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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복수, 그 수상함에 관한 단상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권여선 작가의 ‘친구’라는 작품을 읽었다. 해옥이라는 여자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소설은 짧은 분량이지만 우리의 현실을 완벽하게 그려내며 문학으로 획득할 수 있는 강렬한 페이소스를 보여준다.해옥은 “하루하루에 기쁨이랄 것”이 없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에게는 아무도 모를 두 가지의 기쁨이 있는데 하나는 매일 새벽마다 감사기도를 드리는 신이며 또 다른 하나는 보물과도 같은 아들 민수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난한 일상을 살던 해옥은 담임에게서 아들인 민수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간 해옥이 민수의 친구라고 알고 있던 아이들이 민수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폭력까지 휘두른 것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에서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은 해옥과 민수가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며 더 나아가 아들인 민수는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들을 친구라는 미명으로 감싸는 모습까지 보인다.텍스트를 읽은 학생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내어놓았다. 우리와 맞닿은 현실을 언어적으로 구현했다는 놀라움과 인물의 심리를 날카롭게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에 감탄했으며 소설 속 인물인 해옥에 완전히 이입하다 못해 더 나아가 이토록 답답한 상황에 분개하는 학생도 있었다. ‘사이다’ 없이 ‘고구마’로만 끝났다는 것이었다. 해옥과 민수가 받은 폭력을 갚아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도적 장치로서 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이야기의 막을 내린 것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허구의 상황을 보여주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뤄볼 수도 있겠다. 해옥의 내면에서 부글거리는 분노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선하게 살아가는 모자에게 닥친 위기 상황이 종국에는 복수극으로 전환되어 독자로 하여금 일종의 만족감을 선사했을지도 모른다.사실상 ‘복수’라는 키워드는 유구한 역사 동안 다양하게 소비되어 왔다. 서양 최초의 서사시라 일컬어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역시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아가멤논을 향한 복수심으로 시작된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작품이 복수의 서사를 사용하면서 법과 규제의 테두리 안에서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내밀한 감정적 지점을 건드린다.그러나 이러한 복수극의 플롯이 어쩐지 수상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솟아오르는 감정에 사로잡혀 자기 인생을 내걸고 타인을 파멸시키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며 결국 자신의 존엄까지 해치는 인물에게 공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해진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피해 보는 인생을 살 바엔 차라리 추악함을 택하겠다는 마음도 만연하다. 복수의 무서운 점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잘 살아라. 그것이 최고의 복수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자기 삶의 정확성을 가지는 일조차 누군가를 향한 분노로 추동하고 있지 않은가.그렇다고 해서 사랑과 용서를 설파하기엔 결코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다. 세상에 만연한 추악함을 덮을 수 있는 것이 막연한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는 문제의식이다. 용서하는 행동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을 붙잡았지만 전지전능하고 공평한 신은 살인자의 마음마저 어루만지며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살인자의 목을 조르는 편이 낫겠다고 소리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런 지점에서 ‘친구’의 해옥은 얼마나 답답한가. 자신의 별 볼 일 없는 삶을 신의 뜻이라고 치부하며 폭력에 노출된 아들을 보면서도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우리는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이 획득하게 되는 어떠한 지점에 관해 알아야 한다. 올바르고 완벽한 정답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야말로 그들에게는 일상을 지탱하는 큰 힘이다. 세계의 끔찍함을 완벽하게 응시하는 순간 분노할 수밖에 없고 그 감정에 잡아먹히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불행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상황이 오히려 전지전능한 누군가의 뜻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갈 뿐이다.이런 인물들을 그저 답답하다고 치부하기엔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의 판단과 결정은 오롯이 그들의 몫이며 무엇도 정답이 될 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는다. 불합리한 상황에 분노하는 일. 타인의 감정까지 지평을 넓히는 일. 그렇지만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게 두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는 인물 또한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일로 나아가기 위함인 것이다.

2022-05-24

대통령이 직접 ‘지방시대’ 주도하라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내일(26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첫 정식 국무회의를 개최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첫 국무회의를 세종청사에서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새 정부는 올 연말 입주 예정인 세종청사 중앙동 내에 대통령 집무실도 마련한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탈(脫) 서울’ 행보는 비수도권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 신선감을 준다. 대통령의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지역 간 갈등, 저출산 문제 등은 수도권 일극주의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수도권에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의 자산, 권력, 인재가 몰려 있기 때문에 국가기능이 균형 있게 작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수도권에 국가 주요사업과 예산이 집중돼 있으니까 6·1 지방선거도 서울, 경기, 인천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전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경기도지사 선거와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1기 신도시 건설과 재건축, 광역급행철도(GTX) 신설·연장, 군 공항 이전 및 국제공항 건설 등 후보들의 굵직한 개발 공약이 넘쳐나고 있다. 이 공약에 따라 해당 지역의 부동산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이에 비례해 비수도권지역 주민들의 박탈감은 커지기만 한다.비수도권 모든 지자체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기업 하나라도 유치하기 위해 올인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기도지사 후보들은 ‘수도권 공장 총량제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는 수도권 공장총량제를 ‘대못 규제’라고 비난하면서 경기도 이전 기업에 대해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다닌다.지역균형발전이 제대로 되려면 수도권에 집중되는 국가자산(일자리·교육·의료·교통·문화)을 규제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출산유도를 위해 아이 낳는 가정에 현금을 지급하고, 여기저기 도로를 넓히는 식의 대증적 요법으로는 지역균형발전은 요원하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를 균형적으로 배분하는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 수도권규제를 완화하면서 비수도권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하다.이런 측면에서 새 정부가 현재 대통령 직속으로 있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는 별도로 윤 대통령의 지역균형발전 공약을 챙길 새로운 조직을 구성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는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들이 대거 남아있어 새 정부의 ‘지방시대 국정과제’를 적극적으로 챙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관련, 김병준 전 인수위 균형발전특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자신도 적극적으로 참여할테니 지역균형발전이 국민의 관심사가 될 수 있도록 외부포럼이나 학회가 적극적으로 연계해서 활동하라고 했다”며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지역균형발전을 범정부적 현안으로 추진하려면 특정기구에 맡길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론화작업을 하는 것이 맞다. 지방소멸 어젠다는 청년들의 취업과 결혼·출산 문제에 직결돼 있기 때문에 새 정부는 반드시 이 문제를 국정과제 1순위로 삼아야 한다.

2022-05-24

WHO의 경고

우정구 논설위원 팬데믹(Pandemic)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선언하는 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감염병의 위험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6단계로 등급을 구분한다.1단계는 동물에 한정된 감염, 2단계는 동물간 전염을 넘어 소수 사람에게도 전염된 상태. 3단계는 사람들 사이에서 감염이 증가한 상태다. 4단계는 사람들 감염이 급속히 확산된 경우고 5단계는 감염이 2개국 이상에서 유행하는 상태며 6단계는 다른 대륙국가에서도 유행을 보이는 상태일 때를 말한다.인류 역사상 팬데믹에 속한 질병은 14세기 중엽 유럽을 휩쓴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 홍콩독감 등이 있다.살이 썩어 검게 되는 흑사병은 당시 유럽 전체 인구의 30∼40%를 몰살시키는 등 중세 유럽을 초토화한 질병이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도 전 세계 인구의 5천만명 이상을 숨지게 했다. 1968년 발생한 홍콩독감으로는 1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세계보건기구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5차 세계보건총회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종식되지 않는 한 어떤 곳에서도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그는 “거의 70개국에서 신규 확진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며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저개발국의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률이 저조한 것이라 했다.거리두기 해제로 코로나 경계심을 풀고 있는 우리에게 그의 발언은 주의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는 점에서 새겨들을 만하다. 국내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1만명대 밑으로 떨어졌으나 재유행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히 많다. 유비무환의 정신이 필요한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5-24

몰라서 죽을 수도 있다

조현태 수필가 헛간 지붕 사각파이프 속에 참새가 둥지를 만들더니 어느새 새끼참새가 부화하여 날아 나왔다. 아직 부리 부분이 노란빛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소한 지 얼마지 않아 보였다. 내가 가까이 가도 도망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둥지에서 나온 세상이라 뭐가 위험하고 어떤 것이 안전한지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마당에는 자전거 튜브를 때우기 위해 마련해 둔 물통이 있었는데 물 깊이가 약 십 센티미터 정도였다. 그 물을 마시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는 중이었다. 혹시 내가 유심히 보면 불안할까봐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려 피해 주었다. 잠시 후에는 세 마리나 물통에 앉아 놀기에 그러나보다 하고 내 용무 보러 나갔다.약 두 시간 가량 용무를 보고 집에 와 보니 물통 주변에는 참새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예닐곱 마리 참새가 가정용 정미기 주변에서 떨어진 곡식들을 주워 먹는데 정신을 팔고 있었다. 평소에도 미강이나 왕겨가 나가는 곳에 참새들이 많이 붐볐으므로 흩어진 곡식을 알뜰히 찾아먹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그냥 웃어넘기며 아까 그 물통 옆을 지나다가 깜짝 놀랐다. 새끼참새 한 마리가 물통에 빠져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얼른 건져보니 이미 죽어 있었다. 새들이 물을 먹기도 하고, 물에 들어앉아 깃털 씻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많이 봤으니까 얘들도 그런 줄 알았다.겨우 10cm에 빠져 죽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이런 사고가 나고 말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새끼참새에게는 키 높이에 두 배가 넘을 깊이가 아닌가. 더구나 아무런 경험도 없었으니 누군가 거들어주지 않으면 혼자 해결할 줄 몰랐을 수도 있다. 그저 어미가 물을 먹으니 따라서 먹어 보았고 목욕을 하니 흉내를 냈을 수도 있다. 아차! 싶었으나 새끼참새가 이미 익사하고 말았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감나무 밑에 묻어주는 일밖에 없었다.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어 실수하거나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을 미리 짐작했어야 했다. 또 다른 새끼들이 물 먹으러 올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두면 안 될 듯했다. 수면에 닿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에 안전장치를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면 물을 먹으러 왔다가 빠져 죽지는 않을 것이다. 얼른 생각나는 것이 석쇠와 같은 철망이었다. 철망에 10cm 정도 되는 다리를 만들어 물에 넣어두면 될 터이다.사람 사는 사회에도 마찬가지다. 사고는 언제나 터진 후에 수습하고 나서 왜 그랬을까 고민하게 된다. 겪어보지 못한 일이나 처음 접하는 상황 앞에는 누구나 당황할 수 있다. 혹시 위험에 처하더라도 크게 다치거나 생명을 잃지 않도록 세상을 먼저 살아 본 사람이 가르쳐줘야 한다. 그래서 교육과 실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작게는 어린이를 비롯하여 크게는 정치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부분을 나무라기 전에 알고 있는 사람이 가르쳐주어야 할 일이다. 협력하여 문제를 극복하는 사회구조를 우리 인간이 장악하고 영위해 나가야 할 일이다.

