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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것은 나의 몫, 나의 책임

사람들은 모두 꿈을 꾼다. 불완전한 자신을 벗어나 완전하고 충만한 자신의 모습을 꿈꾼다. 더 나은 삶, 더 즐거운 인생, 더 나은 ‘나’의 모습을 꿈꾸며 저마다의 미래를 꿈꾼다. 그래서 꿈은 모두 제 갈래의 길로 갈라져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는 공통된 목적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가닿는 방법은 모두가 다르다. 같은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설혹 비슷한 미래를 꿈꾼다 할지라도.이렇게 말하자면 모두가 다른 꿈의 조각을 앓으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의 조각을 앓고 있다. 지금의 나에 대한 불만족으로부터 비롯되는, 더 나은 내가 되는 꿈 말이다. 어느 누구도 지금의 자신을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제 각각의 불완전함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꿈이 모두 나름의 색으로 칠해져 있어 제각각의 색으로 빛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원하는 건 사실 꽤나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무언가, 자신의 삶을 충만하다 느낄 수 있게 해 줄 무언가다.어렸을 때,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줄 알았다. 내가 원하는 걸 마음껏 꿈 꿀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가난과 화목하지 않은 가족 속에서, ‘나’의 꿈은 실현 불가능한 미래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 무렵 나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믿었고, 얼마든 열심히 할 수 있고 또 잘 해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돈과 시간이었는데, 가난했던 우리 가족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 그게 밉고 싫어서, 나는 학교도 가지 않은 채 매일을 떠돌아다녔다.나는 진심을 다해 나를 둘러싼 환경을 마음껏 원망했다. 세상에는 자신이 무얼 원하는 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토록 허다하게 많은데,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음에도 그걸 할 수 없게 만드는 무능한 가족들이 미웠다. 나의 삶이 비극으로 끝난다면, 그건 나의 환경 탓이리라고 진심으로 믿었다.어느새 20년 가까이 지난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씩 그 무렵의 감정을 생각한다. 그때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만약 내가 정말로 음악이 하고 싶었다면,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주말이면 레슨을 받고 했다면 됐지 않았을까? 정작 학교를 관뒀을 때 지독한 무기력감에 시달렸던 건 왜였을까? 왜 나는 내가 스스로 해내지 않고, 부모님에게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도록 ‘전부’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던 걸까. 그들이 결코 내어줄 수 없으리라는 걸 그보다 더 어렸을 때에도 잘 알고 있었으면서.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에 가닿게 된다. 나는 정말 음악이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정말로 음악이 하고 싶었던 걸까. ‘나’라는 인간이 사실은 그저 평범하고 아무런 재능도 없으며,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 겨우 평범한 수준에야 이를 뿐인 지극히 보통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건 아닐까. 그렇기에 ‘음악’이라는 닿을 수 없는 꿈을 목표로 설정하고 스스로의 결핍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타인의 탓으로 돌렸던 건 아니었을까.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아마 답은 없을 것이다. 그건 이미 20년이나 지나버린 과거이고, 그때의 열정은 그때의 나만이 알고 있을 것이므로. 어쩌면 그건 오로지 ‘나’만의 탓도 아닐 것이고, 오로지 ‘부모’의 탓도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공평하게 무능했고, 공평하게 비겁했던 것 같다. 할 수 없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이 공평하게 뒤섞여,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만약 그때 정말로 음악을 시작했더라면, 부모님께서 나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었다면, 나는 그만큼 음악을 열망하진 않았으리라는 거다. 적어도, 나의 음악에 대한 열망은 그만큼 순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 다만, 여전히 나는 방법을 모른다. 단 하나 아는 것이 있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이 실현될 수 없을 때, 그걸 남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건 나의 삶이 타인에 의해 규정되도록 만드는 생각이니까. 환경이 나의 삶을 규정하도록 내버려두는 짓이니까.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어야만 했다. 내가 나의 욕망을 실현시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건 타인의 탓이 아니라 나의 무능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이다. 오직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만이, 나의 삶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게 점점 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2022-06-21

이야기의 힘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우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익숙한 환경을 뒤로한 채 낯선 세계에서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학생을 향한 조건 없는 환대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자주 교실에 홀로 놓였다. 같은 반 친구들과 나누는 시답지 않은 대화. 짝을 지어야만 하는 체육 시간. 삼삼오오 모여 급식소로 향하는 경쾌한 발걸음. 그러한 일상은 내게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대로인데 나를 둘러싼 세상은 완전히 변해있었고 그 간극을 메우는 방법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 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책은 내게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만화나 게임기는 가차 없이 압수하던 선생님이 소설만큼은 허용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나 발자크 같은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두드려주기까지 했다. 그 격려가 나의 유일한 자부심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도서관에 들러 어려워 보이는 책을 찾았고 모든 문장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끝끝내 읽어내기 위해 노력했다.그러니까 소설을 읽는 행위는 중학생이었던 내가 행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의 방식이었다. 육체는 교실에 있지만 정신은 머나먼 곳을 유영하면서 일종의 자유로움을 느낀 것이다.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는 생생한 체험으로 다가왔으며 강렬한 방식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어느 순간부터 소설은 단순한 도피처가 아닌 나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다.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이다. 이 괴상한 능력 덕분에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작가들은 상상의 영역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계를 그린다. 그것은 희망적인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고 섬뜩하고 두려운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는 작가의 결심에 달려 있다. 놀라우리만치 디테일한 세상을 그려낸 올더스 헉슬리, 조지 오웰, 그리고 마거릿 애트우드처럼.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전체주의 국가를 상상한다. 소설의 배경은 21세기 중반이다. 전 지구적 전쟁과 환경오염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하게 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되면서 ‘길리아드’라는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남성 권력자 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 사회로 구성원들의 활동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모습을 보여준다.이토록 끔찍한 국가에서 가장 희생당하는 건 여성이다. 그들은 기능대로 옷의 색이 정해져 있으며 여성의 역할은 가임과 출산에 국한된다. 이러한 체제를 옹호하는 자는 말한다. 과거의 사회는 선택권이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차고 넘치는 선택의 여지에 죽어가는 사회’였다고. 그러니 지금의 상황이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고. ‘세상에는 자유가 한 가지밖에 없는 게 아니야. 목표를 향한 자유가 있는가 하면 무언가로부터의 자유가 있지. 무정부 시대의 자유는 무엇을 행할 자유였어. 하지만 지금 여러분들에게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거야.’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유를 박탈당하기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며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이것을 내가 꾸며내는 이야기로 믿고 싶다. 만일 내가 꾸며낸 이야기라면, 결말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언젠가 끝이 나고, 진짜 삶은 그 후에 이어질 것이다. 끝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허구의 인물은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도 그것이 허구이기를 바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우리는 너무나 명징한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그런 면에서 이야기는 신비하고 이상하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일수록 그렇다. 선명하게 흘러가는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완전히 빠져들게 되고 그러다가도 순식간에 모든 것이 휘발되며 백지상태가 되기도 한다.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고 한 시대를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가치를 마주하다가도 하등 쓸모없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애트우드는 이야기를 쓰는 행위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어둠, 그리고 욕망이나 충동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 들어가서 운이 좋으면 어둠을 밝히고 빛 속으로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오리라는 욕망 또는 충동 말이다.’막막한 외로움에 어쩔 줄 모르던 과거의 내게 세상의 모든 낙관적인 단어를 모아 건넸다 한들 어떤 위로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도서관에 꽂혀 있는 무수한 소설책 또한 완전한 위로의 방식이 될 순 없었다. 늘 그렇듯 소설은 해답을 주지 않으니까. 하나의 이야기를 그저 보여줄 뿐이니까. 거기에서 빛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것은 결국 스스로가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라는 전언이며 그 무심하면서 다정한 언어야말로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의 놀라운 힘이다.

2022-06-21

이젠 영주시 발전 힘 모아야

김세동 경북부·영주 공명지조(共命之鳥)는 불교경전에 나오는 상상의 새로 몸 하나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로 하나가 죽으면 또 하나가 따라 죽는다.공명지조 한 머리가 낮에 좋은 열매를 찾아 먹자 이를 질투한 또 다른 머리는 독이 든 열매를 먹어 두 머리는 결국 죽었다고 한다.서로 생각과 행동이 달랐기 때문이다.공명지조는 분열된 사회를 상징하는 의미로도 해석 된다.영주시도 마찬가지다.지난 1일 지방선거가 끝나자 지역의 발전을 위해 주민 화합이 우선 돼야 한다는 시민들의 바람을 뒤로한 채 일부에서는 근거도 없는 공과를 평하는 모습이다.‘저사람은 누구를 도왔다’, ‘또 이사람은 우리 편이다’, ‘저기 누구는 양다리를 걸쳤다’는 이야기가 나돈다.이런 평가를 받는 이들 중 다수는 현직 공무원들이다.지방선거에 당선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지역 발전을 위해 이들 공무원들과 함께 일을 해 나가야 하는데 취임도 하기 전 공무원들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정치나 사회, 문화 등 각자의 이야기와 생각을 추구하는 것은 서로의 관념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영주시는 공동운명체다.그러기에 각자 다른 생각들을 모아 하나로 만들고 좋은 것을 택하며 이를 시행하는 과정이 우리가 발전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선거는 끝났다. 승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임무를 완수하고 주변에서는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 한다.내가 승자의 최고 핵관이라는 허울을 앞세워 남의 인생을 관여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특히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은 영주발전을 위해 최전선에 서 있기 때문이다.지역 발전을 위한 진정한 마음은 상호간의 질투는 없애고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서로가 이해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핵관, 핵관, 핵관이 아닌 시민, 시민, 시민, 하나의 시민이 되길 바란다.시작하는 이에게 주변인들이 부담이 되어서는 안된다.공명지조처럼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 공멸하는 사회는 만들지 말자./kimsdyj@kbmaeil.com

2022-06-21

가까이 있지만 가깝지 않은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담쟁이가 싫었다 / 무엇이든 엉망으로 휘감는 넝쿨식물이 싫었다 // 곁을 둔다는 말 / 곁은 조금 떨어진다는 말 / 시든 풀포기를 심어도 되살아 오를 것 같고 / 차 한 잔 놓아두고 싶은 곳 / 반쯤이나 손을 내밀면 닿을 거리”배냇정서는 농촌이고 감각은 도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전영관 시인의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세계사, 2012)에 수록된 시 ‘곁’의 1연과 2연이다. 쌉사래하면서 달짝지근한 칡물처럼 그의 시구를 몇 번 곱씹으니 처음에는 갸우뚱하던 의미가 은근히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와 박힌다. 담쟁이는 곁을 두지 않는다. 무엇이든 그냥 휘감거나 붙어서 자라고 살아간다. 차 한 잔 놓아두고 싶은 정도로, 손 내밀면 닿을 정도로 조금은 떨어져 있는 것이 마음 편한데, 담쟁이는 그렇지 못하다. 시인은 여유 없이 휘감고 들러붙는 담쟁이 같은 존재들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곁’은 ‘어떤 대상의 옆 또는 공간적·심리적으로 가까운 데’를 뜻하기도 하고 ‘가까이에서 보살펴 주거나 도와줄 만한 사람’을 뜻하기도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로 중국과 일본이 있다. 이 두 나라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시나 우리에게 이들 나라는 시인이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했던 담쟁이와 같은 존재는 아닐까?1965년 6월 22일에 한일협정이라고도 불리는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었다. 조약의 조인과 함께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어업에 관한 협정’, ‘문화재·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 네 개의 부속 협정이 함께 체결되었다. 이로써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이후 20년 동안 단절된 상태에 있었던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이 조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일본이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일본의 북한 접근을 견제한 것이다. 한일기본조약은 5·16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의 정당성 확보와 안정적 정착에 기여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조약이 체결된 지 57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어떠한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양국의 공통의 복지 및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고 국제평화 및 안전을 유지하는 데 양국이 국제연합헌장의 원칙에 합당하게 긴밀히 협력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라는 조약의 문구가 과연 잘 이행 되고 있는가? 추상적 선언의 문구니 왈가왈부해서는 안되는 것인가?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나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도 그렇듯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 사이에는 정치 경제와 사회 문화적인 갈등과 긴장이 상존한다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여느 나라들보다 더욱 복잡미묘하다. 부속협정인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66년부터 10년에 걸쳐 도입된 5억 달러의 대일청구권자금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강제 징용 피해자의 배상 등 전후 배상의 문제는 완결되지 못한 채 갈등 속에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가까이 있지만 결코 가깝지 않은 일본. 새 정부는 어떻게 한일 관계를 풀어갈지 궁금하다.

