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史記)는 3000년의 역사를 130권에 풀어낸 양적으로만 봐도 어마어마한 역사책이다.등장 인물의 직업들만해도 1천300여 가지이니 말이다. 그 시대의 빅데이터인 셈이다. 그런데 이 사기를 정말 독특하게 여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왕조역사를 기록한 본기(本紀) 외에도 역사를 몸으로 지탱했던 수많은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열전(列傳)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라고 말했던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의 말을 무색 시킬 정도로, 지배자와 승자를 넘어 민중의 역사도 담아냈다. 무려 4천여 명의 인물을 다루었으며, 사회적 약자와 실패자, 심지어 비겁자의 이름과 삶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통해 귀한 교훈들을 우리들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2천년 전에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무대 뒤편에서 역사를 등에 업고 아무개로 살던 사람들을 기록하겠다던 사마천의 그 시선은 놀라운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시선이 아닌가 싶다.
코펜하겐비즈니스스쿨의 로버트 D. 오스틴 교수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민들레도 잡초가 아닌 약초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두고 ‘민들레 원칙’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덴마크의 회사 스페셜 리스테른은 자폐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테스트 분야에 그들을 대거 고용하여 남다른 경쟁력으로 성공을 이끌어내었다. 민들레 원칙이 적용된 좋은 사례이다. 사마천은 어찌 보면 진부하고 반복되는 왕들의 권력 다툼과 욕심의 이야기는 잠깐 뒤로 하고, 전국 방방 곡곡에 흩어져 있는 민들레를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삶을 역사로 기록했는지도 모르겠다.
빅데이터는 우리에게 혼돈(chaos)으로 다가온다. 데이터가 3차원을 넘으면 우리는 더이상 그 데이터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혼돈으로 보이는 것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종종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기술을 사용한다. 기계학습은 주어진 고차원 데이터를 저차원으로 줄이고 공통된 패턴과 규칙을 찾아내고 대다수의 데이터가 합의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추세와 범주를 벗어나는 데이터들은 특이값(outlier), 즉 잡초로 간주하고, 수학과 통계라는 칼을 이용해 민들레 뽑아내 듯 과감하게 제거해 버린다. 각각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과 다양성은 대세와 주류에 묻어버리고,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0과 1로만 구분해 버리는 새로운 전체주의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혼돈을 해결하는 대부분의 방법은 그냥 민들레를 뽑아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리에‘질서’라는 이름표를 붙여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 혼돈 속에 이미 창조주의 질서가 들어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그냥 아직 민들레의 숨겨진 진짜 가치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빅데이터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정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쓰레기통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 통에 던져버린 민들레, 그 민들레를 여전히 바라보고 있는 창조주의 시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