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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컨벤션을 넘어서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 겁니다”

등록일 2023-04-17 19:49 게재일 2023-04-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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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가 만났다<br/>이상길 대구 엑스코 사장
이상길 대구 엑스코 사장
이상길 대구 엑스코 사장

대구가 국제도시에 걸맞은 위상을 굳히고 있는 바탕에는 엑스코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대구 엑스코는 대형 국제회의와 전시회를 유치, 개최해서 대구 지역 경제 활성화와 도시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대구 엑스코의 창립에서부터 기공까지 전 과정을 주무 사무관으로 총괄해 온 이상길 엑스코 사장(전 대구시 행정부지사)이 엑스코 창립 27년 만에 엑스코 사장으로 와서 엑스코의 한 단계 도약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 사장은 대구 엑스코를 전시 컨벤션을 넘어서는 대구의 대표 복합 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1994년 공직 첫 프로젝트가 엑스코 설립… ‘시절인연’인 듯 30년 만에 진두지휘 맡아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 달성은 세계가스총회 개최·기업 참여 확대 등 경영혁신 성과

연 300만명 방문 목표 설정… 지역기업 활로 개척 지원·마이스산업 육성에 매진할 터

-대구에 엑스코가 있어 자랑스럽다. 엑스코의 가장 큰 역할은 무엇인가.

△지역 기업과 산업의 판로 개척과 글로벌 진출을 위한 가교 역할을 엑스코가 하고 있다. 엑스코는 전시·컨벤션을 통해 지역 기업들이 정부 정책과 산업별 역점 사업들을 한눈에 확인하고 산업 트렌드에 따른 맞춤형 기술과 제품 개발, 제도적·금전적 지원책을 찾을 수 있게 한다. 지역 산업에 특화된 전시회와 컨벤션을 통해 국내 산업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행사가 열리면 전 세계인들이 대구로 모여 비즈니스 교류뿐만 아니라 숙박, 식도락, 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소비 활동이 이루어져 경제적 파급효과뿐 아니라 대구의 도시 브랜드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엑스코의 성과를 구체적으로 들어보면 어떤 것들이 있나.

△연간 130건 이상의 전시회를 포함하여 2천건 이상의 콘서트, 이벤트, 학회 등 각종 행사가 개최되고 250만명이 방문하는 지역 대표 전시컨벤션센터로 역할 하고 있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3년 세계에너지총회, 2015년 세계물포럼, 2019년 세계뇌신경과학총회 등 수많은 국제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특히 2021년 엑스코 확장 개관 이후에는 2022년 세계 3대 가스산업회의인 세계가스총회와 전 세계 30만 농업관계자들이 모이는 국제농기계자재박람회 등 대형 전시회의 유치와 개최가 이뤄졌다. 지난해에는 엑스코가 2천19건의 행사를 개최해 매출 328억원, 영업이익 13억원, 당기순이익 25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어렵다고들 했다. 엑스코도 많은 적자를 냈다는데 사장이 바뀌었다고 그렇게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시기적으로 코로나19 상황에서 벗어난 것이 결정적 도움이 됐다. 그리고 세계가스총회라는 정부 사업을 엑스코가 개최했던 것이 영향이 컸다. 또 홍준표 대구시장의 취임 이후 전시회에 삼성이나 LG, 현대 등의 대기업 본사들이 참여하면서 개막식에도 본사 사장들이 직접 참석하는 등 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기업들도 시 보조금 사업으로 참여하던 전시 행사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수익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회사 스스로 경영혁신 개혁을 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지난해 9월 취임하고 이제 반 년 지났다. 그동안 경영혁신을 어떻게 했나.

△먼저 나 자신부터 희생하는 솔선수범으로 시작했다. 사장의 연봉을 40% 깎아 버렸다. 그리고 내가 엑스코를 설립 당시 마련했던 사장 관사를 내손으로 없앴다. 그러니 내 연봉의 절반은 깎인 셈이다. 그리고는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부서장 직급을 30% 줄이고 위계적인 수직적 조직을 업무 중심의 수평적 조직으로 바꿨다. 물론 이런 엄청난 개혁은 직원들의 사전 동의를 얻어서 실행했다. 그래서 갈등 없이 추진할 수 있었다.