2022-06-21

원래의 모습

조현태수필가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지독하게 가난했다. 한 때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기계를 고치러 다니는 일도 했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사과를 팔기도 했으며, 산동네 판자촌을 돌아다니며 양말을 팔기도 했다.그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림을 사주는 사람이 없었다. 마로니에 공원과 도서관 앞에 그림을 펼쳐 놓았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져 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았다.그는 그림 다음으로 글쓰기를 좋아했다. 야간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7년에 걸쳐 글을 썼다. 나중에 책이 출간되면 절반은 가정을 돕고 절반은 가난한 이웃에게 선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기도하면서 썼다.원고 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돌아다녔지만 그의 글을 사 주는 곳이 없었다. 다섯 번이나 거절을 당했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그가 낙심하지 않은 이유는 어딘가 자신의 글을 알아 줄 출판사가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찾아간 출판사에서 그의 글을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독자들을 울린 베스트셀러 ‘연탄길’이 출간되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지만 ‘아픔’이 스며있는 책. 그 ‘연탄길’에 그가 그린 그림이 실려 있다. 이철환 작가의 이야기다.그는 ‘곰보빵’에서 낙심하지 않은 이유를 고백한다.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있을 때도 나는 프란츠 카프카를 읽었고 아무도 사지 않는 그림 옆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때도 나는 알프레드 까뮈를 읽었다. 도스토엡스키와 말라르메, 스타니슬라프스키와 헤르만 헤세가 있어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사람을 꿈꾸게 하는 것은 기쁨이 아니었다. 아픔이었다. 나는 지금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평화롭고 행복하다. 아름다움의 원래 모습은 아픔이었다.”그는 이런 일도 고백하고 있다. 어느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화장실 풍경이 몹시 낯설었다. 남자들만 사용하는 소변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어리둥절 하는 순간 여자 화장실로 잘못 들어간 것을 깨달았다. 깜짝 놀라 화장실을 급히 빠져나가려는데 공교롭게도 한 여성과 입구에서 마주쳤다. 그 여자 분도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죄송하다’는 말을 강조하며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남자화장실로 잘못 들어간 그 여자를 향해 ‘죄송합니다. 거긴 남자 화장실입니다’ 라고 소리치고는 도망쳤다고 한다.그의 실수 때문에 그 여자 분만 애꿎게 봉변을 당하게 되었으니 몹시 죄송했으리라. 물론 앞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뒷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아픔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는 있어도 실수는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되돌리지는 못한다. 다만 실수로 인한 아픔이 클수록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누구인들 낙심하지 않을 수 있으며, 실수가 없을 수야 있겠냐만 절망하지 않는 아픔과 도망치지 않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이런 원래의 모습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2022-06-21

R의 공포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나라 경제가 I의 공포에서 R의 공포로 넘어간다는 경고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물가는 오르고 화폐가치는 떨어지는 인플레이션(Inflation) 단계를 넘어 우리 경제가 경기침체(Recession)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뜻이다. 특별하게 인플레이션의 I와 경기침체의 R 뒤에 공포를 붙인 것은 그 정도가 심각함을 강조한 것이다.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나라마다 경제상황이 악화일로다. 한국도 예외 없이 어렵다. 오일쇼크 후 50년만에 스태그플레이션을 겪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경제부총리가 “경제전쟁의 대장정을 시작하자”고 언급할 정도니 경제 사정이 긴박한 건 분명하다.윤석열 대통령도 “세계 경제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며 민생 안정을 주문하고,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상당수가 우리 경제를 비관적으로 본다는 결과가 나와 모두가 걱정이다.지난달 19일 스리랑카가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국가부도의 직접적 원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가와 식량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가와 기업, 가계가 이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우리 경제는 기초체력이 괜찮아 스리랑카처럼 갈 일이 없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국가채무가 1천조를 넘고 가계부채가 국가 총생산보다 많아 금리가 인상되면 취약층을 중심으로 빚을 갚지 못할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전망이 있다. 간과할 일은 아닌 것 같다.정부의 물가 잡기 노력에도 빠르면 이달 물가상승률이 6%를 넘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경기침체에 대한 두려움 이른바 R의 공포가 서서히 엄습하는 분위기다.서민가계가 걱정이다. 경제 불황의 시작은 본래부터 없는 집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21

권력자의 부패범죄 덮일 수가 없다

심충택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아침 용산 대통령청사 출근길에 취재진과 주고받는 인터뷰 내용이 매일 주요뉴스가 되고 있다. 이제 TV를 통해 지켜보는 대통령의 이런 모습은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있다.아마 대통령 본인은 취재진이 안 보이는 출입구를 따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대단할 것이다. 언론의 본질이 권력에 비판적인데다, 종편방송은 거의 온종일 공격적인 패널을 동원해 비평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으니, 출근길이 상쾌하진 않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대통령이 매일 아침 기자들과 마주치면서 즉석 질의응답을 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해 ‘권력자의 권위의식’을 그만큼 낮춘 것이다.윤 대통령은 지난주말 출근길에는 기자들에게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의원 관련 수사가 정치 보복이라는 말이 민주당에서 나온다’는 질문을 받았다. 이전에는 해당수사를 담당하는 부서 간부가 검찰청 출입기자들에게 받던 질문이다. 이에대해 윤 대통령은 “정상적 사법시스템을 정치논쟁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나”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당장 비난이 쏟아졌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했던 국정농단 수사가 정치보복 수사였다고 주장하는 것인가”라고 비꼬았다.윤 대통령의 출근길 발언으로 전 정권 수사를 둘러싼 본격적인 진영싸움이 시작됐다. 지금 당장 이슈가 되는 문재인 정권 수사는 2가지다.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대장동·백현동 비리 사건이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에는 문재인 정부의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핵심 피의자로 수사받고 있다. 백 장관은 부하공무원을 시켜 산하 발전사 사장과 공공기관장에게 사표를 종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장동·백현동 비리 사건은 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성남시장을 할 때 벌어진 일이다. 대장동 비리는 특혜 수천억원과 뇌물 수백억원이 오간 부패범죄다. 최근에는 전 정부가 서해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건을 은폐·왜곡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윤 대통령은 지난 2월 대선후보시절에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집권하면 적폐청산 수사를 할 건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해야죠, 돼야죠”라고 단언했다. 현재 전 정권과 관련해 수사나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은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대장동·백현동 비리 사건 외에도 울산 시장 선거 공작, 원전 경제성 조작, 대통령 딸과 관련된 이상직 비리사건 등이 있다. 모두 실정법 위반 혐의에 따른 사법 절차가 진행중이다.전 정부 권력자와 야당이 반발한다고 해서 진행 중인 수사를 덮을 수도 없고 덮이지도 않는다. 범죄 행위에 대한 단서와 고소·고발이 있으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수사기관은 야당에서 ‘먼지털기식 수사’ 또는 ‘보복수사’를 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광범위한 증거자료를 확보해 범죄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2-06-21

‘완전사회’는 도래할 것인가 ?

인류에게 있어 ‘과학’이라는 단어는 마법술과 같이 언제나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기능해 온 것만 같다. 우리가 모두 느끼고 있듯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이란 언제나 예측불허이고, 결정 불가능성 속에 놓여 있게 마련이라, 마찬가지로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운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럴 때마다 거대한 문자로서의 ‘과학’은 인간이 그런 삶에 일말이나마 단단한 확신의 토대를 마련해온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적자생존!”이라는 선명한 선언을 인류 사회로 옮겨 제국주의 시대를 여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던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떠올려보라. 그것이 점유했던 가장 강한 적자만이 생존한다는 그것이 ‘과학’이라는 담론이야말로 시대적인 당위성에 대한 예감으로 식민지 정복전쟁에 나서고 있던 청년 군인의 두려움을 절박한 미래의 확고한 전망으로 대체해주는 것이 아니었겠는가.이처럼 언제나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안한 전망이 떠오를 때마다 ‘과학’은 그 불안함을 확실한 당위 내지는 절박함으로 바꾸는 중요한 힘으로 기능해왔다. 맬서스의 인구론이 가져온 공포가 뒤덮고 있던 시대,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전망과 함께 ‘과학’이, 혹은 과학에 대한 상상이 떠오르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한국 최초의 과학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김동인의 ‘K박사의 연구’(1929)가 비대해가는 인구에게 도래할 식량 생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친 과학자’의 노력을 다루고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과학은 언제나 유토피아적인 장밋빛 미래 전망과 연결되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가장 우울하고 가장 비관적인 디스토피아적 미래 전망과 접속한다. ‘과학’은 언제나 사회에 대한 미래적 불안의 배후에서 출현해서 ‘움직이고 있다’.어쩌면 과학기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들은 대부분 이렇게 당시에 존재하고 있는 시대적인 불안의 징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 최초로 창작된 에스에프(SF), 즉 사이언스픽션(Science Fiction) 장르의 작품인 문윤성(1916~2000)의 ‘완전사회’를 읽으며 그 소설 속 알레고리로 들어 있는 시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물음과 관련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1967년에 출간된 이 작품 속에는 한국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 4·19를 겪으며 민주주의의 분위기로 팽배해 있다가 독재사회로 넘어가게 될 무렵의 시대적 전망이 배경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이 소설은 인간을 냉동시켜서 보존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그를 위해 완전인간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한국인 우선구는 바로 이 완전인간에 선발되어 냉동되었다가 161년만에 깨어나게 되는데, 그가 눈앞에 맞이한 세계는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완전사회’였다. 이 사회는 한글과 영어 알파벳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언어 하나만 쓰이고, 인류는 여성만이 존재하고 남성들은 모두 화성으로 추방당한 사회였던 것이다. 이 완전한 사회 속에 유일하게 남성으로 존재하는 옛날 인간 우선구는 철저한 감시의 대상이 되면서 곤란을 겪지만, 협력자들과 협력하면서 스스로 완전사회에 균열을 내는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한다.이 소설에서 작가가 쌓아올린 161년 후의 ‘완전사회’라는 것은 꽤 놀랍고 정교하다. 여성이 사회의 유일한 젠더가 되는 과정도 가상의 역사로서 잘 구현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과학이 부여해온 기대와 두려움이 점이적 영역이 드러난다. 젠더와 언어가 통합된 완전한 사회, 그것이 또 다른 전체주의 파시즘의 시대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의 다른 편에, 민족주의가 소멸한 유토피아적인 미래상이 펼쳐져 있다. ‘과학’은 그저 놓여 있을 뿐이지만, 그를 둘러싼 우리의 사회는 그것을 매개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2-06-20

