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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소울리스좌를 따라 하는 이유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옷 머리 신발 양말 다~다 젖습니다. 물에 젖고 물만 맞는 여기는 아마존 아! 마! 존조로존조로존~!”최근 게시된 지 2개월여 만에 유튜브 조회 수 1천922만 회를 기록한 동영상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인기몰이의 주인공은 유명 놀이공원의 전직 캐스트(기간제 노동자)인 김한나 씨다. 그녀는 본명보다 ‘소울리스좌(soulless座)’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해당 동영상은 ‘아마존 익스프레스’라는 놀이기구 체험에 대한 안내 멘트를 랩으로 표현한 것이다. 흥겨운 랩이 전달하는 유일한 주제는 ‘이 보트를 타면 젖는다’이다. 무심한 눈길과 기계적인 몸짓의 래퍼는 또렷한 발음으로 ‘주의 사항(물에 젖음)’을 2분 30초 동안 재미있는 가사로 전달한다.소울리스좌는 ‘영혼 없이(soulless) 일하면서 최고의 경지(본좌·本座)에 오른 직장인’을 뜻한다. 얼핏 들으면 부정적이면서 속되게 느껴지는 이 말이 2030세대 직장인들에게는 큰 공감을 얻으면서 긍정의 프레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감정노동자에게 ‘소울리스’는 마음의 에너지를 균형 있게 조절하는 방법으로 인식되기도 한다.필자는 주변의 2030세대에게 소울리스좌 현상에 대해 물어보았다. 청년 직장인들은 주어진 업무는 능숙하게 수행하지만, 감정과 에너지는 절제하는 캐릭터로 소울리스좌를 인식하고 있었다. 평생직장을 바라기 힘든 사회 여건과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은 상황도 젊은 세대가 소울리스좌에 공감하는 원인 같았다.그렇다면 김한나 씨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BBC 뉴스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김 씨는 “영혼이 없다는 것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최적의 효율을 찾아서 일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현재는 그 결과물이라고 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밝고 환했다.소울리스좌 현상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프로페셔널’의 의미를 재정의해 주고 있다. 출중한 능력과 무한한 열정이 조화를 이룬 사람을 프로라고 한다면, 소울리스좌는 무언가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네티즌이 “목소리는 힘차지만 눈에 영혼이 없는 그녀는 프로다”라고 쓴 댓글처럼 청년 세대의 가치관은 바뀌고 있다.소울리즈좌는 사람들에게 ‘따라 하기’의 욕망을 부추긴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가사와 흥겨운 리듬을 따라 하지만, 점차 자신의 영혼은 안녕한지 돌아보게 된다. 영혼이 없어 보이는 표정에서 ‘내 영혼은 소중히 지킨다’는 무언의 다짐을 읽어 내기도 한다. 23세의 소울리스좌가 젊은 직장인들에게 일종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김한나 씨는 현재 같은 직장의 홍보팀으로 자리를 옮겨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동안 ‘소울리스좌 열풍’은 계속될 듯하다. 어쩌면 2030세대의 인식은 이미 변화하고 있었고, 소울리스좌 현상은 때마침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소울리스’가 ‘번아웃’의 대안으로 우리 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을까. 청년 세대의 영혼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2022-06-15

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포항은 어떤 도시일까.포스코가 등장하여 국가산업화의 중심지역이었다.반세기가 지난 오늘, 지역이 포스코만으로 버틸 수가 없다. 상상과 창의를 발휘하여 새로운 포항을 만들어야 한다.디지털이 초래한 초연결사회(Superconnected Society)를 맞아 국내뿐 아니라 세계와도 함께 호흡하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최근 보이는 포항의 변화를 반기면서도, 보다 역동적인 탈바꿈을 이끌어 세상이 주목하는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 지역의 자연조건과 문화토양은 더할 나위없이 탁월하다. 천혜의 바다와 수평선은 낭만과 향수를 부르기에 충분하고 풍성한 문화적 자산은 오늘의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문화와 관광에 차별화와 탁월함을 보태면 포항은 세계 굴지의 중심도시로 도약하기에 손색이 없다.첫째, 전통문화에 기반을 둔 콘텐츠가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다음세대’와 ‘글로벌관객’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지역이 초연결사회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콘텐츠적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전통콘텐츠를 발굴하는 일이 소중한 만큼, 오늘 관객들이 환호하려면 새롭게 각색하고 연출하여 다양한 플랫폼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우리가 가진 문화원형이 가장 뿌리깊은 가능성을 가졌음은 분명하다. 문화원형을 내일의 콘텐츠로 재탄생시켜야 할 책임이 오늘 우리에게 있다. 포항과 지역이 가진 문화적 토양은 그럴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우리의 옛것을 미래자산으로 변화시킬 상상력이 필요하다.둘째, 문화도 개발해야 한다. 전통문화만 문화일까. 오늘 이 자리에서도 문화는 숨쉬듯 움직이며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완전한 새것을 기대하기 보다 이미 있었던 것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신박하게 연결하여 이전에는 없었던 신선한 무엇을 탄생시켜야 한다. 아이폰이 그랬고 BTS가 보여주고 있다. 모방과 추격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창의와 상상력으로 ‘다음문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신선한 충격은 문화와 트렌드가 불러와야 한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미래를 찾도록 유도하려면 그들의 싱싱한 생각과 느낌에 공감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문화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셋째, 글로벌환경에 주목해야 한다. 나라 안 경쟁의 틀을 넘어야 한다. 세계적 트렌드와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우리 문화의 디테일을 다듬어야 한다. 세계적 콘텐츠를 겨냥하는 포항의 문화를 탄생시켜야 한다. 세상의 벽은 의외로 낮았다. 한국문화는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라서 있다. 지역의 콘텐츠가 글로벌 맥락에 통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국내 다른 도시들과 협력과 협업도 진행하면서 적극적인 문화적 세계화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도시와 지역들 뿐 아니라 세계시장의 브랜드들과도 연계와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가야 한다.‘다음포항’의 열쇠는 ‘포항문화’가 열어갔으면 한다. 포항이 만들어 보여주는 문화콘텐츠가 도시브랜딩의 새 길을 제시했으면 한다. 상상과 창의로 승부해야 한다. 문화가 살아야 지역이 살고,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06-15

택시합승제

15일부터 택시합승제가 시행돼 40년 만에 택시 합승이 가능하게 됐다. 국토교통부는 플랫폼택시 합승 허용기준을 마련하는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이 이날부터 시행된다고 발표했다.현재 서울에서는 지난 2019년부터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해 코나투스가 심야시간대에 ‘반반택시’를 운영하고 있어 앞으로 ‘반반택시’는 정식 서비스가 가능하게 됐다. 우선 합승 중개는 승객 모두가 플랫폼을 통해 신청한 경우에 한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신청한 승객의 본인 확인을 거친 후 합승을 중개해야 한다. 즉 길거리에서 임의로 합승 승객을 태울 수 없다는 의미다. 또 합승하는 모든 승객이 합승 상대방의 탑승 시점과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앉을 수 있는 좌석 정보도 탑승 전에 승객에게 알려야 한다.동성(同性) 간의 합승도 시행된다. 경형·소형·중형택시 차량을 통한 합승은 같은 성별끼리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단 대형택시의 경우 성별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차량 안에서 위험 상황 발생 시 경찰 또는 고객센터에 긴급신고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춰야 하며, 신고방법을 탑승 전에 승객에게 알려야 한다.만일 기존의 플랫폼가맹 또는 플랫폼중개사업자가 합승 서비스를 운영하려는 경우에는 승객 안전·보호 기준을 갖춰 관할 관청에 사업계획변경을 신청해야 한다. 플랫폼가맹 사업자의 경우 합승 서비스를 1개 시·도에서만 하려는 경우에는 해당 시·도, 2개 이상 시·도인 경우에는 국토교통부에 신청하면 된다.단 플랫폼중개사업자는 합승 서비스 운영지역과 상관없이 국토교통부에 신청해야 한다. 플랫폼 택시 서비스에 합승이 허용되면 심야택시 승차난을 일부 완화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6-15

송해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송해 할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덕분에 행복했어요. /연합뉴스 송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선생님이나 어르신 등 여러 호칭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누구에게 “할아버지!” 부른 일이 없었다. 슬픔과 애틋함, 그리고 사랑을 담아, 할아버지! 참 오랜만에 불러본다. 송해 할아버지… 할아버지!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송해 할아버지가 오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주무시는 할아버지의 코에 손을 갖다대보는 어린 손자처럼, 조마조마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온 국민이 다 그랬다.여섯 해 전 죽도시장 ‘울릉도 돼지집’에서 머릿고기에 탁주 마시는데, 주인 할머니가 울상이었다.송해 할배 돌아가셨대서 시장 사람들 다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헛소문이래요. 멀쩡하시대요” 말씀드리자 옆집 아주머니에게 “만우절도 아닌데 왜 거짓말해! 악썽루머 싸이버 수사대에 의뢰한단다!” 역정을 냈다.그 모습이 재밌어 큭큭 웃었다. “건강하단다! 어이고 오래 살겠다!”라던 돼지집 할머니 예언대로라면 백 살은 넘기셨어야 하건만, 너무 일찍 가셨다. 코로나로 야외 공개방송이 중단되면서 에너지를 잃어버리신 게 아닌가 싶다. 계속 팔도를 돌아다니며 무대에 올랐다면 10년은 더 사셨을 것이다.장수의 아이콘이셨다. 제임스 딘, 엘비스 프레슬리, 체 게바라, 레이 찰스보다 형님이고, 그레이스 켈리에게는 오빠이자 마릴린 먼로에게는 한 해 아래 동생이셨다. 백 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으니 천수를 누리셨다. 말년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받으며 고생하다 가신 것도 아니니 어찌 보면 호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황망하고 먹먹한 것은, 그분은 정말 천 년 만 년 사실 줄 알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실 줄로만 알았다.어린 시절, 일요일 정오가 되면 늘 “전구우욱~! 노래자랑!” 외치는 소리와 함께 “딴따단 딴따단딴” 흥겨운 오프닝 음악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도 “전구우욱~!”, 엄마랑 동네 국수집에 잔치국수 먹으러 가도 “노래자랑!”, 친구네 집에 놀러가도 “딴따단 딴따단딴”, 쌀집에 떡 찾으러 심부름 가도 “딩동댕동” 어느 곳에서나 ‘노래자랑’이었다. 괜히 ‘전국’이라는 총체성의 명사가 붙은 게 아니다. 앞집, 옆집, 뒷집, 너 나 아무개 할 것 없이 누구나 틀어놓는 프로그램, 안 봐도 틀어놓는 프로그램이 ‘전국 노래자랑’이었고, ‘일요일의 남자’ 송해 할아버지의 익살맞고 다정한 음성은 공기처럼, 물처럼 늘 있는 것이었다.온몸에 꿀벌을 두르고 무대에 오른 양봉업자 아저씨 때문에 벌에 쏘이기도 하고, 짜디짠 어리굴젓을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어주는 아주머니 손길을 거절 못해 우물우물 잡수기도 하고, 김인협 악단장(2012년 별세)에게 용돈을 갈취(?)해 어린아이들 나눠주기도 하고, 때로는 꼬마아이와, 때로는 백 세 어르신과 함께 덩실덩실 춤추기도 하셨다.‘전국 노래자랑’에는 각 지역의 고유한 특색이 늘 살아 숨 쉬고, 가족과 이웃 공동체의 따뜻한 온정이 있고, 서민의 웃음과 눈물, 삶의 애환과 고락이 흥건했다. 전국 노래자랑이 방영되는 일요일 점심이면 온 나라가 다 시장터고, 약수터고, 광장이고, 가설무대였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요양병원에 오래 누워 계셔서 이제는 보지도, 거의 듣지도 못하는 나의 할머니께서 ‘테레비’에 나오는 사람 중 가장 좋아하는 분이 송해 할아버지셨다.문맹인데다 눈과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당신이 아는 기초적이고 직관적인 언어를 조합해 의미를 만들곤 하셨는데, 매주 일요일 정오가 되면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 이름 대신 늘 ‘산에서 노래하는 거’ 틀어달라고 내게 부탁하시곤 했다.“그 할아버지 웃겨 죽겠어”라며 박장대소하던 할머니와 함께 계란을 삶아 까먹던 그 일요일,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그 모든 일요일들에 언제나 송해 할아버지가 계셨다. 이제 요양병원 면회가 허용되지만, 할머니 귀에 보청기를 껴 드리고 “할머니!”하고 불러볼 수 있지만, 송해 할아버지 소식은 차마 전하지 못할 것 같다.모두의 할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드려야겠다. 송해 할아버지 편히 쉬세요. 덕분에 행복했어요.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천구우욱~! 노래자랑!” 신나게 외쳐주세요. 이땅의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웃을게요.

