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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 표 차

강길수 수필가 “할아버지, 한 표 차로 떨어졌어요!” 시외버스 안에서 다짜고짜로 받은 손전화 말이다. 이달 초등학교 2학년이 된 큰 손자의 전화였다. ‘한 표’라는 말로 반장선거에서 낙선했음을 알아듣고, 그래도 2등 했으니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며칠 뒤, 집에 온 손주 녀석에게 반장선거 결과를 물어보았다. 같은 반 학생 28명 중 반장선거에 나온 학생이 10명이고, 1등이 10표, 2등인 손자가 9표였다고 했다. 속으로 손주 녀석이 대견해 보였다. 남들 앞에 나서기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같은 반 학생 모두 선거 결과를 받아들인 건 물론이다. 이 반장선거 결과를 따져보면, 3등이 2표, 나머지는 7명은 1표가 된다. 그러니까 득표율은 반장으로 뽑힌 1위 아이가 35.7%, 2위 손자는 32.1%, 3위 아이가 7.1%, 나머지 출마 아이 7명은 각 3.6%다. 득표율 계산 결과를 생각해본다. 초등학교 2학년 손자 녀석의 반 아이들의 반장선거가,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선거 결과를 냈다는 마음이 들었다. 대통령과 차점자의 지지율 차가 적으면, 여·야가 서로 무시할 수 없으니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의회도 마찬가지다. 여·야 의석 비율 차가 크지 않다면 여당은 야당을 무시할 수 없고, 야당도 여당과 대화와 타협을 안 할 수 없다. 의석 차가 적으니 대화와 토론, 타협의 길로 가야 하고 이럴 때 국민과 국가를 위한 정책이 나오기 마련일 터다. 한국의 제22대 국회는 여당 108석(36.0%), 1야당 175석(58.3%), 2야당 12석(4.0%), 군소 3개 정당 도합 5석(1.7%)으로 구성되었다. 1야당이 과반수 이상이다. 이에, 야당 폭주가 지나쳐 ‘의회 독재’란 말이 나온다. 현 정부 출범 이후 2년 10개월 동안, 1야당 주도로 30회의 공직자 탄핵소추 발의를 한 사실만 봐도 의회 독재가 분명하다. 한데, 국민의 절반 이상이 한국에 부정선거가 있다고 알게 되었다는 보도다. 부정선거 세력은 결국, 영구집권으로 자유 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획책할 것이다. 큰 비극이다. 지난 5년 가까이 한국의 부정선거를 선관위 발표 선거 데이터들을 통계학 대수의 법칙을 적용 분석, 추적한 G 박사는 지난 1월 28일 22대 총선 분석 결과를 종합 발표하였다. 그 결과에 따르면, 여당의 진짜 의석수는 최대 57석이 늘어 168석(56.0%)이라 한다. 그렇다면, 1야당은 118석((39.3%)이다. 국회가 G 박사의 연구 결과대로 구성된다면, 야당의 의회 독재는 아예 불가능할 일이다. 우리 사회가 선거에 컴퓨터와 전자개표기를 쓰지 않고 초등학교 반장선거처럼 수작업으로만 한다면, 부정선거 시비는 없어질 것이다. 선관위는 개표 정확성과 시간 단축을 위해 전산 개표 시스템을 쓴다고 하리라. 선거는 공명성이 생명이다. 대만이 수작업만으로 선거 개표를 해도 8시간이면 끝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기필코 벤치마킹해야 할 사안이다. 나라의 선거 개표제도를 초등학교 반장선거같이 ‘수개표’로 바꾸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5-03-24

믿음과 정치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사람의 삶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부모·자식 관계는 여간해서는 변하지 않는 관계일 테다. 때로 부모·자식 간에도 돈이나 그 밖의 것으로 서로 외면하고 심지어 살상을 벌이기까지 한다. 그런 것들은 예외로 치부된다. 친구 관계도 고등학교 다닐 때쯤부터 깊이 사귄 이들끼리는 우정으로 평생을 지켜가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동창은 시골 동창 아니면 너무 어려서, 삶이 갈려서 오래가기 어렵고, 대학 동창은 머리가 커진 뒤라 순수한 관계를 만들기 어렵다. 고교 동창 정도면 한두 사람씩은 평생의 관계를 맺어나갈 수도 있다. 그 친구들은 정의감이 같아서가 아니요 기질이 맞고 정이 들어서 길게 진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사회 나가서나 대학에서도 대학원 같은 곳에 가서는 정말 믿고 통하는 관계는 이루기 어렵다. 무엇보다 자기 존재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경쟁이 되고 위해를 가하는 존재로 여겨지기 쉽다. 나이 엇비슷한, 아래위 5년 정도의, 같은 세대 사람들은 평상시 친해도 끝내 상대를 불신하고 저버리기 쉽다. 이렇게 서로 믿고 의지하기 어려운 사람 관계 속에서 어쩌다, 정말, 저 친구는, 저 선배는, 저 상사는, 그리고 저분은 믿을 수 있다고, 따를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아주 드물게 얻어질 수 있다. 희귀하게 그런 관계들이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관계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세상은 거칠고 인생은 험난해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의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그 괴로움, 외로움을 많이 덜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라면 어떨까? 글쎄다. 꼭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고교 동창이 한둘 있고, 대학에 믿고 의지할 선생님이 또 그만큼은 계시고, 대학 나와 문단과 학계에서 이런저런 관계로 얽힌 좋은 선후배들, 친구들이 또 몇 사람은 있는 것도 같다. 하지만 숫자를 너무 많이 ‘잡은’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한다. 더구나 지난 삼 개월여 동안 나는 과연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다. 어떤 믿음의 위기를 겪고 있고, 이유는 비교적 간단명료해 보인다. 무엇인가, 내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표명한다는 것이다. 어쩌다 형이, 선생님이, 당신이 그렇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나는 또 나대로 오랫동안 숙고해 온 데다 특히 지난 3개월은 사태가 엄중한 만큼 별일 아니라고 쉽게 의견을 접어버릴 수도 없다. 이런저런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혹은 자기 확신의 적개심에서 쏟아내는 말들이야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없으면 아픔도 없는 까닭이다. 굳게 믿는 사람들이 걱정 반, 실망 반의 반응을 보일 때는 그러므로 상황이 달라 마음 아픈 것을 감추기도 쉽지 않다.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다고 애써 생각한다. 사람 사이의 믿음이란 세상의 정치보다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 정치적 견해란 얼마나 ‘쉽게’ 변하는 것이던가. 세월을 조금이라도 길게 돌아보면 이미 우리들이 그런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렇지 않던가.

2025-03-24

1천만원 써서라도 키 큰 자식으로?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훤칠한 외모와 큰 키도 사회생활의 경쟁력”이란 이야기가 세간을 떠돈 것은 이미 꽤 오래전이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를 이야기하면 고루하다는 말을 듣는 시대가 됐다.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귀한 것이니 함부로 상하게 하거나, 애초의 형태를 바꾸지 않는 게 효도의 시작’이라는 지난 시대의 가르침이 부모들에서부터 먼저 무너지고 있는 듯하다. 24일 세계일보에 눈에 띄는 기사 하나가 실렸다. 세칭 ‘키 크는 주사’로 불리는 성장 호르몬 치료제의 시장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보도다. 작년에만 키 크는 주사가 27만 회 처방됐고, 이는 3년 전과 비교하면 2배가 늘어난 수치라 한다. ‘서울에서 1만1444명이 처방받았고, 경기도 7164명, 대구시 2947명, 부산시 2346명 등 전국적으로 성장호르몬 치료제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고 기사는 이어진다. 성장 호르몬 주사의 비용은 만만찮다. 1년에 1000만원 안팎이 사용된다. 거기에 어린아이가 길게는 3년 동안 일주일에 6번 주사를 맞아야 하는 고충도 따른다. 짐작하다시피 주사 맞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부모는 적지 않은 돈을 쓰고, 아이는 두려움과 울음을 참으면서까지 ‘키가 큰 어른’이 돼야 하는 걸까? 의구심을 가지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나폴레옹이 키가 커서 유럽 대륙을 집어삼킨 건 아니다. 그는 오척단구였다. 또한, 존경할 만한 과학자나 의사가 되는 게 키와 무슨 상관이 있나. 중요한 건 ‘몸의 높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연민하는 ‘마음의 넓이’가 아닐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24

모질고 악착같은 정치인은 위험하다

김진국 고문 정치는 욕을 많이 먹는다.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서로 다른 주장을 절충하는 게 본질이다. 소리가 크건 작건 다툼이 없을 수 없다. 더구나 권력을 두고 경쟁할 때는 시끄럽지 않을 리 없다. 그렇더라도 그럴듯한 모양을 갖추는 건 명분 덕분이다. 이제는 달라졌지만, 어린아이들에게 꿈을 물으면 과학자뿐 아니라 정치인이 되겠다는 대답이 많았다.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명분이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그런 명분에 걸맞게 짐짓 점잔을 빼는 정치인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겉치레조차 던져버렸다. ‘동물 국회’가 심하게 싸울 때 잠시 보이는 모습이 아니다. 일상적인 여의도 문법이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들어 30번째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대통령 권한 대행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다. 탄핵 사유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 내란 상설 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를 미룬 것, 비상계엄을 묵인·방조하고, 윤 대통령 지시를 하급자에게 전달했다는 문제를 제시했다.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헌법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니 이를 무시한 조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이게 탄핵사유라고 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비상계엄과 관련해서는 두드러진 행동이 없었다. 다른 국무위원과 차이가 없다. 이것으로 탄핵한다면 ‘대행의 대행의 대행의 대행’…. 국무위원을 모두 탄핵해야 한다. 더군다나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 인용 여부가 오늘(24일) 결정된다. 기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기각이 되건, 인용이 되건 한 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을 불과 며칠 앞두고 최 대행을 탄핵 소추한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과잉대응이다. 그뿐 아니다. 그동안 민주당이 발의한 탄핵소추안을 보면 참담하다. 정말 탄핵할 필요를 느껴서 발의한 건지, 집권당을 겁박하고, 국정 운영을 방해하려는 건지 헷갈린다. 발의했다가 스스로 철회하거나, 본회의에 상정하지도 않고 대부분 폐기했다. 그나마 헌재로 보낸 탄핵소추안도 결정이 난 8건 가운데 8건 모두 기각됐다. 탄핵이 목적이 아니라 탄핵 소추가 목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탄핵 소추하면 우선 피청구인의 직무가 정지된다. 일을 할 수 없다. 가뜩이나 대통령이 탄핵 소추당해 직무가 정지된 처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적 부담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대표적으로 손봐야 할 나라로 지목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과의 친분까지 자랑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한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게 국내 정치상황과 무관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 국무총리에 이어 경제 사령탑까지 직무가 정지당하게 됐다. 대통령 부재라는 국가적 위기를 넘어가는 데 힘을 모아도 부족한 마당에 이게 무슨 짓인지 알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도구가 있다. 압정을 박으려고 망치를 쓸 수는 없다. 화분에 물을 주려고 살수차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는 정말 악착같다. 가장 독한 방법, 상상도 못 할 수단을 모두 동원한다. 벼룩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에 불을 지른다. 이렇게 몰아치면 타협의 여지가 없다. 정치는 없고, 송사(訟事)만 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온 국민이 경악했다. 탄핵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걸 어떻게 막느냐를 걱정했다. 탄핵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탄핵 심판보다 가장 빨리 결론을 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계엄 직후에 비해 탄핵 반대 여론이 아주 거세졌다. 왜 그럴까. ‘이재명 포비아’ 탓이다. 계엄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이재명은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스스로 본인의 재판과 탄핵 심판을 묶었다. 시간 싸움을 벌였다. 조급하게 몰아치는 모습이 거부감을 일으켰다. 지난 총선 공천의 잔인한 숙청을 대선 이후에 투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런데도 민주당만 모르는 것 같다. 조급하고, 몰아칠수록 신뢰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줄탄핵’과 ‘줄기각’이 윤 대통령 탄핵마저 그르칠까 두렵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23

