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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온열질환 주의보

전세계적으로 폭염이 이어지면서 일사병이나 열사병 등 온열질환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사병과 열사병은 이름이 비슷해 혼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증상도, 위험성도 크게 다른 질환이다. 우선 일사병은 ‘열탈진’으로도 불리는데, 더운 환경에서 땀을 많이 흘려 수분과 전해질 부족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된 증상은 어지럼증, 두통, 구토 등이며,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그늘에서 충분히 쉬거나 전해질이 들어간 스포츠음료·주스 섭취, 샤워 등을 통해 증상을 쉽게 완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열사병은 고온·다습한 환경에 노출될 때 체온 조절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치사율이 30%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다. 열사병의 가장 큰 특징은 체온은 높은데 땀이 나지 않는 것이다. 체온조절 장애로 인해 체온이 40℃ 전후로 올라가면서 피부가 붉고 뜨거워지지만 땀은 나지 않아 피부는 건조하다. 메스꺼움, 구토, 두통, 어지럼증 등의 증상이 동반되며, 판단장애, 섬망(일시적 의식 혼동)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 증상이 심해지면 의식을 잃고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다발성 장기손상 및 기능장애 등으로 인해 사망할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기온이 섭씨 40℃를 웃돌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각각 500명과 1천명이 넘는 시민들이 무더위에 숨졌다. 국내에서도 최근 5년간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에 육박했다. 온열질환 예방법은 고온에 장시간 노출되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부득이하게 더운 환경에서 작업을 하거나 운동을 해야 할 경우는 자주 그늘에서 휴식을 취해주고, 충분한 수분섭취를 하도록 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7-25

물소리 물장구소리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라지만, 너무 덥다 보니 각종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유례없는 폭염 경보에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수온상승으로 인해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가 하면 영국에서는 과다한 지열 탓에 자연발화 화재가 발생하는 등 지구촌은 보통 난리가 아니다. 지구 온난화의 습격인지, 산업 문명화의 경고인지, 기상이변에 따른 걷잡을 수 없는 재해재난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듯하다. 꺾이는가 싶던 코로나19 변이종이 교묘하게 재확산되고 날씨마저 극성이니, 정말 한여름의 고역이 아닐 수 없다.타는 듯한 삼복(三伏)더위 중 가장 덥다는 중복이다. 가마솥이나 찜통 더위로 비유되는 복더위는 작렬하는 태양이 내뿜는 후끈한 열기로 대지를 인정사정없이 달구고 있다. 간혹 소나기나 장마가 열기를 식혀주기도 하지만, 숨이 막힐 듯한 무더위를 피해 바다나 계곡으로 떠나는 발길이 중복을 전후해 많아지는 하계휴가가 집중되기도 한다. 경제활동을 위한 일도 중요하지만, 특히 혹서기에는 쉼과 힐링이 있는 삶이 중차대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일손을 놓고 일상을 벗어나는 피서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봄날 아침에 들길 거니는 것/여름 한낮에 계곡에서 멱 감는 것/가을 저녁에 오동에 걸린 달을 보는 것/겨울밤에 소나무에 이는 바람소리 듣는 것(春朝行郊外/夏日泳溪中/秋日望桐月/冬夜廳松風)” - 강성위 한시 ‘四時四快’ 오언절구 전문. 여름날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며 물놀이를 하는 것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오래 전 당시 초·중학교를 다니거나 들일로 개울가를 지나치다가 좀 덥다 싶으면 그대로 물 속으로 뛰어들어 자맥질을 일삼기도 하고, 또래들과 어울려 채반이나 반도로 천렵을 할 때면 거의 한나절 이상을 물 속에서 살다시피 하곤 했다. 또한 달 없는 밤엔 비누와 수건을 챙겨 동네의 빨래터나 물목 좋은데로 가서 몸의 때를 제대로 벗기고 씻으며 가슴 속까지 서늘해지는 여름밤의 낭만을 즐기기도 했었다.‘석양이 함께 와/물장구치던 시냇가//그 물결 부드러워/바위들도 옷을 벗고//물소리/물장구소리/먼 옛날 그 시냇가//가슴 결에 묻어 놓은/수줍은 생각 하나//물결이 칠 때마다/애잔한 모습 되어//소년은 냇가에 앉아/지난 세월 줍고 있다’ -拙시조 ‘시냇가에서’ 전문. 밤낮없이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고향의 시냇가를 거닐다 보면 아련한 추억들이 물보라로 일어서거나 물빛 웅성거림으로 소용돌이치는 듯하다. 나뭇잎배를 띄우며 바다에 이르는 마음을 그려 보기도 했었고, 풀섶의 반딧불이를 쫓으며 작은 꿈이나마 오래도록 초롱하게 빛나기를 보듬기도 했었다. 잔잔한 여울의 속삭임이 유년의 재잘거림처럼 다가오고, 세차게 굽이치는 물살이 소년의 다부진 포부 마냥 거침없이 달려가던 시절이기도 했었다.하천정비사업으로 물길이 달라지고 아늑한 예전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하염없이 흘러가는 물은 여전히 부드러운 율(律)과 한결 같은 격(格)으로 여울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끝없는 경전의 올을 풀어내고 있다. 물소리에 스민 사연과 물장구에 어우러진 무구함이 때때로 삶의 장단을 부추기는 듯하다.

2022-07-25

안전의 핵심, 불안전한 행동

김종찬 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영화 ‘버티컬 리미트’는 K2 등정에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주 생생하게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한계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좌절과 승리를 보여주는 이런 소재의 영화들은 생각보다 꽤 많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인간승리를 그린 실화 바탕의 영화 ‘히말라야’도 그중의 하나이다.K2는 히말라야의 8천 미터 급 봉우리 중에 하나이며, 에베레스트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영화에서 카메라는 자주 인광을 형형하게 발하는 설원과 깍아지른듯한 겨울 빙벽을 비춘다. 그 겨울 빙벽에 자일로 이어져 매달려 있는 사람들. 산소 부족과 호흡곤란,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뇌에 물이 차는 현상으로 두뇌가 활동이 느려지면서 인지하고 판단하는 데 지장을 받는다.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맞부딪히게 되는 자연과 일대 일로 붙는 처절한 극한의 싸움, 눈보라처럼 호되게 내려치는 그 도저한 정신을 보며 함께 고난을 극복하며 산의 정상을 공격하는 스토리의 주인공인 양 감동을 느끼지만 안전이란 관점에서 영화를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상이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등반을 강행하는 이들에게 눈 폭풍이 덮치고 속수무책이 된 채로 희생되는 결과는 절차와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불안전한 행동의 대가이기 때문이다.최근 5년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2017년 964명에서 2021년 828명으로 줄어들고 있다지만 하루 2.3명이나 되는 소중한 생명이 안타깝게 희생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는 위험을 무릅쓰고 일궈낸 기적 같은 감동이 아닌 철저히 기본을 지키고 위험을 보는 눈으로 불안전한 상태를 없애고 안전한 행동을 체질화하여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주인공이 돼야 한다.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법’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언론에서도 사고나 안전상의 문제를 연일 크게 보도하고 있고 배달 오토바이 사고로 희생된 가장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헬멧을 쓰지 않은 문제점을 제기해도 여전히 거리에는 헬멧을 쓰지 않거나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왜 그럴까? 안전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나한테는 사고가 비켜 간다는 생각? 아니다. 시각적으로 또는 청각으로 받아들이는 위험이 손끝이나 발끝으로 즉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자동차도 안전벨트와 에어백 등으로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전략에서 사전에 설정한 차간 거리를 유지하고 도로의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사고를 예방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완전히 제로화 시키는 데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이 ‘불안전한 행동’을 하며 얻는 이익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표준을 생략하여 작업이 단축되었다던가 돌아가지 않고 무단 횡단하여 약속시간에 늦지 않았다던가 헬멧을 쓰지 않아 땀을 덜 흘렸던 보상이라 여겨졌던 기억들로 인해 ‘불안전한 행동’이 완전히 근절되지 않고 산업재해 통계가 여지없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2022-07-25

선거 불복은 곤란하다

김진국 고문 정치에서 품격이 사라졌다. 노골적이고, 천박한 공격만 난무한다. 인터넷 단문의 영향이 크다. 정치 팬덤과 진영정치의 당연한 결과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을 잘하는 정치인이 설치는 세상이다. 민주당에서 ‘탄핵’, ‘촛불’, ‘레임덕’이라는 자극적인 말이 계속 나온다. 지난주에는 박홍근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 대표연설에서 ‘레임덕’과 ‘탄핵’을 공개 거론했다. 직접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말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의도는 분명하다. ‘탄핵할 수도 있다’라는 위협이다. 민주당은 현재 국회 299석 가운데 169석을 차지하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 등 무소속 의원 7명도 민주당 출신들이다. 국민의힘 115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실상 민주당에 가깝다. 마음만 먹으면 탄핵도 할 수 있다.선거 때는 지지 후보에 따라 유권자도 갈라진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승복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렇게 국민은 다시 하나가 된다. 공약이 서로 충돌하고 대결을 벌이지만 선거 때와 달라진 조건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긴 후보를 계속 공격하는 건 그러한 선택을 한 유권자를 비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취임 직후에는 대개 지지도가 오른다. 선거 때 찍지 않은 사람도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 새 정부가 일을 잘 해줬으면 하는 희망을 품는 시기다. 역대 대통령을 봐도 집권 중반기가 돼서야 부정적 여론과 긍정적 여론의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각종 여론조사마다 지지율이 30%를 겨우 넘는다. 부정 평가는 60%를 넘는다. 뭘 해보지도 못한 상태에 지지율이 위기에 빠졌다.물론 가장 큰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윤 대통령은 ‘공정’ 가치의 상징으로 당선됐다. 조국 사태 등으로 불공정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을 때 윤석열 검찰총장이 그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런데 취임 초 인사 문제와 관련해 잡음이 계속되면서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윤 대통령이 겸손한 자세로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또 불만의 원인이 된 가족과 측근들을 자제시키고, 대통령이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그렇더라도 야당의 흔들기는 지나친 점이 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은 윤 대통령의 정책을 선택했다. 그러면 최소한 체계를 갖추고 정책을 추진할 시간은 주는 게 민주주의의 금도(襟度)다. 서투른 국정에 조언하고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탄핵과 촛불을 이야기하는 건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기 충분하다.윤 대통령은 허니문 기간이 없었다. 당선되자마자 지방선거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나 그 지지자들도 대통령 당선인에게 박수를 보낼 여유가 없었다. 이어진 선거를 위해 전투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그때까지야 어쩔 수 없는 시간표 탓이라 해도 그 이후에도 ‘탄핵’과 ‘촛불’이란 말까지 꺼내며 몰아붙이는 건 지나치다. 아무리 많이 싸우는 정치라 해도 절제가 필요하다.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2개월 만에 광우병 파동으로 위기를 겪었다. 광우병을 왜곡·과장한 TV 보도 이후 민주당과 연예인들이 앞장선 촛불집회가 온 나라를 흔들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20% 아래로 떨어지고,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국정 동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광우병은 근거 없는 선동이었다. 민주당 극렬 지지자들은 SNS로 당시의 경험을 반복하자고 선동하고 있다. 정당이 여기에 휘둘리면 안 된다. 선거 이외의 방법으로 선거를 뒤집는 세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윤 대통령도 야당과 야당 지지자들을 끌어안는 노력을 좀 더 해야 한다. 선거는 끝났다. 여고, 야고, 대통령은 모두 손을 잡아야 할 상대다. 원인이 무엇이든 국정 실패의 모든 책임은 결국 대통령에게 돌아온다.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경쟁을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하나로 뭉치고, 힘을 모아야 한다. 선거가 나라를 쪼개고, 선거가 끝나도 승복하지 않고, 바로 다음 선거전을 시작한다면 나라가 위험하다.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선거 불복은 용납할 수 없다. /본사 고문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7-24

