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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년의 사치

어느덧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며 삶이 점점 고요해진다고 느꼈다. 예전의 불꽃 같은 열정은 온화한 불빛이 되었고 사소한 것에도 웃을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여중 동기로 만나 성장기를 공유하며 여전히 함께한 세 친구는 모이기만 하면 소녀시절로 돌아가 깔깔대고 품위를 상실한 채 거침없는 언어를 뱉어냈다. 셋은 얼마 전부터 의기투합했다. 10년 동안 함께 매달 소액을 모아둔 돈이 나름의 큰돈이 되어 중년이 된 자신을 위해 시원하게 한 탕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만의 기준을 만든 것은 절대 가족이나 생활비로 쓰지 않기였다. 오로지 ‘우리만의 사치’를 위해 쓰기로 했다. 이름하여 ‘중년의 사치 프로젝트’였다. J는 젊은 시절부터 명품 브랜드에 관심이 많았다. 결혼과 출산,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그녀의 관심은 아이들의 교육비와 가족의 안위로 옮겨 갔다. 그래서일까. J는 곗돈을 타는 날, 진지한 얼굴로 선언했다. “난 이번에 명품 가방 살 거야.” 우리 둘은 그 진지한 얼굴에 박장대소했다. 며칠 뒤 J는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안에서 나온 것은 반짝이는 가죽의 명품가방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처음 품에 안는 엄마처럼 조심스레 가방을 매만졌다. 너무 예쁘지 않냐며 행복해하는 그녀의 얼굴은 고급스러운 샹들리에처럼 반짝였다. L은 우리 중 가장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그녀는 늘 떠나고 싶어 했지만 현실은 그녀를 붙잡아 두었다. 아이들 교육, 남편의 일, 부모님 간병 등 그녀가 감당해야 할 무게는 늘 고정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곗돈을 타던 날, 다짜고짜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고 했다. 혼자서 프랑스 파리를 가겠다고 말했다. 우리 둘은 눈이 동그래졌지만 그녀의 멋진 중년의 첫 발을 있는 힘껏 응원해 주었다. L은 자신을 위한 여행을 감행했다. 귀국한 그녀는 우리를 만나 그 곳에서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에펠탑 아래서 마신 와인, 센강 위를 비추던 저녁노을, 그리고 모르는 언어로 길을 물으며 길었던 하루를 마무리했던 이야기까지. “이번 여행이 나를 살렸어. 다시 일어나 이겨낼 힘이 생긴 것 같아.” 그녀의 말에 우리는 간 큰 중년이라며 놀려댔지만 그녀의 용기와 추진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은 내게 돌아왔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오래 전부터 품어왔던 꿈을 세상에 내어놓기로 했다.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 오래 전부터 습작했던 시들을 펼쳐 글을 정리하고 또 다시 퇴고를 하며 큰 주제별로 분류를 하며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나만의 시집이 세상으로 나왔다. 김경아 작가 첫 출간 기념으로 친구들에게 사인을 하여 책을 주었다. 친구들은 내 책을 손에 들고 한낮의 태양처럼 여유롭고 당당하게 웃어 보였다. 함께 돈을 모으며 어떻게 자신만의 사치를 즐겼는지, 그 사치가 우리를 어떻게 다시 살게 했는지 우리 셋은 안다. 행복한 기억의 편린들이 우리만의 사치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우리 중년의 여인 셋은 그렇게 서로의 삶을 축복했다. 중년의 사치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었고 선언이었다. 돈은 다 사라지고 없지만 우리에겐 큰 보물이 남았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과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 함께 공유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크기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삶의 사치가 때로는 작은 순간에 깃들어 있다는 걸 우리는 종종 지나친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친구와의 웃음 속에 담긴 온기,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이렇게 스쳐가는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우리를 그려갈 것이다. 가장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가장 소중한 사치임을 알아가는 순간 내게 주어진 시간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작가

2025-04-01

파면을 기다리며

허민 문학연구자 2024년 12월 3일 밤을 기억한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그 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묵혀뒀던 ‘흑백요리사’ 다섯 편을 몰아보고 있었다. 새벽 2시 즈음 이제 잠이나 자볼까 하고 핸드폰을 보고 나서야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카톡창에 떠 있는 백여 개의 메시지들, 앞다퉈 발표되는 뉴스 속보, 담을 넘는 국회의원, 국회의 유리창을 깨는 군인과 이를 저지하려는 시민들. 순간 나는 내가 다른 시간대로 혹은 다른 세계관으로 ‘워프’된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공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계엄령이 선포됐다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당신들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나는 한국근현대문학을 공부했고, 식민 지배와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민중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엄령이 인지됐을 때 내 몸은 얼어붙었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 할지, 친구들의 안위를 물어야 할지, 어딘가로 대피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쥐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어야 할지 분명한 판단을 하지 못했다. 나름 연구자라며 그렇게 많이 읽고 쓰곤 했는데 저항에 관한 서사들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보았다. 총기를 무장한 채 동원된 군인들과 맞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대체 저들의 용기는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를 국회를 향해 어떻게 자기 몸을 이끌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장갑차를 온몸으로 막은 저 청년은 대체 누구일 수 있는 걸까. TV를 보고 마냥 놀라고만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운 만큼, 계엄군을 마주하며 인간 바리케이트를 형성하고 있는 저들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날 우리는 모두 들었다. ‘종북’과 ‘반국가세력’을 척결하여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의 목소리를. 저이가 말하는 ‘종북’과 ‘반국가세력’은 야당을 뜻했던 것일까? 그래도 대략 국민의 절반 정도가 지지하는 정당일 텐데, 설마 국군통수권자가 군사력을 동원해서 잡아들이려고 할 수 있는 건가. 여전히 믿기지가 않지만, 믿고 싶지 않은 장면과 소리를 이미 너무나 많이 보고 들어버린 것 같다. 탄핵이 기각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단 모두가 2차 계엄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혹자는 현실적으로 2차 계엄이 발동될 리 없다고 말한다. 군인과 경찰들이 더이상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들이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건 옳지 않은 일에 대한 정의감과 두려움, 자기 판단에 대한 신뢰 덕분이었을거다. 하지만 헌재에서 비상계엄이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대체 군인들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항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누군가 죽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는 괜찮다는 건가? 국회를 군인들이 봉쇄해도 문제없다는 건가? 계엄 정도는 그냥 넘어가지는 건가? 대통령 권한의 악의적 남용에 눈 감고 대체 어떤 미래를 모색하자는 건가?

2025-03-31

달성토성, 대구의 랜드마크

김규인 수필가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83 타워를 대구의 랜드마크로 생각한다. 그래서 대구를 찾으면 83 타워에 올라 야경을 구경한다. 360도로 회전하며 추억을 만들고 기념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 높다는 이유로 대구를 대표한다고 시민들도 관광객도 그렇게 믿는다. 일반적으로 높은 건물을 랜드마크로 정하기도 하니까 무리한 말은 아니다. 대구시는 지난 2월 28일 대구 신천 대봉교 좌안 둔치에서 ‘신천 프러포즈 조성사업’ 기공식을 열었다. 지름 45m의 복층 구조를 갖는 데크와 광장을 설치하여 수상 공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대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구뿐 아니라 지방시대를 맞아 지자체마다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랜드마크를 만드는 추세다. 이제는 고층 아파트도 판매를 위해 지역의 랜드마크라고 버젓이 이름을 붙인다. 랜드마크라고 하면 상징성이 있고 그만큼 잘 팔릴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상술의 일환이든 지방을 알리기 위한 지자체의 결정이든 간에 랜드마크라는 이름을 달고 건물이 들어선다. 서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를 경쟁하거나 독특한 모양을 갖추고 랜드마크라고 내세운다. 어쩌면 당분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 같다. 롯데타워는 도시의 랜드마크일 뿐만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도 한몫한다. 도시는 랜드마크가 있어 사람들을 불러들여서 좋고 기업은 이미지 개선뿐만 아니라 땅값이 비싼 수도권에서 많은 사무실 확보뿐만 아니라 판매장을 만들어 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판매하고 볼거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계속 그 공간에 머물게 한다. 대구의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83 타워, 고층 아파트, 대구 신천에 조성될 수상 공원이 랜드 마크가 될 수 있을까? 이즈음에서 랜드마크의 조건을 생각한다. 좋은 랜드마크는 문화와 역사의 바탕 위에 설 때 지역을 대표할 수 있지 않을까. 대구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런 곳이 랜드마크가 되어야 한다. 달성공원은 그런 곳이다. 대구 시민에게 청동기인의 삶을 들려주고 서침의 선행을 조용히 말하고 일제 강점기를 맞아 대구 시민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이제는 조용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그런 곳이다. 이러한 달성공원을 대구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친다. 더는 달성공원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대구 사람들은 모른다. 달성공원이 가진 가치를. 달성토성이라는 엄연한 이름이 있음에도 달성공원이라 부른다.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앞에서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2000년 이상을 견뎌 낸 달성공원을 함부로 대한다. 지금도 토성에선 동물들의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토성은 아파한다. 가까이 있다고, 늘 보는 것이라고 소중한 것을 모른다. 달성토성이 풀어내는 삶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이제는 제대로 된 대접을 하자. 2000년 이상을 견디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스러지고 넘어지는 게 세상일인데 말이다. ‘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는 건축가 승효상 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일이다. 달성토성은 대구시민이 사랑하는 불변의 랜드마크가 되어야 한다. 그 어느 것도 대체할 수 없다.

