 역부족이라고 했다.  현재 정부마저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데 인력과 예산, 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지자체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소나무 재선충병 대책 소나무 재선충병은 지난 1988년 부산에서 시작돼 2004년 전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그리고 2014년을 전후해 경상북도, 경산남도, 제주도 등의 소나무숲을 위협하며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당시 한해에 200만 그루가 넘는 소나무가 재선충병에 감염됐다. 산림 당국은 소나무재선충병을 국가적 재해로 규정하고 총력 대응을 했다. 2016년을 거치면서 피해목이 줄어는 추세도 보였다. 그러나 2020년을 전후해 다시 피해지역이 넓게 퍼지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소나무재선충병의 조사와 감시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산림청을 비롯 시도와 시군은 소극적이 대응으로 일관했다. 실제 소나무 재선충병 대응시스템이 느슨해지면서 예찰부터 방제, 그리고 평가에서도 누락된 감염목이 갈수록 늘어났다. 특히 정부가 소나무 재선충병을 ‘국가적 산지 재해’로 규정하고 대응을 천명했으나 이런 기조와 달리 시도지사와 시장군수는 소나무재선충병의 대응에서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전국의 주요 소나무숲에서 소나무 재선충병은 활발하게 퍼져갔고 현재 산림이 골병든 상태다. 녹색연합은 지난 1988년 한반도에 감염이 유입된 이래 도로와 철도변 도심 곳곳에서 쉽게 관찰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나 지금은 비일비재하다면서 그 자쳬가 재선충의 현주소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소나무 재선충병에 대해서 이제 근본적 접근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분석했다. 소나무를 지켜야 할 보호구역과 재해 위험이 매우 큰 지역은 사수하되 나머지 소나무숲은 재선충병의 확산을 받아들이고 확산을 인정하는 정책 등 현실에 맞는 대책이 나와야 하고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녹색연합은 “정부가 소나무를 재선충병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면 이렇게 확산을 버려둬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현장의 상황은 ‘정부가 소나무 재선충병 포기 출구 전략을 찾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구심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2022-09-26

가을엔 고품격 관광… ‘천년의 향 송이와 한약우에 빠지다’

봉화군이 주최하고 (재)봉화축제관광재단이 주관하는 봉화송이축제가 오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4일간 ‘송이향에 반하고, 한약우에 빠지다!’라는 슬로건으로 봉화읍 체육공원 및 관내 송이산 일원에서 열린다.올해로 26회를 맞는 봉화송이축제는 지역의 우수 특산품인 한약우를 축제 속에 담아내어 축제의 품격을 한 단계 높였다.봉화군은 깊어가는 가을밤 천년의 향 송이와 한약우 맛을 즐기는 고품격 문화관광축제로 거듭나기 위해 지속가능한 축제방향을 제안하고 봉화군민의 자긍심 고취와 화합의 장을 조성하는 전략으로 올해 봉화송이축제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봉화송이와 한약우를 통해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고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축제장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풍성한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송이 향에 반하다!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송이축제 대표 콘텐츠인 송이채취체험은 축제기간 중 매일 오전 10시, 오후 2시 관내 송이산 일원에서 진행된다.솔향기 그윽한 소나무 숲의 맑은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송이를 직접 채취해 보는 체험은 각 회당 100명씩 선착순 사전접수를 통해 무료로 진행되며 봉화축제관광재단 홈페이지를 참고해 네이버 폼으로 신청 가능하다.전국 최우수 품질의 봉화송이를 직접 보고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는 송이판매장터도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무료 송이 손질터를 마련해 구매한 송이를 손질해서 즉석에서 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500g 이하 단위로 송이 소량 판매로 관광객들의 부담을 줄이고 접근성을 높일 예정이다. □ 한약우 맛에 빠지다!안동봉화축협·봉화한약우 작목회가 주관하는 한약우 홍보 및 판매장터는 축제기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봉화한약우의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한약우홍보관과 맛과 품질이 우수한 봉화한약우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한약우판매관을 만나볼 수 있다.먹거리 장터에서는 관광객이 직접 구매한 송이, 한약우, 버섯 등을 시식할 수 있도록 상차림을 준비한 식당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이곳에서는 손질터에서 직접 손질한 송이와 전국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한약우를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맛있게 구워 먹을 수 있으며 송이라면과 송이국밥 등 송이를 활용한 다양한 먹거리들도 판매해 관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예정이다.또한 송이한약우 골든벨, 송이 한약우 가요한마당 등 송이와 한약우를 소재로 한 다양한 이벤트성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어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도 선사할 계획이다.□ 눈과 귀를 채워주는 다채로운 공연!개막식이 열리는 9월 30일에는 봉화홍보대사 최우진과 나상도, 최연화, 설하윤, 박상철 등 인기가수들이 꾸미는 개막 축하공연이 안동 MBC와 함께하는 공개방송형으로 펼쳐진다. 또 10월 3일 폐막일에는 제16회 봉화군민상 시상식에 이어 박서진, 조은성, 장하온, 주미 등이 출연하는 폐막 축하공연과 화려한 불꽃놀이를 끝으로 봉화송이축제의 대미를 장식한다.특히 개막 첫날에는 봉화군 농산물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지역에서 생산되는 나물과 봉화송이, 한약우를 이용한 오색오미의 맛과 멋이 조화된 대형 비빔밥 퍼포먼스가 펼쳐질 예정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넘쳐나는 볼거리·즐길거리 축제 콘텐츠 풍성!올해는 관광객층 확대를 위해 공식 공연행사 이외 축제 콘텐츠를 더욱 다양화했다.나만의 작품 만들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우당탕탕 키즈랜드 어린이 체험공방’을 비롯해 홀로그램 증강현실로 만나는 언택트 실내 운동 체험 ‘신통방통 홀로그램 디딤체험’과 축제장 방문을 기념할 수 있는 포토존 ‘남는건 사진뿐 포토스팟’ 등 전 연령 방문객이 만족하고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돼 있다.또한 지역 농·특산품의 우수성을 알리고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자 농·특산품 홍보 및 판매장터를 조성하고, 다양한 문화의 이해를 위해 아이부터 어른까지 맞춤형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세계문화체험관을 운영한다.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고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축제기간 동안 매일 4회씩 신·구시장에서 지역예술인들의 감성 버스킹 공연도 열린다.축제기간 동안 진행되는 연계·부대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제39회 청량문화제가 축제기간 동안 함께 열린다. 전국 한시백일장, 삼계줄다리기 재연, 학생 사생대회와 각종 예술작품 전시회 및 체험행사 등 봉화의 전통과 문화를 엮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해볼 수 있다.이밖에도 2022 봉화군 씨름왕 선발대회, 제10회 봉화송이 전국마라톤 대회, 계서 성이성 문화제, 은어공주와 송이원정대 뮤지컬, 청량사 산사음악회 등 지역민들의 화합과 관광객들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축제의 장이 펼쳐진다.한편, 군은 코로나19 재유행에 대비해 축제장 내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의 수시 소독과 축제장 내 생활 방역 물품 비치 등 방역대응 계획을 수립해 관광객들이 안전하게 축제를 즐기고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할 계획이다.박현국 봉화축제관광재단 이사장(봉화군수)은 “코로나19로 인해 3년 만에 개최되는 봉화송이축제가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봉화송이축제에 오셔서 지역의 우수한 농·특산품도 구매하시고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도 즐기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봉화/박종화기자 pjh4500@kbmaeil.com

2022-09-20

에펠탑과 센강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

가본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안다. 프랑스 파리는 ‘낭만’이라는 단어로 요약되는 도시다.거길 찾는 여행자들은 환하게 불 밝힌 에펠탑 아래서 이른바 ‘인생사진’을 찍고, 센 강 위를 유유히 떠가는 유람선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샹송을 듣는다.남녀와 노소를 불문하고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파리. 기자 역시 6년 전쯤 일주일간 파리에 머물 때 어디선가 좋은 향기가 풍겨오는 노천카페에 앉아 순수했던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곤 했다.파리는 또한 영화와 문학의 도시다. 그래서다.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은 일생 한 번쯤은 파리 거리를 목적 없이 떠도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10대와 20대 시절 읽었던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의 문장이 탄생한 곳. 그 작가들이 앉았던 카페에 들어가 서툰 프랑스어로 커피를 주문해보는 치기도 파리에선 부끄러울 게 없을 것 같다.영화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프랑수아 트뤼포와 한국 영화팬들에게도 익숙한 뤽 베송과 레오 카락스 감독 또한 파리가 주요 활동무대였다. 영화 ‘퐁네프의 다리’에 등장하는 장면을 흉내 내는 연인들이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물하는 도시.빛나는 예술만이 아닌 화려하고 맛있는 요리, 세련된 건축물,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박물관들, 홍세화가 말한 바 ‘톨레랑스(관용)’ 역시 매력적인 프랑스 파리의 관광자산이다. □ 낮보다 밤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거대함 속에 미세한 매력을 곳곳에 숨긴 파리를 ‘나무위키’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프랑스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경제, 문화, 정치, 외교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도시다.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의 수도이며, 런던에 이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등과 함께 유럽에서 손꼽히는 금융 허브다. 게다가 파리는 오랜 역사에서 비롯되는 예술과 패션과 유행의 도시로 첫 손에 꼽히는 곳이며,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대표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별명이 빛의 도시다.”여행자들에게 안전은 매우 중요한 문제. 위험한 나라나 도시는 제아무리 매력적이라 해도 선뜻 방문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파리는 어떨까.관광 안내책자가 ‘이 지역은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 곳만 피한다면, 파리의 어떤 거리를 걸어도 그다지 큰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몽마르트르 언덕과 루브르 박물관 등 유명 관광지에선 좀도둑 정도를 조심한다면, 미려한 조각품 같은 건물들이 즐비한 파리 어느 곳이건 마음 놓고 다녀도 무방할 듯했다. 환한 햇살 아래 만나는 파리는 재론의 여지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개인적 체험에 근거해 말하자면 ‘그 도시’ 파리는 낮보다 밤이 더 매혹적이다.파리에 도착한 첫날. 저물 무렵 에펠탑을 보러 갔다. 우편엽서에 인쇄된 사진과 그림으로 수백 번 봤기에 낯설지 않았지만, 실제로 대면하니 그 크기와 높이가 굉장했다.어둠이 조금 더 짙어지자 연한 주황색 조명이 에펠탑을 환하게 밝혔다. 인종과 국적이 각기 다른 연인과 관광객들이 탑 아래서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 여러 번 연출됐다. 말 그대로 ‘낭만적’이었다. 그런 분위기라면 없던 사랑도 생길 것 같았다.프랑스관광청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제작된 첫 삽화엽서의 앞면을 장식한 게 바로 에펠탑이었다고 한다. 작가의 이름을 딴 리보니(Libonis) 엽서는 우체국이 있던 에펠탑의 2층에서 제작됐다고.수십만 부가 인쇄된 그 엽서로 인해 프랑스 전역에서 가족과 연인들을 이어주는 ‘엽서 열풍’이 불었다고 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에펠탑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 식어버린 연인들의 애정을 다시금 부활시키는 병원 역할까지 하고 있는 듯.파리에서 보낸 첫 밤. 기자를 포함한 한국인 셋과 아랍인 하나가 모여 에펠탑 인근 소박한 식당에서 포도주를 곁들여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니나 다를까. 빵맛이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오밀조밀 파리의 맛집이 모여 있는 고풍스런 동네와 거길 지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 이파리….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가 주연한 영화의 제목이 절로 떠올랐다.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 센 강 유람선서 맞이한 ‘바람의 맛’은…수많은 소설가와 시인, 화가와 음악가 등이 사랑한 도시 파리는 그 외 유명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한때 영국의 왕세자비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서른여섯이란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다이애나 스펜서도 파리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파리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수 방문코스 중 하나인 센 강 유람선 선착장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사망한 터널에서 가깝다. 비극과 낭만이 겹치는 미묘한 공간이다. 물론 프랑스 외 다른 나라에도 강물을 가르며 떠가는 유람선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센 강 유람선은 그 위상이 여타 유람선을 압도한다. 그 이유가 뭘까? ‘두산백과’는 유람선이 오가는 센 강의 매력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파리 센 강변에는 프랑스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서 깊은 건축물과 현대에 지어진 다양하고 독특한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낸 이 조화는 파리의 역사와 그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센 강은 퐁네프와 퐁디에나를 비롯해 30여 개의 크고 작은 다리로 연결돼 있다.”센 강 유람선에 올랐던 날이 아직 기억에 선명하다. ‘예술품’이라 부르는 게 더 어울릴 다리 아래로 유람선이 떠갈 때 본 고딕양식의 성당들, 까마득한 중세시대에 축조된 건물들이 수백 년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고 우뚝 선 모습들은 파리가 여행자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어떤 관광객은 유람선에 오르면서부터 내릴 때까지 그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고, 또 다른 취향의 여행자는 그저 말없이 검은 강물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강의 끝에서 불어온 바람이 코끝을 간질였다. 유람선에 오르기 전 마신 맥주 두어 병의 취기가 갑자기 몰려왔고, 요절한 왕세자비의 얼굴이 물결 위에 그려졌다.인간의 삶 속에 존재하는 ‘낭만’과 ‘비극’이란 대조적인 두 단어를 곰곰 생각하니, 바람의 맛이 달콤하면서도 쓰디썼다. □ 거리에서 만난 파리의 예술가들예기치 않게 찾아와 오랜 기간 사람들을 괴롭힌 코로나19의 광풍은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의 숫자를 줄였고, 그 도시의 매력에 목말라했던 여행자 역시 줄어들게 만들었다.프랑스도 다른 나라들과 다를 바 없이 ‘코로나19 사태’로 큰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어떤 비극에도 끝은 있는 법. 얼마 전부터는 파리 시내와 관광지가 다시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한 여행사는 최근 코로나19가 진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10월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을 조사·발표했다. 그 조사에 따르면 “추석 연휴와 개천절, 한글날 등 대체 휴일이 있는 올 가을의 경우 유럽과 지중해, 튀르키예 등 장거리 여행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10월 한국을 출발하는 해외여행에서 예약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지역 1위는 서유럽. 알다시피 프랑스 파리는 서유럽의 중심지이기도 하다.파리를 여행했던 때. 쉽게 잊히지 않을 몇몇 순간을 경험했다. 지하철역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던 악사가 들려준 맑고도 구슬픈 멜로디, 몽마르트르 수많은 무명화가들의 화사한 붓질, 개선문 건너편 광장에서 바이올린을 들고 환하게 웃던 소년…,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는 온갖 종류 악기를 연주하는 거리의 예술가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다시 해후할 날을 기다리는 가을의 초입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9-20

