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세상의 모든 아들에게

등록일 2023-03-05 19:57 게재일 2023-03-06 17면
스크랩버튼
이희정 시인
이희정 시인

부모에게 자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끝이 없는 A/S 대상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 네 뒷모습에 대고 /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그런데 더러는 부모가 부실하면 아이들이 먼저 철이 들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훈련소 상사가 문자로 보내온 아들의 모습은 긴장된 가운데 늠름하다. 발가락 재해로 일 년 가까이 입대 시기를 늦춰야 했던 어느 집 아들의 이야기다.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 겨우 나아갈 때 즈음 서둘러 급행을 신청해 입대했다. 전날까지 일언도 없이 문을 나섰던 아들이 훈련소 입소 직전 사진과 함께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보내왔다. 입대를 보류할 부모를 견제한 판단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예전과 달리 복무기간도 단축되고 핸드폰 사용도 가능하다지만 여전히 어머니들에게 입대는 간절한 기도로 신을 부르는 일이다. 총에 맞아 죽기보다는 총소리를 듣고 먼저 쓰러진다는 시구도 있지 않은가.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 분 살고 계시나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네가 어렸을 때

우리 사이에 다만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사랑 한 알에도

우주가 녹아들곤 했는데

이제 쳐다보기만 해도

훌쩍 큰 키의 젊은 사랑아

 

너와 나 사이에는

무슨 신이 한 분 살고 계셔서

이렇게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를까?

 

- 문정희 ‘어린 사랑에게’

(1992, 미래사) 중 ‘아들에게’ 전문

 

그런데 어머니와 아들을 대하는 간절함의 인식은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없던 질병도 만들어 군 면제를 받았으면 하는 힘센 부모도 있다. 과거와 달리 너나 할 것 없이 자식이 한 둘인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군에서 맞는 생일에 공산품 초코파이 케이크는 거부하고 특별히 만든 케이크를 보내고, 군대 상사에게 사소한 것들까지 수시로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풍토 속에서 부모의 배웅 없이 홀로 기차를 타고 가벼운 여행길 나서듯 그렇게 홀연히 떠나는 아들의 태도는 약한 부모를 부끄럽게도, 마음 저리게도 한다.

서울 양재동 숲길을 걷다 보면 청년 윤봉길을 만날 수 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사가 되어야 했던 그의 나이는 약관이었다. 고향에는 살아 있는 부모가 있었고 앳된 아내가 있었고 무엇보다 완두콩 같은 발가락을 고물거리는 어린 자식들이 있었다. 그는 아들이었고, 가장이었고, 아버지였다. 현대 시점으로 보자면 저 어린 나이에 어찌 저리 큰마음으로 나설 수 있었을까 믿기지 않는다. 혼인 연령이 늦어지면서 아이들의 성장도 늦되어지는 것인가. 바뀐 세상이 성장의 키를 조율하는 것인가. 지금의 아이들에게 대자면 상상할 수도 없는 신화에 가까운 실화다. 훈련 중 부상보다 상사나 동기의 괴롭힘 등 정신적인 이유로 어머니들의 ‘간절’을 소환하는 예가 많은 것을 보면 더욱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고 풍족한 환경에도 세상은 여전히 평온하지 않다. 저 먼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으로 실시간 대치 중인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모든 어머니에게 귀하지 않은 발가락이 있으랴. 문정희 시인(1947~)은 말한다. “네가 어렸을 때 / 우리 사이에 다만 /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 사랑 한 알에도 / 온 우주가 다 녹아들곤 했는데 / 이제 쳐다보기만 해도 / 훌쩍 큰 키의 젊은 사랑”이 되어 있다고.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전하고 싶다. 내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어리거나 유약하지 않다고. 어머니의 간절함 속에는 강물처럼 흐르는 신이 한 분 살아 계셔서 결코 그 마음의 키가 작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아들을 믿고 모두를 위한 간절함으로 두 손 모을 수 있어야 한다고.

내 아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들들’에게.

이희정의 월요일은 詩처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