2025-03-31

사람의 계획, 하늘의 계획

지난 한 주. 산불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경북 북부 일대의 산림과 주택을 잿더미로 만든 화재는 국가적 재난이라 불러야 마땅했다. 그 외 경남, 경기, 호남 일부 지역에서도 각기 규모가 다른 산불이 발생했다. 불길이 숲과 나무를 태우고,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면 당연지사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진화 수단과 최대치의 인력을 동원해 불을 끄는데 집중하게 돼있다. 그건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인 동시에 재난 앞에 선 소방 인력의 의무니까. 하지만, 사람의 힘과 계획만으론 속수무책인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는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번 ‘전국 동시다발 산불’도 수많은 소방관과 관계 기관 공무원 등이 화마의 위협 속에서도 피땀을 쏟았고, 현대화된 진화 장비가 적지 않게 동원됐지만 일주일 가까이 완전한 불끄기에 이르지 못했다. 산불이라는 거대 재난 앞에서 무력한 인간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주불 잡기와 잔불 정리, 재발화 가능성 차단에 결정적 역할을 한 건 짧은 시간이지만 굵게 쏟아져줬던 ‘비’였다. 이를 ‘하늘의 힘과 계획이 곤궁에 처한 인간을 도운 격’이라고 말해도 타박할 이들은 없을 것 같다. 그 옛날 선현들은 이렇게 말했다. “인지천계 불여 천지일계(人之千計 不如 天之一計)”. 인간은 천 가지 계획을 세우지만, 그건 하늘이 예비한 하나의 계획에도 못 미친다는 의미일 터. 다행히 이번엔 천계(天計)가 인재(人災)를 막아줬다. 하지만, 언제까지 ‘하늘의 힘과 계획’에만 기댈 것인가? 재난에 맞설 철저한 준비는 결국 인간의 몫이 아닌가. 이젠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31

트럼피즘의 도전과 대응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상징되는 ‘트럼피즘(Trumpism)’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국에게도 엄청난 비용청구서를 내미는 트럼프 외교를 가치동맹 사고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국익’을 중시하는 ‘비즈니스 외교’의 실체를 알아야 하는 까닭이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트럼피즘은 ‘적자생존’과 ‘각자도생’이 판치는 정글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는 ‘정의가 힘’이 아니라 ‘힘이 정의’를 규정한다고 주장하며, 국익을 위해서라면 적과 동지를 구별하지 않는다. 제프리 삭스(J. Sachs)가 “트럼프 외교가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것은 비즈니스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 것처럼, 이제 동맹국도 미국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 우선주의·거래주의·보호무역주의로 구성된 트럼피즘이 미국의 이익을 약탈적으로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전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우선 외교전략 변화가 필요한데, 기존의 ‘가치외교’를 트럼피즘에 대처할 수 있는 ‘실용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철저한 거래주의자에게 가치동맹국으로서 읍소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트럼프는 동맹을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국익 증대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그가 요구하는 무역균형과 방위비 증액을 피할 수 없다면 협상을 통해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지 그 구체적 카드를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 특히 향후 예상되는 북미협상에서 우리의 국익이 손상되지 않아야 한다. 미국은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북한의 ICBM을 우려하지만, 우리의 위협요인은 단거리 핵전력이다. 만약 미국이 ICBM 제거를 대가로 북핵을 암묵적으로 수용하거나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북미관계를 개선한다면 최악의 상황이 온다. 이에 대비하여 우리는 핵재처리 허용 및 자체핵무장 카드를 제시하는 한편, 한·중 및 한·EU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대미협상력을 제고해야 한다. 한편 대내적 차원에서는 자체방위력 강화가 시급하다. 트럼프는 “미국이 더 이상 다른 나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각자도생을 부추기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긴급유럽정상회의에서 자체 핵확산억제력 제공을 위한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제시했고, 차기 독일총리후보 메르츠(J. Merz)는 “독자적 유럽방위체제를 신속히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유럽 국가들은 대서양동맹의 와해에 대비하여 재무장을 서두르는데, 북핵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가 동맹의 선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가 트럼프에게 배신당한 것처럼, 한미동맹의 미래도 결코 낙관할 수는 없다. 정글의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의 강력한 힘이다. 유럽이 미국에 대한 전략적 의존성을 낮추고 자체방위력을 강화하듯이, 우리도 동맹의존도를 낮추고 자체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 힘과 국익이 지배하는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우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2025-03-31

'포항여고 앞 잃어버린 다리를 다시 잇자'

안병국 포항시의원·도시공학박사 도심 하천을 자연형으로 복원하는‘학산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은 포항시가 중앙동 일원에 추진 중인 대규모 공공사업이다. 총 42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도심 속 생태환경을 회복하겠다는 이 사업은 환경과 도시경관, 시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취지에서 환영받았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시민들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불거졌다. 포항여고 정문 앞 학산천 위에 놓여 있던 차량 통행용 교량이 철거되고, 차량이 통과할 수 없는 보행자 전용 목교로 변경된 것이다. 해당 교량은 포항여고와 포항여중 학생들의 통학로이자, 학산주공아파트와 단독주택가를 오가는 주민들의 생활도로로, 처음은 목교로 설계되지 않았다. 사업 초기에 수립된 계획과 설계도면에는 기존 차도교 유지 방안이 포함돼 있었고, 이에 따라 주민들도 동의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민 누구에게도 설명되지 않은 채 계획이 바뀌었고, 공사 현장에서 철거와 변경이 이루어졌다. 문제는 이 변경 사실이 시의회는 물론, 해당 구역 주민들에게도 전혀 고지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행정이 지켜야 할 절차적 정당성과 주민 알 권리를 모두 무시한, 명백한 잘못이다. 주민들도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포항여고 앞 교량이 없을 경우 정문을 중심으로 통학 시간마다 차량이 몰리며 교통 혼잡이 심화될 게 훤하기 때문이다. 또 종전에는 학교로 바로 진입이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좁은 골목길을 돌아야 하고, 주변은 끊긴 생활 동선에다 늘어난 차량 정체로 시민 일상 속 불편으로 이어질 것이 명약관화한데 왜 이러냐는 것이다. 일각에선 무심하게 사라진 다리에 시민들은 정서적 상실감까지 호소하고 있다. 이 일에 대한 포항시의 입장은 시민들을 더욱 실망시킨다. 시에서는“회전교차로로 조성해보고, 불편하면 다시 차량용 다리를 놓겠다”고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불편을 확인한 뒤에 다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정은 시민 삶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 없다. 예측 가능한 문제였다면 사전에 조율하고 방지하는 것이 행정의 책무다. 시민은 사업의 대상이자 주체다. 공공사업은 시민의 삶을 편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시민의 불편을 감수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취지’가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절차의 투명성과 행정의 책임성 없이는 시민의 신뢰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포항시는 해당 사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첫째, 교량 변경이라는 중대한 계획 수정에 대해 시민과 시의회에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둘째, 주민 의견을 반영해 차량 통행이 가능한 교량을 복원하는 안을 마련하고, 그에 따른 예산 확보와 공사 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학산천 복원사업의 본래 취지는 시민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시민의 이동을 가로막고, 불편을 유발하며, 추억을 지우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행정은 시민과 함께 걷는 길을 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잃어버린 다리를 다시 잇는 용기다. 시민이 납득하고 참여할 수 있는 행정, 그것이 진짜 생태 복원의 출발점이다.

2025-03-31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어리석다

김진국 고문 처음 평양에 가본 건 1992년 2월이다.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판문점에서 자동차로 개성에 도착해, 평양까지는 기차로 이동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도 평양에 갔지만, 그때는 비행기로 바로 평양 순안비행장에 내렸다. 쇼윈도 도시인 평양 이외에는 볼 수 없었다. 개성에서 출발한 기차는 매우 느린 속도로 달렸다. 60년대 우리 완행열차 같았다. 철로 변이라는 제한은 있지만 덕분에 창밖으로 북한의 지방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게 산 모습이다. 나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말그대로 민둥산이었다. 보이는 산마다 높은 산꼭대기까지 다락밭이었다. 어린 시절 필자가 살던 시골에서는 대부분의 집이 나무를 때는 아궁이를 썼다. 어린아이들도 시간이 나면 소를 산비탈로 끌고 가 꼴을 먹이고, 산에서 나무를 잘라 땔감을 해왔다. 민둥산, 산사태, 홍수…. 초등학교에서부터 수없이 보고 들었다. 실제로 산에 나무가 별로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산림이 우거진 일본과 달리 한국은 벌건 황톳빛이었다. 필자가 기차에서 본 북한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도 그 풍경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72년 경주 동대봉산에 대형산사태가 났을 때는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73년부터 국토 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며 밀어붙여 10년 계획을 6년 만에 달성했다. 이때 29억4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필자가 학생일 때는 식목일마다 전국의 학생들이 나무를 심으러 산으로 갔다. 79년에 시작한 2차 녹화계획도 1년 앞당겨 87년에 달성하고, 3차 산지 자원화 계획도 88년부터 97년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나무라고는 보기 힘들던 산이 이제 길이 아니면 다니기가 어려운 울창한 숲이 됐다. 나무를 심어 울창하게 조림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나무는 많아도 정작 쓸만한 나무가 적다. 대부분 수입한다. 수종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그런데도 필요 없는 조직이라며 산림청을 없애려 한 적도 있다. 대형산불이 휩쓸고 갔다. 어이없는 대량 인명 피해가 났다. 사망자만 30명이다. 특히 경북에서만 사망이 26명, 부상 33명이다. 전국에서 주택이나 공장, 문화재 등 5098곳이 불에 탔다. 경북 북부의 산불 피해 면적만 4만5000여㏊다. 땔감으로 쓰는 사람도, 화전민도 없는데, 경북의 산들이 북한의 산처럼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성묘 철이다. 조상의 묘소를 잘 관리하려는 마음은 아름답다. 하지만 산에서 불씨는 금물이다. 잠시 방심한 틈에 사고를 친다. 불은 사고가 나면 걷잡을 수 없다. 오래전 필자가 아는 한 노인도 산소 주변을 청소한 뒤 검불을 태우려 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불씨가 날았고, 마른 나뭇잎에 옮겨붙었다. 해마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불은 무섭다. 성냥불이 성냥불이 아니다.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산불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그렇지만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건 어리석다. 사고를 내는 사람은 항상 처음이다. 지난 경험을 잘 전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산불 예방 수칙을 지키는 일이다. 정치인들은 이 와중에도 책임 공방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이다. 장기 과제를 초당적으로 챙길 책임이 국회에 있다. 그런데 눈앞의 선거에 유불리를 따진 잔머리로 사탕발림만 내놓는다. 산림이 우거질수록 산불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불이 잘 붙고, 거세게 화염을 내는 나무가 있다. 어떤 나무 열매는 불이 붙으면 수백 미터를 튀어간다. 방화선을 설치하고, 소방로도 어느 정도 확보돼야 한다. 이번 산불 때 소방헬기 도움이 절실했다. 거센 바람에 미군 헬기 지원만 기다렸다.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이 4355세대 6849명이다. 경북만 6385명이다. 생활기반이 무너진 사람도 많다. 과수가 모두 타면 수년간 막막하다. 하루빨리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도록 신속하고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3-30