2022-06-14

오늘도 나마스떼

요가에서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언스플래쉬 일상이 고되게 느껴질 땐 매트 위로 오른다. 유튜브 즐겨 찾기에 저장해둔 요가 영상을 틀면 잔잔하고도 낮은 선생님의 음성이 수련의 시작을 알린다.요가는 몸의 상하좌우를 균일하게 늘리는 스트레칭으로 시작한다. 어느 한쪽의 방향에 치우치지 않게 몸의 오른쪽을 늘리면 그 다음은 왼쪽을 늘린다. 일직선으로 서 있는 ‘타다이사’나 자세는 머리부터 시작해서 어깨, 골반, 무릎, 발끝까지 일자로 곧게 버티고 서 있는다. 어느 부위 하나 불룩 나오거나 들어가지 않게 힘을 주어 반듯함을 유지한다.소 자세인 ‘비틸라아사나’와 고양이 자세인 ‘마리쟈아사나’, 테이블 자세 등 순서에 맞춰 자세를 취한다. 상체를 길게 늘어뜨려 근육에 자극을 주거나 느슨하게 푸는 이완을 반복하며 몸의 신경이 구석구석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정강이와 종아리 순으로 자극을 옮기고, 오른쪽 손바닥에만 무게를 집중하는 등 의도한 대로 힘을 분산시켜 내 몸에 크고 작은 부위가 자리하고 있음을 느껴본다. 신경이 세밀하게 자리하고 있음이 느껴질 때면 살아있다는 감각이 생생히 전해져서 만족스럽다.요가는 겉으로 매우 정적인 듯 보이면서도 굉장히 동적이다. ‘8개의 가지’란 뜻을 지닌 ‘아쉬탕가’는 60가지 이상의 시퀀스를 쉬지 않고 빠르게 이어서 동작한다. 아직 수련이 부족한 난 뻣뻣한 몸으로 겨우 몇 가지 동작만 해내고, 이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흠뻑 땀으로 젖어 기진맥진해버릴 정도다.주로 즐겨하는 ‘빈야사’는 산스크리트어로 연결하다란 뜻을 가졌다. 다양한 동작을 자유로운 흐름으로 이어가는데 개인적으로 아쉬탕가보다 조금 수월하게 느껴진다. 흐름에 맞추어 동작을 행하다 보면 꼭 안무를 추는 것 같기도 하다. 반복적이지만 리듬이 있고 이야기에 기승전결이 있듯 순서에 따라 동작에 깊이감이 존재한다.이외에도 정말 많은 요가 종류가 있지만, 유튜브 영상 속 선생님께선 수련을 할 땐 늘 새로운 경험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매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그럴 때 일수록 움직임 하나하나를 각기 다르게 바라보고 느끼도록 연습해야 한다고 하셨다.하나의 자세를 새롭게 바라보고 임하는 것. 사실 요즘 나의 근황은 썩 좋지 못했다. 비슷한 나날과 비슷한 감정으로 존재하는 동안 나 스스로를 방치하다시피 살아갔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절실히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힘을 응축시킨 채 웅크려 있었다. 그러던 와중 익숙한 것에서의 낯섦을 찾으며 매번 새로움을 경험하고 수련해야 한다는 영상 속 요가 선생님의 말씀에 얼마나 크게 안도했는지 모른다. 본격적으로 요가를 배우고 싶어 최근 집 근처에 위치한 학원에 등록했다. 총 16명이 모이는 오전반으로 아침부터 부지런히 사람들이 모여든다. 매트를 깔고 일정한 거리에서 각자의 수련을 진행하는 동안 학원 원장님은 옆 사람과 본인의 자세를 비교하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자세를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동작 부분에선 무리하지 않고 가만히 숨을 고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하셨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신기하게도 매번 매트 위로 오를 때마다 같은 동작임에도 수월히 해낼 때가 있고, 유독 어느 날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날씨도 온도와 습도가 다르게 바뀌듯, 사람의 감정과 체력도 마찬가지라서 해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매번 다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새롭게 바라보며 늘 겸손하게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단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요가를 통해 배웠다.수업을 가는 오전 열시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열한시 반은 같은 길을 걸을지라도 많은 부분이 다르게 보인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미세하게 다르게 변한 나무의 그림자, 바람의 세기까지 계속해서 변화하는 시공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움을 찾을 수 있도록 유연한 생각을 지녀보려 한다. 그것이 실패와 좌절뿐일지라도 말이다.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산행을 만끽할 수 있고, 높이 오르지 않아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음을 알려준 요가 선생님의 말씀을 되짚어보면서 요가의 끝은 합장으로 마무리 한다. 합장 자세는 평온함이자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몸짓이라 한다. 손바닥을 맞대어 우뚝하고도 도저한 산을 흉내내며 오늘도 작게 말해본다. 나마스떼.

2022-06-14

정치가 부추기는 심각한 ‘보복사회’

심충택 논설위원 주로 마피아 영화의 단골메뉴인 보복범죄가 우리사회의 심각한 병리현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구성원을 극도의 증오심으로 편 갈라온 진영·팬덤정치의 영향이 크다. 지난 9일 방화 용의자를 포함해 7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 범어동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도 이러한 병든 사회분위기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타지역에 거주했던 용의자 천 씨는 부동산 신탁 주식회사에 투자한 자신의 돈을 돌려받기 위해 7년전인 지난 2015년부터 소송에 쫓기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월세를 얻은 집도 법원에 가까운 범어동 작은 아파트였다고 한다. 천씨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재판결과(5억9천만원 추심금청구소송 패소)가 나오자 천씨는 침울한 표정만 지었고 아무말이 없었다. 해당 재판 외에도 많은 소송에서 패소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했다. 안타까운 요소도 있지만, 소송결과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보복테러’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다.이번 참사(慘事)를 계기로 우리사회는 각 분야에 만연하고 있는 ‘보복행위’ 근절에 대해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특히 각급학교에서 발생하고 있는 학부모와 교사, 또는 학생과 교사간의 폭행행위는 심각한 실정이다. 몇 년 전 대구에서 학생체벌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가 수업 중인 30대 여교사의 머리채를 붙잡고 벽에 머리를 내리치는 등 폭력을 휘두른 사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여성 자영업자들이 불친절하다는 등의 단순한 이유로 범죄의 표적이 되는 가 하면, 도로위의 보복운전은 일상화되다시피 하고 있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자동차 운전자 2천명 가운데 ‘보복운전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40%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문재인 정부들어 심화된 진영싸움과 팬덤정치는 보복사회의 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키고 있다. 특정 정치인에 무조건적 충성심을 가진 팬덤은 온라인 좌표 찍기, 게시판 댓글 도배, 특정인을 겨냥한 문자 폭탄 등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사회를 극도로 오염시키고 있다.문 전 대통령이 퇴임한 후 살고 있는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보수시위단체들의 시위도 진영정치가 낳은 보복성 일탈행위로 볼 수 있다. 시위대는 엄청난 소음을 내는 방식으로 집회를 해 인근주민들까지 환청이나 식용부진, 불면증에 시달릴 만큼 고통이 크다고 한다.문 전 대통령은 ‘문빠’로 불리는 팬덤의 문자폭탄이 당 안팎의 건전한 비판 기능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이를 ‘양념’이라며 묵인했었다.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신평 변호사는 이와관련,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 전 대통령 집 주위에서 떠드는 이들도 잘못이지만, 이 모든 일의 시초에는 문 전 대통령의 팬덤정치 편승과 방치, 조장이 있다”고 말했다.보수단체의 양산시위에 맞서 진보성향단체인 ‘서울의 소리’가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인 서울 서초동 아파트에서 앞으로 규탄시위를 이어나갈 모양이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한 치의 양보 없는 진영싸움이 계속돼 우리사회의 병리현상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2022-06-14

“지방근무가 싫다”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 속담에 “등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곧고 잘자란 나무는 쉽게 목수 눈에 띄어 통째로 베어져 건물의 기둥으로 사용되는 데 반해 등굽은 나무는 쓸모가 없어 누구도 거덜떠보지 않아 고향산천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잘난 자식은 출세를 위해 도시로 떠나고 못난 자식만이 고향에 남아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세태를 풍자한 표현이다.언제부턴가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생겨났다. 사람은 서울로 가야 제대로 된 출세를 할 수 있다. 서울은 사람과 돈과 권력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출세야 말로 진정한 출세라는 뜻이다.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살고 있다. 한 나라 수도에 인구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추세지만 우리처럼 인구 집중도가 지나치게 높은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1970년대만 해도 나라 인구의 28% 정도가 수도권에 살고 나머지 72%는 지방에 분산해 살았다. 그러나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난 50년 내내 지방의 인구는 수도권으로 몰려와 지금과 같은 언밸런스가 생겼다. 지금도 매년 수만명의 젊은이가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상경한다.수도권은 더이상 발디딜 틈이 없을만큼 복잡하다. 주거공간이 부족하고 교통 혼잡은 물론 비싼 물가로 생활하기도 버겁다.대한상의가 수도권 청년 구직자(24∼34세)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73%가 “지방근무는 싫다”고 대답했다. 회사 선택의 기준도 연봉과 근무지역을 가장 중시했다. 청년들의 마음을 붙잡을 묘책이 나오지 않는 한 지방도시 소멸 문제는 요원한 숙제일 것 같다. 안타깝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14

선거 결과는 국민의힘 지지의 반영일까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대선과 지방선거 모두 국민의힘이 승리하였다. 대선은 0.73%라는 미소한 차이였으나 지방선거는 압승이었다. 이를 두고 국민들이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을 지지했다고 해석하는 것 같다. 그러나 대선에서는 국민들이 윤석열 후보를 선택한 것이지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은 아니며,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것 역시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성향이 그대로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고 본다. 대선에선 당시 여당과 여당후보가 싫은 많은 국민들로부터 떠밀려 대통령 후보가 되었던 야당 후보를 찍은 것이고, 지방선거에서는 소위 ‘검수완박법’ 처리와 일부 희한한 공천과 황당한 공약 등 야당의 자충수를 보며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심리로 여당에 압승의 결과를 안겨준 것이지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 의미로 여당 후보를 많이 찍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유야 어떻든 국민의힘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함으로써 정부와 여당은 국정운영에 상당한 힘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으니 국민들의 기대에 꼭 부응해주기 바란다. 건전한 비판은 야당의 것이라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되 비난이나 억지소리에 대해선, 명백한 왜곡이나 허위 내용이 있다면 사실 여부에 대해서만 솔직하고 분명하게 밝히고, 불필요하게 맞붙어 싸우는 일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응할 필요가 없는 사항들에 같이 응수하느라 힘이나 정신을 쏟지 말고 정부의 올바른 정책들의 수행에 대하여 국민들의 이해, 도움 또는 협조를 구할 사항들을 설명하고 설득하느라 열심인 모습들을 보여주면 좋겠다. 정책의 수립과 수행이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 위에서 이루어진다면 비록 당장은 힘들더라도 다수의 국민들은 잘 따르고 적극 협조할 것이다.새 대통령은, 외람된 말이지만 보수 성향의 국민들로부터는 은혜를 입었을지언정 정치권의 보수진영에 대해서는 도움을 받았기 보다는 오히려 정권을 되찾는 혜택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새 대통령의 정부는 당의 명분이나 진영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국민과 민생을 위한 정책수립과 수행에 매진할 것으로 믿는다. 국민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경제 살리기와 청년일자리 창출, 그리고 장단기의 저출산 대책일 것이다.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돈을 벌어야 할 사람들이 돈벌 곳이 없는데, 돈 쓸 사람들을 기다리는 자영업자들은 더 늘어나는 상황이니 나라 사정이 이중 삼중으로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목숨까지는 아니라도 혼신의 힘을 다하길 희망한다.오래전 우스개로 ‘정치인과 정자(精子)의 공통점은 그 수많은 개체들 중 인간될 것이 하나 있을까말까 한 것이고, 차이점은 정자는 인간되려고 난자를 향해 달리며 최대의 노력을 하는데 정치인은 인간되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권력을 탐하면서 허울 좋은 행위나 열성으로 가장하여 자신만의 욕심을 은밀하게 달성하려는 기성의 교활한 정치인들과는 달리 경험은 없지만 정치 때가 묻지 않은 새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는 국민들에게 솔직하면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2022-06-14

