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갔다. 10월의 선선한 바람과 온화한 가을볕이 좋았다.
아야 소피아 성당,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그랜드 바자르, 예레바탄 지하 궁전, 갈라타 타워 등 이름난 관광지들을 다녔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이틀째 날 시내 곳곳을 걸어 다니고 늦은 저녁 호스텔에 오니 감기 기운이 돌았다. 당시 유럽을 강타한 조류독감 진원지가 튀르키예였다.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약을 먹어야하는데, 짐 부피를 줄인다며 온갖 비상약을 다 뜯어 넣어온 게 문제였다. 뭐가 감기약인지 몰라 소화제, 설사약, 멀미약, 진통제, 감기약 등이 섞인 알약 열 알을 한입에 털어 넣고 잤다. 멀쩡했다.
다음날은 멀리 신시가지까지 걸었다. 보스포러스 해협 위에 놓인 갈라타 다리에 수많은 낚시꾼들이 고등어와 정어리를 낚아 올리고 있었다. 잡은 고기는 곧장 케밥 장수가 사 가서는 그릴에 구운 뒤 빵에 끼워 ‘고등어 케밥’으로 팔았다.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지만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사치여서 노릇노릇한 냄새에 침이 고이는 걸 겨우 참아 지나쳤다.
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니 저물녘이 됐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것을, 숙소로 돌아가는 방향을 잃어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차비도 없고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 지나가던 한 중년 남성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영어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데이비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외모는 튀르키예 사람인데, 아마 영어 이름을 말한 것 같다. 퇴근 후 귀가 중이던 그는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함께 걸어줬다. 그의 친절한 동행 덕분에 갈라타 다리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다리만 건너면 숙소가 있는 구시가지였다. 다리 중간까지 같이 온 데이비스는 배고프지 않느냐며 고등어 케밥 두 개를 사서는 전부 다 내게 건넸다. 양손에 케밥을 들고선 다리 끝까지 혼자 걸었다. 걷다가 돌아보니 데이비스가 다리 가운데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이스탄불에서 만난 천사의 마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21세기 세계질서는 이념이 아닌 문명 대립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예로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이 충돌하는 튀르키예를 들었다.
튀르키예는 과거 오스만 튀르크 시대부터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지정학적 긴장이 팽팽했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중세 오스만 제국을 배경 삼아 오늘날 튀르키예의 정체성 문제를 매혹적인 추리서사에 담아냈는데, 소설 속 연쇄살인범은 오스만 제국이 서양에 예속될 걸 두려워했지만, 튀르키예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서 융성하며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동서양 문명의 충돌은 여전한데, 2000년대 들어 EU 가입을 추진하는 등 경제적으로는 유럽을 지향하는 한편 문화적으로는 이슬람 근본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민들이 분열됐다. 특히 쿠르드족과의 갈등은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정학적, 문명적 갈등은 지금 아무 의미가 없다.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무려 4만5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끔찍한 자연재해 앞에서는 기독교도 이슬람도, 서양도 동양도 없다. 그저 사람, 지극히 연약하고 불쌍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지금 튀르키예와 시리아는 18년 전 캄캄한 이국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린 내 처지처럼,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천사 데이비스를 생각하면서, 아름다웠던 이스탄불의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구호단체인 ‘희망브리지’에 성금을 기부했다. 고등어 케밥 두 개 값의 스무 배쯤 되는 돈이다. 데이비스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엔 턱없이 적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는 튀르키예와 앙숙이다. 튀르키예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적대심은 우리의 반일감정 이상이다.
이번 지진 피해에 그리스는 가장 먼저 물자와 구조인력을 보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이웃 국가다. 튀르키예 국민과 그리스 국민을 나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한 대목을 옮긴다. “네 앞에 인간이 있다. 튀르키예인이면 어떻고 그리스인이면 어떠하냐. 중요한 것은 하나밖에 없다. 다 인간이란 것이다. 입이 있고 가슴이 있고 사랑을 할 줄 아는 인간이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튀르키예의 정체성은 유럽도 이슬람도 아니다. 튀르키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