얼마나 더 속아야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금요일에는 헌법재판소가 있는 동네에 강의하러 간다. 이번 학기에는 ‘세속 윤리와 하늘 도리의 조화, 중용’을 읽고 있다. ‘중용’이 고전 반열에 오른 지 어림잡아 2천 년쯤 되니 매시간 뜻깊은 문장을 만나지만 지난주 수업에서는 시국과 맞물려 특별히 더 뜻깊은 내용이 나왔다. 바로 6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공자가 말하셨다. 순임금은 아마도 크게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하여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말 살피기를 좋아했고, 나쁜 말은 덮어서 힘을 못 쓰게 하고 선한 말은 드러내어 그 양쪽 끝을 잡아 그 가운데 말을 백성에게 사용했으니, 그것이 곧 순임금이 된 이유이다.’ 이 문장이 인상 깊은 이유는 순임금의 행동 때문이다. 그는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반드시 주위 사람에게 묻고 그 대답을 잘 살펴서 좋은 말만 채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순의 한자어 舜은 ‘충실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뒤이어 나오는 ‘양쪽 끝을 잡아 그 가운데 말을 정책으로 삼는다’는 대목이 더 중요하다. 많은 해설서에서는 양쪽 끝을 선과 악, 또는 적절과 부적절로 풀고 그 가운데를 중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운데’라는 것은 가장 적절한 최선의 기준을 말하는 것인데 선과 악의 중간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 그저 적당히 타협하라는 것이니 양쪽에서 돌멩이가 날아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와 불급의 중간으로 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70세는 넘어 보이는 학습자가 질문한다. ‘앞에서 이미 선한 말을 드러낸다고 했으니, 여기서 양 끝은 선 중의 양 끝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선에 양 끝이 있을 수 있나요?’ ‘선한 방향은 같지만 실천 방법에서는 급진적이거나 온건하거나 하는 식으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아, 그럴 수 있겠습니다.’ 같은 방향을 추구하면서도 세부 노선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반목하며 지리멸렬하게 갈라지는 일들이 많은데, 그때 이런 경구를 참고했더라면 좋았겠다는 깨달음이 퍼뜩 떠올랐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이지만 정치인들이 얼마나 국민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지는 미지수다. 우리 동네 국회의원만 해도 같은 당에서도 심하다고 할 만큼 심각한 거짓 주장을 연일 내고 있다. 이렇게 소수의 권력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영구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비상계엄이 해제된 지 100일이 넘도록 헌재에서 탄핵소추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많은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주말마다 집회가 열리니 그 고단함이 이루 말할 것이 없고, 심지어 지인의 친구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다고 한다. 판결 이후 양분된 국민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심사숙고일지는 모르겠으나, 장고 끝에 악수 둘까 두렵다. 나쁜 말은 빨리 덮어서 힘을 못 쓰게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제주도 말에 ‘속았다’는 ‘수고했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라의 평화를 위해 국민이 얼마나 더 속아야 하는가? 강의실 안 토론이 일상에서 실현될 날을 고대한다.

2025-03-23

日 난카이 트로프 거대지진 강 건너 불 아니다

김규한 이화여대 명예교수 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 일본 열도는 환태평양 지진·화산대에 속해 지진과 화산 활동이 빈번하다. 역사적으로 메이오 지진(1496년), 게이조 지진(1605년), 보에이 지진(1662년), 안세이 난카이 지진(1854년), 간토 대지진(1923년), 난카이 지진(1944년) 등 90~150년 주기로 거대 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초래했다. 거대 지진은 해구형과 직하형 두 가지로 나뉘며, 최근 일본 정부는 난카이 트로프 지역에서 30년 내 해구형 거대지진 발생 확률을 80%로 상향 조정했다. 이로 인해 일본 전역에서 지진에 대한 공포와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왜 난카이 트로프 지역인가? 난카이 트로프 진원지는 시즈오카현 연안에서 미야자키현 연안까지 약 700km에 걸쳐 있는 깊은 바다의 해구 지역이다. 이곳은 필리핀 해판이 유라시아판 아래로 섭입하는 경계로, 판 구조 운동에 의해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지진 전문가들은 이 난카이 트로프 지역에서 머지않아 규모 8~9급의 거대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이 과거 100년 주기로 다섯 차례나 거대 지진이 발생한 곳이며, 1940년 이후로는 장기간 큰 지진이 일어나지 않아 이른바 ‘거대 지진 공백’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백 기간 동안 지각에는 섭입 과정에서 축적된 지진 에너지가 상당량 존재하므로, 지진 발생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은 지진 대책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두주자로 꼽힌다. 에도시대부터 개울 속 메기의 이상한 행동을 지진 사전 징후로 인식해 왔다. 전국에 걸쳐 내진 설계가 적용된 건축물이 많아 지진 안전성이 높다. 또한, 활성 단층 조사, 지화학 모니터링, 지진계 및 GPS 관측 시스템 등 최신 과학 기술을 활용한 상시 지진 감시망을 완벽히 구축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진 발생 후 지진재해 저감시스템 구축과 대비훈련이다. NHK공영방송의 통상 지진, 쓰나미 재난방송과 얼마 전 지진재해 저감방안에 대한 NHK ‘미미요리 해설’ 방송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그러면 한반도는 지진에 안전한가? 한반도는 판구조론적으로 지진이 빈발하는 판의 경계와는 떨어져 있다. 때문에 일본열도와는 달리 지진발생 빈도가 낮다. 그러나 신생대에 판내부에서 백두산, 제주도, 울릉도 등에서 대규모 화산폭발과 함께 지진이 일어난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와 조선왕조실록에는 약 2400회의 지진 발생 기록이 남아 있으며, 최근에도 연평균 30회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2016년의 경주 지진과 2017년의 포항 지진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리나라 건축물은 대부분 내진 설계가 부족해 직하 지진에 취약하며, 난카이 트로프 거대지진 발생 시 한반도 연안에도 쓰나미 위험이 존재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는 2만2325명의 인명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초래한 바 있다. 당시 일본에서 1700km 떨어진 칠레 해안에까지 2m 높이의 쓰나미가 발생하였다. 난카이 토로프 거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라면 한반도 주변 해안과도 가깝다. 따라서 난카이 트로프 거대지진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2025-03-23

사랑했던 ‘토끼굴’을 떠나보내며

나는 어떤 시절을 어느 장소로 기억하기도 한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의 시간은 빨간 벽돌건물과 그 외벽을 타고 올라가던 담쟁이덩굴이 있던 고등학교 교정으로 기억한다. 그 다음 몇 년은 취하고 휘청이다 토하고 소리치던 대학교 앞 술집 골목으로 기억하고, 또 어떤 시절은 눅눅하고 곰팡이 냄새 나던 어느 지하 공연장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아마 꽤 긴 시간, 그러니까 2012년 봄부터 약 십 년 동안의 시절은 내게 ‘토끼굴’이라는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토끼굴을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 술을 주로 팔았다는 이유로 ‘바’라고 하자니 분명 누군가는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고, 때로는 재즈부터 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라이브 연주가 이루어지기도 했던 그곳을 말이다. 토끼굴은 2012년 초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 해 5월. 토끼굴의 사장 수진이 누나와 서로 인사를 나누다, 나는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무척 반가워하던 기억이 난다. 누나는 그때부터 마지막까지 토끼굴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예술가들이 드나들며 서로를 존중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말이 시인이고 싱어송라이터이지 시집 한 권, 정규앨범 한 장 없었던 내게 예술 하는 친구는 언제든 환영이라며 언제든 놀러오라던 그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부터 토끼굴은 내게 단골집을 넘어서 집이었고 학교였고 놀이터였다. 토끼굴에는 크고 멋진 바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 언제 가도 거기에는 수진이 누나와 정겨운 얼굴 몇몇은 꼭 있었다. 모르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자주 있었는데 그들 역시 예술가이거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예술을 모르더라도 최소한 예술과 인간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쉽게 말을 트고 친해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술과 인간에 대한 존중조차 없는 사람은 수진이 누나가 반드시 쫓아내곤 했으니까. 거기서 만난 멋진 사람들 하나 하나가 다 삶의 교과서였고, 누나와 그들이 걸어둔 플레이리스트도 내겐 음악 교재였다. 언젠가 내가 드디어 끝내주는 노래를 한 곡 썼다며 달려가 거기 있던 기타를 부여잡고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 방금 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바로 지금까지 내 대표곡으로 사랑받고 있는 ‘타임머신’이었다. 첫 책이 나왔을 때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달려갔던 곳도 토끼굴이었다. 출간일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책을 토끼굴의 책꽂이에 꽂아두는 대신 축하주를 얻어먹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만큼 내게 특별했던 공간이었던 토끼굴은 시간이 지나 은근히 입소문을 타게 되었고, 모두에게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가수 강산에 형님 앞에서 타임머신을 부르고 칭찬을 받는 바람에 밤잠을 설쳤던 일, 술에 잔뜩 취해 형은 진짜 최고라고 내가 술 한 잔 사야겠다고 기어이 하림 형님에게 술을 사고 나중에 다시 만나 훨씬 비싼 답례주를 얻어먹었던 일, 장기하 형님과 시에 대해 이야기 했던 마법같은 일들이 모두 토끼굴에서 일어났다. 어느 밤엔가는 해외 뮤지션인 Damien Rice가 술을 마시다 가기도 했고, 또 언젠가는 토끼굴에 놀러 온 Rachael Yamagata가 연주를 한다는 다급한 연락을 받기도 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10년 정도 화려하게 빛나던 토끼굴의 불빛은 2022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인해 꺼지게 되었다. 영업을 종료한 후 수진이 누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방치되었던 그 공간을 뒤늦게 정리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며칠 전에 받았다. 누나는 내게 기타를 가져가라고 했다. 오래 전 술값이 없던 어느 날 공짜 술을 얻어먹기 미안해서 토끼굴에 내가 기증했던 그 기타. 거기 머물면서 수많은 뮤지션들과 노래하던 그 기타를 돌려받게 된 것이다. 누나는 기타 뿐 만 아니라 몇몇 음향장비, 그리고 개봉하지 않은 술들까지 선물해주었다. 짐을 챙기면서 횡재했다는 기분보다 정말로 토끼굴과 이별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 그리고 어딘가로 여행을 가서도 항상 괜찮은 바를 검색하곤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런 공간은 없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또 다른 토끼굴을 찾고 있지만 토끼굴 같은 곳은 토끼굴 밖에 없었고 이제 그곳은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되었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있고 그런 장소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게 되었다. 이 글은 내가 사랑했던,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장소에 대한 마지막 선물이다. 더 오래, 잘 기억하기 위해 몇 자 적어보았다. 참 많이 고마웠다.