깔끔하게 물러나자

조현태수필가 며칠 전, 아홉산 숲에 다녀왔다. 규모가 약 오십삼만 평방미터에 달한다고 하니 수목원을 방불케 한다. ‘아홉 봉우리’에서 이름 지어진 이 독특한 숲에는 적송, 편백나무, 삼나무, 서어나무, 맹종죽 등이 무리지어 있다. 개인명의(남평문씨)로 조성되고 가꾸어 왔는데 현재는 ‘아홉산 숲 사랑 시민 모임’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가장 인상적이고 대표되는 수종이 대나무였다. 대나무는 땅속줄기(뿌리 줄기)에 마디마다 뿌리와 싹을 갖추고 있다가 삼사 년이 지나면 싹이 자라나온다. 성장 속도는 점차 가속된다는데 땅 밖으로 나타날 무렵에는 하루에 몇 센티미터 정도이다가 최적의 성장환경이 되면 일 미터를 넘게 자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죽순에 모자를 걸어놓고 이틀만 지나도 그것을 내릴 수 없는 높이로 올라가 있다고 한다. 대나무는 외떡잎식물로 관다발은 있으나 부름켜가 없어서 몇 년을 자라도 굵기와 높이는 성장하지 않고 단단히 굳어지기만 하기 때문에 나이테가 없다. 보통 나무들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 죽순은 약간의 독성이 있다는데 종족번식을 위한 자신의 방어기전일 수도 있겠다. 죽순과 껍질에는 니아신, 나트륨, 레티놀, 베타카로틴, 단백질, 각종 비타민과 식이섬유 등이 함유되어 있어 훌륭한 식재료 중의 하나다. ‘죽순껍질 차’도 있다는데 구입해 마셔보고 싶다.오늘은 대나무 예찬보다 죽순껍질을 말하려고 한다. 대나무가 두어 달 자라면 성장을 멈추고 껍질을 떨어뜨린다. 죽순에는 줄기 자체에 보다 껍질에 더 많은 생장호르몬이 들어 있다. 생장호르몬이란 세포를 분열시키고 분열 된 세포를 크게 자라도록 하는 물질이므로 죽순에서 껍질을 제거해 버리면 자라지 못하여 난쟁이 대나무가 된다. 또 죽순 겉을 싸고 있는 껍질은 연한 본체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인간에게 ‘부모’란 죽순의 껍질과 같아야 한다. 좋은 가르침과 영양분을 공급하고 자식이 다치거나 어긋나지 않도록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어릴 때일수록 밀착하여서 보호막 역할을 하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자식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이 성장하여 독립할 때까지면 족하다. 그 시기는 이십대 초반쯤이 아닐까 한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 귀한 줄 모르겠냐만 소중할수록 스스로 터득하고 단단해지도록 그 길을 안내해 주어야 한다.다들 그렇게 알고 있는 듯하다. 과잉보호나 도를 넘는 간섭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사람도 자신의 자식만은 예외인 듯 놓아주지 못하는 전형적 내로남불 형식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본다. 부모의 시각에서 보면 모든 자식은 왠지 서툴러 보이고 힘겨워 보인다. 왜냐면 성장기를 거쳐 온 사람과 이제 성장기에 다다른 사람의 차이니까. 결론은 부모와 자식 간에 차이가 나야 당연하지 않은가. 그냥 지켜보지 못하는 애착심이 발동하면 자식이 부모의 궤도에 이르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이 희석된다.대나무 껍질이 떨어지지 않고 마디마디 달라붙어서 감싸고 있으면 이미 대나무 모습이 아니다. 매우 볼썽사납고 거추장스럽다. 깔끔하게 물러나자.

2022-06-14

한 여성이 ‘중세’시대에 신청한 결투의 시작

영화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는 중세 유럽, 흑사병이 일어난 지 30년,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중간지점 프랑스 북부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백년전쟁은 중세시대 마지막에 걸친 전쟁으로 중세를 지배했던 모든 것들의 기준, 즉 신앙적 기준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다. 신앙적 기준이 정점에 달했다는 것은 완성의 의미와는 다르다. 그렇다고 더 깊어지거나 강해졌다기보다는 형식적인 표현의 완고함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국가의 개념에 있어서 동양의 그것과는 차이를 보였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기사임명식과 충성서약에 함유된 의미는 일종의 ‘계약관계’를 맺었다는 의식의 근엄한 형식이다. 중세유럽의 왕은 많은 귀족 중에 선출된 한 명으로 공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자이기도 했다. 각각의 귀족은 그들의 땅을 차지하고 그들의 이익이 침해될 때 함께 하겠다는 이익을 내포한 ‘계약’이었다. 중세유럽의 충성서약이 이익을 기반으로 할 때, 동양의 충성은 ‘명분의 서약’이 강했다. 동서양이 모두 순혈주의를 중시하였지만 동양의 명분이 ‘우리’를 내세울 때 유럽의 오로지 ‘가문’의 명분, 나의 이익이 중심에 있었다. 서약은 이익의 향방에 따라 번복되었고, 국가라는 대의적 명분보다는 나의 이익이라는 명분 속에서 강하게 작용했다. 중세 유럽의 전쟁 양상은 혈통과 땅의 소유주들간의 전쟁이었다. 동맹은 명분보다는 이익에 민감했고, 국가와 백성보다는 나의 영토, 나의 이익에 따라 대상을 바꾸었다. 이것이 중세에 있어서 동양보다 유럽의 전쟁 양상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동양이 절대왕권이었던데 반해 유럽은 상하관계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권력으로 지배할 수 없는 계약관계일 뿐이었다. 왕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최고의 권력이었던 동양에 반해 유럽에서의 왕은 해결사이기보다는 중재자의 위치에 놓인 것이다. 일원화된 권력으로 최종 판단자로서의 위치에 있었던 왕과 중재자로써 종교재판과 세속재판이라는 이원화된 재판이 존재했던 것이 중세 유럽이었다.교회의 법으로 판결을 내렸던 종교재판과 왕의 권력으로 판결을 내렸던 세속재판에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은 다시 신의 이름으로 운명에 의한 재판을 진행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사건인 ‘신명재판(결투재판)’이다.재판의 결과에도 억울함을 해결하지 못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호소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던 것이 중세유럽의 결투재판이었다. 이해가 충돌하는 당사자들이 정의로운 신에게 심판을 맡기자는 의미로 목숨을 건 결투를 통해 ‘신은 공정하다’는 믿음이 낳은 수단이었다.이 시대에 여자는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이기 이전에 재산의 일부였다. 당연히 결혼은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계약관계의 일종이었다. 영화 속에서 카루주의 부인이 자크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 죄명은 ‘재산권 침해’였다. 종교재판과 세속재판에서도 사실을 밝히지 못하자 카루주는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 결투재판을 신청한다. 명분에 여성의 의견과 존재는 무시되고, 그 운명마저 비이성적인 결투에 맡겨진다.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3부로 나눠서 반복한다. 각자의 관점에서 그들이 기억하고 말하고 싶은 것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사건을 다르게 서술하고 있다. 카루주와 자크의 관점에 카루주의 부인 마르그리트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반복된다. 이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의 형식을 따른다.차이는 끝까지 진실의 모호성을 유지했던 ‘라쇼몽’에 반해 ‘라스트 듀얼’의 마지막 3부인 마르그르티의 시점이 시작되기 전 ‘진실(The Truth)’이라는 부제목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중세시대에서조차 그 잔인함과 비이성적인 제도로써 인식되었던 결투재판은 ‘마지막 결투’를 끝으로 더이상 시행되지 않았다. 네델란드의 미술사가 요한 하위징아는 ‘중세의 가을’에서 “중세 후기의 잔인한 사법 처리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그 변태적인 메스꺼움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법 집행으로부터 중세인들이 느꼈던 둔감하면서도 동물같은 만족감, 시골 장터 같은 떠들썩한 여흥이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라고 했다.리들리 스콧 감독은 ‘하나의 여흥과 구경거리’로 전락할 수 있었던 역사적 사실 속에서 자신의 영화는 남자들의 명예를 건 결투가 아니라 중세시대라는 세상과 여주인공인 마르그리트의 대결이라는 시대적 결투의 시작이라는 분명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

2022-06-13

올림퍼스의 노예들 <Ⅴ>

/삽화 이건욱 -그래. 이 녀석이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 같아. 귀에 대고 소리를 높여야 겨우 움직인다니까. 신제품이라면서 귀는 내 귀하고 비슷해. 들리는 대도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사람 자식처럼 말이야.가끔 있는 경우였다. 말의 패턴과 음성의 높낮이 등을 인식하고 구별하는 센서나 프로그램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생산 공장에서 처음 설정해놓은 조건을 사용자에 맞게 바꾸지 않아 발생한 일일 수도 있었다. 설정이나 반응조건만 살짝 손을 대면 되겠지만 노마는 먼저 구조적인 이유가 있는지 살펴야 했다.-조금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저 신경 쓰지 마시고 다른 일, 하실 일 있으시면 일 보십시오.-그래도 집안에 누가 들어와 있는데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나. 나는 저 뒤 소파에 앉아 있을 테니 자네야말로 신경 쓰지 말고 일 보게.노마의 곁에 서 있던 노인은 거실 뒤 소파로 가 앉았다. 티브이를 켰다. 시사프로가 방영되고 있었다. 티브이의 음량이 높았다.-우리가 가진 것이라고 해야 건물 하나, 살고 있는 집 한 채 밖에 없는데 재산세를 올리는 것이 말이 돼?노인이 말했다. 노마는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네? 하고 대답을 했다. 곧 노인의 혼잣말임을 알았다.-결국 우리 같은 노인네들 돈 뺏어 가는 것밖에 더 돼? 우리가 젊어서 낸 세금이 얼만데. 차라리 소득세를 조금 더 올려야지. 그게 맞지.세금 관련된 주제의 방송이었다.-기사 양반은 어떻게 생각해?노인이 물었다. 노마는 대답을 하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로봇을 수리하느라 듣지 못한 척 로봇을 살폈다. 로봇은 구조적으로는 이상 없었다. 이상 없습니다, 당장 말하고 일어서도 되는 일이었지만 노마는 서두르지 않았다. 일찍 마친다고 일찍 퇴근하는 것은 아니다.-다음 선거에서는 무조건 노인들에게 혜택을 많이 주겠다는 당을 찍어야 해. 기사 양반도 언젠가는 늙을 것 아니야. 그때를 생각하면서 지금 잘 판단해야지. 길게 보고 표를 줘야 해. 노인들 표에다가 기사 양반 같은 젊은 표까지 합치면 안 될 일이 없지. 그렇지 않아? 하긴 젊은 사람들 표까지 필요하겠어? 노인들 표만 제대로 모여도 충분하지. 아무렴.노마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든 말든 노인은 상관하지 않고 이야기했다. 노마도 노인이 말을 하든 말든 자신의 일을 했다. 노마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노인도 흥이 나지 않는 듯했다. 한동안 티브이의 패널들 목소리만 울렸다. 가만히 있던 노인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전화기를 찾아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노마는 노인의 통화가 끝나면 로봇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방문 관리를 마칠 참이었다.이번 달까지 벌써 세 달째야. 곧 다음 달로 넘어가. 그러면 네 달째고. 이러면 안 되지. 월세를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오 년째 그대로인데. 날짜라도 지켜줘야지. 내가 참다 참다 전화하는 거야. 그래그래, 알아. 어렵지. 다 어렵지. 어렵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지. 젊은 사람이 일 처리를 이렇게 하면 안 돼.노인의 전화가 끝나고 노마는 노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구조적으로는 이상 없다는 이야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로봇이 노인의 말투와 음성의 크기, 발음의 특성 등을 학습해서 명령을 정확하게 수행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으면 그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설명을 했다. 혹시 기다릴 여유가 없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노인에게 맞게 약간 수정해 드릴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무슨 말이야? 조금 쉽게 설명을 해 봐.-한 달 정도 이 로봇과 꾸준히 대화를 하시면 로봇이 저절로 어르신 말을 알아듣게 됩니다.-그러면 내가 이 녀석을 가르치는 거잖아. 로봇 회사는 아무것도 안 하는 거네.-잘 배우는 로봇을 만들어 드린 거지요.노마는 신발을 신은 뒤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노인이 노마에게 물었다.-내가 다음 주부터 한 달간 제주도에 가 있을 건데 저 로봇 그냥 두어도 되는 거지? 지난번 로봇은 그냥 두어도 알아서 잘하던데. 이번 것도 그렇겠지?노마는 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다 문득 아비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집에서, 바깥에서 대화의 소재가 떨어지면 아비가 습관처럼 꺼내는 이야기였다. 복지회관에서 만난 노인들과 공원이든 찻집이든 앉아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빠지지 않고 꺼내들었다.지금까지 이런 세상은 없었단 말이지. 다 같이 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열심히 일한 자 이제 쉬어도 된다는 거지. 그 녀석들 말대로 전 국민 기본 소득으로 했어 봐.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놀자 판이 되었을 거잖아. 젊었을 때는 열심히 일해야지. 그래야 노년을 즐길 자격이 생기는 거야.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지. 젊어서 고생했다고 편안한 노후를 보장해준 때가 있었나? 고생한다고 돈이 벌어지나? 지금은 젊었을 때 돈을 벌어 놓지 못해도 누구나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해주니 얼마나 좋아. 부모가 돈을 많이 벌어 놓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그런 자식들 있지? 웃긴 짬뽕들이지. 요즘 같은 세상에 부모가 돈이 좀 있다 해서 그게 자기들 것이 될 것 같아. 내가, 자네가 언제 죽을 줄 알아서. 다 내 것이지./김강 소설가