마음의 여유

요즘 SNS에서 자주 보이는 쫀득 쿠키, 작년 말부터 유행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10-20대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디저트다. SNS를 통해 처음 알려진 쫀득 쿠키의 처음은 대만에서의 누가 쿠키가 원조다. 기존 누가 쿠키는 바삭하고 짭짤한 크래커 사이에 진득한 누가가 들어가 있다면, 약간 변형된 쫀득 쿠키는 버터를 녹인 마시멜로우에 탈지분유와 각종 과자 토핑을 넣어 굳힌 쿠키로, 마시멜로우의 달달함과 떡을 씹는 듯한 쫀득한 식감이 특징이다. 유튜브 채널에 쫀득 쿠키 키워드를 검색해 보면 가장 높은 조회수는 3240만회를 기록하고 있고, 인스타그램에서도 1398만의 도달수를 기록할 정도로 현재까지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인기에 힘입어 각종 편의점에서도 ‘쫀득’이란 키워드가 들어간 각 종 디저트를 선보이고 있어, 과거 한정된 곳에서만 구할 수 있던 쫀득 쿠키였지만 이제 쉽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어졌다. 인기 있는 디저트라면 꼭 입에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는, 처음 쫀득쿠키를 각 종 카페나 인터넷 판매처에서 사서 먹었었다. 지금은 사서 먹는 대신 직접 만드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다행히 쫀득쿠키는 별다른 베이킹 기술이나 도구가 필요하지 않고 만드는 방법 또한 정말 쉬워서, 이제는 습관처럼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만드는 방법은 요리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아주 쉽다. 우선 프라이팬에 무염버터 50-60g을 약불로 녹인다. 버터가 다 녹았을 쯤엔 마시멜로우 200g를 넣어 녹은 버터와 함께 섞는다. 이때 마시멜로우가 너무 클 경우 열에 잘 녹지 않고 탈 수 있기 때문에 큰 마시멜로우를 작게 썰어 넣는 것이 중요하다. 주걱을 이용해서 마시멜로우를 으깨는 느낌으로 살살 휘젓다 보면 오 분 이내로 힘없이 녹게 된다. 이때 프라이팬에 눌러 붙거나 마시멜로우가 타지 않게 약불에서 잘 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 마시멜로우가 약간의 갈색 빛을 돌며 반죽처럼 녹았을 쯤, 탈지분유나 시판용 우유 가루, 또는 녹차 가루나 요거트 가루를 넣어 달콤함을 더한다. 탈지분유를 넣지 않고도 만들 수 있지만, 가루를 넣어 만들면 분유의 달콤한 향과 함께 더 부드러운 식감이 완성되기 때문에 약간이라도 넣는 것을 더 추천한다. 가루가 다 섞였을 쯤엔 손질해둔 건조 과일이나 각종 과자를 넣고선 잘 섞어준다. 특별히 정해진 재료가 없어 집에 있는 과자나 제일 좋아하는 과자를 넣어도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마시멜로우 양과 토핑의 양이 1:1인 비율이 제일 맛이 좋다. 마시멜로우 양이 많을 경우 너무 달고 느끼해질 수 있고, 토핑의 양이 많을 경우엔 씹는 식감이 과해서 오히려 맛을 헤친다. 이제 다 완성이 되었다. 덩어리진 마시멜로우를 사각형 틀에 넣고 모양을 잡아 냉장고에 그대로 두 시간을 넣어둔다. 두 시간 후 꺼내어 칼이나 가위로 한 입에 먹기 편하게 자르면 끝이 난다. 넣는 재료와 자르는 크기에 따라 양은 달라지지만, 3-4인분의 양이 만들어진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SNS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맛은 쿠키크림 맛이 나는 비스킷과 동결 건조된 딸기를 넣어 만든 딸기쿠키앤크림 맛이나, 녹차 가루와 초코볼을 넣어 만든 녹차초코맛, 또는 황치즈 가루나 치즈 과자를 잘게 부숴 넣은 치즈맛 등등 다양한 레시피가 공유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를 넣어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단 점과 전자레인지로도 쉽게 만들 수 있단 점, 또한 껌이나 떡을 씹는 듯한 쫀득하면서도 말랑한 독특한 식감 덕에 더욱 인기를 얻는 듯하다. 요즘의 나는 쉬는 날이면 여유롭게 주방에 앉아 큰 공을 들이지 않고도 쫀득 쿠키를 만든다. 한 번에 많이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두면 일주일은 기본으로 먹기 때문에 매번 새로를 재료를 넣어 만들어 저장해두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내가 만든 쿠키는 시중에 파는 것보다 크기가 일정하지도 않고, 모양도 울퉁불퉁하다. 하지만 재료를 아낌없이 넣었던 탓에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맛은 훨씬 좋다. 겉모습도 완벽하면 더욱 좋을테지만, 어쩐지 모난 곳 없이 울퉁불퉁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든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게 아닌, 자르면 자를수록 토핑으로 가득 찬 쫀득 쿠키의 모양처럼, 내실을 견고히 하는 나의 모습이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라 생각하면서 요즘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2025-03-30

노탄, 파 드 되

봄이 더딘 발걸음을 옮기던 3월 초순의 주말, 경기도 여주에 바람 쐬러 다녀왔다. 논문 쓰고 새학기 강의노트 준비하는 동안 방학이 끝나버린 아쉬움을 개강 첫주의 나들이로 달래볼 심산이었다. 목덜미로 내려앉는 따스한 햇살이 꽤나 살갑게 굴었다. 그래서 코트를 벗고 가벼이 걸었다. 투명하기만 한 대기도 그 두께가 확실히 한겨울보다 얇아진 듯 보였다. 여주 산북면의 ‘수연목서’는 사진과 건축 전문 책방 겸 카페다. 문학, 철학, 미술 등 인문예술에 관한 책들도 사진집, 건축서적과 함께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수잔 손택이나 발터 벤야민의 두꺼운 벽돌책들, 전집이라고 해도 될 만한 한강 작가의 콜렉션을 그저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 속에 숭고한 빛의 탑이 세워지는 기분이었다. 2층 전시공간에 사진작가 필립 퍼킨스의 ‘노탄’전이 마련돼 있어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에 둔 채 전시장 문을 열었다. 사진에 문외한인 내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이다. ‘노탄(notan)’은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대상을 표현하는 일본 미술양식으로 우리말 ‘농담(濃淡)’과 같은 개념이다. 1935년생인 필립 퍼킨스가 생애 마지막 사진 작업으로 이 노탄에 천착한 것은 기나긴 도정의 끝에서 비로소 한 깨우침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길 위에 쌓인 눈과 녹은 눈의 대비, 숲 그늘과 양지의 대립 혹은 공존, 낙엽을 한 데 모아 밀어놓음으로 생겨난 정원의 오솔길과 그림자의 퇴적, 달빛의 농(濃)과 담(淡) 등을 보는 사이 통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절반이 구름에 가렸다. 그 순간 벽면의 한 작품 설명문에 눈길이 멈췄다. 필립 퍼키스가 지향하는 노탄의 미학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었다. “노탄은 음양의 원리처럼 주제와 배경 중 어느 것도 우세하지 않은 일본의 디자인 개념이다. 검은색이 흰색보다 중요하지 않고 흰색은 검은색보다 중요하지 않다. 교토에 있는 갈퀴 모양의 정원에 대해서도 생각했는데, 정원의 무언가가 다른 것들보다 더 ‘중요’하게 부각되면 그 정원은 실패한 것이다. 발레를 볼 때, 특히 파 드 되에서, 두 무용수의 몸과 몸 사이의 모양은 각자의 몸 자체의 모양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조화와 균형에 관한 이야기다. 검은색과 흰색은 서로 중요하고 또 서로 중요하지 않다. 정원의 나무와 돌과 물통과 널브러진 빗자루와 웃자란 풀 중 홀로 돋보이는 것은 없다. 없어야 한다. 정원은 오직 정원이지 분수대나 꽃나무를 위한 배경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정원에는 빛과 어둠, 바람과 고요, 상승과 하강, 움직임과 멈춤, 삶과 죽음이 있고 그 모든 대비 사이엔 이름 붙일 수 없는 또 다른 국면들이 있다. 마침 겨울과 봄 사이의 이 계절을 나는 언젠가 ‘겨우봄’이라고 부른 적 있다. ‘파 드 되(pas de deux)’는 발레에서 여성과 남성 무용수가 함께 추는 춤이다. 두 무용수의 몸과 몸 사이의 모양은 각자의 몸 자체의 모양만큼 중요하다는 말은 얼마나 뭉클한가. 그러고 보니 몸과 몸의 사이를 들여다본 기억이 없다. 왼손과 오른손을 어찌 잘 맞대면 하트 모양의 작은 허공이 생기고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면서도 우리는 왜 사이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걸까. 세상엔 옳고 그름, 선과 악, 미와 추, 본질과 비본질, 남자와 여자, 냉정과 열정, 왼손과 오른손, 나와 너만 있지 않다. 이항대립은 단조로우면서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불확실과 우연, 망설임과 은유, 모호한 고백과 불투명한 사랑, 이쪽이나 저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마음 들의 파 드 되는 공허나 허무가 아니다. 탄생과 죽음 두 사건 사이에서 우리의 삶은 단 1초도 무의미하지 않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여주 신륵사에 가니 아직 잎이 하나도 돋지 않은 풀과 나무의 침묵 덕분에 남한강 윤슬이 발밑까지 흘러오는 듯 금빛 밀물의 생생한 카페트를 일주문 안에 펼쳤다. 600년 된 은행나무를 보는데 커다란 두 목본경 사이에 관세음보살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두 굵은 나무줄기가 만드는 파 드 되의 빈곳에 썩은 고목이 보살이 되어 은행나무를 소원나무로 바꿔 놓았다. 구름과 새가 이따금 지나가는 나무 사이, 600년 동안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을 그 사이를 오래 바라보았다. 남한강 윤슬도 거기 이따금 반짝이길래 나는 강변으로 내려가 물과 빛이 만드는 노탄인지 파 드 되인지 물과 물 사이의 빛, 빛과 빛 사이의 물 앞에 섰다. 그런데 물과 빛에게는 사이가 없고 무엇이 물이고 빛인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흘러감과 밀려옴이 구별되지 않았다. 문득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가 어떻게인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2025-03-30