폭우 때마다 넘치는 냉천… ‘치수용 댐’ 건설 필요하다

‘치수(治水, flood control)’란 말 그대로 물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고대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에게 있어 ‘치수’란 나라를 책임지는 자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이번 태풍 ‘힌남노’로 포항 곳곳에서 저지대를 중심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는데, 가장 큰 피해가 집중된 오천읍 일대의 침수 원인으로 냉천의 범람이 꼽힌다. 강의 범람이란 곧 ‘치수’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냉천의 범람 원인으로는 상류의 홍수조절기능 부재와 정비 사업으로 인해 줄어든 강폭 등이 꼽힌다. 이러한 치수 실패를 계기로 지역에서는 결론적으로 ‘치수용 댐’의 역할과 필요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지리적 홍수 취약 도시, 포항포항은 대륙과 해양성 기후의 교차점에 위치해 지리적으로 홍수에 취약한 태생적 한계가 있는 도시다. 해마다 여름철 호우가 집중되는데 특히 남구 오천읍 신광천과 냉천이 홍수에 취약하다.냉천은 남구 오천읍 무장산을 좌측에 두고 진전리를 지나 오천으로 내려오고, 신광천은 운제산과 무장산 사이 오어사 앞 오어지에 모인 물이 흐르는 천이다. 신광천은 포항운전면허시험장을 거쳐 냉천으로 합류한다.냉천은 유로 연장 18.95㎞로 경사도는 1/82∼1/88이다. 태풍 내습 시 동해 해수면 상승과 배수불량 등의 문제가 있어 제방 범람 및 유실이 자주 일어나는 구조다.유로 연장 12.5㎞ 및 경사도 1/12∼1/59인 신광천 역시 길이가 짧고 상류 경사가 급해 단시간 내 많은 유량이 하천으로 유입되는 문제가 있다.이러한 문제점으로 냉천의 범람에 따른 피해는 집중호우가 발생할 때마다 일어났다.2012년 태풍 산바 및 집중호우 당시 오천읍에 644㎜의 강우가 내렸고, 농경지 153㏊ 침수 및 신광천 제방 30m 붕괴 등의 피해가 발생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2014년 집중호우로 포항지역 평균 167.9㎜의 강우가 내렸을 때에도 신광천의 제방은 또 붕괴했다. 2016년 태풍 차바 내습 당시에도 오천읍에 200㎜(200년 빈도)의 폭우가 내려 냉천이 범람하고 침수가 발생했다.이렇듯 오천읍이라는 대규모 시가지를 관류해 동해바다로 유입되는 신광천 및 냉천은 홍수로부터의 취약성을 여실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규모 홍수 피해 예방을 위해 유역 내 홍수조절능력 확충이 절실한 이유다. 더욱이 신광천이 합류하며 이어지는 하류지점은 대규모 도시지역으로, 인구가 밀집해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진전지와 오어지의 치수능력 부족 유역 내 위치한 진전지(식수전용) 및 오어지(농업용)의 홍수조절 기능이 전혀 없다는 점도 밝혀져 충격이다. 진전지와 오어지는 각각 냉천과 신광천의 상류에 위치해 있다. 언제든지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있어 관계기관 간 유기적인 협의가 필요하나 오어지 홍수조절 기능이 없는 사실이 드러나 제대로 된 업무협조가 되는지도 의문으로 떠오르고 있다.냉천은 범람도 문제지만 그동안 가뭄에 있어서도 심각한 취약성을 보여왔다.따라서 진전지(식수전용)와 오어지(농업용)는 가뭄을 대비하는 역할에 더 무게가 실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실제 포항시 미급수 인구의 70% 이상이 남구 지역에 분포하고 있고 진전지가 식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데, 진전지(180만t)만으로는 원수가 부족해 식수공급 중단 피해가 빈번하다. 이에 가뭄 발생 시 진전지 원수 부족으로 생활용수 제한 급수가 자주 발생했고, 물공급 안정성이 불확실한 오어지에서 비상 용수를 공급받기도 했다. 그러나 오어지 또한 원수 부족(50% 미만) 상태가 되면 물을 보내줄 수 없어 남구지역은 식수 공급 중단 사태가 늘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는 태풍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진전지는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오어지도 지난 9월 3일 태풍을 대비해 방수문을 개방할 당시 저수율이 30%가 채 되지 않았던 점 등에서도 나타난다.우기에 편중된 강우 패턴으로 냉천 중·하류의 하천 건천화가 심각하다는 것 역시 짚어볼 점이다. 포항관측소 월별 평균 강우량은 최대 215㎜(7월), 최소 28㎜(12월)로 7.7배 이상 차이가 난다. 냉천 역시 태풍이 오기 전 물이 거의 메말라 바닥을 보였었다. 이렇듯 평·갈수기 냉천의 생태계는 파괴됐고, 하천 생태계 유지를 위한 하천유지유량 공급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냉천 유역 특성상 타 유역에서 물을 가져와 유량을 확보하는 방안이 불가능해 신규 댐 건설을 통한 하천유지유량 확보가 필요했으나, 가뭄과 홍수를 조절할 기능을 모두 수행할 ‘항사댐’의 건설은 6년째 표류 중인 상황이다.임시방편으로 냉천 정비 사업을 포항시에서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재난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냉천 정비 사업이 피해를 더욱 키웠다는 주장도 나온다.포항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취수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냉천 고향의 강 정비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으로 시는 예산 245억4천900만원을 투입해 포항시 남구 오천읍 진전저수지에서 동해면까지 8.24㎞ 구간의 하천을 재정비했다. 이후 포항시는 2020년까지 1.8㎞ 구간의 냉천 하류를 재정비했고, 산책로와 조경, 운동기구 등 조성작업을 목적으로 18억6천만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즉 취수 안정성과 더불어 ‘냉천을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되돌리겠다’는 목표 아래 264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공사를 진행했지만, 냉천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경 사업은 오히려 냉천의 강폭을 좁게 해 이번 태풍에 의한 범람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하류로 갈수록 강폭을 넓히는 것이 하천 정비의 기본인데, 냉천 정비는 이와는 반대로 진행된 것이다. 그래서 향후 복구에 있어서 냉천 정비의 방향성이 원점부터 재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항사댐 건설냉첨 범람의 해결책으로는 결국 ‘항사댐 건설을 한시바삐 완료해야 한다’에 방점이 찍힌다. 항사댐은 이강덕 시장이 처음 당선된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으나 중앙정부에 발목이 잡혀 현 시점까지 계속 표류 중이다. 이 사업은 오어지 상류인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에 유역면적 6.8㎢, 총저수량 476만㎥, 유효저수량 369만㎥, 저수면적 0.286㎢의 높이 50m·길이 140m의 댐을 건설하는 것이다. 항사댐이 건설되면 홍수조절용량 75만9천㎥, 용수공급량 283만㎥/년으로 홍수대비와 가뭄대처 기능을 모두 수행해 포항의 치수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항사댐은 2016년 10월 국토부 및 경북도의 ‘댐 희망지 신청제 시행’ 통보에 따라 포항시가 주민설명회에서 참석자 전원 찬성을 이끌어내며 2017년 3월 댐 희망지로 신청을 했다. 하지만 물관리 일원화를 위해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업무가 이관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좀처럼 사업이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항사댐이 건설되면, 75만9천㎥의 홍수조절용량 확보로 신광천 하구 도심지 홍수조절 능력이 확충돼 홍수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또 200년 빈도 홍수량 기준 신광천 하구의 경우 최대 22% 저감(505㎥/s → 393㎥/s)이 가능해 이상기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비상용수 확보로 가뭄에 대응하기도 한결 수월해진다. 연 144만㎥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오천·동해·장기 주민의 생활용수 불안감을 크게 해소할 수 있다. 안정적 하천유지유량 공급으로 하천 생태복원 및 수질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항사댐 건설이 미뤄지면서 소는 소대로 계속 잃고 외양간은 외양간대로 내버려두는 상황의 반복이다.이번에 포항은 태풍 힌남노로 엄청난 데미지를 입었다.또 다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역량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현 시점에서 항사댐 건설은 그 대책의 정점에 있다. /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2022-09-18