2022-06-13

장수마을의 9가지 생활습관

전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이 모인 장수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인구 통계학적 연구를 통해 장수의 비결을 밝히고 건강 장수를 추구하는 ‘블루 존’프로젝트 창시자 댄 뷰트너에 따르면 장수하는 사람들은 9가지 특정 생활 습관이 있다.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목적의식, 단순한 생활, 80%만 먹기, 채식, 하루 와인 한 두잔, 신앙심, 가족 우선, 올바른 관계 맺기 등이다. 특히 블루 존에서 공개한 전 세계 장수마을 가운데 이탈리아 반도 서쪽 바다에 위치한 사르데냐는 면적 2만4천89㎢로 약 164만명이 살고 있다. 2004년 블루 존 연구팀에 의해 최초로 장수 비결 연구가 시작된 곳으로, 이 곳 사람들은 매우 활동적이고 낚시와 농사를 직접 지으며 살아간다. 현지에서 수확한 식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지역 사회 결속력도 중요하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하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르데냐 사람들의 장수 비결은 ‘가족 우선주의’, ‘산책하기’, ‘노인 공경’, ‘하루 한두잔 레드 와인 마시기’, ‘친구와 함께 웃기’, ‘산양유 마시기’ 등이었다. 95~107세 장수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격 검사를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항상 유머 감각을 유지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특징을 보였다. 늘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이란 얘기다.끝으로 장수에 도움 되는 식사법은 △매일 25g 이상의 섬유질을 섭취하도록 하고 △간식은 호두나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류로 하며, △오메가-3가 풍부한 생선을 일주일에 2~3차례 먹고, △저지방 요구르트(요거트)를 매일 먹는 것이다. 장수비결은 세계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대등소이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6-13

‘극단’의 시대, ‘균형’의 가치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나라가 거꾸로 가고 있다. 디지털혁명의 시대정신은 균형과 통합인데, 우리사회는 오히려 극단과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좌우의 극단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팬덤(fandom)정치 때문에 중도의 합리주의자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흑백의 극단론자들이 판치는 나라에서 회색은 기회주의자로 매도되고 있을 뿐이다.누가 천사이고 누가 악마인가? 붉은색과 푸른색의 안경을 쓴 두 사람이 자신이 본 세상의 색깔이 옳다고 싸우고 있다. 서로 다르게 정의(定義)한 선택적 정의(正義)는 객관성이 없다. 독선에 빠진 보수진영이 대선·지선·총선 등 3연패(連敗) 후에 비로소 혁신을 모색했던 것처럼, 진보진영 역시 대선에 이어서 지선에서도 참패했으니 이제 극단과 오만의 정치를 청산할지 두고 볼 일이다.인간은 신이 아니다. 생명과 능력의 유한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의 흉내’를 내서는 안 된다. 신격화된 인간이 지배하는 독제체제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너무나 자명하다.파스칼(B. Pascal)이 갈파했듯이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야수도 아닌 중간적 존재”다. ‘인간의 본질이 회색’인데, 나는 백색이고 당신은 흑색이라고 서로를 비판, 공격하고 있으니 참으로 무지하고 오만하다. 확증편향과 선택적 정의, 내로남불과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는 이성적 시민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이 극단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순이 공존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균형의 가치’를 수용하는 것이다. 유교에서의 ‘중용(中庸)’, 불교에서의 ‘중도(中道)’,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말하는 ‘중용’이 모두 균형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중용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며,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고, 불교의 근본입장인 중도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도리”를 말한다. 이처럼 동서양에 관계없이 모든 성인들은 하나같이 삶의 중심과 균형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균형’이란 이성의 힘으로 충동과 감정을 억제함으로써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의지의 결과물이다. ‘균형의 힘’을 역설하는 중용철학은 어느 한쪽을 개조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조화를 모색하는데 무게를 둔다. 중용에서 말하는 ‘중(中)’은 ‘단순한 가운데’가 아니라 ‘균형·중심·불편부당’을 의미한다.정치적 인간의 공동체에서 상이한 입장과 상충하는 이익을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균형점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가 들고 있는 저울은 ‘공정성’과 ‘공평성’을 상징한다. 저울이 무게중심을 잃으면 균형을 유지할 수 없다. 기울어진 저울처럼 균형감각을 상실한 극단주의자는 사이비종교의 광신도(狂信徒)처럼 비이성적이고 반사회적이다.흑백·독선·아집의 언어들이 분열·대립·투쟁의 일상화로 이어져 지금 나라는 벼랑 끝에 서 있다. 이 야만적인 극단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균형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2022-06-13

나누고 베풀고 누리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초목이 두터워지며 여름날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꽃 피는 봄보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 초입이 더 경치가 좋다(綠陰芳草勝花時)는 걸 보이기라도 하듯이, 잎새는 생기발랄하게 짙어가며 한껏 푸르름을 드러내고 있다. 새들은 숲이나 하늘에서 맘껏 지저귀다가 날아오르고, 작물과 과수는 때맞춰 내리는 비에 싱싱하게 일렁이거나 도톰한 풋열매를 보듬으며 자양분을 채우고 있다. 땅과 하늘 사이에 생장의 기운이 가득하고 마음껏 즐기며 누리는 6월은 누리달이라고도 한다.거침없었던 코로나19의 기세가 서서히 꺾여가자 발목 잡던 제한과 규제도 적잖이 완화조치가 내려져 다행스럽기만 하다. 실로 얼마만에 누려보는 일상의 기쁨이던가.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어 새싹들의 운동회가 3년만에 다시 열리고 대학에서는 젊음과 열정의 축제가 부활되는가 하면, 다양한 음악적 장르가 융합된 창작뮤지컬이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대면공연으로 열리는 등 지역의 문화와 축제, 체육 등의 행사가 크거나 작게 재개되는 추세다. 밝고 활기차게 문화생활을 즐기고 체육활동에 임하는 모습은 여유롭기만 하다. 당연히 누려야 하고 생각나는 대로 즐겨야 할 일인데도, 느닷없이 가로막히고 애써 참아야 했으니 오죽이나 갑갑하고 애가 탔을까? 이러한 문화, 야외활동 못지않게 지역사회의 어려움과 취약한 계층에 대한 배려와 관심으로 나눔과 베풂의 손길이 더해지고 있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미 지난 봄부터 코로나 상황을 고려하여 조금씩 계속적으로 이어왔지만, 6월 들어 봇물 터지듯이 활발하게 움직여지고 있으니 참으로 가상하고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름아닌 포스코가 지역사회를 위해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는 상생협력과 봉사활동에 대한 얘기다.포스코는 오늘부터 6월 25일까지 12일간 ‘글로벌 모범시민위크’로 정하고, 포스코가 진출한 전 세계 53개국 포스코그룹의 기업시민 구성원인 임직원들이 동시다발로 봉사활동에 두루 참여하는 특별봉사주간을 운영한다. 2010년부터 실시해온 이와 같은 활동은 포스코가 50여년간 지역사회와 함께해 온 인연을 바탕으로 봉사와 나눔을 통해 상생과 화합의 장이 되도록 추진하는 것으로, 올해는 포스코의 발자취 재발견, 지역생태 보전, 지역사회 돌봄과 나눔 등의 테마로 진행된다. 포항의 경우 환호공원 스페이스워크 일대에 나무심기와 자매마을 시설물 보수, 해양 생태계 보전, 취약계층 나눔 등의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지역사회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친환경 포스코의 이미지가 제고될 전망이다.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고 베풀 때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코로나로 인한 단절과 소외의 아쉬움이 커진 현실에 포스코의 이 같은 일련의 활동은 가뭄 끝의 단비 마냥 지역사회의 그늘지고 미진한 부분을 다소 촉촉하게 적셔줄 것이다. 마침 내일로 예정된 누리호 2차 발사의 성공적인 궤도진입을 바라는 것처럼 누리달에 펼치는 포스코의 나눔활동도 지속적인 추진동력으로 지역과 사회를 밝히고 돌보는 모범적인 궤도에 진입하여 일상에서 마음껏 봉사활동을 즐기고 누리길 기대해본다.

2022-06-13

가만히 보면 하늘도 순전히 내 편

오낙률 시인·국악인 저 지난주 말, 그러니까 6월 5일엔 그토록 기다리던 단비가 내렸다. 약 40 여일 만의 비 구경이어서 아직도 그 고마움이 여운으로 남는다. 비록 가뭄 해소에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라서, 우리 농민들에겐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만치 엄청난 하늘의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한창 가뭄이 심하던 무렵, 필자도 약 2천여 평의 밭에 고구마를 심었다. 햇볕이 너무 강하고 땅이 지나치게 건조한 탓에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이 며칠만 더 지속된다면 애써 심은 고구마 싹이 모조리 말라버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지만, 계절이 바쁜 탓에 헛수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고구마심기 작업이 거의 끝나는 시점에 맞추어 이틀에 걸쳐 단비가 내렸으니 ‘가만히 보면 하늘도 순전히 내 편’이라는 오만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를 일이다. 자연의 측면에서 보면 뭇 생명의 삶이라는 것이 물의 순환로에 서서 쉼 없이 물의 순환 활동을 돕고 있는 행위 그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수왕지절(水旺之節)이라는 여름철이면 며칠만 비가 내리지 않아도 극심한 가뭄에 허덕이게 되는데. 비가 내리지 않는 곳에서의 생명 활동이란 가뭄을 못 이겨 벌겋게 말라가는 길가의 산야초처럼, 최소한의 생명력조차도 위협받는 그런 불안한 삶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가뭄에 말라서 죽은 식물을 보며 그 죽음의 원인을 오해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물이 없어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물이 없는 곳에서는 그 생명이 필요치 않다는 뜻이다. 그것은 물이 없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물이 없는 곳에서는 그 어떤 생명도 필요치 않다는 대자연의 절대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처음 생명이 살기 시작한 후로 물을 찾아 군집을 이루며 사는 생명 무리는 다분히 그들의 자의가 아니라, 대자연의 힘 즉,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 삶의 위치를 부여받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물이 흐른다./낮은 곶으로 무게를 내려놓으며/흐름을 추억하며 흐른다.//때로는 곤두박질치며 흘러야 하는/그런 숙명이 있어,/물망초 꽃잎에 쉬어가는 순간을/삶이라 했다.//미나리꽃 하얀/ 자작나무 응달을 지나/물봉선 군락이/ 연붉은 화원을 이루는 여울목에서/꽃으로 머물던 시절/먼저 자라를 털고 일어나 여정을 재촉하는 물이 있어/그것을 이별이라 했다.//이별이란/ 앞서가는 물의 순탄한 흐름을/손 모아 기도하는 일이다./이별이란/횡(橫)으로 흐르던 물이 비좁은 여울을 지날 때/종(縱)으로 흐르는 일이다.”-오낙률 시집 ‘봄은 안 오고 꽃만 피었네’중에서세상은 오직 물의 순환을 위한 공간일 뿐이다. 인간을 포함한 지상 모든 생명체는 물이 순환하는 물길에 해당한다. 지금 순간에도 내 몸을 통해서, 혹은 저기 산야의 푸르디푸른 나무들의 잎을 통해서 물은 끊임없이 순환의 여정에 드는 것이다. 다만 그 길을 따라 흐르는 물은 오직 티 없이 깨끗하고 맑은 물일 뿐, 아직 정제되지 못한 탁한 물은 지표의 하천을 타고 바다로 흐르거나 어느 시골 마을의 논바닥으로 흘러들어 몇 날의 햇볕을 받으며 정제의 과정에 드는 것이다.