올림퍼스의 노예들 <Ⅵ>

물론 부모가 돈이 많으면 조금 편하기는 하겠지. 없는 부모를 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하지만 그건 우리가 녀석들에게 주고 싶은 만큼만, 내려주는 만큼만이지. 내가 어느 정도 내려줄지 나도 알 수가 없지. 어쨌건 뭔가 위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건 옳은 자세가 아니잖아? 누군가 내려주기만을 바라는 것 말이지. 마치 당연한 듯 말이야. 쉽지 않겠지만 스스로 구해야지. 우리처럼. 그러다 또 안 되면 어때. 나이 들 때까지 버티면 되지.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명칭인데, 노년 기본 소득보다는 노년 기본 수당이 조금 더 마음에 들어. 기본 소득이라고 하면 뭔가 공짜로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기본 수당, 이렇게 부르면 과거든 현재든 나의 공헌에 대한 대가, 당당하게 요구해도 되는 뭐 그런 것. 알잖아? 그런 기분.방송에서,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대화에서 반복되고 덧붙여지고 재생산되는 이야기였다. 노마의 아비는 어디선가 누군가로부터 들었을 이야기를 자기 것인 양 했다. 당신이 만든 이야기가 아니지 않느냐 굳이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복습을 하듯 들었다. 자신들의 편안한 노후가 자신들의 과거로부터 전해진 것이라 믿었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선 아들과 딸이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아이들? 우리의 시절보다 훨씬 나은 시절을 사는 거지. 그렇지 않아? 그들은 그렇게 여겼다. 그들의 아비 어미가 살았던 세상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더 낫다고 굳게 믿는 것처럼.신이네, 신. 시동을 걸고 네비게이션 검색을 하던 노마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예전엔 혹은 우리도 예전에는’과 같은 탄생 신화를 가지고 ‘너희가 뭐라 해도’라는 힘으로 세상을 움직이며 ‘너희도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을 몸소 나타내는 신. 그리스 로마의 신과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그 수가 많았다. 전체 인구의 40%가 신이다. 나는 신전을 관리하는 시종 말단이거나 올리브 농장의 일꾼 정도 되겠네. 아니, 노예인가? 노마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끼익, 소리가 났다.노마는 최 회장의 아들을 만나면 먼저 화부터 내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최 회장 아들 정도 되는 사람의 눈에는 교양 없는 행동으로 보이겠지만 이럴 때는 무식하게 나가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젊은 여자 배를 부르게 해 놓았으면 책임을 져야지. 뭐라고? 아이는 내 아이가 맞는데 결혼은 할 수 없다고? 그게 말이야? 노마는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는 상상을 했다. 최 회장 아들이 얼굴을 붉히며 ‘일단 앉으시지요.’라든지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자리를 옮기시지요.’하며 어정쩡한 자세로 마주 선다면 더욱 기세를 올려도 된다. 내가 말이야. 회사 사옥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할 참인데 그 전에 통보라도 해주려고 보자 그랬어. 이렇게 말을 던지는 거다. ‘무슨 일인 시위까지.’하며 굳은 얼굴로 쳐다보겠지. 아니, 이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게 없나. 이게 일인 시위할 일이 아니면 뭐가 일인 시위할 일이야. 사람이 죽어 나가야 되는 거야? 찻잔을 집어 던지거나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쳐야 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 안 된다. 이건 기선을 잡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화풀이를 하려고 만나는 것이 아니다. 화풀이가 목적이었으면 안나가 마이걸이 되었을 때, 최 회장의 아이를 가졌을 때 했어야 했다. 당당해야 한다. 노마는 정장이 아닌 작업복을 입고 나온 것이 잘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내 직업이 어때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노동자와 부자 아버지를 둔 금수저의 만남이 되는 거지. 게다가 그 부자 아버지는 노동자의 어린 여동생을 임신시켰고.-혹시 안나 씨 오빠?노마의 옆으로 한 중년 남자가 다가와 섰다.-네, 그런대요.고개를 돌린 노마가 처음 본 것은 검은 벨트의 황금색 H자 버클이었다. 회색 양복바지를 동여매고 있었다. 바지가 내려가지 않게 붙잡고 있는 것인지 아랫배가 쳐지지 않게 버텨주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무슨 일이 생기건, 언제 어느 때 건, 그게 무엇이든 꽉 붙잡고 있을 것은 분명했다. 작은 키와 삼각형의 상체. 노마는 최 회장의 아들이 대리인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변호사를 보낸 건가? 이러면 버럭 하고 화를 낼 수 없다.-아드님이 직접 나오시는 줄 알았는데.‘아드님’이라니. ‘나오시는’이라니. 노마는 자신이 뱉은 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콧등과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노마에게 중년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최 회장 아들 최필립입니다. 기대했던 모습이 아닌 가 봅니다.-아, 아. 네에. 저는 아드님이라 해서 저보다 나이가 약간 많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짐작보다 연배가 훨씬 높아 보이셔서.노마는 화를 내지 못했다. 얼굴을 본 첫 순간부터 공격적으로 나갔어야 하는데, 상대방이 당황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하하. 그렇군요. 저희 아버님 연세가 여든 일곱입니다. 저는 오십 둘이고. 제가 서른둘이면 되겠습니까? 이해가 되시지요? 하긴 안나 씨 뱃속에 있는 아이도 우리 아버지의 자식이니 아버지의 나이로 자식의 나이를 짐작할 수는 없겠군요.필립은 짧은 미소를 보인 후 테이블 위 놓인 노마의 찻잔을 들여다보았다./김강 소설가

2022-06-20

다국적 나라 공통 언어가 되어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65%, 중국계 22%, 인도계 9%, 기타 소수민족 등 다민족국가로 구성되어 있고, 말레이계 국민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공장을 짓기 위해 건축설계 허가를 받으려면 기도실이 있어야 한다. 근무 중에도 하루 다섯번은 기도를 하고 금요일은 인근 사원에 들러 기도를 하는 문화다. 이슬람교를 믿는 국민들은 술을 마실 수 없고 돼지고기, 소고기는 할랄 의식을 거친 허락된 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다. 맥주 두 잔 마신 말레이계 국민이 곤장을 맞는 종교재판이 권위가 있는 사회문화의 나라다.필자가 P사의 말레이시아 해외법인 컨설팅을 갔을 때 일이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시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 처음 간 곳은 이슬람교 큰 사원이었다. 호텔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에 사원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따라 40여 분 걸어가니 큰 사원이 나왔다. 손을 씻고 대웅전에 들어가보니 코오란이 있고 벽을 보고 기도하는 모습이 새로웠다.현지 주재원과 첫 인터뷰를 했을 때 말레이계 직원은 내성적이고 적극성이 부족하고 부지런하지 않다고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사실과 달랐다. 말레이계 직원과 대화를 했을 때 첫마디가 공장 내 기도실에 거울과 손 씻을 수도를 설치해달라는 평범한 얘기였고 그들에게는 소중한 일이었다. 문화와 인식의 차이가 관리운영 방식에 오류가 생기고 소통의 벽을 만드는 형국이었다.M법인은 250여 명의 직원 중 61%가 네팔, 방글라데시, 미얀마, 파키스탄 등 외국인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어 소통하려면 영어, 각국 언어, 한국어 등 3중 통역을 하므로 일이 원활하게 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효율도 떨어졌다. 현장 낭비를 사진으로 보여주고 찾는 방법, 사례를 소개하고 실습을 시켰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말이 안 통해 묵묵부답의 일상이었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눈빛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후에 ‘SeeFeelChange’란 모토로 말레이, 중국, 인도계, 외국인 노동자 등 모두가 대화하고 토론하며 현장의 큰 변화가 시작되었고 일하기 쉽고 편리하고 쾌적한 생산현장으로 변모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눈으로 보는 관리’ 체계를 만들고 개선 수준도 높여 나갔다. 어렵게만 생각했던 다국적 다민족국가, 사회문화와 다양한 종교, 회사 조직도 중국계, 인도계가 스태프를 맡고 생산직은 말레이계와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는 요건에서, 소통과 좋은 직장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그 비결은 상대 관점에서 생각하고 사회문화, 종교, 생활습관 등이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복잡하게 접근하기 보다 Simple of Best로 작업개선을 통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며, 통하면 무엇을 하려 해도 성공적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최근 기업에서 MZ세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새로운 시대의 생활과 문화, 사고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해답을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과도기 시대를 살아가는 기성세대의 관점을 바꾸면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2022-06-20

잊혀지는 것들에 머무는 시선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새들은 유유히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펄펄 뛰는 자유롭고 활달한 나날이다. 보리는 누렇게 익어 타맥장(打麥場)이 펼쳐지고, 풀과 잎새가 더욱 짙어가는 하지초목심(夏至草木深)이다. 청보리가 익어 하지 무렵에 거둬들이니, 여름날에도 가을철의 추수처럼 보리나 감자를 수확하는 이맘 때를 맥추(麥秋)라 하기도 한다. ‘하짓날은 감자 캐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는 말도 있듯이, 하지 무렵 감자를 캐어 밥에다 하나라도 넣어 먹어야 감자가 잘 열린다고 해서 요즘도 풋감자를 자주 삶아 먹거나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향그런 꽃 저버려 온 산 푸른데/가랑비 오는 속에 뻐꾸기 울음 울다/봄날 시름은 풀처럼 자라거늘/어느 때 낫을 얻어 마음의 뜰 베리오(芳花謝了滿山靑 細雨970F970F布穀廳 春日傷悲如草長 何時得91E4刈心庭)’- 강성위 한시집 ‘하늘에 두 바퀴의 달이 있다면’중‘봄을 보내며(送春)’중자연현상이나 사람 사는 일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 산길이나 뜨락은 사람이 다니거나 가꾸지 않으면 금세 풀이 자라 무성해지듯이 사람의 관계도 소통이나 만남이 없으면 어느새 소원해지고 서먹해지게 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또는 헤어져 가는 사람은 하루하루 멀어지고 오는 사람은 날로 친숙해진다(去者日以疎 來者日以親)는 시구처럼, 절친했던 사람도 멀리 떠나면 점차 멀어지고 자주 만나거나 접하는 사람은 친하고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닐 듯싶다.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시간이 지나고 듣거나 눈에 띄지 않게 되면 조금씩 잊혀지고 기억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망각은 결코 이성능력의 부족이나 타성력이 아니라 삶에 필요하고 삶을 가능케 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수없이 접하고 수집되는 정보가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컴퓨터의 저장장치나 외장하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날이 갈수록 안 좋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밀어내어 정신적 질서와 안정을 찾게 되는 기능을 하게 된다. 이러한 망각작용에 의해 인간은 건강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그러나 사람들은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억하고 반추함으로써 만족과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울분과 참회의 계기로 삼기도 한다. 어릴 적의 추억이나 희미한 옛사진을 보며 회상에 젖어드는가 하면, 치 떨리는 고난의 기억을 접해서는 한사코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다짐하고 맹세하게 된다. 그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일까? 옛 것이나 지난 날들의 시비 속에는 얼마든지 지혜나 교훈으로 삼을 일들이 무수히 많다. 다만 그것을 발견하고 되새기는 것은 가치와 관점에서 비롯되는 안목일 것이다.6·25전쟁이 발발한지 72년째지만 아직도 찾지 못하고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하다. 어느 무명용사의 넋이 원혼으로 떠돌아 초연이 쓸고 간 6월의 초목이 저리 짙푸른지도 모른다.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것들에 머무는 따스한 시선으로 관심과 챙김, 정리와 기억의 손길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2022-06-20

‘물순환’

남광현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물순환’은 하늘에서 내린 강수(눈이나 비 등)가 지표수와 지하수로 되어 흐르다가 하천, 호수, 늪, 바다 등으로 흐르거나 저장되었다가 증발해 다시 강수로 되는 연속된 물의 흐름을 의미한다.과거 농경 중심의 촌락단위 분산형 사회에서의 ‘물순환’의 모습은 도시화된 현재에서는 그 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했다.대구, 포항, 안동 등 대구경북의 주요 도시에서 일어난 ‘물순환’의 변화를 보면, 바다를 제외한 하천, 호수, 늪 등 물의 저장소는 거의 사라지고 그 위를 도로나 건물 등으로 완전히 뒤덮여 버렸다.조선 후기의 기록을 보면 팔공산, 비슬산, 앞산 등 웅장한 산과 낙동강, 금호강, 신천 등이 유유히 흐르는 분지 지형의 대구는 저수지가 거의 100개에 이를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저수지를 보유한 물의 도시였다고 한다.현재 달성고등학교와 광장타운이 있는 곳은 감삼못, 남구의 교대 앞 영선시장 일대는 영선못, 수성구청과 대구여고 자리는 범어못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물이 있어야 할 공간이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실감이 나게 한다.저수지뿐만 아니라 대구의 하천 지도를 보면 대구 도심에는 금호강과 합류되는 달서천 말단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하천 표시가 전혀 없다.이렇게 물의 도시 대구가 산업화와 도시화로 콘크리트 도시로 변모하면서 물의 저장공간이 사라져 ‘물순환’이 끊어졌는데, 기후변화 마저 심해져 해마다 폭염과 열대야 그리고 미세먼지에 시달리는 도시로 변했다.대구뿐만 아니라 경북지역의 ‘물순환’ 상황도 유사하게 변화해 가창댐, 운문댐 등 주요 식수원의 저수율도 자주 바닥 수준으로 떨어지는데, 금년에도 강우량이 부족해 심각한 가뭄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또한 지난 3월에 일어난 역대 최대의 울진군 산불과 이어 계속된 많은 산불도 ‘물순환’이 끊어져 초래한 심각한 장기 산악 가뭄이 원인이다.‘물순환’ 파괴의 심각한 영향은 가뭄 뿐만 아니라 지난 2020년 7~8월 무려 54일간 계속된 사상 최장의 장마 기간 많은 강우량으로 인해 초래한 수도권과 부산지역의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에서도 알 수 있다.다행히 이때는 대구경북이 상대적으로 적은 강우량으로 피해가 적었지만, 이번 여름은 동일한 형태의 장마가 발생해 많은 강우량이 우리 지역에 내릴지 모를 일이다. 따라서 과거 ‘물순환’ 형태로의 복귀는 작게는 나와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며, 크게는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물순환’ 파괴로 몸살을 앓았던 선진국의 주요 도시는 건전한 ‘물순환’ 회복을 위해 ‘저영향 개발기법(LID)’을 도입하고 ‘그린 인프라(GI)’를 확대함과 동시에 불투수면적에 비례해 빗물유출부담금(빗물세)을 부과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대구와 경북의 주요 도시는 낙동강 유역 내 불투수 면적률 상위지역으로 자리매겨지고 있어 이러한 ‘물순환’ 회복 노력이 시급하다.