2022-05-24

5월은 가도 식구는 남는다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매일 함께하는 식구들 얼굴에서 / 삼시 세끼 대하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 때마다 비슷한 변변찮은 반찬에서 / 새로이 찾아내는 맛이 있다 // 간장에 절인 깻잎 젓가락으로 집는데 / 두 장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 다시금 놓자니 눈치가 보이고 / 한 번에 먹자 하니 입속이 먼저 짜고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 나머지 한 장을 떼 내어 주려고 / 젓가락 몇 쌍이 한꺼번에 달려든다”창비청소년시선의 특별판으로 나온 시집 ‘너를 만나는 시 1’에 실린 유병록 시인의 시 ‘식구’의 1연과 2연이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는 이 시는 시인이 고등학생 때에 쓴 작품이라고 한다.사춘기를 지나고 대학입시에 매몰되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에게 제 식구들이 얼마나 대단히 사랑스럽고 정겹게 다가오겠는가. 관심을 가져 주면 귀찮게 생각되고, 무심한 듯 대하면 또 서운한 나의 식구들. 고등학생 시인의 시선은 이 관계를 놀랍게도 정확히 포착하였다. 별생각 없이 각자 밥을 먹는 듯이 보이지만 밥상머리의 식구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깻잎을 떼어 주기 위해 젓가락을 내미는 손들의 주인, 시인은 “이런 게 식구이겠거니 /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 내 식구들의 얼굴이겠거니” 하며 심드렁하니 시의 마지막 연을 끝맺는다.나는 ‘가족(家族)’이라는 말보다 ‘식구(食口)’라는 말이 더 좋다. 원래의 한자 풀이가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집(宀-움집 면) 안에서 기르는 돼지(豕-돼지 시) 무리(族)’라는 뜻을 가진, 일본 사람들이 잘 사용하는 ‘가족’이라는 말을 왠지 쓰기가 꺼려진다. 그래서 같이 살며 함께 먹는 입(그리고 여기서 더해 함께 자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정겨운 말 ‘식구’를 더 즐겨 쓴다.유럽과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부부간, 부모자식간의 애정 표현이 참 깊고 짙어 보인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어떤가. 오죽하면 부부끼리 짙은 사랑의 표현을 하려 치면 식구끼리 그러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겠는가. 특별하지 않지만 매일 먹는 밥과 같이 늘 함께 있는 존재, 데면데면 지내는 듯 보이지만 희로애락을 끊임없이 솟아오르게 하는 샘과 같은 존재가 식구이다. 그래서 면전에서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내 삶의 원천이 되는 아내와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5월의 시간이 흐른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21일 부부의 날, 셋째 월요일 성년의 날, 게다가 스승의 날까지. 얇은 지갑을 더 얇게 만들고 괜히 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게 만드는, 어쩌면 가장들에게는 여느 달보다 조금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는 가정의 달 5월이 가고 있다.올 초에 한 연예인이 식구 앞에서 지인의 깻잎김치를 떼어 주는 친절에서 비롯된 이른바 ‘깻잎 논쟁’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과하지 않아도, 곰살맞지 않아도 좋다. 무심한 듯, 심드렁한 듯한 친절을 내 식구에게로 돌리자.시인 박인환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5월은 가지만 식구는 과거보다 더욱 진득하니 현재도 기억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사랑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2022-05-24

정치참여의 첫걸음, ‘투표’로 시작합니다

신성완 봉화군선관위 부위원장 지난 3월에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36.93%)을 기록했다. 사전투표율만 보면 선거에 참여하는 국민들이 엄청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제20대 대통령선거(77.1%) 투표율은 제19대 대통령선거(77.2%) 와 별 차이가 없다.우리나라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유권자들이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대표자를 선출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는 선거 과정의 공정성을 바탕으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은 투표를 통하여 주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함과 동시에 정치에 대한 자기 생각을 피력하게 된다. 문제는 선거가 거듭될수록 투표 참여율이 저하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낮은 투표 참여율은 선출된 대표자의 정당성을 약화하고, 소수 지지자를 위한 정책만을 추진하게 되고, 결국 정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려말 원 간섭기‘국지불국(國之不國)’(나라이되 나라가 아니다)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최근 정치나 사회를 부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는데 과거와 현재 사회현상을 표현하는 두 단어가 미묘하게 닮아 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헬조선’이라는 말도 앞의 두 단어와 같은 의미라고 하겠다. 이쯤에서‘과연 나라가 아닌 나라, 헬조선은 누가 만든 것일까?’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오로지 정치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위정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주변에서 ‘나는 정치에는 관심 없다’, ‘나와 정치는 별 관계가 없다’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정말 정치와 우리들의 삶이 관계가 없을까?예를 하나 들어보자, 주거·일자리 등 청년 정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청년층에 대한 청치참여 확대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증가되고 있음에도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청년의 정치대표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원하는 실질적인 요구사항이 어느정도 정책에 반영될 수 있을지 충분히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정치가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나를 위한 정책을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 나라가 아닌 나라, 헬조선을 만든 것은 결국 우리들 자신이다.정치참여하고 하면 엄청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정치에 가장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투표’다. 지난 공직선거 투표율을 살펴보면 대통령선거가 대체로 가장 높고, 국회의원선거·지방선거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은 56.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은 60.2%에 불과했다. 유권자에게 주어진 1표는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건전한 민주정치의 발전과정에 참여한다는 주권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책과 지역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제시하는 후보자가 누구인지 그들의 정책을 꼼꼼하게 비교해 보고 더 많은 유권자가 이번 선거에 참여하여 정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기를 바라본다.

2022-05-24

올림퍼스의 노예들 <Ⅱ>

아비의 말을 어미가 가로막았다.-당신은 그런 허풍 좀 떨지 말아요. 당신이 그만한 돈이 있은 적 있어요? 돈은 쥐꼬리만큼 밖에 없는 사람이 일만 크게 벌여서는. 그거 감당한다고 당신은 몸으로 때우고 우리는 안 입고 안 먹어서 때우고.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지. 그건 그렇고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데요?아비는 어미를 슬쩍 쳐다보고는 안나의 부은 손 등에 왼손을 얹었다.-안나 네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니다. 사는데 정답이 있나. 네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건가 보다. 그 정도 되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너를 그리 대하지는 않았겠지. 자기 관리도 잘할 것이고.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있으니 바람을 피우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어떤 방식이든 네 인생에 도움이 되겠지. 최 회장 정도 되면 꼬리치는 여자도 많았을 테고 어떤 여자든 만날 수 있을 텐데, 그게 너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어쨌든 잘 모셔라.-지금 아버지가 되어서 딸에게 할 소리에요?어미가 아비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아비는 안나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덕분에 우리 집 형편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건 정말 아니야. 나나 너의 엄마나 지금이 딱 좋다. 모자란 것도 더 가지고 싶은 것도 없다. 그저 너의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너의 오빠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고.아비가 말을 덧붙였고 안나는 손등에서 아비의 손을 들어 내렸다. 어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이 양반아, 가슴에 손을 얹고 이야기하소. 아이고, 이 미친 것아, 어디 할 일이 없어서.어미는 안나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안나는 꼿꼿이 앉아있었다. 안나가 몸을 세워 버틴 탓이기도 했지만 어깨를 잡은 엄마의 힘 또한 밥주걱으로 손 등을 내리치던 그 힘이 아니었다. 아비가 안나의 손 등에 다시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안나야, 뭐라 말을 해 보거라, 네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은 아니라니까.노마는 안나의 뺨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우리 집 왜 이래요? 아빠가 그렇게 말하면 제가 고마워요, 하고 말할 줄 알았어요? 저 친딸 아니에요? 제가 부자 늙은이의 마이걸이 되어서 우리 집에 뭘 가져오면 되는 건데요? 지금 미리 말하세요.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고.노마는 안나가 왜 우는지 궁금했다. 아비가 손바닥으로 안나의 뺨을 올려붙였으면 안나는 웃었을까? 노마는 안나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딸을 부자 늙은이에게 팔아넘겨야 할 정도로 집안 형편이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안나가 마이걸이 된 것은 아니라 믿었다. 그럴 안나도 아니었다.다음 날 어미가 안나를 불렀다.-이왕 그렇게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잘해라. 네가 생각하는 그런 뜻으로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안나는 어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성실한 노동이 정당한 결과와 함께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안나의 아비는 ‘언젠가’에 가족들의 미래를 걸었다. 언젠가 개발될 것들, 언젠가 이용될 것들, 그리고 언젠가 대박이 날 것들을 찾아다녔다. ‘지금 당장 여기’가 중요하다고 가족들이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지금 당장 조금의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간다면 원하는 미래는 오지 않아. 다른 사람과 똑같은 미래를 가질 뿐이지. 우리는 달라야 해. 안나의 아비는 고집했다. 아비는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들고 ‘언젠가’를 쫓아다녔다. 심해의 광물 자원 개발, 성층권에서의 태양광 개발, 아프리카의 부동산 개발 등. 아비가 가진 재산은 ‘언젠가’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투자자들의 모임 어느 한 구석에라도 앉을 수 있으면 감사한 일이었다. ‘언젠가’는 번번이 아비를 배신했다. ‘언젠가’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것을 아비가 깨닫게 될 즈음 그의 호주머니에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지금 당장 여기’의 세계로 돌아온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이 참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가지겠다, 무언가를 이루겠다, 무언가를 물려주겠다를 버리니 마음도 몸도 편안해졌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탐하지 않는 한 다달이 들어오는 노년 기본 소득이면 충분했다. 이게 말이야. 투자한다고 돌아다닐 때는 푼돈처럼 보였는데 말이야. 나쁘지 않아. 아주 요긴해. 좋은 제도야. ‘언젠가’를 찾아 돌아다니지만 않는다면 개인용 차량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언제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공공교통수단들이 도처에 있었다. 그것도 공짜로.나이가 곧 돈이었다. 괜한 욕심을 내었어. 이렇게 편한 세상을 그저 살기만 하면 될 것을. 안나의 어미가 법적으로 노인이 되는 해를 손꼽아 기다릴 뿐이었다./ 김강 소설가

2022-05-23

깃발인가? 아니면 깃발을 그린 그림인가?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의 작품 ‘깃발’은 1950년대 중반에 제작되었다. 작품에서 읽혀지는 이미지는 누가 보더라도 미국의 국기 성조기이다. 붉은 색과 흰색의 얇은 띠가 서로 교차하며 화면을 가로로 나누고 좌측 상단 짙은 파란색 배경의 사각형 위로 미국의 주를 상징하는 별들이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다.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성조기의 별들은 모두 쉰 개이지만 재스퍼 존스의 작품에는 두 개가 빠진 마흔 여덟 개의 별들이 그려져 있다. 그 이유는 그림이 제작된 1950년대 중반에는 알래스카와 하와이가 아직 독립된 주로 편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재스퍼 존스의 깃발이 그려질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미술사조는 추상표현주의이다.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대 중반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확산된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 움직임이다.대표적인 미술가로는 재스퍼와 운동감 넘치는 액션 페인팅의 잭슨 폴록, 빌렘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정적이며 명상적인 화면을 보여준 색면추상의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 애드 라인하르트 등이 있다.추상표현주의를 통해 미국 미술가들은 유럽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새로운 추상형식을 선보이며 드디어 서구 미술의 흐름을 주도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외부 세계를 모방하거나 재현하지 않기 때문에 비관계적, 비대상적, 반환영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회화가 철저하게 추상이기 위해서는 회화라는 매체의 순수성을 고수해야 하고 추상표현주의를 이론적으로 정립했던 그린버그와 같은 비평가들은 회화의 매체적 순수성을 평면성에서 찾았다.재스퍼 존스의 작품 ‘깃발’은 1950년대 중반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미술의 주된 흐름으로 유행하고 있을 때 제작되었다. 존스의 작품은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추상표현주의에 내재된 수많은 미학적 담론들을 동시적으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미국 미술계 중심 화두로 떠오르게 된다.재스퍼 존스의 ‘깃발’은 추상이면서 추상이 아닌 작품이며, 환영적이면서 동시에 비환영적인 평면 작품이다. 작품 ‘깃발’이 추상이 아닌 이유는 미국의 국기 성조기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것이 추상인 이유는 ‘깃발’을 구성하는 희고 붉은 색의 선과 별 그리고 사각형은 모두 기하학적인 도형이기 때문이다. 작품 깃발이 환영적인 까닭은 그림이 성조기를 떠올리고 성조기는 수많은 의미를 품고 있어서이다.하지만 동시에 이 그림이 비환영적인 이유는 이것이 실제 성조기가 아니라 원래부터 평면적인 성조기의 이미지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재스퍼 존스는 자신의 작품이 하늘을 펄럭이는 실제 성조기가 아니라 성조기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그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파라핀을 녹여 그림을 그리는 납화법이라는 번거로운 제작 방법을 선택해 화면에 거친 질감과 얼룩이 그대로 드러나게 했다.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화면 바탕에 신문의 글자들이 읽혀진다. 이 또한 화가가 자신의 작품이 성조기를 재현하거나 모방한 것이 아니라 성조기 이미지를 통해 추상표현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추상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는 신호로 이해된다.재스퍼 존스의 대표작으로는 과녁이나 지도, 숫자, 알파벳 등이 있다. 미술가가 소재로 취하는 대상들은 그 자체로 평면적이거나 추상적이라는 점에서 깃발에서 논의된 맥락들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추상과 재현의 경계에 위치한 존스의 이미지들은 주로 일상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미술사는 그의 작품에서 대중적 이미지를 수용한 팝아트의 출현을 예감하기도 한다./미술사학자 김석모