자연과 문화 어우러진 신도시… 동그라미 길 위에 행복이

세종시는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도시 곳곳에 매력적인 관광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월에 개통한 독특한 모양의 금강보행교를 비롯해 국내 최초의 도심형 식물원인 국립세종수목원, 식물원과 동물원이 함께 있는 베어트리파크까지 볼거리가 가득하다. 가을의 문턱에서 도심 속에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세종으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세종의 상징이 된 금강보행교세종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국내 최장 보행교인 ‘금강보행교’가 3년의 공사 끝에 지난 3월에 개통됐다. 금강보행교는 원형의 다리가 한글 ‘ㅇ’의 모양과 닮아서 ‘이응다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 1446년을 기념해 교량의 길이도 1천446m로 제작했다. 다리 위에도 ‘뿌리깊은 나무’를 테마로 조성한 조형물, 한글 열매가 달린 나무 조형물 등 세종대왕 업적과 관련된 여러 조형물을 설치했다. 금강보행교는 ‘2022년 올해의 토목구조물’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금강보행교는 복층 구조인데 1층은 자전거 전용, 2층이 보행자 전용이다. 보행자 전용 다리는 폭이 12m나 된다. 무리 지어 걸어도 넉넉하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여기서 강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고 1층으로 내려가 자전거도 탄다. 자전거는 쉽게 구할 수 있다. 주변에 배치된 공공자전거 ‘어울링’을 이용하면 된다.다리 주변에는 물놀이시설, 낙하분수, 익스트림 경기장 등이 들어서 있다.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해 현실 이미지나 배경에 가상의 이미지를 추가해 보여주는 ‘가상현실 기술 AR망원경’도 설치했다. 다리 중간에 있는 흰색의 인공나무는 금강보행교의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빛의 시소’, ‘숲속 작은 연주회’, ‘뿌리깊은 나무’, ‘눈꽃 정원’, ‘빛의 해먹’같은 조형물도 눈을 즐겁게 만든다. 보행교 북측에는 높이 15m의 전망대와 클라이밍 체험시설, 익스트림 경기장이 설치돼 있다. 금강보행교는 해가 지면 가장 빛난다. 해 질 무렵이면 경관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고, 깜깜한 밤이 되면 오색조명 빛의 축제가 시작된다. 금강보행교는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심야와 새벽 시간대는 안전사고 등을 막기 위해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일몰 이후부터 밤 11시까지는 금강보행교 야경을 볼 수 있다. 도시의 불빛과 금강을 비추는 빛이 어우러진 또 다른 볼거리다.인스타그램 등에 노출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자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는 이 다리를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했다. 덜 알려졌지만 인기 관광지가 될 공산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사계절 온실 갖춘 국립세종수목원2020년 문을 연 국립세종수목원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 최초의 도심형 수목원인 국립세종수목원은 축구장 90개 규모(65㏊)에 사계절 온실을 갖추고 있다.국립세종수목원에서는 2천453종 161만 그루의 식물을 관람할 수 있다. 핵심 볼거리는 국내 최대 유리온실인 ‘사계절 전시 온실’이다. 꽃잎 세 장이 달린 붓꽃 모양으로 지어진 사계절 열대온실은 꽃잎 한 장마다 열대온실, 지중해온실, 특별전시온실이 자리한다. 동선에 따라 지중해온실로 먼저 발길을 옮겼다. 32m 높이의 전망대가 있는 지중해식물 전시원에는 물병나무, 올리브, 대추야자, 부겐빌레아 등 228종 1천960그루의 식물이 심어져 있다. 지중해온실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나무. 아프리카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봤던 것처럼 우람하지 않다. 작고 연약한 모습이 ‘어린 왕자’ 속 바오밥나무와 더 가까운 것 같다. 지중해온실 한쪽에 있는 올레미소나무도 이채롭다. 올레미소나무는 중생대 백악기까지 살다가 멸종된 줄 알았으나 1994년 호주에서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공룡시대부터 살았던 올레미소나무에서 최근 화사한 꽃이 피었다. 꽃을 보니 수억 년 전의 시간과 조우한 느낌이다. 지중해온실 한가운데는 스페인 알람브라궁전 모양을 한 정원이 인증샷 명소로 자리 잡았다.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빨간색 부겐빌레아도 지중해온실에서 꼭 봐야 할 수목이다. 빨갛게 물든 건 꽃이 아니라 잎이다. 작고 수수한 꽃 대신 화려한 잎으로 벌과 나비를 유인하도록 진화한 것이다.열대온실에 들어서니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5.5m 높이의 관람자 데크 길을 따라가면 나무고사리, 알스토니아, 보리수나무 등 437종 6천724그루의 열대 식물을 볼 수 있다.열대온실을 둘러보며 알게 된 것은 우리가 즐겨 먹는 열대과일이 흔히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과일 중 하나인 바나나는 나무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해살이풀에서 자라는 열매다.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 받는 아보카도는 인간이 아니었으면 멸종했을지도 모르는 식물이라고 한다. 아보카도 열매를 통째로 삼켜 씨를 퍼뜨려주던 매머드 같은 대형 초식동물이 멸종하면서 아보카도 역시 멸종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우연히 아보카도를 먹은 인간이 그 맛에 매료돼 대량 재배하면서 멸종을 면하게 된 것이다.열대온실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화려한 식물이 많기도 하지만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을 볼 수 있어서다. 파리지옥을 비롯해 끈끈이주걱, 사라세니아 등 여러 종의 식충식물이 전시돼 있다. △역사적 이야기 숨은 후계목정원 이채열대지방 휴양지마다 피어 있는 야자수도 종류가 다양하다. 베트남, 중국의 우거진 숲에 자생하는 생선꼬리야자는 마치 물고기 꼬리처럼 가지가 갈라지고 뾰족한 것이 특징이다. 인도네시아 전통주택 재료로 사용되는 락카야자는 줄기와 잎자루가 립스틱처럼 붉은색을 띠고 있어 ‘립스틱 야자’라는 별명이 붙었다.열대온실엔 국내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식물도 자란다. 강렬한 노란색 꽃이 아름다운 황금연꽃바나나와 하와이무궁화 종이 모여 있는 곳에는 빨간 산호히비스커스 꽃이 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향수 샤넬 넘버5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일랑일랑도 꼭 찾아봐야 할 식물이다. 일랑일랑은 필리핀 고유 언어인 타갈로그어로 ‘꽃 중의 꽃’을 의미한다.후계목정원도 이채롭다. 정이품송 2대 자손목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유명한 나무의 자식이나 손자뻘 나무들을 옮겨놓은 곳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뉴턴의 사과나무 후계목이다. 1665년 아이작 뉴턴은 영국 켄싱턴의 집 뜰에 앉아 있다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뉴턴의 사후 전 세계 대학과 식물원 연구센터의 요청에 따라 이 사과나무의 후손이 만들어졌고 여러 나라에 퍼져나갔다. 국립세종수목원에 있는 뉴턴의 사과나무는 3대손이다. 뉴턴 사과나무의 증손자인 셈이다. 같이 가볼 만한 곳△수목원과 동물원이 같이 있는 베어트리파크베어트리파크도 재미있는 산책공간이다.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다.베어트리파크는 수목원이지만 이름처럼 반달곰과 여러 동물들을 함께 구경할 수 있다. 수목원이자 동물원인 셈이다.파크 안에서 반달곰이 뛰어놀기도 한다. 꽃사슴동산도 있다. 들머리의 연못에는 비단잉어가 물살을 헤치고 다닌다. 나무만 있는 수목원보다 분위기가 활기차다.베어트리파크에 자생하는 꽃과 나무는 1천여 종, 40만 점이 넘는다. 5개의 잎을 가진 오엽송 소나무, 크리스마스트리로 잘 알려진 독일 가문비나무 등 흥미로운 나무들이 수두룩하다. 산수화에서 볼법한 풍경을 축소한 듯 조경을 한 ‘만경비원’도 볼 만하다.호접란, 열대나무, 괴목, 고무나무 분재 등이 전시돼 있다.베어트리정원은 좌우대칭 구조의 입체적 조형미가 아름답고, 향나무와 소나무로 둘러싸여 포근한 느낌이 든다.하계정원은 꼭 봐야 한다. 주황색 문을 열면 태고의 풍경이 펼쳐진다. 죽은 향나무를 타고 오르는 능소화 넝쿨들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최병일 작가

2022-09-15

“3년 만에 ‘대면축제’로 귀환 ‘문경오미자축제’서 만나요”

문경오미자가 세계 최고로 꼽히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생산자협회를 중심으로 한 청정제품 생산과 우수한 기술연구 시스템, 가공산업에 대한 당국의 지원, 업체들의 자생력이 그것이다.오미자생산자협회는 친환경 오미자를 생산하기 위해 뭉친 생산자 단체로 오미자 가공제품에 질 높은 원료를 공급하는 주역이다.문경의 오미자연구기반은 당연히 다른 지역에서는 쫓아올 수 없는 수준으로 친환경미생물센터, 토양검정실, 오미자연구소, 친환경오미자대학 등 다양하게 운영된다.특히, 문경시농업기술센터가 운영하는 가공지원센터나 향토음식학교는 새로운 오미자 음식 개발과 가공제품의 테스트 등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실제적으로 문경오미자 가공산업의 산파역을 한 곳이다.문경오미자축제가 오는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동로면 금천둔치에서 개최된다. 국내 유일 오미자특구 도시, 전국 일등 오미자의 고장, 문경시의 대표 농산물 축제인 문경오미자축제가 3년 만에 현장에서 대면축제로 개최된다.문경오미자축제추진위원회(위원장 이덕재)는 지난 8월 25일 호계면 문경로컬푸드문화센터 2층 회의실에서 축제추진위원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2년 문경오미자축제 추진위원회를 개최했다.추진위원회는 올해로 18회를 맞은 문경오미자축제를 오미자 집중출하시기인 오는 9월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동로면 금천둔치(동로면 적성리 525-11번지 일원)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다섯가지 맛의 비밀, 문경 오미자!’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에서는 시중가격 1만 2천원/kg의 생오미자를 축제장에서 약 9% 저렴한 가격인 1만 1천원/kg에 특별 할인판매 한다.또한, 오미자 농·특산물 직거래장터, 오미자파우치 나눔 행사, 오미자청 담금 체험 등 풍성한 전시, 체험 행사 등을 중점적으로 준비 중에 있다.문경오미자 전시홍보관과 오미자 미각체험관에서는 오미자를 재료로 만든 다양한 가공품과 요리를 체험할 수 있다.아울러 최근 미스터 트롯으로 인기를 끌었던 정동원, 남승민과 전국 노래자랑 인기 초청가수 최석준 등 유명가수들을 초청해 수준 높은 공연을 구성해 축제장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킬 전망이다. “농가와 참여자 모두가 만족하는 축제 만들 것”▒ 신현국 문경시장 인터뷰-오미자 축제 개최 소감은?△지난 시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비대면 축제로 진행됐던 문경오미자 축제가 3년만에 온전한 대면축제로 개최됩니다. ‘다섯가지 맛의 비밀, 문경오미자!’라는 상징성있는 주제어로 다양한 체험행사와 판매행사, 그리고 공연행사가 함께 어우러져 진행됩니다.신맛, 단맛, 매운맛, 쓴맛, 짠맛 5가지 맛을 모두 갖고 있는 ‘오미자’는 동의보감을 비롯한 옛 문헌에서 면역력과 원기를 북돋아주고 기관지와 시력강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지난 1990년대부터 백두대간에서 자생하고 있던 야생 오미자의 시범 재배가 성공을 거두며 급속한 성장을 일궈온 ‘문경오미자’는 현재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오미자로 자리잡고 있습니다.-문경 오미자의 현황은 어떤가?2000년대 들어 ‘문경시농업현대화사업’과 ‘문경오미자클러스터 구축사업’을 통해 본격 육성되었고, 지난 2006년 ‘문경오미자산업특구’로 지정되어 연구기반시설인 ‘문경오미자 연구소’와 관광객들을 위한 ‘문경오미자테마공원’이 상시 운영되고 있습니다.무엇보다도 ‘문경오미자’는 오미자 농가(생산자 조직)와 문경시(지자체), 가공업체(기업체)를 주축으로 하여 생산·가공·판매의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최초로 오미자를 이용한 가공식품 및 관련 제품들을 생산하면서 오미자 차, 오미자 원액, 오미자 즙, 오미자 청, 오미자 김, 오미자 막걸리, 오미자 와인, 화장품 등 다양한 형태로 판매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오미자 음료의 세계화라는 주제로 ‘FOODEX JAPAN 2018’의 참가로 수출시장 개척, 오미자 와인의 평창올림픽의 공식 만찬주 선정, ‘스타벅스’와의 콜라보 오미자 음료 출시등 판매 사업다각화로 보다 쉽게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저를 비롯한 축제 구성원 모두가 설렌 마음으로 막바지 축제 준비 중입니다. 오미자 본산지, 문경시 동로면의 맑은 가을 날씨 아래 개최되는 ‘문경 오미자 축제’를 많은 분들이 방문하여 다양한 오미자의 변신을 직접 확인하고 맛보고 즐기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축제의 특징과 추후 축제 운영 방향은?△제가 시정운영을 위해 세운 다섯 가지 원칙(긍정, 실용, 친절, 스마일, 소통)에 따라 ‘축제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투자’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농가와 참여자 모두가 만족하는 축제를 기획하였습니다.오미자 주산지이자 국내 유일 오미자 특구도시인만큼 크고 작은 기획 모두가 ‘문경 오미자’의 위상에 맞게 전국 최고, 최대 규모로 열리게 되며, 특히 행사를 빛내줄 축하공연도 인기프로그램 출신의 대형가수를 섭외하여 전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축제를 찾아오실 것으로 예상됩니다.코로나19에 따른 경기 불황과 물가상승으로 모두가 어려운 와중에도 ‘문경 오미자’의 본연의 강점을 적극 활용하고 체험·판매행사의 완성도를 높여 성공적인 축제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였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추후 우리시에서 개최하는 가을 축제(사과, 한우) 또한, 최고를 지향하며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기회로 만들어 문경의 경제활성화와 새로운 성장 동력원을 구축하는데 앞장 설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문경/강남진기자75kangnj@kbmaeil.com