2022-06-20

지구촌 ‘블랙아웃’ 위기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낮 기온이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유례없는 폭염이 미국과 유럽, 인도 등 지구촌을 덮쳐 지구촌이 블랙아웃 위기에 빠졌다.올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에너지 수급이 불안정한 와중에 냉방 수요 폭증이 겹쳐 에너지대란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이미 스페인과 프랑스 등 유럽은 때 이른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는 지난 17일 최고기온이 섭씨 39도에 육박했다. 1950년 이후 6월 기온 중 사상 최고치다. 프랑스 남부 르벨(40.2도), 피소스(41.7도)의 기온이 40도를 돌파하는 등 도시 수십 곳이 역대 6월 최고기온 기록을 줄줄이 경신했다.미국에선 고기압이 한 지역에 정체돼 뜨거운 공기가 갇히는 ‘열돔 현상’이 발생, 기록적 폭염이 예고됐다. 지난 3월 122년 만에 최악의 폭염이 닥친 인도에선 지난달에도 수도 뉴델리의 기온이 49도를 넘어섰다.열돔 현상은 화석연료 사용 증가로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가 제트 기류에 영향을 주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더 큰 문제는 폭염에 따른 전력난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프랑스에선 전체 전력의 70%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 중 일부가 가동 중단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폭염으로 강물 수온이 급격히 높아지면 원전 냉각수로 끌어다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도 수력발전이 전체 전력의 10%를 차지하는데, 가뭄으로 강물 수위가 낮아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미국에선 대규모 블랙아웃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오하이오주에선 지난 15일 18만 가구에 전력 공급이 일시 중단됐다.지구온난화의 재앙을 막기 위한 지구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6-20

김건희 여사의 외출을 허하라

김진국 고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일 입길에 오른다. 한 마디로 “조용히 내조만 한다더니 왜 나서느냐”고 한다. 김 여사의 사생활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의 문제라 차분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전례를 봐도 윤 대통령의 성공 여부에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다.민주당 소속인 한 방송 토론자는 “내조만 한다더니 과거 영부인들은 왜 예방하느냐”라고 비난했다. 김 여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까지 차례로 찾아갔다. 김정숙 여사도 만났다. 같은 자리를 경험한 원로는 찾아 뵙는 게 예의고, 그분들로부터 조언을 듣고, 모범으로 삼는 것은 칭찬할 일이다. 이것까지 선거 때 발언을 들먹이며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모는 데는 “꼴 보기 싫으니 보이지 마라”는 날 선 감정이 느껴진다.아무리 근신하더라도 대통령 부인이 골방에 갇혀 있을 순 없다. 외국 정상 부인이 왔는데 일도 없이 안 만나는 건 실례다. 상식에 맞고, 예의에 맞는 일을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시비하는 건 옹졸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김 여사에게 “정상의 자리는 평가받고 채찍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이 참으셔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런 상황까지 헤아린 게 아닐까.물론 김건희 여사의 행보에 불안한 구석도 있다. 윤호중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공개한 건 예의가 아니다. 윤 전 위원장을 궁지로 몰았다. 이런 식으로는 야당의 협조를 얻어낼 수 없다. 윤 전 위원장의 ‘잇몸 사진’을 공개한 것이나, 대통령집무실에서 찍은 사진 등을 팬카페에서 공개한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면 사과하는 게 옳다.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라오스 공항에서 대통령보다 앞장서 카펫 위를 걸으며 손을 흔들었다. 대통령 선거 뒤 “경인선 가자”라고 한 말이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대통령 없이 혼자 공식 외교 목적으로 인도를 방문하고, ‘버킷리스트’가 있다는 의심까지 받았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애 시절 ‘새마음 운동’에 앞장선 일이 있다. 최태민 목사가 영애를 앞세워 전국적 조직을 만들어 영향력을 휘둘렀고, 여러 가지 의혹과 구설을 낳았다. 심지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보기관까지 나서 단속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지는 문제들이다. 모두 되새겨보아야 할 선례다.힘 있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꼬인다. 좋은 사람도 있겠지만 모리배가 더 많다. 전직 대통령의 가족이 연루된 비리 사건을 많이 봤다. 본인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고, 정의감과 애국심에 이름만 얹어놓았다 이용당하기 일쑤다. 본인이 청탁하지 않아도 이름을 팔고, 명함 한 장으로 호가호위하는 세상이다.세간에는 벌써 ‘김 여사 줄을 잡아 영전했다’라는 식의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나도는 형편이다. 권양숙 여사가 “(윤 대통령) 뒤에서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도 너무 잘하셨다”라고 한 칭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는 아무리 몸을 사려도 지나치지 않다.김 여사가 제 역할을 하려면 두 가지를 당장 정리해야 한다. 첫째 보좌조직을 둬야 한다. 나라를 위해 무엇이 옳은지 여야가 다 동의하는데 후보 시절 내뱉은 한 마디에 매달릴 건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핵심은 ‘최순실’이라는 ‘비선’이다. 어릴 때부터 도와준 사람이라 당연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은 투명한 공조직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인으로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투명하게 통제할 수도 있다.둘째, 외부의 사적 지원 조직은 정리해야 한다. 야당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무속인 문제는 최태민 목사를 연상시킨다. ‘건희사랑’이라는 팬클럽은 회장의 욕설로 구설에 올랐다. 윤 대통령을 돕는다는 게 부담만 되고 있다. 코바나컨텐츠는 사기업이다. 그 직원에게 공적인 업무를 맡길 순 없다. 적어도 대통령 임기 동안은 이런 사적 인연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크게 억울한 일을 각오해야 한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6-19

코로나19 후유증과 운동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우리나라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천800만명을 넘어섰다. 국민 3명 중 1명 이상이 코로나에 걸린 셈이다. 확진자 상당수가 격리기간이 끝난 뒤에도 후유증을 겪고 있다.이미 미국, 영국, 독일 등 여러 국가에서는 코로나19 후유증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연구를 진행하거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회복에 대해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영국 국립보건연구원(NIHR)에서는 코로나19 환자의 퇴원 후 회복과정을 돕고,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증상 완화를 위해 운동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코로나19에 걸리면 4~5일 이내에 발열, 목통증, 기침, 근육통, 몸살, 미각 또는 후각 상실,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경미한 경우 7~10일 이후에 증상이 사라지지만 심각한 증상의 치료는 3~6주 정도 소요된다. 코로나19 완치 후 유전자 증폭(PCR) 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오더라도 별다른 이유 없이 호흡곤란과 숨 가쁨, 우울, 불안, 인지 저하, 피로, 탈진(exhaustion) 수면장애 또는 불면증 등의 증상이 몇 주에서 몇 달간 지속되는데, 이를 코로나19 장기 후유증이라고 한다.국외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입원치료를 받은 환자의 87%와 입원이 불필요한 환자의 35%가 코로나19 장기 후유증을 앓고 있고, 이들 중 32%는 1~2가지 증상을 가진 반면, 55%는 3가지 이상의 증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또한 코로나19 감염 빈도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고, 코로나19 장기 후유증은 남성(20.7%)보다 여성(23.6%)이 더 많이 발생한다. 특히 고혈압 등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은 1.3배 이상, 비만인 사람은 2.3배 더 높은 빈도로 후유증이 발생한다고 한다.코로나19 후유증은 200여 가지에 이르는데, 흔히 발생하는 후유증은 피로(58%), 두통(44%), 집중력 저하(27%), 탈모(25%), 호흡곤란(24%), 후각상실증(21%), 기침(19%) 등이 있고, 혈관계 이상, 기억력과 판단력 감퇴, 수면장애, 위장장애, 시력저하, 근골격계 이상 등의 증상도 보고된다. 코로나19 후유증 중 비율이 가장 높은 피로 증상은 코로나19 감염 증상 발현 후 100일까지 이어질 수 있고, 1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감염 후 1~2개월이 지났는데도 증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병원 방문을 고려하고, 3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전문적인 치료를 받길 권장한다.운동이 코로나19 감염 예방과 회복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일주일 동안 150분 이상의 중등도 강도 운동 또는 75분 이상의 고강도 운동을 수행한 사람과 미국의 ‘2018 신체활동지침’에 따라 근력운동을 수행한 사람은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이 낮고, 감염이 되더라도 중증으로 악화되거나 사망으로 이어질 확률이 낮다고 한다.아직은 코로나19 장기 후유증에 대한 운동의 이점과 관련된 데이터나 연구가 부족하지만, 여러 학자나 전문가들은 개인에 맞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운동이 각종 질환을 예방하는 것과 같이 코로나19 후유증 회복에도 맞춤형 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최근 국외 저명 의학 저널에 게재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회복을 위해 유산소운동과 균형운동 및 근력운동 등으로 구성된 복합운동프로그램을 적어도 주3회 4주 또는 주2회 6주 동안 실시할 필요가 있고, 1회 운동 시 숨은 차지만 대화는 할 수 있을 정도의 중등도 강도로 1시간 이상 지속해야 한다고 한다.한편 영국 국립보건연구원에서는 단계적으로 운동 강도를 증가시키는 점진적 과부하 운동이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중 피로 증상 완화를 위한 운동처방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다시 말해 경미하거나 중증도의 환자에게는 점진적 과부하 운동을 추천하지만, 중증인 환자에게는 증상을 고려한 환자 맞춤형 운동이 포함된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최근 대통령인수위원회가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관련 방안이 포함된 ‘코로나 100일 로드맵’을 발표했고, 서울 성동구 등 자치단체에서 ‘코로나19 후유증 클리닉’을 개설했으며 서울의료원 등 종합병원에서도 코로나19 후유증 치료를 전담하는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부경대학교에서도 코로나 확진을 받은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장기 후유증 극복을 돕는 운동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과 같이 세밀하고 촘촘한 연구 진행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결과적으로 코로나19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지도하에 증상이 재발하지 않도록 자신의 건강과 체력 및 회복속도를 조절하여 꾸준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실시해야 하며, 효과적인 운동의 종류와 강도 및 빈도 등 적정 운동량에 대한 기준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연구를 통해 과학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022-06-19

