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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시즌의 교훈

등록일 2023-03-01 18:26 게재일 2023-03-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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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매년 2월은 졸업 시즌이다.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으로 개최되었던 졸업식이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리게 되었다. 우리 대학에서는 본부 졸업식에 이어서 각 단과대학 졸업식이 개최되었다. 학과장 보직을 맡은 나는, 단과대학 졸업식에서 우리 학과 졸업생 학사모의 수술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겨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막상 졸업식에 참석한 우리 학과 학생을 대면하니 어색했다. 학과에 부임하고 곧바로 코로나 국면에 접어들면서 많은 학생을 만나지 못한 까닭이다. 게다가 나는 학사모의 수술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는 것의 의미를 미처 알지 못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학생들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주어진 임무를 끝냈다. 다른 학과장들이 활짝 웃으며 학사모의 수술을 넘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막연하게 알 수 있었다.

저녁에는 지도하는 학부생 세미나 모임의 졸업생 축하 파티를 했다. 며칠 전 세미나 반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졸업식에 맞추어 세미나 날짜를 잡았다는 것. 2학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서 졸업하는 선배를 위한 꽃다발을 준비하고, 일부 학생은 축하 케이크를 샀다는 것.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졸업생 중 한 명은 세미나를 오랫동안 했지만, 성실히 참석하지 않는 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지난 학기에 처음 들어와서 함께 활동한 기간 자체가 짧았다. 내 기준으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축하 파티를 준비할 만큼의 교감이 있지 않았다.

모임 시작 전 연구실로 찾아온 졸업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평소 크고 작은 대외활동을 많이 한 학생으로 우리 모임에 충실하지 못했던 이유도 워낙 다양한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 학생은 우리 세미나에 성실하게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취업을 위한 모임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자신의 고민을 진솔하게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제야 나의 고정된 시선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세미나는 정해진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 어쩌면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 비평가가 될 것이 아니라면 이론을 엄밀하게 읽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성적’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책을 읽고 토론하며, 세미나를 마친 후에는 술 한 잔을 나누며 속내를 이야기하는 것이 학생들의 일상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비록 누군가와 보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고민을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 학생들은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대부분 학생이 설렘보다는 두려움을 더 많이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어딘가에 취업하지 못하고 졸업을 마주한 학생들의 두려움을 얼마만큼이나 짐작할 수 있을까. 끝나지 않는 경쟁의 수레바퀴를 몸으로 체감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제부터라도 책을 매개로 술 한 잔 나누며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세미나를 만들어야겠다. 아니 정확히 말해 나만 생각을 바꾸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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