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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나의 해방일지

등록일 2023-05-23 18:07 게재일 2023-05-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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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영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전재영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일반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예제 코드와 데이터를 사용해서 인공지능을 직접 만들어본 사람들조차도, 꽤 괜찮은 인공지능 서비스가 만들어지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적, 재정적, 환경적 비용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거나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코딩대회에서 사람과 경쟁하며 문제를 푸는 AI를 만들어낸 딥마인드의 한 관계자에게 질문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수백 대의 기계를 사용해 AI 모델을 단 한 번 훈련시키는 데만도 꼬박 2주가 필요하다고 답해주었다. ChatGPT 운영비용은 한 달에 최소 300만 달러가 필요하며, 초기 버전에 탑재 되었던 GPT-3 모델을 훈련시킬 때 약 502톤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었다. 이는 뉴욕발 샌프란시스코행 항공기 한 대가 방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의 500배에 달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런데 이런 비용 말고 더 중요한 다른 비용이 있다. 바로 인간비용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건널목 신호등을 가리키며 빨간불일 때는 멈춰야하고 파란불일 때는 건너도 된다고 알려주는 것처럼, 기계에게도 인간이 일일이 각 상황에 맞는 정답을 알려주며 학습시키는 것을 지도 학습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각의 주어진 상황에 정답을 부여하는 작업을 보통 레이블링이라고 한다. 오늘날 기계가 고양이와 개를 구분하고, 120개에 달하는 강아지의 품종을 하나하나 사람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이유는 막대한 양의 레이블 작업을 수행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뒤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선정적이고 부적합한 콘텐츠를 걸러내기 위해서도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물론 ChatGPT도 예외는 아니다.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 위치한 한 기업과 계약을 맺었고, 수백 명의 케냐 사람들은 9시간 교대 근무 형태로 레이블링 작업을 수행했다. 그런데 문제점이 있었다. 시간당 2달러가 채 되지 않는 임금은 사실 나중 문제다. 레이블링 작업이라는 이름하에, 여러 형태의 폭력, 강간, 사형, 아동학대 등의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결과, 이들이 정신 이상 증상을 보인 것이다. 한마디로 노동착취공장이었고, 인공지능을 등에 업고 가는 현대판 노예였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지능에 열광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레이블링 작업은 고등의 전문교육의 기회를 접하지 못한 최빈국 사람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X-ray 사진을 보고 폐렴인지 정상인지를 구분하기 위한 AI, 눈 사진을 통해 백내장을 판별하는 AI도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가들의 레이블링이 필요하다.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였던 에릭 프롬은 말했다: “과거의 문제는 사람들이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미래의 문제는 사람들이 로봇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는 로봇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사실 우리는 여전히 이런 저런 형태의 노예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여전히 해방일지를 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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