네 편 내 편을 넘어서는 법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지난주 수요일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 재판 결과가 나왔다. 결과가 나오기 하루 전까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에게 재판 결과에 승복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냈다. 그러나 이재명에게 무죄 판결이 나오자 국민의힘 측은 태도가 돌변하여 재판부에 승복하라던 외침을 하루만에 뒤엎고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면서 판사의 정치 성향에 따라 판결하면 안 된다’고 소리를 높이며 재판부를 향해 연일 비난의 날을 세우고 있다. 애당초 국민의힘은 재판부가 국민의힘에 유리하게 판결할 것이라고 확신한 듯하다. 그런 기대를 할 만도 한 것이 이재명 재판을 맡은 재판부가 이미 손준성과 최강욱을 국민의힘에 유리하게 판결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손준성은 윤석열 검찰 고발 사주 의혹 당사자로서 더불어민주당에게 탄핵소추되었는데, 재판부는 2024년 손준성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고, 조국 아들 허위 인턴 증명서로 고발된 최강욱에게는 유죄 판결을 내려 의원직을 상실하게 했으니 말이다. 재판부 판결 요지를 보면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발언을 다른 합리적 해석을 배제한 채 공소사실로만 해석하는 것은 법리에 어긋나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윤석열 대통령 구속을 취소할 때와 같은 논리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같은 논리를 자기편에게 적용하면 훌륭한 판결이고 상대편에게 적용하면 정치 성향에 따른 판결이라는 비난이 멈추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개인 간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내 말에 동의하면 좋은 사람이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편들면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찍는다. 이렇게 내 편에 유리하면 옳고 상대편에 유리하면 틀렸다는 내로남불 논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2400여 년 전에 살았던 중국 사상가 장자가 쓴 책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장자는 A, B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일 때 A가 이겼다고 해서 정말 A가 옳고 B가 옳은 것인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제3의 심판관을 요청한다고 해서 그가 정당한 판결한다는 보장이 없다고 한다. ‘그 사람이 우리 둘 중 한 사람과 생각이 같으면 공정할 수 없고, 우리 둘의 생각과 다르다면 그 역시 공정할 수 없다’며 심판관의 공정한 판결에 회의적이다. 그렇다고 장자가 진리가 없다거나 내 편 네 편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는 겸손으로 자기중심적 이해와 시비를 넘어서서 ‘도추’라는 최선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이런 방법은 너무 추상적이고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 오히려 미국의 정치학자 존 롤스가 말하는 ‘무지의 베일’이 더 현실적이다. ‘무지의 베일’이란, 사람들이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전혀 모른다고 가정하는 것인데, 이런 가정을 하면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정책을 선택하고 그래서 합의점 도출이 쉽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나마 무지의 베일에 가까운 쪽은 시민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중심축으로 잘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2025-03-30

소크라테스의 변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가황으로 불리는 나훈아의 ‘테스형’이란 노래를 듣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국 대중가요에 그리스의 철학자를 끌어들인 것도 엉뚱한데, 소크라테스란 이름에서 테스만 잘라 형이란 칭호를 붙인 게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이라는 가사도 소크라테스란 철학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쓴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즉흥적으로 끌어온 게 아닌가 싶다. 소크라테스는 예수, 석가, 공자와 더불어 세계 4대 성인(聖人)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기독교, 불교, 유교 같은 종교적 교리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흔히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나 “악법도 법이다”란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전자는 아폴론 신전 앞에 새겨져 있던 말이고 후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보다는 “무지(無知)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는 말이 신빙성이 있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일 테다. 다른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 역시 직접 저술을 하지는 않았다. 그의 행적이나 사상은 주로 제자였던 철학자 플라톤의 저술에 의해서 후대에 전해졌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란 책이다.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아테네의 신을 부정했다’는 죄명으로 아테네 법정에 섰을 때, 자신에 대해 변론했던 말을 그 자리에 참석했던 플라톤이 옮겨놓은 것이다.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을 담은 이 변론에서 그는 참된 정의와 진실과 용기가 무엇인지를 설파했다.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명변론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배심원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다. 그의 변론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 것인가’라는 정의와 진실의 규명을 위한 것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로부터 500여 년 후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 선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 예수는 자신을 변호하는 말조차 하지를 않았으나 빌라도는 그에게 죄가 없다는 걸 알았다. 채찍질을 해서 풀어주고자 했으나 거부하는 군중들의 소요를 우려해서 결국 십자가형 선고를 내렸다. 소크라테스에게 유죄판결을 한 아테네 법정의 배심원들이나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친 빌라도의 법정의 군중들이 그렇듯, 예나 지금이나 민심이 반드시 정의와 진리의 편만은 아니라는 것을 되새기게 하는 사건이었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나훈아의 이 질문에 소크라테스는 뭐라고 대답을 할까? 대답보다는 되묻기가 전공인 그는 되레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세상이 어떤데?” 세상이 어떤지를 미주알고주알 일렀다고 한들, ‘테스형’은 그 해결책을 스스로 찾도록 소위 ‘산파술’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렇다. 오늘 대한민국을 난국에 휩쓸리게 한 것도 국민들이고, 그 난국을 헤쳐나갈 해결책도 결국 국민의 몫이다.‘테스 형’에게 물을 일이 아닌 것이다.

2025-03-30

엄마의 뜨개질

전영숙 시조시인 홈쇼핑에서 니트 카디건 광고가 한창이다. 쫀쫀하고 촘촘하게 짠 니트는 화려한 원색이다. 호스트의 쨍하는 소리가 눈을 끌어 모은다. 실 값이나 나올까 싶은 가격이어서 마음이 살짝 동한다. 가을이 시작되면 엄마는 늘 뜨개질을 시작했다. 어릴 적 우리 삼남매의 겨울옷 준비였다. 엄지와 검지에 실을 감고 대바늘을 움직여 코를 만들었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 어느덧 마름모가 만들어지고 꽈배기 무늬도 옷에 도드라졌다. 신기했다. 완성된 옷에는 가끔 목둘레에 방울을 만들어 달아주기도 했다. 공들여 짠 옷은 2년 이상 입기는 힘들었다. 키가 크면서 옷이 작아지기 때문이었다. 작아진 옷은 동생이 입다가 또 물림이 되어 막내 동생에게 갔다. 막내도 입지 못하게 되면 옷을 몽땅 풀어냈다. 중간에 실이 끊어질까봐 백열등 아래에서 조심스레 풀던 모습이 떠오른다. 풀어낸 털실들을 섞어 새로 짠 옷은 때로 오묘한 색을 지니게 되었다. 아무리 모양을 만들어 니트를 짠다고 해도 전문가가 아닌 엄마의 옷 모양은 단조로웠다. 소매는 고무뜨기로 조이고, 몸통은 일자에 목둘레는 거의 둥근 모양이었으니까. 내복을 입어도 털실은 몸으로 파고들어 가끔은 가렵고 따갑기도 했다. 두툼하고 투박한 그 옷보다는 알록달록한 기성복 입던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굳이 고생하며 뜨개질한 옷을 입히려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털실을 살 돈에 돈을 조금 보태 예쁜 옷을 사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중에 파는 알록달록한 옷들이 내 눈에는 훨씬 더 좋게만 보였으니까. 툴툴거림은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그 후로 손자들이 태어나서도 엄마의 뜨개질은 계속 되었다. 아이들이 조금 커 할머니가 짜 준 목도리와 조끼를 입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가차없이 그 옷들을 처분하였다. 내가 엄마처럼 대바늘을 들고 무엇인가를 떠 본 것은 아들들이 직장으로 학업으로 내 곁을 떠난 후였다. 늘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는 꽤 컸다. 삶은 허전했고 그 허전함은 마음속에 깊은 우물을 만들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해서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다. 그 때 문득 떠오른 것이 뜨개질이었다. 엄마처럼 잘 할 자신이 없어서 목도리를 떠 주기로 했다. 마음을 먹고 털실을 구입해 열심히 짜, 곧 아이들에게 보낼 수 있었다. 그 해 겨울은 다른 해에 비해 추웠다. 큰 아들은 외출할 때 목도리를 두른 인증샷을 보내왔다. 그러나 그 뒤로 사용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기성품이 더 가볍고 따뜻했으며 모양도 더 예뻤기 때문이리라. 몇 년이 지나고 그 목도리들은 어느덧 내게로 다시 돌아왔다. 섭섭했다. 몇 번을 버릴까 하다가 지금은 상자 안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다. 얼마 전 엄마는 가지고 있던 대바늘을 어떻게 해야 하냐며 혼잣말을 하셨다. 구순의 엄마가 뜨개질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너 가져갈래 하셨다. 이미 나도 눈이 나빠져 더 이상 뜨개질은 무리였고 내게도 꽤 여러 개가 있었지만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값이 나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 대바늘과 몇 개의 털실 뭉치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값이 별로 나가지 않는 바늘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했다. 별로 예쁘지 않은 목도리를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는 내 마음과 함께. 내가 목도리를 뜬 것은 나의 헛헛함을 채우기 위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면 엄마의 뜨개질은 자식에 대한 애정과 생존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을까. 고비고비 다가오는 삶의 어려움 앞에서 굴복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의지가 대바늘을 잡게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아진 옷을 버리지 못하고 올올이 풀고 다시 뜨는 그 속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내야 한다는 엄마의 절박함이 숨어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서툰 솜씨로 짠 목도리는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으면서 엄마가 짜 주었던 손뜨개 옷 어느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함이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가져온 대바늘과 털실은 갖고 있던 대바늘과 함께 장롱 깊숙한 곳에서 쉬고 있다. 엄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고여 있는 채로. 여전히 TV에서는 니트를 선전하는 호스트의 목소리가 뜨겁다. /시조시인

