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다정함이 우주를 구하다

등록일 2023-02-06 18:44 게재일 2023-02-07 17면
스크랩버튼
다니엘 콴·다니엘 쉐이너트 감독<br/>‘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포스터.

우리의 삶은 숱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에서부터 맘에 드는 물건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신발을 신고, 약속을 할 것인가, 전화를 할 것인가 등등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시작해 무수한 선택의 과정을 통해서 오늘의 내가 있고 내 삶이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물론 그 선택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결과가 만들어졌을까.

선택은 의심과 후회로 이어진다. 현실의 삶이 불만족스러울수록 과거의 선택은 후회와 회한으로 남는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만약’ 내가 그 사람과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다른 전공을 선택했더라면, ‘만약’ 내가 다른 직업을 선택했더라면, 과거의 기억은 필연적으로 ‘만약’을 동반한다. A와 B라는 선택의 순간 A라는 세계를 살아가는 나와 B라는 세계를 살아가는 내가 각각의 우주 속에서 펼쳐진다. 다중우주(multiverse)다. 무수한 선택의 순간마다 분화되어 ‘만약’의 선택을 했던 내가 무한하게 존재하고 있는 우주. 우리의 우주에서 한 여자가(에블린)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를 뒤로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택시를 탄다. 그리고 미국에서 세탁소를 개업하고 딸을 낳고 때론 행복하게 때론 슬프게 살고 있었다. 이제는 중년 여성이 되어 노쇠한 아버지를 돌봐야하고,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과의 관계도, 커밍아웃한 딸(조이)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고,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세탁소를 압류당할지도 모른다. 대혼돈의 일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에블린. 그녀에게 다중우주의 질서를 깨뜨리며 등장한 악당 ‘조부 투바키’로부터 다중우주를 구할 히어로로 낙점되다.

에블린이 다중우주를 구할 영웅으로 선택된 이유는 다중우주에 존재하는 무수한 에블린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존재이기에 버스 점프(verse jump)를 통해 다중우주에 있는 또 다른 나의 능력을 빌려올 성장의 가능성이 가장 큰 존재이기 떄문이다. 이에 반해 조부 투바키는 다중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그녀의 존재를 체험하고 능력을 흡수한 존재로 더이상 살아갈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괴하기 위해 블랙홀 ‘베이글’ 안으로 같이 들어가자고 엄마 에블린을 끌어들인다. 히어로에 다중우주까지. 익숙한 소재다. 하지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전 지구, 전 우주를 파멸시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소멸하고자 하는 허무주의에 빠진 악당이 등장한다. 그리고 가장 능력이 뛰어난 영웅이 아닌 숱한 선택에서 후회의 선택을 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평범한 중년 여성이 위기에 맞선다.

허무주의와 현실주의의 대결이다. 무한에 가까운 다양한 삶을 경험했으며 어마어마한 능력을 소유한, 더이상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는 악당 조부 투바키는 에블린의 딸 조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다중우주를 넘나드는 히어로 영화의 기저에 가족의 이야기가 얹힌다. 조화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기존의 다중우주 히어로물에서 구조를 가지고 왔지만 그것들을 풀어내는 방법은 독창적이다.

시끄럽고 복잡하고 다양하게 펼쳐지던 것들은 구조(장르) 속에서 재해석되고 색다르게 재현되어 말끔하게 정리된다. 익숙한 것들을 비틀며 정신없이 펼쳐 놓았던 야단법석의 상황은 기상천외하게 진행되면서 뭉클하게 마무리된다. 무질서하게 펼쳐졌던 것이 지극히 평범하다고 느껴졌던 가치와 행위로 완결된다. 영화의 제목처럼 모든 것(Everything)과 모든 곳(Everywhere)에서 모든 순간(All at once)이 정신없이 펼쳐졌다가 놀랍도록 새롭게 자리잡는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우리 모두 다정해야 한다는 거야. 특히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때”라는 남편 웨이먼드의 대사처럼 마침내 ‘다정함’이 우주를 구한다. 이 영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정신없이 펼쳐진 것들을 어떻게 주워담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정함’을 무기로 감동적으로 허무함의 블랙홀을 무너뜨린다. /(주)Engine42 대표

김규형의 영화 읽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