내가 물로 보이냐

이원만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어느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해양조난사고 상황에서 휴대폰, 식량, 모자, 물 중에서 한 가지만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할 건가를 물었다. 당연히 물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한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휴대폰이 가장 많아서다. 당황함을 감추고 선생님이 왜 휴대폰이냐고 물으니 아이들은 “휴대폰으로 검색하면 언제 비가 오는지 알 수 있어서 빗물을 모으면 되요.” “조난상황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검색할 수 있잖아요.” “휴대폰이 있어야 위치추적이 되요.”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다.선생님은 와이파이의 범위를 따지기보다는 아이들의 생각이 짧은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어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내친 김에 호기심이 동한 선생님은 사막같이 건조한 곳에서 길을 잃었다면 물을 어떻게 구할 것인지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라고 했단다.1분도 안 돼 아이들은 “적정기술이 있어요.” “와카워트요.”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스테노카라라는 딱정벌레 물구나무서는 걸 보고 만들었데요.”선생님도 아이들에게 검색어를 물어 찾아보니 에티오피아와 예멘지역에 사는 와카라는 무화과나무에서 따온 이름인데 딱정벌레가 이른 아침 안개가 끼면 물구나무를 서서 몸에 맺히는 이슬을 입으로 흘려보내 마시는 것에서 착안한 방법이고 이미 상용화되고 있는 적정기술이었다.선생님은 질문만 제대로 하면 휴대폰으로 수업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 이번에는 너희들이 먹는 수돗물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알아보라고 했다.시청홈페이지냐 무슨 정부기관이냐 왈가왈부가 있었지만 형산강, 안계댐, 진전지, 오어지, 눌태지, 임하댐, 영천댐, 곡강천까지 줄줄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아이들은 설거지 할 때 물을 샤워기처럼 틀면 물을 절약할 수 있다느니 물을 받아놓고 쓰는 습관과 토트넘선수들이 유럽의 물에 비해 우리수돗물이 더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했다는 이야기까지 온갖 물이야기가 줄줄이 쏟아졌다.미소를 띠며 선생님은 질문을 이어갔다.“여러분이 학교에서 축구하고 땀과 먼지가 범벅이 되면 집으로 달려가 샤워부터 하죠? 그 땀과 먼지는 누가 가져가요?” “물이요” 뭔 질문이 그러냐고 시큰둥한 아이들에게 “그럼, 더러운 걸 가져가 주는 고마운 물에게 여러분은 뭘 줄 수 있어요?”갑자기 조용해진 아이들은 휴대폰 검색도 하지 않고 선생님을 쳐다본다. “글죠? 고마운 마음밖에 줄게 없죠? 그리고 아끼겠다고 약속하고. 빨래도 덜 자주하고 세제도 미세플라스틱 안생기거나 적게 생기는 걸로 찾아서 쓰자고 엄마한테 이야기 해야겠죠?”그러면서 물이 온갖 동식물을 키워주고 우리 생명도 유지할 수 있으니 ‘물을 물로 보지 말라’는 말로 수업을 정리했다고 한다.하지만 수업이 끝난 뒤에도 아이들의 물에 대한 검색은 끝나지 않고 계속 돼서 투발루며 빙하며, 가뭄이며 홍수며 기상이변으로 번져갔다.심지어 서로 다투다가 “ 날 무시하는 거야? 날 물로 보는 거야?” “그래, 널 물로 본다. 대단한 물!”하고는 깔깔거리는 모습에 함께 웃었다고 한다.앞으로 100년 동안 지구상의 물의 성질이 달라질 거라고 한다. 빙하가 사라지고 해수면이 상승할 것이다. 기온이 높아지면 구름이 더 많은 물을 품을 수 있고 불안정해진 대기흐름으로 어떤 곳은 가물고 어떤 곳은 홍수가 질 것이다. 바닷물이 산성화되면 산호초를 비롯한 다양한 해양 동식물들이 죽을 것이다.벌써부터 껍질이 얇아지는 조개들이 발견되고 조금씩 변형이 이루어지는 플랑크톤이 발견되고 있다. 그 물들이 더 이상 생명이 살 수 없게 되는 티핑포인트가 어디인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우리는 해수산성화라는 지구역사 5천년 동안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큰 사건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북의 3천500년 지구역사가 마감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흔한 물, 지구의 표면적 70%가 넘는 엄청난 바다를 채운 물, 그 물을 물로 보면 안 되는 이유다.여름 가뭄이 심하다. 포항시민에게 물을 대주는 저수지와 댐들의 수위가 궁금하다. 영천과 임하댐은 다른 행정구역인데 생명수를 보내준다니 고맙다.옛날 어른들은 자식들이 타지에 나가 건강하기를 물 한 그릇을 떠놓고 빌었다. 정화수는 12시와 새벽 1시 사이 동네 우물에 고이는 새물이다.등불과 대나무가지를 들고 가며 길 위에서 잠든 벌레들을 치우며 물 한 그릇을 담아왔다고 한다. 자기 자식의 건강을 위해 벌레들의 생명을 죽일 수 없다는 마음이 담긴 물이다.오어지의 연못에 떨어지는 빗방울. 그 빗방울이 그리는 동그라미. 그 동그란 방석에 마음을 앉혀놓고 바라보며 ‘물은 저렇게 우리에게 오시는 구나’ 생각에 잠긴다.

2022-07-24

필즈상 허준이 교수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한국도 드디어 과학의 노벨상과 같은 최고의 상의 수상자를 갖게 되었다. 이달초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Fields)상을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인 한국계 허준이 교수가 수상했다.노벨상은 매년 분야별로 1∼2명씩 선정하는데 반해 필즈상은 4년에 한 번 2∼4명을 선정하고 반드시 40세 이하여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노벨 과학상보다 타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미국에서 유학 시 교내에 필즈상 수상 교수가 걸어가면 “저 교수가 필즈상 수상자”라고 손짓을 하면서 존경과 부러움을 보이던 기억이 있다.필자가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공부하던 40여 년 전 같은 캠퍼스에서 공부하던 허명회 고려대 명예교수의 자제가 허준이 교수이다. 허준이 교수는 당시 스탠퍼드 캠퍼스에서 태어났다.미국서 태어나긴 했으나 2살 때 부모를 따라 귀국해 중고등학교와 대학, 대학원을 한국서 다니고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기 때문에 성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청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냈다. 그는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특별히 잘한 것도 아니고 고교는 중퇴하고 홈스쿨링으로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에 입학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서도 저학년 때 학점이 좋은 것은 아닐 정도로 최소한 학점상으로는 특출한 학생이 아니었다.허준이 학생은 문학을 즐기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창의적인 학생이었다. 미국 유학을 가려고 했을 때도 여러 개 대학 중 일리노이대학(UIUC)만이 받아 주었는데 그 대학에서 유명한 리즈추측(Read’s Conjecture)을 증명하면서 일약 수학계의 스타로 올라섰다. 이후 수학계의 신데렐라로 등장한 허준이 교수는 스탠퍼드, 프린스턴의 정교수를 거쳐 드디어 필즈상을 수상했다.중고교 시절, 대학 시절 학점상으로 최정상이 아니었던 허준이 교수가 11개의 추측을 증명할 정도로 탁월한 창의력을 발휘한 원동력은 무엇일까?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창의력은 타고나는 건가? 길러지는 건가? 후자라면 분명히 교육 환경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한국서 청소년을 보낸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이 ‘한국교육의 개가’라고 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암기식 한국교육의 이단아’로 성공한 케이스로 판단된다.창의력은 타고난 재능과 교육의 융합체라고 할 수 있다. 타고난 재능만 가지고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창의가 발휘될 수 없고,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지식만 가지고도 창의력은 발휘되기 쉽지 않다.비행기를 발명한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타고난 호기심과 창의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베르누이 정리에 의한 유선형의 원리를 교육받지 못했다면 비행기를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라이트 형제의 업적은 그러한 원리 위에 디자인과 속도를 낼 수 있는 설계에서 창의력을 발휘하였다.‘창의력은 지능과 비례하는가’하는 것도 재미있는 질문이다. 지적능력의 지표인 IQ는 일정 이상만 넘으면 창의력과 관계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너무 높은 IQ는 암기력이나 이해도가 빨라 오히려 창의력에 방해가 된다는 이론도 있다. 따라서 한국적 교육환경에서의 수석합격, 수석졸업생들은 오히려 덜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공부는 잘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돌연변이적 사고를 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더 큰 창의적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이러한 창의성 뒤에는 이들이 한 곳에 열중하고 미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허 교수도 마찬가지이다. 하루 4시간씩 수학만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그의 부친의 성격을 잘 아는 필자로서는 허 교수가 그러한 집중력과 한 곳에 미치는 성격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즐기는 사람을 못 당한다는 말이 있는데 한 곳에 열중하고 미친다는 것은 그것을 즐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사실 미국의 중고교생들은 보통 오후 3~4시에 집에 돌아와서 논다. 논다는 의미는 다양한데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친구들과 떠들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한 시간을 한국의 학부모들은 논다고 생각하여 밤늦게까지 공부시키는 한국의 중고교 교육을 오히려 그리워하기도 한다. 수학·과학 경시대회 같은 곳에서 한국이나 아시아국가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건 그런 과도한 학습 덕분일 것이다.그러나 대학, 대학원을 가서는 중고등학교때 ‘놀던’ 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어쩐일일까? 결국 창의력은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기본적인 원리를 가르쳐주고 충분히 사고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창의력은 결국 교육적인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다.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축하하며 이번 수상이 한국교육 방식과 환경의 근간을 바꾸는데 기여 하길 기대해 본다.

2022-07-24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얼마 전 인터넷에 의미심장한 통계자료가 올라왔다. 한국갤럽이 제시한 ‘우리 사회 차별 정도 인식’의 8개 항목 수치가 그것이다. 구체적인 항목을 열거하면 이렇다. 빈부 차별, 비정규직 차별, 학력-학벌 차별, 장애인 차별, 성 소수자 차별, 국적-인종 차별, 성(性)차별, 나이 차별이다. 여덟 가지 차별 가운데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사회문제라 할 것이다. 그중에서 몇 가지만 생각해보고자 한다.차별 정도가 매우 심각하거나 약간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을 보자. 빈부 차별 81%, 비정규직 차별 79%, 학력-학벌 차별 75%, 장애인 차별 72%, 국적-인종 차별 62%, 성 소수자 차별 58%, 나이 차별 54%, 성차별 41%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상위 네 가지 차별의 뿌리는 하나다. 돈에서 발원하는 차별이다. 가장 극심한 차별로 나타난 빈부 차별에서 그 아래의 차별들이 순차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부유한 부모 아래 성장한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사교육을 받고, 이름난 특목고에 진학하여 ‘스카이’에 들어가거나 외국 유학하고 와서 세상에 나서면 남 부러울 게 없다. 그들은 빈부 격차나 비정규직이 겪어야 할 설움과 고난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물며 학력과 학벌에서 오는 차별이나 아침저녁으로 우리 사회의 장애인이 경험해야 하는 온갖 수모와 차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특수한 신분을 가진 자들의 자식들이니 말이다.2차 대전 후에 독립한 신생국 가운데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라는 평가를 듣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한 수식어인가?! 하지만 저변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사뭇 다르다. 세계 전체에서 빈부 격차가 가장 크다는 미국에 뒤질세라 바로 뒤에서 쫓아가는 나라가 한국이다.돈과 권력과 명예를 모두 움켜잡으려는 인간들의 탐욕 때문에 나라 전체가 시끌벅적하다. 이런 배경에 굳건하게 자리하는 것이 각종 차별이며, 그 선두에 빈부 차별이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셈이다. 그러나 보라. 엊그제 뉴스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현 정부는 부자와 대기업을 위한 대대적인 세금 손보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직장인을 위한 감세 규모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극소수 부자들을 위한 종합부동산세 감면으로 줄어드는 세수가 1조7천억 원인데, 노동하는 직장인들의 감세 규모는 1조6천억 원에 머물고 있다. 대기업들을 위한 법인세율은 현행 25%에서 22%로 낮춰서 이 부문의 세수 역시 6조8천억 원이 줄어들 것이라 한다.2019년 12월 기준으로 종부세를 내는 한국인은 전체 인구 가운데 2.5%다. 국민 가운데 압도적인 절대다수인 97.5%는 종부세를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2.5%의 부자들을 위한 감세 규모가 국민의 절대다수를 점하는 직장인들의 감세 규모보다 크다는 것은 빈부 격차에서 유래하는 빈부 차별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겠다는 의지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기막힐 만큼 막막하고 답답한 세상 아닐 수 없다.