2022-06-13

괴롭히는 시위는 폭력이다

김진국 고문 양산 평산마을이 시위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 씨는 “증오와 쌍욕만을 배설하듯 외친다”라면서 “이게 과연 집회인가? 총구를 겨누고 쏴대지 않을 뿐 코너에 몰아서 입으로 총질해대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라고 비난했다. 마을 주민들도 욕설과 소음으로 잠을 못 자고,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시위를 이어온 4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렇지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허용 범위 안에서 집회를 진행해 경찰도 단속이 쉽지 않은 듯하다.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한다고 비난하고, 평산마을에서 시위를 못 하도록 막는 집시법 개정안까지 국회에 제출했다.문 전 대통령은 퇴임하면 ‘잊혀진 삶’을 살겠다고 말했었다.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보통 시민으로 살겠다는 의미”라며 “통도사에 가고, 영남 알프스 등산을 하며, 텃밭을 가꾸고 개·고양이·닭을 키우며 살 것”이라고 했다. 평산마을 사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시설들보다 규모가 작다. 그렇지만 생활 공간만 따지면 그리 다르지 않다. 봉하마을이 커진 건 부엉이바위와 묘소 등 추모 시설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퇴임 생활에 성공해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런데 이런 구상이 처음부터 어긋나고 있다.대도시, 특히 서울에서는 수시로 시위대를 만난다. 청와대 앞쪽 광화문에서 용산에 이르는 거리는 상설시위 장소가 된 지 오래다. 국회와 대기업 본사 앞에도 플래카드와 확성기 소리를 항상 보고 들을 수 있다. 문 전 대통령 이전 퇴임한 대통령들도 시위대를 피하지 못했다. 주변 주민들의 피해도 심각하다. 문 전 대통령 덕분에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민주화 과정에 우리 사회는 시위에 대해 매우 관대했다. 시위는 힘없는 사람이 호소하는 마지막 수단이고, 이것을 막는 것은 독재 정부나 하던 시민 탄압이라고 생각해왔다. 심지어 화염병 같은 위험한 장비를 사용한 과격한 시위마저 정당한 시위로 감쌌다. 민주화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 시위대는 의인으로 보호되고, 경찰은 문책당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법을 어기지 않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웠다. 요구사항을 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시선을 집중시키려 과격한 수단을 쓰기도 했다.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집회와 시위는 법으로 보장되고, 시위가 아니라도 의견을 전달할 수단이 많아졌다. 소셜미디어는 넘쳐난다. 물론 대면 다중 집회로 힘을 얻을 수 있다. 자신들의 힘을 눈으로 보여주는 효과도 있다. 그렇다고 스피커 볼륨이 세력의 크기는 아니다. 법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법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경찰이 불법을 수수방관하기 때문이다. 법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집단의 힘으로 억지를 부려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조용한 다수가 피해를 본다.권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경찰의 법 집행이 많이 위축됐다. 정당한 법 집행도 과잉 진압 시비를 피하지 못했다. 모르는 척 불법을 눈감아주는 게 습관이 됐다. 적극적으로 나서다 징계받은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집회는 자기 의견을 밝히는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상대를 괴롭혀 자기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변질해왔다.그동안 각종 시위를 무조건 감싸왔던 민주당이 시위를 제한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세 건이나 국회에 제출했다. 윤영찬 의원은 1인 방송이 원색적 욕설 방송으로 수익을 올리는 ‘1인 시위’도 금지하는 법안을 내놨다.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을 골프장까지 쫓아가 카메라를 들이댄 방송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 청산 과정에서도 비슷한 방송을 많이 봤다.표현의 자유가 남을 괴롭히는 자유는 아니다. 괴롭히는 시위는 폭력이다. 이 기회에 집시법을 보완 손질할 필요가 있다. 법을 손질도 하지 않고 ‘법대로’만 외칠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사람을 위한 법 개정이어서는 안 된다.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바로 보인다. /본사고문

2022-06-12

상주의 휴양과 힐링 명소

강영석 상주시장 상주시 은척면 남곡리 일원에 위치한 상주한방단지는 성주봉자연휴양림과 함께 등산, 한방사우나, 찜질 등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힐링-웰빙 시설로써, 국내 최고의 건강·휴양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상주 한방단지는 2010년도에 준공인가를 받아 한방산업단지 765,915㎡, 성주봉휴양림 200만㎡를 관리하고 있으며, 한방산업단지는 산업시설 382,129㎡, 지원시설 88,961㎡, 주거시설 37,640㎡, 공공시설 257,185㎡로 구성돼 있다.산업시설은 농업시설로 사용 가능한 약초재배지, 연구개발업 및 식료품·음료 제조업 시설로 사용 가능한 한방자원개발센터, 식료품·음료·의약품 제조업 시설로 사용할 수 있는 약초상품화처리장이 있다. 약초상품화처리장은 미분양 상태이며 부지 3천400평, 건물 1천100평으로 공장동과 관리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기·수도 및 공조시설, 화물용승강기 등의 시설이 구비돼 있다. 지원시설은 1·2종 근린생활시설, 숙박시설 등의 용도로 사용가능하며, 한방건강센터, 목재문화체험장, 농산물 직판장, 지천옻칠아트센터, 식당 등이 입주 중이고, 호텔, 수련원, 펜션 용도의 부지는 분양 가능한 상태이다. 한방건강센터는 한방사우나 및 찜질방을 시 직영으로 운영중이며 기본 이용료 5천원, 상주시민 및 기타 할인대상자(유공자 등)는 4천원에 이용할 수 있고 찜질방은 기본 이용료에 1천500원의 추가요금을 지불하면 이용 가능하다. 이 외에도 스낵코너, 분식점, 식당, 노래방, 한의원 등의 시설도 입주해 있으며 지역 내 목욕탕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목재문화체험장은 친환경 소재인 목재를 사용해 어린이들을 위한 나무 장난감부터 생활가구, 도마, 장식용품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어린이집, 학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체험을 할 수 있다. 한방건강센터 외에도 농특산물직판장은 농민들이 길러낸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으며 김은경 박사가 개관한 지천옻칠아트센터에서는 종이에 옻칠한 지태 옻칠기를 중심으로 한국 옻 문화의 우수성을 경험할 수 있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공공시설에는 건강공원과 다양한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건강공원에는 어린이용 짚라인, 투호, 그네와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가족단위 방문객들에게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한방사업소에는 한방둘레길, 솔바람길, 명풍생태숲길 등 여러 개의 걷기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가 있는 숲속의 길과 황령 저수지의 고요함을 즐길 수 있는 코스도 있다.주거시설에는 46필지의 주거용 용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중 23필지는 분양이 완료돼 거주 중이며 자연과 어우러진 멋진 한방주택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한방사업소에서는 약 2만㎡ 면적의 약초재배지와 미분양 부지에 백일홍 등 다양한 꽃을 식재하여 방문객이 다시 찾고 싶은 공간으로 각인되고 있다.상주의 대표적인 휴양명소 성주봉 자연휴양림은 2001년 개장하여 시에서 직영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휴양림이다. 6~25인실로 이뤄진 숲속의 집, 산림 휴양관, 수련관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계곡을 따라 야영데크와, 물놀이장 2개소가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제격인 곳이다.올해 하반기에 준공을 앞두고 있는 숲속의 광장은 휴양림을 찾는 방문객들의 쉼터 및 카페로 활용할 계획이다. 계곡 주변의 숙박시설 외에도 해발 606m 높이에 왕복 2시간 코스인 성주봉 정상을 향한 등산길도 잘 정비돼 있다.안전을 위한 미끄럼방지 시설, 목재 계단 등 안전시설도 주기적으로 정비·보수 해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있다.성주봉 정상을 향한 코스 외에도 2012년 개장한 힐링센터에서는 숲 체험길과 고공데크, 황톳길 맨발 걷기를 체험해 볼 수 있다.숲 해설가의 친절한 안내로 힐링센터에 자생하는 다양한 식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트리하우스, 어린이 놀이시설도 설치되어 있다.휴양과 힐링의 복합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방산업단지는 최신 관광 트렌드에 부합하도록 경관을 조성했고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마련해 놓고 있다. 공식 SNS,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홍보 전략을 구사하는 등 산업단지 활성화에 최선을 다해 나갈 계획이다.

2022-06-12

별빛, 우리네 소망의 메신저

반짝이는 별을 보며 꿈을 투영했던 때가 있었다. 부족한 것 투성이 삶이었지만, 희망이 있어 행복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팍팍해진 요즘 어쩌면 너무나 인간적인 본성을 되돌아볼 기회가 아닐까. 별 시리즈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 꾸었던 아롱진 꿈을 위해서라고 자위한다. 짧은 글이나마 행복했던 추억을 불러내거나, 우리네 소망을 하늘에 전하는 메신저였으면 참 좋겠다.“별들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 때문이야.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할 거야”-‘어린 왕자’중어린 시절,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가슴에 꿈 한 자락 품어보지 않았던 이가 있을까. 광활한 우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별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의 힘으로 별과 별을 선으로 엮어 그림을 만들고 이야기도 지어가며 상상의 나래를 한없이 펼쳤던 기억들이 있다.어둠이 별을 낳은 저녁이면 밤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산 너머로 별똥별이 떨어지고, 마당 살평상에 누워 별을 장난감 삼아 놀곤 했다. 하나둘…. 그렇게 별을 세다 점점 눈으로 부서져 내리고 알알이 가슴에 박힐 즈음이면 스르르 잠에 빠지곤 했다. 아마 별꿈을 꾸며 단잠에 들지 않았을까.이렇듯 별은 우리네 정서에 짙게 녹아들어 있다. 누구에겐 슬픔을 달래주는 위안으로, 또 누군가에겐 사랑하는 이와 행복을 꿈꾸게 하는 설렘으로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주 속으로 달려가는 눈길을 따라 별을 향해 희망을 쏘아 올리기도 했다. 별을 우리네 소망을 하늘에 전하는 불빛으로 여겼던 것이다.“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하략)우리 민족시인 윤동주 님의 ‘별 헤는 밤’이다. 별 하나마다 추억을 담아 우리 민족 정서와 함께하고 있다.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회상, 애환과 미련에 대한 대상, 추억과 생명에 대한 단상 등 삶이 된 별들이 거친 마음을 순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시로 승화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벗 삼아 희망으로, 꿈으로 엮었다.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하늘에 흩어진 별들을 그냥 바라보지만 않았다. 하늘은 두려움의 대상이자 믿음 자체였던 까닭이다. 밤하늘의 별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홀로 외롭게 떨어진 별은 그리 많지 않다. 무리를 이루거나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옛사람들은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별을 이어 별자리로 만들기도 하고, 견우직녀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참으로 믿었다.얼마 전 고인이 되신 이어령 님 말씀에, 별은 하늘이 만들었지만, 별자리를 만들어낸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한다. 같은 별자리를 두고도 민족과 나라에 따라 전설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와 생활방식, 역사 등에 따라 각기 다른 별자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동양과 서양의 별자리가 각기 다른 것처럼 말이다.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하늘에 그려놓았다는 점에서 서양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뒤에 다루겠지만 일상에서 비롯된 기억이나 일상을 함께해온 인물은 물론, 일상에서 마주친 동물들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별로 떠올렸다. 별과 나를 엮어 내 별을 점찍기도 하고,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을 빌기도 했다. 이는 별 하나에도 자아를 투영해 내적으로 풍부한 삶을 살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였다. /박필우(스토리텔러)

