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여야의 극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팬덤 정치와 진영정치를 넘어 상호 저주의 극한 정치로 치닫고 있다. 현행의 소선거구제는 승자 독식으로 선거의 대의성을 상실했으나 대통령 5년 단임제와 결합하여 극한 대립 정치의 온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러한 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으로 선거구 개정문제가 제기되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단의 만찬에서 대통령이 먼저 선거구 개편과 개헌 문제를 제안하였다. 무척 환영할만한 일이다.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이에 적극 호응하면서 앞장서고 있어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눈만 뜨면 야당의 이재명 검찰 소환과 장외 투쟁, 여당의 윤심 팔이 경쟁과 이전투구로 한 치 앞을 전망하기 어려운 정국이다. 여야 모두 승자 독식과 사표 방지를 위한 선거법 개정의 총론에는 합의하겠지만 각론에서는 수많은 장애물이 가로 놓여 그 길은 멀고도 험하다.
우선 예상되는 장애물부터 살펴보자. 중대 선거구제로의 개정론자들은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우선 지역구 의원은 그대로 두고 비례 대표 의원 수를 20∼30명을 증원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의원들이 적극 찬성할지 몰라도 이를 보는 국민의 여론은 싸늘하다. 싸우는 동물국회를 넘어 일하지 않는 식물국회로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강한 결과이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대두되고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방편으로 의원 정수는 늘리되 국회의원의 예산 총액은 임기 중 동결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이러한 약속이 온전히 지켜지리라고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지금까지 의원 세비 인상 등 그들의 특혜 안에는 여야 구분없이 찬성했기 때문이다. 최근 지방의회 지방의원들마저 국회의원들의 관행을 본받아 수시로 의정비를 인상하고 있다. 의원 정수 증원 문제는 국민적인 저항을 피하기 어려운 첫 번째 장애물이다.
중대선거구제의 구체적 선거구 확정내용은 의원들의 이해가 충돌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소선거구 제하의 승자 독식 선거는 무려 48.5%의 사표로 인해 선거의 대표성과 효능 성마저 상실하였다. 1등뿐 아니라 여러 명의 당선자를 동시 선출하는 중대선구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매우 타당한 제안이다.
그러나 선거구 개정 문제는 의원들의 정치 생명이 직결된 문제로 그 해결이 결코 쉽지 않다. 현직의원들이 자기 지역구를 포기하고 선거구 조정에 선뜻 찬동하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천이 바로 당선으로 연결되는 영호남 의원들이 이를 수락할지는 의문이다. 일부에서 해법으로 도농 복합 선거구제를 제안하지만 이 역시 현대판 게리맨더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현직 의원들의 기득권 확보는 국회 정개특위마저 마비시킬 수 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선거구 개편만이 다당제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과거처럼 위성 정당, 사이비 정당, ‘사꾸라’ 정당의 양산을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이번 선거법 개정과 동시에 제기되는 헌법 개정안제안은 선거법 개정 자체를 무산시킬 가능성이 높다. 헌법 개정의 골자는 현행 헌법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개정하여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37년 전 만든 87년 헌법은 국민 여론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개정의 당위성은 인정한다. 특히 1986년 국민소득(GNI) 286만원 시대에 만든 헌법이 4천200만원 시대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원론에는 찬성하지만 그 절차와 시기, 내용에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역대 대통령이 개헌문제를 제기했지만 성사되지 못한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여야가 극한 대립된 현 상황에서 선거구 개정 하나도 어려운데 개헌문제까지 첨가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 질 수밖에 없다.
현행 선거법 개정 시한은 4월 초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소선거구 폐지라는 선거법 개정 총론에는 찬성하면서도 각론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현실적으로 야당은 이재명 대표의 검찰 소환과 장외 투쟁 문제로 여당은 3대 개혁 관철 문제와 3월 8일 당대표 선출 문제로 선거구 개정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야는 우선 선거법 개정 문제를 큰 틀에서 4월 초까지 합의하고 세부안은 9월 정기 국회에서 통과하길 바란다. 선거법 개정과 개헌 문제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보다 여야 정치권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대통령과 정당 대표간의 대화의 채널부터 복원되어야 한다. 여야 정치 지도자 간의 대화가 순조로울 때 여야 정치권의 대결도 시민사회의 극한 대립도 완화될 수 있다. 선거법 개정은 여야가 국회에서 우선 합의하고, 헌법 개정문제는 내년 총선의 어젠다로 넘기는 것이 일의 순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