-엑스코 사장으로 온 것을 시절인연이라 그랬다. 엑스코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졌나.

△1994년 대구전시컨벤션센터(대구 엑스코 전신) 건립 업무를 맡은 것이 첫 인연이다. 나로서는 공직의 첫 프로젝트였다. 서울의 코엑스 외에는 지방에 컨벤션센터가 없던 때였는데 대구전시컨벤션센터 건립을 위해 싱가포르, 홍콩 등 MICE 선도국 사례들을 벤치마킹해서 국비를 확보하고 기공식을 열기까지 총 과정을 맡아 수행했다. 1995년 엑스코 설립을 시작으로 대구시 기획관리실장, 행정안전부 지방재정정책관, 대구시 행정부시장, 대구예술문화대학장, 민선 8기 대구시장직 인수위원장을 지내며 지방행정과 문화예술산업에 대한 경험을 축적해왔다. 그리고 엑스코 설립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엑스코 사장으로 왔으니 시절인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엑스코 건립 과정에도 사연이 많았을 것 같다.

△대구에 전시컨벤션센터를 건립하게 된 것은 정치적 결정이 뒤따른 것이긴 했다. 당시 김용태 내무부장관이 국비 200억원을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건립 계획을 수립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계장인 내가 500억원으로 올려서 조해녕 시장의 결재를 직접 받아냈다. 여기에다 당시 밀라노프로젝트 자금 200억원을 끌어오는 묘안도 찾아냈다. 공단으로 설립하지 않고 주식회사로 출발하면서 민간자본 50% 이상을 확보하기 위해 대구시내 7개 유력 건설사의 공사대금을 출자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민간 자본의 출자 여력이 한정된 상태에서 대구시의 우회 출자나 보조금은 감사 지적사항이 되어 담당자의 징계라는 악순환이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새로 제정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출자제한 규정인 지방공기업법 79조2항을 폐지하는 성과도 올렸다. 돌이켜보니 공무원이 법 개정은 하는 수가 있어도 법 제정은 정말 어렵고 힘든, 대단한 성과였다.

-일을 열정적으로, 또 확실하게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엑스코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설립 당시 국비를 확보하기 위해 협의할 때 담당 서기관이 기획재정부에 예산서 제출을 앞두고 휴가를 가버린 적이 있었다. 그는 장관 지시에도 ‘장관은 1년이면 바뀌지만 나는 30년 공무원 생활을 해야 한다’며 거부했고 그는 다른 자리로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식으로 담당 서기관이 3번이나 바뀌고 예산도 통상산업부 수출과에서 중소기업과를 바뀌는 등 곡절을 겪어가며 기공식을 할 수 있었다. 한여름 사무실에 에어컨도 없었는데 너무 더워 저고리를 벗고 런닝셔츠 바람으로 일하다 그대로 국장실로 불려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광경을 본 선배 국장이 ‘건방지다’고 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오해가 풀리기도 했다.

-대구시 체육과장으로 있으면서도 큰일을 맡아 해냈다.

△나는 선례가 없는 일을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이 많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업들을 맡았으니 시장들이 나에게 (믿고) 맡긴 것이다. 체육과장으로 임명된 것은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과 대구시민축구단을 창단하는 것이었다. 월드컵과 유니버시아드 대회라는 국제 대회를 무사히 치렀다. 대구FC는 전국 최초의 시민구단이었다. 그 때 열렬한 축구팬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구의 축구경기를 자주 참관했다. 그럴 때면 표를 100장, 200장씩 주문하곤 했으며 한 번도 외상없이 깔끔하게 표 값을 정산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재임 시절 장관들이나 학교 동창 등과 구경을 했을 것으로 알고 있다.

-업무를 추진하다 보면 때로는 원칙보다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있을 것 같다.