2022-06-12

울릉의 새로운 길, 군수 당선인에 바란다

김윤배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 지방선거가 끝나고 울릉군의 다음 4년을 책임질 군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신임 군수의 임기 중인 2023년에 울릉군 최초로 정부 주관의 행사인 섬의 날 행사가 개최될 예정이며, 2025년에는 울릉도의 새로운 교통시대를 열 울릉공항이 개항될 예정이다.울른군은 1976년 2만9천199명이던 인구는 2021년 기준 8천867명으로 감소하였으며,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약 25%로 어느 지역보다 높은 지방소멸 위협지역이다.울릉군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오징어 어획량은 기후변화 및 중국어선 남획 등의 여파로 2000년 기준 1/10 이하로 감소하였다. 비록 외부로부터 임차한 대형크루즈가 취항했지만 여전히 교통불편이 이어지고 있어 여객선의 운항을 열차나 지하철처럼 국가가 운영하는 여객선 공영제 도입이 시급히 필요하다.의료 인프라의 낙후 해결 또한 울릉군의 시급한 현안이다. 잦은 기상악화로 응급환자의 신속한 후송체계의 공백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울릉도 주민뿐만 아니라 관광객, 동해상 조업 어업인의 신속한 응급상황 대응을 위해 닥터헬기의 울릉도 상주가 반드시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는 공중보건의로만 이루어진 울릉의료 인프라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단순히 울릉지역의 의료원이 아니라 동해 해양영토 관리거점 의료기관으로서 기능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다.울릉도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울릉고 활성화 전략도 필요하다. 울릉도 출신의 인재들이 울릉도의 열악한 교육 여건으로 울릉도를 빠져나가 울릉도 미래발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울릉도 출신 인재들이 성장하여 울릉도와 독도의 연구를 장기적으로 지속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연구기관 및 대학에 울릉도와 독도 장기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이 프로젝트에 울릉도 출신 학생들이 참여하면 울릉도의 교육 여건 개선과 함께 지역 맞춤형 현장 연구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기후변화에 대응한 다양한 대응 전략 또한 필요하다. 울릉도(독도) 주변 해역은 우리나라 해역 중 가장 빠르게 표층 수온이 증가하고 있다. 바다의 여름이랄 수 있는 수온 20℃ 이상의 연간 관측일 수로 보면 더욱 분명히 수온 증가가 체감된다.울릉도 연안에서 지난 1966년부터 관측된 표층수온 자료에 따르면 수온 20℃ 이상의 연간 관측일 수는 1960년대 약 70일에서 최근 120여일로 약 50일 증가하였다.이러한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해양레저관광 활성화를 위한 대책과 함께 어촌계와 지역의 해양레저업체가 상생하는 어촌체험마을 개발도 요구된다.문화가 흐르는 울릉도를 위한 다양한 시도도 필요하다. 천편일률적인 축제가 아닌 울릉만의 고유 빛깔을 살린 문화축제가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문화축제의 하나의 사례로 1980년대 시도된바 있던 울릉도 전통 집짓기 문화인 너새 너와 놀이의 현대적 재해석을 제안해본다. 울릉도 개척기 문화를 공유하고, 또한 축제의 과정에서 울릉도 토속 음식과 슬로푸드 맛의 방주로 지정된 울릉도의 지켜야 할 맛을 함께 이어감으로써 문화가 이어가는 울릉도를 상상해본다.주민의 의한 문화가 흐르는 울릉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 자치 모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현재 울릉도에는 일과 후에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는 공동체 공간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방과 후에 학생들이 갈 수 있는 공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역주민과 학생의 꿈이 자라는 공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울릉 발전의 힘이다.울릉 관광의 현주소에 대한 대책 마련도 절실하다. 관광의 만족도, 관광의 지속가능성, 관광으로 인한 수익 분배 구조와 다양한 주민의 소득 창출을 고려할 때 현재의 울릉 관광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주민의 일자리 창출과 연계될 수 있는 주민 해설사의 확대, 저동의 오징어 역사문화 홍보관 등 마을별 특색 있는 마을문화홍보관 추진 및 마을별 문화 콘텐츠 발굴 등과 함께 섬 주민의 영토관리 기능 등 공익적 기능을 고려해 섬 관련 지자체와 연계한 섬 지역 면세구역 지정을 정부에 강력히 건의할 필요가 있다.대한민국 최초의 국가지질공원이며, 동해안 최초의 해양보호구역인 울릉도(독도)는 고대 해상왕국 문화와 개척역사라는 역사의 특이성, 척박한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울릉도만의 삶의 문화를 이끌어 온 개척민들의 삶과 함께 전 세계 울릉도(독도)에서만 자생하는 40여 종의 특산식물을 보유한 동해의 보물섬이며, 동해 해양생태계의 오아시스이다.인구위기, 기후위기의 시대에 울릉도의 생존전략은 울릉도만의 독특함의 재조명에 있다. 최근 갯벌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시킨 전남 신안에는 세계유산과라는 과가 있다.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품은 울릉도가 공무원과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서 가고 싶은 울릉, 살고 싶은 울릉, 지속가능한 울릉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2022-06-12

총기사고가 유행병이 된 나라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코로나19 만이 유행병은 아니다. 총기사고가 유행병(Epidemic)이 된 나라가 있다. 최근 한 달간 미국에서는 커다란 총기사고(Mass Shooting) 3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버팔로 마켓에서 10명, 텍사스 초등학교에서 21명, 그리고 오클라호마 털사의 병원에서 4명 등 매주 대량의 총기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특히 텍사스 초등학교에서 학생 교사 등 이 희생된 사건은 1999년 콜롬바인 고교에서 발생하여 13명이 희생된 캠퍼스 내의 집단 살인 이후 최대의 사건 중에 하나로 미국 내의 캠퍼스가 안전하지 않다는 섬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서는 거의 매년 대형 총기사고가 터진다. 1999년 13명의 사망자를 낸 콜로라도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2007년 33명이 사망한 버지니아공대 비극에 이어 2012년 12월 코네티컷주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로 26명이 사망하고, 2016년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 소재의 나이트클럽에서 50명이 사망한 사건 2018년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는 58명의 기록적인 사망자를 기록했다. ‘최악의 총기 난사’라는 기록은 경쟁적으로 깨지고 있다. 미국에서 총기 사건·사고로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연간 3만 명 이상이 총기로 인해 사망하고 있다. 이는 인구대비 1만 명 중 1명으로 세계 최고의 총기 사망률이다.CNN의 보도에 의하면 한 연구결과가 1966년~2012년 사이에 일어난 전 세계의 모든 총기 난사 사건 가운데 1/3이 미국에서 일어났다고 한다.매년 4만 명이 총기에 희생되고 1900년대 이후 총기로 희생된 숫자가 수백만명으로 1, 2차 세계 대전에 희생된 미국인 숫자보다 많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미국은 대한민국이나 일본,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이나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총기를 엄격히 규제하는 것과 달리 총기에 대한 접근이 매우 쉬운 관계로 총기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피해자도 대량 살상으로 이어진다.미국은 총기규제를 왜 못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정녕 부패한 국가인가?텍사스 총기 사건이 있던 날 NRA(미국 총기협회) 대규모 회의가 텍사스에서 열린 아이러니한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미국에서 총기사고가 많은 까닭은 다른 나라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총기 보유량과 깊은 연관이 있다. 미국인이 보유한 총기는 인구보다 더 많다고 하니 3억 정 이상의 총기가 미국의 가정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총기규제를 못하는 이유는 수정헌법 2조에 근거해 설립된 총기 소유 당위성을 고집하는 미국 총기협회(NRA)의 횡포와 NRA의 정치자금을 받는 공화당 중심의 보수적 국회의원들 때문에 총기규제 법안 자체가 통과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NRA는 “총은 개인을 방어하기 위해 있는 것이며 어떠한 규제도 하면 안 된다”고 버티고 있다. 총 때문에 수만 명이 죽어갈 때 과연 몇 명이 총기로 스스로 방어해서 살아남았는가?미국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NRA의 강력한 로비로 입법을 막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미국인들의 사고에는 총이 자기방어의 수단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의식에는 큰 모순이 있다. Trade-off(TO·이익과 손해의 상호작용)라는 말이 있다. 장단점을 비교해 장점이 조금이라도 유리한 쪽으로 선택한다는 용어로 필자의 전공인 산업경영학의 운용연구(Operations Research)의 핵심이며 사실상 산업공학의 핵심적 개념이다. 조지 버나드 댄치그가 2차세계대전 이후 고안한 선형계획법(LP)은 산업체의 여러 분양에서 활용되는데 현재의 환경 제약 조건하에서 TO를 통해 최적을 찾는 것이고 의사결정이론의 의사결정트리(Decision Tree)나 손익분석(Cost-benefit Analysis)도 모두 TO를 통해 최적을 찾는 것이다. 미국은 노벨경제학상을 유난히 많이 배출하는 나라이다. 지금까지 수여된 노벨경제학상의 80%는 미국인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세계 경제학 이론의 근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 미국인 학자와 교수들이 지금 세계 1위 총기사고의 미국을 보면서 과연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경제학의 근거는 당연히 TO이다. 이익이 손해보다 클 때 경제학은 그런 정책을 추구한다. 총기 소유 자율화로 손해가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NRA의 부당한 압력에 정의가 실천되지 못하며 경제원리를 적용 못하는 미국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된다. 호주는 미국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 강력한 총기규제로 총기에 의한 살인을 50%나 감소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강제성이 있다고 하여도 호주, 캐나다 같이 국토가 미국처럼 넓은 나라도 효과적인 총기규제를 하고 있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도 총기규제로 자국민의 목숨을 보호해 주고 있다.미국은 현명한 총기규제로 자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의 경찰국가로서 인권을 외칠 자격이 있다. 또한, 최다 노벨경제학상 국가의 체면을 살릴 수 있다.

2022-06-12

87항쟁을 추억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 1987년 그해 여름은 습하고 무더웠다. 하지만 군부독재 세력과 건곤일척의 회전(會戰)을 앞둔 청춘들의 결기는 공고했다.종철이를 민주주의 제단에 바친 이 나라 민중의 혈맥은 힘차게 뛰놀았다. 그들에게 지거나 밀릴 수 없다는 의지는 욱일승천하는 기세였다. 6월 10일을 기점으로 우리는 18일과 26일 세 차례에 걸쳐 거리로 춤추듯 나아갔다. 학교 부근 개운사 승려들까지 장삼(長衫)에 유인물을 들고 광화문 가는 버스에 동승했다.거리 곳곳에서 터지는 최루탄과 지랄탄의 굉음과 뽀얀 연기도 전진하는 행렬을 막지 못했다. 일부는 명동성당으로 진입했고, 어떤 이들은 지하철 구간을 점거했다. 거리와 광장과 지하철에서 시위대는 백골단과 전투경찰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거리는 시위대를 응원하는 시민들과 구경 나온 인파로 넘쳐났다. 이 나라 미래가 한판의 승부에 달렸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최루탄 자욱한 거리를 뛰어다녔던 나는 대학로 부근에서 ‘민족극연구회’ 친구와 만났다. 그와 대화하다 우리의 발길은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밤 11시가 되어갈 무렵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시위대와 전경 무리의 긴장을 실감하던 그때! 갑자기 들려온 날카롭고 새된 소리 “전투 준비!” 아하, 그들은 그것을 전투라 불렀다. 명동성당 진입을 노리는 경찰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시위대의 공방전이 시작될 찰나!출근해야 하는 친구와 학교에 나가야 하는 나는 퇴각을 결정하고 헤어졌다. 하되 짧은 순간 귓전을 때린 네 음절의 전음(顫音)은 내 귓가에 생생하게 살아남았다. 그는 누구였으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서슬 퍼런 명령에 따라 전투태세에 돌입한 그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여전하다. 적들의 수괴(首魁) 두 사람은 영원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는데….2017년 가을부터 2018년 초봄까지 한반도 남단을 울퉁불퉁 수놓은 촛불에는 87항쟁의 기억이 서려 있다. 터무니없이 모자란 대통령과 그 졸개들의 협화음에 대응하여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진 민주와 인권의 함성 그리고 화사하게 불타오른 촛불들의 춤사위에는 분명 1987년의 장엄한 투쟁과 승리의 기억이 담겨 있었다. 이겨본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고, 싸워본 사람들이 투쟁의 선두에 서는 법이다.불완전하게 마무리된 87항쟁과 ‘87체제’지만, 지금 우리가 향수(享受)하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때 산화해간 숱한 열혈 청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실이다. 눈을 떠보니 박 아무개와 전 아무개가 대통령이었던 사람들과 눈을 떠보니 민주와 자유가 공기처럼 차고 넘친 사람들의 세상은 각별한 것이다. 싸워서 얻어낸 사람들과 공짜로 동승한 사람들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1987년 6월 위대했던 민주항쟁의 날을 맞으니 그 시절 향수가 걷잡을 수 없이 떠오른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이라 했지만, 가버린 순백의 시절이 못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 자유여, 민주여, 환하게 빛나던 청춘이여!

