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에서도 이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감염 취약 시설과 대중교통, 의료기관과 약국을 이용할 때만 제외하고 모두 완화됐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릴 때 전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던 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코로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는 것 외에도 거리마저 띄워놓았다.
겨울철 마스크 착용은 안경 쓴 사람에게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이다. 안경의 김 서림은 앞으로 가야 하는 사람의 시야를 방해한다. 그렇다고 안경을 벗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것이 어디 안경 쓴 사람뿐이겠는가.
생활의 불편은 그런대로 견딜 수가 있다. 많은 수의 사람이 생계마저 위협받고 목숨마저 잃는 것을 주위에서도 자주 본다. 이러한 어려움을 알기에 정부에서도 코로나의 추이를 보아가며 대책을 내어놓는다. 대표적인 것이 마스크 착용과 이를 해제하는 일이다.
2020년 10월 13일에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시행되고 작년 5월 2일에 50인 이상이 참가하는 실외 경기, 스포츠, 집회를 제외하고 마스크 착용을 완화했다. 9월 26일에 실외에서 마스크 착용을 전면 해제하고, 2023년 1월 30일에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도 일부 장소를 제외하고 권고로 전환됐다. 이제 남은 장소에서의 마스크 착용과 확진자에 대한 격리가 정부가 쥐고 있는 유일한 방역 카드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은 아직 마스크를 쓰고 있다. 거리와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많다. 말 그대로 정부의 조치는 권고이다. 장소와 상황에 따라 마스크를 쓰고 그렇지 않고는 개인의 몫이다. 그렇지 않아도 혹독한 시간을 보낸 우리에게 마스크를 벗는 것은 앞으로도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였지만, 여전히 주위를 맴돌고 우리의 아픈 기억은 각자의 마음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 주위에서 발생하고 희생자를 낸다. 미국의 변종은 그 세력을 확장하고 중국에선 확진자가 증가해 불안감을 더한다. 이를 막고자 중국 입국자에 대해 검사를 강화한 우리나라와 중국의 불편한 관계가 이어진다.
코로나 블루로 괜히 주위 사람을 경계하고 외부 활동은 줄어들고 스스로 무기력감에 빠져든다. 이에 따라 우리의 삶은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긴 시간 가늠하기 어려운 일을 겪었다. 되짚어보기조차 싫은 기억일지라도 어쩌겠는가. 우리는 다시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돌이켜보면 코로나 시기만큼 온전히 자신을 돌아본 시간도 없는 것 같다. 아픔이 크기에 그만큼 성찰의 깊이도 다르다. 신은 언제나 공평한 것 같다. 이렇게 온전히 자신을 돌아보고 남을 배려하는 숙련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신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를 벗고 환한 얼굴로 맞이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마주 보는 얼굴에서 남다른 깊이의 철학으로 숙성한 우리들의 참모습을 볼 수 있으니 기쁘게 맞을 일이다. 삶은 기쁨만 오지 않는다. 진정한 기쁨을 알기 위해 슬픔도 함께 오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