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년 전에 빙하기가 완전히 종식된 후 폭력은 자연 선택적 변이가 완료된 상태로 인간의 유전자에 남아 우리에게 전한다. 문명사회인 오늘도 아들의 학교폭력으로 공직을 내놓은 변호사와 자신의 폭력으로 중도하차한 가수의 이야기가 연일 기사로 뜬다.
인류가 삶을 시작할 때, 야생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폭력을 사용했다.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돌도끼와 돌칼을 만들어 싸우며 자신들을 지켰다. 이동하며 사냥해 먹을 것을 구하던 유목민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정착한 이후에도 폭력을 사용했다. 옆의 나라를 침공하여 영토를 넓히고 이런 가운데 폭력은 어김없이 쓰였고 문명화된 오늘날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계속된다. 인류의 역사는 폭력으로 물든 역사다.
학교폭력 피해자는 신체적인 손상과 정신적인 압박감을 받는다. 이러한 영향으로 정상적인 학업 생활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불안해 매사에 의욕을 잃고 심한 경우에 자살로 이어지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이 일어나면 학교와 교육청은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약속하지만,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폭력의 긴 뿌리를 생각하면 인간이 있는 한 폭력이 계속될 것 같다.
사냥해야 살아갈 수 있는 원시 유목 사회에서 생존의 도구인 폭력이었지만, 이제는 필요 없는 현대 문명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어쩌면 먹이를 사냥해야만 살아남는 야생의 본능이 아직 인간에게는 남아있는지 모른다. 끊임없이 약한 상대를 찾고 뒤를 쫓아 사냥 기회를 엿보는 야생 사회 말이다.
학교폭력을 걱정하는 사이에 아줌마라는 말에 격분해 흉기를 휘두르는 일이 발생한다.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이 비극 앞에 뚜렷한 대책 없이 바라보아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자전거를 타고 대구 신천을 달리는 일이 잦다. 유모차에 반려견을 태우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자식처럼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뒷바라지하는 사람들을 보며 같은 종족끼리 이보다 더 열악한 대접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왜 이런 지경까지 됐는지.
돈을 사냥하기 위해 부모와 형제를 죽이고 우정을 나누어야 할 친구를 폭행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왜 이리 자주 발생하는지. 폭력으로 무너진 인간의 존엄성을 언제쯤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모든 폭력 앞에 언제쯤 사람들은 당당할 수 있을까.
폭력의 피해는 언제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늘어나는 사회를 보면서 다시 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이제는 가정과 학교와 언론과 사회가 모든 분야서 교육의 주체가 돼야 한다.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교육해야 한다. 그나마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린 나이일수록 교육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상담해 사람이 살만한 세상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