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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떠나는 음악여행… 바다의 선율에 빠지다

등록일 2023-03-09 19:22 게재일 2023-03-1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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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음악감상실 ‘콩치노 콩크리트’
콩치노 콘크리트 감상실 창을 통해 본 임진강 풍경이 일품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음악은 끊임없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창문 너머 임진강에는 붉은 태양이 고요하게 강밑으로 내려앉았다.
콩치노 콘크리트 감상실 창을 통해 본 임진강 풍경이 일품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음악은 끊임없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창문 너머 임진강에는 붉은 태양이 고요하게 강밑으로 내려앉았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이고, 피곤한 삶이며, 유배당한 삶”이라고 말했다. 요즘 음악 애호가는 물론 막 음악 감상에 빠져든 20~40대 사이에 LP 음악 열풍이 불고 있다. 1970~1980년대 유행했던 LP 음악감상실이 곳곳에 다시 생겨나고, 중고 LP판이 고가에 거래된다. 지난 해 경기 파주에 지상 4층 규모의 대형 LP 음악감상실이 문을 열었다. 단일 규모로만 따지면 세계 최대 수준이라고 한다.‘노래하고 연주하며 화합하는 곳’이라는 뜻을 담은 콩치노 콩크리트(Concino concrete)라는 곳이다. 햇살이 눈부신 봄의 길목에서 음악과 함께 즐겁게 하루를 보내면 어떨까? 고통스럽고 지쳤을 때 음악으로 종종 위로받았다는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처럼 우리도 음악으로 치유받을 수 있지 않을까?

 

4층 규모…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

1930년대 ‘전설 명기’ 스피커 갖춰

음의 골격 잡아서 실재 음 들려줘

2층 내부는 오케스트라홀로 꾸며

◇1930년대 첨단기술 총합 웨스턴 일렉트릭

파주의 콩치노 콩크리트 앞에는 임진강이 유장하게 흐른다. 강줄기는 속절없이 평온하다. 임진강을 뒤로하고 콩치노 콩크리트 내부로 들어가니 물결처럼 음악이 쏟아져 들어온다. 콩치노의 첫인상은 잘 만들어진 콘서트홀 같다. 콘서트홀과 다른 것은 무대가 있어야 할 곳에 놓여 있는 거대한 스피커들이다. 826.45㎡ 규모에 객석은 테이블도 없이 모두 정면을 향하고 있다. 2층에는 콘서트장이나 오페라하우스 등에서 볼 수 있는 돌출된 객석까지 있어 오케스트라 홀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연주회장 정면에는 1930년대 전설의 명기로 소문난 웨스턴 일렉트릭 스피커가 세 개나 놓여 있다. 1930년대 당시 첨단기술을 총동원해 완성한 이 시스템은 워낙 거대해서 최소 1천500~3천석 정도의 대형극장에서 쓰였다고 한다. 80년 전 스피커라고 하지만 지금도 복각이 어려울 정도로 음질이 뛰어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현대의 최첨단 오디오 기기들이 현미경으로 음표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듯 음의 디테일을 강조한다면, 웨스턴 일렉트릭 스피커는 음의 골격을 확실하게 잡아주면서 자연스러운 실재 음을 들려준다고 평했다. 전문가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마치 연주회장에서 듣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했다.

 

전시돼 있는 축음기들.
전시돼 있는 축음기들.

◇좋은 음악 나누고자 건물 완공

웨스턴 일렉트릭 스피커 옆에는 대형 나무판처럼 생긴 유로노 주니어(Euronor Junior)라는 이름의 스피커가 있다. 독일의 물리학 박사인 칼 크뤼거와 콘스키 크뤼거 형제가 만들었다. 유로노 주니어는 높이 3.5m, 너비2.6m에 무게는 150㎏이나 되는 대형 스피커로, 주로 독일의 1천500석 이상 대극장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공습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고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드물다. 콩치노 콩크리트의 설립자인 오정수 원장은 우연히 독일 남부도시를 여행하던 중 한 극장에 설치된 유로노 주니어 스피커를 발견했다. 오 원장이 비싼 값을 치르고 한국으로 가져오려 하자 독일 당국이 문화재라는 이유로 반출을 막았다. 유로노 주니어 스피커는 무려 한 달이나 독일 공항에 압류돼 있다가 겨우 들여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음악인도 아닌 오 원장이 콩치노 콩크리트 같은 거대한 콘서트홀을 지은 것은 음악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10대 후반부터 음악에 푹 빠져 살았던 그는 돈만 모으면 오디오 기기를 사는 음악 마니아였다. 처음에는 소니의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다가 오디오 기기의 하이엔드라는 마크 레빈슨, 골드문트, 자디스 같은 최고급 오디오 기기를 섭렵했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빈티지 기기인 웨스턴 일렉트릭을 알게 되면서 사자고 마음먹었다. 또 이 빼어난 소리를 혼자 들을 게 아니라 넓은 공간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졌다.