2022-09-13

성큼 다가선 가을, 책과 함께 고요한 사색 속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명절에 식구들 만나기도 어려웠던 지난해와 지지난해.다행히 ‘사회적 거리두기’가 대폭 완화된 올해 한가위엔 2년 넘는 시간 동안 소원했던 친척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그간의 소식들을 전하며 정담을 나눴다.명절을 앞두고 포항 등 경북 일대를 덮친 태풍이 많은 수의 사상자를 내고, 재산 피해도 컸다는 건 안타까운 소식이다.온전히 추석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이재민들에겐 앞으로도 위로와 온정의 손길이 필요할 듯하다.인간의 삶에서 수난과 고통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어떤 고난도 함께 헤쳐 나가고자 하는 연민과 나눔의 마음이 있다면 극복이 불가능하지 않을 터.어쨌건 중단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가을이 왔다. 책을 읽는데 시간과 공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지만, 푸른 하늘이 높아지고 아침과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기시작하는 9월 중순은 그 어느 때보다 독서하기 좋은 시절. 아래 소개하는 3권의 책을 친구 삼아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을 맞이하길 권한다. 소설가 김별아 소설가 김별아와 경주 월성 산책 어때요?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고, 조선 여성 3부작으로 불리는 ‘채홍’ ‘불의 꽃’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등을 발표하며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은 김별아가 신간을 출간했다. ‘월성을 걷는 시간’.책엔 오랜 시간 계획을 세워 경주 월성 일대를 직접 돌아본 김별아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월성을 포함한 신라 역사 이야기가 실렸다. 여기에 현재 경주에서 살아가는 이들과의 만남도 담아냈다.소설가 김별아는 경주의 진면목을 찾기 위해 지난 2019년부터 최근까지 경주 월성과 주변 지역을 여러 차례 답사했고, 서라벌을 근거지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산문집 ‘월성을 걷는 시간’의 일부 내용은 ‘경북매일’에 연재되기도 했는데, 이번 책은 그 내용을 보완하고, 추가적인 취재를 통해 보다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더했다.책에선 ‘조심스레 얼굴을 드러내는 역사의 속살’이라는 부제를 단 월성 이야기를 시작으로, 고문헌인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등에 기록된 월성과 그 주변 유적들에 대한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전개된다.경주 중앙에 위치한 신라시대 궁궐이었던 월성은 그 안에 갖가지 사연과 수많은 유물을 지니고 있는 한국 역사의 보물 같은 공간이다.김별아는 꼼꼼한 사전 취재와 여러 차례의 현장 답사를 통해 그곳을 독자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만들고 있다. 책을 읽노라면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져 마치 소설가와 월성 주변을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김별아는 보다 정확한 정보와 역사 지식을 전달하고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 월성 발굴 작업반장 등도 만났다.‘개의 이빨처럼 맞물려 있던 시절’이란 글에서는 백제와 고구려의 궁궐은 신라와 어떻게 달랐는지도 확인해 볼 수 있다.책을 펴낸 출판사는 ‘한해 방문객 수만 1천270만 명이 넘는 도시 경주. 한국 최고의 역사·유적 도시로서 수학여행의 단골코스이자, 힙한 황리단길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경주가 품고 있는 역사와 공간적 의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고 묻는다. 의미 있는 질문이다.이와 관련 김별아는 책의 서두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경주로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설렌다. 신라와 서라벌에 대해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아는 듯하지만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른다. 그리하여 월성이라는 비밀의 열쇠를 풀고 경주로 향하는 마음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과 여전히 모르는 것들 앞에 달떠 두근거린다”고 썼다.신라의 역사와 경주 사람들에 관한 애정이 담긴 이 말로 미루어 보자면 김별아는 월성과는 또 다른 ‘신라’ 혹은 ‘경주’ 이야기로 독자들 곁에 돌아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여전한 상처 ‘세월호 아이들’을 위로하다기자가 아는 서성란은 성실한 작가다. 읽고 쓰는 것에 굴곡이 없다. 시종일관 무언가를 읽고 있으며, 항상 새로운 소설을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1996년 중편소설 ‘할머니의 평화’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온 서성란은 20년 넘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읽고 쓰는 것으로 삶을 시종했다. 특별한 다른 취미가 없다. 어찌 보면 문학을 향한 ‘무서울 정도의 성실성’이다.오늘날, 바로 지금 여기의 문제에 문학적 촉수를 뻗어온 소설가 서성란은 ‘모두가 사라지지 않는 달’ ‘풍년식당 레시피’ ‘쓰엉’ ‘마살라’ 등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해왔다.얼마 전 오랜 시간의 준비 끝에 출간한 ‘달 아주머니와 나’ 역시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연장선에 서있는 것으로 이해된다.서성란의 새 책은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은 ‘세월호 희생자’를 다룬다.“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기 위해 추모의 문학작품을 내지만, 이 소설은 단지 죽음을 위로하는 ‘추모’의 작품인 것만은 아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애도하기 위해 표현하는 슬픔이나 안타까움의 이야기가 아니라 죽은 자가 일정한 죽음의 시간을 지나며 직접 이야기하는 소설”이라는 게 출판사의 설명. 직접적으로 그날의 비극적인 죽음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아래와 같은 서성란의 문장을 읽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어린 세월호 희생자들이 떠오른다.‘열여덟 봄은 열일곱 봄과 다르지 않았다. 열여섯, 열다섯에도 봄은 그럭저럭 무심하게 흘러갔다. 열네 살의 봄은 여느 해와 달랐다. 엄마가 떠났으니까 말이다.’- 위의 책 9페이지 일부 인용.‘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텐데도 아버지는 말을 아끼고 감정을 절제하면서 우물거린다. 나는 깊은 상념에 잠겨 길게 한숨을 내쉬는 아버지를 달래주지 못한다.’-위의 책 45페이지 일부 인용.이 가을. 아프지만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와 제대로 만나고 싶은 독자라면 ‘달 아주머니와 나’를 펼쳐보면 어떨까. 권경률 작가 우리가 몰랐던 ‘고려 장수’ 김종연역사는 승자의 행적만을 기록한다. 그건 동서양과 고금(古今)이 다르지 않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를 모르는 한국인은 드물다. 그러나, 그에게 맞서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고려 장수 김종연의 이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하다.포항 출신의 작가 권경률의 책 ‘모함의 나라’는 실제 역사에서는 패자였지만, 그 위상과 가치의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김종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김종연은 고려 우왕 때 수차례 왜구를 토벌하는 공을 세운 장수다. 1388년에는 남원과 구례에서 왜적과 싸워 이겼고, 1389년엔 쓰시마를 정벌해 고려인 포로들을 구출하기도 했던 인물.그러나, 그런 공적이 있었음에도 모함으로 인해 옥에 갇혔다. 권경률은 김종연이 겪은 옥고가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방해하는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모함의 나라’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고려 말 40년 동안 이어진 왜구와의 전쟁. 왜구 토벌전에 헌신하고 나라와 백성을 지킨 장수들은 역성혁명을 추진한 이성계 일파의 모함에 쓰러져갔다. 고려를 수호한 무인들은 어떻게 잊혔을까? 역사는 과연 정의로운가?” “이 책은 모함의 희생자로 보이는 실존 인물 김종연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고려 말 왜구 전쟁과 왕조 교체기의 권력투쟁을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 출판사의 이어지는 부연.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책의 1부와 2부에선 고려를 멸망에 이르게 한 왜구의 실체를 규명하며, 왜구 토벌 과정에서 이성계가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다.3부 ‘잊힌 무인들’과 4부 ‘호랑이 등에 탄 역사’에선 정권을 잡은 이성계가 명나라를 끌어들여 정적을 모함하고 고려 왕조를 붕괴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물론, 여기엔 김종연의 저항과 분투 과정 또한 상세하게 담겼다.‘모함의 나라’를 출간한 권경률은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회사원과 기자 등의 직업을 거쳐 현재는 역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9-13

“갈등 없는 추석 명절… 조선시대 선조들처럼”

오는 10일은 추석 명절이다. 풍요롭고 즐거워야 할 명절이지만 명절갈등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대두되는 시기이기도 하다.하지만 조선시대 추석 풍경을 담은 일기를 살펴보면 차례를 모시는 장소와 참여 범위, 역할 분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보다 더 유연하고 합리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우리는 조선시대의 추석 풍경을 담은 일기를 통해 형식에 치우친 차례 문화보다 조상을 기리며 함께 모여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는 추석의 의미를 되살려 가족 모두를 포용하는 추석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그 갈등의 시작…명절추석은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명절로 수확의 기쁨을 가족과 함께 나누며 조상을 기리는 날이다. 옛 어른들은 추석을 얘기할 때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할 정도로 추석은 풍요로움을 상징했다. 더운 여름이 지나 날씨마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거니와 막 추수를 시작하는 시기다 보니 먹을거리도 풍족했다. 이런 저런 걱정이 없으니 인심도 좋아져 서로에게 나누고 베푸는 그런 명절이었다.하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풍요로움은 더 해갔고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이 사라지자 더 이상 명절이라고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게 됐다. 오히려 명절이 가족 간의 갈등을 부채질 하고 이에 따른 사건사고가 뉴스를 채우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그러다 보니 요즘은 명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많은 부부들이 갈등을 겪거나 주부들이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명절에는 유독 주부들의 할 일이 많아지고 시댁과의 갈등도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명절이 지나고 나면 많은 부부들이 후유증을 겪고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명절갈등이혼을 결정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아직 우리사회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명절 전·후 이혼율 11.5% 증가실제로 예전에는 가부장적인 관념 아래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과 가사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며느리가 명절에 시댁 찾는 것을 꺼리는 행동을 두고 전통적인 윤리의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법원이 남편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인 판례도 있을 정도다.이러한 가부장적인 태도도 2000년대 들어 여성의 권리 신장과 가정 내 양성평등을 구현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면서 시댁에 대한 일방적 양보와 희생을 강요할 수 없게 됐다. 요즘은 오히려 위 사례와 달리 이러한 것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다. 배우자로서 신의를 져버렸다는 것이 이유다. 즉 남편과 부인이 동등한 위치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지 면밀히 따지는 추세로 변화한 것이다.통계청의 최근 5년간 이혼통계를 보면 설과 추석 명절 직후인 2월과 3월, 10월 11월의 이혼 건수가 직전 달보다 평균 11.5%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명절 전후 갈등으로 인해 가족이라는 틀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더 이상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 젊은세대이렇다 보니 요즘은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는 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아직 차례 문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지난해 5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4차 가족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6%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특히, 20대 응답자는 63.5%가 제사 폐지에 찬성했지만, 70세 이상 응답자는 27.8%만 이에 동의했다. 여러 문항 가운데 세대 간 동의 비율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난 문항이었다.이처럼 명절 갈등의 원인은 조선후기 가례의 보급과 확산으로 양반 가문에 사당이 건립되고, 제례의 순서 및 제사상 음식의 조리법과 배치까지 정례화되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신분제 동요와 재산상속 문제와 맞물려 더욱 보수화된 제례 문화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한국국학진흥원이 보유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추석 풍경을 담은 옛 성현들의 일기를 살펴보면 현대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됐는지 알 수 있다. 자료에는 차례를 모시는 장소와 참여 범위, 역할 분담에 이르기까지 오늘날보다 더 유연하고 합리적이었던 추석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산소에서 지내는 추석 차례, 차례와 성묘의 이중 부담 해소경북 예천의 초간 권문해(權文海·1534~1591)의 ‘초간일기(1582년 (음)8월 15일)’에는 “용문(龍門)에 있는 선조 무덤에서 제사를 지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산소에 올라갔다”는 내용이 실려있다.안동 예안에 살았던 조성당 김택룡(金澤龍·1547~1627) 역시 ‘조성당일기(1617년 (음)8월 15일자)’에서 “술과 과일을 마련해 누이의 아들 정득, 조카 김형, 손자 괴를 데리고 가동(檟洞)의 선산에 올라 선영에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고 했다. 또한 그 전해에도 “가동의 선조 무덤에 제사를 지내므로 직접 그곳으로 갔다”고 적어놓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추석 차례를 가족과 친척이 산소에 모여 지내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상주의 청대 권상일(權相一·1679~1759)은 ‘청대일기(1745년 (음)8월 15일자)’에서 “시냇물이 불어나 건너기 어려워 산소에 성묘하러 갈 수가 없었다. 해가 저문 뒤에 손자 복인과 아우 상기가 술과 포를 조촐하게 갖추어 성묘하고 돌아왔다”고 적어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간소한 제물로 성묘를 지낸 모습도 보여준다.△친가, 외가, 처가의 구분 없는 조선시대 차례문화, 함께하는 추석김택룡의 ‘조성당일기(1616년 (음)8월 15일자)’에는 “가동에서 합제(合祭·여러 사람에게 함께 제사를 지냄)를 지냈는데, 영해(寧海)의 외조부모도 함께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다음 해 추석에는 산소에 가기에 앞서 집에서 외조부모의 제사를 지냈고, 선조의 무덤에서 차례를 지낸 후에는 “제물을 나눠 영해의 장인 에게도 절을 올렸다”고 기록돼 있다.안동 예안의 계암 김령(金坽·1577~1641)은 ‘계암일기(1621년 8월 15일자)’에서 “먼저 외가의 추석 차례를 지낸 후, 집의 사당에서 추석 차례를 올렸다”고 적어 추석 차례에 참석하는 친족의 범위가 지금과 달랐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대구의 모당 손처눌(孫處訥·1553~1634)은 ‘모당일기(1601년 (음)8월 15일자)’에서 “오후에 조부 및 부친의 묘에서 돌아왔다. 동생 희로가 두 사위를 데리고 와서 참석했다”고 적었다. △같이하는 추석 준비, 모두가 행복한 명절 지내기김택룡은 1617년 성묘에 생질이 함께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김택룡 일가는 추석 준비도 함께했다. “조카 김형을 시켜 수록동(水錄洞)에 있는 조부의 묘소를 벌초하고 음식을 올리도록 했다(1616년)”, “누이의 아들 정득의 무리가 수록동에서 벌초했다(1617년)”와 같이 친가와 외가의 후손이 번갈아 산소의 벌초와 차례를 맡았다.또 음식 마련도 서로 도왔다. “가동의 제사에 범금과 임인이 술을 가지고 와 올렸다(1616년)”, “포태(泡太·두부를 만드는 데 쓰는 콩)를 보냈다. 내일 누님이 가동의 선조 무덤에 가려하시기 때문이다(1617년 (음)8월 13일자)”는 기록은 형편껏 역할을 분담해 서로 도와가며 추석을 지낸 모습을 담고 있다.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형식에 치우친 차례 문화는 명절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조상을 기리며 함께 모여 수확의 기쁨을 누린다는 추석의 의미를 되살려, 가족 모두를 포용하는 추석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2-09-07