정치인이 배워야 할 송해 선생의 낮춤 리더십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송해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1927년 황해도 재령 출신의 95세의 송해는 지난 10일 대구 송해공원 부인 곁에 안장되었다.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그는 단신 서해를 건너 월남하여 바다 해(海)를 그의 예명으로 하였다.그는 해주예술전문학교 출신이었지만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이기동 등 유명 코미디언의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61세이던 1988년부터 34년간 ‘전국노래자랑’MC로 발탁되어 누구나 그를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의 프로에 출연한 사람이 천여 명이 넘었으며 송가인, 임영웅, 이찬원 등 수많은 가수를 배출했다. 기네스북에는 그를 세계 최고령 음악 진행자로 등재하였다. 정부는 그에게 금관문화 대훈장을 추서하였다. 그가 95세까지 연예인 활동을 하면서 국민의 심금을 울린 비결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국민 눈높이에 맞춘 그의 서민적인 낮춤의 처신 때문이다.송해의 인생 궤적을 돌아볼 때 그에게 배워야 할 교훈이 너무나 많다. 그는 무대에서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언제나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우리 정치인들의 표를 얻기 위한 낮은 자세가 아닌 몸에 밴 겸손 때문이다.이 나라 정치인들부터 배워야 할 처신이다. 그의 대중 친화적인 이미지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낮은 자세를 통해 소통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었다.전국 방방 곳곳의 노래자랑에 앞서 그는 현지 대중목욕탕부터 찾았다. 그는 대중탕의 뜨거운 몰속에 몸을 담그고 그곳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였다. 모두 지역 사정을 파악하고 주민들의 정서까지 읽기 위함이다. 무대에 서면 그는 먼저 그 지역민의 긍지부터 살려 주었다. 어린이에서부터 고령 출연자에게 눈높이 대화를 나누었다. 현지의 특산물을 무엇이든 맛있게 먹고, 구수한 덕담까지 이어갔다. 이 나라 정치인들은 송해로부터 지역 민심 파악 방법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송해의 인생에도 구비마다 어려움이 많았다. 작달만한 키에 두꺼비상의 얼굴, 무명 악극단 시절의 배고픔, 경쟁이 치열한 코미디계에서 생존 어느 것 하나 어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는 남하한 후 6·25 전쟁 중 통신병 생활을 하다 1953년 부대 선임의 동생과 결혼을 하였다. 군 제대 후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하였다.연예인으로서 커가던 그는 1974년 사랑하는 23세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응급실에 들어가면서 ‘아버지 살려 주세요’란 말만 남기고 그는 세상을 떠나 버렸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고 그의 가슴에는 늘 아들이 묻혀 있었다. 부인마저 2018년 세상을 떠났다. 보통사람이면 모든 것을 접어야 환갑 나이에 그는 노래자랑 MC로 재출발하였다. 나도 일요일의 노래자랑 프로그램은 재미있게 보았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위트와 재담으로 우리 국민의 청량제 역할을 하였다. 우리 정치인 중 삶에 지친 국민들에게 그처럼 희망의 빛이 된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이처럼 송해 선생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송해는 평양 노래자랑까지 다녀왔지만 그가 그렇게도 애타게 그리던 고향 재령 땅은 밟지 못했다. 요즘 우리 정치의 당면 과제로 화합이나 통합이라는 화두를 많이 던진다. 이는 자신부터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낮은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송해는 무대에서 여성과 남성, 어린이와 노인, 외국 근로자를 똑같은 눈높이로 대우하였다. 그의 얼굴에서는 거만과 교만의 빛을 찾아볼 수 없고 웃음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어린이뿐 아니라 할머니로부터도 ‘오빠’라는 애칭을 받았다. 그의 소탈한 자세는 이 나라 최장수 프로의 비결이 되었다. 그는 지극히 한국적인 무대에서 민중의 애환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밑으로부터 존경받는 서민적 리더십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에게는 평범 속의 비범이 있었기 때문이다.송해 선생은 이제 대구 지역 송해공원 부근에 그의 조강지처와 함께 조용히 안장되었다. 6·25를 몸으로 겪고 국민들의 애환을 함께한 최장수 국민 MC인 그가 편안히 영면하시길 빈다.우리나라의 국력은 경제뿐 아니라 문화·스포츠계까지 세계로 펼쳐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 정치는 아직도 혼돈과 갈등만 반복되고 있다. 인간 송해의 인간적인 소탈함과 대중 친화적 자세는 이 나라 정치인이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할 덕목이다.그는 코미디와 노래, 나아가 MC를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벗이 되었다. 그는 서민과 함께한 인정 넘치는 할아버지 처신을 통해 국민을 하나로 이끌어 주었다. 그의 처신과 리더십은 결코 위장되고 가식적이 아닌 소외된 사람의 참된 벗이 되었다. 그는 우리 문화계의 거장으로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이 지역민들이 그의 묘소를 찾아 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해주길 바란다. 편히 영면하소서. 이 나라 문화의 거장 송해 선생님!

2022-06-19

하늘길로 미래를 여는 수성구

김대권 대구 수성구청장 30년 전 레전드 만화영화 ‘우주의 원더키디’에서 주인공 옆에는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는 로봇 ‘코보트’가 있었다. 평소에는 로봇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급박한 상황이나 필요한 순간 비행기로 변신한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와 ‘제 5원소’에도 플라잉카가 등장한다.SF 영화에서만 날아다닌다고 생각했던 꿈의 자동차가 현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향후 대도시권의 지상교통 혼잡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지상이 아닌 상공을 나는 3차원의 새로운 대안모델로 2020년 6월 4일 정부는 2025년 상용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한국형 도심항공교통(UAM) 로드맵을 발표했다. 여기서 UAM은 도시 내 또는 도시 간 짧은 거리를 단시간 내 도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교통수단이다.드론산업은 ICT, 인공지능, 빅테이터 등 다양한 4차산업 기술과 융·복합하는 미래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드론은 최근 물류, 소방 등 활용범위도 넓어지고 있으며, 하드웨어 제작, 관제시스템, 드론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 시장의 외연도 크게 진행되고 있다.기본적으로 도시가 교통 중심에서 멀어지면 도시로 사람을 끌어들이기 힘들다. 지금 대구는 광역철도, 엑스코선, 대구경북통합신공항, 시청사 이전, 서대구 역세권 개발 등 대구의 중심축이 바뀌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수성구 역시 대공원개발, 법원·검찰청 이전, 도시철도 3호선 연장 등이 계획돼 있고, 연호지구와 수성알파시티의 개발로 비즈니스 수요가 늘어나고, 관련인구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높아지는 경제규모, 항공수요, 교통혼잡도 등을 고려해 볼 때 수성구에 교통거점이 필요하다.수성구는 2020년 10월 28일 대구시와 공동 주최한 ‘제1회 세계문화산업포럼’에서 도시비전을 포함한 미래도시 계획을 발표하면서 하늘이 자유로운 도시‘Sky Free City’를 수성구의 미래비전으로 선정했다. 그 해 11월 중순에는 미래유망 성장동력 산업인 드론택시 서비스를 지방 최초로 실증했다. 드론·UAM 사업을 선도하는 수성구의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2021년에는 대구·경북권 및 전국 기초 자치구 최초로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인 ‘2021년 드론 실증도시 구축사업’에 선정됐다.수성구 전체 면적의 50%를 차지하는 도심 내 산간지역 자연생태 보전을 위한 산불감시/소화탄 진화/조난자 물자수송/야생동물 정찰 및 퇴치의 과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했으며, 10월 시연회를 통해 점검을 마쳤다.2022년 1월에는 구의회, 대구시, 국토부, 한국공항공사 등 관계자 4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구수성 UAM 인프라 구축’이라는 주제로 전문가 포럼을 개최했고, 포럼 사전 행사로 개최 장소인 수성호텔에서 책, 샌드위치·음료를 실은 드론으로 4㎞를 비행해 용지봉 정상(629m)까지 자율비행을 선보였으며, 인명구조용 PAV(개인용비행체)로 고층건물에서 환자 더미를 지상으로 이송하는 장면도 영상 송출 했다.이 날 포럼에서는 국토교통부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5군지사 이전 터에 UAM 특화도시 구상을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올해는 구립도서관 드론 책배송 서비스 용역을 자체 구비 예산을 편성하여 추진한다. 용역기간 7개월로 도서관 상호대차서비스(다른 도서관 책을 가까운 도서관에 대여·반납)와 주민 독서문화 확산서비스(지역 내 거점시설에 도서 배송)를 추진하고, 향후 수성구가 드론산업에 대한 지속가능하고 독자적으로 사업 추진할 수 있는 솔루션을 구상할 계획이다.플라잉카가 우리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교통체증은 물론 장애물 없는 하늘길을 자유롭게 오가고 수직 이착륙이 가능해 물류 운송비용 등 사회적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다.수성구의 UAM관련 미래 로드맵은 지금까지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수성못과 용지봉을 잇는 케이블카를 대신할 운행 비즈니스모델 개발, 수성못 상공이 무대가 되는 드론을 활용한 공연, 2030년을 목표로 5군수이전 후적지에 드론택시 메인 공항을 유치하는 계획이다.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에 대응하기 위해 ‘도전과 결단, 모험’이 필요한 시점에서 첨단산업과 미래교통의 중심지를 선점하는 것이 수성구의 미래를 대비하는 길이다.

2022-06-19

하늘빛 서정

우리네 삶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붓을 잡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은 악보를 보며, 글을 쓰는 사람은 펜을 든다. 인류가 시작한 처음부터 우리의 삶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슬퍼하거나 노하거나, 기쁘고 즐거운 일은 항상 있다. 때론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그렇게 살아간다. 이웃과 더불어 살며 와글와글하는 세상사의 이야기를 연재한다.무작정 떠난 길이다. 한참을 걷다가 바다를 바라보는데, 하늘에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호젓한 날갯짓을 보니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새가 하늘로 날아오른다.하늘은 어디에 가나 있었다. 고샅길에서 공깃돌을 주울 때도, 길가 작은 연못에도 구름을 머금은 채 내려와 있었다. 하늘도 마음이 있는지 먹구름이 끼다가 비가 오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을 쏟아냈다. 흐린 날에는 우울하고 맑은 날에는 개고, 하늘의 표정은 어린 마음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가끔 하늘은 두려운 존재였다. 서쪽 하늘에서 몰려오는 먹구름을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기억의 창고 한구석에 감춰둔 용서받지 않은 잘못이 쥐구멍을 찾아 허둥댔다.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면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이 지붕 아래로 숨어들었다.살짝만 건드려도 감수성이 터지던 시절, 말간 하늘에 떠 있는 한 점 구름을 보면 마음속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그 무엇이 있었다. 무거운 책가방과 교복을 벗어 던지고 숙제와 시험이 없는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다.하늘을 보며 때로는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구름 위에 누워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면 낙타를 탄 여행자를 만나고 아라비아 양탄자를 탄 소년도 만나겠지. 내가 사는 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싶은 나는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세계를 일주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삶의 개척자가 되고 나서 하늘을 보지 않았다. 땅의 것에 충실 하느라, 주부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며 모든 것은 가족 중심으로 돌아갔다. 배낭을 메고 산길을 걸으며 하늘빛 서정을 담는 일은 일상에서 제외되었다. 하늘을 보며 상상하는 일은 한가한 몽상가의 사치이고 현실주의에 빠진 내게 비생산적인 일이었다. 하늘은 내 심상에서 점점 멀어졌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숨을 돌릴 무렵, 하늘에 매달리는 일이 생겼다. 땅의 것을 채우기에 바빴던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았음이다. 그런데도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병이 왔는지 원망했다. 또 왜 나냐고 회색빛 하늘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러다 두려움이 밀려와 살려달라고 하늘을 보고 떼를 부렸다. 이순혜 수필가 수술을 앞두고 오히려 차분했다. 지금껏 쏟아냈던 다짐을 되새기며 나붓이 엎드렸다. 앞으로 하늘을 볼 수 있게만 해달라고. 수술실에 들어갈 때까지 하늘만 생각했다. 스르륵 앞이 캄캄해졌다. 긴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자 가장 먼저 하늘이 보고 싶었다. 휠체어에 앉아 바라본 하늘이 이토록 시리고 투명하다니. 뜨거운 눈물이 온몸을 적셨다. 상상의 날개는 살아있는 자에게 주는 하늘의 축복이었다.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본다. 숱한 이야기가 하늘로 올라가 숨어있었다. 하늘 깊이 낚싯대를 드리우면 선녀를 닮은 물고기가 입질할 것 같고,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가 금빛 두레박을 타고 내려올 것 같았다. 상상의 그물을 깊이 올렸다가 내리면 싱싱한 이야기들이 은빛 비늘을 파닥이며 우르르 쏟아졌다.하늘은 다채롭다.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다가 사라지고, 온갖 그림을 그렸다가 어느새 싹 지워버린다. 소나기를 퍼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갛게 능청을 떤다. 가끔은 무지개를 띄워 사람들의 마음을 채색한다. 심상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푸른 도화지, 만약 하늘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 무채색일 것이다. 하늘하늘, 하늘은 어감조차 가볍다. 사람의 마음에 바탕색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빛이다.