2025-03-30

영양군, 지방소멸대응 정책으로 ‘머무르고 싶은 도시’ 도약

오도창 영양군수 영양군의 큰 화두는 지방소멸이다. 이는 영양뿐만 아니라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다양한 지원 사업을 통해 지방소멸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젊은층이 양질의 일자리나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찾아 수도권 및 대도시로 떠나는 모습이 어쩌면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미얀마 난민 정착 시범사업은 타지자체와 차별화된 정책이다. 정부가 5년 내 체류 외국인 300만명 시대를 전망하고 있다. 이에 영양군은 농촌지역 최초로 ‘재정착 난민 안정 정착 시범사업’으로 유엔 난민기구(UNHCR)와 협력해 미얀마 난민 40여 명을 영양군에 정착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정착 추진 대상은 미얀마 내 소수민족인 카렌족이다. 법무부와 협의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 하반기 실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영양군이 그들에게 제2의 고향이 될 수 있는 하나 된 사회를 만들겠다. 인구소멸 대책 일환으로 교통망 확충도 서두르고 있다. 교통망을 만드는 것은 지역 간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것과 같다. 고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도로 인프라는 인구 유출, 공기관 유출, 경기 침체, 의료시설 부족 등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는 환경 개선에 큰 영향을 끼친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방치돼 있던 남북9축 고속도로(영천∼강원)를 뚫고 여기에 영양군이 포함돼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확보해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고속도로는 영양이 가진 잠재력 넘치는 관광지를 더욱 보여줄 수 있는 기회와 단절의 벽을 넘어 지역발전의 새로운 변화와 희망의 교두보가 될 것이다. 정주여건 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해가 지날수록 거듭되는 인구 감소로 현재는 지자체 존립마저도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렀다. 인구 절벽의 벼랑 끝에 서서 영양군은 나름대로 이곳이 살기 좋은 지역으로 변화되는 것을 꿈꾸며 한발 한발 전진하고 있다. 살기 좋은 동네가 돼가는 것은 나 혹은 내 가족이 머무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에 우선적으로 정주여건 개선과 도시민들의 급증하는 귀농·귀촌 의향에 따른 맞춤형 공급 대책으로 바대들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영양읍 동부리 일원에 계획 중인 영양형 자연·친화신도심 조성사업 일환이다. 주거 단지 390여 세대가 들어설 수 있는 기반을 닦고, 사업 핵심인 도로 및 상·하수도 시설을 담아내는 것이다. 영양군의 주택노후 문제에서 탈피할 수 있는 근간이 된다. 특히 청년 인구가 선호하는 양질의 주거 용지를 공급해 청년 인구 유출을 막고, 인구를 유입하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해 대규모 모임이나 예식 등을 위한 컨벤션센터와 여성가족센터를 입주시킬 계획이다. 지금 영양군이 존립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지역민의 애향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분들이 지역에서 삶을 이어가는데 큰 무리가 없도록 새로운 공간을 활용하고 형성해 나가겠다. 지역특성을 고려해 대중교통시설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시외버스터미널 공영·복합화 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고, 활용도를 증대시킬 계획이며 수변공원 둘레길을 포함한 동부리 일대에 지방 정원도 조성한다. 그리고 영양초등학교에 지하공영주차장을 조성해 지역주민들의 교통 복지 여건을 개선하겠다. 올해 우리군이 추진할 인구 유입 방안으로 지난해 영양군은 양수발전소 유치라는 쾌거를 이뤘다. 이를 통해 150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건설공사에 많은 인력이 투입돼 숙박시설, 식당 등에 활기를 불어넣고 최근 개서한 영양소방서도 상주직원 106명으로 정주인구 증가에 큰 변곡점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해 조성하는 체류형 전원마을과 정주형 작은 농원은 귀농·귀촌 수요 증가에 따른 출향인과 은퇴자 중심의 새로운 정착시설이다. 결혼비용 지원, 결혼장려금, 출산장려금도 모두 대폭 확대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정주인구는 물론 생활인구도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머무르고 싶고, 다시 오고 싶은 영양을 위해 천혜의 자연을 활용한 ‘생태관광의 메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져 나가겠다. 자연·친화적 관광 모델의 대표적인 영양 자작나무숲에 숙박동, 다용도 시설, 공원을 포함한 3만㎡ 규모 에코촌을 조성할 계획이며 국제밤하늘 보호공원과 반딧불이 등 지역특화 생태자원을 활용한 성장 동력을 구축해 나가겠다. 영양군은 도시의 소음과 번잡함에 지친 이들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자작나무의 꽃말처럼 지금 ‘당신을 기다린다’.

2025-03-30

객관과 중립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두어 해 무렵부터 가깝게 지낸 사람이 있다. 전공만 다를 뿐, 같은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며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교수다. 예전에도 인사 정도는 하고 지냈지만, 퇴임을 앞두고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는 관계로 진척된 것이다. 그러나 삶은 결국 인연생(因緣生) 인연멸(因緣滅)이란 작은 깨달음을 일깨운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12·3 내란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2시간짜리 내란 말입니까?” 하는 카톡이 날아왔다. 그 후에 이어지는 내용이 “가난한 한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진보와 작별해야 하고, 부자 감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며, 계엄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이의 현실 인식이라고 하기엔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는 언제나 보수가 견인했고, 현 정권의 종합부동산세 감세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는 데에는 진보와 보수 가리지 않고 온 국민이 노력해서 이룬 성과다. 연금 생활자인 나의 건강보험료가 1년 만에 50% 넘게 인상된 이유를 정부는 아직도 내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12·3 비상계엄 선포는 내남없이 위헌-위법한 범죄행위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왜 그런 비상식적인 내란 행위가 우리 모두의 책임이란 말인가?! 우리 국민 대다수는 범죄와 무관하고, 법 없이도 살아가며,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을 존중하며 살고 있다.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국회와 선관위, 민간 유튜브 방송을 무력으로 침탈하는데 찬성하지 않는다. 중대 사태가 터지면 나오는 말이 객관과 중립이다. ‘객관’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판단기준과 호오(好惡), 선악의 기준이 있다. 까닭 없이 미운 놈도 있지만, 이유 없이 고운 사람도 있는 법이다. 주관과 객관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상호 침투하면서 자리를 잡아나가는 것이다. 순수객관이나 완전한 주관은 인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적잖은 사람들, 특히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라는 말을 숨 쉬듯 편하게 말한다. 그것은 자기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견해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객관의 탈을 쓴 자들이 주장하는 또 다른 가치는 중립이다. ‘중립’의 의미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적인 입장을 지키는 것”이다. 중립을 내세우는 자들은 진실과 거짓도, 아름다움과 추악함도, 정의와 불의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들의 유일 가치는 가족주의다. 알리기에리 단테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에게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공간이 마련돼 있다고 일갈했다. 사회·정치적 위기 국면에서 객관과 중립을 주장하는 자는 가진 자들 편에서 다수의 판단을 호도한다. 인간 세상에는 중립도 객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역사와 후예에게 당당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물려주려면 중립과 객관의 허울을 던져 버려야 한다.

2025-03-30

소방 영웅들

우정구 논설위원 의성산불이 7일째 계속되던 날. 한 소방관이 SNS에 올린 사진이 화제가 됐다. 사진은 야외 주차장 땅바닥에 얼굴을 감싼채 누워있는 소방관의 모습이다. 다른 하나의 사진은 아스팔트 바닥에 지쳐 누워있는 또 다른 소방관 모습이다. 계속된 화마와의 사투에 지쳐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닥에 몸을 바로 눕힌 듯한 소방관들의 모습이다. 사진은 70만 건 조회를 기록했고 누리꾼들은 “몸조심 하시라”는 등 소방관의 안전을 걱정하는 댓글들을 올렸다.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의성산불 진화의 주인공은 역시 소방관이다. 괴물처럼 신출귀몰하는 산불과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들의 헌신적 노력은 직업정신을 논하기 전 그들의 숭고한 희생봉사정신에서 모두가 감동한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그들이 있기에 국민의 안전이 지켜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최근 10년간 통계를 보면 한해 5명꼴로 소방관들이 재난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이번 산불 진압과정에서도 소방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소방업무는 늘 사고를 곁에 두고 있다. 한 소방관의 말처럼 “죽을 뻔했다”는 말이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체험으로 느끼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조선시대 한양에는 소방을 전담하는 금화도감이 있었다. 그곳에 근무하는 이를 금화군으로 불렀고, 이후에는 불을 멸한다는 뜻에서 멸화군으로 불렸다. 비록 이름은 달라졌지만 화재와 재난에 대응하는 소방관들의 소임은 지금도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위험에서 달아나지만 누군가는 위험으로 달려간다.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 부른다”는 말이 생각 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30