한가위 달밤, 동화 속으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먹을 것이 풍요롭기에 생긴 여유가 마음의 양식을 찾기 때문이다. 더하여 한가위가 들어 피붙이들이 보름달 아래 모여 정겨운 답소를 나누기 좋은 시간이다. 올 한가위는 삼대가 모여 동화를 읽으면 어떨까. 각자 흩어져 휴대폰만 들여다본다면 피붙이가 한자리에 모인 의미가 퇴색된다. 어른은 어른을 위한 동화, 아이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 이에 읽을만한 동화책 세 권을 소개한다.어린이의 마음속에는 동심이 흐른다. 그것은 지하수와 같아서 때 묻지 않고 맑다. 동심은 순수하고 천진하고 난만하다. 그렇다고 모두 동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 가슴 깊이 흐르는 아이다운 정서를 찾아 두레박을 내려야 한다. 동심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고 순수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어른도 맑은 동심 한 사발 마신 듯 갈증이 풀린다. ① 단편동화 ‘냄새폭탄 뿜! 뿜!’(박채현 글, 허구 그림)‘냄새폭탄 뿜! 뿜!’에는 다섯 이야기가 실려있다. 모두 동심이 흐르는 길목에서 퍼 올린 이야기다. 작가는 동심이 휘돌고 굽이치고 출렁거리는 자리를 안다. 그 자리에 우물을 파고 두레박을 내려 소재를 퍼 올려 이야기를 짓는데, 서사만 나열하지 않는다. 아이들 특유의 행동과 심리를 문장으로 절묘하게 녹여 이야기마다 동심이 살아 숨을 쉰다.‘너라도 그럴 거야’: 먹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용돈을 모아 병아리를 산 승표, 그런데 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가버린다. 승표는 며칠 동안 친구들과 고양이를 추적한다. 철거를 앞둔 집에서 고양이의 집을 발견한 승표는 아이들과 함께 간다. 회초리를 든 승표는 끝내 복수를 포기하고 만다. 이를 갈며 복수의 칼을 벼렸는데, 왜 승표는 회초리로 고양이를 때리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알면 누구나 제목에 공감하게 된다.‘나 좀 읽어줘’: 엄마가 마음을 몰라준다고 심통이 퉁퉁 불은 동아, 엄마를 따라 헌책방으로 가는데, 헌책방 골목에 들어서지 책들이 나 좀 읽어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헌책방이라는 현실이 판타지의 세계가 되고 동아는 그 세계 속에서 헤맨다. 판타지 속에서 무엇을 경험했으며 또 어떻게 될까.‘냄새폭탄 뿜! 뿜!’: 학교에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아도 말 한마디 못 하는 금은파 이야기다. 은파는 벌을 따라 텃밭으로 가고, 텃밭에는 이런저런 생명이 자신을 지키며 산다. 대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매운 냄새를 뿜는다. 대파는 은파에게 소리친다. “뿌리에서부터 냄새를 끌어 올려. 매운 냄새를 풍기라고. 줄기는 질깃질깃해야 살아남아” 은파도 대파처럼 씩씩하게 자기를 지킬 수 있을까.‘바보 여우와 작은 씨앗’: 보리수나무 씨앗이 바람에 떨어진다. 떨어진 씨앗이 다시 바람에 실려 벌판으로 가고, 씨앗은 붉은꼬리여우 조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씨앗은 조의 똥에 섞여 다시 땅에 떨어진다. 싹을 틔운 씨앗은 여우의 보살핌으로 자란다. 늙고 병든 여우가 보리수나무로 아래로 찾아온다. 둘은 어떻게 될까. ② 중편동화 ‘걱정을 없애주는 마카롱’(성주희 글, 유경화 그림)어른의 걱정은 생존에 관한 것이 많다. 어떻게 먹고 살까. 아이를 어떻게 공부시킬까. 묵직한 걱정이다. 어른이 보기에는 아이의 걱정은 무겁거나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소소한 걱정도 무겁다. 그 무게에 눌리면 동심은 더 무거워진다.작가는 엄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자잘한 걱정에 휩싸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가도 어릴 적에 크고 작은 걱정에 시달렸기에 아이들 세계의 걱정을 들여다본다. 한 뼘 두 뼘 마음이 크는 과정에서 걱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걱정에 사로잡혀 아이다움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그래서 작가는 걱정하는 마음을 토닥여주고 걱정이라는 먹구름 뒤에는 맑은 하늘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집에 도둑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자다가 불이 나면? 갑자기 땅이 흔들리면? 걱정왕 ‘왕기우’는 온갖 걱정을 달고 산다. 심지어 요즘 유행하는 ‘걱정두병’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시달린다. 엄마 친구 아들인 ‘오해소’는 이런 기우를 걱정왕이라며 놀린다.하루는 기우 앞에 묘한 유리병 하나가 나타난다. “당신의 걱정을 없애 드립니다” 일단 믿어보기로 한 기우는 병 안에 든 ‘걱정을 없애주는 마카롱’을 먹는다. 진짜로 온갖 걱정이 사라지고 기우는 모든 걱정에서 홀가분해진다. 그런데 기우가 놓친 게 있다. 걱정이 없는 날에도 걱정을 적어야 한다는 조건을 까먹은 것이다. 걱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걱정에 걸린 기우는 어떻게 될까.아이들의 걱정을 판타지 기법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작가는 아이들이 마음껏 공상과 상상의 세계를 경험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성장하는 힘을 얻기 바란다고 말한다. ③ 어른을 위한 동화 ‘책상은 책상이다’(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이 책은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사고가 엉뚱하고 행동이 바보 같은 사람의 일곱 이야기다. 현실에 없는 이야기 같지만 나 또는 나와 가까운 데 있는 이야기다.‘지구는 둥글다’는 정말 지구가 둥근지 확인해보려고 길을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계속 똑바로 나아가면 이 책상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걸 안다. 알긴 하지만 믿을 수 없어서 남자는 길을 떠난다. 처음 떠난 자리로 정확하게 돌아오려면 어떡해야 할까. 어떠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까.‘책상은 책상이다’는 반복되는 일상 때문에 무료함이 극에 달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 나이 많은 남자는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산책하고, 이웃과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고, 저녁이면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달라져야 한다고!” 외친 뒤, 침대를 ‘사진’으로, 의자를 ‘시계’로, 책상을 ‘양탄자’로 부른다. 주변 사물의 이름을 다 바꿔 부르다 보니, 시간이 흘러 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자신도 타인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다. 이 남자는 어떻게 될까.‘아메리카는 없다’는 왕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궁정의 광대를 자꾸 교체하는 이야기다. 광대는 왕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복종한다. 왕을 위한 땅을 발견해야 한다고 명령하자 콜롬빈이라는 광대가 뱃사람이 되어 대륙을 발견하러 떠난다. 시간이 지나 찾지도 않은 땅을 발견했다며 콜롬빈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확인하지도 않고 그것을 믿는다. 너무 먼 곳에 있어 확인할 길이 없으니까.이외에도 ‘발명가’, ‘기억력이 좋은 남자’, ‘요도크 아저씨의 안부인사’,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은 남자’가 실렸다. 모두 엉뚱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그 결말은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쓴웃음이 나기도 한다.어른을 위한 동화를 다 읽고 나면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다. 엉뚱한 사람들이 이야기는 역설逆說이 되어 나름의 메시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는 바보 같은 남의 이야기 같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내 안에도 이러한 기질이 조금씩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김이랑 수필가·문학평론가