2022-06-19

여름 한가운데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 6월 21일은 하지(夏至)다. 북반구에서 밤이 가장 짧고 낮이 가장 긴 날이 하짓날이다. 여름의 정점이다.본디 빛을 좋아하고, 어둠을 꺼리는 성정인지라, 아파트와 거리를 두었다. 해가 늦게 떠서 일찍 사라지는 시멘트 콘크리트 건축물. 촌에서는 해가 일찍 떠서 늦게까지 사위를 밝힌다. 그런 밝음은 사람을 무연하게 행복하게 해준다. 층간소음에 괴로워했던 기억도 사라진 지 오래다.상강(霜降) 지나고 입동(立冬) 거치면서 낮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상황이 역전된다. 시골의 고요는 거룩하고 심오하기가 비할 데가 없기로, 처연함과 쓸쓸함을 형언하기 어렵다. 절집처럼 소음과 차폐되고, 빛도 제한적이어서 적막과 고요는 깊어간다. 그런 연유로 내가 봄의 찬미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풀과 나무에 초록의 신생이 찾아들어 생명의 환희와 약동(躍動)이 춤추는 시절이 봄이기에.여름은 봄의 기운이 하늘까지 뻗치는 계절이고, 하지는 여름의 절정이기에 특별한 날이다. 때마침 지구 주변의 오행성(五行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나란히 배열되는 장관이 펼쳐진다니 반가운 일이다. 6월 중순 이후 2~3주에 걸쳐 우주의 진기한 잔칫상이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할 터. 곳곳에서 아마추어 관측대회가 열릴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다.우리가 범하는 실수 하나는 대상에 관한 무관심과 태무심(殆無心)에서 온다. 우리 옆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은 지나치게 익숙하여 그것을 당연시하기 쉽다. 하지만 정작 대상의 부재가 발생하고, 부재 기간이 길어지면 대상의 소중함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나도 같은 실수를 여러 번 되풀이했더랬다. 그래서다. 이번 여름을 깊이 느끼고 고마운 마음을 갖기로 한 까닭은 그래서다.여름 한가운데서 덥다느니 습하다느니 짜증이 난다느니 하면서 여름을 원망하곤 했던 부질없는 행태를 반성하면서 여름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로 한 것이다. 요즘 마당에 황금물결로 피어난 루드베키아와 드물게 얼굴을 내미는 낮분홍달맞이꽃, 시절이 조금 지난 자주달개비를 볼라치면 경탄이 절로 나온다. 그래, 생명의 환희는 저렇게 작고 여린 것들에도 얼마든지 가능해, 혼잣말한다. 그러다 문득 눈길 닿은 곳에 원추리의 길고 미끈한 꽃대가 솟아올랐다.원추리가 피어나고, 여름 한 철을 호령하는 큰 키의 참나리가 화려하게 몸을 열면 여름은 슬슬 떠나갈 태세를 갖추기 시작할 터다. 하지만 그 사품에도 땅속 어딘가에서는 상사화(相思花)가 개화할 시기를 저울질하면서 숨 쉬고 있을 것이다.하기야 얼마 전 텃밭에 나 있는 작은 구멍에 무엇인가 들어있길래 살폈더니 올여름 우화(羽化) 기다리는 매미 유충이었다. 아하, 그렇구나. 매미가 창공을 향해 날아오를 때가 가까운 게로구나! 작은 한숨과 탄식이 뒤따른다.지하세계에서 5∼6년 견디고서 지상의 보름 남짓한 날 살아보려는 매미의 고단한 생이 울컥 다가온다. 그렇다! 삶은 언제 어디서든 의미가 있는 법. 여름 한가운데서 여름을 찬미해본다!

2022-06-19

경제 회생에 사활 걸어야

우정구 논설위원 대통령 지지율은 현 정권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평가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것이라 항상 국민의 관심 앞에 놓여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평가를 국민이 긍정적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을 판단하는 자료로도 유용하다.대통령의 지지율은 대체로 임기 초에는 높게 나오고 임기 말이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새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과 취임 이후 나타난 국민적 실망감 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한다.최근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비록 오차범위 내지만 전임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 뒤지는 여론조사가 나와 눈길을 끈다. 야후뉴스와 여론조사기관 유거브가 미국인 1천541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차기 대선 가상대결에서 바이든은 응답자의 42%, 트럼프는 44%의 지지를 얻었다. 두 사람 다 2024년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여서 이번 여론조사가 더 흥미롭게 전파되고 있다.전문가들은 바이든이 뒤진 것을 두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미국 내 공급망이 붕괴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유가폭등 등 미국 물가불안정 등이 원인이라 분석했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도 61%의 응답자가 바이든의 경제정책을 반대한다고 답했다.대통령 지지율에 경제가 미치는 영향은 날로 커진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환경이 발전하고 경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반응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탓으로 분석한다.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을 우려하는 등 국내경제가 최악의 위기로 몰리고 있다. 한 여론조사기관은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국내경제를 비관적으로 본다는 결과도 내놨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경제 회생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19

0.2와 2.0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의 일이다. 모 프로젝트 연구제안서 공모의 심사 위원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많은 글 중 유난히 눈에 띄는 글 하나가 있었다. 단박에 공모자가 꽤 오랫동안 고심해서 쓴 것임을 알 수 있었고, 아이디어도 남들이 생각지 못한 매우 참신한 것인데다 아이디어의 실효성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한 자료들도 정확해 읽는 내내 감탄을 마지않던 글이었다. 참으로 오랜 가뭄에 내린 단비처럼 반가운 글이어서 나는 당연히 그게 선정 리스트에 오를 줄 알았다. 그런데 결국은 떨어졌다. 까닭은, 유명한 심사위원장이 그 글은 제쳐놓고 다른 글들을 중심으로 먼저 이야기를 풀어갔기 때문인데, 그 글을 제쳐놓은 이유는 또, 글이 너무 독창적인데다 별 이름 없는 지방의 소위 삼류 대학 출신의 것이라 제시한 이론의 실효성도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세상에는 새로운 생각과 시도를 하면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이들이 있다.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남이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서 역사에 한 획을 긋곤 하는 이들의 삶이, 늘 꽃길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제왕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것이 ‘인(仁)’이라 했던 공자의 사상도 당시에는 ‘현실감 떨어지는 이론’이라 배척받았고, 당시 대세이던 천동설에 반해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적 발견을 여러 각도로 지지한 갈릴레이도, 종교재판에 회부되며 혹독한 수난을 겪었으며, ‘갈루아의 이론’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수학자 갈루아의 방정식론도, 당시 프랑스 학사원에서 등한시되었고 사후에야 그 이론의 위대함이 세상에 알려졌다.눈이 두 개라고 사물을 더 잘 보는 것이 결코 아니다. 0.2의 시력을 지닌 두 개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과 2.0의 시력을 지닌 한 개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 어느 것이 더 선명히 잘 보일까. 장자의 ‘소요유’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북쪽 바다에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변해서 된 새, 대붕(大鵬)이 큰 날개짓을 하고자 때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메추라기가 숲 풀 사이에서 날개를 퍼덕거리는 게 날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인데 대붕이 어딜 가려는가 하고 비웃는 얘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장자는 “작은 뜻은 큰 뜻에 미칠 수 없고, 이끼와 버섯은 달이 차고 이지러짐을 모르고, 매미는 봄, 가을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그렇다. 덧셈·뺄셈만 아는 이는 곱셈·나누기를 하는 사람을 이해못하고 이상하게까지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세상은 덧셈·뺄셈만 아는, 매미같이 여름 한 철만 아는, 두 개의 눈이나 0.2의 흐릿한 시력을 지닌 그런 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곱셈·나누기를 아는, 사시사철을 아는, 애꾸눈일지언정 2.0의 시력을 지닌, 그러한 이들에 의해 달라지는 법이다. 좋은 글을 쓰고도 여러 선입견으로 그 독창성을 인정받지 못한 공모자의 글도 언젠가는 빛을 발하리라.바야흐로 6월 하순, 한창 뜨거웠던 3월 대선과 6월 지방선거도 모두 끝나고 이제 새로운 시대의 변혁을 꿈꾸는 바람들이 많은 요즘이다. 모쪼록 0.2의 흐릿한 시력이 아닌, 2.0의 선명한 시력으로, 다들 지난 정부의 공과를 잘 살펴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중앙·지방 정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2-06-19

어떤 위로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20부작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생각거리를 주고 끝났다. 정주행은 하지 못했지만, 짧은 영상을 보다가 아주 인상적인 장면을 만났다. 18화에서 동네 형들이 동석에게 너를 이해한다면서 그래도 암에 걸린 엄마의 마지막 소원은 들어주어야 한다고 압박하자 동석이 소리지르는 모습이다. 동석 엄마는 남편도 죽고 딸도 바다에서 죽자 해녀를 할 수 없어 동석 친구의 아버지에게 첩으로 들어갔기에 동석은 엄마에게 원망이 깊은 상태다.“형들은 형님 어멍이 형님 보는 앞에서 형님 친구 아방 방에 들어가서 불 딱 끄고 부스럭부스럭 이불 소리 내면서 자는 거 본 거 있어? 날 이해해? 뭘 이해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이해한다는 말이야.” 나중에 동석은 선아에게 전화를 걸어 어멍이 종철 아방 첩으로 들어가면서 자기를 작은 어멍이라 부르라 했을 때 못한다고 하자 싸대기를 개 패듯이 팼다고 말한다.이런 동석의 말을 듣자니, 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끼의 단편 소설 ‘타일랜드’가 생각난다. ‘타일랜드’의 주인공 사쓰키는 갑상선 전문의인데, 30년 전에 강제로 낙태한 일로 마음속에 돌이 박혀 있다. 사쓰키는 방콕에 갔다가 운전을 맡은 니밋의 소개로 점쟁이 노파를 만나게 된다. 점쟁이의 조언에 마음이 열린 사쓰키가 니밋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려고 하자 니밋은 말을 한다고 마음이 서로 통하는 일은 없다며 듣기를 거부한다.같이 보고 겪은 일도 사람마다 이해하는 것이 달라 소통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동네 형들이 동석이 겪은 일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아니 직접 보았다고 하더라도 어린 동석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니밋의 말이 극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해의 한계를 처절하게 체득한 사람일 뿐이다.부모라도 자식의 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다.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에는 자식을 이해할 수 없어서 상담을 청한 부모들이 나온다. 부모라도 자식의 사정을 시시콜콜 다 알 수 없고, 안다고 해도 자식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이해한다는 말이 폭력일 때도 많다.며칠 전, 친구가 희소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눈물이 났지만, 그저 내 맘대로 내 사정으로 흐르는 눈물일 뿐, 그가 느낄 황당함, 분노, 좌절감, 무력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그러나 소통의 한계를 인정하면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좌절할 것도 아니고, 이해할 수 없다고 포기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때 뜻밖에 소통이 일어난다. 선아는 동석이 묵혀두었던 말을 다 하라고 응원하며 들어주었고, 니밋은 몇 번의 대화로 사쓰키의 고통을 눈치채고 점쟁이 노파에게 데려가 주었다. 그러고 보니, 병원에 입원한 친구를 위해서는 그가 얼마나 두려운지 얼마나 아픈지 말할 수 있게 나 자신이 의연해지는 방법도 있겠다. 그것은 분명 위로는 아니지만 위로일지도 모른다.

