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무법자 같다. 예고도 없이 꽃을 이끌고 와서 남도를 점령하고 중부지방까지 밀고 들어왔다. 미처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꽃망울을 터뜨리고 봄이 이미 한가운데까지 왔음을 선포해버린다. 벚꽃이 피는 듯한데 어느새 사르락 길섶으로 사라졌다.
충북 옥천에 있는 ‘천상의 정원’에도 봄이 이미 절정이다. 안타깝게도 꽃이 빽빽하게 피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만큼은 봄의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마지막 향연을 펼치는 봄꽃을 찾아 나들이를 가면 어떨까?
‘내적 치유센터’ 수생식물학습원
‘좁은 문’ 지나 만나는 넓은 정원엔
자목련·크로커스·튤립 등 꽃 만발
둘레길 사이 이채로운 유럽식 건물
작은 교회서 만난 대청호 풍경 일품
길 끝의 분재원과 실내정원도 ‘눈길’
◇경관 농업의 꿈 이룬 ‘천상의 정원’
대전에서 옥천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자 눈이 환해졌다. 길목마다 벚꽃이 계절보다 일찍 제 모습을 드러냈다. ‘대청호 오동선 벚꽃길’부터 충북 보은 ‘회남면 벚꽃길’까지 이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에 꽃들이 만개했다. 철없이 일찍 피어버린 벚꽃이 반가워 차창을 여니 하얀 벚꽃이 바람에 후드득 날아와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벚꽃 터널을 지나 옥천군 군북면 방아실 마을을 지날 때쯤 ‘천상의 정원’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천상의 정원의 공식 명칭은 ‘수생식물학습원’. 빼어난 자연환경 덕분에 심리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내적 치유센터’라는 이름도 내걸었다. 공식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예의겠지만 아무래도 이곳은 천상의 정원으로 부르는 것이 제격이다.
천상의 정원을 꾸민 이는 청주 주님의교회 원로목사인 주서택 원장 부부다. 주 원장은 농촌의 자연환경과 농업 현장이 관광자원이 되는 경관농업(景觀農業)을 꿈꿨다. 주 원장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다섯 가구와 함께 2002년 대청호 주변 야산을 사서 집을 짓고, 나무를 심어 정원을 조성했다. 그렇게 18년이 흘렀다. 정원에는 꽃이 피었고 마치 하늘나라에 정원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2008년에는 충북교육청이 과학체험학습장으로 지정해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명품정원이 대청호에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일반인도 꾸준히 찾기 시작했다.
천상의 정원 입구에는 기독교적 색채가 느껴지는 ‘좁은 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면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 나온다. 그 길을 지나 10m 정도 걸으면 넓은 정원이 펼쳐진다. 정원에는 화사하게 핀 자목련과 크로커스, 튤립 등 다양한 꽃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그야말로 꽃의 정원이다.
천상의 정원은 검은색 바위 위에 있다. 바위는 ‘흑색 황강리층 변성퇴적암’이라는 어려운 이름을 달고 있다. 흑색 황강리층 변성퇴적암은 바닷속에 있던 바위인데 오랜 시간에 걸쳐 바다가 육지가 되고 변형돼 생성된 세월의 결정체인 셈이다. 천상의 정원은 원래 포도밭이었는데 정원으로 꾸미려고 흙을 파내다 바위가 나오자 바위를 그대로 두고 정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검은색의 바위와 화사한 꽃이 어우러지니 꽃은 더 도드라지고 바위는 호위병처럼 듬직하다.
◇유럽식 건물과 작은 교회 등 이채
정원을 거닐면 ‘여기서부터는 거북이처럼 걸으세요’ ‘바람이 주인이다’ ‘바람보다 앞서가지 마세요’등의 낭만적인 글이 적힌 팻말들이 길을 안내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정원의 풍경을 충분히 느끼라는 말일 게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채 20분도 안 걸리지만 바위틈에 자란 들꽃과 소나무는 물론 대청호의 푸른 물결까지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한걸음 떼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정원에는 ‘천상의 바람길’과 ‘꽃산아래벼랑’이라는 두 코스의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천상의 바람길이 매화와 홍도화 등이 핀 길을 따라 둥글게 돌아가는 구간이라면 꽃산 아래 벼랑길은 암벽을 타고 올라가는 구간이다. 암벽을 타고 올라간다지만 철제 계단을 설치해 놓아서 안전하다. 벼랑길 위에 정자가 있는데, 대청호를 조망하기 좋다. 비가 오는 날이면 구름이 산허리에 걸리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 위로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비경이 드러난다고 한다.
정자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유럽식 건물 다섯 채가 보인다. 마치 유럽의 작은 성을 연상하게 하는 건축물들은 ‘아버지의 집’ ‘호수 위의 집’ ‘해 뜨는 집’ ‘달과 별의 집’ 등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중에서 달과 별의 집은 전망대 역할을 한다. 건물 꼭대기에 성탑 전망대가 있고 좁고 가파른 철제 사다리를 아슬아슬 딛고 올라서면 대청호와 학습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둘레길이 끝나는 지점은 분재원과 실내정원이다. 분재원에는 소나무 모과나무 소사나무 영산홍 등 500여 그루의 분재가 전시돼 있고 실내정원에서는 수련 가시연 연꽃 부레옥잠화 물양귀비 파피루스 등 다양한 수생식물을 감상할 수 있다.
카페에서 작은 교회당 이정표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 가파른 길에 계단을 따라 ‘달과 별의 집’에 닿는다. 이 건물 성곽 같은 곳에 오르면 학습원 모두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옥상으로 올라가면 다소 아찔한 철 계단이 있다. 평일에는 관리소에 이야기하고 올라야 한다.
천상의 정원에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교회’가 있다. 성인 4명만 들어가도 발 디딜 틈이 없다. 예배를 드리지는 않지만 일반 교회처럼 강대상과 예배 의자, 십자가까지 갖추고 있다. 교회 안에 설치된 통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대청호의 풍경이 화사하다.
천상의 정원은 모두 둘러보는 데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4~5월에 가장 많은 꽃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주중에는 한적하지만 주말에는 많은 이가 찾기 때문에 하루 방문자를 제한하여 사전예약자에 한해서만 입장할 수 있다. 평일에는 현장 예약도 가능하다. 입장비는 유아 3천원, 학생 4천원, 일반 6천원, 경로와 국가 유공자 5천원, 단체 5천원이다. /최병일 작가
옥천에서 더불어 가볼만한 곳 2선
△옥천성당과 정지용 생가
옥천역 근처에 있는 옥천성당은 충청북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40년대 천주교 성당이다.
옥천성당은 메리놀외방전교회 미국인 사제에 의해 건립된 성당으로 파스텔톤의 매혹적인 색감 때문에 사진 명소로 이름이 높다.
옥천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시 ‘향수’의 저자 정지용이 태어난 곳이다.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1번지에는 정지용의 생가가 잘 복원되어 있다. 두 개의 사립문과 부엌 딸린 안채, 행랑채 등 2동이 일자형 초가집으로 구성돼 있다.
△호수에 떠있는 산 ‘부소담악’
대청호가 품은 ‘천상의 정원’ 군북면 추소리에는 옥천의 명물인 부소담악(芙沼潭岳)이 있다.
부소무니 마을 앞 호수에 떠있는 산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700m에 이르는 암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 장관을 이룬다.
부소담악 능선에는 추소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안개 낀 날 아침에 부소무니 마을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을 담을 수 있다.
/최병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