2022-05-23

사라지는 꿀벌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꿀벌 실종 현상은 21세기에 들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군집 붕괴 현상의 하나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시작돼 3월까지 전라남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충청북도까지 북상하며 발생했고, 4월 들어 경기도 고양시에서도 관찰되는 등 전국적 사건이 됐다.전국적으로 77억여 마리의 꿀벌이 사라지면서 양봉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21세기에 들어 양봉 농가는 등검은말벌과 같은 외래 천적의 침입, 낭충봉아부패병과 같은 질병, 폭염과 집중호우가 반복되는 여름과 점점 더 더워지는 겨울의 특징을 보이는 기후 변화 등으로 꿀벌 개체 감소와 꿀 생산량 급감을 겪어왔다. 올해 꿀벌 개체 감소는 유례없이 큰 규모로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이런 가운데 일부 국내 기업들이 꿀벌 생태계 복원 사업에 나섰다. 한화그룹은 태양광 전력을 활용한 탄소저감벌집,‘솔라비하이브’를 개발해 꿀벌 4만 마리를 관리하기로 했다.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력을 통해 벌통 안의 온도와 습도, 먹이 현황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꿀벌의 천적이 나타나면 이를 감지해 침입을 차단하는‘보호 기능’까지 탑재했다. KB금융그룹도 사회적기업과 손잡고 꿀벌에게 먹이를 주는‘밀원숲’을 조성하기 위해 강원 지역에 헛개나무, 백합나무 등 10만 그루를 심기로 했다.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농작물의 꽃가루를 옮겨주는 꿀벌이 없으면 식량도 사라진다는 의미로, 꿀벌이 생태계에 갖는 의미를 강조한 말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꿀벌의 실종은 궁극적으로 인류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일이다.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5-23

‘택소노미’

남광현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택소노미’는 그리스어로 ‘분류하다’라는 뜻의 ‘tassein’과 법·과학을 가리키는 ‘nomos’의 합성어인데, 우리말로는 ‘분류체계’라고 할 수 있다.‘택소노미’는 지난 2월 열린 대선후보 첫 TV토론회에서 이재명과 윤석열 대선후보간의 토론에서 RE100(재생에너지 100%사용캠페인)과 함께 크게 화제가 된 용어이다.대선토론에서 다루어질 만큼 앞으로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용어로 인식될 것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전문가만이 사용하는 난해한 은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지난해 12월 환경부는 과연 무엇이 진정한 녹색경제활동인가를 판단하는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인해 여러 국가가 녹색회복을 위한 그린뉴딜정책 등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게 될 것인데 이 과정에서 녹색위장행위(Green Washing)를 걸러내기 위한 일환이다.녹색경제활동은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 순환경제, 오염, 생물다양성 등 6대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하여야 한다. 6대 환경목표 달성과정에서 다른 환경목표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며, 인권, 노동, 안전, 반부패, 문화재 파괴관련 법규를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지난 5월 초 발표된 윤석열정부의 국정비전과 목표, 110대 ‘국정과제’ 중 17번째 과제인 ‘성장지향형 산업전략 추진’에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소셜 택소노미’의 마련이 있다.‘소셜(Social) 택소노미’는 앞서 이야기한 녹색분류체계 즉 ‘그린(Green) 택소노미’라는 환경적 녹색 분류에서 나아가 인권을 포함하고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사회적 목표로 확장하여 사회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이 무엇인지 분류하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 제공, 최종 사용자에게 적절한 생활수준 및 복지 제공,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조성이라는 세 가지 사회목표로 구성되어 있다.산업화와 도시화라는 인류문명의 변화과정에서 기후위기와 양극화 등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방해하는 위장행위(그린워싱, 소셜워싱)를 ‘택소노미’를 이용하여 걸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윤석열 정부는 ‘K-택소노미’에서 제외된 원전을 다시 포함할 계획이다. 금년 2월에 유럽연합(EU)이 그들의 녹색 분류체계에 수많은 찬반격론을 거쳐 2050탄소중립을 위해서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원전을 포함시킨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정부가 바뀌어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이라는 국제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원전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조화를 이룬 ‘에너지믹스(mix·전원 구성) 정책’을 성공적으로 펼쳐야 한다.지난 4월 말 발표된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지방시대’라는 윤석열정부 지역균형발전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15대 국정과제가 대구·경북에 실현되는 과정에서도 ‘택소노미’ 기준은 제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2022-05-23

기업에서 필요한 리더의 능력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투자의 귀재라 불리며,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된 워런 버핏은 ‘독서를 이기는 건 없다’고 했다. 독서를 통해 실패든 성공이든 미리 간접경험을 하면서 가야할 미래의 어느 지점에 위험이 있는지 알 수 있으니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효과적인 작용을 할 것이다. 정보를 바탕으로 필요한 결정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책을 먼저 읽고 소개해 주는 사람들 그들 모두는 소중한 선생이다.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지치기 된 맞춤형 책 소개를 통해 시간의 낭비없이 효율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처럼 기업에서도 이렇게 가지치기 된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해 어디에 시간과 돈과 노력을 써야 하는지 알려 주는 리더의 역할은 중요하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리더의 자질이자 능력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하나는 문제가 발생되었을 때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완성품 위주의 ‘고치는 품질 시대’에서 필요로 했던 능력이며, 드러난 문제만 해결하는 구조로 재발방지가 되지 않아 무결점 공장을 만드는데는 한계가 있다.나머지 하나는 ‘지키는 품질 시대’에 맞는 ‘문제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완성품이 아닌 그 원인을 제공하는 ‘공정 중의 품질관리’를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며 사람이 아닌 시스템적인 것이다. 문제만 만들어져 있다면 그것을 해결해 줄 수단은 그리 어렵지 않다.바둑에서 알파고가 인간을 능가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면서 인간의 역할은 어디에 위치하게 될지 고민이 깊어진다. 인간은 점차 고립된다는 가설에 근접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고, 성공스토리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면 불안해 지는 시대에 살아가면서 리더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기업에서 리더는 조직이 나아가야 할 나침반 역할을 하는 지표를 설정하는 능력을 갖춰야한다. 어떤 업무를 하든 사실 일에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성과지표가 필요한데 기업들은 지나치게 한 가지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하나는 ‘기술적 성과’로 표준과 전략에 맞추어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다. 식당에서 조리사가 칼로리와 염도를 정확하게 맞춰 조리하여 언제나 같은 맛으로 만들어 주는 성과가 여기에 속한다.다른 하나는 ‘임기응변적 성과’로 표준을 벗어나서 상황에 따라 적응하는 성과다. 조리사가 손님의 기호와 건강상태에 따라 다르게 응대하고 손님이 원하는 것을 읽고 대응하는 것이다. 신시장을 개척하거나 신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 필요하며 직원의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다.그런데 많은 기업의 리더들이 전자에 지나치게 편중된 훈련과 가치를 두면서 목표는 달성하는데 목적달성에 실패하게 되는 이유다. 경영학자들은 일본기업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 못하는 이유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아날로그 기술 시대의 품질관리와 개발 절차에서 변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공공부문이 절차와 규정에 집착하는 것은 바로 ‘적응적 성과’에 우리 사회가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2022-05-23

스침과 스밈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연초록 수채화 같은 5월이 벌써 하순으로 접어들어 초목의 두터움 속에 어느새 초여름으로 치닫고 있다. 경쾌한 새소리가 새벽을 깨워주고, 정갈한 햇살과 훈향의 바람이 푸른 오월을 구가하고 있으니,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해도 좋을, 그야말로 네 가지의 아름다움(四美)이 꿈결처럼 찾아드는 때가 아닐 듯싶다. 이른바 좋은 시절(良辰)에 아름다운 경치(美景)를 감상하고 마음껏 즐기며(賞心), 즐거운 일(樂事)을 더불어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언제부턴가/자명종 같은 새소리가 두드리면//깃 터는 아침이/선물처럼 다가와//샘솟는/환희의 빛살/온누리에 뿌리네//터질 듯한 음조로/하루를 탄주(彈奏)하느니//초목의 푸르싱싱/새들의 무정설법(無情說法)//오롯이/추임새 삼는/꿈을 향한 날갯짓” -拙시조 ‘새소리로 여는 아침’ 전문야산과 인접한 우거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온갖 새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새벽부터 재잘거리는 새소리에 하루가 시작되고, 밤하늘에 퍼지는 밤새 소리에 그 날을 마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새소리라 하더라도 참새처럼 그냥 짧고 가볍게 스쳐가는 지저귐이 있는가 하면, 뻐꾸기나 소쩍새처럼 구슬픈 듯 애틋하게 깊이 들리는 새들의 울음도 있다. 새소리의 음절이나 음색, 음역이 각기 다르고 사람의 청각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과 마음의 울림 정도가 저마다 상이하기 때문이다.흔하게 듣는 새소리가 이럴진대, 사람사는 세상에는 오죽이나 복잡미묘한 소리와 별의별 울림들이 난무할까? 자신의 주관에 따라 자기본위로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제 각각의 목소리를 내거나 들으며 살다 보면 자신의 음색과 비슷하거나 편안하게 어울리는 음률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즐겨 부르는 노래나 듣기를 좋아하는 곡을 선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마음이 통하고 뜻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정을 나누며 공생가치를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같은 무리끼리 어울리며 서로 사귄다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은 결국 물이유취(物以類聚)나 초록동색(草綠同色)처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생각이나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된다는 뜻이다.시절인연(時節因緣)처럼 인생행로에는 인연에서 비롯되는 온갖 현상과 만남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부지기수 나타나고 만나는 사물이나 사람들은 대부분 돌차간 스쳐 지나는가 하면, 찰나의 마주침 속에서 부침하며 절로 스며드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물체의 공명으로 울림이 커지듯이 사람은 공감으로 투합이 많아지게 된다. 소통과 공감으로 상호관계가 합치될 수 있음은 동조와 합심으로 한배를 탄다는 의미이다. 건성의 비위맞춤이 아닌 진솔한 이심전심으로 마음에 스며든다는 것이다.풍파가 그칠 날이 드문 세상살이는 자신의 이해타산에 따라 이합집산이 많은 곳이다. 위선자의 가식적인 행위나 위정자의 언행에는 무릇 새소리만큼의 무구함이나 명징한 울림이 있기라도 하는 걸까?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이 됨을 명심하여 관계의 소중한 가치를 함께 누렸으면 한다.