2022-06-19

인수위는 점령군 아니다

심한식 경북부 전국을 휘몰아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여파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당선인 주변 일부 인사들의 꼴불견이 구설에 올라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개정된 지방자치법 제105조에 따라 초선인 민선 제8대 자치단체장의 업무를 돕고자 자치단체들은 인수위원회를 구성하고 당선인이 15~20명의 인수위원을 임명했다.경산시도 15명의 인수위원을 조현일 경산 당선자가 임명하며 인수위원 면면이 구설에 올랐지만, 당선인이 누릴 승리 월계관이라는 점에서 양보할 수 있다.하지만, 자치단체 운영에 따른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업무인 인수위원들이 전쟁에서 승리에 도취한 점령군 행세를 한다면 말이 달라진다.인수위원회는 권력기관도, 피감기관도 아닌 새롭게 행정업무를 담당할 자치단체장의 업무를 준비해주는 한시적인 기구이지만 업무보고가 행정사무감사가 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등 곳곳에서 인수위 활동이 도마에 올랐다. 앞으로도 경산시장직 인수위원회의 활동기간이 상당 기간 남아 있다. 인수위원들은 자신의 이름이 인수위원에 올랐다는 것에 자존심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시정(군정)을 간섭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인수위원들을 관리해야 할 당선인들도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당선의 기쁨을 누렸지만, 유권자의 50% 이상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서글픈 현실을 항상 생각해야 하고 정책과 공약이 아닌 지역정서가 선거판을 좌우했다는 점, 선거로 지역 민심이 요동쳤다는 현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여기에 당선인의 주변 인물로 채워졌다는 인식이 강한 인수위원회의 활동이 구설에 오르면 당선인도 구설에서 벗어날 수 없고 만약 이들이 시정(군정)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 험난한 앞날이 될 것이다.우리의 역사는 권력의 주위에 있던 인물들이 자신의 이익을 탐했던 기록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되돌아 볼 때 선거캠프에 관여했던 인사들의 언행에도 제동을 걸어 구설을 방지하기 바란다.인수위원회 소속 인사들은 주요 현장과 현안들을 살펴보며 허황한 제언이 아닌 지역을 위한 시책들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한시적인 기구의 사명으로 인수위원으로 참여했던 사실이 부끄럽지 않고 명예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shs1127@kbmaeil.com

2022-06-16

식량위기의 엄습

우크라이나는 동유럽의 내륙에 위치한 나라다. 면적은 남한의 약 6배 크기다. 산지가 별로 없고 토질이 매우 좋다. 국토 대부분이 지력이 풍부해 비료가 필요없는 비옥한 땅을 가진 나라다.예로부터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유명하며 2011년에는 곡물수출량이 세계 3위를 마크했다. 유럽의 빵공장이라는 별명도 가졌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00일을 넘기면서 우크라이나 곡창지대가 심각히 붕괴되고 공급망까지 막히면서 전세계적 식량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특히 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유럽과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금의 상태가 지속되면 식탁에서 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경제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의 침공으로 자국의 농지, 농기계, 가축 등의 피해액이 43억달러(약 5조5천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농업피해의 절반은 지뢰와 포탄 잔해 등으로 토양오염과 수확하지 못한 작물이며, 피해액의 4분의1 정도는 농기계 파괴로 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농림부도 경작지의 25%가 상실됐다고 밝힌 바 있다.유엔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는 공동으로 분쟁과 폭염, 홍수 등과 같은 기상이변으로 식량 가격이 폭등해 세계 수십개국 수백만명이 빈곤과 굶주림에 몰리고 있다고 했다. 이들 단체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6개국을 재난에 직면한 최고 경계국가로 꼽았다.우크라이나에는 현재 2천만t의 곡물이 저장돼 있지만 러시아의 항구 봉쇄로 제대로 수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세계는 식량난이란 큰 위기를 맞게 될 전망이다.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6-16

블랙리스트 논란 이제는 끝내자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정권교체기에는 전 정권의 국정철학에 적극 동조하며 협력했던 정무직 공무원들의 거취가 항상 문제가 된다.당사자들은 조금이라도 자리를 더 지키고 싶어하는 반면 새 정부에서는 자신들의 사람으로 채우고 싶어한다. 그러다보니 반강제적이거나 우회적인 압박을 통해 사퇴를 강요한다.이 과정에서 불거지는 것이 바로 블랙리스트 논란이다. 최근에 기소된 백운규 전 장관의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도 마찬가지다.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산업통상자원부 박 모 국장이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8개 공공기관장들에 대해 임기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진 사퇴를 종용힌 사건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다가 3년만인 올해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다시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다.우리 정치권에서 블랙리스트가 처음 거론된 것은 1980년대다. 1984년 ‘민주노동자 블랙리스트 철폐 대책위원회’구성 후 1970~80년대 노동탄압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다.이명박 정부때는 인권위 블랙리스트로 인권위 직원들을 솎아낸 후 정권의 입맛에 어울리는 인사들을 임명했으며, 4대강 사업에 반대한 단체와 인물을 탄압하기 위한‘4대강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문화예술계와 방송계 블랙리스트도 드러났다.박근혜 정부에서도 당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연구자를 탄압한 역사학계 블랙리스트, 국립대 총장 인사 개입에 영향을 준 교육부 블랙리스트, 문화예술계와 과학기술계 블랙리스트가 말썽이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블랙리스트 사건은 반복됐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시끄럽다. 야당은 “정치보복 수사”라며 방어막을 펼쳤고,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수사하면 적폐청산이고, 윤석열 정부가 수사하면 정치보복이냐”라며 꼬집었다.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는 ‘알박기 인사’논란이나 블랙리스트 사건은 사라져야 한다. 해결방안은 명확하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위원장의 말처럼 정권이 바뀌면 청와대와 정부, 여당 쪽에서 (공공기관장을) 추천하고 함께 일을 하고,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기관장 임기도 종료시키면 된다. 임기제 공무원의 임기를 대통령과 맞추는 법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정치권이 이제껏 해법을 알면서도 제도정비를 않은 것은 무책임한 태도로 지탄받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정무직 인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 정부 때부터라도 알박기 인사로 새롭게 국정을 운영하려는 정부의 발목을 잡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생각해보라. 대통령제 정부에서 대통령이 바뀌었는데,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대통령 자문위원회 수장과 위원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킨다는 게 말이 될 법한 일인가.불합리한 인사제도를 진작 바꾸지 않은 채 ‘알박기 인사’니 ‘블랙리스트’니 공방만 일삼는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

2022-06-16

‘여야의 내로남불’

탄탄 스님 불교중앙박물관장·동국대 출강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하면서 10년지기 지인과 동행한 것을 두고 온 세상이 시끄럽다.‘무속인 아니냐’는 얘기가 유포되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공적인 자리에 사적 지인이 동행한 것은 옳지 않다며 연일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야당도 뒤질세라 ‘공사 구분을 하지 못한 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비선 논란을 자초한다’고 신명이 난 듯 총공세를 퍼붓고 있다. 필자 생각으로는 참 해도 너무들 한 것 같다.‘내로 남불’도 이쯤이면 금메달감이다.세상은 끈으로 서로 얽혀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흔히들 인연(因緣)이라 말한다. 선하게 얽혀 있으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마는 만약 원한으로 서로 악하게 맺혀 있다면 삶이 고달파진다.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맺음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이것이 곧 인간관계다. 결(結)이란 끈으로 매는 것이고, 해(解)는 묶은 끈을 푼다는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사에 이리저리 맺고 얽히어(結者) 시작하지만, 죽을 때는 그 모든 것을 풀고(解之) 가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세상사(事) 관계 속에서, 또 살아가는 사이에 너와 내가 얽히고 위와 아래가 얽히고, 과거와 현재가 얽혀 있다. 정치도 돌고 돌아서, 어제의 야당은 여당이 되었으며 여당은 야당이 되었다. 당연, 영원토록 살아 있을 권력도 없을 터다. 저물어 버린 권력에게 다시 신새벽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는가.인간이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가족 관계도 집도 미시적으로는 사회다. 또, 친구들과의 만남도 사회이고, 이웃이나 마을, 교회나 사찰도, 정당 활동도, 우리에게는 사회이다. 다만, 사회에서는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철저한 이들이 적잖음을 우린 종종 목격한다. 잘난 체 하고 뽐내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가 하면 헛소문을 만들어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마구니 짓이 일상인 이들 곁에는 훗날 아무도 남아 있지 않는다. 김 여사의 일거수일투족은 주목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한 자연인을 애써 비판과 혹평으로 몰아 인격 살인을 자행하는 것은 재고가 필요하다. 더구나 대통령 부인의 친구라 하여서 험한 욕설과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은 법도에도 어긋난다. 일부 비호감 여론을 활용한 공격이라는 것 외에는 더 할 말이 없다. ‘취모구자(吹毛求疵)’라는 말이 있다. 터럭을 불어서 작은 허물을 찾아낸다는 뜻이다.짐승의 몸에 난 흠은 털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입으로 불어서 털을 헤치고 흠을 찾아내는 것이니 남의 허물을 억지로 들추는 일을 말한다. 중국의 철학자 가운데 법의 중요성을 주장한 한비자의 ‘군자는 터럭을 불어서 남의 허물을 찾지 않는다’는 말에서 나왔다. 작은 허물도 없는 완벽한 사람은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이 없어서 가까이 다가서기 어렵다. 어느 누구나 작은 결점은 지니고 있다. 남의 장점보다 결점이 먼저 보이는 것은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붓다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하신다. “남의 허물을 찾아내어 항상 불평을 품는 사람은 번뇌의 때가 점점 자라며 그의 번뇌는 계속 불어난다.”

2022-06-16

청와대, 국민 품으로

윤영대 수필가 지난 5월 10일 청와대가 개방돼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의 기능을 가지고 ‘대한민국 권부의 심장’으로 숨겨져 왔던 대통령궁이 74년 만에 그 비밀의 문을 연 것이다. 가보고 싶었지만 인터넷 사전예약을 통해 당첨되어야 했기에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단체 관광 기회가 있어 기꺼이 따라나섰다.이른 아침 출발하여 정오가 지나 청와대 분수를 돌아 도착해보니 일요일이라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 있었다. 입장은 세 곳 정문과 춘추문, 영빈문인데 우리는 영빈문으로 갔다. 안내원이 일일이 인원수를 확인하여 들여보내 주어 경복궁 후원이었던 넓고 깨끗한 뜰로 들어가니 오래된 현대식 건물인 영빈관이 단정하게 손님을 반긴다. 대규모 회의와 국빈영접 등 행사를 했던 곳이다. 10여 분을 줄 서서 기다렸다가 입장하여 덧신을 신고 대접견실에 들어서니 정면 중앙벽에는 봉황과 무궁화 문양이, 둥근 천정에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화려하고, 원형 테이블 3개와 태극기만 있을 뿐 한국적 맛을 느낄 장식과 시설의 부족함이 느껴진다. 사진만 찍고 나오니 벽면 아래쪽 박정희 대통령의 ‘머릿돌’ 글씨가 선명하다. 다음에 본관을 보려고 뒷문을 빠져나가 보니 긴 행렬이 이어져 있고 그 끝이 구 본관이 있던 수궁(守宮)터다. ‘천하제일복지’라는 비석 앞에서부터 약 45분 정도 구불구불 따라 걸으며 신비로운 소나무와 벙커도 곁눈질하며 대정원에 들어서니 푸른 기와와 전통 목조 구조의 궁궐건축 양식이 아름다운 본관이 북악산을 머리에 이고 위엄이 있다. 1층 로비 입구에서 덧신을 신고 붉은 카펫을 따라가며, 임명장을 수여하던 충무실과 유백색 벽에 커다란 ‘통영항’ 그림이 걸려있는 인왕실을 둘러보고 2층으로 올라갔다. 대통령 집무실은 정갈하고 소박하지만 너무 크다. 텅 빈 책꽂이와 책상 위에 몇 권의 책이라도 놓였으면…. 황금색 벽면과 천정이 화려한 접견실도 보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영부인 집무·접견실인 무궁화실을 들여다보니 역대 영부인 11명의 사진이 걸려있어 유일한 볼거리다. 다 보고 나오니 15분 걸렸다.시간은 빠듯한데 허전한 마음에 구경욕심이 발동하여, 바로 관저로 향하는 일행을 빠져 나와 북악산 등산로의 계단 길을 뛰어올라 미남불이라는 석조여래좌상과 이승만 대통령의 현판 글씨가 멋진 오운정(五雲亭)을 보았다. 숲 위로 광화문 풍경이 보이는 오솔길을 내려오니 땀이 흠뻑 하여 작은 연못 속 돌에 동전 1개를 던져보았다. 마지막으로 관저에 갔는데 줄을 서지 않아 바로 인수문(仁壽門)으로 들어갔다. 전통한옥으로 침실, 주방 등이 있으나 들어가 볼 수는 없고 한 바퀴 돌며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았다. 대통령 부부가 살기에는 넓은 것 같다.부근의 침류각(枕流閣)도 둘러보고 춘추문으로 갔더니 헬기장에는 천막이 늘어서 있다. 이어 청와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정원인 녹지원을 지나며 아름드리 반송과 소나무 숲속의 상춘재(常春齋)를 멀리서 보고는 정문을 나와 청와대를 되돌아보았다.앞으로 잘 가꾸어 아름다운 공원과 역사박물관 등 국민을 위한 역사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해본다.