2022-09-07

태국,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자유여행의 천국으로

젊은 시절.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낯선 아시아의 거리를 헤매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지명이 있다. 아니, 비단 배낭여행자가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한국인에게 분명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카오산 로드(Khaosan road).태국 방콕은 인근 국가인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을 묶어 1~2개월 혹은, 더 긴 기간 동안 돌아보고 싶은 청년들에게 거점 같은 도시다.패키지여행이 아닌 개별적인 자유여행을 계획한 이들이라면 보통 한국에서 방콕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해 가장 먼저 카오산 로드로 간다.거기서 좀 더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세우고, 인접국으로 향하는 기차표나 버스표 또는, 배표를 예매하는 게 동남아 배낭여행의 가장 보편적 방법이었다. 몇 해 전 발생한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에는. □ 300m 남짓 거리가 배낭여행자들로 넘쳐났던 곳이…방콕공항에서 택시나 셔틀버스로 1시간 남짓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카오산 로드는 어떤 곳일까? ‘위키백과’가 간략하게 그곳을 요약해주고 있다.“카오산 로드는 태국 방콕 시내 프라나콘 방람푸 지역에 있는 짧은 거리 이름이다. 카오산 로드는 300m도 채 안 되는 거리지만, 전 세계 배낭여행객들의 집합소이자 젊은이들의 해방구다. 태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여행자들에게 카오산 로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자 베이스캠프이기 때문. 이곳에서는 여행자 입맛에 맞는 다양한 음식도 먹을 수 있다. 방콕 왕궁과 왓 프라깨우가 있는 1km 북쪽에 자리한다.”2020년 초 코로나19가 불러온 ‘세계여행 암흑기’의 직격탄을 카오산 로드도 피해갈 수 없었다.1년 내내 유럽과 북아메리카, 아시아에서 온 여행자들로 넘쳐나던 그 거리가 인적 없는 유령도시처럼 변한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진과 영상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한국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맥주와 커피를 마시고, 태국 요리부터 인근 동남아시아 길거리 음식까지 맛볼 수 있었던 카오산 로드.자정을 넘겨 새벽에도 꺼지지 않던 거리의 불빛이 사라진 카로산 로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였다. 다행히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3년 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태국을 여행하려는 관광객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카오산 로드 역시 개점휴업 상태이던 상점과 카페들이 하나둘 활기를 찾아가며 야간 영업시간 확대까지 준비하고 있다고.기자 역시 배낭여행을 즐기던 3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대여섯 차례 이상 방문한 곳이 카오산 로드다. 당연지사 잊을 수 없는 추억도 여럿 만들었다.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 일본 와세다대학에 재학 중인 청년 하나를 만났다. 태국은 물론, 캄보디아와 라오스, 인도네시아를 거치며 3개월째 여행을 지속하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도 3개월쯤 더 여행을 계속할 것”이라는 말로 기자를 놀라게 했다.사실 여행은 인생의 교과서로 역할 한다. 한국인들은 일본인에 비해 그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아니, 늦게 알았다기보다는 알고 있다고 해도 해외여행이 수월치 않았다.이른바 MZ세대에게는 비행기를 타고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멀리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까지 가는 게 놀랍고 드문 일이 아니지만, 그 이전 세대는 달랐다.지금 50대 이상인 한국인들에겐 여권을 발급 받아 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특권처럼 인식됐다. 그보다 이전엔 돈이 있어도 해외여행을 마음대로 갈 수 없던 시절도 있었다.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적지 않은 한국 젊은이들도 태국 방콕 카오산 로드를 자기 동네 뒷산 드나들듯 가기 시작했다. 그 추세는 속도를 더했고, 이제는 해외여행 경험이 없는 대학생들을 보기 어려울 지경.□ 몸 추스르고 여행자 맞기 시작한 ‘카오산 로드’코로나19가 불청객처럼 찾아와 세상을 흉흉하게 만들기 1년 6개월 전. 그러니까 2018년 카오산 로드를 찾았다.거기서 대구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한 청년과 술잔을 기울였다. 스물셋. 2000년대 초반 만났던 와세다대학 청년과 같은 나이였다.“도서관이 아닌 낯선 세상에서 인생 공부를 해보고 싶어 여름방학 내내 공사장에서 힘든 일을 해 300만 원을 모았다”는 대구 청년은 “돈이 바닥날 때까지 동남아시아 곳곳을 떠돌아다닐 것”이라고 했다.전공서적이 아닌 낯선 풍경과 처음 만난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그의 태도가 보기 좋았다.이미 생활인으로 몸과 마음이 굳어진 중년들과는 세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방법이 확연히 달랐다.카오산 로드의 매력은 앞서 언급한 일본 청년과 한국 청년 같은 이들이 뿜어내는 젊음의 에너지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단 아시아의 청년들만이 아니다. 그곳에선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가슴 안에 간직한 싱싱한 꿈과 희망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나이 지긋한 관광객들은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카오산 로드로 몰려드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청년들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보면 아시아 배낭여행 시장의 회복 가능성도 점칠 수 있을 터. 앞서도 말했지만 카오산 로드는 단순한 방콕의 한 거리가 아니라, 동남아시아 여행의 가장 주요한 거점이기 때문이다.카오산 로드엔 저렴한 숙소가 많다. 하룻밤 1만 원 정도의 허름한 도미토리에서 깨어나 새벽부터 문을 여는 수상시장에서 힘겹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방콕 사람들과 만나보는 것, 다른 환경과 제도 아래서 살아온 세계 여러 나라 청년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친구가 돼보는 것.바로 이런 게 책에선 배울 수 없고, 찾을 수 없는 ‘살아있는 세상 공부’가 아닐까.그래서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카오산 로드가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더없이 반갑다. 여행 속에서 인생을 배워가려는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그 거리에 활력이 더해가기를 바란다.□ 보다 행복한 여행을 위해선 현지인들과 친해져야태국은 국민의 절대다수가 불교신자다. 인도에서 생겨나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일대로 전파된 소승불교(小乘佛敎)는 무엇보다 개인의 해탈을 중요시한다. 알다시피 불교는 욕망을 버리는 수양을 통해 성숙에 이르고자 하는 종교.크고 작은 방콕의 사원에선 조용히 머리 숙이고 부처 앞에서 합장하는 적지 않은 태국인들을 볼 수 있다. 비단 사원에서만이 아니다. 불교는 태국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 생활의 일부가 돼있다.상점과 카페, 심지어 술집과 거리에서도 불상을 볼 수 있는 곳이 태국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불상 앞에 고개를 숙인다. 이처럼 독실한 종교적 자세는 보통의 태국 사람들을 겸손하고 선량하게 만든 듯했다.여러 차례 태국을 여행하면서 겪고 본 바에 따르면 태국인들은 크게 고함을 치며 치고받는 싸움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태국 사람들의 보편적 성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여행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형성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비단 여행자와 여행자 사이에서만이 아닌, 여행자와 현지인 사이에도 그 기회는 존재한다. 처음 낯선 나라로 떠나는 사람은 현지인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흔하다. 해외여행에서 만나는 이들은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진심을 전하기도 어렵다. ‘혹시 저 사람이 내게 사기를 치면 어떡하나’ ‘어두운 골목에 서성거리는 사람이 불량배면 어쩌지’라는 공포가 있을 수 있다.그러나, 그런 닫힌 마음과 지레짐작의 두려움으로는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어느 나라에나 나쁜 사람은 있지만, 그래도 아직 세상엔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다수가 아닐까. 태국도 마찬가지다. 먼저 다가가 환하게 웃으며 물건 가격을 흥정하고, 예의를 지켜 길을 묻는 여행자에게 해를 끼치는 현지인은 드물 터.그러니, 마음을 열고 ‘세상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게 한층 즐거운 태국 여행으로 당신을 이끌 것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9-06

영일만과 동빈내항에 온갖 고기들이 넘쳐나

산업화 이전 포항의 바다 풍경은 어땠을까? 이북의 유년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다녔던 한동웅 선생은 포항에 와서도 낚시를 즐겼다. 덕분에 누구보다 영일만과 동빈내항, 칠성천, 해도 염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낼 수 있었다. 김 : 교직에 오랫동안 계셨는데, 감회는 어떻습니까?한 : 우여곡절 끝에 교단에 섰는데 38년 6개월 근무하고, 그중 16년이나 교장을 했으니 복 받은 사람이지.김 : 교사로서 좌우명이나 원칙 같은 게 있었다면.한 : 나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어. 정의와 정직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게 원칙이라면 원칙이었지. 간혹 학교에 납품하는 사업자가 미끼를 던질 때가 있는데 나는 원칙대로 단호하게 대처했어. 민주적인 교장이 되려고 노력했고, 교사들하고도 잘 지냈지. 교장으로 있으면서 교사들에게 고함을 지른 적은 딱 한 번이었어. 한 교사가 절차와 예의를 무시하고 행동하길래 화를 냈지. 그 직후 화를 낸 것은 사과하고 좋게 풀었어.김 : 교단에 있을 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한 : 동지상고는 한 학년의 절반은 진학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취업반이었어. 또 진학반을 우열반으로 나누었는데, 한번은 내가 열(劣)반의 담임을 맡게 되었지. 나는 당연히 우(優)반의 담임을 맡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야. 그래서 교감에게 내가 왜 열반을 맡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우반 아이들이야 알아서 잘할 테지만 열반 아이들은 잘 이끌어줄 유능한 교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하는 거야.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 그래서 열반을 맡고 보니 학급 아이들 태반이 태권도, 유도, 검도의 유단자더군. 그 단(段)을 모두 합하니 100단이 넘어.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말했지. “나는 참 행복하다. 이렇게 든든한 무술 유단자를 제자로 거느리고 있으니 말이야.” 그 아이들하고 참 잘 지냈는데 기어이 사고가 나더군.김 :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나 봅니다.한 : 포항역에서 기차를 타고 경주로 가을 소풍을 가는 길이었어. 기차 안에는 경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있었는데, 유도 유단자인 우리 반 아이와 시비가 붙은 거야. 해병대 출신인 교사가 아이한테 봉변을 당했지. 나는 그 교사한테 용서해달라고 빌었지만 용서는커녕 사건을 확대하려고 하더군. 나는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는데 결국 경북도교육청에서 사건을 알게 되었지. 그 일 때문에 나는 감봉 처분을 받았어. 동지교육재단 하태환 이사장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하니 특유의 목소리로 잘했다고 하시더군. 하태환 이사장은 그런 분이었어. 그 감봉이 교직에 있는 동안 내가 유일하게 받은 징계야.김 : 다른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선생님은 낚시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한 : 나는 낚시 마니아야. 낚시하다가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낚시를 배운 덕분이지. 한번은 릴낚싯대를 들고 호미곶에 갔더니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와서 내가 낚시하는 장면을 지켜보더군. 호미곶 주민들이 릴낚싯대를 처음 본 거지. 포항은 낚시하기에 좋은 곳이어서 나는 이래저래 포항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김 : 부자지간에 낚시도 자주 다녔겠습니다.한 : 그랬지. 내가 어릴 때 아버지와 동생 동명이 그리고 나 셋이서 낚시를 자주 다녔어. 나룻배를 타고 영일만에 나간 적도 여러 번 있었지. 과거 영일만에는 고기가 엄청 많았어. 특히 바닥을 뱀장어로 깔아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뱀장어가 많았지. 하루는 얼마나 큰 뱀장어가 잡혔는지 아버지도 기분이 꺼림칙했던 모양이야. 영일만 이무기가 올라온 것 같다며 용왕님께 잘못한 걸 빌고 집으로 가자고 하셨어. 김 : 영일만에 어떤 어종이 많았습니까?한 : 온갖 고기가 다 있었지. 청어와 정어리는 정말 많았어.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였지. 조업 나간 뱃사람들이 청어와 정어리를 적당히 싣고 들어오면 될 텐데, 욕심을 못 이기고 갑판 가득 싣고 들어올 때가 있어. 그러다가 선착장 가까이 와서는 고기 무게를 못 이겨 배가 가라앉기도 했지. 고등어 떼가 영일만에서 뛰어오를 때는 장관이었어. 요즘은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다는 감성돔도 지천이었고.김 : 고래를 보신 적도 있습니까?한 : 내가 어릴 때는 고래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지. 1950년대 후반으로 기억하는데, 여름철 송도해수욕장에 고래가 얕은 바다까지 들어왔어. 그때 해병대 하계 휴양소가 송도에 있었거든. 해병대 대원들이 모터보트를 급히 띄워서 총을 쏘며 고래를 쫓아갔지. 피서객들은 박수를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난리가 났어. 그런데 고래가 잡힐 리 있나. 도구 쪽으로 유유히 사라지더군. 영일만에 고래밥으로 통하는 곤쟁이가 많았어. 그러니 영일만에 고래도 많았을 거야. 학꽁치 잡을 때도 곤쟁이가 최고 미끼인데 지금은 구할 수가 없지.김 : 동빈내항이나 칠성천 쪽은 어땠습니까?한 : 비 내린 다음 날 동빈내항에 가면 황토가 씻겨 들어와 누렇게 변해 있었어. 그런 날에는 민물장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혔지. 칠성천에는 상류까지 황어와 고등어 떼가 올라왔어. 어느 날엔가 칠성천에서 낚시를 하는데 탄띠가 올라오는 거야. 6·25전쟁 때 희생된 군인의 탄띠지. 그 실한 고기들이 사람 먹고 자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김 : 해도 염전 쪽에도 고기가 올라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한 : 염전 사이로 가자미와 숭어 떼가 올라왔지. 가자미는 힘이 좋아서 잡는 재미가 쏠쏠했어. 숭어를 잡으려고 해도 다리 근처에 사람들이 싸릿대로 물길을 막고 가마니를 깔아두었어. 그러면 팔뚝만 한 숭어가 싸릿대에 걸려서 가마니 위로 펄쩍펄쩍 뛰어올랐지. 그뿐만이 아니야. 당시에 송도다리가 ‘찢어져 있다’고 했어. 배의 돛대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리 사이를 살짝 비워둔 거지. 그 위에 염전으로 유명한 염동골이 있었는데 거기까지 황어와 감성돔이 올라왔어.김 : 수영도 잘하셨습니까?한 : 강과 바다가 곁에 있으니까 웬만한 아이들은 수영을 잘했지. 동네 아이들과 헤엄쳐 형산강을 건너 송정까지 가기도 했어. 당시 송정에는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었거든. 송정 백사장에 멸치 떼와 숭어 떼가 뛰어오르기도 했어. 조개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 마대에 넣으면 무거워서 들지도 못했어.김 : 생선을 좋아하시겠습니다.한 : 말해 무엇하겠어. 특히 고래고기를 좋아해. 교직에 있을 때는 퇴근하면 시내 대흥식당에서 살다시피 한 적도 있어. 그 집에서 고래고기를 즐겨 먹었지. 아동문학가 손춘익이 아버지를 따랐기에 나와도 친했어. 하루는 손춘익과 구룡포에서 고래고기를 안주 삼아 술을 거나하게 마셨어. 남은 고래고기를 시멘트 포장지에 둘둘 말아서 포항행 완행버스에 탔지. 그러고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서 고래고기를 꺼내 또 술을 마신 거야. 입맛을 다시는 승객들이 있길래 어울려서 술판을 벌였지.김 : 술 인심이 좋았던 시절의 얘기군요.한 : 아마 이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을 거야. ‘날로, 하머, 과타.’ 대폿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그 옆에 한 술꾼이 쓸쓸하게 앉아 있을 때가 있어. 그에게 소주잔을 권하면 ‘날로’라고 해. 풀이하자면 ‘나에게 술잔을 주는 겁니까?’ 하는 뜻이야. 조금 있다가 또 술잔을 권하면 ‘하머’라고 하지. ‘벌써’라는 뜻이야. 한 뜸 들였다가 또 한 잔을 권하면 껄껄 웃으면서 ‘과타’라고 해. ‘과하다’라는 뜻이지. 난생처음 보는 술꾼끼리도 그렇게 정을 나누던 시절이었어.김 : 1940년대 후반부터 포항을 지켜보셨습니다. 포항의 변화상을 짤막하게 말씀해주신다면.한 : 1960년대 후반까지 포항은 한적한 항구도시였지. 그때는 구룡포항이 더 활발했어. 포항제철이 들어서면서 포항은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지. 포항이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대담·정리 : 김도형(작가)