2022-07-24

나홀로 추락하는 쌀값

지난 12일 전국쌀생산자협회 소속 농민들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쌀값 안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가을 추수를 한달 반 정도 앞둔 가운데 현지 쌀값이 45년 이래 가장 낮은 시세를 형성하고 있는 데다 햅쌀이 나오면 쌀값은 더 떨어질 것이 뻔하니 정부가 대책을 세워달라는 것이다.안오른 물가가 없다는 고물가시대에 유일하게 쌀값만 나홀로 폭락세다. 현재 산지 쌀값은 4만4천여원 수준. 작년 10월보다 20% 가까이 떨어졌다. 농민들은 쌀값을 한공기밥(100g)으로 환산하면 224원꼴이니 “개사료 값만 못하지 않느냐”며 자조한다. 막대사탕이 500원, 껌이 800원 하는데 우리 국민의 주식인 쌀값이 이 정도니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쌀값이 떨어진 것은 작년 경우 풍작인데도 코로나19 여파로 쌀소비가 줄었고 정부의 수급안정을 위한 시장격리 조치가 실패한 데 있다. 그러나 잘 따져보면 식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쌀소비가 지속해 주는 데 근본 문제가 있다. 작년 1인당 쌀소비량은 56.9kg으로 1963년 통계 작성이래 가장 적었다. 1991년 116.3kg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이지만 식생활이 점차 서구화돼 밥 대신 빵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라면이나 즉석밥 등 대체식품 수요가 증가한 데 원인이 있는 것이다. 요즘 젊은층의 식생활 패턴으로 본다면 앞으로도 쌀 수요는 더 늘 가능성이 낮다.쌀만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90%가 넘는다. 그러나 쌀만으로 국민의 다양한 식품기호를 맞출 수 없다. 국제 밀가격이 폭등을 해도 밀 수입을 멈출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세계적인 초인플레이션 시대에 나홀로 추락하는 쌀값을 정부가 어떻게 방어할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7-24

오십견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십수 년 전에 경험한 일이다. 지하주차장에서 주차 공간을 확인하려고 뒤를 돌아보려는데 목이 돌아가지 않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후진을 위해 오른팔을 들어 올리려니 심한 통증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평소 워낙 부실하던 몸이라 곳곳이 삐걱대는 건 예사였으나 통증과 함께 팔과 목을 움직일 수 없는 경우는 처음이어서 몹시 당황했었다. 이튿날 병원에 가보니 오십견이라 했다. 인체가 기계라면 오십년이나 사용했으니 여기저기 고장이 나게 마련이다. 여러 질병명 중에서 세월의 의미가 담겨있는 대표적인 것이 오십견이 아닌가 싶다. 이는 단순히 오십대의 어깨에 생긴 염증이 아니라 반 백년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세월의 무게를 더한 용어일 것이다.공자는 오십이 되어 천명을 알았다고 한다. 천명은 하늘이 인간에게 맡긴 사명이다. 하늘의 명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것이므로 ‘지천명’은 불가항력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십견은 치료가 어려워 그야말로 세월이 약이다. 병원 처방이 있고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단번에 상처를 도려내듯 깨끗하게 치료하기는 불가능하고 세월이 가야 비로소 조금씩 낫는다. 나도 오십견 진단을 받고는 부지런히 병원 치료를 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어깨 부근에 고인 물을 뽑아내기도 했고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도 열심히 했다. 별 차도가 없어 한방치료를 겸하기도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온갖 민간요법 정보와 먼저 겪은 자들의 경험담에 의하면 가장 좋은 운동이 수영이란다. 병원 치료를 열심히 받고 수영을 부지런히 하면 일년 만에 완치가 되고,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두면 완치에 열두 달이 걸린다니 그게 그거다. 그러나 오십견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다는 속설을 믿고 방치하면 후유증으로 평생 고생할 수 있으니,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장시간 사용할 경우는 근육이 경직되지 않도록 적절한 스트레칭이 필요함을 명심해야 한다.육십을 훌쩍 넘은 사람이 뜬금없이 무슨 오십견 얘긴가 할 수도 있겠다. 남의 얘기이거나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몇 주 전에 비슷한 증세를 겪었고, 일년도 열두 달도 아닌 몇 주 만에 회복이 되었으니 이건 뭐지? 다행이면서도 어리둥절하다. 뭐 좋은 일이라고 양쪽 어깨를 골고루 다녀갔던 오십견이 육십 중반에 다시 찾아왔으니 황당함과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구나 바쁜 일로 열심히 자판을 두드려대던 중이었으니 큰 낭패였다. 즉시 한의원을 찾았고, 치료에 공을 들였고, 휴식을 일처럼 중요하게 실천했더니 불과 몇 주 만에 호전되었다. 그렇다고 인생 육십의 무게가 오십보다 가벼워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육십을 ‘이순’이라 하여 남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아 이해하고 관용하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나잇값을 하자면 자아를 덮고 있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 이순이 되면 그동안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남기 위해 썼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진짜 자기를 만나야 한다. 스스로 존재 이유를 의심하게 하던 내면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인생은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2022-07-24

더 많이 등장하기를

유영희 작가 요즘 핫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감탄과 열광이 주를 이룬다. 나 역시 3회부터 본방사수 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 12월 이 드라마를 홍보할 때 제작사가 우영우를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자폐증’을 앓는 변호사라고 홍보했다고 한다.이에 대해 자폐 당사자 모임 ‘에스타스’는 이런 표현은 자폐 차별적 표현이라고 반발하면서 자폐는 질병이 아니라 신경생물학적 원인으로 인한 영구 손상이기 때문에 장애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현재 방영되는 드라마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고 표현하고 있다. 나 역시 자폐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그러나 자폐 당사자 모임의 염려가 아직 다 해소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우려는 우영우 같은 고기능 자폐인이 자폐 스펙트럼을 대표하는 것으로 일반인에게 잘못 인식되어 저기능 자폐인이 소외될까 하는 것이다. 이 역시 드라마에서 저기능 자폐인을 등장시켜서 어느 정도 해결은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자폐 당사자나 그 가족은 이 드라마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우영우의 아이큐가 164로 설정되어 있으니 일반인 입장에서도 너무 비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 그 염려에 공감이 간다.이 드라마를 처음 보고 자폐인이 정말 변호사가 되기도 할까 조사해보니 미국에 자폐인 변호사가 두 명 있었다. 에릭 웨버는 2015년에 변호사가 되었는데, 어려서부터 육상 선수로도 활동했다. 2018년 24살의 헤일리 모스도 변호사가 되어 로펌에 근무하다가 현재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오늘 기사를 보니 모스도 우영우 드라마를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는 아니지만, 동물학 교수 템플 그랜딘 역시 자폐인인데, 동물의 세계를 잘 이해하여 동물복지를 배려한 소 도축장 시설을 설계했다,이들 모두 보통 사람보다 더 능력이 좋다고 해서 그 능력이 저절로 이만큼 발휘된 것은 아니다. 그들을 이해해주는 부모나 선생님이 없었다면 그들은 정신병원에 가거나 시설에 방치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존재를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현재 우리나라에는 2021년 현재 자폐 등록자는 3만3천 명, 미등록자는 2만 명으로 5만여 명의 자폐인이 있다고 한다. 이들을 다양성의 관점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좀 더 자리 잡는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자폐인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실제로 다문화주의 국가에서는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는 자폐인들이 꽤 있다고 한다. 우영우 같은 비현실적인 허구 인물이라도 정확한 정보와 함께 대중매체에 등장한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오히려 이런 인물이 더 많이 나오면 일반인들에게 다양성의 외연을 넓혀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은 배우가 고기능 자폐인 역을 하더라도 더 자주 노출된다면 그들에 대한 시선도 바뀔 것이다. 얼마 전 다운 증후군 정은혜 씨가 직접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자폐 당사자가 드라마에 직접 출연할 날도 곧 오리라 믿는다.

2022-07-24

민선 8기, ‘시민이 행복한, 위대한 영천’ 건설

최기문 영천시장 먼저 지난 4년 동안 시정에 많은 관심과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신 시민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더 살기 좋은 영천을 만들어 달라는 시민들의 염원에 힘입어 지역 곳곳을 누비며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시민과 공직자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아주신 덕분에 시민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교통행정을 펼칠 수 있었고, 40년 만에 자양면에 상수도를 넣을 수 있었다.아울러 대구도시철도 1호선 영천경마공원(금호) 연장과 같은 미래 영천발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이 모두는 시민들과 공직자들의 협조와 성원 덕분이라 생각한다.민선 7기에 이어, 민선 8기에도 고향 영천을 위해 한 번 더 일할 기회를 주신 시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이번 선거에서 영천 시민들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공정하고 진실된 정책 중심의 선거를 만들어 주셨고, 수준 높은 영천 시민의 ‘의로운 정신’을 보여주셨다. 영천을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달라는 시민들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오직 시민만 바라보며 열심히 달려가겠다.이번 선거에서 저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모두가 같은 영천시민이다.시민 모두를 위한 정책을 개발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추진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시민 한분 한분의 목소리를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하며, 더욱 낮은 자세로 소통하고 화합하여 대통합의 영천을 만들어 가겠다.아울러 시민행복과 지역발전이라는 궁극적인 마음은 서로 통한다고 생각한다. 소속 정당을 떠나 필요한 경우에는 누구라도 찾아가 협조를 구하겠다.또한 지역구 국회의원, 도ㆍ시의원 다수가 여당 소속인 만큼 여당의 이점을 살려 현안해결 및 국가예산 확보 등에 한층 더 힘을 실어주실 것이라 생각한다.새롭게 시작되는 민선 8기에도 ‘시민을 행복하게, 영천을 위대하게’라는 시정 목표 아래 ‘새롭게 도약하는, 더 큰 영천’을 만들어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우선 생동하는 경제도시 만들기에 매진하겠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 영천경마공원(금호) 연장에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 영천에 도시철도가 다니는 기적을 앞당기겠다.사통팔달 교통 인프라 구축과 110만평의 산업단지와 지식산업혁신센터 건립, 미래차 부품기업으로의 전환으로 특화된 기업유치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탄약창 군사보호구역 해제를 추진해 주민 재산권 보호와 시가지 균형발전에 힘쓰겠다.다음으로, 전국에서 찾아오는 부자농촌을 만들어 나가겠다.기후변화에 대응한 스마트팜 단지 조성과 마늘 특구 지정에 따른 규제 특례를 활용해 마늘융복합센터, 마늘공판장 등 특화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농산품 해외수출 유통망 구축, 청년 농업인 육성으로 농업 소득증대에 박차를 가하겠다.셋째, 평등한 복지ㆍ교육 구현에 힘쓰겠다. 어르신 공공일자리 확대, 노인복지회관 건립,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온종일 아이 돌봄 체계 구축, 중·고교생 무상 교복비 및 안전귀가 택시비 지원으로 맞춤형 복지ㆍ교육을 실현해 나가겠다.마지막으로, 품격 높은 문화·관광 도시를 만들어 나가겠다.올 하반기 착공되는 영천경마공원의 성공적인 건설과 시립박물관, 문화예술회관 건립으로 문화·예술 공간을 확충하고, 신성일기념관 건립, 보현산권역 관광벨트사업을 잘 마무리해 매력적인 문화·관광 도시 조성에 힘쓰겠다.앞으로의 4년, 민선 8기도 오로지 시민만 바라보며 ‘시민이 행복한, 위대한 도시 영천’을 만들어 가는데 혼신을 다하겠다.시민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지지, 하나된 마음이 모여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고, 살기 좋은 우리 영천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천의 더 큰 도약과 살기 좋은 영천을 향한 발걸음에 항상 함께 해주시길 당부 드린다.