△대구무역센터 건립 건축 설계공모 당선작 번복 사건이다. 당시 심사위원들이 결정한 설계작을 불과 몇 시간 만에 번복한 서류를 들이밀어 접수를 거부했다가 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결국 당사자들이 구속되고 사건을 되돌렸지만 원위치하기까지 8달이나 걸렸고 이 사태를 수습하느라 개인적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원칙에는 분명하고 강하게 대처한 것이다.

-선비정신을 이야기한 책도 냈다.

△젊은 사무관이었던 시절, 당시 시장님(조해녕)의 ‘대구 정신 정립 필요성’에 대한 훈시를 듣고 생각을 거듭해왔다. 대구시와 중앙정부를 오가며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강의와 세미나 등을 통해 대구를 알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대구의 원형은 선비정신이라고 결론내렸다. 사물의 본질과 명분, 의를 바탕으로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이를 실천하는 정신을 선비정신이라고 생각하고 대구가 선비정신의 본향이라고 생각해 왔다. 시민들이 대구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대구가 창조적 에너지를 바탕으로 새롭게 도약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책을 썼다.

-엑스코의 주변이 상권도 형성되지 않았고 환경도 삭막해 행사가 끝나면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썰렁해진다.

△내가 취임하고 굉장히 중점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 바로 주변환경 정비다. 엑스코의 전시 컨벤션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노력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외에도 주변경관 개선과 야외광장 컨텐츠 마련 등으로 대구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동관에는 실내 조경을 개선하고 서관에는 생활밀착형 숲을 조성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하려 한다. 최근에는 야간에도 엑스코 주변을 산책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엑스코는 대구시민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엑스코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공연문화 진흥을 통해 대구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촉매제이며 시민들은 관심과 참여를 통해 엑스코의 존재 가치를 만들어 준다. 서로 동반성장을 이끌어가는 ‘상생관계’라고 생각한다. 엑스코는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된 전시 컨벤션의 지속적인 개최를 통해 지역과 동반 성장하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품격 있는 시설과 개최능력을 통해 국제회의 도시로서의 면모를 세계에 과시하며 대구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 힘써왔다. 엑스코는 시민들의 경제활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문화예술 향유 기회 확대를 통해 대구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 왔다고 생각한다.

-엑스코의 미래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지금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엑스코는 시민들이 찾아오고 싶은 문화예술의 중심지이자 복합 문화공간으로 연중 300만명이 방문하는 대한민국 글로벌 전시컨벤션센터로 도약하는 것이다. 설립 30주년이 되는 2025년까지 가동률 55%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엑스코는 문화 예술 관광 등 다양한 분야를 포함한 마이스 산업의 핵심 인프라다. 엑스코가 전시와 컨벤션을 통해 대구시의 정책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 기업의 활로 개척을 지원하고 마이스산업 육성에 노력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문화행사를 통해 대구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고 시민과 대구시 간의 간격을 줄이는 데도 힘쓸 것이다.

 

□ 이상길(李相吉·59)

· 경북 고령 출신

· 성광고. 경북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학과 석사. 미 시라큐스대 맥스엘스쿨 석사(행정학과).

· 35회 행정고시 합격.

· 행정안전부 지방재정세제실 과장, 지방재정정책관.

· 대구광역시 기획조정실장, 행정부시장.

· 민선8기 대구시장직 인수위원장.

· 계명대학교 사회과학대 특임교수.

· 경영혁신대상(2023년 1월, 한국신문방송인협회).

· 녹조근정훈장(2004년).

· 젊은 사무관 시절 물불 안가리고 앞으로 전진한 도전형 행정가.

·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대구시에서 22년, 중앙부처에서 8년을 근무했다.

· 엑스코(대구전시컨벤션센터) 건립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주무 사무관으로 선례 없고 추진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를 도맡았다. 대구FC 창단, 첨복재단 등 주요기관 설립, 2002 대구월드컵경기장 건립, 2003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등 성공적 개최를 통해 행정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경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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