2022-05-23

검찰개혁, 말 잘 듣는 검찰 만들기 아니다

김진국 고문 검찰총장 임기제는 1988년 12월 만들어졌다. 그해 13대 총선 결과 출범한 첫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는 정치개혁에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검찰총장 임기제다. 그만큼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87년 6월 항쟁의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이 사건이 폭로되고, 실상이 드러나는데 검찰의 역할이 컸다. 경찰이 곧바로 사체를 화장하고 은폐하려 했으나, 최환 부장검사가 중앙일보 기자에게 흘려 기사화했고, 사체를 보존해 부검토록 했다. 이런 배경 속에 평민당 등 야당과 대한변협이 임기제를 밀어붙였다.그때는 검찰총장이 바로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것도 비판받았다. 김태정 검찰총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임기 3개월을 남겨놓고 장관으로 기용됐다. 대선 직전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중단한 데 대한 보은으로 비쳤다. 비판 논리의 하나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상하관계로 본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검찰총장이 재임 시절 정권의 입맛에 맞게 수사하고, 영전을 노리게 만드는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것이다.그러나 이제 이런 문제를 거론하기도 민망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 대한 노골적인 정치적 압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만들어냈을 정도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총장이) “내 지시의 절반을 잘라먹었다”, “(윤 총장이) 장관의 지휘를/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 해가지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고 한 음절씩 조롱하듯 강조해 말했다. 검찰총장을 정권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린 것이다.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이 없는 상태에서 취임 하루 만에 검찰 인사를 대대적으로 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윤 대통령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요직으로 복귀시켰다. 문재인 정부에 가까웠던 검사들은 모두 한직으로 쫓겨났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적 충성을 강요하며 인사권을 휘두른 걸 생각하면 왜곡됐던 검찰을 정상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한 장관은 “정치검사가 출세한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지난 3년이 가장 심했다”고 반박했다. 추 장관 시절 검찰 인사에 대해 언론은 ‘윤석열 사단 대학살’, ‘윤석열 사단 학살 넘어 전멸’이라는 제목들을 달았다. 박범계 법무 때도 ‘윤석열 사단 거리두기와 친정권 검사 요직 배치’라는 제목이 나왔다. 윤석열 총장도 “나는 식물총장”이라고 했다.원인은 문재인 정부가 제공했다 하더라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서는 나쁜 선례를 쌓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이 한꺼번에 냉탕과 온탕으로 보직을 바꾸게 되면,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보이지 않게 정치에 개입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매우 중요하다. 수사권을 박탈한다면 그것이 검찰이건 아니건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경찰의 성격상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가 쉽지 않다. 또 통제되지 않으면 민주당이 검찰에 대해 우려하는 이상으로 위험하다.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오랫동안 지적됐다. 정치의 중심을 국회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도 전문가들 사이에 많이 이뤄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통령의 힘을 수평적으로 국회에, 수직적으로 지방정부에 더 나눠야 한다는 공감대는 만들어져 있다. 의회 중심 정치에서 가장 우려하는 게 부패다. 가뜩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크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해 더 큰 권력을 넘기려면 정치인의 부패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검찰과 경찰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을 줄이지 못하면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장관의 지휘를/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라는 식으로 조롱을 듣는 한 정치보복을 반복할 위험도 있다.윤석열 정부는 검찰이나 수사기관을 잘 안다. 검찰 권력을 되찾는 작은 조직의 이익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부패를 막을 수사제도 전반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 진정한 ‘검찰 개혁’, ‘경찰 개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본사고문

2022-05-22

사전투표로 공명선거 한 걸음 더

신효원대구 달서구 선관위 사무보조원 불과 두 달여 전 실시된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이어 곧바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될 예정이다. 지방선거 역시 5월 27일과 28일 양일간 사전투표가 진행된다. 지방선거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교육감 선거, 광역·기초의회의원선거 등을 동시에 치르기 때문에 대선과는 달리 투표용지가 7장으로 늘어난다. 많은 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까닭에 선거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예를 들어 사전투표를 전후하여 쟁점으로 대두되는 관심 중 하나는 “과연 사전투표가 투명한 선거권 행사를 보장하고 있는가?”이다. 사전투표 절차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이 과연 보장 되는지 여부가 논란의 주요 내용인데,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치르며 필자가 직접 경험한바 선거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많은 절차들이 있다. 사전투표의 취지는 본 선거일에 투표 참여가 어려운 선거인을 위해 선거일에 앞서 전국 어디서나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사전투표는 유권자들의 투표 편의를 공정하게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집약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선거관리위원회는 많은 변수를 염두에 두면서 국민에게 최대한의 투표 편의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투명성’ 역시 철저하게 보장된다. 사전투표 진행은 사전투표관리관이 보관하는 보안USB와 공인인증서를 통해 인터넷 등 외부망과 철저하게 분리된 사전투표 전용 통신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외부 프로그램의 해킹과 같은 만일의 상황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또한 각 사전투표소는 전국의 유권자를 하나의 명부로 전산화하여 관리하는 통합선거인명부를 이용하기 때문에 선거인의 투표소 간 이중 투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투표소에는 정당·후보자별로 1명씩 선정된 투표참관인이 있고, 투표 시작 전 사전투표 운용장비의 봉인 해제, 기표소와 기표용구 확인까지 모든 과정은 투표참관인의 참관하에 실시된다. 투표가 종료되면 사전투표 운용장비는 투표참관인의 서명이 날인된 특수봉인지가 부착되며, 투표함을 자물쇠로 봉쇄한 뒤 서명된 특수봉인지를 붙여 최종적으로 봉인한다. 봉인을 마친 투표함은 경찰의 동행 하에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인계되며, 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 당일까지 방범시스템, 출입통제시스템을 통해 보안을 유지하고 CCTV를 통해 24시간 감시하는 등 철저하게 투표함을 보관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일련의 절차들은 선거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절차라고 할 수 있다.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의 경우 진행 과정에서 다소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선거를 거울삼아 다가올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 투표권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보장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권자분들도 이러한 노력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시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개개인의 소중한 권리를 꼭 행사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2022-05-22

경주 발전 이룰 적임자 뽑아야

김맹희 경주시·자영업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바로 코 밑이다.위기의 지방자치를 구하는 방법은 우수한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일이다. 지방자치는 저절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현재 경주시장 선거에는 국민의 힘 주낙영 현 경주시장과 더불어민주당의 한영태 경주시의회의원 두 사람이 경주발전의 적임자라며 시민들의 한표, 한표를 호소하고 있다.경주는 세계적인 역사문화관광도시이자 자동차 산업 등 경제산업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한수원, 원전, 방폐장 등 원전산업이 점차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원전 메카이기도 하다. 이러한 반면에 인구 감소 위험이 높은 관심지역이며, 우량기업, 대학 등 부재로 젊은 층 인구가 외부로 유출되는 등 점차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또한 기업지원 등 타 지역에 비해 기업지원 전문연구센터를 유치해 지역 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경주경제의 활성화도 간과할 수 없다. 하나하나 찾아보면 미래를 바라보는 경주가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일들이 산더미이다.이러한 지역의 여러 현안을 해결해 나가고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으로 연계되기 위해서는 처음도 끝도 무엇보다 시민들의 욕구가 뭔지, 현재 경주의 현실을 파악하고 타파해 나갈 인물이 가장 중요하다. 경주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한계는 돈이다. 예산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계획도 성사되지 않는다. 주민을 위해 4년간 경주 살림을 살아갈 리더는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듯이 경주가 새롭게 변모하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시민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 주고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또한 유권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시민과의 약속 이행이다. 예비후보자가 제안한 지역발전 공약과 정책을 바꾸거나 변경하지 말아야하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시민과의 협의를 통해 갈등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에 우리 유권자들은 허황된 공약보다는 좀 더 건설적이고 실현 가능성 있는 자에게 한 표를 행사하고 싶어한다.이러한 여러 가지 희망사항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려면 풍부한 경험과 시민과의 공감 및 소통능력이 확실한 후보가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한번 결정을 하면 4년을 가야한다. 지금까지 우리 손으로 선출한 단체장을 지켜볼 때 탁월한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능력을 통해 지역발전에 밑거름이 되도록 한 것을 보면 이번 경주시장 선거 역시 그런 능력을 갖춘 후보가 선출되기를 많은 시민들이 바랄 것이다.그동안 경주발전을 위해 쏟은 많은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경주가 그 어느 도시 보다도 행복하고 잘 사는 누구나 살고 싶은 경주가 되기를 희망하지 않는 시민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경주가 앞으로 새롭게 변화하고 여러 가지 역경을 이겨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다. 가정에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식구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가장의 역할이듯이 우리 시민들이, 우리 경주가 힘들 때 과감하면서도 강한 추진력으로 잘 마무리 하는 것이 시장의 역할이다. 이런 결실을 얻으려면 그에 응당한 사람을 우리 손으로 뽑아야 되며 이것이 우리 시민들이 해야 할 책무이다.4년이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 그래서 경주가 꼭 필요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능력없는 사람을 뽑으면 그 4년은 우리 모두에게 지겹고 힘든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 경주가, 그리고 미래의 밝은 경주를 위해서는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는 유권자들은 깊은 고민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시민들은 소중한 한 표가 앞으로 4년을 넘어 희망 가득한 미래경주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2022-05-22

보물 하나를 보태다

고래불에 처음 간 날, 바람이 몹시 불었다. 하늘로 오르려는 모양의 전망대로 향하는 우리 일행을 휘감았다. 바람 혼자였다면 뚫고 지났을 텐데, 하얀 모래가 덩달아 신이 나서 방파제를 오르고 있어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명사 이십 리에 가득한 모래가 하도 고아서 바람을 타고 얕은 담을 넘어 배가 정박한 항구의 영역을 침범했다. 다른 날 또 오리라 다짐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얼마 후, 대학 동기 언니들이 동해를 따라 드라이브하자고 해서 나섰다. 그 말에 바람이 길을 막던 고래불부터 들르자 했다. 날이 좋아서 입구의 구멍 숭숭 뚫린 고래 조형물 위에 사람이 함께 유영하듯 매달렸다. 누가 봐도 고래불 해수욕장이라는 안내문 같다.전망대를 보러 방파제로 향했다. 바닥에 물 위에 햇살이 일렁이는 무늬가 그려져 파란 바다 위를 걷는 듯하다. 그 위에 지난 바람에 슬쩍 담을 넘은 모래가 둔덕처럼 쌓였다. 가만히 보니 바닷가에 오래 살았던 바람이 솜씨를 부려 모래에도 바다의 물결을 그대로 그려 놓았다. 모래에서 샤라락 파도 소리가 들릴까 싶어 몸을 낮춰 사진을 찍었다.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고래 전망대에 올랐다. 빙글빙글 계단을 오르자니 내부 벽에 귀신고래와 망치고래를 그려 놓았다. 몇 발짝 더 오르니 밍크고래가 보이고 범고래도 곧 물을 내 뿜으며 숨을 내쉴 품새다. 향유고래 이름과 설명을 읽다 보니 꼭대기에 다다랐다.고래불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둥그런 모래사장 뒤로 소나무 숲이 검게 보였다. 그 모양이 낮게 엎드린 고래 모습이다. 고려의 학자 목은 이색이 상대산에 올라 고래가 뛰노는 것을 보고 경정이라 하였다. 경정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고래가 뛰노는 벌이다. 고려인의 눈이 되어 바다를 보자니 햇살이 눈이 부셔 손차양을 하고 휘 돌아보니 맞은 편에 빨간 등대가 섰다. 병곡 방파제 테트라포드는 회색 시멘트색인 다른 곳과 달리 빨강 파랑이 뒤섞여 독특했다.조선의 실학자 이규경은 글에 고래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만 산모에게 미역을 먹도록 하는 이유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전한다. 바닷가에서 한 사람이 헤엄을 치다가 갓 새끼를 낳은 어미 고래가 숨을 들이쉴 때 고래 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고래 뱃속에 미역이 가득 붙어 있고 장부의 좋지 않은 피가 녹아서 물이 되고 있음을 보았다. 간신히 고래 뱃속에서 나와 고래가 미역으로 산후의 보양 삼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다. 사람들도 비로소 그 좋은 효험을 알아 이후 산후에 미역국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첫아이를 낳고 삼 칠 동안 친정엄마가 끓여주시는 미역국을 하루 네다섯 끼를 먹었다. 많이 먹어야 회복이 빠르다고 배가 꺼지기도 전에 상을 내 앞에 밀었다. 옛 어른들 말이 틀린 게 없다며 오래 끓여 깊은 맛이 나는 국물을 들이켰더랬다. 태어나서 엄마 젖을 통해 그렇게 먹었던 미역국을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먹는다. 고래에게 배운 깊은 깨달음을 먹는 것이다.고래불은 영해면 대진해수욕장과 이웃한 해수욕장이다. 울창한 송림에 에워싸여 있으며, 금빛 모래는 몸에 붙지 않아 예로부터 여기서 찜질을 하면 심장 및 순환기 계통 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해변 길이가 8km에 이르고, 동해인데도 얕은 수심이라 아이들과 헤엄치기 안성맞춤이다.고래불 가까이 일곱 개의 보물을 간직한 칠보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찾아가는 길이 구불구불 소나무 가득한 숲길이다. 따로 예약하지 않았기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를 따라 오른다. 여러 코스가 있지만 우리는 전망대까지 걸었다. 시인들의 시를 한 편씩 읽다 보니 정자가 나타났다. 날이 좋아서 푸른 능선 너머로 고래불이 보였다. 하~ 좋다. 밤을 휴양림에서 보낸 사람들은 푸른 고래불에서 뜨는 붉은 일출을 보겠지. 칠보산의 일곱 개 보물에 숲에서 보는 바다라는 풍경 하나를 더해 팔보산이라 이름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김순희(수필가)