2022-07-24

우리 별자리 28수

시간은 공간과 달리 형체가 없다. 따라서 옛날에는 하루 24시간의 흐름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의 시간이란 왕이 알려주는 것이었다. ‘관상수시(觀象授時)’라 하여 옛날 제왕들에게는 하늘의 모양을 살펴 백성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임무 중의 하나였다.세종대왕은 장영실에게 명해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 자격루를 만들어 이를 통해 시간을 재서 종을 쳐 백성에게 알렸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종루(현재 종각)를 짓고 하루 두 번 종을 쳤다. 그것을 인정(人定)과 파루(罷漏)라고 한다. 인정이란 저녁에 성문을 닫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28번의 종을 치는 것이고, 파루는 새벽에 성문을 연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33번의 종을 치는 것이다. 28번의 종소리는 밤하늘에 자리한 28개의 별자리에 알려 백성이 편안한 밤을 맞이하라는 뜻이었으며, 33번은 불교의 33천天에 하루를 알리는 시작이라는 의미였다. 또한 새해가 되면 달력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달과 날짜를 알려주었다. 1년 주기의 농사일에 참고하기 위해 양력을 부분적으로 도입하여 절기를 정하고 달력에 표시했다. 옛사람들은 시간이란 흐르는 것과 동시에 끝없이 순환하는 것으로 여겼다. 천체의 운동 주기를 일 년으로 하고,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주기를 한 달로 하였으며, 낮과 밤이 바뀌는 지구의 자전주기를 하루로 삼았다.그렇다면 인정의 의미인 밤하늘 28개 별자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달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약 27일 7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앞서 우리는 지구에서 관찰했을 때 태양이 ‘황도12궁(黃道十二宮)’을 따라 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달도 별자리 위를 움직인다. 이 길을 ‘백도白道’라고 한다.달의 길인 백도와 태양의 길인 황도와의 차이는 약 5°정도 경사각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달이 하늘의 백도를 따라 한 바퀴 도는 약 28일 동안에 달은 초승달, 반달, 보름달, 반달, 그믐달로 변해간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달이 가는 길을 28등분하여 이 시간을 한 달로 정했다. 이것이 음력(陰曆)이다. 더불어 달이 지나는 길의 28개 별자리를 28수라고 불렀다. 나아가 28수를 각각 7자리씩 묶어 동방칠수, 서방칠수, 남방칠수, 북방칠수로 나눴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동서남북을 지키는 수호신을 정했다. 동쪽에는 뿔 달린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상상의 새 주작, 북쪽에는 거북이와 뱀이 결합한 현무가 그것이다.동방7수는 28수 중 춘분날 초저녁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첫째 별자리 각수(角宿·용의 뿔·서양에서 쳐녀자리)를 시작으로 차례차례 등장하는 7개 별자리 별들을 일컫는다. 북방7수는 하짓날 초저녁에 여덟째 떠오르는 별자리(남두육성, 궁수자리)부터 7개의 별자리 별들을, 서방7수는 추분날 초저녁에 열다섯째 떠오르는 별자리(안드로메다)부터 7개 별자리 별들을, 남방7수는 동짓날 초저녁에 스물둘째 떠오르는 별자리(쌍둥이자리)부터 7개 별자리 성수(星宿·모든 별자리의 별)를 의미한다. 28수를 동양에서만 구분했던 것은 아니다. 기원전 1900년경 바빌론에서도 28수로 나눴는데 점차 주변으로 퍼졌다고 한다.참고로 해가 지면 곧바로 깜깜해지면서 별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 햇빛의 반사로 하늘이 어둑어둑한 때가 있다. 이를 혼각(昏刻)이라 하며, 해가 뜨기 전에 하늘이 희끄무레해지면서 별이 보이지 않게 되는 때를 신각(晨刻)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이 둘을 합쳐 ‘트와일라잇(twilight)’라 부르며, 동양에서는 박명(薄明)이라고 한다. /박필우(스토리텔러)

2022-07-24

KF-21 국산 전투기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초음속 전투기 KF-21이 첫 시험비행에 성공하면서 대한민국의 우주항공기술이 또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 6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성공에 이은 쾌거여서 더 감동적이다.KF-21은 우리 공군의 노후 전투기인 F-4와 F-5를 대체하기 위해 시작한 8조8천억원이 투입된 초대형 국책사업.우리의 힘으로 초음속 전투기가 개발됨으로써 우리는 이제 세계 8번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국이 됐다. 세계 7번째로 독자 위성을 쏘아올린 누리호와 더불어 한국의 우주항공기술이 세계적 수준임을 확인한 셈이다.KF-21은 최고속도 2천200km로 음속의 1.8배다. 7.7t의 무장을 탑재할 수 있다. 앞으로 고도, 속도, 기동능력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시험비행을 거치면 2026년부터는 양산체제도 갖춘다.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 전투기를 만들자”고 선언한 지 21년 만에 이룬 쾌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KF-21의 성공 비행을 “자주 국방으로 가는 쾌거”라고 말했다. 초음속 전투기의 공식 명칭은 ‘KF-21 보라매’다. 숫자 21은 시제 1호기가 첫 출고된 2021년과 21세기는 우리의 하늘을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KF-21의 국산화는 두 가지 큰 의미가 있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자주국방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국가 경제면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첨단기술이 탑재된 KF-21 사업에 700군데 이상의 국내 중소업체가 참여했다.앞으로 개발이 완료되면 생산유발효과 24조원 등 엄청난 경제파급 효과가 있다.KF-21의 개발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에 못지않은 국가적 성과라는데 국민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야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7-21

윤석열의 비책, ‘초심자의 행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초심자의 행운’이란 말이 있다. 어떤 분야에 막 입문한 초보자가 일반적인 확률 이상의 성공을 거두거나, 심지어 그 분야의 전문가를 상대로 승리하는 기묘한 행운을 일컫는다.심리학적으로는 일종의 확증편향에 의한 현상이란 해석이 있다. 즉, 초보자가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을 때는 크게 기억에 남는 반면, 초보자가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때에는 금방 잊혀지기 때문이다. 실제 전문가와 실력으로 맞붙었을 때 초보자가 승리하는 경우에 대한 해석도 있다. 누구도 초보자가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도 별 기대가 없기에‘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지 않고서 임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정치초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자 대통령실 주변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실 취임 두달 남짓한 새 정부가 잘한 것도 꽤 있었다. 청와대를 국민들한테 돌려준다든지, 국민통합을 위해서 광주 5.18기념식에 전부 다 내려가 참석한다든지, 또 대통령의 권위적인 문화를 상당히 벗어던지고 도어스테핑을 통해 국민과 가까이 가려고 한 것… 등등이다.그러나 국민들 피부에 와닿는 것은 달랐나보다. 문재인 정부와 뭔가 달리 국정을 운영할 거라고 생각하고 교체를 했는데, 지난 정부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지지율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현재의 대통령실 구성에 문제가 많으니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인사는 검찰 출신의 내부자 집단이, 정책은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가, 나머지 자잘한 정무는 국민의힘 출신이 맡고있는 현재의 권력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주어진 일을 매끄럽게 처리할 수는 있어도 창의적으로 전략을 짜고, 정부와 정치권을 아우르는 캠페인을 전개할 수 없는 조직 구성이다.따라서 대통령실의 정무·홍보라인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개편하거나 힘을 실어줘야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고, 그때그때 잘못을 바로잡아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홍보라인도 정부나 대통령의 활동상황을 소상히 알리는 데 진력해야 한다. 내각의 장관들은 현장을 뛰도록 해야 한다. 장관들이 책상머리 앉아서 보고서만 뒤적거려선 안된다. 배후지원을 해야 할 당 지도부도 정신차리도록 군기를 잡아야 한다.마지막으로 그런 노력들이 국민들 눈앞에 보이도록 연출해야 한다. 파울로 코엘료는 소설 연금술사에서“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고 했다.뭐든지간에 시작할 때는 초심자의 행운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뒤에 가혹한 시험을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어쨌든 윤석열 정부 임기 초반 지지율 회복의 비책으로‘초심자의 행운’을 노려보면 어떨까. 획기적인 윤석열표 정책을 제시하고, 좌고우면않고 직진으로 윤석열다움을 보여주면 좋겠다.

2022-07-21

대통령의 지지율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민심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독재자를 만들기도 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지지율도 그런 민심을 반영한다. 정권이 출발할 때의 지지율은 문재인(84%), 김영삼(71%), 김대중(71%), 이명박(52%) 순이었고, 지지율의 최고점은 문재인(84%), 김영삼(83%), 김대중(71%), 박근혜(67%) 순으로 기록했다. 임기 말의 지지율은 문재인(45%), 노무현(27%), 김대중(24%), 이명박(23%) 순이었는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노무현은 친인척의 비리가 드러나 지지율이 하락했고 박근혜는 탄핵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 했다.눈여겨 볼 것은 직선제 이후 역대 대통령 중에서 문재인의 지지율이 단연 1위라는 사실이다. 평균(52.6%)도 1위고, 최고점도 1위, 임기말 지지율도 압도적 1위다.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말도 있지만, 갈라치기와 ‘쇼통’의 효과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민중이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탄핵했다는 흥분된 분위기에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 대한 기대가 절대적 지지로 모아진 것일 터이다. 편을 갈라 상대를 적폐로 몰고, 포퓰리즘과 프로파간다로 민심이반을 막은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최고의 지지율을 자랑하지만 정작 임기 5년 동안 문재인 정권이 잘 한 거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경제를 파탄내고 외교를 망쳤으며 안보는 오히려 적을 이롭게 하기에 급급한 꼴이었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인데도 소위 ‘대깨문’들은 사이비 교주를 맹신하는 신도들처럼 요지부동이다. 그들은 목이 터져라 ‘조국수호’를 외쳤고, 이제는 ‘개딸’들이 되어 수많은 범죄 의혹에 연루된 이재명을 결사옹위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태들을 보노라면 민심이란 게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이명박 정권은 상당한 기대를 모으며 출발했지만 얼마를 못가서 광우병파동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그 여파로 그의 대표적 국책사업인 4대강사업도 최악의 실책으로 매도되었다. 하지만 4대강사업은 서울시장 시절의 청개천복원사업과 함께 역사적인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정권도 엄두를 못 낼 일을 토목사업의 CEO였던 대통령이 해낸 것이다. 광우병파동은 그야말로 광란이었고, 박근혜를 탄핵시킨 촛불시위도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정권을 탄생시킨 동력이 되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이제 겨우 시작한지 두 달 남짓 되었는데 이전 정권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준 것과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고 자유우방들과의 외교를 정상화 한 것, 지난 정권이 파괴한 법치를 바로 세우고 그동안 은폐해온 악폐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등이다. 인사과정에 다소의 잡음이 있었던 것과 불어닥친 경제난의 활로를 열지 못 한 아쉬움이 있지만, 벌써부터 폄하하고 실망하기 보다는 기대를 가지고 응원할 여지가 더 많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지금은 윤석열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 좌파세력의 무조건적인 음해와 저항을 막아낼 우파의 결집이 절실한 시점이다.

