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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과 관동대지진

등록일 2023-02-20 19:47 게재일 2023-02-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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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홍덕구 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지난 2월 6일 새벽 4시 17분 36초, 튀르키예(터키의 새 이름) 남동부의 도시 가지안테프 인근에서 모멘트 규모 7.7의 강진이 일어났다. 이후 수차례의 여진이 이어지다가, 첫 지진 발생으로부터 9시간이 지난 시점에 가지안테프 옆 지방인 카흐라만마라쉬에서 규모 7.5의 강진이 또다시 일어났다. 이 대지진은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 및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 북부 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집계된 바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현지 시간 19일까지 4만6천명에 달한다고 한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은 거대한 천재지변이지만, 그 피해의 상당 부분은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 예방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에르진은 튀르키예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이지만, 이번 대지진으로 단 한 채의 건물도 무너지지 않고,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내진설계 및 시공이 되어 있지 않은 불법 건축물을 강력하게 규제한 시 당국의 방침 덕분이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인간의 힘으로 최소화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담이 이번 대지진을 대표해서는 안 된다. 위에서 언급했듯, 대지진이 일어난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은 시리아와 인접해 있다. 십 년 이상 이어진 내전에 시달리다 못해 국경을 넘은 전재민들로 인해 인구가 급증했기에 피해가 더 컸던 것이다. 4만6천여 명의 죽음은 대지진이라는 천재(天災)와 전쟁, 토건비리와 같은 인재(人災)가 중첩된 탓이다.

올해는 일본에서 관동대지진(1923년 9월 1일 발생)이 일어난 지 백 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이 지진을 우리는 ‘조선인 대학살’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일본인들이 식민지였던 조선에 대해 품고 있던 우월의식과 조선인들을 멸시하면서도 동시에 불온한 존재로 여겼던 감정에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가 불을 붙였고, 결과적으로 최소 수천 명에서 최대 1만 명 이상의 일본 거주 조선인이 죄 없이 살해당했다. 지진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도 막대했지만, 그 틈을 타 제국주의와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라는 인간의 이념이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촉발했다는 것이 더 끔찍하다.

그 후 백 년이 지났다.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그래도 인간은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으로 세계 각국의 구호대가 급파되었고, 민간 차원에서도 구호물자를 모으는 활동이 활발하다. 구조견 ‘토백이’의 ‘붕대 투혼’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민족, 인종, 종교, 정치적 입장 따위와는 상관없이 피해자를 돕는 마음이다. 튀르키예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형제의 나라’라는 이념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도 대자연의 분노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 도와야만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반도에서도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인간이 설정한 국경을 개의치 않는다. 서로 돕는 마음에도 경계가 있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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