세계 시조의 날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미국인 학생들이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30여 명 정도 되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학생도 있었다. 복도에는 한국인 여럿이 김밥, 잡채 등의 한국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놓고 손님 대접에 분주했다. 2018년 2월 8일, 미국 유타주 프로보의 브링검영 대학교(BYU)에서 개최된 ‘제5회 유타주 시조 낭송대회’. 세미나실을 가득 채운 청중 중엔 한국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 학교의 미국인 학생과 교수님들이었다. 대회의 주최자이신 마크 피터슨 교수님의 짧은 개회사와 심사위원 소개 후 학생들의 시조 낭송이 시작되었다. 준비된 PPT엔 한글로 쓴 시조가 뜨고 학생들은 화면을 보면서 낭송했다. 시조 아래엔 영문 시가 있었다. 아마도 한글을 모르는 청중을 배려한 듯했다. 두 시간 남짓 발표가 진행된 시조 대회에서 학생들은 시종 진지하고 긴장한 듯했지만 심사하는 나로서는 얼마나 재밌고 감동스러웠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한국인 청중들도 감격의 웃음이 동반된 큰 박수를 치며 즐기는 듯했다. 당시 BYU에 연구교수로 가 있었던 나는 피터슨 교수님의 초청으로 가서 연구실도 하나 얻었고, 이따금 한국문학 강의도 했다. 연구년이 끝나 귀국할 무렵 시조대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조낭송대회는 유타의 한국 교포들께서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운영한다고 했다. 매년 4월 학기 말에 개최한다길래 참석 못해 안타깝다고 했더니, 피터슨 교수는 한국고전시가 전공교수가 심사하는 것이 학생들에게도 좋은 가르침이 될 거라며 행사 일자를 나의 귀국일 전으로 앞당기겠다고 했고, 나는 귀국 하루 전에 이 행사의 심사위원장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유타 한글학교 교장선생님과 재미교포 소설가와 같이 심사하고, 심사평과 수상자 발표는 내가 하였다. 학생들의 시적 착상과 이미지는 발랄하고 참신하였고, 시조에 대한 지식도 꽤나 단단해 감동적이었으며, 한복을 갖춰 차려입는 성의도 고맙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시조의 율격을 제대로 이해하는 학생을 가려 뽑아 수상자로 정했다. 그때 피터슨 교수의 개회사가 뜻깊었다.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俳句)가 미국에 알려져 창작 유행이 있다면서, 한국의 시조도 전통과 역사가 하이쿠에 밑질 것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시카고의 한인단체 세종문화회 중심으로 시조 창작이 매우 활발하며, 심지어 우주선에 시조를 실어 보냈다 했다. 피터슨 교수는 이 시조 대회를 시카고의 시조 유행과 접목시키고 싶다고도 했다. 그 말이 현실이 될 줄이야…. 지난달 피터슨 교수님의 유튜브 채널 ‘우물 밖의 개구리’로 2월 7일, ‘세계 시조의 날(World Sijo Poetry Day)’ 선포식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이 기념식을 유튜브로 전 세계에 중계했다. 왜 2월 7일일까 궁금했는데 고려말 시조 시인 역동 우탁 선생의 기일이라는 것이었다. 족보 연구의 대가이신 피터슨 교수님다운 발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2006년 8월 현대시조 100주년 기념식에서 ‘겨레 시 시조가 세계만방에 천둥처럼 울리게 하겠다.’는 선언이 무색한 날이었다.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운 날이기도 했다.

2025-03-27

경추 디스크와 담결림의 치료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현대인의 고질적인 통증 중 하나가 경추 통증과 담 결림이다. 특히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거나 스마트폰을 장시간 사용하는 습관은 목과 어깨 근육에 과부하를 주며 점차적인 변형을 초래한다. 많은 사람이 목을 돌릴 때 날개뼈 주변에서 통증을 느끼거나 경추 부근이 뻐근하고 결리는 증상을 호소한다. 이는 주로 견갑배 신경이 지나가는 부위에서 나타나는데 견갑배 신경은 경추 5번 신경에서 분지되어 나오기 때문에 경추의 문제가 심화되면 신경 압박으로 인해 팔이 저린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거북목, 굽은 등, 둥근 어깨와 같은 불량한 자세는 경추와 어깨 주변 근육의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하며 신경 압박을 증가시켜 통증을 더욱 심화시킨다. 거북목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은 머리가 몸통보다 앞으로 빠지면서 경추의 전만이 사라지고 이에 따라 경추 5번 신경 부근의 압력이 증가한다. 둥근 어깨는 흉곽을 닫히게 만들어 호흡에도 영향을 미치며 견갑골의 움직임을 제한하여 디스크와 담 결림 증상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러한 증상의 치료 방법 중 하나로 초음파를 이용한 초음파 가이딩 약침 치료가 효과적이다. 초음파를 보면서 정확한 부위에 약침을 주입하면 견갑배 신경과 경추 5번 신경을 약침으로 신경완해 방식으로 박리할 수 있다. 이는 신경 주변의 유착을 풀어주고 염증을 완화하며 신경이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순한 마사지나 물리치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깊은 층의 문제까지 접근할 수 있어 많은 환자들에게 좋은 효과를 보인다. 직접적으로 신경이 눌리는 현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많은 임상 사례에서도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한약 치료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경락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처방과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한약재 등을 잘 조합하면 경추 디스크에 효과적이다. 한약은 단순한 통증 완화가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을 맞추고 면역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초음파 가이딩 약침 치료와 병행하면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다. 효과적이고 재발 없는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한약처방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치료만큼 중요한 것이 예방과 관리다. 거북목과 둥근 어깨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자세 유지가 필수적이다. 컴퓨터 모니터는 눈높이에 맞추고 스마트폰은 눈높이에서 사용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장시간 앉아 있을 때는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하며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흉추와 어깨를 펴는 스트레칭과 등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은 자세를 바르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치료와 관리가 병행될 때 경추 통증과 담 결림뿐만 아니라 거북목, 굽은 등, 둥근 어깨로 인한 다양한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대인의 생활 습관 속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통증일지라도 적절한 치료와 꾸준한 관리로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통증을 방치하면 장기적으로는 만성 질환으로 발전할 위험이 크므로 증상이 나타났을 때 조기에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5-03-27

기우제

우정구 논설위원 기우제는 가뭄이 오래가면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비는 국가나 마을 단위의 제례 의식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왕이 몸소 기우제를 올렸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나 하면 조선왕조실록에는 음력 매년 4월에서 7월 사이에 기우제를 거행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사회에는 기우제가 중요한 의식의 하나로 여겨졌다. 기우제 기간에는 국왕과 백관들은 근신을 했다. 국왕은 정전이 아닌 바깥에서 정무를 보고, 임금의 수라상 반찬 가짓수도 줄였다고 한다. 도룡뇽 기우제라는 게 있었다. 도룡뇽을 비바람을 일으키는 용의 일종으로 보고 그를 향해 기도 드리는 방식이다. 단지에 도룡뇽을 담아놓고 아이들에게 “비를 내리게 해주면 풀어준다”는 식의 주문을 하게 하는 의식이다. 벼농사를 주업으로 살아가는 우리나라는 기우제를 어떤 제례의식보다 중시했다. 그 종류도 많고 제사 대상의 신도 많다. 묘파기, 디딜방아 훔치기, 물병 거꾸로 달기 등이 기우제에 동원된 풍속물이다. 디딜방아는 곡식을 찧는데 쓰는 농기구지만 사람의 힘이 가장 많이 축적된 기구란 뜻에서 의식의 도구로 잘 활용된다. 마을에 따라서는 훔친 디딜방아를 마을 입구에 거꾸로 세워두고 악귀와 질병을 쫓았다고 한다. 미국 인디언들이 지내는 기우제는 반드시 비가 온다는 속설이 있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게 아니고 기우제를 한번 시작하면 비가 올 때까지 하기 때문이다.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이 경북 북동부 산간 농촌마을을 초토화 시켰다. 비가 와야 불길을 잡을 것 같은데 온 국민이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형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27

‘괴물 산불’에 당하고 보니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예기치 않았던 대형 산불이 영남지방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 21일 경남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은 지리산 기슭까지 파고들었고, 22일 경북 의성에서 성묘객의 실화로 시작된 대형 산불은 6일째 강풍을 타고 안동 청송 영덕까지 산과 마을을 까맣게 태우고 있으며, 25일 울산 울주군에서 일어난 2건의 산불은 거의 진화된 상태이다. 이들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는 진화 대원을 포함한 사상자가 50명을 넘었고 피해 면적 또한 역대 최고로 기록되었다. 산불을 진화하던 헬기가 추락하여 기장이 순직한 안타까운 일도 있다. 지난주에는 폭설이 쏟아져 붉은 설중매가 아름다운 봄날을 노래했었는데 이번 주에는 강풍을 타고 ‘괴물 산불’이 영남지역을 할퀴고 있으니 이 무슨 난리인가! 산불은 70% 이상이 소소한 실수로 인한 화재이다. 이번 산불도 비가 적게 내린 3월에 바싹 마른 낙엽이 쌓인 숲을 태풍급 바람을 타고 넘어 마을을 덮쳐 인명 피해도 엄청나다. 산림청은 산불 재난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하고, 정부는 해당 지역에 ‘재난 사태’를 선포하여 헬기 130여 대와 진화인력 4600여 명을 투입하여 산불 끄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불길은 커졌다 줄었다하며 마음을 태운다. 가장 심한 곳은 경북지방,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고운사의 가운루 등을 전소시키고 강한 남서풍을 타고 안동까지 타들어 가서 하회마을과 문화유산을 화재 위험에 빠트리며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문화유산 대피작전’을 펴게 했다. 산청 산불은 하동의 900년 된 은행나무를 불태웠고 영양 답곡리 산불에 400년생 만지송은 무사했지만 국가 자연유산 피해도 크다. 의성 산불이 안동까지 번지는 데는 이틀밖에 걸리지 않는 등 불붙은 나뭇가지나 솔방울 같은 도깨비불 비화(飛火)에 대한 행정 당국의 대응이 미숙했을 수도 있다. 수시로 안내문자를 보내어 주민 대피를 유도했지만 대피 장소의 알림이 확실하지 않고 주로 학교, 경로당, 마을회관이지만 먼 곳일 수도 있어 인명 피해가 큰 듯하고 거의 기동이 힘든 7080대 노인들이다. 이웃을 구하려던 영양군 이장 부부, 영덕 매정리 실버타운 입소자 3명이 이동 중 화염에 차량이 폭발하여 사망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 약 2만8000명의 주민들이 대피소에서 어려운 날들을 보내고 있으며 안동과 영덕은 전 주민에 대피명령이 내려져 있고, 건물도 300동 이상이 타버렸다. NASA 위성 관측 사진에도 우리나라 3곳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가 선명하고 산불 현장 항공 사진에는 산이 온통 새까맣다. 이렇게 산불이 확산하는 이유를 건조한 기후, 숲의 발화성, 지형적 요인들을 꼽을 수 있겠지만 숲 가까운 건축물의 난연성 구조도 고려해 봐야 될 것이다. 또 주민들이 고통을 겪는 정전과 단수(斷水), 휴교, 철도와 고속도로 운행 중단에 대한 신속한 대응 지침도 마련되어야 한다. 산불 발생을 막아주는 큰비 소식은 거의 없고 다음 주부터는 맑은 날들이 계속된다니 반갑지만은 않다. 곳곳에 예정된 봄꽃 축제도 이번 대형 산불로 마냥 힘을 잃을 것만 같아서 좀 섭섭한 마음이다. 하늘이시여, 봄비를 흠뻑 내려주소서….