2022-05-22

대통령 취임사, 자유주의의 주적인 반지성주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5월 9일 국회의사당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윤 대통령은 내외 귀빈과 4만여 명의 축하객 앞에서 16분의 취임사를 하였다.취임사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비전을 볼 수 있어 국민적인 관심을 끈다. 취임사 초안은 정치 철학 전공의 윤모가 교수가 작성한다고 알려졌으나 언론은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보도하였다.이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라는 단어를 35회나 반복함으로써 자유를 국정의 핵심지표로 삼겠다는 뜻으로 비쳤다. 이와 함께 자유의 주적이며 장애물인 ‘반지성주의’를 강력히 질타하였다.취임사의 핵심인 자유주의와 반지성주의는 일반 국민들이 알아 듣기에 상당히 무거운 개념이다. 정치학을 전공한 필자도 무척 생소한 개념으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의 상임고문인 어느 원로 정치인도 대통령 취임사는 논문을 대하는 것처럼 너무 추상적이라고 비판하였다.취임사의 키워드인 자유부터 살펴보자.우리가 흔히 쓰는 자유는 그리 간단치 않은 복합적 개념이다. 자유는 평등이 전제되어야하는 상보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결국 민주주의가 추구해온 최고의 가치이며 자유의 역사는 바로 민주주의의 쟁취사이다.취임사에서 대통령의 ‘자유’ 강조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자유 과잉이나 일탈을 비판한 것이며, 자유주의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결국 취임사의 자유는 시카고 대학 교수 출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 Freedman)의 자유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듯하다. 1979년 프리드먼의 명저 ‘선택된 자유’를 윤대통령은 선물로 받아 읽었다는 소식도 있다.프리드먼은 저서에서 정부의 권력을 최소화하고 분산시키는 것만이 자유를 유지하는 원천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자유의 확산과 발전을 위해 ‘큰 정부’를 ‘작은 정부’로 어떻게 바꿀 지는 미지수다.취임사에서 대통령은 자유, 인권, 공정, 연대를 국정의 지표로 제시하였다. 전자인 자유와 인권 보장이 궁극적 목표라면 공정과 연대는 방법론적 가치이다.이번 취임사에서 등장한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m)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이 용어는 1963년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에서 사용했던 개념이다. 객관적으로 증명된 이론이나 진실이 어떻든 간에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는 잘못된 사상풍조이다. 흔히 집단의 정체성을 내세워 지성을 배제하고 상대를 적대화 하고 악마화 하려는 그릇된 사회적 풍조를 일컫는다.취임사에서 이를 강조한 것은 다수가 상대를 억압하고 비판하는 우리의 포퓰리즘적 정치 현실을 비판하기 위함일 것이다. 한국의 양극화된 정치 풍토 역시 반지성주의적 소산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어느 한쪽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칭 촛불세력도 태극기 세력도 양측 모두 자유를 남용한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우리 사회의 보수 측은 ‘자유민주주의’(liberal domocracy)를 민주의의의 핵심적 이념으로 여기고 사회민주주의는 철저히 비판 배격한다. 사실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 보장을 최고의 가치로 두면서 이를 보장하기 위한 방식이나 제도의 차이에서 구분되는 개념이다. 정의를 위한 자유주의와 공동체 주의의 대립과 마찬가지인 것이다.혹자는 참된 민주주의를 위해 민주주의의 형용사나 수식어를 없애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전체주의를 민주주의로 위장하고 유신 독재로 둔갑한 ‘한국적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한국의 보수우파 측은 자유민주주의를 자신들의 전유물로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양심적인 진보 측은 북한식 인민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자유민주적 질서를 옹호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우리 사회는 새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아직도 대선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대선이 끝났지만 6·1 지방선거가 반지성주의 프레임 정쟁을 격발시키고 있다. 지층과 반대층은 서로 상대를 반지성주의로 매도하고 있다. 서로 상대를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로 구분해 싸우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 이 나라 정치에서는 참된 보수와 진보는 사라지고 사이비 보수와 진보끼리의 분별없는 대립과 갈등만 계속될 뿐이다. 이번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한국 보수 우파 정당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기 위함일 것이다.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대통령은 국민 통합의 메시지는 제시할 수는 없었을까. 대통령 취임사에서 협치와 화합의 메시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자유의 적인 반지성주의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정치 보복이라는 단어는 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야권의 각성도 중요하지만 정권을 가진 자들의 양보의 미덕을 보여야 할 시점이다.

2022-05-22

‘다이옥신’(dioxine)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쓰레기 소각장이나 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에서 반대하는 이유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발암 물질이 있다. 미국환경보호청(EPA) 조차도 ‘발암성 물질 중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독성’ ‘청산가리보다 더한 독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독성 화학물질이 바로 다이옥신이다.열을 이용하는 시설인 철강업체 전기로, 제지공장, 자동차 폐윤활유, 석탄 연료, 도시폐기물 소각로, 시멘트공장 소성로 등에서 주로 배출된다. 극히 미량이라도 장기간 섭취하면 피부병에 이어 간을 손상시키고 심장 기능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심지어 기형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환경부는 2018년 11월 29일 다이옥신을 토양환경보전법상 토양오염물질로 지정했다. 기존 토양오염물질(22가지)에 추가한 23번째였다. 올해 1월 21일에는 토양환경보전법 제4조 2항, 토양환경보전법 시행규칙 제1조 5항에 규정한 물질에 포함돼 오는 7월부터 법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토양 오염물질의 거동특성과 토양오염에 대한 이해도를 갖추고 토양오염물질 22가지를 분석하던 기존 토양 전문기관들은 측정 장비가 없고 숙련된 전문 인력이 부족해 다이옥신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고 한다.다이옥신이 토양오염물질로 지정됐지만, 다른 토양오염물질과 달리 토양환경보전법의 토양오염공정시험기준에 다이옥신에 대한 분석법이 전혀 등록돼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다이옥신과 관련한 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신뢰성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논란만 가중시킬 우려를 낳고 있다.환경부는 토양환경보전법의 토양오염물질로 새로 규정된 물질에 대해 기존 토양오염에 대한 조사·분석을 수행하던 업체들을 배제하고, 잔류성오염물질분석(POPs) 업체 12곳에서만 분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토양오염조사에 대해 인력과 검사장비 등이 부족하고, 토양조사에 대한 이해력도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렇듯 특정 유해물질을 특정 업체만 분석할 수 있도록 한데 이어 역량도 떨어진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데, 다이옥신 관리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이에 대해 환경부는 다이옥신은 물질의 특성상 안정화돼 있어 위험하지 않고 오염 예상 지역 조사에서도 수치가 낮아 문제가 없으며, 앞으로도 토양분석 수요가 미미할 것이란 이유로 12곳 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위험하지도 않고 오염도가 낮은 상황이며 토양분석 수요가 거의 없는 물질을 왜 토양오염물질로 등록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어 규제물질로 실컷 등록해 놓고선 저감 등 관리업무엔 손을 놓고 있는 건 직무유기에 가깝다. 왜 갑자기 다이옥신에 대해서만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인지에 대해서도 환경부의 설명이 필요하다.현재 토양오염은 날로 대형화하고 그 오염의 심각성과 복합성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토양오염조사의 난이도 또한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런데 토양오염조사에 대해 관리 감독하는 환경부의 접근 방식은 너무 안일하다. 우리 주변의 산업단지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4만3천 가지 이상 달하고 있는 상황이고 매년 400~500가지가 더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는 미비하고, 측정 장비나 측정·분석기관이 없는 화학물질도 수두룩하다. 이런 상황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오고 있는 필자로선 다이옥신에 대한 환경부의 정책은 너무 우려스럽다.ESG 경영의 확대로 기업의 환경윤리 측면이 강조되고 있어 앞으로 토양오염조사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생활주변에서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측정·분석기관 및 전문 인력의 확보는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때문에 환경부는 이에 대한 방향 설정을 보다 정교하게 해야 한다. 환경부는 여태껏 수질오염과 대기오염에 대한 대응 실패를 토양에선 절대 반복해선 안 된다.규제가 시작되면 예상하지 못한 분야에서 부하가 발생할 것이다. 이를 대비해 측정 기관과 인력 확보를 위한 대책과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오염물질 배출업체의 서류조작과 측정 내역 조작 사건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었다. 이런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환경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낙동강에서 1.4-다이옥산 수질 사고가 발생했을 때 환경부에 배출허용기준 설정을 요구했더니, 일부 지역에서 배출되는 물질을 환경법상 규제하기가 어렵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전국 산업단지를 조사한 결과 모든 산업단지에서 1.4-다이옥산을 배출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환경부의 전형적인 복지부동을 확인하는 대목이다.이후 환경부에 재요구한 끝에 배출허용기준을 제정하게 돼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전히 지금도 1.4-다이옥산의 배출허용기준이 턱없이 높아 실효성은 떨어진다. 다이옥신도 지금부터라도 장단기 계획을 수립해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2022-05-22