2022-07-21

힘내라! 경북, 그리고 포항

윤영대 수필가 지난 15일 제60회 경북도민체육대회가 포항에서 개최되었다. 5월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대규모로 열린 것이며, 무더운 삼복더위 속에서 29개 종목 1만1천545명이 참가하여 나흘간 승리를 위한 땀을 흘렸다.개회식 준비는 어떻게 하는지 조금은 궁금해서 낮 3시쯤 종합운동장으로 가봤더니 ‘환동해의 꿈, 경북에서 세계로’ 슬로건이 걸린 입구부터 차량이 통제되고 있었다. 개막식은 6시부터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 벌써 많은 관객이 웅성거리고 자원봉사자들은 기념품을 나누어 준다. 식후 축하공연에 노래할 이찬원과 전유진의 팬클럽회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열성적으로 나누어 주는 풍선을 받아들고 이것저것 홍보물도 받다 보니 한 아름이다. 줄지은 천막 아래는 농수산물 홍보판매장과 메타버스 체험관 등 먹거리, 즐길거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코로나 재확산위험이 예고된 마당에 이렇게 큰 행사를 해도 괜찮을까 걱정되기도 했다.공식행사가 끝날 저녁 8시경 다시 갔더니 낮과는 전혀 다른 별천지다. 성화가 불타고 있는 운동장에 마련된 의자는 거의 찼고 스타디움도 관객으로 가득하여 형광 불빛을 흔들어 대며 축하공연을 환호하고 있었다. 무대에는 휘황찬란한 영상의 멀티미디어 쇼가 거창하고, 대회 엠블램 탑 위로 밤하늘을 수놓는 드론 쇼도 펼쳐졌다. 이어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으면 ‘희망 빛 나래, 포항’을 주제로 한 대회의 현란한 불꽃 잔치에 관중들은 빠져든다. 레이져 빔이 경기장을 훑어주면 관중들은 대형 스크린에 비친 가수들의 흥겨운 무대 모습에 열광한다. 젊은이들이 많지만 나이 든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고 모두 마스크를 쓴 채 환호성을 지른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다. 10시경 끝나고 많은 인파와 함께 나오며 이 열정으로 코로나 팬데믹도 잘 이겨나가기를 바랬다.포항지역 6개 해수욕장은 이미 개장되어 이번 체전으로 그동안 침체 된 지역 경기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고 주요 관광지는 3년 만의 특수를 누렸다는 소식이다. 16, 17일에는 환동해의 중심 해양레저도시 포항을 즐기기 위해 카이트 보딩, 윈드서핑, 수상 오토바이 챔피언십 경기가 영일대를 비롯한 여러 해변에서 열렸다. 그동안의 답답했던 일상이 풀리자 시민들은 좀 해이해진 듯한 마음으로 즐기는 듯 버스킹 무대에서는 한여름 밤의 연주를 듣는 시민들이 모여있는 풍경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또 26일부터는 2년간 열리지 못했던 프로 야구 삼성라이온즈와 한화의 3연전이 포항구장에서 펼쳐지게 된다. 이렇게 대규모 경기와 공연, 축제 등이 펼쳐지고 있고, 7월 초 500명이던 경북 확진자가 이번 주 3천명, 포항 550명을 넘어 6차 유행이 심히 걱정된다.4일간 종목별 경기장에서 투혼을 불태운 결과 포항이 종합우승하며 ‘더 큰 포항, 위대한 도약’을 이루기 위한 날개를 폈다. 이번 도민체육대회를 성공적으로 끝낸 힘찬 마음으로 응원하자. ‘힘내라! 경북, 그리고 포항’.

2022-07-21

반도체와 반교육

장규열 한동대 교수 경제가 몸살이다. 대통령의 고백처럼 ‘세계가 힘든 터에 뾰족한 방법이 없는지’도 모른다. 코로나를 헤쳐오면서 풀렸던 돈들이 인플레이션을 추동하고 자칫 빠져나갈 달러를 방어하려면 금리의 추가상향조정도 이미 보인다. 물가는 치솟는데 노동문제까지 겹치니 누가 해도 어려울 판이다.국민도 안다. 우리만 죽을 쑨다면야 똑똑한 국민이 가만히 있었겠나. 온 세상이 힘든 판이니 정부라도 지혜를 모아 노력해 달라는 게 아닌가.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데 주무장관마저 공석이 아닌가. 정책의 이름이야 어떻게 부르든 국민은 모른다. 하루가 멀다하고 급격히 올라가는 감염추세를 꺽어야 하지 않겠나. 국민이 안심하고 건강하게 일상을 이어가도록 지켜주시라.경제가 힘든 가운데 한 가닥 힌트가 보인다. 반도체. 세계증시의 폭락기도 가운데에도 대만의 반도체기업, TSMC가 사상초유의 이익을 기록하며 초강세를 보인다. 시장트렌드와 수요추세로 보아 반도체시장의 장기적 성장과 발전은 거의 분명하다. 사물인터넷과 자동차 등 관련업계 수요와 4차산업혁명의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 더욱 급격한 상승세가 예견된다고 한다.이에 우리 관련업계는 물론 정부의 정책기조도 반도체산업에 초점을 맞추는 중이다. 정부가 최근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2027년까지 반도체 관련 대학정원을 5천700명 늘리기로 했다. 2031년까지 관련 인재양성 규모를 4만5천명에 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성장 가능성이 확인된 분야에 집중하여 투자하겠다는 생각에는 같은 마음이다.교육이 이뤄야 할 바를 생각하면 한 가닥 걱정도 있다. ‘교육이 바로 경제다’라는 생각. ‘돈이 안 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만 배워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배우는 아이들을 경제를 일으키기 위한 도구로만 바라보는 정책이 건강할 수 있을까. 그렇게 인식되며 자라나는 아이들은 혹 세상을 돈으로만 바라보지 않을까.귀하고 소중한 가치들을 풍성하게 가르쳐 험하고 거친 세상에도 넉넉하고 여유있는 인성으로 길러야 하는 게 아닌가. 어른들의 기준과 욕심으로만 아이들을 몰아간 끝에 각박하고 메마른 사람들만 기르게 된다면 어찌 되는가. 대학정책은 가르치는 학문분야들의 영역 간 균형과 상생 관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반도체 관련 분야에만 투자를 몰아세우는 방식도 아슬아슬하다. 견제와 균형은 교육에도 필요하다.반도체로 가다가 반교육이 될까 두렵다. 반도체를 일으키려다가 절반만 가르치거나 아예 교육에 반하는 결과를 낳으면 어찌하겠나. 교육은 사람을 길러야 한다. 교육은 인적자원을 기르는 일이 아니며, 사람은 돈 만드는 기계가 아니다. 교육이 길러낸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며 주변을 밝히고 이웃을 섬기도록 이끌어야 한다.재주와 욕심으로만 그득한 인성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차고도 넘친다. 이해와 관심, 공감과 배려와 함께 쌓아올린 실천력으로 승부하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2-07-20

다가오는 빅블러 시대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급속한 디지털화로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빅블러(Big-blur)’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특히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사라진 ‘빅 블러’ 시대의 도래는 우리 사회에 매우 큰 변화를 예고한다.금융당국이 19일 금융산업 혁신과 디지털 전환 지원을 위해 금산분리 등 규제 완화를 속도감있게 추진하기로 하자 금융권이 일제히 환영했다. 금융사의 비금융 서비스 제공을 막아 온 낡은 규제가 해소되면 ‘금융의 BTS’로 상징되는 혁신 신사업과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와 ‘헬스케어 금융 플랫폼’이 현실화할 수 있다.은행업계에서는 은행의 자회사 업종 규제(은행업감독규정)에 ‘투자한도규제’ 방식을 도입해 비금융 서비스 진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법령상 은행 자회사가 영위할 수 있는 업종이 15개로 한정돼 있는데, 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자회사에 대한 투자 규모가 은행 자기자본의 1% 이내일 경우 투자를 허용해 달라는 주장이다.이렇게 되면 자기자본 20조원 내외인 시중은행은 비금융 자회사에도 2천억원 수준의 투자를 할 수 있다.자회사 업종 제한을 푸는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은행들은 사용자환경(UI/UX) 디자인 회사, 부동산 등 생활서비스 업체는 물론 소프트웨어나 디지털 인식기술 기업 등 비금융 자회사 인수가 가능해진다.보험사들도 투자 가치가 있는 게임사나 연예기획사를 보유하거나 보험과 연계된 사업모델 구축을 위한 AI(인공지능) 플랫폼 자회사, 흑은 건강관리 자회사 등의 회사 운영도 가능해진다.윤석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금융규제 혁신이 새로운 신성장동력이 되어주길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7-20

자연이 내리는 종족 번식과 유지의 명

오낙률시인·국악인 어디 출렁이는 물결이 바다나 호수, 또는 강에만 있을까? 해마다 여름이면 동해의 바다가 산으로 들판으로 넘치기라도 한 듯 세상이 온통 푸른 물결로 출렁인다. 그렇게 출렁이는 물결 위에 연꽃이며 참나리꽃, 원추리꽃, 개망초꽃 등의 여름꽃은 출렁이는 산촌의 푸른 물결 위에 반짝이는 윤슬이 되어 한여름의 시골 정취를 완성한다. 산촌의 여름은 푸르디푸른 물의 천국이어서, 온갖 생명으로 새로이 피어나는 물의 고향 같아서, 어쩌면 신록에 묻혀 사는 나조차도 신록처럼 푸르고 청순해야 마땅할지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나뭇잎으로 혹은 이름 모를 풀잎으로 피어나서 마치 바닷물보다도 더 푸르게 출렁이는 저들의 몸속에는 바닷물이나 강물보다 오히려 몇 배는 더 맑고 순수한 물이 가득 차 있음이니, 필자의 시선으로 저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초원의 몸짓을 출렁이는 물결로 보는 것에 그 타당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가끔 젊은이들로부터 굳이 결혼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혼인을 거부하는 풍조가 혼기를 놓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는 반갑잖은 풍조로 알고 있었는데 요즘은 한술 더 떠서 젊은 남성에게서도 그런 말을 종종 듣게 된다.필자는 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농사를 지으면서 느낀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며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농부들은 농사를 짓다가 때가 되었는데도 열매를 달지 못하는 개체가 발견되면 사정없이 자르거나 뽑아서 버린다. 소를 기르면서도 마찬가지다. 암소가 새끼를 가질 나이가 되어 몇 번이고 수정을 시켰는데도 새끼를 낳지 못하면 가차 없이 도태시킨다. 그렇게 농사행위에서도 자연의 순리가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데, 대자연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눈길에 종족 번식 행위를 거부하는 소수의 인간이 마냥 곱게 보일까 싶다.사람이 나이 들면 고독이 가장 무서운 형벌이 된다. 따라서 인간은 젊어서부터 고독을 경계하며 그에 합당한 대비책을 준비하게 된다. 작금의 사회에 비추어 볼 때 사람이 절대고독에 빠져드는 나이는 개인과 성별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략 70세 전후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그것이 사람이 가정을 꾸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비록 젊어서는 혼인을 거부하거나 무시하고 살 수 있겠지만 나이 들어 그때가 되면 다들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젊어서부터 지상 모든 생명체에게 내려지는 종족 번식과 유지의 명을 받지 못한 죄로 그들은, 가령 80세까지 살면 10년형. 90세까지 살면 20년형 운이 나빠서 홀로 100세까지 살게 되면 삼십 년 형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건강하게 혼인 생활을 지속한 사람은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를 가꾸어온 공으로 그 사회 안에서의 행복을 죽을 때까지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형무소 생활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단지 육체가 고단한 생활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진정 형무소 생활이 두려운 것은 고독이라는 단어가 그토록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2022-07-20

어떤 부끄러움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인간은 누구나 살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학창시절에는 외모나 성적에서, 성인이 되어서는 부족한 경제력에서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갖는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스스로에 대한 감정이다. 우리는 이런 부끄러움에 익숙하다.한편 이와는 질적으로 다른 부끄러움이 있다. 이번 학기 종강을 하고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연구실로 찾아왔다. 학생은 방학을 맞아 본가에 내려가기 전에 안부 인사를 하러 왔다고 했다. 이번 학기 꽤 열심히 수업을 들었으며 곧 4학년이 되는 학생이라 진지하게 이야기 나눴다. 학생은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어서 그 방향으로 계속 나가고 싶어 했다. 나는 대학교 4학년의 진로 변경이 늦은 것이 아니라며 좀 더 적극적으로 그림에 몰두하길 권유했다. 학기 말에 아르바이트로 몇 번 결석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하지만 내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학생의 고민은 어려운 가정 형편과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충돌하며 생겨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대학을 다닐 수 없는 그 학생의 상황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재능이 있지만 돈 때문에 자기의 꿈을 포기하는 학생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인간은 보통 자기중심적이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토대를 두고 주변을 인식하고 판단한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우리는 타인과의 연결보다는 단절에 익숙하다. 경험적 진실의 분명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겸손해지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최근에 목격되는 장면은 나와 타인 사이에 장벽을 높게 세우고 대립하는 형국이다. 나의 기준에 따라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거나 무능력한 대상으로 전락한다.지난 3일 연세대학교에서 시급 440원 인상, 샤워기 설치 등을 요구하며 시위 중이던 청소 노동자들에게 세 명의 연세대학교 학생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발생했다. 학생들은 지난 4월과 5월에도 청소 노동자들의 시위를 경찰에 고소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학생들이 어떤 생각으로 청소 노동자들을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는지는 명확하다. 신성한 배움의 전당인 대학에서 ‘노조’의 불법시위로 자신들의 수업권이 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분노의 표시이다.고소한 학생들에게 노조란 무엇이며 청소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이 정당한 것인지를 질문할 여력은 없다. 청소 노동자가 존재해서 자신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도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청소 노동자들의 ‘시위’, 그 자체를 대상화시켜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존재로 규정할 뿐이다. 이러니 청소 노동자들의 요구에 침묵하고 있는 대학본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발언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우리는 왜 문제를 넓고 깊게 보지 못하는 것일까? 소수 대학생에게만 한정된 문제일까? 오늘 내가 편한 것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동은 자본으로 쉽게 치환되지만, 세상에는 그런 교환법칙에 따르지 않는 관계들이 더 많다.

