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아프거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출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 근로자가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장기간 일을 쉬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하는 걱정은 생계에 대한 어려움이다. 대다수 직장인은 다달이 나가야 하는 고정비와 생활비 등을 생각하면 쉽게 쉴 수가 없다. 그래서 ‘아파도 참고’ 출근한다.
노동자의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해주는 상병제도는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일부 주 제외)을 제외하면 모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운영하고 있다.
한국도 뒤늦게 일련의 연구와 자문을 거쳐 ‘한국형 상병수당’의 1단계 시범사업이 6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됐다. 한국형 상병수당 제도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로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아픈 노동자가 소득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인 만큼 해당 제도의 필요성과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사례 1. 근로자 A씨 “의사 선생님은 당분간 일을 쉬고 치료에 집중하자고 하는데, 생계 걱정에 아픈 걸 참고 일하다 보니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어요….”
# 사례 2. 택배노동자 B씨 “다리를 다쳐서 어쩔 수 없이 몇 달간 일을 쉬게 되었는데, 모아 놓은 돈도 떨어져 가고 막막하네요….”
# 사례 3. 직장인 C씨 “가슴에 멍울을 발견했는데, 혹시라도 큰 병이면 일을 그만두고 소득도 없어질까 봐 두려워요….”
아픈 근로자 상당수 생계 등 우려에
참고 일하다 질병 중증화사태까지
복지부, ‘상병수당’ 1단계 시범사업
작년부터 6개 기초자치단체서 시작
업무 외 질병·부상으로 경제활동 고통
6개월간 2천928건 평균 81만원 지급
2단계 소득 하위 50% 취업자 지원
2025년 3단계 보편적 시범사업 목표
□ ‘아프면 쉬기’가 생소한 사회
16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근로자라면 누구나 소득 수준과 근로형태와 관계없이 아파서 일할 수 없는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다.
전체 취업자의 35%가 1년 내 일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병을 경험했고, 특히 소득수준이 낮고 안정적 일자리가 아닐수록 더 많이 나타나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 2019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천967시간으로 OECD 평균(1천726시간)을 훨씬 웃돌고 있었다. 이는 OECD 가입국 중 무려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반면 아파서 휴식을 취한 일수는 한국이 2일로 가장 적었으며 미국 4일, 프랑스 9.2일, 독일 11.7일, 벨기에 12.3일을 기록했다.
이들 근로자 중 64%는 아파도 휴식이 어려웠던 경험이 존재했고,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아파도 참고 일하는 분위기’를 지목하고 있었다.
□ 아파도 쉬지 못해…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
아픈 근로자의 약 30%는 제때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이유로는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43%)가 가장 많았고, 소득 상실에 대한 우려(18%), 실직·폐업 우려(10.7%) 등의 순이었다.
이같은 상황은 질병 중증화로 인한 의료비 상승과 치료기간의 장기화를 유발했다.
근로자가 아파도 참고 일을 하게 되면 사업주 또한 노동의 생산성 손실 및 질병악화로 인한 조기 퇴직이 발생하고, 그로 인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등 악영향이 연쇄적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 코로나19가 일깨운 ‘아프면 쉴 권리’
최근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근로자의 아프면 쉴 권리 보장 및 감염병 확산 방지 차원에서 상병수당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대두하고 있다.
특히 단계적 일상회복의 정착을 위해서는 감염병 증상 발견시 집에서 바로 휴식하면서 타인 접촉 및 감염확산 차단이 필요했다.
이같은 상황이 발생하자 일선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질병을 제때 충분한 치료를 통해 치료하는 건강권 확보가 중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근로자들이 아플 때 소득상실 걱정 없이 적시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지원하도록 해 질병의 중증화·만성화 방지 및 추가 의료비용 감소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아픈 근로자의 무리한 출근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방지하고, 질병 악화로 인한 조기 퇴직사례를 줄여 기업의 비용절감을 유도했다.
□ 상병수당이란
‘상병수당’은 근로자가 업무 외 질병·부상 발생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운 경우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전해 주는 사회보장제도를 뜻한다.
다만 법정 유급병가 등이 보장되는 공무원·교직원, 자동차 보험 적용자, 해외 출국자 등도 상병수당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고용주로부터 유급병가가 보장된 근로자는 해당 유급병가와 중복 수급은 불가하며 유급병가 소진 후 상병수당을 신청할 수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7월 상병수당 1단계 시범사업을 △서울 종로구 △경기 부천시 △충남 천안시 △전남 순천시 △경북 포항시 △경남 창원시 등 6개 지역에서 추진해왔다.
6개월간 상병수당 신청 건수는 모두 3천856건으로 집계됐으며, 이중 2천928건이 지급됐다. 평균 지급 일수는 18.4일, 평균 지급금액은 81만5천원이었다.
□ 상병수당 도입 추진방향
보건복지부는 오는 2025년에 보편적 상병수당 제도 도입을 목표로 ‘3단계 시범사업’과 ‘사회적 논의’ 추진 중이다.
2단계 시범사업에서는 소득 하위 50% 취업자에 대한 집중 지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복지부는 2단계 시범사업 지역은 공모를 통해 선정할 예정이다. 전액 국비 지원이 이뤄지며, 관련예산은 204억3천300만원이다.
2단계 상병수당 시범사업 지원 대상의 기본자격은 시범사업 지역에 거주하거나 시범사업 지역 내 사업장에 근무하면서 15세 이상 65세 미만의 대한민국 국적자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추진방향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세부 운영방안 마련을 위해 ‘상병수당 시범사업 기획단’을 구성 및 운영해 심층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며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각 분야 전문가, 현장관계자 등을 중심으로 대상자의 기준, 신청절차 및 제출서류, 의료인증 방법 등을 확정해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이시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