이제는 추첨 민주주의다

유영희 작가 6월 1일 8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투표 당선자가 18일 기준으로 전국에서 502명이라고 한다. 서울의 경우 구의원 373명 중 107명이 무투표 당선이다. 투표가 이루어지는 지역도 경쟁률이 전국은 1.8 대 1, 서울은 1.4 대 1이라 하니, 시민들의 무력감이 심하다.지방의회는 일제 강점기 때 시작되었으나, 박정희 정권 때 없어졌다가 1991년 재도입되었다. 처음에는 무보수로 시작했지만 2006년 보수를 책정한 데다 정당 공천도 받게 되니, 이제는 지방 선거가 중앙 선거의 축소판이 되어 버렸다.이렇게 선출된 지방자치단체 의원들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다. 7회 지방선거 당선자 중에도 2019년 대구 시장 선거를 둘러싸고 당선 무효 된 의원이 5명이 나왔고, 작년에는 영천시 의원이 음주운전으로 당선 무효 되었다. 이번 8회 무투표 당선자 중에도 30%가 전과가 있거나 지난 8년간 내부에서 징계받았던 후보자도 있다.그런데도 의원들에게 지급되는 보수는 만만치 않다. 자치단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월정 보수는 1년에 5천만 원에서 7천만 원을 웃돈다. 거기에 회의 수당과 의정 활동비도 별도로 나온다. 그런데도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존재감은 없으니, 세금 도둑이니 돈 먹는 하마니 하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그렇다고 시대를 역행하여 지방자치를 폐지할 수는 없다. 지방 자치는 시민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첨제는 어떨까? 우리는 교육 수준도 높고 민주화 경험도 있어서 추첨제를 할 만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4,5년 전 어느 생협의 임원 선출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참석한 사람들 모두 연장자를 뽑아야 한다는 관습의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눈치가 보였지만 추첨 방식을 제안해보았는데, 열렬한 호응을 받으면서 실현되었다. 생협 활동 역사상 최초여서 더 뜻깊었다.이런 작은 위원회의 경험을 지방선거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민활동가이며 정치학자인 이지문의 저서 ‘추첨 민주주의의 이론과 실제’에는 이런 꿈이 구체적으로 제안되어 있다. 여기에는 고대 아테네에서 공직자를 추첨으로 선출했던 기록부터 외국의 추첨 민주주의의 역사가 나와 있다. 여기에 덧붙여 저자는 의원 1명에 시민의원단 49명을 뽑아 의원이 의원단과 소통하면서 정책을 제안하자고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참여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셈이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어렵겠지만, 지방선거, 그중에도 기초의원 정도는 지금 당장 시도해볼 만하다. 월정 보수는 없애고 회기에 회의 참석비와 의정 활동에 필요한 경비만 지급한다면 뜻있는 지역주민이 참여할 것이다.추첨을 하면 세금도 절감될 뿐 아니라 뜻있는 시민이 정치 참여가 활성화될 것이고, 지역 자치를 위해 제대로 일할 의원이 선출될 것이다. 허황하다 손사래 치지 말고, 일상의 작은 모임부터 시도해보자. 그렇게 살맛 나는 참여민주주의를 만들어 보자.

2022-05-22

씀바귀, 도심에 살다

강길수 수필가 보도 가에 흐드러진 붉은 장미꽃이 사람 마음을 흔든다. 뉘라서 저 장미꽃들의 향연에 취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내 시선은, 낮은 곳 구석진 곳에서 또 다른 오월을 밝히고 있는 쪼그만 노랑 꽃에 더 머문다.내일이면 생명 찬란한 5월도 하순으로 접어든다. 한낮의 햇빛이 따갑다. 보도 곁 잔디잎들은 절반쯤 누렇다. 가뭄 타나 보다. 그런데 잔디 사이에서, 이 목마름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노란 꽃들이 활짝 웃고 있다. 바로 씀바귀꽃이다. 잔디밭에 더부살이하면서도, 씀바귀는 움츠러들거나 가물 타지도 않고 해맑은 얼굴로 모두를 반긴다. 잔디도 씀바귀를 한 식구로 받아들여 사는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도 다정하게 보일 수 있겠는가.그뿐 아니다. 도심의 씀바귀는 정원에서, 보도와 담벼락 사이에서, 보도블록 사이 틈에서, 심지어 슬래브 집 옥상 구석 등 척박한 곳에서도 잘 살아내며 꽃피우고 있다. 겉보기에는 잎과 줄기와 꽃도 부드럽고 연약하기만 하다. 하지만, 강인하다. 저 강인한 생명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씀바귀의 잎과 줄기 뿌리까지 모두 다 식용으로 또는, 약재로 쓰는가 보다.씀바귀는 흰 꽃이 피는 종 등 비슷한 몇 가지가 있으나, 모두 같은 용도로 쓰인다. 사람이 먹으면 혈관 건강, 항암효과, 간 기능개선, 면역력 강화, 노화 지연 작용을 한단다. 또 골다공증 예방, 빈혈 방지, 위장 건강, 당뇨 예방, 신경안정 같은 역할도 한다고 한다. 만병통치약 같다. 알고 보니, 씀바귀는 사람에게 무척 이로운 보물이었다.어느 날, 꽃 지고 여문 씀바귀 씨앗은 갓털 비행기에 타고 바람 따라 도심까지 날아왔으리라. 바람과 땅, 건물과 가로수, 풀, 도로 등 도시의 온갖 것과 합심하여 흙이나 먼지가 있는 틈과 공간에 착륙했을 터이다. 절망스러운 도심의 척박한 환경을 꿋꿋이 이기며 싹터 자라나, 앙증스러운 노란 꽃을 많이도 피워낸 씀바귀….씀바귀는 어찌하여 도시로 분가했을까. 푸른 산과 들, 냇가, 강가 다 두고 깡마른 도시의 구석구석으로 와 정착한 이유는 뭘까. 단순히 바람 타고 날아와 물리력으로 내려앉은 게 전부일까. 그렇지 않으리라. 자연현상 하나도 그 원인과 과정, 결과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메시지를 지니게 마련이니 말이다. 하면, 도심 곳곳 하찮게 보이는 장소에 퍼져 나지막하게 자라는 씀바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2022 지방선거 공식 운동 기간이다. 선거를 앞둔 기간에, 웬일로 눈길이 자꾸 노란 씀바귀꽃에 가는 걸까. 도시의 낮은 곳, 구석진 곳 혹은, 다른 풀, 나무들과 어우러져야만 살 수 있는 곳에 태어나 자라나서 촛불처럼 어둠을 비추는 얼굴들. 연약해 보이는 몸으로 척박한 환경 이겨내고 꽃피워 5월을 밝히는 씀바귀. 태생이 사람이나 초식동물을 위해 온몸을 바쳐 희생하여 자기를 먹는 자를 살리는 존재….문득, 노란 씀바귀꽃 얼굴이 바람에 나부끼며 수줍은 아이처럼 무슨 말을 하는 것만 같다.“그래요. 풀뿌리 민주주의의 일꾼들은 우리 씀바귀 같아야만 해요”라고….

2022-05-22

풀뿌리 민주주의

우정구 논설위원 풀뿌리 민주주의란 의회제에 의한 간접 민주주의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주민이 직접 정치에 관여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뜻한다. 1935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이 말이 처음 사용됐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기초로서 지방자치를 의미하는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우리나라는 1952년 지방자치를 처음으로 시작했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중단됐다. 이후 30년만인 1991년 군의회와 시도의원에 대한 선거가 다시 시작됐고, 1995년부터는 기초단체장, 시장·도지사 선거가 시작되면서 전면적 지방자치가 부활했다.6·1 지방선거가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전국에서 17명의 광역단체장 및 교육감, 기초단체장 226명, 광역의원 779명, 기초의원 2천602명을 뽑게 된다. 그야말로 지방의 살림살이를 맡게 될 지역일꾼에 대한 지역민의 선택이 있을 예정이다. 새롭게 뽑힐 지역일꾼들이 지역을 위해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지역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방선거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전례없이 무투표 당선자가 많이 나와 김빠진 선거가 됐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3명의 기초장과 40곳의 시도 광역의원이 무투표 당선됐다. 그들의 공약이나 자질을 검증할 여지조차 없어 풀뿌리 민주주의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는 평가도 나온다.특히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80여일 만에 열리는 지방선거가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동시에 실시됨으로써 대선 연장전 성격마저 짙어 지방선거의 참뜻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지역주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칠 풀뿌리 민주주의의 참뜻을 살릴 지역민 현명한 선택이 있어야 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5-22

포항에 다녀와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 살다 보면 의지와 무관하게 일이 겹치는 수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중얼거린다. 참, 재미있네. 그런 유쾌한 일이 지난주와 그 전주에 있었다. 2주 전 금요일 오후에 포항으로 승용차를 몰았다. 30년 인연을 맺어오는 졸업생을 찾아가는 길이다. 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집을 구한 그가 집을 말끔하게 수리하고 난 다음 나를 초대한 것이다.나는 가끔 내 집을 찾아오는 그와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이번에는 내가 그의 집을 찾아간 게다. 그가 안내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식탁에서 예의 정담을 이어간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행복한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좋은 사람과 늦은 시각까지 격의 없이 대화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일은 얼마나 우리를 평온하게 하는가?!지난주 금요일에는 다섯 사람이 포항에 간다. 집에서 10미터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자리하고 있는 해변이다. 죽도시장에서 준비한 광어회와 멍게, 전복이 돼지고기와 더불어 차례로 상에 오르고, 선선한 바닷바람이 운치를 돋군다. 흉중에는 사심이 없고, 대화는 미리 설정한 방향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오랜만의 양주가 내장을 간질이고, 바다 건너에서 반짝이는 등불이 언젠가의 은성(殷盛)한 추억을 소환한다.옥상에서 거실로 자리를 옮긴 그들이 노래를 청한다. ‘그래, 대구에서 가져온 기타와 노래책이 있었지.’ 악보대(樂譜臺)가 없어 종이상자로 대신하고, 슬로우 고고와 트로트, 왈츠, 스윙을 곁들여 가면서 예전 노래들을 하나둘 불러낸다.어떤 노래는 다 함께 부르기도 하고, 어떤 노래에는 내 경험에 기초한 작은 이야기가 덧대지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이 시나브로 흐르고, 우리는 세월과 인생과 술로 마음을 주고받는다.하필 금요일 오후와 밤에 포항에서 사람들과 인연과 추억과 시간을 함께한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잠시 포항을 더듬는다. 열일곱 살 고교 수학여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바다는 해병대 일일 입소(入所)에서였다.짠 남새가 넘치고, 가슴에 들이닥치는 바닷바람이 그렇게 상큼할 수 없었다. 얼마나 짠지 조금 먹어본 바닷물의 맛은 여전히 기억에 있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하면서 우리에게 담배를 권했던 까만 얼굴의 병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한다.일일 입소를 마친 이튿날 우리를 태우러 포항제철에서 15대의 버스를 해병대로 보내왔다. 고교 선배 한 분이 버스 한 대에 분승하여 포철을 돌면서 설명해주었던 놀라운 시간대가 핑, 하니 사라져간다.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 포철에 오면, 저기 서 있는 캐비닛 크기의 쇳덩어리를 주마. 얼만지 알아?! 삼백만 원이야.” 당시 고등학교 석 달 등록금은 6천 원이었다. 그런 추억을 안겨준 포항의 추억을 지난주에 새삼 돌이킨 것이다.세상의 인연은 의지만으로 엮이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누가 나에게 다가오는 게다. 그리하여 두 눈이 서로 마주치면서 인연은 시작된다. 포항의 낮은 속삭임이다.