2025-03-23

빚진 마음

인터넷을 켜는 일이 이렇게 피로한 줄 몰랐다. 나는 단지 쉬고 싶을 뿐이었다. 언어와 씨름하느라 정신이 쏙 빠진 끝에 숨을 고르기 위해 화면을 열었는데, 쏟아지는 뉴스가 밀물처럼 덮쳤다. 누군가의 죽음, 누군가의 추락, 누군가의 분노. 정치는 혼란스럽고 범죄는 쉴 틈이 없다. 이 모든 일이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젠 지겹다고 혀를 찰 법도 한데, 번번이 걸려 넘어지고 만다. 뉴스를 읽다 보면 슬픔보다 피로가 먼저 찾아올 때도 잦다. 하나하나가 고통의 파편처럼 느껴지지만 낯설지 않은 충격이다. 언제나 고통은 타인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것은 멀리서 벌어지는 국지적인 사건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보이지 않는 구조의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이어져 있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 앞에서 어떠한 빚을 느낀다. 누군가 내게 책임을 강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니, 정말 책임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와 무관해 보이지만 무관하지 않은 일. 어쩌면 내가 누리고 있는 이 고요가 누군가의 침묵과 상처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닐까? 예소연 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는 이런 부분을 매만진다. 이야기는 친구의 실종 사건을 접한 이들이 그를 찾아 나서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대학 시절 캄보디아 프놈펜이 있는 바울 학교에서 봉사 단원으로 만나 친해진 사이다. 세 명의 친구는 타국에서 생활하며 도움이라는 명목 아래의 타자성을 느낀다. 나아가 함께 있는 행위 자체가 반드시 이해나 연대와 같지는 않다는 사실, 삶의 조건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은 때때로 끝까지 공유되지 않는다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자신이 보았던 것들과 끝내 마주하지 못했던 것들을 되짚기 시작한다. 이러한 질문은 그들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지나갔다고 여겼던 슬픔은 어딘가에 남아 있으며 지워지지 않는 감정의 부채로 삶에 스며 있었다. 소설은 바로 그 잔류하는 감정의 흔적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소설 속 인물들이 인터넷 뉴스로 세월호 참사를 접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이 비극적인 소식에 참담함을 느끼는 이들 앞에서 캄보디아 학생은 꺼뻑섬에서 벌어진 압사 사건에 관해 말한다. 물축제에서 너무 많은 인파로 사람들이 다리에 끼여 죽은 사건이었다. 그들의 죽음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애도를 공유하려는 순간, 한 친구가 말한다.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뭐 그런 죽음이 다 있어.” 소설이 은밀하게 건드리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무수한 고통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에 경계를 둔다. 어떤 죽음은 우리를 멈춰 세우고 어느 죽음은 스쳐 지나간다. 나와 얼마나 가까운지, 얼마나 자극적인지, 또 얼마나 자주 보았는지에 따라 경중을 나누게 된다.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본다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주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는 일은 불가능하다. 매일 벌어지는 사건에 일일이 응답하기는커녕 바라보는 일조차 때로는 벅차다. 우리 일상은 그 자체만으로 숨 가쁘고 삶을 꾸려가는 일만으로 충분히 위태롭다. 인터넷을 종료하고 눈앞에 까만 화면이 떠오른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라면 얼마나 편할까. 뉴스 기사의 마침표를 보고도 나는 끝내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기억하는 방식으로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다는 생각 때문일까.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라도 응답하자는 다짐. 그것은 죄책감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무에 가깝다. 인간으로 최소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증거이자 바라보는 일부터 출발하는 작고 조용한 윤리. 정말 두려운 것은 무시무시한 사건이 벌어지는 세계 자체가 아니라, 그 반복에 익숙해진 마음이다. 고통 앞에서 더 이상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가장 깊은 윤리적 위험 속에 있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연인에게 말한 것처럼. “가장 끔찍한 게 뭔 줄 알아? 그건, 사람의 마음을 찢어놓는 게 아니라-마음은 찢어지라고 있는 것이니까-돌로 만들어버린다는 거야.” 숨을 고르고 멈춰 선다. 스쳐 지나가는 고통 앞에, 너무 늦게 도착한 슬픔 앞에, 끝까지 닿을 수 없는 고통일지라도 잠시 머무는 일 정도는 가능하니까. 그렇게 조용히 바라볼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응시가 빚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고서.

2025-03-23

다음이라는 미래에 눈이,

이희정시인 생각난 듯이 눈이 내렸다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고 그리고 가끔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 한 가지씩만 덮고 있었다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걸었다 그 후 내 발자국이 작은 냇물 이루어 근해에 나가 물살에 시달리는지 자꾸 꿈결에 물소리가 들렸고 발이 시렸다 ― 장석남 ,‘맨발로 걷기’ 부분(‘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문학과지성사, 1991) ‘맨발로 걷기’는 1987년 경향일보로 등단한 장석남 시인의 첫 시집에 실려 있는 등단작으로 그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잘 보여준다. “생각난 듯이 눈이 내”리듯 우연히 떠오른 생각이 자연 현상과 만나고, 이는 단순한 외부의 일시적인 변화로만 보지 않는다. 시인이 풍경을 보는 방식은 당시 사회의 변화와 갈등 속에서 외부의 큰 흐름에 휘말려 있음과 동시에 그 혼란이 내면의 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포착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 후 내 발자국이 작은 냇물 이루”듯 장석남 시인의 시선을 따라 내려가던 풍경은 저도 모르게 꽤나 먼 풍경에 이르게 되는데. 가령 2024년에 발표된 양안다 시인의 ‘다음 미래’속에 묘사된 이런 풍경이 그렇다. “나는 네가 쏘아 올린 눈보라 속에 있다. 그것은 지구 최초의 인간이 사랑한 풍경이거나 지구 최후의 인간이 마주할 풍경이다. 내가 아름답게 바라본 형상들이 나를 아름답게 만드는 모순 속에서. 지구 최후의 풍경은 인간이 아니지만 지구 최후의 풍경은 인간이 될 것이다. 뙤약볕도 없이 눈보라가 그치고 물이 되어 흐른다. 네가 두 팔 벌린 물보라 속에 내가 잠긴다. ” 묘하게도 그 예전 젊고 푸른 장석남 시인의 첫눈에 담긴 그 먼 풍경이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듯 양안다 시인의 “네가 쏘아 올린 눈보라 속”처럼 포개어지는 오늘이 있어, 기실 우리의 시간은 과거로부터가 아닌 미래로부터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근해에 나가 물살에 시달리는지 자꾸 꿈결에 물소리가 들렸고”라는 감수성으로부터 어떤 감각은 오래도록 시리게 한다. 마치 장석남의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걸었다”는 고백이 다음의 양안나 시인에게 닿는 것처럼. “끝나지 않는 마음의 동정”이 “어른이 아이를 망치자 아이는 복수를 학습”하게 하고 “어른이 된 아이가 아이를 망치자 망각이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예의 먼 맨발 걷기의 감수성으로부터 회복의 가능성을 타전해 보게 한다. 우리가 문학을 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의 미래를 믿는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최초로부터 혹은 최후로부터 두 시인은 인간의 지속적인 고통을‘눈’이라는 시린 형상을 통해 보는 것에서 예민하게 감각하는 것으로 조우한다. ‘발이 시리다’는 감각의 표현은 기억 속에서 생겨나는 세계의 불화와 내면의 고통이 물리적 경험으로 나타나는 섬세한 묘사일 것이다. “네가 아름답게 바라본 형상들이 나를 아름답게 만드는 모순”

2025-03-23

2025 고령 대가야축제 ‘대왕의 나라’로 초대합니다

이남철 고령군수 푸른 봄볕과 꽃잎 휘날리는 봄바람 가득 담고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고 싶은 요즘, 가야금 선율 따라 면면히 이어져 온 대가야의 역사와 숨결을 느끼며 넉넉한 인심이 함께하는 대가야 고도 고령으로 봄나들이를 떠나보면 어떨까. 봄의 시작을 알리는 대한민국의 대표 축제-‘2025 고령 대가야축제’가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대왕의 나라’란 주제로 성대하게 열린다. 2024년 7월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에 있는 대가야궁성지에서 ‘대왕大王’ 새김 토기가 발견됐다. 글씨가 조금 깨지긴 했지만 ‘大王’이 확실하다. 이는 대가야가 최고 지배자를 ‘대왕’으로 칭했음을 알 수 있다. ‘대왕’은 왕보다 더 높은 존재로 ‘왕 중의 왕’, ‘위대한 왕’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대가야의 도읍인 고령에서 나온 최초의 문자자료로, 기존의 ‘대왕’ 새김 뚜껑 있는 긴목항아리(충남대학교박물관 소장)와 함께 대가야가 ‘대왕의 나라’ 였음을 알려준다. 이를 모티브로 대가야축제에서는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대왕의 나라’라는 주제에 맞춰 21회차 대가야 축제를 기획했다. 대가야 궁성지 해자서 대왕(大王) 명문 추정 토기가 출토된 것과 그 역사적 의미를 알리기 위함이다. 대왕 ‘大王’으로 읽힐 경우 대가야 궁성지의 실체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 대가야 고대국가론에 큰 힘을 실어줘 고대 3국 시대를 4국 시대로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2025년 고령 대가야축제는 대가야에 대한 이해와 매력을 전달함은 물론 다양한 계층이 함께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콘텐츠와 프로그램들을 풍성하게 준비했다. 대가야의 독특한 문화와 문명 재조명을 통해 역사·문화 축제에 집중하고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역사를 만나볼 수 있도록 유홍준 교수, 최태성 역사 강사의 토크콘서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봄날의 화창함과 상큼함을 담은 고령 대표 특산물 딸기를 활용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도록 딸기퐁듀, 딸기타르트, 딸기캔들만들기 등의 새로운 체험 콘텐츠도 준비했다. 또한,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핑크모래놀이터 포토존 ‘핑크월드’, 대왕토기 발굴 체험 ‘대가야발굴탐험대’,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 싱어롱쇼 등의 맞춤 프로그램도 운영해 관광객 모두가 함께 즐기는 특별함을 선사할 계획이다. 그동안 선보인 야간 프로그램은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대가야 고령의 밤하늘을 밝히는 경관 조명은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밤하늘을 수놓는다. 다채로운 야간 공연 프로그램은 축제가 끝나는 밤 10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를 즐거움을 안긴다.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고령의 대표 관광지이다. 크고 작은 700여 기의 고분이 산등성이를 따라 펼쳐져 한 폭의 그림처럼 웅장한 장관을 이루고 있어, 따뜻한 봄 햇살과 함께 걷기 더 없이 좋은 곳이라 자부한다. 특히, 축제기간에는 은은한 경관조명이 빛을 발하며 지산동 고분군만의 매력과 봄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최상의 야간 트레킹 코스가 될 것이며, 형형색색의 야간 포토존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는 소소한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이번 축제의 주제가 함축돼 있는 주제관은 대왕의 나라 고령의 모든 것을 담아 대왕토기, 금동관, 가야금, 지산동 고분군 등 대가야의 유물을 통한 대가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20여년을 달려온 대가야축제의 이야기도 함께 꾸며진다. 이전의 주제관이 축제 기간에만 운영돼 축제가 끝난 후 만나볼 수 없었던 아쉬움이 있었다면 올해부터는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1층에 주제관을 마련하여 1년 365일 고령을 찾는 누구나 대가야의 이야기를 듣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상설 주제관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또한, 악성 우륵 선생이 가야금을 창제한 역사적 전통성을 기반으로 100대 가야금 연주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음악으로 대가야와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100을 나타내는 백(百)은 완성과 가득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 모두 오랜 세월 행복하고 100세까지 건강하고, 원하시는 모든 일들이 잘 풀려 행복충전 100%를 달성하고 돌아가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활짝 기지개를 펴듯이,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연인, 친구와 손잡고 고령 대가야축제에 오셔서 대왕의 나라 고령의 숨결과 향기, 벚꽃이 만개한 완연한 봄을 만끽하길 바란다.