2025-03-27

불 켜진 창

윤명희 수필가 안막커튼까지 쳤다. 옅은 빛마저 사라지자, 시간의 소리도 멈추었는지 고요하다. 새벽 2시가 지나갔는데도 감은 눈이 아프다 못해 시릴 뿐이다. 잠이 들어야 할 자리에 뜬금없이 그녀가 들어온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프로필에서 만났던 앳된 모습도, 그녀가 쓴 소설의 제목 또한 기억에 없다. 단지 조금은 특이했던, 아니 내 취향과는 다른 디자인의 책 표지만 생각날 뿐이다.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갔다. 불을 켜자 싸늘한 기운이 덮친다. 겨우내 난방을 하지 않은 그 방은 서재라기보다 창고에 가깝다. 책장 앞에 놓인 잡동사니들을 치우고 그 표지를 찾아 책 사이를 더듬었다. 그녀는 30년도 더 전, 대학생이었던 막냇동생의 동기생이었다. 얼굴 한 번 마주 한 적이 없었지만, 동생이 건네준 책의 저자라는 이유로 꽂아두었다. 다 읽었는지,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책이 아니라 그녀의 열정이었던가 보다. 대학생이 장편소설책을 낼 만큼 뜨거웠던 그녀를 내 마음만큼이나 차가운 방에서 찾고 있다. 찾는 것은 보이지 않고, 손끝에 낡은 책 세권이 걸린다. 여고 때, 해마다 받아 둔 문예지다. 표지가 세월에 끌려 다니느라 나달하다.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 책을 펼쳤다. 빛바랜 책장이 누렇다 못해 짙은 갈색으로 가고 있다. 간신히 붙어있는 책갈피가 흩어질까 조심스레 넘기다 문득 한 친구가 생각났다. 걔가 문예부였던가. 갈래머리 여고생이었던 우리는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가을 산은 나무마다 꽃불이 난 것 같았다. 온 산을 뒤덮은 붉은 색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탄을 쏟아냈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함성이 단풍을 타고 산을 올라갔다. 나의 언어는 너무나 빈약했다. “아!”라는 단발마적인 감탄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을 뿐, 다른 어떤 표현도 하지 못했다. 옆에 서 있던 친구가 눈물을 퍽 쏟았다. 나는 발까지 동동 구르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깊은 곳에 있던 감성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서러워 울음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말보다도 더 명확한 감정 표현이었다.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설악산과는 뗄 수 없는 존재로 남아있다. 책 세권을 다 훑어봐도 그녀의 이름이 없다. 그녀가 문예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는 아니었더라도 지금은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인터넷을 뒤졌다.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소설책이나마 꼭 찾고 말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맨 아래 한 귀퉁이에 기억속의 표지가 보였다. 프로필의 사진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인터넷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아 헤맸다.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는지, 단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설 외에 더 이상의 책은 없었다. 내가 이 시간에 그들을 찾는 이유를 생각했다. 매년마다 찾아오는 봄이 올해는 유난히 더 어지럽기 때문일까. 이 밤, 훅 치고 들어오는 봄을 감당하기가 힘들다는 게 이유였을까. 나이 든다는 게 익어간다고들 하지만, 내겐 그 홍시 같은 말랑함이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 같다. 설악산에서 울었던 그녀가 생각나는 건 내 속에서 꺼내지 못한 무언가가 있어서일까. 쳇바퀴 도는 일상 속에서, 퇴근하면 소파에 누워 자반뒤집기나 하는 내게 무슨 열정이 찾아들겠는가. 그나마 있었던 것도 시나브로 빠져나가 찌그러진 동그라미가 된 것 같다. 지금 나는 그 동그라미로 세상을 참 힘겹게 굴러가고 있다. 책장 앞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청소기 소리를 내지 않으려 걸레를 빨아 책장을 닦는다. 엎드려 방을 닦다 문득 그녀들도 나처럼 사그라져가는 것들을 아쉬워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멈췄다. 감성과 열정의 그녀들을 나와 동격화 시켜 놓으니 왠지 미소가 지어졌다. 책상을 닦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밤, 불이 오래 켜져 있었다. 짙은 어둠이 골목 사이로 물러날 때까지.

2025-03-26

송도 방파제

파도를 탓할 수 없으니 아울러 바다도 탓할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은 경계가 아니라 이어짐이다 다만 본질에 충실하면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송도바다 방파제 잠방잠방 윤슬과 대화하며 가장 독한 소주로 가장 황홀한 해산물을 얻어먹던 놀이터가 없어졌다 생업에 충실하며 눈매가 선한 그 아지매는 공부하라고 눈 흘기며 그래도 늘 다독여 주었다 아마 세상의 다른 곳에서 여전히 생선을 썰고 있을 것이다 죽도록 반성해야 할 일이다 포항제철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송도는 송도인데 송도 아님이 상심스럽다, 그리운 송도. 스무 살 무렵 송도 방파제에는 포장마차가 많았다. 방학 때마다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과 어울려 소주를 마셨다. 가난한 주머니를 우려한 단골집 아지매는 넘치게 해산물을 썰어주셨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많이 베풀며 살라 하셨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매운 칼질 솜씨며 선한 눈매가 가끔 그립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3-26

좀비, 괴물, 악마로 변한 산불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사실 관계를 다루는 신문 사회면 기사는 어지간해선 은유나 상징, 비유의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 게 묵시적인 불문율이다. 그럼에도 발생한 사고나 사건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하게 큰 피해를 야기하는 경우엔 간혹 그 약속이 깨지기도 한다. 5일 넘게 경상북도 일대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는 ‘의성 산불’은 산림 파괴와 주택 소실이라는 재산 피해와 함께 적지 않은 인명 피해까지 낳았다. 인간의 목숨은 무엇보다 귀한 가치다. 화마에 희생된 사람의 가족들 심정을 떠올리면 참담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의성에서 시작돼 인근 안동시와 청송군, 거기에 영양군과 영덕군까지 위협한 이번 산불을 신문과 방송에선 ‘괴물’ ‘악마’ ‘좀비’ 등으로 지칭하고 있다. 기자들이 의인화(擬人化·사람이 아닌 걸 사람에 빗대 표현하는 것)된 문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참혹한 상황이 짧지 않은 시간 계속됐다. 불이 난 지역의 주민들은 물론, 어려움 속에서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대원과 공무원을 무시로 겁박하고 있었으니 경북 일대를 공포와 공황 속에 빠뜨린 이번 산불을 좀비, 악마, 괴물로 부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화재로 인한 매캐한 연기와 살인적인 열기는 피어나는 화사한 꽃들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설계해야 할 경북민들의 봄까지 빼앗아갔다. 주저앉아 울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은 없는 법. 조속한 진화와 철저한 재발 방지책의 수립으로 다시는 이런 절망과 피폐의 시간이 오지 않길 바라는 게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 아닐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26

상식이 무너진 나라, 누가 구해야 하나

장규열 고문 법관이 법을 구부려 판결을 내렸다. 국민이 법을 믿을 수 있을까. 검사가 본분을 저버리고 범죄를 외면했다. 그 검사가 지킨다는 정의를 신뢰할 수 있을까. 관료가 법률을 위반하고도 파면되지 않는다. 나라의 일머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헌법수호를 선서한 대통령이 헌법을 가벼이 보고 국민을 힘들게 한다.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을까. 나라가 휘청인다. 법과 정의가 무너지면 국민은 절망과 불안의 나락에 떨어진다. 공인이 사익을 위해 법을 어기는 순간, 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제멋대로 법을 해석하고 운용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민을 주권자라 적었던 헌법이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법은 나라의 기둥이지만 상식의 최소한이다.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져야 하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법관이 권력이나 사익에 따라 판결을 달리한다면, 법을 지키는 것이 우스운 일이 되고 만다. 특정 세력에 유리한 판결이 계속된다면, 법이 신뢰를 잃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까. 검사는 범죄를 단죄하는 자리다. 본분을 저버리고 불법에 눈을 감으면 정의와 상식은 설 자리를 잃는다. 검사가 권력의 비리를 덮고 특정세력에게만 법의 칼을 휘두른다면 국민이 공정을 기대할 수 없다. 검찰이 정치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국민이 바라는 법치는 무너져 내린다. 관료들도 마찬가지다. 법과 제도를 따라야 할 행정기관이 오히려 법을 왜곡한다면, 나라의 행정이 온당하게 돌아갈 수가 없다. 편법과 일탈이 용인되면서 그릇된 관행이 자리를 잡고 결국 법치행정은 허울만 남는다. 헌법재판소의 최종판결을 따르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라면, 누가 귀담아 듣겠는가. 정점에 선 대통령이 헌법을 어겼다면 어찌 되는가. 국민 앞에서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엄숙히 선서했던 대통령이 헌법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 했다면 나라가 어디로 향하게 될까. 민주공화국의 뿌리가 흔들리고, 국정운영의 원칙이 무너지지 않을까. 대통령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누구에게 법을 지키라 요청할 수 있을까. 이런 일들이 중첩되면서 국민은 좌절과 체념을 겪는다. 냉소가 퍼지고, 불법과 비상식 일상이 되어간다. 공정한 사회를 기대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면서 국민도 점차 불법을 용인하고 불공정을 감내하게 된다. 헌법과 법률이 있지만 작동은 멈춘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산천에 불길이 솟는다. 국민의 분노가 불길처럼 솟구쳐 오른다. 비정상이 계속되면서 상식이 사라지고 공정한 세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몰아치는 산불에는 비라도 기다린다. 불공정과 비상식에는 비마저 기대할 수가 없다. 국민이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부정과 불법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와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면 주권자 국민이 깨쳐야 한다. 불법과 비리를 용인하지 않고 법과 정의를 지키려는 국민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나라를 지켜낸 위인들을 역사에서 찾지만, 실은 이름없는 국민들이 스스로 지켰다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다시 갈림길에 선 대한민국의 역사를 구해야 한다. 나라가 역대급 기로에 섰다. 국민이 편안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국민이 깨어야 나라가 산다.