2022-09-05

제주의 초록숲에 물든‘예술가의 흔적’ 찾아서

여름 볕에 지친 제주의 초록 숲이 서늘한 바람에 흔들려 가을빛으로 물들어간다. 계절은 또 오고, 햇살은 깊어진다. 차분해진 제주의 풍경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미술관에서는 예술의 향기가 흘러나온다. 가을의 초입, 예술을 감상하며 사색하기 좋은 미술관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김창열미술관은 ‘물방울 화가’로 알려진 김창열 화백의 대표작품 220점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추어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김창열은 활동 초기에 6·25전쟁의 아픔을 형상화한 추상 작품을 그렸다. 1973년 파리에서 물방울작품을 처음 선보인 후, 캔버스, 신문지, 나무, 흑연, 모래 등에 오랜 세월 물방울만 그렸다.물방울은 캔버스 위에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기도 하고, 흩뿌려진 빗방울처럼 맺혀 있기도 하다. 금방이라도 바닥으로 또르르 흘러내릴 듯한 물방울은 작품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색채로 빛나기도 한다. 미술관 곳곳에서 구르는 물방울을 감상하다 보면 마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미술관 건물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한자 ‘돌아올 회(回)’처럼 보인다. 물방울을 통해 무(無)로 회귀하고자 했던 작가의 철학이 공간에 투영되었다. 건축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빛의 중정’은 글자의 모양처럼 건물 한가운데 자리한다. 하늘이 뻥 뚫린 정원 분수 한가운데 놓인 물방울 조형물은 쏟아지는 빛을 머금어 반짝인다. 비가 그친 뒤 무지개가 떠오르듯 분수의 물줄기가 꺼지면 오색찬란한 빛이 물방울에 맺힌다. 검은 송판 무늬의 콘크리트 건물은 화산섬에 깔린 현무암처럼 제주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중섭 미술관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황소’의 화가 이중섭의 예술혼이 담긴 이중섭 미술관은 그가 머물던 서귀포에 있다.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두 아들까지 얻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제주도까지 내려오게 된다. 1951년 1월부터 1년간 지낸 서귀포에서의 생활은 궁핍했다. 그림 그릴 재료와 도구가 없어 나무판자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과 바닷가에 나가 게를 잡거나 농장에서 감귤을 따며 소박한 행복을 누렸다. 그래서일까. 당시에 그린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바닷가의 아이들’ 등에는 따뜻함이 묻어있다.이중섭 미술관이라지만 소장한 작품의 거의 없어 한산했던 미술관은 최근 이건희 컬렉션의 12개 작품이 더해져 볼거리가 풍성해졌다. 70여 년 만에 서귀포 품으로 돌아온 대표작품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이중섭 미술관 근처에서 그린 것으로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미술관 옥상에 올라가 내다보면 이중섭이 바라봤을 서귀포 앞바다의 섶섬이 여전히 푸른 바다 위에 그대로 떠 있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서귀포 동쪽 성산읍에 있는 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은 폐교였던 삼달분교를 개조해 2002년 문을 열었다. 한라산의 옛 이름이기도 한 ‘두모악’에는 20여 년 동안 제주의 풍경과 도민을 필름에 담아온 사진작가 김영갑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김영갑은 서울에서 제주를 오가며 사진을 찍다가 제주의 풍경에 매혹돼 1985년 정착했다. 섬, 바다, 오름, 나무, 이름 없는 풀꽃들이 하나하나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의 필름에서 작품이 되었다. 그는 구좌읍 종달리의 풀밭 오름인 용눈이오름을 가장 사랑했다. 사계절, 이른 새벽부터 달 밝은 밤까지 열정을 바쳐 평화롭고도 쓸쓸한 오름의 초원을 사진에 담았다.당근이나 고구마로 배고픔을 달래고 돈을 아껴 필름을 샀다. 창고에 차곡차곡 쌓인 사진을 전시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버려진 초등학교를 구했다. 공간을 다져갈 무렵,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이 떨리고 허리에 통증이 왔다.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카메라를 들지도, 걷지도,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됐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간신히 움직여 사진 전시관 만들기에 열중했지만, 투병 6년 만에 그는 사랑했던 섬 제주, 두모악에 잠들었다.김영갑갤러리두모악 미술관의 ‘두모악관’, ‘하날오름관’에서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제주의 모습과 속살을 감상할 수 있다. 병과 힘겹게 싸우면서도 제주의 돌과 바람, 사람을 모티브로 손수 일군 정원에는 작은 뷰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살다 간 예술가의 설렘과 고통이 곳곳에 배어 있다. △우도 훈데르트바서 파크소를 닮은 섬, 우도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와 함께 오스트리아 대표 예술가로 꼽히는 화가이자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숙박 시설, 카페, 갤러리, 뮤지엄이 한데 모여 있는 ‘훈데르트바서 파크’의 알록달록한 색채는 신비로운 섬에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진다. 자연을 테마로 작품을 구상하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 때문일 것이다.뮤지엄 건물은 독일에서 제작해 공수해 온 78개의 세라믹 기둥, 궁전 같은 양파 모양의 돔, 131개의 크고 작은 창문들로 만들어져 자체가 예술품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훈데르트바서하우스’의 화려한 색감과 곡선미 넘치는 건축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훈데르트바서는 ‘직선은 부도덕하며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며 그림과 건축물에 물이 흐르는 듯한 곡선만 표현했다.뮤지엄 회화관에서는 빛나는 원색을 좋아한 훈데르트바서의 회화가 진품만큼 강렬한 색채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판화관에는 훈데르트바서가 직접 그린 판화 22점도 소장·전시하고 있다. 환경 건축관에는 독일 다름슈타트(Darmstadt)의 ‘나선의 숲’ 건축물 모형이 전시돼 있다. ‘나선의 숲’은 독일 다름슈타트에 설계된 서민 아파트로,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던 훈데르트바서가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지은 나선형 모양의 건물을 지붕까지 산책하듯 오를 수 있게 만들었다.우도의 테마파크도 그의 정신을 불어넣어 건설했다. 부지에 자생하던 1600여 그루의 나무들을 건축물에 그대로 옮겨 심었다. 메마른 건축물에서 생명이 숨을 쉰다. 자연을 품은 화려한 색채의 건물은 우도의 아름다운 풍경에 그림처럼 스며든다. 한적한 제주 독채형 숙소로 GO~여행을 일상처럼 즐기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제주의 자연을 집 안에서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독채형 숙소가 사랑받고 있다. 취사 가능한 주방까지 갖춘 매력적인 숙소에서 가족과 편안하게 쉬고 싶다면 제주 속 보석 같은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아보자.▷탁 트인 창과 툇마루에서 만나는 제주의 자연, ‘송당미학’‘오름의 정원’이라 불리는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송당미학’은 거실의 커다란 통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삼각 지붕의 높은 천장으로 쾌적하고 시원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통창을 열고 나가면 툇마루에서 오름의 능선과 먼바다가 내다보인다. 흔들의자에 앉아 새소리를 듣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다.▷제주 바다와 가까운 소박한 돌담집, ‘이플’제주 동쪽 구좌읍 한동리 작은 바다마을에 있는 ‘이플’은 소박하고 아담한 독채 숙소다.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낡은 돌집과 마당을 정성 들여 가꾼 숙소 침실 창으로 아침볕이 가득 들어온다. 초록 잔디 마당을 두른 돌담 너머로 보이는 바다에서 아침에는 눈부신 일출을, 저녁에는 고즈넉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하늘 보이는 자쿠지에서 누리는 제주의 운치, ‘북촌리브’제주시 조천읍의 ‘북촌리브’는 욕실 천장 창에서 하늘이 보이는 자쿠지가 있다. 안거리와 밖거리에 각각 잔디마당이 있다. 정겨운 돌담집 내부는 서까래 기둥을 살려 전통적이면서도 모던하고 깔끔하다. 마당에서 바비큐를 즐길 수도 있고, 바닷가 어촌마을에 있어 집 밖을 산책하며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제주=글·사진 이솔 객원기자