2025-03-23

나무를 심다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지난 2월 27일, 찬바람이 감돌던 시기에 겹백도화 어린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그날은 어디 먼 곳을 떠돌던 어린 영혼 하나가 나를 찾아온 날이기도 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백도화 심는 일이 기념식수 행사처럼 되고 말았다. 나무를 심으려니 땅속에 큰 돌이 있어 그걸 뽑아내는 데만 1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적잖은 고역을 치른 셈이다. 문제는 나무 심기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마당을 풍성하고 화사하게 가꾸고 깊은 마음이 점차 짙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마음에 드는 꽃과 나무가 있으면 하나둘 공책에 이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묘목 가짓수가 자연스레 늘어나게 되었다. 얼마 전에 헤아려 보니 7종 24주 나무를 심은 것으로 드러났다. 3주 동안 겹백도화, 목수국 12주, 홍화 산사나무, 왕보리수, 블루베리 4주, 꽃사과 3주, 말발도리 2주와 원평소국, 은배초 같은 초본식물을 화분에서 마당으로 옮겨 심은 게다. 여러 종류의 꽃씨를 물에 불려 싹을 틔우려 애쓰고 있기도 하다. 왜 이런 마음이 생겨났을까?! ‘금강경’ 제2 사구게(四句偈)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을 이어가노라니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1895∼1970)의 아주 짧은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1953)이 떠오른다.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져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어낸 소설인데, 마치 실화처럼 오해되기도 한 작품이다. 50대 중반 사내 엘제아르 부피에가 30년 넘는 장구한 세월 나무를 심어 황야를 녹지로 만들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핵심 줄거리다. 1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13년에 시작한 이야기가 제2차 대전이 종결된 1945년 이후까지 이어진다. 왜 그럴까?! 그것은 나무의 생태 때문이다. 나무는 풀과 달리 생장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1년생 풀과 8,000년을 산다는 용혈수(龍血樹·dragon’s blood tree)는 그야말로 비교 불가(不可)다. ‘장자’ ‘내편’ 가운데 ‘소요유’ 한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아침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와 땅강아지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이것들은 목숨이 짧은 것들이다.” 목숨이 짧은 것들의 이항 대립에 장자가 제시하는 대상은 ‘대춘(大椿)’이다. 팔천 살을 봄으로 삼고, 팔천 살을 가을로 삼은 나무가 대춘이다. 거목은 예로부터 숭배와 존숭의 대상으로 섬겨진 신물(神物)이기도 하다. 불과 한두 달 전 혹은 한두 해 전의 일이 머나먼 과거처럼 여겨지는 전광석화(電光石火)의 시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대춘’ 같은 나무는 상상하기 어려울 터다. 마을마다 등 굽은 소나무 이야기가 전해지고, 서낭당 곳곳에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오랜 전설을 간직했던 아름다운 시간대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하되 지나간 것들은 향수를 불러오는 법!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신비를 10년 넘게 경험하면서 한국 사회를 지탱할 동량지재(棟梁之材)의 부재를 절감한다. 넉넉하고 여유롭게 숨 쉬는 일마저 괴로운 기나긴 내란 정국을 지나가면서 울울창창 호호탕탕 독야청청 우뚝하게 커나가는 거목의 생장을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2025-03-23

필사즉생

우정구 논설위원 최근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삼성의 위기론을 꺼내며 던진 사즉생(死卽生)이 화두다. 삼성은 계열사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을 실시하고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 돼 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글로벌 경쟁시대다. 한눈 잠시 팔다가는 기업 하나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반도체에서 SK에 밀리고 스마트폰이나 가전도 해외 기업들부터 맹렬히 도전을 받으니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인들 생존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즉생은 중국 노나라 때 정공법 병법서로 소문난 오기가 쓴 오자병법 치병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卽生 幸生卽死)로 “반드시 죽으려는 자는 살고 요행이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명랑대전을 앞두고 부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한말로 우리 국민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표현이다. 사즉생은 전쟁터에서 장수가 지녀야 할 당연한 덕목이다. 장수에게 사즉생 각오가 없다면 그의 부대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특히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지도자라면 스스로 몸을 내던질 수 있는 사즉생의 용기 정도는 필수라 하겠다. 삼성의 사즉생을 두고 1993년 선대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버금가는 중대 발언이라는 평가도 있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삼성만 사즉생 각오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기업의 크고 작음을 떠나 지금은 모든 기업이 사즉생 각오로 일해야 할 만큼 위중한 시기다.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책임질 정치인과 공직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3-23

김민희와 홍상수, 그리고 그들의 아이

김세라 변호사 25여 년 전 필자는 쎄씨, 키키 같은 하이틴 패션 잡지를 즐겨 보던 여고생이었다. 어느 날 잡지에 서 하굣길에 길거리 캐스팅 된 매력적인 고등학생 모델을 보게 되었고, 그녀는 나와 동갑이었다. 서울에서의 생활과 그녀의 매력에 대한 동경을 담아 팬레터를 보냈는데, 놀랍게도 답장을 받았다. 귀여운 글씨체의 손편지엔 네가 먹어보고 싶다던 계란빵은 서울에서는 홍대에 놀러갔을 때 먹어보니 꽤 맛있었다는 이야기와 남자친구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모델은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바로 배우 김민희 씨다. 지금은 홍상수 감독과의 관계로 인해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필자는 여전히 그의 팬으로 남아 있다. 배우로서의 그녀의 재능뿐만 아니라, 한때나마 직접 소통할 수 있었던 첫 연예인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7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가 경쟁 부문에 진출해 화제가 됐지만 더 화제가 된 것은 홍 감독의 옆에 있던 임신한 김민희였다. 홍 감독의 아이를 임신한 김민희는 지금은 만삭으로 올봄 출산 예정이라고 한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 씨의 관계는 약 9년 동안 지속되고 있으며, 이는 불륜으로 간주된다. 홍 감독에게는 배우자가 따로 있으며, 그는 2019년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으나 실패했다. 이는 우리나라 법원이 재판 이혼 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책주의는 배우자가 부정한 행위를 하거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만 이혼 청구가 가능하며, 이러한 사유가 있더라도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상대방 배우자가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거나 혼인 파탄의 유책성이 크지 않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도 이혼 청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홍 감독의 아내는 이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법원은 그의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9년간 동거하며 아이까지 갖게 된 지금 사실혼 관계는 인정될 수 없을까? 혼인생활의 실체를 갖추었더라도 중혼적 사실혼은 사실혼이 아니다. 법률상 배우자가 따로 있다면 부부 공동생활의 외관을 갖추었다 해도 사실혼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김민희 커플은 사실혼 부부도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 둘 사이에서 곧 아이가 태어난다. 부모의 관계가 법적 보호 밖에 있는 것과 다르게 이 아이의 경우는 홍 감독의 친자로서 법적 보호를 받는데 아무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혼외자로 태어나겠지만 생부와의 인지 절차를 밟으면 친자 관계로 전환된다. 아이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면 모는 김민희, 부는 홍상수로 나올 것이다. 자녀로서 홍 감독 재산 상속도 받는다. 우리 법은 법률상 배우자가 있는 이상 그 밖에 있는 남녀 관계를 혼인제도라는 울타리로 보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불륜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권리는 외면하지 않는다. 김민희는 홍상수의 아내가 아니지만 태어날 아이는 홍 감독을 아빠라고 부르며 살 수 있다. 어른들이 문제지 아이에겐 아무 잘못도 없으니까 말이다.

2025-03-20

치매사회

우정구 논설위원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행되면서 치매란 질병이 우리사회의 최대 고민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질병 관리에 대한 국가적 비용도 적지 않으나 치매환자의 가족이 부담하는 비용도 큰 짐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의하면 치매환자 가족 10명 중 4명이 돌봄과정에서 부담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지금은 치매환자가 병원이나 요양원 등에서 치료를 받지만 그것이 환자를 위한 최상의 치료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치매환자 관리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의 사례를 보면 치매환자 치료에 대한 선진적 요법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네덜란드 호그백 치매마을은 환자들이 마을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치료진은 가운을 입지 않고 동네마트 점원이거나 지나가는 주민 역할을 한다. 환자들은 가능하면 치매 이전의 라이프 스타일을 누리도록 모든 것을 설계했다고 한다. 호그백 마을은 “환자가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만 머무르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며 “치매환자도 일반인처럼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호그백 마을의 목적”이라 설명한다. 요양원에서 의학적인 치료에 집중하는 것보다 환자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복지 예산이 많은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치매 후 황폐해진 삶을 돌보는 치유 방법에 대해서는 우리도 자성할 부분이 있다. 내년이면 우리나라는 치매환자 100만명 시대를 맞는다. 65세 이상 노인 10병 중 1명 꼴이다. 암보다 더 무섭고 두려움의 병으로만 여기지말고 호그백마을처럼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치유법을 강구해야 할때가 됐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20