2022-05-22

대나무꽃을 보았다

윤영대수필가 대나무가 꽃을 피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꽃을 보았다. 그것도 바로 우리 집 뒤뜰 작은 언덕에서…. 60~100년 만에 한 번 핀다는 그 ‘신비의 꽃’을 보았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다.기계 읍내를 조금 벗어난 ‘소금실’이란 한적한 마을 안쪽에 작은 집 한 채를 갖고 있다. 퇴직 후 조용히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면서 마음을 닦으려고 마련한 집인데, 봄이면 예쁜 꽃들이 피고 특히 울창한 대나무 숲은 사철 푸른 잎새의 기운을 불어주는 곳이다. 그런데 초록의 장막을 높이 두른 듯 하늘대던 대나무 숲이 작년 봄, 이맘때쯤인가 왠지 생기를 잃고 눈에 띄게 누렇게 변해갔다. 5월이면 초록색이 더 짙어 보여야 하는데 엷은 연두색이었다가 누렇게 또 갈색으로 변해갔었다. 비탈진 언덕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사군자(四君子)를 그릴 때면 힘있게 표현되는 잎들 대신에 털이 부숭숭한 모습이다.대나무는 뿌리가 땅속으로 뻗으며 번식하는 것이기에 어디서 새로운 품종이 기어들어 왔나 염려도 되고 갑자기 무슨 병이 들었나 하고 의심하며 바라만 봤다. 그런데 해가 지나고 이번 봄에도 새잎들이 돋아나지 않아서 가까이 가보니 줄기도 누렇게 말라서 모두 죽어가고 있었다. 몇 개를 베어 눕혀보니 보리가 마디마디 엉겨 붙은 듯 잎새가 이상하다. 뭘까? 하고 검색을 해보았다. 대나무꽃이라고 한다. 아! 대나무도 꽃이 피는가? 처음 듣는 이야기고 또 꽃이라면 예쁘고 올망졸망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전혀 아니다.대나무는 외떡잎식물로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인데 목질이 단단하여 나무라고 한다. 특히 대나무가 한번 꽃을 피우면 그 줄기와 땅속뿌리가 죽고 따라서 숲 전체가 죽게 되는데, 이후 숨은 눈이 자라서 다시 죽순을 올리고 숲 회복에는 10년 이상 걸린다는 사실도 알았다, 땅속뿌리로 번식하니 씨앗이 필요 없겠지만 자연현상으로 또는 토질환경으로 영양분이 모자라서 더 자랄 수 없을 때 꽃피우고 씨앗을 퍼뜨린다는 것이라니 생존의 본능일까. 이렇듯 한 번 꽃피우고 죽기에 꽃말은 정절, 지조, 절개 등이지만 우리는 두 가지 정반대의 해석을 택하고 있다. 하나는 번식과는 무관하게 수십 년 만에 개화하여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반면에 꽃피면 한꺼번에 모두 죽어 숲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재난을 염려하는 말들도 있다. 대나무 꽃에 대한 운명의 해석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의 하나이고 온실가스 흡수량도 소나무의 약 3배이며 다양한 건강효과를 우리 몸에 준다고 하니 대나무꽃을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보자. 옛날 질병과 가뭄을 사라지게 한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전설처럼, 대나무꽃이 무리지어 노래하니 이제 코로나 역병도 사라질까. 꽃 지면 열매도 맺히리니 그 먹이 찾아 봉황도 날아오겠네.근래 전국 곳곳에 대나무꽃이 핀 소식이 들린다. 국가에도 가정에도 좋은 일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2-05-19

상식의 재건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25일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는 1차로 국민운동을 실천해야 되는 몇 가지 사항을 발표하였다. 우리 어린이가 꼭 알아야할 일은 ①아침·저녁 인사에 ‘재건합시다’를 불러야 되며 ②농사 돕기를 서로 권하고 ③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④산과 들을 잘 가꾸고 ⑤푼돈을 모아 저금을 하며 ⑥교통질서를 잘 지키고, 버스나 전차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나 앓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등의 운동을 일으키게 하자는 것이다.” 1961년 7월 30일 자 부산일보의 기사다. 아마도 195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기억을 할 것이다.물론 ‘재건국민운동’은 어린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운동이 아니었다, ‘재건국민운동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복지국가를 이룩하기 위하여 전 국민이 민주주의이념 아래 협동단결하고 자조자립정신으로 향토를 개발하며 새로운 생활체제를 확립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7가지 실천요강은, 용공중립사상의 배격, 내핍(耐乏)생활 실천, 근로정신 고취, 생산 및 건설의식 증진, 국민도의 앙양, 정서순화, 국민체위 향상 등이었다. 구체적인 세부항목에는 민족긍지의 앙양, 수입 내 지출, 창의력 앙양, 협동적 생산활동, 부정부패 배척, 국민단합, 전통계승 등을 담고 있었다.얼마 전 텔레비전으로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보다가 참 오랜만에 ‘재건’이라는 말을 들었다. “저는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혁명공약을 연상케 하는 이 말은 지금의 시대상황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초에 쓰였던 재건이라는 말이 지금 다시 소환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 지난 9일에 퇴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다짐한 여러 공약들 중에 단 한 가지만을 달성했다는 게 과반수 국민의 중론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공약이 그것이다. 그 ‘한 번도 경험하니 못한 나라’는 한마디로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나라였다. 그릇된 이념으로 경제와 외교를 망친 것도 모자라 법치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정권이었으니, 나라를 정상화한다는 의미의 재건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한 형편이다. 물론 60년 전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으니 이 시대에 필요한 재건운동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새 정권은 지나친 의욕이나 영웅심으로 대단한 업적을 이루려는 것보다는 상식을 회복하는 일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거짓과 위선, 조작과 공작, 포퓰리즘과 프로파간다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내로남불, 후안무치, 적반하장, 자화자찬이 상식인 양 횡행하는 나라를 바로 잡으려면 대통령부터 영웅이나 혁명가가 아니라 건강한 상식을 가진 진솔하고 소탈한 인품이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진정성으로 국민 앞에 서기 바란다.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를 고치는 것 못지않게 무너진 상식을 재건하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2-05-19

훈민정음 넥타이

우정구 논설위원 넥타이는 남성 정장패션의 완성이다. 특별하고 중요한 날이면 남성은 넥타이를 매야 상대에 대한 최상의 예를 갖추는 게 된다는 것이 통상의 인식이다.넥타이는 1600년대 루이 14세를 호위하기 위해 프랑스 왕궁으로 간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목에 착용했던 비단 천 조각인 크라바트(cravat)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탈리아어로 넥타이를 크라바트라 부른다.당시 용병들의 목에 맨 크라바트는 전쟁에서 무사 귀환할 것을 바라는 아내와 혹은 애인이 부적처럼 목에 걸어주었던 천이다. 루이14세가 관심을 보이면서 프랑스에서는 어느덧 유행처럼 번져 옷 장식이 됐고, 영국으로 건너가서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바뀌어 넥타이로 불렸다고 한다.한동훈 신임 법무장관이 취임식 날 매고 등장한 넥타이를 두고 네티즌 사이에 화제다. 깔끔한 그의 옷차림과 잘 매치된다며 넥타이 제품에 대한 품평도 이어졌다. 그가 맨 넥타이는 조선 세종 때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인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이 디자인된 제품이다. 시중 유사제품 가격이 9천원짜리로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서는 “명품 부럽지 않다”는 댓글까지 달리며 화제를 낳았다.전 정권 아래서 네 번이나 좌천당했다는 한 장관에 대한 관심은 넥타이 말고도 그의 취임식 동영상 조회에서도 입증됐다. 장관 취임식 조회 100만회는 아주 이례적이다.특정인의 넥타이 하나에도 네티즌이 열광하는 것은 온라인 문화의 특성이다. 그러나 한 장관에 대한 관심은 특정인에 대한 관심을 넘어 사회적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그의 향후 움직임에 따라 나타날 네티즌의 반응이 사뭇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5-19

아! 임을 위한 행진곡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지난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진풍경이 벌어졌다.보수와 진보세력은 물론이고 지난 10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까지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함께 목청높여 불렀기 때문이다. 기념식 말미에 의자에 앉아 있던 윤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윤 대통령은 양옆 참석자들과 잡은 양손을 반주에 맞춰 힘차게 아래 위로 흔들며 노래했다.윤 대통령의 왼쪽엔 박병석 국회의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박지현·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여영국 정의당 대표 등이 나란히 섰다. 이준석 대표와 박지현·윤호중 위원장, 여영국 대표는 정면을 응시한 채 주먹 쥔 오른손을 어깨높이로 들고 아래위로 흔들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종섭 국방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도 양손을 잡고 함께 흔들며 제창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김한길 인수위 국민통합위원장 등도 행진곡을 입모아 불렀다.과거 보수 정부에서 이 노래를 식순에서 제외하거나 참석자가 다 함께 부르는 제창 대신 합창단 합창으로 대체하던 것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1년 백기완 시인의 시 ‘묏비나리’를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어 가사로 만들었고,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전남대학생 김종률이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전남도청에서 숨진 윤상원과 1979년 겨울 노동 현장에서 들불야학의 선생으로 일하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작곡한 민중가요다.80년대 대학을 다녔던 필자 역시 시위·집회때면 ‘애국가’인 것 마냥 목청높여 불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되는 가사는 당시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서 민주화를 주장하는 대학생들의 애국심을 한껏 고양시키곤 했다.그래서였을게다. 80년대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이 노래는 ‘불법 테이프’를 통해 널리 퍼졌고, 2000년대 이후에는 촛불집회를 비롯한 대중 집회에서 널리 불렸다.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른 것은 5·18정신을 헌법가치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혔다. 국민통합을 위해 바람직한 행보다.다만 일각에서는 5·18민주화 운동 당시 군부정권의 지시에 따라 진압에 나섰다가 숨진 군인과 경찰들이 학살자로 매도되선 안 되며, 이 문제에 대한 재조명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멀고 험한 통합의 길을 열고 있다.

2022-05-19

내 가슴이 뛰니 숭어도 뛰고

정미영 수필가 봄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순천만으로 향했다. 차창 넘어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여행의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여행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 마음은 끊임없이 너울댔다.상춘객들이 많아 예정보다 한 시간쯤 더 걸려 광양에 다다랐다.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가까운 음식점으로 찾아들었다.메뉴는 그 유명한 광양불고기였다. 불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여행지에서의 들뜬 기분 때문이었을까,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고기가 살살 녹아내렸다. 색다른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여행의 멋이지만, 그 고장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리라.남편은 반주로 지역 특산품인 매실동동주를 곁들였다. 매실동동주는 섬진강변의 매화향이 빚어낸 술이라고 한다. 섬진강변의 매화. 봄이면 매화축제로 강 마을이 온통 떠들썩하다는 그 꽃! 봄바람에 하르르 흩어지던 꽃잎이 술잔에 아른거렸다. 나도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 한 잔의 유혹에 빠졌으리라.드디어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띄었다. 어찌 사람뿐이겠는가. 맑은 하늘 아래 살랑살랑 흔들리는 초록나무의 몸짓 또한 아름다웠다. 드디어 대대포구에 도착했다. 자연이 만든 생명의 정원에 도착하니, 나도 모르게 야호 소리가 나왔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갈대밭의 풍경이 장엄했다. 갯바람에 물결치는 갈대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구의 갈대밭 저편에는 칠면초 군락지도 들어서 있었다. 계절마다 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칠면초는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내 눈이 호사하는 순간이었다.갈대밭을 한 바퀴 돌아보기 위해 배를 탔다. 갯벌에는 새들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앉아 있었다. 갯벌에 내리쬐는 햇볕을 즐기는 듯 갈대들의 수런거림에 귀를 기울이는 듯. 잘 보전된 갈대 군락은 새들에게 은신처, 먹이를 제공하여 철새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국제보호조인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와 같은 조류 외에도 저어새, 황새, 흑부리오리, 민물도요 등이 서식하고 있단다.그때 갑자기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새떼가 아니라 나비 떼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 아름다운 비상(飛上)! 역동적인 몸짓이 황홀했다.물살을 가르며 배는 신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 배 뒷머리에 있던 남편이 소리쳤다.“물고기가 날아올랐다!”이게 무슨 소리인가. 뒤돌아보니 숭어였다. 장정 팔뚝만한 숭어가 배 안에서 펄떡거렸다. 숭어도 물속에서 내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을까? 여행의 기쁨으로 내 가슴이 뛰니 숭어도 덩달아 뛰어올랐는가? 숭어가 힘이 좋아 간간히 그렇게 뛰어든다며 선장은 우리에게 숭어를 선물로 주었다. 갑자기 우리에게 뛰어든 숭어는 이번 여행의 느낌표였다. 아주 크고, 아주 힘찬 느낌표….여유롭게 흐르던 물결 위로 햇살이 저물었다. 갈대밭 틈새로 땅거미가 내려앉자, 갈대도 물빛도 변했다. 장소에 따라 감흥도 달리하는 법이다.이번에는 마치 내가 순천만 갈대라도 된 것처럼 석양의 붉은 노을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 수 있도록 두 팔을 힘껏 벌렸다. 감동의 전율이 흘렀다. 물아일체가 이런 것이던가.저녁 식사로 재첩국을 먹었다. 가마솥에서 뽀얗게 우러난 재첩국물이 식욕을 돋게 했다. 숟가락 대신 대접을 들고 후후 불어 한 모금 마시니 담백하고 시원했다. 그 맛 그대로 집에 가져가고 싶어 포장을 부탁했더니, 인심 좋게 몇 국자 더 넣어주셨다. 사장님의 정까지 더해진 뜨거운 국물에 가슴까지 훈훈해졌다.여행은 삶을 따뜻하게 해준다. 혼자만의 여행도 좋지만, 나는 가족끼리의 여행을 좋아한다. 같은 추억을 만들어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다. 이번 순천만 여행은 다른 날보다 기대 이상으로 큰 수확이었다. 내 마음밭이 순천만의 갈대밭처럼 넓어진 느낌이었다.