2022-09-01

아시아·유럽이 공존 두가지 매력 속으로

이른바 ‘코로나19 사태’가 2년을 넘겨 3년째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다.이제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 바이러스가 ‘죽음을 부르는 치명적인 전염병 유발체’가 아닌 ‘감기처럼 누구나 언제든 감염될 수 있는 병의 하나’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들불처럼 번지던 2020년 초반에는 국가들마다 국경의 빗장을 닫아걸고 외국인의 출입을 막았다. 예외인 나라가 드물었다. 하지만, 현재는 상당수의 국가가 나라 밖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입국을 허용하는 추세.사실 어떤 극악한 바이러스도 ‘내가 사는 이곳이 아닌, 가보지 못한 낯선 공간을 여행하고 싶다’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온전히 막을 수는 없다.올해 들어 부쩍 늘었다는 해외여행객들은 이번 여름휴가 기간에도 가까운 나라건, 먼 곳이건 외국을 찾았다. 관광객들의 해외여행 욕구는 연휴가 이어질 추석에도 통제되지 못할 듯하다.“1~2년에 한 번쯤 다녀오는 외국 여행이 지루하고 무료한 삶에 활력소가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기자 또한 이 말에 동의한다.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위드 코로나 시대’는 어쩔 수 없이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건 외국이건. 아직은 두려움과 망설임 속에서 외국으로의 여행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코로나19의 그늘이 보다 명확하게 걷히는 게 확인된다면 다시금 비행기를 타려는 이들이 공항을 채울 터.‘위드 코로나 시대’라고 해도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로 바이러스 감염의 가능성을 낮추는 건 중요한 일. 그걸 염두에 두고 몇 해 전 다녀온 튀르키예 여행을 추억하며, 아주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준비해본다. □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부르는 튀르키예 노인들아직까진 ‘터키’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한 나라 튀르키예는 2022년 5월 그들 국가의 명칭을 바꿨다. 공식 영어 표기가 수정된 것이다. 터키(Turkey)는 영어로 칠면조라는 뜻이 있고, 또한 속어로는 ‘비겁한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그러니, 과거 한때 아시아와 유럽에서 위세를 떨쳤던 ‘용감한 민족’으로 스스로를 말하는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터키’라는 국호가 기분 좋게 들릴 리 없었다.실제로 튀르키예인들의 용맹성은 중세의 정복전쟁만이 아닌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에서도 발휘됐다. 속설처럼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튀르키예 군대에는 ‘작전상 후퇴’라는 게 없다고 한다. 무조건 돌격해 적이 굴복하거나 자신이 죽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게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튀르키예 군대는 우리 땅 곳곳에서 용맹하게 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6·25 한국전쟁 때 파병된 군인 숫자 대비 전사자가 가장 많은 나라도 튀르키예라고 한다.몇 해 전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는 한국전쟁 파병용사를 만나기도 했다. 이스탄불을 출발해 이란에서 가까운 튀르키예 동쪽으로 달리는 기차. 70대 노부부가 기자와 같은 침대칸에 탑승했다.할아버지는 함께 기차에 오른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볼 때마다 웃었고, “우리는 형제”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30시간쯤을 같은 공간에 있었으니 할아버지가 건네주는 큼직한 빵과 할머니가 깎아주는 사과도 여러 개 얻어먹었다.비단 그 노부부만이 아니었다. 한 달쯤의 튀르키예 여행에서 “한국은 우리와 형제의 나라”라고 말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그들이 때마다 홍차와 달콤한 튀르키예 과자를 권하는 건 하나의 정해진 수순 같았다.여행의 즐거움 중 절반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선물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튀르키예 여행은 한국인들에게 즐거움의 50%를 미리 보장해주는 여정이 아닐지.최근 몇 년 사이 튀르키예는 폭등하는 물가와 경제 성장 둔화로 적지 않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기차에서 만난 친절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희망을 잃지 않고 건강하기를 빈다. □ 아시아·유럽 경계 지역에 위치… 다양한 볼거리가튀르키예는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기에 두 대륙의 특성과 매력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수도인 앙카라와 경제 중심지 이스탄불에서는 도시에서의 세련된 삶을 지켜볼 수 있고, 이란·아르메니아 등과 가까운 동부는 한국의 1970년대 같은 시골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2주를 이스탄불에 머문 기자는 거기서 독특한 체험을 했다. 그 도시는 유럽지구와 아시아지구로 나눠져 있는데, 두 지역을 넘나들려면 10~20분간 배를 타야 한다.한국의 버스 요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는 이스탄불의 여객선들. 해변에 세워진 모스크와 고딕풍 건물들도 꽤나 인상적이라 관광객들은 배에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배 위에선 500원 정도면 마실 수 있는 홍차를 독특한 모양의 잔에 담아 판매한다.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그걸 마시는 재미도 놓치면 아쉽다.이스탄불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느긋해 보였다. 여행지에서 파는 엽서에 곧잘 등장하는 갈라타 다리 위에서 하루 종일 조그만 물고기를 낚는 강태공들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풍경이 한적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다.튀르키예의 이색적인 여행지는 이스탄불 외에도 숱하다. 카파도키아와 괴레메에서는 바위를 뚫어 만든 독특한 숙소에서 잠을 청하며,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을 둘러보는 체험이 가능하다.고대 로마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파묵칼레 역시 튀르키예에 간다면 꼭 찾아봐야 할 곳.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인 안탈리아 역시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지다.조금 더 모험심을 가진다면 튀르키예 동쪽 끝자락에 있는 도우베야지트도 방문하지 못할 게 없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그 도시엔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졌다는 아라라트 산이 있다.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는 도우베야지트에선 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양고기는 물론 낙타고기로 만든 요리도 먹는 게 가능하다.낙타고기 맛은 어땠냐고? 지방이 적은 소고기를 먹는 것과 비슷했다. 여기에 더해 조그만 축제에서 본 쿠르드족의 애잔하고 슬퍼 보이는 전통춤은 잊기 힘든 기억으로 남았다. □ 큰 나라지만 비행기보다는 기차와 버스로 여행을고속열차가 나라의 끝에서 끝까지를 2시간 30분이면 달리는 한국. 이와 달리 튀르키예의 기차는 느리다. 하지만, 20세기풍의 낭만적인 기차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를 반기기도 한다. 튀르키예 서쪽 끝인 이스탄불을 출발해 동쪽 도시들을 향해 가는 기차는 2~3일을 숨 가쁘게 달려 목적지에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예전엔 그 기차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까지도 갔었다고 한다.며칠간 기차 안에서 잠을 자는, 한국에선 할 수 없는 경험을 해보는 게 가능한 곳이 튀르키예다. 기차 식당칸에서 튀르키예 전통요리를 맛보며 시원한 에페스 맥주 한잔 하는 것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광대한 아나톨리아 평원과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외계 행성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국토가 넓고 관광업이 일찍부터 발달한 국가인지라 튀르키예는 유명한 관광지로 가는 버스 노선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기자가 갔었을 때는 한국에선 이미 사라진 직업을 가진 이들도 볼 수 있었다. 절대다수가 남성인 버스 안내원이 바로 그들.버스 안내원은 물과 음료수, 간단한 먹을거리를 승객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보니 그런 서비스가 생겨난 것 같았다.튀르키예어를 하지 못한다고, 영어가 서툴다고 기차와 버스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을 서먹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 몸짓과 간단한 인사말만으로도 얼마든지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튀르키예인들이니까.근사한 풍광과 맛있는 음식,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반기는 튀르키예로 다시 떠날 날이 어서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2-08-30

검은돌장어 입맛 살리고! 흥겨운 공연 분위기 띄우고!

‘제7회 포항 영일만 검은 돌장어 축제’가 5천여명의 인파가 몰리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코로나19의 여파로 3년 만에 재개된 이번 행사는 지난 27일부터 28일까지 포항 영일대해수욕장 일원에서 열렸다.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 주관, 경북도·경북도의회·포항시의회·포항수협이 공동 후원한 이번 축제는 검은 돌장어를 널리 알리고 그 브랜드가치를 끌어올려 전국의 대표 특산품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 첫날 열린 개막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백인규 포항시의회의장, 임학진 포항수협장 등 주요 관계자와 방문객 3천여명이 참석해 축제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오프닝 공연으로는 포항예술고등학교 실용무용과 학생들이 평소 갈고 닦은 기량을 뽐내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이어진 초대가수 공연에서는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에서 매력적인 저음 보이스와 훈훈한 외모로 인기를 끈 가수 류지광이 멋진 공연을 펼치며 행사장 전체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이어 가수 김민교와 이병철이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히트곡 메들리’를 불러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축제는 포항뿐만 아니라 서울과 대구, 구미,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포항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검은 돌장어의 맛과 진가를 알렸다는 호평을 받았다.서울에서 온 조은정(38·여)씨는 “난생처음으로 검은 돌장어를 먹어봤는데 다른 장어보다 육질이 부드럽고 식감이 좋으며 비린 맛이 덜한 것 같다”며 “특히 장어 강정은 달콤 짭짤한 양념소스가 듬뿍 발라져 있어 생선 특유의 누린맛이 하나도 안 느껴져 어린 아이들이 먹기에도 안성맞춤인 것 같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검은 돌장어의 저렴한 가격에 매력을 느꼈다는 반응도 있었다.포항시민 김재훈(45·남구 효자동)씨는 “일반 장어는 1㎏ 싯가로 3만9천원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행사장에서는 검은 돌장어 1세트를 2만5천원으로 팔고 있다”며 “몸이 허해 몸보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값도 싸고 맛도 좋은 검은 돌장어를 사먹어야겠다”고 말했다. 단순한 먹거리 판매 외에 축제 기간 진행됐던 각종 부대 행사도 방문객들을 신나게 했다.십여 개가 넘는 먹거리 판매부스와 월드아트송페스티벌, 사물놀이 공연, 지역가수 공연, 색소폰 앙상블 연주 등의 행사는 축제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특히 축제 마지막 날인 28일에는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전국 팔씨름 대회’가 진행됐다.사단법인 대한팔씨름협회가 진행한 팔씨름 대회는 일반부(남) 오른팔, 일반부(남) 왼팔, 일반부(여) 오른팔, 청소년(남) 오른팔 4종목에 전국에서 힘 좀 쓴다는 200여명의 선수들이 모여 평소 갈고 닦았던 기량을 겨뤘다. △일반부(남) 오른팔 75㎏이하 이용승(수원시), 90㎏이하 신호근(강릉시), 90㎏이상 이상필(포항시) △일반부(남) 왼팔 80㎏이하 김수범(포항시), 80㎏이상 이상필(청송군) △일반부 여자 오른팔 무체급 김혜정(대구시) △청소년 남자 오른팔 70㎏이하 서민규(포항시), 70㎏이상 이준희(포항시)가 1위를 차지해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임종석 경북매일신문 부사장은 기념사에서 “지난 2000년도 경북매일신문이 처음 과메기 축제를 시작했고 이제는 과메기가 포항을 대표하는 명품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검은 돌장어 역시도 포항의 두 번째 먹거리로 전국적인 브랜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영일만을 바라보며 검은 돌장어 많이 즐기시고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이강덕 포항시장도 “포항 향토 식품이 된 검은 돌장어를 더욱 발전시키고, 관광객들에게 대표적인 포항 먹거리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이 축제를 통해 검은 돌장어 사업이 경북매일신문과 포항지역이 함께 노력해 더욱더 번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축제 이모저모 선선한 날씨도 행사 성황에 한몫○… 행사가 열린 27일 오후 포항지역은 덥지 않은 화창한 날씨를 보인데다 행사 이틀째인 28일 낮 최고기온 25℃의 선선한 날씨로 행사장 곳곳에서 긴 팔 나들이 방문객 눈에 띌 정도.영일대해수욕장에 산책 나왔던 시민들도 인파에 놀라 걸음을 멈추고 행사장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진행요원들이 바쁘게 의자를 꺼내주느라 분주.최고 인기상품은 장어구이 야채세트○… 행사 최고 인기상품은 단연 장어구이 야채세트. 방문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장어구이 야채세트는 싱싱한 채소 쌈과 매콤달달한 양념이 발린 검은 돌장어 구이를 함께 먹는 조합.야외에서 진행된 요리 특성상 조리시간이 오래 걸렸음에도 구매 희망 줄은 계속 이어져 검은 돌장어의 폭풍 인기 실감. 구매자들은 탱글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며 입 모아 칭찬. 축제에 빠질 수 없는 신나는 음악○… 초청 가수들과 지역 가수들의 공연으로 개막식장 뜨거운 열기로 가득.미스터트롯 출신 류지광이 시원한 날씨와 어울리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시작으로 축제의 흥을 돋우고, 팀 ‘원플러스원’ 멤버 이병철·김민교가 ‘강남스타일’, ‘마지막 승부’ 등 댄스곡 메들리를 선사하자 행사장은 환호와 박수로 절정.방문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신나게 몸을 흔들며 분위기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강덕 시장, 포항 외식 산업 세계화 약속○… 이날 행사에는 이강덕 포항시장, 백인규 포항시의회 의장, 경북도의원, 시의원 등 많은 내빈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이강덕 시장은 “포항지역 외식 산업을 세계화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며 “영일만 검은돌장어가 구룡포 과메기의 인기를 이을 것”이라 강조.김정재 국희의원과 김병욱 국회의원은 축전을 통해 “비록 함께 자리를 못하지만, 마음은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며 행사성공을 기원하고 시민들에게 인사./이시라·김민지기자/사진이용선기자

2022-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