설중매(雪中梅) 피어나듯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춘분(春分)을 이틀 앞둔 18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었고 3월 중순의 늦은 폭설로 수도권과 강원 및 중서부 지방은 온통 백설로 뒤덮혀 대형 교통사고도 이어졌다. 이는 북극발 영하 40도의 소용돌이 제트기류가 몰려온 기상 이변으로 남해고속도로 42중 추돌사고를 비롯해 영동고속도로 8중 추돌사고 등 꽃샘추위 속에 출퇴근 길이 어려웠었다. 포항 경주 지역에도 대설주의보가 내려져, 빙판길 주의하며 차량을 서행 운전할 것과 도로 결빙으로 미끄러짐 주의 등 안전안내문자가 날아온다. 울릉도에는 대설경보가 내려져 적설량 36.5㎝로 최고기록을 보였고 크루즈 여행객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주말부터는 다시 평균기온을 회복하여 최고 기온이 15도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저께 첫눈을 맞았다. 외출하려고 무심코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니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라 신기해서 손바닥에 받아보았는데 차가움보다 가벼운 감각이 봄을 느끼게 하는 듯 같았다. 앞 화단의 목련꽃 봉오리에도 매화꽃 잎새에도 내리고 있었지만 설중매(雪中梅)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곧 녹아버려 서운했다. 휴대폰에는 지인으로부터 보내오는 설중매 사진이랑 얽힌 얘기들이 쌓인다. 설중매는 굳건한 의지와 고결한 품격을 상징하며 옛 시인과 묵객들은 그 절개와 인내를 시와 그림으로 많이 남겼는데 상촌 신흠(象村 申欽)의 싯귀가 생각난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즉, ‘매화는 한평생 추운 겨울에 피어나지만 그 향기를 팔지않는다’는 뜻이다. 시골집 능수매화가 지난주 꽃봉오리를 맺었는데 이번 눈에 설중매가 되었는지, 또 오래전 봄날 통도사에서 보았던 빨간 자장매(慈藏梅)도 하얀 눈송이를 덮어썼을까? 춘분 지나 밤보다 낮이 길어지고 땅 온도가 오르면 봄이 완연해질 텐데, 1주일 전, 전남 영암과 무안에서는 뜬금없는 구제역이 발생하여 축산농가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고 화순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도 발견되어 당국에서는 방역에 최선을 다짐하고 있다. 우리 정치판은 아직도 탄핵정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탄핵 될지 각하·기각될지 심판지연에 따른 여·야의 공방 속에 국민들은 봄 같지 않은 봄을 맞는 기분이리라. 윤 정부 들어 발의한 29번의 탄핵소추로 인한 정치 불안정의 파장은 국제적으로 퍼져나가며 미국은 우리나라를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정할 것이라는 말도 떠도는데 만일 다음 달 15일 확정된다면 외교적 신뢰 저하는 물론 국가 이미지 추락이라는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 민감국가는 1954년에 도입된 이후,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 전 세계의 25개국에 낙인을 찍고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는 외교 문제가 아니고 과학기술관점에서 방첩, 첩보 등 에너지 보안이 허술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는 모양이다. 따뜻한 봄은 곧 온다. 이제 하얀 눈에 덮인 설중매처럼 굳건한 의지로 국제 신뢰를 쌓고, 고결한 품격으로 국내 분열을 가다듬어 새로운 나라의 봄날을 맞도록 하자.

2025-03-20

어처구니가 없다

노병철수필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절이나 궁궐 같은 곳을 다니다 보면 지붕 위에 동물들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본다. 내 전공도 아니라 잘 모른다. 하지만 절 설명만 하고 돌아다니다 보니 간혹 절에도 보이기도 해 갑자기 질문할까 싶어 책을 통해 대충 외워두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해 생기면 신망을 잃기에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얼굴을 보니 낯이 익지 않은 것을 보아 새로 온 보살이다. 대부분 절에 다니는 노보살은 바로 잊어버리는 터라 칠정례 같은 것은 수십 번 설명해도 “그게 뭔데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아침 예불 때 일곱 번 절하는 것을 칠정례라고 한다. 송광사같이 여덟 번 절하면 팔정례이고, 동화사같이 아홉 번 절하면 구정례이다. 그런데 이것을 잘 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불자 한 분 왔다 싶어 기분이 좋았다. “범종은 새벽에 33번 저녁에 28번 칩니다.” “아닌데요. 아침저녁 전부 33번 칩니다. 바뀌었습니다.” 새로 온 보살이 치고 들어온다. 갑자기 당황스럽다. 내가 나이를 먹어 세상 바뀌는 것도 몰라 가장 기초적인 것도 몰랐다 싶어 바로 사과했다. 내가 몰랐다고. 집에 와서 왜 바뀌었는지 뒤졌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조계사에 스님에게 전화했다. 스님조차 뜬금없는 나의 말에 당황한다. 알아보고 전화해 주겠다고 하곤 전화를 끊는다. 이내 전화 와서는 그런 일 없단다. 확실하냐고 몇 번 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다음 순례 때 바뀌지 않았다고 이야기해 주려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그 후, 볼 수 없었다. 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을 절에 가면 많이 본다. 이걸 전문용어로 서수상(瑞獸像)이라고 한다. 서수상을 설명하면서 지붕 위에 있는 토우상에 대한 설명을 같이해 주었다. 저것을 잡상(雜像)이라고도 하고 ‘어처구니’라고도 한다고 설을 풀었다. 그러자 설명을 듣던 보살 한분이 어처구니가 아니란다. 맷돌을 돌리는 나무막대로 된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도 하고 이것도 어처구니라고 한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그런데 맷돌 손잡이조차 어처구니가 아니란다. 어처구니는 뜻밖이거나 기가 막힐 때 하는 말인데 손잡이가 없으면 맷돌을 못 돌리지 않느냐 그래서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이 생겼다. 그리고 당 태종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귀신을 쫓기 위해 병사 모양의 어처구니 조각물을 지붕 위에 올린 데서 유래한 것으로, 기와장이들이 궁궐을 지을 때 어처구니를 깜박 잊고 올리지 않은 데서 비롯된 말이라는 설명도 했다. 난 분명 확신이 있었다. 집에 와서 나의 확신을 재점검해 볼 요량으로 뒤졌다. “‘어처구니’를 ‘추녀 끝에 올라가는 잡상’이나 ‘맷돌의 손잡이’로 볼 수 있는지는 문헌으로 검증되지 않는 내용입니다. 이 점에서 옳다거나 그르다는 답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점 양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에서 이런 말을 내놓았다. 그럼, 우리가 여태 알고 있던 ‘어처구니’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기가 막힌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민망할 정도로 퍼부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워 그녀를 보면 정중히 사과할 요량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그 후, 볼 수 없었다.

2025-03-20

사교육 공화국

장규열 고문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지식전달을 넘어,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한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초중고 사교육비가 29조원에 이르며 한 해 7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학생수는 8만명이나 줄었는데 사교육비는 팽창일로다. 교육이 경쟁수단으로 변질되어 학생과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증가시킨다. 저출산의 까닭이기도 하다.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과 공동체의 와해를 부른다. 대학입시 중심의 경쟁시스템, 공교육에 대한 신뢰저하, 학벌주의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일부 엘리트층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교육을 활용하며, 교육이 사회적 계층을 고착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 지불하는 고액의 사교육비는 가계에 큰 부담이다. 사교육을 받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며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지 못한다. 공교육의 위기는 어디서 왔을까. 교사들이 과중한 행정업무와 학습지도 밖의 업무에 시달리면서 교육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은 창의적 사고와 인격형성을 위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아니라 주입식교육과 입시경쟁에 내몰린다. 교육의 본질적 가치가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있다. 교육이 무너지면서 공동체 정신이 스러진다. 이전에는 마을과 학교가 함께 학생을 돌보며 교육을 책임지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각 가정이 각자도생으로 교육문제를 해결한다. 엘리트교육을 받은 일부 계층은 사회적 책임보다 개인의 성공을 최우선시한다. 사회적 연대감을 약화시키고 공동체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사회계층 간 갈등을 초래하고 공동체 내 양극화를 부추긴다. 문제해결을 위해 교육에 공공선(public good)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교육이 개인의 성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과 공존을 위한 필수요소임을 분명히 해야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교육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교사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창의적 교육 방식이 자리 잡도록 지원해야 한다. 주입암기식 학습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도록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려면 공교육 내 보충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방과후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교육 수준별 학습지원을 체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경제적 형편과 관계없이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받도록 공교육 지원체계를 확대해야 한다. 교육이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도록 공동체 중심의 교육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지역사회가 학교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학교가 지역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도록 재편해야 한다. 다양한 사회계층이 가진 교육적 자원을 학교공동체와 공유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사교육 팽창과 공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가치관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시험하는 중요한 문제다. 교육이 경쟁이 아니라 공존과 연대의 수단이 되도록, 공공선을 중심에 두는 교육정책이 서야한다. 교육이 개인뿐 아니라 사회의 발전을 위한 공공재로 기능하도록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5-03-19

AI, 어떤 직업을 사라지게 만들까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10~20년 전. 스티븐 스필버그와 리들리 스콧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AI(인공 지능) 관련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에이, 저게 말이 되나. 감독의 상상력이 과도하군.’ 그런데 그게 말이 되는 세상이 눈 깜짝할 사이에 도래했다. 인간만이 가졌다 믿었던 학습, 추리,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이 생활 곳곳으로 이미 파고든 것. 세계는 자연 언어의 이해, 음성 번역, 로봇 공학, 인공 시각, 지식 획득, 인지 과학 등에 AI를 활용 중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가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인간을 대신하는 시스템의 개발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된다. 최근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가 낸 보고서는 ‘3년 이내에 산업 현장에서 서비스·물류·인사관리 영역은 AI가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세계 각국 기업 관계자 1400명에게 물어 대답을 받은 결과다. 대규모 해고 사태도 예언됐다. 응답자의 15%가 “서비스 직종 분야에 향후 3년 사이 총원의 20%를 초과하는 대규모 감원이 있을 것”이라 답했으니. 편리를 위해 개발된 컴퓨터 시스템이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서고 있는 듯하다. 세상의 변화는 이처럼 숨 가쁘고 예측을 불허한다. 좋건 싫건 그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더 큰 문제다. 상상력과 창의력 분야에선 아직 AI의 역할이 미미하지만, 그것도 앞으로는 알 수 없는 일. 터무니없어 보이던 영화가 명명백백한 현실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감안한다면, AI 발달의 미래는 누구도 함부로 예상하기 어렵게 됐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19

소리의 서막은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정미영 수필가 어둠을 가르며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소리의 서막이다. 물기를 빨아들이는 압지처럼 사이렌 소리가 빌딩숲 주변을 맴돌던 소음을 흡수해 버린다. 도시는 순식간에 사이렌 소리가 존재하는 곳과 사이렌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나뉜다. 거리를 휘적휘적 헤쳐 나오는 사이렌 소리를 눈으로 살핀다. 마치 소리를 ‘보는 것’처럼 차창에 바싹 얼굴을 갖다 대기도 하고, 백미러로 후방을 주시하다가, 급히 달려오는 119 구급차를 발견한다. 나는 이런 경우에 갖게 되는 당혹감이 아니라 신중함을 가지고, 최대한 길을 만들어 주기 위해 자동차를 한편으로 옮긴다. 다행이다. 이 순간만큼은 운전자들이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떨쳐버리고 이타심을 발현한다. 서둘러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게 길을 만들어 준 다음,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다들 제 갈 길로 간다. 운전을 하면서도 마음은 온통 환자에게 쏠린다. 얼마나 위중한 상태일까, 환자는 의식이 있을까, 사위스러움이 내 머릿속을 온통 부유한다. 몇 년 전, 스무 살 아들이 의무소방원으로 군에 입대했다. 선발 시험에 통과해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중앙소방학교에 입교했다.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시험을 치고 땀 흘리며 노력한 끝에 얻게 된 제복이라 그런지, 아들의 모습이 늠름하고 대견스러웠다. 강도 높은 교육을 마치고 무사히 수료식을 거쳐 소방서에 배치되었다. 아들이 소방서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그러자 내 온몸의 세포가 두 귀에 집중되어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소방차나 구급차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나의 신경줄이 팽팽해지며 아들에 대한 걱정이 배가되었다. 혹시나 아들도 화재 현장이나 산악 구조 현장에 출동을 나가지는 않았는지,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사명감과 책임감도 중요하지만 무사안일과 안전을 기원했다. 그렇게 소리는 내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공간에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는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기도 했다. 휴가를 나온 아들이 소방 공무원들과 동행해 산불 현장에 갔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었다. 그즈음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내 눈앞에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 것만 같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또한 아들이 구급차를 타고 나갔다고 하면 죽음의 그늘을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지역 특성상 노인들이 많이 계셔서 사고사보다는 심정지를 당하시는 분들이 많단다. 119에 접수된 응급환자의 심정지, 노인의 마지막 숨결을 손에 쥐며 슬픔에 잠겼을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인 나는 아들이 죽음을 감당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일상으로 접한다고 하니 가량없이 애가 탔다. 아들은 처음에는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들이 마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같아서, 죽음 앞에서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단다. 자신의 마음이 변하자, 임종을 대하는 태도에도 예의를 갖추게 되었다고 했다. 롤랑 바르트는 ‘애도하는 사람’만큼은 진짜 주체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은 타인이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들이 의무소방원으로서의 생활 속에서도 스스로의 본질을 찾는 과정을 겪었다고 생각하니, 나는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다. 소방관의 삶은 끝없는 도전과 위험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의 헌신은 사이렌 소리가 전하는 희망과 함께 사람들에게 안전을 선사한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고난과 시련을 마주했을 때 현명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준다. 소리의 서막은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구급차는 병이 위중하여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라도, 살릴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사이렌을 울리며 최선을 다해 달린다. 소리에도 ‘경중’의 미덕이 있다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달려가는 사이렌 소리는 밀도가 높은 진중함으로 구현되는 것이리라.

