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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 마케팅’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등록일 2023-04-03 18:31 게재일 2023-04-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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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편의점에 자주 들르는 사람이라면 음료 진열대에서 밀가루 포대나 구두약 디자인의 캔맥주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가 협업하는 것을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라고 한다. 유명 연예인이 직접 디자인한 의류, ‘포켓몬 빵’처럼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식품과 조합한 상품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구두약과 맥주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조합하는 것이 유행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상품에 의외성을 부여함으로써 기업은 시장의 관심을 끌고, 소비자는 이를 소비하며 즐거움을 얻는다.

이처럼 대중의 재미와 관심을 공략하는 마케팅 기법을 ‘펀 마케팅(Fun Marketing)’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재미를 구매의 기준으로 삼는 소비자를 가리키는 ‘펀슈머(fun+consumer)’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어떤 상품이 일단 펀슈머들의 관심을 끄는 데에 성공하면 SNS를 통해 그 상품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확산된다. 펀슈머는 단지 재미를 위해 상품의 이미지를 공유할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해당 상품에 대한 호감도 함께 공유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마케팅 효과를 거두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때 콜라보레이션의 대상이 되는 브랜드 간의 거리가 멀수록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유리할 수 있다. 구두약 디자인의 흑맥주라니, 어떤 맛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질적인 브랜드를 조합하는 과정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한 유명 빵집에서 인기 메뉴인 ‘튀김 소보로’ 모양 비누를 출시했다가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음식으로 착각하고 먹을 위험이 있다는 항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콜라보레이션 상품을 기획할 때 문화적 리터러시(literacy·이해력) 격차에 대한 배려가 필요함을 잘 보여준다.

몇 년 전 시멘트 제조업체가 출시한 ‘○○표 시멘트 백팩’은 시멘트 포대의 디자인과 질감을 실감나게 구현하여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고, 금세 품절되어 온라인에서 정가의 두 배가 넘는 금액으로 거래되기도 하였다. 업체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건설현장 작업자 차림으로 ‘시멘트 백팩’을 매고 있는 이미지를 광고로 내보내고, 이 상품에 ‘내 삶의 무게’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상품은 ‘펀 마케팅’을 통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받아들여졌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시멘트 백팩’은 동료 시민과 노동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지금도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는 개당 40kg에 달하는 시멘트 포대를 작업자들이 몇 개씩 등에 지고 나르는 일이 드물지 않으며, 이는 대단히 고된 노동이다. 우리가 이용하는 건물들, 시설들 모두 이러한 노동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노동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을 잃어간다는 데에 있다. ‘시멘트 백팩’이라는 상품과 시멘트를 ‘곰방치는(건축자재 등을 나르는)’ 건설노동자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인가. 관심경제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상품화해도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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