콩치노 콩크리트에 설치된 독일제 클랑필름 유로노 주니어 스피커.
콩치노 콩크리트에 설치된 독일제 클랑필름 유로노 주니어 스피커.

‘아시아의 인어’로 불렸던 전 수영선수 최윤희의 언니이자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 배영 은메달리스트인 부인 최윤정 씨도 남편의 계획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콩치노 콩크리트 콘서트홀의 대표이기도 한 최씨는 “콩치노 콩크리트에서 LP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넘어 실제 공연도 열고, 음악 영화도 보여주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음악은 끊임없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창문 너머 임진강에는 붉은 태양이 고요하게 강밑으로 내려앉았다.

운영 시간 월·화·금요일 오후 2~7시, 토·일요일 정오~오후 7시(수·목요일 휴무, 대관 시 임시휴무), 입장료는 2만 원이다.

 

카메라타에 전시된 고낙범 작가의 작품.
카메라타에 전시된 고낙범 작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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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용의 카메라타

카메라타는 파주 헤이리예술마을 7번 게이트 앞에 있다. 2004년 이곳에 둥지를 틀었으니, 벌써 20년이 돼간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음악 애호가들에게 ‘최고’라는 찬사를 받아온 건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카메라타로 떠나는 음악 여행은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 구석에 있는 작지만 묵직한 철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새로 산 음반에 첫 바늘 올릴 때처럼 ‘지지직’기분 좋은 긴장감이 밀려온다.

실내는 공연장처럼 꾸몄다. 의자는 모두 정면을 향해 가지런히 놓였고, 전면에 있는 그랜드피아노 뒤로 빈티지 스피커가 늘어섰다. 독일 클랑필름 스피커가 중심을 잡고, 미국 웨스턴일렉트릭에서 제작한 극장용 스피커가 양옆에 포진했다.

카메라타에 전시된 1920년~1930년대 극장용 스피커들.
카메라타에 전시된 1920년~1930년대 극장용 스피커들.

두 스피커 모두 1920~1930년대 제작했으니 나이가 100살에 가깝다. 천창으로 스미는 따스한 봄 햇살이 실내를 채운 감미로운 클래식 선율과 잘 어울린다.

원하는 자리에 앉아 음악에 집중하면 된다. 아니 가끔 책을 읽거나, 눈을 감고 명상해도 좋다. 향 좋은 차 한 잔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음악 평론가가 될 생각이 아니라면 ‘난 클래식을 모르는데’같은 걱정은 접어두자. 중·장년층이라면 황인용이라는 이름 세 글자로도 이 공간에 머물 이유가 충분하다. 색채가 강렬한 초상화로 유명한 고낙범 작가와 독특한 콜라주 기법을 선보이는 김상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호사는 덤이다. 카메라타(camerata)는 ‘예술인의 모임’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문학동네와 협업하는 ‘이달의 책’에 소개된 책은 3층 아담한 서재에서 읽을 수 있다.

 

대중목욕탕을 리모델링한 카페바스.
대중목욕탕을 리모델링한 카페바스.

△김광석 흔적 찾기 파주 이등병마을

대중음악의 상징적인 인물인 고(故) 김광석의 노래인 ‘이등병의 편지’를 모티브로 꾸민 이등병 마을도 같이 들러볼만하다.

이 곡은 파주시 광탄면 출신 김현성이 작사·작곡했다. 김광석에 앞서 전인권이 리메이크해 불렀으니, 비교해 들어봐도 재밌다.

마을에는 정겨운 골목을 따라가는 편지길, 이등병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 바스 등이 있다.

'이등병의 편지' 모티브로 꾸민 이등병마을.
'이등병의 편지' 모티브로 꾸민 이등병마을.

대구시 동성로에도 김광석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방천시장 옆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는 한 시대를 보듬은 뮤지션의 온기가 묻어나고, 동성로 하이마트음악감상실에는 긴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공간의 향수가 전해진다.

/최병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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