2022-06-12

안동호의 쇠제비갈매기

우정구 논설위원 멸종 위기등급 관심대상인 쇠제비갈매기는 도요목 갈매기과로 제비를 닮은 조류다. 몸길이는 22∼28㎝ 정도로 작다. 이름에 쇠자가 붙은 것은 갈매기 종류 가운데 크기가 가장 작다는 뜻이다.몸의 윗면은 회색이며 아랫면은 흰색이다. 부리는 노란색이고 끝이 검다. 주로 바다나 강가에 서식하며 물고기를 먹이로 삼는 철새다. 호주와 필리핀 등지에서 겨울을 보내고 1만km가 넘는 거리를 날아 우리나라 낙동강 하구에서 여름 한철을 보낸다. 그러나 낙동강 하구가 훼손되면서 10여년 전부터는 이들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제대로 된 번식지를 찾지 못한 새들이 뿔뿔이 흩어진 때문으로 짐작이 간다.2013년 5월 이런 쇠제비갈매기가 경북 안동호 쌍둥이 모래섬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본지는 전국 최초로 내륙지방에 정착하기 시작한 쇠제비갈매기의 생태과정을 수년간 추적 보도하면서 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KBS가 본지의 보도에 이어 ‘안동호 쇠제비갈매기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내보내기도 했다.안동호에 서식한 쇠제비갈매기가 올해도 어김없이 안동호를 찾았다. 벌써 10년째다. 안동시는 매년 수위가 높아지면서 사라질 위기에 있는 쌍둥이 모래섬 대신 쇠제비갈매기 보호를 위해 2019년에 인공섬 두 개를 새로 만들었다.안동시의 이런 노력으로 멸종위기에 있는 쇠제비갈매기가 매년 새로운 안식처인 안동호를 찾게 됐고 안동호 쇠제비갈매기는 이젠 안동호의 새 명물로 등장한 것이다. 안동시는 현재 안동호에는 새끼를 포함해 180여 마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자연생태계 보호를 위한 노력이 안동호의 새로운 볼거리까지 만들었으나 일거양득한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12

이명박 前대통령 사면을 염원한다

이성환 포항뿌리회 초대회장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문제가 정치권의 이슈로 부각되었다. 지난 2020년 10월 재수감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만 81세의 고령이며, 형 집행정지를 신청할 만큼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다. 특히 수감 후에 당뇨 등 기저 질환으로 세 차례나 입원 치료를 받을 만큼 각종 지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물론,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가 존재하고, 사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없지 않지만 국민통합의 필요성을 고려할 때 사면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이 전 대통령은 성실함과 더불어 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통령 임기 중에는 경제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고환율정책을 통해 상당히 안정적으로 극복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재진입했으며, 2012년 6월 23일 인구 5천만명을 돌파, 세계에서 7번째로 ‘20-50 클럽(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천만 명 이상 충족 국가)’에 가입했다. 또한 2010년 세계 7대 수출국으로 도약했으며, 2011년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다. 미국, 독일, 일본과 같이 주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선진국들만 달성한 위업을 이룬데 있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외교 성과도 빛났다. 대한민국이 G20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이 되어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이사국으로도 선출됐다. 부동산정책 문제 해결에도 앞장섰다. 수도권의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해서 ‘보금자리 주택’이라는 서민용 주택을 공급했다. 기존 신도시보다 저렴한 가격과 좋은 거주환경 때문에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물론, 4대강 사업,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사태 등 공(功)과 과(過)가 엇갈리는 정책도 있었지만, 경제, 외교 분야에 있어서는 어느 정부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말이 있다.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쳤음을 안타까워한다는 뜻이다. 고령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 시기를 놓쳐 건강이 악화된다면 우리 국민들에게 아쉬움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취임하게 되면 사회적 합의와 국민의 뜻을 고려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추진하겠다고 거론했다. 국민 통합과 화합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이 결단한다면 굳이 시기를 늦출 필요가 없다. 국민 대통합의 차원에서 역대 대통령이 집권 1년차에 대사면을 실시했던 전례를 비춰보았을 때 지금이 바로 적기이다. 2013년 2월 19일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를 물러나며 마지막으로 남긴 고별사에서 “바닷가 시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길에서 장사를 하며 고학하던 소년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 그런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만들어온 우리 국민 또한 참으로 위대한 국민입니다”라며 국민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이제는 우리가, 정부가, 응답할 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길지 않은 남은 인생을 다시 국민들 곁에서 지낼 수 있도록 마지막 기회를 주기를 바란다.

2022-06-12

예의와 배려

유영희 작가 올해 2월부터 먹고 움직인 것을 매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체중도 조금씩 빠지는 중이다. 이 사실을 아는 친구들은 의지가 대단하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던 중 ‘대화의 희열’에서 발레리나 강수진이 나온 영상을 보게 되었다.발레리나 강수진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아시아인 중 최초로 입단하였고, 2016년에는 원할 때까지 수석 무용수 자격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종신 단원 자격을 아시아 최초로 얻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마디마디가 모두 툭툭 튀어나온 그의 발가락은 그런 성취를 위해 그가 얼마나 혹독하게 노력했는지 말해준다. 그러나 발가락 부상으로 1년간 쉬었다고도 하니 영상을 보기 전에는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그런데 이 방송에서 강수진은 그렇게 노력한 것은 관객에 대한 예의이면서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한다. 관객에 대한 예의는 금방 이해가 되지만, 자신에 대한 예의라는 말이 무척이나 인상 깊어서 곱씹게 되었다.우리는 예의를 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과 의리 또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마땅히’라는 말 때문인지 그렇게 해석하면 강박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예의의 의미를 찾아보니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 예로써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이라는 뜻도 있다. 이 뜻으로 강수진의 말을 해석해보면 ‘나에게 존경의 뜻을 표하는 행동’이 되어 이해가 잘 된다. 관객에 대한 예의라는 말도 더 설명이 잘 된다. 이렇게 강수진이 자신에 대한 예의로 그렇게 노력했다고 이해하니,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육체를 돌보았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육체를 돌보는 방법에 극기의 노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부 모임에 참여하는 한 학인은 내 몸과 대화하는 글쓰기에서 이렇게 썼다. “발등에 금이 갔는데도 쉬지 않고 일했지. 한 달 동안 깁스를 하고 있느라 말도 못 하게 힘들었는데 열심히 끌고 다녔어. 정말 내가 왜 그랬을까? 내 몸에 붙어 있는 것이니까 머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줄 알았나 봐. 그때 너무 무모했던 것 같아. 소중한 걸 몰랐어. 이제는 소중히 여기며 살게.” 얼핏 보면 강수진은 자기 몸을 혹독하게 다루었고, 학인은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말하고 있어서 정반대인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 2권에서 그리스의 양생법을 설명하면서 그리스인들의 도덕적 성찰에서 주요한 관심은 육체를 돌보기 위해 쾌락의 감소를 고려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목표는 자신의 육체에 대해 적절하고 필요 충분한 배려를 하는 주체로 자신을 세우는 것이었다고 한다.푸코의 설명을 들으니, 예의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거나 아픈 몸을 배려하려는 마음이나 모두 자신을 삶의 주인으로 세워가고 있다는 점에서 통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먹고 움직인 것을 기록하는 것이 예의인지 배려인지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그 역시 나 자신을 삶의 주체로 세워가는 과정이리라 짐작해본다.

2022-06-12

북핵과 스텔스 전투기

스텔스 전투기는 상대의 레이더, 적외선탐지기, 음향탐지기 등 모든 탐지 시스템에 포착되지 않는 은폐기술을 갖춘 최첨단 전투기를 말한다.세계 최초의 스텔스기는 1974년 미국이 개발한 F-117기다. 나이트호크라 불리는 이 전투기는 1989년 미군의 파나마 침공 당시 처음 실전에 투입됐다. 이후 1991년 걸프전에 모두 44대가 참전하여 단 한 대의 손실도 없이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B-2는 스텔스폭격기고 F-22와 F-35는 스텔스전투기다. 우리는 2018년 3월 세계 최강 성능의 스텔스기인 F-35를 처음 도입했다. F-35는 최대 속도 마하 1.8로 전투반경만 1천93km 거리다. 공대공 미사일 등 엄청난 파괴력도 보유하고 있다.유사시 북한의 방공망을 피해 내륙 깊숙한 지역까지 은밀히 침투해 핵과 미사일을 정밀 타격할 수 있어 북한의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전투기로 알려져 있다.지난 7일 한미공군은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도발에 대응해 F-35 스텔스 전투기 등 20대를 동원해 서해 상공에서 대북 연합무력공중 시위를 벌였다. 합동참모본부는 “한미연합 방위능력과 태세를 보여줌으로써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신속하고 정확한 타격을 할 수 있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했다.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한반도에서의 긴장감도 높아진다. 스텔스기로 무장한 한미연합 무력시위가 북한의 무모한 도발 행위를 얼마나 억제할지 알 수 없다. 다만 핵과 미사일에 집착하는 북한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면 다행이다. 새 정부는 스텔스기로 무장한 훈련을 통해 강력한 대북 정책의 일단면만 선보인 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09

확증편향의 위험성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인사권은 검찰공무원이, 정부 운영은 기재부 퇴직 공무원이, 자잘한 정무는 여의도 아웃사이더들이 맡는 방식으로 과연 향후 5년을 제대로 버텨낼 수 있을까.”윤석열 정부의 인사를 둘러싸고 정치권에 회자되는 한 줄 평가다. 시니컬하긴 하지만 현 정부 인사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대통령실이나 정부 라인업을 보면 정부 경제정책 등 운영은 기재부가, 인사통제권은 검찰이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올만 하다. 국무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국무조정실장, 경제수석에 모두 기재부 출신이 임명됐다.특히 법무부 장·차관은 말할 것도 없고 법제처장, 국가보훈처장,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이어 금융감독원장에 검찰출신이 임명됐다. 인사추천권을 가진 인사기획관 및 인사 비서관, 검증역할을 하는 공직기강비서관과 법무부 산하에 설치될 인사정보 관리부서까지 검찰출신이 떠안았다.이러니 야당이 검찰공화국 운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중에서도 1999년 출범 이후‘금융계의 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의 수장에 검찰 출신이 자리잡은 게 압권이다. 그만큼 자본시장의 불공정 거래를 척결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다. ‘경제 검찰’이라는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에 검찰 출신 인사가 한때 거론되다가 제외된 데는 이같은 세간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윤 대통령이 새 정부에 대한 여론에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방증이다. 사법고시를 거친 검찰 출신 인사들의 능력과 추진력은 대체로 뛰어나다. 국가관이나 정의감 역시 투철하다는 평가를 부인할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러니 평생 검찰에 몸담았던 윤 대통령이 직접 경험한 인물을 데려와 자신의 국정철학을 구현하는 데 쓰겠다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렇다해도 윤 대통령이‘적재적소’인사원칙으로 마냥 밀어붙이는 건 재고해야 한다.최근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준석 대표와 소위‘윤핵관’간의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어떻든 정권을 창출하는 데 공을 세운 이들의 충성심을 권력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활용하는 것은 고래로부터의 통치술이다. 다만 최근의 ‘검찰 편중 인사’논란은 윤 대통령에게 적지않은 부담이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널리 인재를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인사, 정보, 사정 등의 업무를 특정 분야 출신들이 맡을 경우 사고의 틀이 좁아져 잘못된 결정이 내려질 위험이 커진다.이른바 ‘확증편향’이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은 확증 편향의 위험성을 얼마나 피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형사재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도입된 이유 역시 확증편향으로 인한 오판을 막기 위한 장치라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듣고싶은 것만 듣고, 보고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의 위험성을 피하려면 두 가지 방안이 유력하다.집단 내에서 일부러 반대 의견을 내도록 조직된 레드팀의 운용이 하나이고, 적절한 비판과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특화된 언론출신들을 자문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다.정권의 성공과 실패는 인사(人事)에 달려있다.

