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는 켜켜이 쌓여온 삶이 있다. 오랜 세월이 묻어나는 역사적 자취가 현재 삶을 이어가는 생활 공간과 어우러져 은은하게 피어난다. 여느 고택이든 그러하겠지만 봉화의 만산고택은 특히나 목련꽃처럼 숭고한 정신과 자연 공간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고택의 은은한 아름다움은 한옥 구조를 이루는 나무 자재의 유려한 곡선과 다양한 지붕 모양에서도, 퍼즐처럼 맞물린 이음새에서도, 담장을 기준으로 나눠진 독립 공간에서도, 건물마다 걸린 오래된 현판에서도, 마당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만산 선생과 그 후손들의 삶에서도 고택 특유의 분위기와 어우러진 면을 발견할 수 있다.
만산고택은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산세가 깊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동길에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자태를 만날 수 있다. 집은 주인의 성품이 녹아난다고 했던가. 만산고택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은은한 목련꽃 향기처럼 선비정신이 음전하게 배어난다. 이 고택은 만산 강용(晩山 姜鎔·1846~1934) 선생이 1878년에 지었다. 그는 을사늑약(1905) 당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면서 이 고택에서 여생을 마무리했는데, ‘언제 다시 태양을 볼꼬?/죽음에 당하여 눈물이 턱을 타고 흐른다./하찮은 신하라서 갚을 길이 없으니/이 사무친 한을 뉘라서 알리요?’에서 알 수 있듯이 운명을 앞둔 순간에도 나라에 대한 걱정과 망국의 원통함을 내려놓지 못했다. 이후 그의 후손들 또한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고 투쟁하면서 이 고택에서 삶을 온전히 이어왔다.
고택의 공간은 크게 사랑채, 안채, 별당으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공간들은 까치발 높이의 토담으로 분리되어 독립성을 유지한다. 사랑채 공간은 예로부터 외부에서 찾아온 빈객을 위한 화합의 공간이다. 11칸 대문채를 포함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쪽 마당에 2칸 규모의 아담한 서실이, 정면 기단 위에 5칸 규모의 사랑채가 보인다. 고풍스러운 자태로 빈객을 맞이하는 만산고택의 사랑채는 역사를 되돌아보기에도 꽤 괜찮은 장소다. 네 면에 모두 기와가 얹어진 우진각 지붕의 서실에는 영친왕 이은이 8세에 쓴 ‘한묵청연’(翰墨淸緣, 종이나 책은 먹과 깨끗한 연분이 있다) 현판이 걸려 있고, 팔작지붕의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쓴 ‘만산(晩山)’ 현판 사본이 걸려 있다. 두 현판을 통해 당시 만산 선생과 왕실의 돈독함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만산고택은 사랑채와 안채가 합쳐져 ‘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사랑방과 대청, 그 뒤로 작은 마루방과 중방·골방이 ‘―’자형으로 대문에서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으며, 그 뒤편으로 ‘ ’자형 안채와 연결되어 정면 5칸 측면 8칸의 실질적인 생활 공간을 완성한다. 안채 공간은 사랑채 좌우로 완연한 담장을 두어 독립된 공간임을 명확하게 규정한다. 한옥 특유의 반개방형 구조상 안채로 통하는 문은 여러 곳이 있지만 정해진 대문은 측면에 있어 대문에서 바로 노출되지 않는다. 안채 대문은 곧장 4칸 규모의 안채 마당으로 이어져 있으며,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큰 방과 작은 방들·대청으로 구성된 공간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만 안채 마당은 사랑채 지붕이 높아 햇볕이 제한적으로 들어 좀 더 폐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뒷마당이 안채의 양쪽과 후면에 넓게 형성되어 있어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별당은 사랑채의 오른편 담장 너머에 넓고 독립된 공간을 독차지하고 있다. 담장의 작은 문을 통과하여 별당 공간에 발을 디디면 5칸 규모의 팔작지붕이 홀로 고고하게 서 있다. 별당은 대청과 온돌방·골방이 있고 무엇보다 넓은 마당이 건물을 휘둘러 감싸고 있어 자연 공간에 융화된 것처럼 보인다. 세월을 머금은 아름드리 춘양목 기둥과 손때 묻은 대청마루 그리고 듬직한 대들보가 조용하고 온화하게 ‘칠류헌(七柳軒)’이라 적힌 현판을 품고 있다. 빛바랜 세월을 머금은 이 현판은 구한말 위창 오세창(韋滄 吳世昌·1864~1953) 선생의 친필 편액으로 당시 국운을 걱정하던 만산 선생과 접빈객으로 드나들던 문사들의 교류를 짐작하게 한다.
다만 별당 칠류헌의 지붕은 완벽함이 주는 어색함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본래 한옥의 지붕은 착시현상을 배려하여 안허리곡과 앙곡이라는 곡선 기법을 적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붕은 유려한 곡선과 두드러진 꼭지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칠류헌의 지붕은 앙곡 기법만 적용되어 처마선이 시각적으로 잘못되어 보인다. 마치 고고한 선비의 기질과 인간다운 성품이 함께 피어오르는 것 같지 않은가. 숭고한 역사적 자취와 삶을 이어온 생활이 함께 공존하는 것처럼 지붕 하나에서도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든다.
만산고택은 겨우내 침묵하다 봄에 피어나는 은은한 목련꽃과 같다. 알면 보이는 한옥의 구조가 그러하고, 망국의 서러움을 품은 채 운명한 만산 선생의 남겨진 마음이 그러하다. 지금은 마당 곳곳에 아담하게 가꾸어진 야생화들과 나무들, 햇볕에 따끈하게 달아오르는 장독대에서 현재 고택을 살아가는 4대손 부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전통문화 체험’이란 주제로 맞이하는 여러 빈객 또한 고택의 은은하게 이어지는 삶에 자취를 남긴다. 145년의 만산고택에는 역사도 생활도 함께 어우러져 있다.
/최정화 스토리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