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에서 수업을 하는 친구가 전화로 하소연을 해왔다. 아이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수업이야 당연히 지루한 거고,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이번엔 유독 아이들이 무시하는 것 같다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아이들은 쳐다보질 않는 것 같다고. 분명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화면보호기가 켜진 모니터처럼, 그런 눈빛으로 자기를 보는 것 같다고. 속상할 일도 아니고 직업이니 익숙해져야 하는 일인데도, 아이들이 자꾸만 자기를 헛것처럼 바라보는 것 같아 너무 속상하다고.
친구의 목소리는 조금 격앙되긴 했지만 딱히 떨리지도 않았고, 울먹거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다. 마치 오래전 안 좋았던 일을 말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속상하다’는 말을 반복했을 따름이었다. 미안했다. 해줄 얘기가 딱히 없어서, 그런데도 그게 어떤 기분인지 너무 잘 알아서. 이야기를 오래도록 들어주다가, ‘최소한 너라도 편했으면 좋겠어. 수업을 좀 대충하더라도 말야’라는, 말 같지도 않은 대답을 위로인 척 건네주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수업을 한 날 밤이면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수업은 이미 끝이 났는데도, 내 머릿속은 계속 수업을 하던 상태 그대로다. 개념을 설명하고, 개념에 맞는 예시를 들고, 예시에 맞는 농담을 던지고, 아이들이 웃던 안 웃던 혼자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고, PPT를 어떻게 고치고, 어떻게 손동작을 하고, 그런 생각들이 끊이지 않고 흘러넘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새벽 2시고, 내일은 9시에 수업인데 하는 부담감까지 더해져 부정적인 생각들이 샘솟기 시작한다.
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나는 이름과 얼굴을 외운 학생이 참 드물었다. 간간이 떠오르는 학생들 이름이야 있지만, 얼굴과 함께 외운 학생은 거의 없었다. 수업 시간이면 늘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과장된 목소리와 억양으로 크게 떠들며 학생들을 일일이 바라보는 척 했지만, 사실 내가 바라보는 건 늘 아이들 사이의 빈 공간이나 시계, 벽, 창문, 교실 바닥, 그런 것들이었다. 아이들 눈을 제대로 마주칠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졸고 있을 때면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나를 평가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내가 누구를 가르쳐도 되는 걸까, 난 선생으로서 아이들에게 애정을 못 느끼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떠오르곤 한다.
친구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사실 학생들이 그 친구를 바라보듯 학생들을 바라보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학생들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는 날들도 있곤 하니까. 마치, 내 과장되고 거짓되고 부풀려진 자아를 아이들이 늘 꿰뚫어 볼 것만 같아 견딜 수 없으니까. 늘 수업을 할 때면 학생들에게 미안해진다. 나는 너희에게 좋은 선생님은 아닐 것 같구나.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조차 너무 부담스럽구나. 그냥, 가까스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버티는 아저씨 한 명에 불과한 것만 같다.
얼마 전 10년째 회사 생활을 하는 친구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물론 술김에.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이야기들 배부른 소리인 것만 같고 못할 소리인 것만 같으니까. 헌데 친구는 진지하게 들어주곤 이런 말을 했다. 너 그거 딱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라고. 원래 회사 다니는 애들도 2년차에 딱 너 같은 소리 한다고. 처음 1년은 멋모르고 지나가고, 2년차 돼서 일이 좀 익숙해지니 내가 잘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라고. 익숙해지는 과정이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답해줬다.
우리는 종종 익숙해지는 과정이 선형적이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어쩌면 익숙해지는 과정이라는 건 그렇게 선형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을 지 모르겠다. 익숙함의 과정에는 종종 이런 시기가 있을 지도 모르는 셈이다. ‘잘 해나가다가도 한 번씩 꼬꾸라지기’, ‘어처구니없는 실수 한 번씩 저지르기’, ‘자신감을 모두 잃어버리기’ 등등. 어쩌면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의 일을 지속하는 것, 그것 자체가 익숙함이라는 걸 지도 모르겠고. 나도, 친구들도, 모두 그 과정 속에 놓여있다 보니, 아직은 삶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니까. 그러니 마음이 꺾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속상해지더라도, 늘 속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