2025-03-19

지역언론인 혹은 문화적 정신적 개화기를 꿈꾸며

서울 갈 때, 터미널에서 한겨레신문을 구해 읽기가 쉽지 않아 잠시 당황스러웠을 때, 그래도 그 신문 지사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자칭 지역언론인 후배가 자랑스러웠습니다. 문화의 확장과 의식의 팽창은 작은 일에서부터, 사소한 일에서부터 챙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풀뿌리 노동운동도 했고 민주학교도 꾸려 마음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 뿌려진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 꽃피는 날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엎어지고 자빠져도 우리는 어깨동무 합니다. 글은 죽지 않습니다. 그것을 나르는 일도, 그 새벽의 의미만큼 청명할 것입니다. 가끔 지역적 한계에, 그것이 정치적이든 문화적이든 부닥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벽에는 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문을 두드리며 사람의 개벽을 기다립니다. 모두가 동참할 것입니다. 신문배달이라고 하자. 지국장이자 배달원이었던 후배는 여전히 그 직업을 사랑한다. 절망적인 판매부수에도 신문에서 손을 놓은 법이 없다. 새벽에 맡는 잉크 냄새는 뱃속의 기생충을 박멸할 정도로 자극적인 향기였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3-19

시험 치는 날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주인공은 영화감독 데뷔를 위한 시나리오를 쓴다면서도 잠만 잔다. 낮 12시가 넘어 일어나서 밥을 차려 먹은 후에도 노트북에 다가가기가 힘들다. 평소 잘하지 않던 방청소를 먼지 한 톨 없이 말끔히 청소하고 하릴없이 선풍기를 분해해서 깨끗이 닦는다. 더 이상 할 일이 눈에 띄지 않으면 그제서야 노트북 앞에 앉는다. 노트북을 켜고도 글자 폰트만 매만지다가 시간을 다 보낸다. 낮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밤이면 친구들과 술자리. 그러기를 며칠째 반복하고 나서야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극한직업’의 영화감독 이병헌이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의 첫 부분이다. 어쩜 나랑 저리도 똑같을까 공감하면서 피식 웃었다. 논문 마감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하는 습관이 있었다. 평소 어질러진 연구실을 대청소하는 일이다. 책장에 마구 꽂힌 책들을 장르별로 가지런히 챙긴다. 누워있는 책들도 일으켜 세운 후 물걸레로 책장의 먼지를 깨끗이 닦는다. 심지어 책상의 방향을 다시 바꿀 때도 있다. 넓지도 않은 연구실에서 그것은 거의 대공사에 가깝지만 강행한다. 창문 쪽으로 놓인 책상을 입구 쪽으로 틀어 돌려놓거나, 혹은 좌우를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좁은 공간에서 그렇게 낑낑대며 책상을 옮기고 나면 컴퓨터며 프린터 등의 부속품들도 자리를 바꾸게 되고 전선을 뺐다 꽂는 등 꽤나 작업시간이 걸린다. 책장 가까이 한 켠으로 배치되었던 소파의 위치도 연구실 가운데로 옮겨 보는 등 지치지 않고 일을 키우고 벌인다. 바닥 청소까지 멀끔하게 하고 난 후 재정리된 연구실을 휙 둘러보면서 잠시 만족감을 느낀다. 아차 할 일이 있었지 그제야 깨닫고 책상 앞으로 다가가 컴퓨터를 켠다. 더 이상 피할 데가 없다. 이제부터 논문을 쓰자며 또 밤샘이다. 자주 이런 일을 벌이니 영리한 조교는 잘도 알아챈다. 교수님 논문 쓰셔야 되죠? 작년 11월부터 한국어교사 자격증을 위해 인터넷 수강을 한다. 매주 8과목씩 15주를 듣는다. 수강하기만도 벅찬데 쪽지시험과 과제 제출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두 번의 시험이 가장 큰 스트레스다. 욕심 내지 말고 설렁설렁해서 80% 정도 성적이면 된다며 마음먹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비록 오픈북 형식이지만 시험은 시험이다. 시험일이 다가오자 긴장되고, 들었던 강의를 다시 들으며 시험공부라는 걸 하게 된다. 시험일이 닥치자 예전의 습관이 도졌다. 시험 친다고 컴퓨터를 켜 놓고는 책상 주변을 청소한다. 둘러보니 책장 정리가 필요하다. 이 방 저 방 흩어져 함부로 섞여있는 책들을 옮긴다. 내 책과 남편 책, 손주들의 책들이 제 자리를 찾아 앉는다. 주방으로 가 그릇장을 활짝 열어젖혀 잠시 멍하게 바라보다가 두 손 걷어붙이고 모두 꺼내 일을 벌인다. 화장실 바닥을 박박 문지른 후 대대적으로 물청소를 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까지 하고 나서야 젖은 손을 털면서 컴퓨터로 돌아온다. 아침에 켜 둔 컴퓨터 모니터엔 ‘장시간 사용하지 않아서 로그아웃되었습니다.’라는 사인이 떠 있다. 깊은 밤이다. 밤을 꼬박 새워 시험을 치고 나니 새벽 창밖이 푸르다. 예전 연구실의 창밖 풍경과 어쩜 저리도 똑같을까.

2025-03-19

소화불량과 체기의 예방과 치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현대 사회에서 잘 체하고 소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단순한 식습관의 문제와 더불어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깨진 경우가 많다. 특히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작용은 소화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서로 반대되는 작용을 한다. 교감신경은 긴장 상태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활성화되며 위장관 운동을 억제하고 위산 분비를 줄인다. 즉 소화 기능이 저하되면서 음식물이 위에 오래 머무르게 되어 속이 더부룩하고 체하는 증상이 발생한다. 부교감신경은 휴식과 소화에 관여하며 위장관 운동을 촉진하고 소화 효소 분비를 증가시킨다. 부교감신경이 원활하게 작용해야 소화 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 습관으로 인해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거나 부교감신경이 저하되면 소화 불량과 체기가 반복될 수 있다. 과식이나 야식,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 섭취 역시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깨뜨려 위장 기능을 더욱 저하시킨다. 한의학에서는 소화기 기능을 강화하고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침 치료와 한약 처방을 활용한다. 침 치료에서는 중완혈을 자극해 위의 기능을 조절하고 더부룩함을 해소하며 족삼리혈을 이용하여 위장의 기운을 보강하고 소화기계의 전반적인 기능을 향상시킨다. 내관혈은 교감신경의 과도한 흥분을 억제하고 위장 운동을 돕는다. 이러한 경혈에 침을 놓으면 자율신경계가 조절되면서 위장의 운동성이 회복되고 소화력이 향상된다. 최근엔 초음파를 활용해 등과 목에 있는 자율신경에 직접 약침을 놓아서 자율신경을 조절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자율신경을 조절 하면 자연스레 위장기능이 돌아온다. 한약 처방으로는 위장의 습기를 제거하고 소화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약재와 위장의 기운을 북돋우고 소화력을 증진시키는 한약재 그리고 교감신경을 내리고 가슴에 울체된 화를 풀어 주는 약재들을 조합해서 처방을 하면 효과적이다. 이렇게 처방을 하면 자율신경이 조절될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위장이 튼튼해지기 때문에 좀 더 입체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식이요법을 함께 병행하면 좋은데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섭취하고 찬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은 줄이는 것이 좋다. 소화 기능이 약한 사람들은 식사를 급하게 하지 않고 천천히 씹어 입에서 죽을 만들어 먹는 것이 중요하며 소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약 처방은 개인의 체질과 증상에 맞추어 적용되며 위장의 기능을 강화하고 소화 불량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소화 불량과 체함은 단순한 위장 문제로 보기보다 자율신경계의 불균형과 관련하여 접근할 때 더 효과적인 치료를 할 수 있다. 자율신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침 치료와 한약 처방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규칙적인 식습관과 충분한 휴식을 통해 자율신경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벼운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명상이나 요가 같은 심신 안정법을 활용하면 자율신경 조절에 효과적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방치료와 함께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궁극적인 치료와 예방의 핵심이 될 것이다.