2022-07-20

안기러 가다

양태순 수필가 차가 느리게 달린다. 파도와 갈매기가 썸타듯 지분거리는 해안도로를 벗어나니 너른 내(川)가 펼쳐졌다.바다에 물들었던 눈이 파란색을 걷어 올리기 전 물소리가 젖어 들었다. 투명한 물소리가 차르르차르~찰 음악처럼 감겨들어 더없이 느긋하다.구부러진 길이 펴졌다 다시 구부러지는 동안 내가 따라왔다. 넓은 내를 꽉 채우지 못한 물길이 크고 작은 바위를 돌아서 혹은 틈을 비집고 저만의 길을 유유히 가고 있다. 깎인 바위가 둥그스름하다. 아마도 바위에 내려앉은 햇살이 고즈넉이 시간을 둥글게 익혔나 보다. 15킬로미터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에서 제각각인 바위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불영사 일주문 앞에 섰다. 천축산불영사 현판이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라 다그치는 듯하다. 부처의 그림자가 있는 절, 지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닿은 곳이다. 거대한 문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많은 번뇌가 일어섰다 사그라지고 다시 안개처럼 피어나는 길 잃은 마음을 문밖에 두고 문턱이 없는 경계를 넘었다.솔향이 달려와 반겼다. 길옆으로 늘어서 있는 소나무가 인사를 하듯 수굿이 가지를 살랑이고 있다. 한껏 들이켜서 깊숙하게 채운다.숨어있는 새소리도 정겹다. 꽁지깃 까딱까딱 흔드는 재롱둥이 새가 눈앞에 있는 듯 흐뭇하다. 눈을 돌리니 하늘을 가린 나뭇잎 틈으로 들어온 빛이 빗질을 열심히 하는지 잎새들이 반짝인다. 모두가 청량한 향기로 다가온다. 살짝 내리막길을 따라 걷는 걸음에 자박자박 박자가 실린다.초록이 빚어낸 풍경에 눈도 마음도 시원해진다. 솔숲을 지나니 굴참나무와 싸리나무, 나무를 기어오르는 덩굴들이 어우렁더우렁 어울려 있다. 서로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제자리에서 자신만의 색을 내는 모습에서 마음 수양이 한참 부족한 자신을 발견한다.늘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미련이 많다. 미처 채워지지 않는 물질적 정신적 허기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고약한 심보를 떼어내고 싶으나 쉽지 않다. 가끔 뒤죽박죽인 채로 날이 선 감정을 갈무리하지 못해 난감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이 고단하다. 이제는 정말 내려놓자 다짐한다.다리 아래로 계곡물이 출출 흘러간다. 없는 길을 만들며 수천 년을 굽이져 낸 길에는 갖가지 조형물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탠다. 흔한 너럭바위를 비롯하여 새, 얼굴, 부처, 동물 등속이 보는 이의 심상에 따라 형상이 보인다. 내 마음이 부처면 남도 부처로 보인다는 말에 공감하는 순간이다.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불영사에 도착했다. 신라시대 기암절벽을 끼고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절, 저절로 신심이 우러나는 곳은 아니다. 일주문을 지나 걸어오는 동안 세속의 부질없는 생각들을 다 부려놓고 천축산에 폭 안기면 세상만사 다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절이다. 나보다 바람이 먼저 도착해 내 소식을 전했는지 품 벌려 맞아주는 불심이 향기롭다.불영지에 연꽃이 아련하다. 법영루 물그림자가 바람의 무늬를 밀어내고 연잎 위에 법경을 펼쳐놓았다.가만히 귀를 연다. 마음을 내리치는 죽비 소리에 속이 뜨끔 따가워진다. 모두가 내 탓이고 내가 부족한 탓이다, 방언 터지듯 고백한다. 슬며시 불심에 기대어 ‘그러나 오늘만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안아주세요.’ 털어놓는다.산에서 내려다보는 부처를 올려다본다. 불쌍한 중생이라 안타까워할지 측은지심으로 기회를 줄지 아리송하다. 아무렴 어떨까.내가 내 마음 둘 데 없어 안기러 왔으면 안기면 그만인 것을. 천 근의 무게로 짓누르던 화기와 슬픔이 한쪽으로 비켜났는지 속이 편안하다. 아늑한 품속 같은 불영사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물소리 바람 소리 휘휘 몰려 와 경전을 풀어낸다. 받아적는 손이 바쁘다. 거리가 멀어 그림자로 다녀가는 부처의 마음을 마음에 들이며 고요히 두 손 모은다.

2022-07-20

병자(丙子)

육십갑자 중 열세 번째에 해당하는 병자(丙子)다. 천간(天干)은 병화(丙火)요, 지지(地支)는 자수(子水)다. 계절로는 병(丙)은 5월 더운 여름이고, 자(子)는 12월 추운 겨울이다. 추운 겨울에 호수나 바다 위에 떠있는 태양이다.병자일주(丙子日柱)는 음기가 가장 강할 때이므로 태양이 자기의 뜻을 펼치기가 사실 쉽지 않을 환경이다. 매사에 조심스럽고 차분한 것이 특징이며, 태양이 떠오르는 기운처럼 기회가 왔을 때 성취할 수 있게 스스로를 단련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그러나 자신이 곤란을 당하게 되면 인덕이 있어서 구호의 손길이 저절로 온다고 한다. 반면에 성격적으로 조금 불안정하여 엄청스럽게 정(情)이 많기 때문에 누구를 좋아하면 푹 빠지는 경향이 있고, 아니다 싶으면 남의 등에 칼을 꽂듯이 돌아서는 기질이 있다. 병화(丙火)는 대체적으로 외모가 수려하고 잘 생긴 사람이 많고, 친절하고 사교성이 좋아 인복이 따르는 경향이 있다.자수(子水)와 병화(丙火)는 서로 상극(相克)을 하고 있다. 적은 양의 물은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증발되기 십상이며, 많은 물은 불을 끄기도 한다. 물과 불은 서로의 영역과 성질이 다르며, 서로 대립되고 쉽게 섞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외부의 조건에 의해 서로 합화(合化)될 수가 있다.“서로 반대되는 것은 하나다”라고 주장한 중세 독일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1401∼1464)는 반대물의 일치를 창안했다. 즉 반대되는 모든 것들은 하나에서 나와서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과정에 있으므로 동일하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있는 것과 없는 것, 삶과 죽음, 선하고 악한 것, 아름답고 추한 것, 귀하고 천한 것’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대립된 양극단이 하나로 일치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대구 태생인 현진건(1900∼1943) 작가의 ‘운수 좋은 날’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김첨지라는 평범한 인물을 통해 하층민의 비극적인 삶을 그려내고 있다. 인력거꾼 김첨지는 아픈 아내가 오늘 하루만 나가지 말아 달라는 간청에도 일하러 나갔다. 며칠 전에 보리죽을 끓여 먹기도 어려운 처지에 설렁탕을 사달라고 해서 야단쳤던 적이 있었다. 오늘은 비까지 내리는 날이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나 운수가 좋다. 이 손님이 내리면 그 손님이, 그 손님이 내리면 저 손님이 타는 것이다. 더욱이 인력거요금에 시비하는 손님도 없었다. 그냥 달라는 대로였다. 그는 행복했다. 이제 아내에게는 설렁탕을, 그리고 젖배를 곯은 세 살 배기 아기에게는 죽을 사줄 수 있기 때문이다.대통의 운수는 계속 이어졌다. 일말의 불안을 한잔 술로 떨치며 설렁탕 한 그릇까지 사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내는 집에 죽어 있었고, 어린 아들이 엄마의 빈 젖을 빨고 있었다.같은 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동시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면 동시에 일어난 날은 좋은 날인가, 아니면 나쁜 날인가? 재수 좋게 돈을 많이 벌었다는 입장에서 보면 좋은 날이고, 아내가 죽었다는 현실에서는 나쁜 날인 것이다. 그렇지만 삶은 문제의 연속이며 살아가는 것은 그러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사람은 태어난 환경과 유전적 자질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주팔자의 틀 속에서 벗어나서 행복을 추구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일상생활에서 희미하게나마 우리는 쿠자누스적 운명의 발길을 예감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지극히 아름다운 것 앞에서 절로 눈물이 솟고, 진정 행복한 순간에 우리는 불안해진다. 삶이 몹시 즐거울 때 참으로 죽음이 두려워지고 만남의 기쁨에 황홀해 있는 순간 이별의 슬픔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지지(地支) 자(子)는 아들 자(子)자 답게 왜소하며 양지바른 담벼락 아래서 놀이에 열중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또한 쥐의 형태로 쥐 서(鼠)이며 야행성으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고, 주로 은밀한 곳에 숨어서 살고, 숨어다닌다. 병자일주(丙子日柱)의 자(子)는 예의바르고 책임감이 강하며 스스로 통제하여 이치에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왕성한 번식력 덕분에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인내심과 지속력과 생활력이 강하고, 먹이를 모아놓는 습성 때문에 숨겨놓은 재산이 많을 수 있다.가정생활을 잘 꾸려나가는 데는 재산이 필요하다. 재산은 가정의 일부이고, 재산을 획득하는 기술은 가정을 운영하는 기술이다. 생활필수품이 마련되지 않으면 잘살기는커녕 사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연이 어떤 것도 불완전하거나 쓸데없이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면,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서다. 예를 들어 양털은 옷감을 짜는 사람에게 천을 만드는 원료가 되는 것이다. 또한 사냥도 재산 획득 기술의 일부이며 어떤 의미에서 전쟁 기술도 재산 획득 기술의 일종인 것이다. 그리고 재산이나 부가 본성적으로 생활필수품을 마련하기 위한 획득 기술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이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1636년 병자년(丙子年) 12월에 일어난 병자호란으로 인해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는 충절을 기억하지만 청나라 심양에 인질로 끌려간 약 40만 명의 백성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눈물의 세월은 기억하지 않는다. 특히 조선으로 돌아온 여자들을 ‘환향녀(還鄕女)’란 이름으로 정죄하였다.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다. 즉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거나, 좋은 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과거에 의미 없이 한 말과 행동의 결과가 현재의 인과로 드러나는 법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힘과 기다리는 힘, 인내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청정한 세상인 정토(淨土)가 아닌 괴로움으로 가득찬 세상인 예토(穢土)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최상의 날을 경계하고, 운수좋은 날을 조심해야 한다. 후회스러운 그날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22-07-20