2022-06-16

사진 감상문

양태순수필가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들이 있다. 시선을 붙잡는 예쁜 물건과 반가운 얼굴을 보거나 튀는 행동을 볼 때다. 익숙한 멜로디, 그림과 사진에는 눈은 물론 마음까지 빼앗기고 만다. 그런 일은 계획되지 않고 불시에 일어나는 현상이어서 느낌의 파동이 크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만난 사진이 그랬다.할머니가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다. 건물 이층에 자리한 작은 휴게 공간에 걸려 있는 사진이다. 밤이라 간접 조명이 있어도 사물이 어른거려 계단을 조심히 올라와 소파로 가던 나는 홀린 듯 사진 앞으로 갔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팝콘인가 싶어 자세히 보는데 이였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번개가 일었다. 감당키 어려운 선한 기운이 몸에 들어와 심장을 마구 두드리는지 가슴이 둥당거렸다. 나는 할머니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말보다 먼저 찰칵찰칵 소리가 났다.아침에 지난밤 찍은 사진을 불러냈다. 밤새 되돌려 본 마음에 담은 이미지가 헛것일까 떨렸다. 숨을 길게 쉬었다. 서서히 전체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밝은 데서 찬찬히 보니 밤과는 다른 순박한 평화로움이 그곳에 있었다. 낡은 소쿠리와 버석한 손, 검게 탄 얼굴이 말쑥하게 피어나는 꽃 같은 웃음이다. 난전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가 앉은 자세로 쳐다보며 웃고 있는데 할머니 앞에는 분명 누군가 서 있겠지만 사진사는 그것은 생략한 채 웃음만 드러내었다.사진 속 할머니의 하나뿐인 이는 머리말이었다. 그것만으로 살아온 날들이 읽혔다. 아랫니 윗니 스물여덟 개의 이가 난바다를 헤쳐오면서 흔들리고 흔들려서 끔찍한 치통의 밤을 지새며 뭉그러졌을 것이다. 그뿐일까. 뭉그러진 이를 뱉지도 못하고 꾹 삼키고는 위에서 주물럭거린 시간이 또 얼마였을지 가늠할 수 없다. 길게 잇대어진 삶의 터널을 통과하느라 갖은 애를 썼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럴 때마다 새겨진 무늬는 밭고랑 같은 주름으로 남았다. 낱낱의 주름은 일기였고 남을 탓하기보다 그저 자신이 노력하면 되리라는 다짐의 연속으로 채워진 날이었다. 할머니는 폭우와 폭풍을 맨몸으로 맞서 왔기에 티끌 같은 부끄러움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 웃음은 진흙 속에서 무심으로 피워낸 에필로그다. 참 아름다운 책을 읽은 기분이다.아름답다는 말은 감동을 포함한다. 살아보니 감동할 일이 드물다. 여리던 마음은 세상사 격랑을 건너느라 점차 무디어지고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웬만해선 좋다와 멋지다를 적절히 섞어 감정의 구색을 맞춘다. 하지만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노동자의 하루를 경건히 갈무리 하는 노을의 품은 아득한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부지런히 퍼주는 넉넉한 씀씀이 또한 가치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럴 때면 나는 조용하고 엄숙한 감동으로 떨린다.꾸미지 않은 모습이 작품이 된다. 사진사가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사진을 찍는다고 이렇게 해주세요, 주문을 했더라면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 어색함이 묻어났을 것이다. 작가는 프로답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치와 각도를 달리하며 수백 장을 찍었고 그중에 하나를 건졌지 싶다. 아마도 종일토록 렌즈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예술혼을 불태웠으리라. 한 사람의 삶을 필름에 압축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사진은 수명이 길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눈을 감을 때까지 살아있다. 종이나 손전화의 사진은 보관 상태에 따라 분실되기도 하고 오래되면 품은 이야기가 흐릿해진다. 하지만 눈으로 찍은 사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진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순간순간 되살림 기능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인물을 찍는 사진작가는 삶의 여러 형태를 보여준다. 오래된 골목이나 시장, 노동자와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두를 수식어 없이 담아낸다. 무심코 지은 표정이야말로 진솔한 인생을 담은 책이다. 어느 것 하나가 더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담백하게 보여준다. 삶이란 바다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나아가고 있는 모두가 훌륭하며 잘 살아내고 있다는 위로를 건넨다. 덧붙여 스스로를 안아 대견하다 다독였으면 하는 바람도 얹은 듯하다.

2022-06-15

바다와 교감하기

5월부터 내리쬐던 볕의 강렬함이 남달랐다. 덩달아 한낮의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향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막바지에 이르자 야외는 다시 인파로 북적였다. 사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자유로이 거닐 수 있는 환경을 되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다.최근 밤바다를 찾은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깊은 상념에 젖었다. 폭죽놀이를 하는 사람들과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의 가벼운 실랑이로 일상회복 현장을 만나기도 했다.파도소리가 심리적 안정을 준다는 상식을 뒷받침하듯이 곧 평온과 여유가 찾아왔다. 바닷물의 음이온 입자들이 해변가를 맴돌고, 해풍이 귓가를 스치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곧잘 이완된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데이터다. 흔히 말하는 해양치유 효과의 일부이기도 하다.바다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바다에 마음을 내준다. 잔잔히 일렁이는 수평선 너머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혼란이 가라앉는 경험을 하곤 한다. 온 몸의 힘을 빼고 물위에 둥둥 떠 있을 때의 이완과 비슷하다. 불안 강도가 높고, 만성질병으로 인한 통증이 잦은 경우 심신안정 등 치유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일종의 바다와의 교감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으며 걷는 동안 뺨에 전해지는 해풍의 시원함을 만끽하는 것. 바다와의 대화가 아닐까 싶다.바다 생물과 사람 간 교감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문어의 지능이 반려견과 비슷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사람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모습은 화제가 됐다. 친근해진 사람과 손가락 놀이를 하고, 포식자에게 공격당해 상실감에 젖어있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다큐는 문어를 통해 교감 뿐만 아니라 새끼를 낳고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생애의 애틋함까지 담아냈다.돌고래 체험도 대표적인 사례다. 상업적인 체험으로 질타를 받았지만, 여전히 성행하는 이유는 사람과 돌고래 간 교감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임신부들이 돌고래를 만난 기억은 특별하게 회자된다. 뱃속 아이 태동이 심해졌다거나, 돌고래들이 임신부를 둘러싸고 빙빙 도는 행동을 보였다는 등 다양한 체험담이 들린다. 돌고래의 초음파에 반응하는 뱃속 태아의 행동이 늘상 이슈의 중심이다. 태아가 돌고래와 어떻게 교감을 나누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사이에 뭔가 있다는 것이다.바다생물로 한정 짓지 않으면 동물 간 교감의 대표격은 ‘동물매개치료’다. 치료사와 내담자 간의 신뢰를 쌓는 데에 동물을 매개, 심리적인 치료효과를 높이는 방법이다. 반려견 등 동물이 갖고 있는 정서적 교감능력을 활용해 내담자의 긴장도를 낮추고 통증을 줄이는 등 다양한 심리 치료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담자는 동물을 통해 낯선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치료사를 신뢰하며 편안한 마음 상태에서 상담에 응하게 된다고 한다.사람은 기본적으로 관계를 통해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다. 부모관계든 연인관계 등 다양한 관계를 통해 존재를 확인받고 유대를 맺고 앞으로 나아간다. 관계는 교감의 전제이자 존재의 이유인 셈이다. 문어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자신을 찾아오는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마음을 연 것처럼, 해양생물도 비슷한 패턴을 가진다. 돌고래가 태아에게 보낸 초음파도 관계 맺기의 일종일 것이다. 정현미작가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교감’과 ‘관계’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알게 됐다. 관계를 맺지 않았을 뿐인데, 코로나 블루와 각종 정서적 불안증상이 사회 전반을 드리웠다. 결국 사람은 홀로 설 수 없다는 반증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극단적인 단절의 상황에 놓였을 때,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적인 실험이기도 했다. 홀로 바다와 산, 들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삼삼오오 모여 바다에서 모래와 해풍, 파도소리에 치유 받지만 누구나 단절의 기억과 낯섦이 어떤 것인지 인식하게 됐다.관계를 통해 교감을 맺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동일한 행동 패턴이다. 그 속에서 따뜻한 위안과 위로, 삶의 동력을 얻는다. 문어 이야기를 촬영한 감독 역시 심한 번아웃을 경험한 후 어린 시절의 바다를 찾았고, 그곳에서 문어의 생태를 관찰하게 됐다.삶의 난간에 부딪혔을 때 고향을 찾아 추억을 회상하고 관계를 반추하는 것 역시 좋은 과거와 교감하는 행위일 것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물놀이 기억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물이 주는 물질의 특성뿐만 아니라 함께 놀이를 했던 관계의 추억 때문이기도 하다.이제 본격적으로 물놀이 시즌이 찾아올 것이다. 연중 개장하는 해수욕장까지 생긴다고 한다. 단절의 기억을 치유하는 방법은 결국 다시 함께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올해 여름은 작정하고 바다와 친해볼 예정이다. 무의식 속에 갇힌 기억을 딛고 다시 관계 속에서 교감하는 것, 많은 이들이 바다에서 위로받기를 희망해본다.

2022-06-15

나를 식혀 주세요

김규인수필가 6월까지 산불이 꺼질 줄 모른다. 1986년 이후 산림청이 산불통계를 집계한 이후 6월에도 대형으로 산불이 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건조한 봄에 집중적으로 산불이 났다. 최근에는 산불 발생이 길어져 6월에도 예년에 비해 산불 발생 위험이 30∼50% 높아졌고, 가뭄으로 전국에 산불 경보가 발령됐다.6월의 산불은 생나뭇잎을 태우며 나는 짙은 연기로 소방관의 시야를 가린다. 그렇지 않아도 무덥고 건조한 기후에 방화복까지 입은 소방관의 산불 진화를 어렵게 한다. 산불을 끄는 소방 헬기가 고압선을 피해 곡예 운전을 한다. 헬기가 장애물에 부딪히는 사고가 날까 봐 지켜보는 사람은 안절부절못한다. 이래저래 진화작업은 더디다. 강한 바람은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불씨를 옮기며 빠르게 산불을 퍼뜨린다. 초속 11m 이상의 강풍은 부지런히 물을 나르며 불을 끄는 산불 진화대원의 노력도 보람 없이 죽어가는 불씨를 보란 듯이 살려낸다. 불은 소방 헬기의 바람을 일으키는 동분서주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빠른 속도로 방향을 바꾸며 번진다. 매스컴에서는 산불의 원인을 분석한다. 비가 오지 않아 건조해진 날씨를 탓한다. 6월은 예년이면 장마로 물난리를 걱정하는 시기이니 그럴 만도 하다. 산림 당국의 50년 만의 가뭄이라는 발표는 어쩌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제는 산불이 발생하고 오래 지속되는 것은 기후변화 때문인 것을 직접 몸으로 느낀다. 나무가 우거진 산은 홍수를 막고 물을 가두었다가 천천히 내보내며,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보듬어 살아간다. 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이산화탄소를 잡아먹고 산소를 생산하는 것이다. 산이 있어 지구온난화를 막고 산소를 마시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다. 산불은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 파괴된 자연으로 생물다양성은 줄어들고 비가 오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홍수 피해를 일으킨다. 산성비와 대기오염을 심화시키고 산불로 인한 이산화탄소의 발생으로 지구온난화는 빠른 속도로 일어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국가 정책도 탄소 저감을 실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말로만 친환경을 외치면서 화력발전을 늘린다. 먹다가 남거나 과잉으로 생산한 음식은 비닐봉지도 뜯지 않은 채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사람들이 신선도를 따지는 사이에 음식물이 썩으면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지구가 견딜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다. 먹이를 구하지 못한 북극곰은 고사 위기에 처해 있고 빙하는 쉬지 않고 녹는다. 높아진 해수면에 나라를 잃고, 수년간 계속된 가뭄으로 먹을 물을 구하지 못한 동식물과 사람들이 말라간다.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바로 앞에 닥친 우리들의 문제이다. 오늘도 손쉬운 일회용품의 사용은 코로나에 편승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잘 썩지 않는 쓰레기는 쌓여만 간다. 사람들의 편의만을 내세운 이기주의로 지구가 중병에 시달린다. 더워진 몸을 식히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서도 외면한다. 지구가 자신을 태우면서 전하는 말을 지금이라도 새겨들어야 한다.“나를 식혀 주세요”

2022-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