2025-03-19

일본에 남은 ‘아버지’와 ‘할머니들’을 위한 기도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외국인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 주인공은 바로 올해 1월 5일에 별세한 재일 한인 이회성 작가입니다. 이회성은 1935년 남과 북에 고향을 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3남으로 사할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홉 살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1947년 일본으로 이주하여 오무라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이후 홋카이도의 삿포로시에 정착했는데요. 삿포로고교를 거쳐 와세다대학 러시아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대학교 시절에야 본명 ‘이회성’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이회성의 작품으로는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다듬이질하는 여인’(1971)도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죽은 자가 남긴 것’(1970)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죽은 자가 남긴 것’은 아버지의 장례를 계기로 민단(한국 정부가 공인한 재일 한국인 단체)에 속했던 큰 형 태식과 총련(북한을 지지하는 재일 조선인 단체)에 속했던 아우 명식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것은 양분된 재일 한인 사회의 화합과 나아가서는 민족의 통일에 대한 의지까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상가(喪家)에 모인 민단과 총련에 속한 한인들 역시 동식과 태식이 그러하듯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앉아 서로 상대편의 존재를 애써 무시합니다. 동식은 그 모습에 마음이 에이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한인들의 침묵이 자신과 형 사이에 흐르는 “침묵과 동질의 것이고, 아니, 그보다 더 부풀어 크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날수록 어색함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서로 하나로 뭉치게 됩니다. ‘죽은 자가 남긴 것’에서는 민단과 총련으로 나뉘었던 한인들이 친밀하게 되는 과정과 동식과 태식이 화해하는 과정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동식이 진정으로 화해하는 대상은 형 태식보다도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동식이 형인 태식에 대해 갖는 마음은 애증에 가까우며, 이러한 복합 심리의 근원에는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식이 형을 좋아했던 이유가 아버지의 난폭함과 봉건적 사고방식에 대해 형이 강력하게 대항했기 때문이라면, 형을 싫어하게 된 이유는 세월이 흐르면서 형이 점점 아버지를 닮아갔기 때문이니까요. 동식은 수많은 재일 한인들이 장례식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가 평생 보여준 폭력과 야만 뒤에는 아버지가 감내해 온 고단한 현실이 있었음을 감지합니다. 징용이나 징병으로 낯선 땅에 끌려와 겪은 간난신고와 민족 차별, 해방 이후에도 분단으로 돌아갈 고향마저 잃어버린 상황, 일본에서 재현되는 남북 갈등 등으로 아버지의 인간성은 파괴되었던 것입니다. 동식이 아버지의 고통스런 삶을 이해하는 모습은 죽은 아버지의 복사뼈를 만져보는 모습에서 절정에 이르는데요. 이 대목을 읽을 때면, 저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복사뼈를 만지고 싶은 마음에 울컥해지고는 합니다. 오랜만에 ‘죽은 자가 남긴 것’을 다시 꺼내 읽은 저는, 동식의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았던 재일 한인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공휴일인 2월 11일(일본 건국기념일)에 도쿄 근처에서 가장 많은 재일 한인들이 모여 살았던 가와사키의 사쿠라모토 마을을 찾아가 보았는데요. 가와사키는 도쿄에서 20킬로 정도 떨어진 게이힌 공업지대(京浜工業地帯)의 중심도시로서 1920년대부터 철강, 석유화학 등의 산업이 발달한 도시입니다. 그 결과 1930년대부터 노동을 하던 한인 커뮤니티가 가와사키의 사쿠라모토 마을에 형성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도 귀국하지 않은 수많은 재일 한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들면서 일본의 대표적 한인 마을이 되었던 것입니다. 가와사키의 사쿠라모토에 도착하자, 오래된 낡은 집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는데요. 오랫동안 이 곳은 무허가 판자촌이었으며, 홍수가 나면 큰 물난리를 겪는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또 당시 일본인들이 먹지 않고 버리던 소와 돼지의 내장(放るもん)을 구워 팔았다는 야키니쿠집이 여기저기 보였는데요. 그 중에서도 1967년 김도례 할머니가 창업하여 손녀사위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쿠라엔이라는 야키니쿠집은 큰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가와사키의 사쿠라모토 마을에는 1990년대 말에 재일한인 할머니들의 모임인 ‘도라지회’가 만들어져 큰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요. ‘도라지회’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평생 고통을 겪은 할머니들이 모여 향수도 달래고 글자도 배우며 여러 가지 전통문화 체험도 하던 뜻깊은 모임이었습니다. 2010년대에는 우경화되는 일본에 맞서 반전·반헤이트스피치 데모 등에 나서 뜨거운 사회적 관심을 받기도 했던 모임입니다. 할머니들의 흔적을 찾아 동분서주한 결과, 여전히 가와사키 한인교회에서 화요일마다 도라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길 기대하며 돌아오는 길에, 저는 두 손 모아 ‘죽은 작가 남긴 것’에 나오는 아버지나 ‘도라지회’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과 아픔이 사라진 세상이 되기를 기도해 보았습니다.

2025-03-18

숨비소리

전화기 너머로 친구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나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는데 그의 이야기 속에 갇혀 숨 쉴 틈이 없다. 궁금하지도 않은 자신의 주변 이야기들을 쓰나미처럼 쏟아내 나를 덮는다. 내 속은 점점 깊이 잠겨 버린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내가 먼저 건 전화였다. 내 마음을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이 대화는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내 안부를 묻는 가벼운 질문조차 없이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만을 토해냈다. 자신의 아이들 일상을 풀면서 정작 내 아이들의 일상은 묻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자신의 문제만 존재하는 듯 쉴 새 없이 넘나드는 거친 파도처럼 쉼이 없었다. 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참았다. 물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나는 듣는 사람으로 남았다. 익숙한 일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적절한 순간에 맞장구를 치고, 간혹 짧은 감탄사를 얹으며 존재감을 유지하는 일, 감정을 삼키고 하고 싶은 말도 접어두는 일, 그 소실점에서 묘하게 차분한 순간이 찾아왔다. 마치 깊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말할 수 없는 심연 속에서 조용히 견디는 느낌이다. 숨을 참고 버티며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끝내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잠깐 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다시 자신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친구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끊어진 전화기 너머로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쉰다. 마치 해녀가 물 밖으로 올라오며 내뱉는 숨비소리처럼, 참아낸 숨이 길수록, 내쉬는 숨은 더 깊고 진하다.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물속에서 숨을 참고 작업한 뒤, 물 밖으로 나올 때 내뱉는 숨소리다. 깊은 바다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려면 숨을 최대한 참아야 하고,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강하게 내쉬는 숨이 바로 숨비소리다. 그것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라 생존과 인내의 증거이며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나는 지금 물속을 헤엄치고 있는 중이다. 깊이 잠길수록 주변은 조용해지고 오직 나의 심장 소리만 또렷하게 들린다. 숨을 참고 견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온몸이 묵직해지지만 나는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물 속에 오래 머물려면 급하게 숨을 쉬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면 방향을 잃고 허우적거리게 된다. 살면서 숨을 참아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아이가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을 때 좌절하지 않도록 감정을 숨기고 숨을 죽이며 아이의 마음을 감쌌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자신만의 길을 찾았고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개척해 주었을 때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숨을 참았던 그 시간이 나와 아이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 시간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김경아 작가 때로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삼켜야 할 때, 당장 도망치고 싶지만 버텨야 할 때, 조급한 마음을 누르고 기다려야 할 때, 숨을 참는 일은 힘들다. 하지만 그 순간을 이겨낼 때 비로소 물 위로 나와 크게 숨을 내쉴 수 있다. 해녀들이 힘겹게 숨을 내쉬며 다시 바다로 향하듯, 나 역시 삶에서 숨을 참고 견디는 과정을 반복하며 바닷속 보물들을 캐 나가는 것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의외로 물속은 신비롭다. 빛이 닿지 않는 깊은 곳일수록 고요하지만,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잠시 그곳에 머문다. 물속에서 나의 감정들은 천천히 가라앉는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조급했던 흐린 감정들이 잠잠해지고 내 수면 깊숙이 덮여있던 언어의 조각들을 꺼내어 가만히 듣는다. 오래 참을수록 숨을 내쉴 때의 해방감은 더 크다. 친구가 다 들어주지 않더라도 견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수면 위의 공기는 더욱 달고 청량하다. 다시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숨을 참고 견디고 다시 떠오르기 위해. /작가

2025-03-18

네 탓 하는 정치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네 탓 공방이 가관이다. 우리나라 여야 정치가 책임보다 책임을 전가하는 네 탓에 익숙한 분위기라지만 민감국가 지정을 둘러싼 여야간 네 탓을 보면 한심할 지경이다. 민감국가란 미국정부의 안보를 위협할 우려가 있거나 테러지원 등의 우려가 있는 나라를 대상으로 미국이 일종의 규제를 가하는 제도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이 이에 해당하는 나라다. 오랜 동맹관계의 한국을 민감국가에 올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국의 입장에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더구나 미국이 민감국가 목록에 동맹관계인 한국 이름을 올린 배경에 대해 아직도 우리나라 외교당국이 정확한 사유를 모른다고 하니 국가 외교력에 공백이 생긴 것 같아 실망이 크다. 이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은 더 실망스럽다. 야당은 “계엄선포 탓”이라며 공격하고 여당은 “탄핵남발 탓”으로 응수하는 등 책임 떠넘기는 모습이 한국 정치 수준을 짐작케 하고 있다. “넘어지면 막대 타령”이란 우리 속담이 있다. 제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는 탓하지 않고 애꿎은 남탓할 때 쓰이는 말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내 탓이오”란 이름으로 스스로 책임지는 사회혁신 운동을 벌였다. 남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되돌아보는 사람이 되자는 운동이다. 사람의 심리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정치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국가 이익과 국가 미래 앞에서 네 탓보다는 내 탓을 하는 책임있는 정치가 돼야 한다. 네 정치 이제는 끝내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18

‘한국무시’하는 미국에 대응할 외교력 있나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우려했던 미국의 ‘한국무시’가 현실화 됐다. 아직 미국의 공식 발표가 나온 건 아니지만, 에너지부(DOE)가 산하 국책 연구기관에 다음 달 15일부터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분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일종의 기피국가로 낙인찍혔다는 사실을 정부도 몰랐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외교참사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세계 각국에 관세폭탄을 던지는 미국은 이제 한미자유무역협정(FTA)까지 재협상 대상으로 삼을 태세여서, 우리정부 공직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릴 때다. 작년까지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 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에 포함된 25개 나라는 심각성이 높은 순서로 테러지원국가(북한, 이란 등), 위험국가(중국, 러시아 등), 기타 지정국가(한국, 대만 등)로 분류된다. 이 목록에 오른 나라 중에서 미국과 ‘상호 방위 조약’을 맺은 동맹국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외교부는 지난 17일 밤 민감국가 지정에 대해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지만, 미 행정부는 아직 공식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지정 주체가 미 에너지부라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1월 국방부 업무보고 때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게 화근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은 당시 바이든 행정부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이 우방국인 이스라엘과 대만을 민감 국가로 지정한 이유도 핵 비확산 문제 때문이다. 미 에너지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민감국가 목록은 DOE 산하 정보방첩국이 관리한다. 민감국가 출신 연구자들은 DOE 관련 시설·기관에서 근무·연구하려면 엄격한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다만 한국은 최하위 관리범주에 속해 제한이 크게 엄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외교가 이렇게 혼란한 상황인데도 정치권은 서로 남탓만 하고 있다. 민주당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은 정부와 여당이 초래했다고 공격했다. 이재명 대표는 17일 “민감국가 지정으로 인공지능, 원자력, 에너지 등 첨단 기술영역에서 한미연합과 공조가 제한될 것이 명백하다.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핵무장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에대해 “민주당이 국익, 미래가 걸린 외교까지도 정쟁 도구로 삼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 대표를 겨냥해 “이런 인물이 유력대권후보라 하니 민감국가로 지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정부의 대미외교 역량이다.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온 뒤에야 부랴부랴 상황 파악에 나섰다고 한다. 미국 에너지부가 밝힌 민감국가 적용 시한까지는 아직 한 달 남짓 남았다. 이번주 중 산업부장관이 미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는 일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전에라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지정 경위를 명확히 파악하고, 한미간 동맹체제에 금이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2025-03-18