악(惡)도 궤멸은 안 되는데 하물며 보수 세력을

이명균 창원대 명예교수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극시 ‘파우스트’의 앞부분 ‘천상의 서곡’에서 파우스트를 유혹하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을 허락하면서 신(창조주)은 “인간은 자칫하면 풀어지기 쉽고 무조건 쉬기를 좋아하기에 그들을 유혹하며 자극하게 될 악마의 역할을 할 동료를 붙여주려 하지”라고 말한다. 한편 파우스트가 그에게 접근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대관절 자네는 뭘 하는 자인가?”하고 물었을 때, 메피스토는 “항상 악을 탐하면서도 오히려 늘 선을 이룩하는 그 힘의 일부입니다.”라고 대답한다.이처럼 신의 위치에서 본다면 악마란 증오나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 휴식이나 만족감에 빠지기 쉬운 인간을 흔들어 일깨우고 자극하는 존재가 된다. 신은 악마를 생성의 힘을 지속시키기 위한 자극제로서 절대 필요한 존재로 여긴다. 이런 의미에서 악도 신의 세계를 유지하는 요소 중의 하나다. 선과 악은 대립적 특성을 가지기는 하지만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을 보다 높은 질서와 조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한다. 이는 우주에서 낮과 밤 또는 음양의 조화와 작용으로 만물이 생성되고 운행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신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동료나 장난꾸러기 정도로 여기며 꼭 필요한 존재로 본다.생물종의 다양성은 지속적인 지구 생태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는 해충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익충의 먹이공급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에서도 다양성은 매우 중요한데, 고대 로마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 민족들의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을 포용했던 시대에는 번창하였지만, 동일 종교와 순수를 추구 강요하면서는 로마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우리 사회도 다양한 철학, 문화, 신념들을 포용하며 상호 존중하여야 보다 풍성하고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몇 해 전 당시 정치권의 중심에 있던 어느 인사가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을 때, 나라의 주요 정치인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보수 궤멸’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으며,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다. 민주사회란 다양한 사고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자극과 견제를 통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변화발전을 이어가는 곳이다. 진정한 진보라면 보수가 설사 악이라 하더라도, 궤멸시키려 하기보다는, 보수를 거울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건전한 양식의 진보라면 보수를 인정할 수 있는 자신감과 아량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보수도 진보를 존중하고 수용하며 때로는 진보와 협의 협력할 줄 아는 능력과 자세를 갖추어야 사회가 보다 풍요롭고 발전적이 될 것이다.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보수라는 쪽에서도 ‘진보의 궤멸’을 생각해선 결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제대로 된 보수라면 진보가 건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진보 쪽에도 “이전 정부에서 ‘증오의 대오’를 ‘정의의 대오’로 착각하는 실책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음을 보수는 기억하길 바란다.

2022-07-19

채무감축 위한 재정혁신, 시의적절하다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홍준표 시장 체제의 대구시는 지난 14일 “강도 높은 재정혁신으로 예산을 줄여 올해 5천억원, 4년 내 1조5천억원의 재원을 마련하여 홍 시장 임기 내에 대구시가 안고 있는 빚의 60% 이상을 줄이겠다”고 밝혔다.현재 대구시의 채무는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이 19.4%로, 22.6%인 서울시에 이어 전국 17개 광역단체 중 두 번째로 높고, 1년 동안 채무비율이 4.5%포인트 늘어 증가율은 1위이다. 대구시의 채무액은 지난해 말 기준 2조3704억원에 달한다. 현재 대구시가 연간 치러야 하는 이자만 400여억 원이다.지난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를 올리는 소위‘빅스탭(big step)’을 사상 처음으로 단행했다. 이제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고금리시대가 오는 것이 확실한 이상 채무 감축이 가장 시급한 좋은 경영 전략이다.이에 앞서 대구시는 시청 조직을 2실 12국 3본부 90과에서 3실 9국 2본부 86과로, 19개 사업소를 8개 사업소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유사·중복 조직을 통·폐합하고, 부서 간 칸막이를 제거하여 상호협력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작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개편하는 조직 혁신에 착수했다. 아울러 시는 산하 18개 공공기관이 기능 중복과 방만 경영 등의 문제가 있다고 파악하고 11개로 통폐합하는 구조개혁을 통해 예산을 절감하겠다고 밝혔다.28년째 지역내총생산(GRDP) 만년 꼴찌로, 세수를 늘리기도 어려운 대구시 입장에서는 예산을 절감하여 지출을 줄이고 채무감축을 위한 재정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또한,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지 않으려는 현 세대의 도리이기도 하다.홍 시장은 자신의 어릴 때를 회고하며 “우리 가족은 부모님 생전에 빚에 허덕이는 비참한 생활을 했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되면서 가난하더라도 빚을 멀리 했다. 빚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안다”고 했다. 기업도 경영이 어려워지면 구조조정을 통해 규모를 축소하고, 고금리 시대에는 가장 먼저 채무를 상환하려는 노력을 한다. 지방 정부에서는 조직을 혁신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예산을 절감하여 최대한 지출을 줄이고 채무감축으로 이자를 줄이는 재정혁신 방안은 바람직하다.조직개편과 공공기관 경영 효율화, 과감한 지출 구조 조정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불유불급한 자산을 매각하여 마련된 재원으로 채무를 감축하고, 채무 감축으로 줄어드는 이자를 복지비용이나 미래 준비에 투입하려는 홍준표 시장의 재정혁신 방안은 시의적절하다.홍 시장이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 78.8%라는 대구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은 지금 당장에만 매몰되어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책이 아닌, 지금은 힘들지만 대구의 미래와 미래 세대를 위해 험난한 길을 기꺼이 가자고 하는 그의 솔직함과 정공법 때문이다.홍준표 시장과 대구시는 공언(公言)한 대로 채무감축을 위한 재정혁신으로 건실한 재정 기반 위에 대구 미래 50년을 준비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국채보상운동의 진원지 대구의 정신이며, 파워풀한 대구를 건설하는 초석이고 대구의 영광을 되찾는 길이다.

2022-07-19

국민의힘 ‘혁신위 카드’ 주목한다

심충택논설위원 국민의힘 내분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실체 없는 의혹으로 윤리위를 소집해 당 대표를 몰아내더니, 이제 이준석 축출의 배후로 지목받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이 링위에 올라와 내분을 주도하고 있다.현정권 실세로 알려진 장제원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말씀이 무척 거칠다. 권(성동) 대행은 집권여당 대표로서 막중한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며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를 직격했다. 대통령실 공무원 사적채용 논란과 관련한 권 대행의 발언내용에 불만을 제기하며 공개적으로 경고한 것이다. 장 의원은 윤 대통령 당선인시절 비서실장을 하며 대통령실 인사를 주관했다. 권 대행이 청와대 사회수석실에 임용된 우모씨의 채용과정을 언론에 해명하면서 ‘장 의원에게 압력을 넣었다’고 표현한 것에 대해‘거칠다’며 지적한 것이다.집권당 핵심인사들이 당 내분의 중심에 서면서 권력투쟁으로까지 비치자 윤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11∼15일 전국 18세 이상 2천519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과 관련한 긍정 평가는 33.4%로 추락했다. 부정 평가는 63.3%로 올라갔다. 부정 평가는 대구·경북(긍정평가 3.8%p 상승)을 제외하고 전 지역에서 상승했다.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윤 대통령 지지율이 30% 초반대로 떨어진 것은 대선 당시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년 후 총선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호다. 민심이반의 원인에 대해 야당 쪽에서는 윤 대통령 인사스타일과 적폐청산 수사를 꼽고 있지만, 주된 이유는 집권당 중진들의 권력다툼 때문이다.국민의힘 내분사태는 그동안 윤 대통령과 이준석 대표가 애써 확장해 놓은 당의 외연을 갉아먹고 있다. 집권당의 텃밭인 TK 민심도 예전과 같지 않다. 국민의힘이 이처럼 선장 없는 난파선 상태로 계속 갈 경우, 차기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국민의힘이 차기 총선에서도 메이저 정당을 유지하려면 당의 리더십을 확고하게 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당장 급한 것은 당의 뉴스메이커가 ‘윤핵관’이 아니라 ‘혁신위’가 돼야 한다. 국민의힘 혁신위는 이준석 대표가 지방선거 직후 공천 혁신을 주창하면서 출범했지만, 친윤(윤석열)계는 ‘이 대표의 사조직(배현진 의원)’, ‘이준석 혁신위(김정재 의원)’라고 비하하며 당의 공식기구로 인정하지 않았다.최근 권 대행이 “혁신위원회는 최고위 의결을 거친 공식기구로 당내 상황에 위축될 이유가 전혀 없다”며 혁신위에 힘을 실어준 것은 현명한 처사다. 권 대행도 언급했지만, 국민의힘이 수권정당으로 신뢰를 받으려면 혁신위가 특정 정치 세력이나 특정인에 편중되지 않는 ‘혁신안(공천룰 포함)’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한다.지난 18일부터 ‘의견수렴 경청회’라는 타이틀로 활동에 들어간 혁신위가 정국흐름을 바꿀 수 있는 카드를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2-07-19

폭염의 경고

우정구 논설위원 폭염(暴炎)이란 평년보다 기온이 매우 높아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기온인 상태를 말한다. 혹서(酷暑), 맹서(猛暑)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여름철 폭염을 가리켜 교만한 태양이라는 뜻의 교양(驕陽)이라고 불렀다 한다. 태양에 대한 원망의 뜻이 담긴 표현이다.기상청은 하루 체감온도가 최고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이면 폭염주의보를 내리고, 35도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일 때는 폭염경보를 발령한다. 33도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32도까지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극히 적다가 33도로 오르면서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통계를 기준으로 했다고 한다.2018년 여름은 역대급 폭염이 지구를 덮친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의 낮 기온이 39.6도까지 올랐고, 강원도 홍천은 41도를 기록했다. 지구촌 곳곳이 폭염세례로 몸살을 앓았다. 기상과학자들은 이를 지구온난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결과며 앞으로 이런 폭염이 더욱 심하게 닥칠 것을 예측했다.기상청은 올여름도 장마가 물러나면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예고했다. 지난 6월 중 전국의 평균 최고기온과 폭염 일수, 열대야 일수가 역대급 기록을 가진 1994년, 2016년, 2018년도를 능가했다고 하니 이제부터 본격 더위가 시작되는 듯하다.외신보도에 의하면 지금 전 세계가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에서는 폭염과 함께 산불까지 발생해 온 나라가 비상이다. 스페인은 낮 최고기온이 45.7도에 달하는 이례적 폭염으로 36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전한다.길어지고 잔혹해진 폭염현상, 인류가 자초했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고 두렵다. /우정구(논설위원)

2022-07-19

도둑맞은 가난

매 선거철마다 보이던 풍경 가운데 하나. 선거를 앞둔 후보가 가난한 쪽방 촌에 2~3일 가량 머물며 기자들과 인터뷰를 한다.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가난한 우리 이웃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진심어린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이런 쪽방촌이 무수히 남아있다.영국의 래퍼 겸 작가인 대런 맥가비는 이와 같은 광경을 ‘가난 사파리’(돌배게, 2020)라 부르며 꼬집는다. 정부와 시민단체로부터도 평소 때에는 소외되고 배제되어 있다가, 선거철이 되면 관심이 집중되는 광경을 비꼬는 말이다. 2017년 영국의 켄징턴 북부에 위치한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 화재사건으로 150명가량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정부와 언론은 빈민층의 실태를 집중조명 했지만, 여론의 관심은 금새 더 자극적인 화제로 옮겨갔고, 빈민층에 대한 관심은 금방 사그라졌다. 맥가비는 그와 같은 사회적 풍경을 진열창 앞의 안전한 거리에서 원주민을 잠시 구경하며 동정을 표하다가, 금세 잊어버리고 만다며 이를 ‘사파리’에 비유한 것이다.우리가 이와 같은 영국의 풍경에 선거철 정치인들의 모습을 겹쳐 본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진정성은 있다. 그렇게나마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가난을 잠시나마 보고 듣고 경험해보는 것이 어쩌면 그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거주민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인 민폐만 끼치며 어떠한 배려도 보이지 않은 채, 떡볶이를 먹고 국밥을 먹고 라면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모습에서 무슨 진정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단지 가난을 소비할 뿐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말이다.이것을 단지 정치인들만의 문제라 말할 수 있을까. 매년 이즈음이 되면 생기던 대학생 쪽방촌 체험도 그렇다. 정작 그곳에 사는 주거민의 동의는 구하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체험 프로그램 속에서, 가난은 현실이 아니라 단지 테마 체험에 불과하다. 브라질의 호싱야, 인도 뭄바이의 다라비,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타운십 등지에서 이루어진 슬럼가 투어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한 때의 감정적 여흥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여행을 하며 이국의 정서를 체험하듯 가난을 잠시 체험해볼 뿐이다.사람들은 가난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은 자신이 가난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가 가난하고 불우했다 생각하지만, 그와 같은 가난은 상대적인 개념일 뿐, 앞서 거론한 지역에서의 절대적 가난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이 말하는 가난이란, 자신의 물질적 욕구가 여러 제반으로 인해 충족되지 못했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거나 현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질적 수준이 모자랐던 시간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가깝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가난이란 실제적인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들은 잔인하리만치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이 여전히 가난한 것은 자신과 달리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가난은 생을 위협하는 재난이 아니라, 자신이 정복해온 삶의 여정의 트로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이 실제로 절대적 가난에 처한 사람들의 내면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가난을 부정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른 가난한 사람들을 배척한다. 적어도 자신은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부정하고 그들의 노력을 부정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이 사회의 중산층이라 여기지만, 하루하루 몰려오는 빈곤에 따른 여파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나 비슷한 생활수준의 타인에게 분노하게끔 만든다. 예컨대, 자신의 노력으로 쟁취한 것을 가난한 사람들이 빼앗거나 무임승차한다는 식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인터넷 공간만 돌아봐도 자신의 실제적 가난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자신은 이미 가난을 극복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반, 자신은 가난하다 말하지만 실제 경제적 수준은 절대적 가난과는 한참은 거리가 먼 사람들이 반이다. 진정한 절대적 가난에 처한 사람들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여러 방식으로 그들의 삶은 감춰지고 사라진다. 문제화되지 않기에, 그와 같은 사람들과 공간은 한국 사회에서 없는 것으로 셈해지고 만다.이제는 TV 프로그램마저 달동네와 쪽방촌을 조망하지 않으며,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의 나름의 힘든 삶을 가난으로 포장해 보여줄 뿐이다. 소설가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보다 훨씬 더 질이 안 좋은, 심지어 그와 같은 ‘가난장난’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이제는 가난한 사람들마저 스스로를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이, 대한민국의 현재이다. 부디 이번에는 그 많은 공약과 정책들이 무사히 이행되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2022-07-19