2022-05-18

‘해양레저스포츠’, 도약의 시대가 열리다

보트쇼(Boatshow) 시대가 개막했다. 올해 3월 ‘경기국제보트쇼’가 열린 후 지난 달 ‘부산국제보트쇼’까지 이어지면서 해양레저시대의 부흥을 예고했다.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린 경기국제보터쇼에는 3일간, 5만 5천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아시아 3대 보트쇼’로 불리는 경기국제보트쇼는 정부 주최 전시회 중 최초로 국제전시연맹(UFI) 인증을 획득한, 한국 대표 보트쇼다. 올해는 한국낚시박람회와 동시 개최로 취미낚시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부산에서 열린 보트쇼에서는 전시관람과 현장체험행사가 동시에 진행됐다. 해양레저인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춰, APEC 나루공원의 수영강변에서 무료 보트투어가 열렸다. 업체관계자들의 비즈니스 공간에서 벗어나 해양레저관광의 저변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부산국제보트쇼 역시 관람객들의 높은 참여로 마리나 일대는 북적이는 인파로 성황을 이뤘다.소득 3만 불 시대가 열린 이후 해양레저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레저보트(동력수상레저기구) 등록대수는 2007년 2천400여 척에서 2020년 3만대를 기록했다. 레저보트 조종면허를 취득하려는 이들도 급증해, 2020년 신규로 면허를 획득한 인원만 2만 명에 달했다. 모터보트와 요트, 카약과 서프보드 등 기구 역시 다양하다. 많은 이들이 수상레저활동을 위해 바다로 향하고 있는 셈이다.수상레저활동 중 으뜸은 서핑이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 서핑 붐이 일면서 여름철 해수욕장 등을 중심으로 서핑객이 몰리고 있다. 부산광역시와 부산관광공사가 실시한 해양레저 체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체험객의 30%가 서핑을 즐기며 요트와 워터플레이그라운드, 패들보드가 그 뒤를 이었다. 체험객 중 60%이상이 20,30대이며 40대가 17%, 10대 이하가 12%를 차지했다. ‘혼자’, ‘수시로’ 즐긴다는 응답도 높았다. 코로나 이후 단체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나타난 현상이다.다만 이 같은 우리의 해양레저활동은 외국의 사례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과거에 비해 늘긴 했지만 수상레저활동을 즐기는 인구는 전체의 16%에 불과하다. 레저선박 1척당 인구비중도 1천788명에 달한다. 이는 미국 25명과 일본 444명과 비교해 낮은 수준으로, 해양레저보다는 해양관광에 방점이 찍힌 결과로 보인다. 우리의 레저문화가 해수욕과 해변경관 감상, 수산물 시식 등으로 아직은 체험활동보다는 관광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이다. 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었지만 일상의 문화로까지는 스며들지 못했다.해양사고도 해양레저활동 저변이 확대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사실 육상과 달리 수상레저는 역동적인 만큼 사고위험이 높다. 구명조끼착용 의무화와 구명뗏목 사용법 익히기 등의 해양사고예방법이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다. 해양레저인 사이에도 아찔한 순간의 경험담이 심심찮게 들린다. 요트 등 레저보트와 일반선 사이의 충돌 위험이 대표적이다. 세일링 요트의 경우 동력이 약해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너울성 파도가 치면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요트가 부산항 인근까지 표류해 항만청 소속 직원의 경고를 들어야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1만5천 TEU 상선의 압도적인 크기에 놀라고,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요트체험을 마쳤지만 위험의 공포는 육상과는 결이 달랐다.실제 레저선박의 사고발생률도 증가 추세다. 2016년 543건이었던 사고 건수는 2020년 923건으로 늘었다. 사상자 역시 5년간 253명을 기록했다. 레저선박의 등록대수와 해양사고발생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큰 폭의 변화는 아니지만 절대 적은 수치도 아니다. 더욱이 인적과실이 대부분의 원인이라 해양레저인들의 해양사고 예방교육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정현미작가 코로나 팬데믹의 종식으로 해양레저활동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움츠러들었던 여행·관광 수요가 폭발해 산과 들, 바다로 인파가 몰린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발표한 ‘휴양과 레저, 문화가 공존하는 마리나’보고서는 코로나 이후 일상이 된 거리두기가 해양레저활동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부산관광공사가 체험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혼자’,‘수시로’ 즐긴다는 분석과 맥을 같이 한다.곧 시원한 물줄기를 가르며 해양레저를 즐기는 계절이 올 것이다. 몇 년 째 폐장을 결정했던 해수욕장들도 올해는 미리 분주하게 관광객 맞이에 나서고 있다. 레저 활동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호모 루덴스(유희적인 인간)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체험에 나서는 호모 루덴스는 실제 다양한 창작품을 낳았다. 많은 이들이 해양레저활동에 나서는 근저에는 아마도 호모 루덴스의 에너지를 품고 있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코로나에 막혀 있었던 루덴스의 에너지가 올해는 마음껏 분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22-05-18

이해의 선물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최근 어린이를 비하하는 듯한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미숙한 초보자를 지칭하는 ‘~린이’라는 말을 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 초보자는 ‘주린이’, 요리 입문자는 ‘요린이’ 등으로 부르는 식이다.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잼민이’로 폄하하기도 한다. 올해로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았지만 어린이에 대한 인식은 나아진 것이 없는 듯하다.1923년의 첫 번째 어린이날에 방정환 선생은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그의 목소리는 백 년이 지난 지금의 어른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된 인격체인 아동을 ‘~린이’와 같이 비하하는 것에 대해 개선 의견을 낸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우리는 양성평등의 시각을 강조할 때 ‘성인지 감수성’이란 말을 사용한다. 친환경적인 관점을 나타낼 때는 ‘생태 감수성’이란 용어를 쓴다. 그렇다면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기 위해서 ‘동심 감수성’이라는 말을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채널A에서 방영되고 있는 육아 예능 프로그램인 ‘금쪽같은 내 새끼’는 동심 감수성으로 많은 가정에 힐링을 주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오은영 박사는 아동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서 눈높이 상담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미혼인 2030세대에게도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불안정했던 유년기에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금쪽이 스토리’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치유받고 있는 것이다.미국의 아동문학가인 폴 빌라드는 ‘이해의 선물’이란 단편소설에서 동심 감수성을 잘 보여주었다. 이 소설에서 어린 주인공인 ‘나’는 버찌씨 여섯 개로 사탕을 사려고 한다. 사탕 가게 주인인 위그든 씨는 사탕을 공짜로 주고 2센트의 거스름돈까지 내준다. 돈의 개념을 모르는 순진한 동심이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어른이 되어 열대어 가게를 차린 주인공은 동전 몇 개를 내밀면서 값비싼 열대어를 주문하는 어린 남매를 만난다. 주인공은 위그든 씨가 물려준 유산을 떠올리며 2센트의 거스름돈과 함께 열대어를 남매에게 선물한다. 기억에 저장되어 있던 이해의 선물이 현재로 소환된 것이다.금년은 어린이날 100주년과 함께 성년의 날 50주년을 함께 맞은 뜻깊은 해이다. 성년의 날은 성숙한 사회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 주기 위해 1973년에 제정되었는데, 1985년부터 오월 셋째 월요일에 기념하고 있다. 성년이 된 청년들이 저마다 이해의 선물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갖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강할까 생각해 본다.이해의 선물은 부모나 스승이 주기도 하지만, 소설에서처럼 ‘누구나’ 베풀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이해와 배려를 청소년기에 한 번이라도 경험했느냐일 것이다. 이해의 선물은 받아 본 사람이 다시 전해 줄 수 있는 속성을 갖고 있다. 어린 세대에게 평생 간직할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기성세대의 고민이 깊어지는 오월이다.

2022-05-18

MZ세대에서 베이비붐 세대로

김규인수필가 “필요 없는 것을 왜 사?”제주에 사는 딸아이가 장 보러 가서 하는 말이다. 딸아이의 살림살이는 간단하다. 가구고 생필품이고 필요한 것만 산다. 그래서인지 필요한 것만 갖춘 아이의 단출한 살림살이와 수십 년 묵어 창고마다 가득한 나의 것은 비교가 된다. 밀레니얼(M) 세대인 딸아이는 컴퓨터에 익숙하다. 놀이기구를 즐겨 타고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고 활동적으로 취미생활하고 책을 읽고 글도 쓴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을 싫어하고, 공정하지 못한 일에는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SNS를 즐겨하고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산다.세컨슈머는 ‘제2의(second)’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다. 현재의 편리함보다는 지속 가능한 삶에 초점을 맞추는 소비자를 뜻한다. 소유보다는 공유에 관심이 많고 중고 거래로 저렴하게 물건을 산다. 중고 물건을 거래하는 당근이나 중고나라의 성장을 이끄는 것도 MZ세대가 중심이 된 세컨슈머다. 투자에도 관심이 많아 중고 거래를 통해 재테크를 한다. 불필요한 물건은 버리지 않고 내다 판다. 포장한 빈 박스도 팔 것을 염두에 두고 모아 둔다. 싸게 물건을 구매하여 중고 거래 플랫폼에 올려 되파는 리셀이 성행한다. 그들의 영향으로 중고 거래 시장을 이용하는 연령층도 어린 학생들에서 60대 이상으로 그 폭이 넓어진다.코로나19로 일회용품의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일회용품 배달을 위해 택배가 활성화된다. 늘어난 쓰레기는 연료로 쓰는 것은 태우고 나머지는 쓰레기 매립지를 메운다. 재활용 비중은 너무나 낮다. 쓰레기가 냇가를 덮고 강을 덮더니 태평양 한가운데에 플라스틱 섬을 이룬다. 사람의 손만 닿으면 자연은 어김없이 파괴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쓰레기 산이 국토를 잠식하고 있다. 매년 쏟아지는 쓰레기를 받아내느라 악취를 풍기면서도 사람들의 요구에 자연은 말없이 따른다. 이제는 자연 보전을 위한 사람들의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활동도 늘어난다.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이 그러하고 스킨 스쿠버들의 수중 정화와 집 주위를 청소하는 착한 비질이 그러하고 자신의 쓰레기는 되가져오는 작은 손길이 늘어난다. 게다가 세계적인 비영리 환경보전기관(WWF) 활동은 활발하다.누군가는 이러한 노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끌어주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의견을 모으고 건강한 환경보호 정책을 실행하고 언론은 부족한 부분을 계속 긁으며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은 환경보호에 동참하며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 자가용을 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물을 아껴 쓰고 요리할 때는 뚜껑을 닫고 육식보다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재는 반납하고 중고나 재활용품의 사용을 폭넓게 늘려야 한다. MZ세대에서 시작한 작은 실천이 X세대를 거쳐 베이비붐 세대로 지속 가능한 활동으로 이어가야 한다.

2022-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