생각 변화가 삶의 질을 가름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처음 혁신을 도입하는 기업이나 도입한지 오래되어 혁신의 피로도에 젖어 매너리즘에 빠진 기업을 만나면 한가지 질문을 한다. ‘혁신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돈 버는 것’‘변화하는 것’‘가치창출’ 등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혁신은 편함을 바꾸는 것’이기에 거부감이 있고 저항이 따른다. 혁신은 생각에 변화를 주어 편함을 바꾸면 더 편해지고 일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원리이다. 이것이 참으로 어렵다. 혁신 경영에 생각이 있는 CEO를 만나면 회사 전반적인 분석과 의견수렴을 통해 하얀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린다. 속 그림은 실행의 주체인 현업과 함께 그린다. 기업의 혁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지 탐색해 본다. 혁신은 생각이다. 인공지능(AI)시대 생활문화, 과학 문명, 한강의 소설 등은 생각의 산물이다. 생각에 가치 더하기를 하면 혁신이 된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혁신의 정의를 ‘새로운 조합의 창출’이라고 하였고,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발, 생산 방식, 시장 개척, 조직 형태의 도입 등이 포함 된다. 현대 경영학에서는 ‘가치 창출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 프로세스 최적화, 제품, 서비스 등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제조업의 혁신은 단순한 제품 개선을 넘어, 생산성 향상, 원가 절감, 품질 개선, 지속 가능한 경영 등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보면, 신제품 개발이나 기존 제품의 획기적인 개선 등의 제품 혁신, 낭비를 찾아 제거를 통한 생산 공정의 개선과 자동화, AI 적용의 공정 혁신, 새로운 판매 방식, 유통 채널 확장, 서비스 결합 등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 등이 있다. 혁신을 통해 잘 나가는 기업을 따라 생산방식을 도입하거나 모방하면 실패 확률이 높다. 자사의 일의 속성, 설비 특성, 생산 프로세스 특징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혁신 방식을 선택하여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학습 진화의 관점에서 6시그마, TPS, TPM 등 혁신 기법의 수행 원리와 기능을 이해하고 자사의 생산 조건에 맞는 기법을 선택하여 문제를 푸는 것이다. 일과 생산 조건 변화에 적용성, 효과성이 있으면 혁신체계를 재정립시켜 지속성 속에 고유의 혁신 문화로 만드는 것이 성공의 길이다. 일반 가정에서 보면, 정리 정돈의 방법론을 적용하면 생활의 질이 높아 진다. 옷장에 안 입는 옷을 버리지 못하고 같은 옷을 또 사는 경우가 많다. 유행이 지났거나 오래 된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가치 있는 변화의 시작이 된다. 신발장도 아까워서 못 버리는 경우가 많고, 냉장고 냉동실에는 몇 달 전에 사놓은 음식 재료를 잊고 또 구입한다. 이러한 것은 생각에 정리 정돈을 못하기 때문이고 물건에도 정리 정돈이 안 되는 결과다. 변화와 혁신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크고 거창한 것에서 시작하려면 초기에 멈추고 마는 경우가 있다. 혁신은 거창한 이론이나 큰 변화보다 작은 생각의 변화에서 행동의 변화, 사물의 변화를 주고 가치 있는 행복한 삶으로 이어 진다.

2025-03-18

꿈나무에서 실버까지 피우는 묵향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이 오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은 듯 비바람과 강원 산간에 ‘봄눈 폭탄’까지 내리니 막바지 동장군의 심술(?)이 만만찮은 것 같다. 더욱이 이번 주부터는 영하권의 꽃샘추위로 남도에 피기 시작한 산수유나 홍매화가 화들짝 놀라며 가녀린 꽃잎을 짐짓 다물지 않을까 싶다. 한창 망울이 부풀어가던 벚꽃나무 가지가 찬 기온에 필 듯 말 듯 낭창거리며 개화시기를 가늠하고 있어도, 볕 바른 곳엔 이미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며 생동의 새봄을 부추기고 있다. 생동하는 봄날의 리듬을 먼저 타기라도 하듯 고사리 여린 손길에서부터 백발의 주름진 더벅손까지 벼루에 물을 부어 먹을 갈고 붓을 잡는 모습들이 진지하게만 보인다. 사각거리며 먹이 갈리는 소리가 긴 겨울의 움츠림을 걷어내는 손끝의 기지개 같고, 붓에 먹물을 찍어 서툴지만 한 점 한 획 써내려 가는 운필(運筆)은 성글어진 마음의 밭을 일구는 쟁기질 같다. 마치 예전의 서당이나 글방처럼 지필묵(紙筆墨)을 가까이하며 은은하게 묵향을 피워가는 몸짓들이 사뭇 담담하고 새롭기만 하다. 이러한 광경은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에서 펼치고 있는 ‘함께하는 서예 나눔’의 테마별 재능봉사활동 장면들이다. 즉,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에서는 매월 지역의 아동센터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서예체험학습을 통한 정서순화와 감성계발에 도움을 주는 ‘찾아가는 서예교실’을 운영하는가 하면, 고령화사회를 맞아 노년기의 인지력ㆍ기억력 개선과 치매 예방 및 어르신들의 활력증진을 도모하는 ‘실버인지 서예치유’ 교육 프로그램을 매주 진행하고 있다. 서예 꿈나무들의 육성에서부터 황혼기의 어르신들께 인지학습 소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세대와 공간을 아우르는 활기차고 유익한 서예 재능기부활동이 아닐 수 없다.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은 2021년 4월에 창단돼 서예재능 나눔으로 관내 취약·소외계층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다양한 재능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찾아가는 서예교실 30여 회, 포항다문화가정·탈북민가족 가훈 써주기, 사회복지시설 방문 부채작품 써주기, 포항문화원 주관 새해 가훈 써주기 등의 서예 나눔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천했다. 어르신들의 말벗을 해주며 인지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이색적인 서예치유 프로그램은 올해 3월부터 실시돼 주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서예를 배움은 단지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만이 아닌, 그에 수반되는 유용한 가치와 활동으로서 심신의 건강과 의지의 단련, 심미안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고도의 정신수양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먹을 갈고 먹물의 농도를 조절해서 붓글씨를 순서대로 써내려 가는 과정에는 뇌의 여러 영역이 자극되고 교감해 뇌의 활발한 활동이 이뤄진다. 한글이나 한문 글자의 의미와 필순을 떠올리며 기억력과 표현력이 좋아지고, 글자의 대소강약이나 먹물의 퍼짐, 전체적인 구도를 생각하면서 붓을 움직이면 공감각적인 능력이 살아나는 등의 효능을 기대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음악치료나 미술치료, 웃음치료 못지않게 ‘서예 치유’가 실버세대들의 정신과 마음의 안정, 치매 예방과 건강을 유지하는 신 장르로도 주목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예 꿈나무 학생들이 붓을 잡는 것이 흥미와 설렘의 희망이라면, 실버들에게는 치유와 소일의 활력과 위안일 것이다.

2025-03-18

국공립 어린이집이 혐오시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최근 한국일보의 한 보도가 적지 않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지난해 말. 서울 종로의 어느 아파트에서 운영되던 민간 어린이집이 사정상 문을 닫게 됐다. 폐원된 어린이집을 대신할 국공립 어린이집 설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렸다고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다양한 견해 표출이야 별반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국공립 어린이집으로의 전환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내뱉은 말들은 도가 지나치다. “우리가 사는 곳에 국공립 어린이집이 들어오면 저소득층, 장애인, 다문화가정 애들도 올 거 아니에요.” “영어유치원이면 괜찮지만 국공립 어린이집은 안 됩니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 어려우면 워킹맘을 때려치우세요.” 심지어 “너희들이 거지야?”라는 막말까지 나왔다. 특정 계층을 비하하고, 교육의 균등한 기회 제공이라는 대원칙을 부정하며, 심지어 국공립 어린이집 설치를 원하는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는 이야기까지 오갔다는 보도에 많은 이들이 혀를 찼을 게 분명하다. 21세기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내 집, 내 식구, 내가 사는 동네다. 더불어 살아가는 걸 지향하는 공동체의 붕괴는 극도의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를 가져왔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돌아보는 경우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특히 자기보다 경제적 형편이 좋지 못한 주변을 바라보는 눈길은 차갑게 식어간다. 요즘 아이들은 같은 동네에 산다고 하더라도 아파트 평수에 따라, 그 아파트가 임대냐 분양받은 것이냐에 따라 친구를 가려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장이거나 거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 서글퍼진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17

증오를 선동하는 정치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정치판이 ‘증오와 저주의 굿판’이다. 진영으로 갈라선 정치는 이미 전쟁이 된 지 오래고, 광장의 탄핵 찬반집회에서는 비난·욕설·저주가 난무한다. 통합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대통령은 갈등의 중심에 서있고, 여야 의원들은 자기편 집회에 참석해서 증오를 더욱 부추긴다. 온 나라가 총성 없는 심리적 내전상태다. 누가, 무엇을 위해 증오를 선동하는가? 국민을 빙자하여 권력투쟁을 벌이는 정치인들의 그 검은 속내를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여야는 상대를 괴멸시키기 위해 ‘증오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상투적 수법은 ‘정의로운 우리’와 ‘무도한 그들’로 나누어 적개심을 부추기는 것이다. 증오정치로 ‘주체적 시민(市民)’은 점차 이성을 잃고 감정에 따르는 ‘종속적 신민(臣民)’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확증편향에 갇힌 정치팬덤들은 자기 진영의 돌격대로 기꺼이 선봉에 선다. 게다가 편향적 언론과 극단적 정치 유튜버들도 증오의 선동에 가세한다. 정치권과 연계된 당파적 미디어들은 정치적 증오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다. 미디어와 정치권력의 공생관계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공정한 보도’가 아니라 보수 또는 진보의 이념에 부응하는 ‘편향적 나팔수’가 되는 것이다. 정치 유튜버들은 혐오를 부추길수록 조회 수가 늘어나고 더 많은 돈을 번다. ‘증오의 확대재생산’으로 그들은 돈을 벌고 나라는 망해간다. 이처럼 망국적인 증오정치를 어떻게 끝낼 것인가?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성찰과 반성이 시급하다. 권력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품격을 잃은 보수’나 ‘개혁성을 잃은 진보’는 똑같이 나치 독일의 선동가 괴벨스(P. J. Goebbels)를 닮았다. 이성을 잃은 권력은 괴물이고, 괴물이 된 권력이 감성을 자극하는 선동정치가 바로 파시즘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이 ‘증오의 프레임’에 갇히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증오는 편협을 초래하는 영혼의 타락’이다. 확증편향에 갇힌 정치인들이 독선과 아집을 버릴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다시 회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정치인들에게 반성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주권자의 각성과 혜안(慧眼)’이 매우 중요하다. 역사학자 리처드슨(H. C. Richardson)은 “민주주의는 총구가 아니라 투표함에서 죽는다.”고 하면서 “유권자가 깨어 있지 않으면 정치인들은 히틀러(A. Hitler)처럼 대중을 선동해서 권력을 잡는다.”고 했다. 선동정치는 분노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국민들이 선동 당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다. 따라서 주권자는 ‘선동에 휘둘리는 감정’을 억제하고 ‘잘잘못을 가려내는 이성’의 눈을 밝혀야 한다. ‘비판은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지만, ‘선동은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증오의 감정에 지배당하면 이성적 판단을 그르친다. 민주주의는 관용과 절제, 대화와 타협이라는 ‘이성의 작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선동정치에 휘둘려서 이성을 잃으면 ‘독재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2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