내향인으로 살아남기

내향적인 사람으로 산다는 건 오해를 사는 일의 연속이다. /언스플래쉬 사람마다 정해진 에너지가 있다는 말을 온몸으로 깨닫는 요즘이다. 근무 시간 내내 몸 여기저기가 고장 난 것처럼 삐걱거리고 책상 앞에 앉아 원고를 쓰노라면 일순 머리가 핑 돌기도 한다.연비가 좋지 않아. 내 몸은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자책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골골대면서 모처럼 찾아오는 휴일엔 밖으로 나가기는커녕 침대에 누워있는 것으로 시간을 다 쓴다. 어쩌면 나는 게으른 사람인 걸까? 소중한 주말을 멍하니 흘려보내면 그런 생각이 떠오르고 쉽게 우울해진다.그러다 최근, 나 자신을 변호하기 좋은 말을 발견하게 됐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오은영 박사가 한 이야기였다. 시도 때도 없이 누워있는 아이를 보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긴장감이 높다. 특히 변화가 있거나 새로운 걸 할 때는 긴장을 많이 한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긴장한다. 그래서 집에 오면 그 긴장을 완화시키려고 누워있는 거다. 게으른 게 절대 아니다.”그녀의 말에 위안받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무수한 ‘집순이’, ‘집돌이’들, 특히 언제 어디서나 누워있는 것을 생활화하는 이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을 테다. 그렇다. 우리를 단순히 게으른 자로 취급해선 안 된다. 사회를 살아가는데 남들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할 뿐.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는 ‘집순(돌)이’들도 두 부류로 나눠진다. 집에서도 바쁘게 움직이는 쪽과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쪽. 당연히 나는 종일 누워있어야만 하는 쪽이다. 침대 밖을 나오는 것도 힘든데 하물며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은 문자 그대로 강행군이나 다름없다. 오랫동안 고대해왔던 만남, 혹은 좋아하는 사람을 보러 가는 발걸음조차 무겁다. 누군가를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눠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말을 꺼내는 상대의 의도를 돌아보게 되고 대화 도중 문득문득 떠오르는 침묵이 불안하고 스스로의 말을 끊임없이 검열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피로감이 쌓이는 것이다.외향적인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봤을 때 내향적인 사람은 어딘가 불편하게 보일 수 있다. 자신만큼의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고 서운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내향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떠올려 보기를 권한다. 바깥으로 뻗어가지 않고 안쪽으로 향한다는 것. 모두의 에너지가 향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면 상대를 이해하기가 조금은 수월해진다.내향적인 사람, 다시 말해 내향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오해를 사는 일의 연속이다. ‘요즘 뭐 하고 살아?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는 연락은 내향인들에게 있어 강도 높은 업무를 부여받은 것과 비슷하다. 약속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약속 당일까지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디서 만나야 하지? 만나서 먹어야 할 음식은? 어떤 주제의 대화를 나누어야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을까? 그 시간대는 사람들이 붐빈다던데 차라리 다른 곳에서 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상대를 만나기도 전에 완전히 지쳐버린다.이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억울한 목소리로 외치고 싶다. 알아요. 나도 이런 내가 싫단 말이에요.싫어도 별수 없다. 자기 자신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인류의 오랜 소망으로 여러 장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변형의 형태를 보라. 마블 코믹스의 ‘스파이더맨’은 루저에 가까운 인물이 거미에 물려 하루아침에 슈퍼 파워를 갖게 되는 서사를 담고 있지 않은가.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나 자신에서 탈피하여 완벽하게 다른 것으로 탄생하는 상상은 즐겁지만 결국 허구에 그칠 수밖에 없다. 내향인은 자신이 내향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이것은 슬프거나 끔찍한 일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을 자는 것처럼 당연한 일일 뿐이다.그러니까 이 글은 수다스럽고 불필요한 자기 대변으로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내향인의 누명을 한 꺼풀 벗겨내고 싶다.당신의 지인이 연락을 잘 받지 않는다던가, 만남을 차일피일 미룬다면, 그것은 당신이 싫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그는 자신의 지난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하여 가진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아껴서 사용하는 중이며 스스로와의 대화를 나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미덥지 않더라도 약간의 애정으로 내향인을 들여다보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당신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을 돌파하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애쓰고 있다는 것을.

2022-07-19

구미시의회 권위의식부터 내려놔야

김락현경북부 제9대 구미시의회가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시민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제8대 구미시의회는 불미스런 일로 두 명의 시의원이 연이어 자진사퇴를 했고, 또다른 한 시의원은 윤리특위에 3번이나 회부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하는 등 ‘역대 최악’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이것 말고도 크고 작은 불미스런 일들은 나열하기 힘들 정도이다.본지 기자는 구미시의원들의 이러한 행태가 그릇된 권위의식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시의원에게는 집행부를 감시, 견제하기 위한 여러가지 권한이 부여된다. 하지만, 간혹 일부 시의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집행부를 ‘관리(管理), 감독(監督)’할 수 있는 특권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착각이 잘못된 언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지난 8대 구미시의회는 ‘구미시의회에 출석·답변할 수 있는 관계공무원의 범위에 관한 조례’에 답변할 수 있는 관계공무원이 시장의 보조기관 중 실·국장, 담당관, 과장급으로 명시가 되어 있음에도 ‘국장급’만 답변하도록 했었다.답변하는 관계공무원의 급이 질의하는 시의원의 급과 어느정도 맞아야 한다는 괴상망측한 논리를 내세웠다.시민들의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하던 사람들이 급(級)을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부분 그릇된 권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실망스런 모습을 연출했었다.특히, 나이 어린 시의원이 나이가 많은 공무원에게 ‘막말’에 가까운 언행을 하는 모습들은 시의원의 품위 손상과 함께 구미시의 품격까지 땅에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의정활동과 관련된 문제를 지적 하는 것은 시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만, 일단 면박부터 주고 시작하자는 식의 언사는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다.이런 점에서 9대 구미시의회의 시작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상임위원회에 출석해 답변하는 관계공무원을 국장급에서 과장급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제9대 구미시의회는 그릇된 권위의식을 버리고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길 바란다.권위는 자신의 목에 힘을 준다고 올라가는 게 아니다. 자신을 낮추면 낮출수록 올라가는 게 바로 권위이다.구미/김락현 기자 kimrh@kbmaeil.com

2022-07-18

추리소설의 규칙-노리츠키 린타로

로널드 녹스 여름의 책 읽기란 쉽지 않다. 마음먹고 책 몇 권을 싸 들고 시원한 카페로 나와도 종일 후텁지근한 여름날의 공기 속에 파묻혀 있던 마음은 선선히 글자를 읽어내려 들기 어렵다. 어제 다 끝내지 못한 일 생각이나 이런저런 걱정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눈은 글자의 표면 위 같은 곳을 한참 맴돌고 더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게 된다. 한여름의 열기에 한 번 데워진 마음이란 깜짝 놀랄 만큼 시원한 방 안에 들어와도 쉽사리 차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여름의 책 읽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인간의 감정에 다가가는 내용을 가진 책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뒷감당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그래도 이렇게 열기에 데워진 마음으로 읽기 좋은 책은 단연 추리소설일 것 같다. 역사의 숨겨진 결들을 눈에 담으며 어쩔 수 없이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할 수밖에 없는 역사소설이나 작가의 현란한 문장에 가득 눈이 즐거워지게 되는 요즘 작가들의 소설보다도, 언제나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사건이 일어나고 마치 정해진 듯한 규칙으로 사건이 해결되기 마련인 미스터리는 무엇보다도 장르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게다가 사건의 해결 과정이 탐정과의 두뇌 대결로 이어진다는 점도 좋다. 이미 한낮의 열기로 데워진 감정을 다시 소모하기보다는 머리를 써서 읽어내면서 이리저리 추리를 해보는 읽기의 과정이란 얼마나 청량한 경험인가. 그래서인지 나는 언제나 읽기라는 행위에 조금 물렸을 때의 처방으로 추리소설을 읽곤 한다.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조금씩 추리소설의 붐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미풍에 그치고 있는 점은 추리소설의 오래된 팬으로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식민지 시대와 그 이후 활동했던 김내성이라는 걸출한 추리작가 이후 이상우, 김성종 등 널리 알려진 추리작가가 존재했고, 최근 본격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의 경계가 해소되면서 점점 새로운 세대의 추리작가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미 앞서 미스터리 장르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유럽과 일본의 장르적 열풍에 비하면 아직은 소소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나마 추리소설의 오랜 고전들이나 최근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 해외 추리소설들이 충실하게 번역되고 있는 점들이 위안이 된다. 노리츠키 린타로 미스터리의 플롯이란 사실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되는 그 사이에서 펼쳐지는 시간이 핵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스터리에서는 규칙이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미스터리에서 추리란 인간의 사고가 움직이는 로직을 의미하는 것이니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되는 과정에서 인간 마음의 사고가 움직이는 알고리즘이 중요하지 않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리소설계에는 유명한 규칙들이 존재하는데 S.S.반 다인(Van Dine)이 1928년에 발표한 20법칙이나 로널드 녹스(Ronald Knox)가 역시 같은 해에 발표한 10계 같은 규칙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사실 모든 규칙이 그렇지만, 그 세세하고 까다로운 부분에서 미를 발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규칙이란 따분하고 답답한 것이다. 한국에서 좀처럼 미스터리붐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도 그곳에 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일본의 추리작가 노리츠키 린타로가 쓴 단편 ‘녹스머신’에서는 앞서 로널드 녹스가 제시했던 추리소설의 10계 중 가장 독특한 계명, 추리소설에는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규칙에 의문을 가진 등장인물이 중심이 된다. 이 말도 안 되는 규칙은 분명 황화론을 배경으로 중국에 대한 공포가 유럽에 퍼져 있을 때 만들어진 내용일 것으로 이를 마주한 인간은 이를 이해하기 위한 추리를 해 나가다가 결국 시간을 거슬러 로널드 녹스를 만나 그가 그 규칙 속에 숨겨둔 비밀을 함께 만들어낸다. 규칙이란 어차피 작가와 독자 사이의 약속이니 말이다. 이 노리츠키 린타로의 ‘녹스머신’이 포함된 동명의 중편집은 최상의 추리소설 마니아의 규칙해설서 같은 것으로,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규칙이 지루해진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2-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