2022-06-09

독재와 항쟁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 현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두 축을 이룬다. 국민소득이 100불도 안 되는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을 했고, 외신기자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어려울 거라던 민주주의도 보란 듯이 성취를 했다. 일견해서 이 두 축은 상조관계이기보다는 서로 대립하고 길항하는 관계를 지속해온 것처럼 보인다. 산업화의 성공신화를 이루기까지 적지 않은 독재와 인권침해가 있었고, 그것에 저항하면서 민주주의도 발전을 해온 터였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상당한 수준으로 달성한 지금에 와서는 그 대립과 갈등이 상쇄작용만 해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분야에서 개인이나 단체가 권력을 차지해 모든 일을 상의 없이 독단으로 처리하는 것’을 독재(獨裁)라 한다. 독재에는 개인이 행하는 일인독재, 군인들이 행하는 군사독재, 민간인이 행하는 문민독재, 그리고 민중 등 계급이 행하는 계급독재(프롤레타리아독재), 다수가 행하는 대중독재가 있다. 또한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독재와 국민 다수에 의한 독재, 그리고 국민 대중의 지지를 받는 독재로 나누기도 한다. 이른바 민주화운동권 사람들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독재에 항거한 투쟁의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민주화운동이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이라는 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제2조에 명시된 정의다. 한편 그 법의 시행령에는 민주화운동을 대통령령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해당하는 운동 목록은 3·15의거, 4·19혁명, 6·3한일회담 반대운동, 3선개헌 반대운동, 유신헌법 반대운동,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에다 행정안전부장관이 관계기관 및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고시하는 운동을 포함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동력이었던 민주화운동정신을 국가적으로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2001년 7월 24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을 제정하고, 행정자치부 산하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설립했다. 민주주의 발전과정을 기념하고 나아가 이러한 역사적 성취 위에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정신을 기리며, 민주화운동의 소중한 경험과 자산을 후대에 물려주자는 취지로 6·10민주항쟁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였다. 그동안 정치권은 산업화를 앞세우는 보수 세력과 민주화를 주창하는 진보 세력으로 양분이 되어 보수 쪽은 반공우익을 고수하는 반면 진보 쪽은 점차 용공좌익으로 변모해갔다. 우파와 좌파가 엎치락뒤치락 정권을 바꿔가며 편 가르기를 하는 바람에 두 세력 사이의 반목과 질시의 골이 깊어져서 지금은 극단적인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까지 정치인들이 갈라놓은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좌파와 우파가 원수라도 되는 양 적개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민주화가 산업화와 적대관계일 수 없으며, 사회주의나 전체주의가 민주화의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는 인식의 전제가 통합의 공통분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2-06-09

잊혀져가는 길, 형산목

윤영대 수필가 그저께 경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강동 지나며 유강터널을 앞에 두고 갑자기 생각난 듯 좁은 옆길로 내려오니 조용한 정원이 있었다. ‘형산강 역사문화 관광공원’이라 적당한 장소에 주차하였다. 나무와 꽃, 벤치가 있는 풍경에 마음이 끌려 잔디밭 길과 나무다리 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이곳을 지나던 옛 기억이 어렴풋하다.천년고도 경주를 지나며 160리길 흘러온 형산강물이 대한민국 산업화의 중심지 포항으로 얼굴을 내미는 이곳을 경주시 강동면의 ‘형산목(項)’ 또는 ‘형산미기’로 불렀다. 둘러보니 소나무 느티나무 주목이 서있고 개나리 영산홍 백철쭉은 봄엔 활짝 피었을 테고 구절초 금계국 등 많은 풀꽃도 있다.팔각정이 아담한 ‘관이금이 마당’에는 할머니 등에 업힌 아기가 잠자고 있는데 바로 유금(有琴)이다. 신라 때, 김부대왕이 죽어 큰 구렁이가 되어 들에 엎드려 있는데 아무도 모르고 지나칠 때 유금이라는 영리한 아이가 “아! 용님 나오신다”라고 외치자 그 용은 형제산을 형산(兄山)과 제산(弟山)으로 갈라 물꼬를 트고 승천하였고 이를 기려 이 들판을 ‘유금이들’이라 했다는 전설을 되새기며 데크를 걸어가서 ‘이문대’에 오르니 황금빛 보부상 동상이 부조장터의 얘기를 들려준다.공원을 나와 기억 속의 길을 가려는데 안내판에 동강서원(東江書院)이 있다고 해서 방향을 틀어 마을로 갔다. 형산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숲속에 서원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경북기념물 제114호인 동강서원은 숙종21년 우재 손중돈을 향사(享祀)하기 위해 세웠고 23년 전 복원된 탁청루가 시원스럽다. 사원 왼쪽에는 특이한 3층 구조의 오백나한전이 있는 마룡사(麻龍寺)가 있어 잘 꾸며진 뜰을 둘러보고 나오며 앞 벌판을 건너다보니 30년 전 태풍 글래디스가 퍼부은 폭우로 물에 잠겼던 도로를 자동차로 건너려다 포기하고 되돌아 왔던 기억도 있다.제산의 발밑을 돌아 옛 7번 국도를 돌아드니 이 좁은 2차선 도로를 철강제품을 엄청나게 실은 대형 트럭들이 어떻게 달렸을까 신기하다. 이제는 넓게 뚫린 유강 터널길에게 그 역할을 넘기고 한적한 강변도로가 되어 차들도 이따금 지나고, 나란히 가는 자전거길 16km는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에 뽑혔다.포항 입구 거대한 육교와 대교가 엇갈리는 곳에 유강 건널목이 있고 흰 돛배 형상의 쉼터가 있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자명 열차사고’ 추모비가 있어서이다. 1973년 5월 16일 대구발 직행버스를 타고 오던 나는 봄비가 내리는 아침, 그 사고현장을 지났다. 학교 가는 학생들로 만원이었던 버스가 동대구행 비둘기호에 부딪혀 하천으로 추락하여 85명이 참변을 당했던 엄청난 교통사고…. 그 날 시내 병원으로 실려가던 학생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이제는 이 형산강변에 철 따라 예쁜 꽃들이 피고 철새들의 날갯짓도 힘차다. 잊혀져가는 ‘형산미기’길을 참 오랜만에 지나보며 희미한 옛 기억을 되살려본 하루였다.

2022-06-09

울릉도 주민의 국힘에 대한 ’반란’

김두한 기자경북부 울릉도주민들은 섬이라는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집권당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그러나 집권당이라고 무조건 애착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수라야 한다.이 같은 뿌리 깊은 애착은 울릉도가 육지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발전하기 위해선 많은 예산을 유치해야 한다는 점과 관련있다. 울릉도는 독도와 광활한 동해 요충지고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과 해안을 같이하는 군사적, 안보적 대한민국의 요충지이기도 하다.그러기 때문에 보수 집권당에 묻지 마 투표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울릉도는 워낙 좁은 지역이라 지역 인물에 대해 서로 잘 안다. 지금까지 묻지 마 투표를 했다 해도 어느 정도 인정할 인물들이 후보로 나왔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번 6ㆍ1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울릉도주민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울릉군수선거에서 무소속 남한권 후보가 69.71%를 자치, 30.29%를 얻은 국민의 힘 정성환 후보를 39.42% 격차로 제치고 당선됐다.울릉도에서도 무소속 군수가 당선된 적이 있다. 지난 2006년 민선 4기 때 무소속 정윤열 후보가 한나라당 최수일 후보를 이긴 적이 있다. 이때는 고 노무현 정부 시절로 한나라당이 야당 때다. 당시 정윤열후보가 승리했지만 12%차이였다. 이번처럼 30% 넘게 이기지는 못했다. 당시 만약 최수일 후보가 집권당 후보였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울릉 군수선거뿐 아니라 도의원 선거도 사실상 국힘이 참패했다.이번 도의원 선거에는 5명이 출마했다. 집권당 후보가 당연히 유리한 구도다. 그런데 결과는 무소속 남진복 후보가 31.16%를 얻어 당선됐다.2위도 무소속으로 26.95%를 얻었고 국민의 후보는 20.98%에 그쳤다. 5명의 후보가 출마했다고는 하지만 울릉군수 후보 보다 얻은 득표율이 더 참패다.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군의원은 무소속이 없어서 못 뽑을 정도로 참패했다. 울릉군 가 선거구에는 6명의 후보가 출마 4명을 선출한다. 국민의 힘은 4명을 공천했다. 그런데 1~2위가 모두 무소속 후보다.국민의 힘 후보보다 많은 표 차이로 당선됐다. 무소속 후보는 1~2위 2명이 전부다. 그뿐만 아니다. 울릉군 나 선거구는 2명을 선출하는데 3명이 출마했다. 이 중 1명은 무소속이고 2명은 국민의 힘에서 공천했다. 결과는 무소속후보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울릉군 가, 나 선거구에 무소속이 3명만 출마했을 망정이지 6명이 출마했으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다.울릉군민들은 여당인 국민의 힘을 싫어한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철우 경북지사 후보를 81.24%(더불어민주당 후보 18.76%)로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광역비례대표도 74.22% 지지했다.이번 선거 결과는 경북도당 공심위가 울릉군민의 여론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점이 크다. 섬사람은 대륙 사람들보다 특히 무시당하는 것을 싫어한다.이번 선거를 계기로 국민의 힘 경북도당과 김병욱 지역구 국회의원은 이런 점을 각골명심(刻骨銘心), 무소속 울릉군수 당선인과 협력을 통해 울릉주민 숙원 사업 해결 등 울릉군 발전에 큰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kimdh@kbmaeil.com

2022-06-08

콩주머니에 담긴 추억

정미영 수필가 양말을 꺼내 신으려니 구멍이 나 있었다. 아끼던 양말인데 엄지발가락이 쏙 얼굴을 내밀었다. 부끄럽기보다는 재미가 있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실과 바늘을 찾았지만 구멍이 커서 꿰매 신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버리기가 아까워 오자미라고 불렀던 콩주머니를 만들기로 했다. 구멍난 곳을 촘촘하게 박음질한 뒤에, 콩을 넣고 양말목 부분에 땀의 크기가 고르도록 바느질에 신경을 썼다. 예전에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내가 어렸을 때에는 놀잇감이 흔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가끔 구멍 난 양말을 박음질해, 그 속에 솜을 넣고 인형을 만들어 주셨다.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인형을 움직이며,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로 시작하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할머니의 손놀림에 따라 그럴싸하게 움직이는 인형을 보면 이야기가 더욱 실감났다.할머니는 콩주머니도 만들어 주셨다. 콩주머니를 만드는 할머니의 모습은 여유로웠다. 춘향가의 한 대목을 흥얼거리기도 하고, 가끔 꽃이 핀 마당을 내다보기도 하셨다. 고개를 들지 않고 바느질에 집중하면서도 꽃밭에 나비가 나는지 벌이 날아드는지, 알아맞히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멋있어 보였다.나는 친구들이랑 공터에서 콩주머니를 가지고 놀았다. 콩주머니 놀이는 먼저 가위바위보를 해서 편을 가르고 땅에 선을 그어 영역을 나누었다. 그런 다음, 콩주머니를 힘껏 던져 상대편을 더 많이 맞혀야 이길 수 있는 놀이였다. 이리저리 뛰다 보면 이내 땀범벅이 되고, 손으로 땀을 훔치면 얼굴까지 시꺼메졌다.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얼굴이어도 창피한 줄 몰랐다. 서로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할머니는 우리가 노는 것을 한 번씩 구경하셨다. 상대편 아이가 던진 걸 손녀가 잘 받아 내면 손뼉을 치며 주름살이 펴질 듯 환하게 웃으셨다.내가 콩주머니를 받지 못하고 몸 어딘가에 맞으면 무릎을 치며 안타까워하셨다.콩주머니를 바구니에 던져 넣는 놀이도 했다. 한 친구에게 바구니를 지게하고 차례대로 던져서 누가 더 많이 넣는지 내기했다.그러면 술래가 된 친구는 큰 바구니를 등에 메고, 펄쩍펄쩍 메뚜기처럼 뛰어다녔다.그 놀이는 콩주머니가 수십 개 필요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저마다 콩주머니를 가져와야만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가져가고 싶었다. 구멍 난 양말이 없을 때에는 멀쩡한 양말을 들고 가서 만들어 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꿀밤을 맞고 울음을 터트렸다.그러면 할머니는 손녀에게 콩주머니를 한 아름 안겨 주셨다. 구멍 난 속옷이나 양말을 이용해 미리 만들어 놓은 것들이었다. 보물이 따로 없었다. 나는 보물 상자라도 안은 듯 친구들이 기다리는 골목길을 향해 의기양양 달려 나갔다.콩주머니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놀았다. 비가 오거나 혼자 집을 봐야 할 때 갖고 놀기 좋았다. 빈 요구르트 병을 세워 놓고 콩주머니를 던져 쓰러뜨리기도 하고, 공기놀이 하듯 손등에 받았다가 다시 움켜잡기를 되풀이했다. 천장까지 높이 던졌다가 잘못 받아 얼굴에 떨어지기도 했다.그러다 싫증나면 내가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천 조각을 부여잡고 씨름한 끝에 겨우 하나 만들기만 하면 야호 소리를 질렀다. 그만큼 뿌듯했다. 하지만 바늘땀이 엉성한 그것이 튼튼할 리 없었다. 한두 번만 던져도 툭 터져버렸다.오랜만에 바느질을 했더니 가슴 가득 설렜다. 콩주머니를 만드는 재미도 소소했지만, 할머니와의 추억 조각들을 떠올려 보는 것도 감회가 새로웠다. 어린이들의 장난감이 다양한 재질과 성능으로 넘쳐나는 요즘이다.하지만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위해 정성껏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이용한 인형이나 소품을 만들어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오늘따라 할머니가 그립다. 손녀에 대한 사랑과 따뜻한 손길이 담겼던 그 많던 콩주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2022-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