2025-03-26

길을 잃을 용기

어른이 된 후로는 지도를 보며 길을 찾을 일이 별로 없다. 내비게이션이 알아서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을 안내해 주기 때문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늦을 일도, 위험한 일도 없다. 하지만 어쩌면 머릿속 지도는 점점 길을 잃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교회 수련회가 있던 날이다. 겨울 수련회였기 때문에 바깥의 날씨는 매서웠다. 찬바람이 뺨을 스치고 숨을 들이마시면 폐속까지 시린 기운이 퍼졌다. 하지만 고등학생 아이들은 세상의 방향과 늘 반대인 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른들의 생각과 어긋나고 가야 할 길 위에선 되돌아가기가 일쑤고 자기만의 셈법으로 어른들과의 갈등을 자아내는 아이들과의 수련회 날이었다, 도착지에 와야 할 4명의 아이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단체로 이동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온다는 아이들이었다. 잠시 후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경찰이었다. 아이들은 교회 선생님도, 부모님도 속이고 30km가 넘는 길을 자전거를 타고 온 것이다. 추위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라는 듯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고 낄낄대며 출발했다. 목적지만을 보고 열심히 달렸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며 완벽한 일탈을 즐기며 젊음의 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은 ‘안전한 길’이 아닌 ‘빠른 길’을 가르쳐 주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고속도로에 들어서 있었다.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아이들은 한껏 내려간 수은주만큼 꽁꽁 얼어붙었다. 한편으로는 마치 어른들만의 전유물인 도로를 자신들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짜릿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야, 여기 맞아?” “모르겠어! 근데 지금 돌아갈 수도 없어.” 순식간에 사태는 심각해졌다. 차들은 경적을 울려대고 아이들은 겁에 질려 앞만 보고 달렸다. 어딘가에서 사이렌 소리가 났다. 경찰이 출동했다. 아이들은 갓길에서 붙잡혔다. 지나가는 차들은 경악했고 경찰은 잔뜩 굳은 얼굴로 아이들을 쏘아봤다.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희 무슨 생각으로 여기로 들어온 거야?” 녀석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수련회 가려고요….” 경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다행히 경찰의 에스코트 덕분으로 아이들은 큰 사고 없이 상황이 잘 정리되었고 녀석들은 무사히 도착하여 교회 목사님과 선생님들, 부모님들의 폭풍 같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무모한 일이다.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들의 그 무모함이 부러웠다. 어른이 된 나는 어느새 익숙한 길로만 다니고 확실한 길만을 선택한다. 실수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안전을 택한다. 내비게이션이 인도하는 길 위에선 길을 잃어버릴 기회마저 잃어버린다. 길도 모르면서 페달을 밟고 어른들에게 혼날지언정 목적지에 닿고 싶다는 마음을 앞세우는 저 무모한 아이들의 젊음이 닮고 싶었다. 김경아 작가 아이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 길이 위험한지도,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도.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될 것이다. 이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기억이고 가슴 뛰는 순간이었는지. 그리고 어쩌면 또 한 번 무모한 도전을 해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떠올리며 어른이 된 그들은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용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결국, 삶이란 크고 작은 모험들의 연속이니까. 언젠가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그 날을 기억하며 가끔은 길을 잃을 용기를 내보기를 바란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는 것을, 때로는 그 길에서 소중한 순간들이 탄생한다는 것을 이 겨울날의 기억이 그들에게 오래도록 가르쳐 주기를 바란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길을 잃는 법을 잊는다. 길을 잃지 않는다면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마주할 일도 없다. 때때로 길을 잘못 들어서야만 진짜 나아가고 싶은 길이 보이기도 한다. 길을 잃을 용기가 점점 사라져 가는 나는 새로운 길을 향해 페달을 밟고 가는 저 아이들의 무모함에 박수를 보낸다. /김경아 작가

2025-03-25

오스만제국 치하 그리스 독립 ①식민시대와 그리스 정교

1453년 5월, 비잔티움이 오스만투르크 메메트 2세에 의해 함락되면서 그리스는 물론 발칸반도에 오스만투르크 통치시대가 도래했다. 그리스는 로마 500년에 이어 400년 가까이 침묵의 역사를 경험해야 했다. 오스만투르크는 합스부르크왕가 지배에 들어 있던 발칸반도 북쪽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을 기독교 교권에서 이슬람 교권으로 탈바꿈시켰다. 발칸반도 내 이슬람 압제하의 기독교는 대내외적으로 몸을 사리거나 위축될 수밖에 없었지만, 몸은 통제할 수 있어도 믿음과 사상만은 어쩔 수 없었다. 식민지인 마지막 자존심이 종교였고, 목숨을 건 신앙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오스만투르크제국은 여느 이슬람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민족 종교를 인정하면서 관대함을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슬람화 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식민지 백성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은 이상은 무거운 세금과 신분차별은 감수해야 했다. 제국 내 교회 건물 역시 이슬람 사원보다 더 크게 지을 수 없었다. 이교도에 대해 굴욕감을 주기 위해 교회 출입문은 지상에서 높이 1m이상 만들 수 없다는 조항까지 달았다. 식민지배 종교인만큼 기어서 들어가고 기어서 나오란 뜻이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지면을 1m 낮춰 교회를 올리면서 드나드는 문을 2m 높이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오스만제국은 군인이라면 무슬림이든 기독교인이든 공평하게 땅으로 보상을 해주었다. 그렇게 되자 시간이 지날수록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리스는 물론 세르비아 명문가들조차 개종에 동참한다. 토착종교와 뒤섞인 느슨한 기독교였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특히 이슬람으로 개종이 많이 이루어졌다. 같은 민족이지만 종교가 달랐고, 이웃 간에도 종교가 달랐으며, 같은 핏줄을 가진 친족 간에도 종교가 뒤엉키는 상황으로 변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훗날 가공할만한 아비규환의 판이 깔리고 있었다. 발칸반도 오스만투르크 식민지 중 이슬람으로 개종하든 안하든 병역의 의무는 공평하게 졌다. 침략전쟁에는 식민지 백성이라도 피해갈 수 없었다. 어쩌면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자원이었을 법했다. 오스만투르크는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변모시킨 여세를 몰아 동쪽 페르시아와 아랍세계를, 남쪽으로는 북부 아프리카와 이집트를 평정한 후 본격적으로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유럽은 합스부르크왕가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가 크고 작게 치고받으며 유럽세계를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진실, ‘영원한 제국’은 없다. 오스만제국은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과 계속된 전쟁에서 귀족의 힘이 막강해지자 반대로 술탄 권력은 초라해져갔다. 더구나 러시아마저 오스만제국 등에 칼을 들이대는 형국으로 변하고, 1571년 스페인 함대를 중심으로 베네치아공국-신성로마제국의 연합군과 ‘레판토 해전’에서 맞붙어 궤멸되면서 오스만제국은 종이호랑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귀족들은 손에 쥔 권력을 유지하는데 정신이 팔려 르네상스를 경험한 서유럽의 경제발전과 가공할 무기에는 애써 눈을 감았다. 특히 오스만 직업군인 에니체리 횡포가 날로 심해지는 와중에 신성로마제국에서 일어난 개신교도들 반란을 돕기 위해 오스트리아 공격에 나선 것이 결정적 패착이었다. 난공불락 빈을 포위했지만, 위기를 느낀 인근 폴란드를 중심으로 가톨릭국가 연합군 8만 명이 빈을 돕기 위해 출정했다. 1683년 칼렌베르크전투에서 대패함으로써 오스만제국은 결정타를 맞고 말았다. 이 승리를 계기로 연합세력은 로마교황을 중심으로 대 이슬람전선을 펼치게 된다. 오스만제국은 안간힘을 썼지만, 뒤이어 1798년 나폴레옹과 한 판 전투에서 단 일주일 만에 이집트를 통째로 내줘야 했으니 꼴이 말이 아니게 됐다. 그리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스 정교 전통을 지켜가며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피고 있었다. 더구나 부동항 확보라는 목표에 국운을 건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은 툭하면 치고받았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이러한 틈새를 공략하며 국제정세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했다. 18세기 말이 되면서 불길처럼 번진 민족주의가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고, 19세기 초가 되자 그리스 사람들은 경제력이 높아지는 동시에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 혁명이라는 큰 물줄기에 합류하면서 독립에 대한 욕구가 더욱 물밀듯 밀려왔다. 민족이란 깃발 아래 종교와 언어, 문화를 앞세워 흩어지고 새롭게 뭉치면서 비장미 넘치는 기운이 샘솟았다. 민족이라는 의기 앞에 헤쳐 모여의 동기가 부여되면서 독립 열망이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지는 초승달(사실 그믐달이지만)제국 오스만이 지배하고 있는 땅덩어리를 더 많이 가지려 불쏘시게 역할을 자처한 제국주의 소산이었다. 대제국을 유지하고 있던 오스트리아도 위협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발칸반도 나라들 역시 독립 대열에 빠지지 않았다. 그 선두에 그리스가 있었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3-25

일월문화원의 발돋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완연해진 봄의 길목에서 난데없는 산불로 국토가 신음하고 있다. 지난 주말, 건조한 날씨 속에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해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산청과 의성, 울주 등 하룻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이 29건으로, 강풍을 타고 번져 나간 불길이 좀처럼 잡히질 않고 연기와 매캐함이 동해안 일대에서까지 느낄 정도였으니 심각함에 우려를 금할 길 없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이 무슨 화마의 변고란 말인가? 하늘이 온통 스모그 마냥 희뿌연 장막을 드리운 듯한 현상을 접하다 보니 초읽기에 들어간 국무총리와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안개정국과 뒤엉키면서 예측불허의 상황으로까지 치달아 때아닌 산불의 연무로 연상됨은 필자만의 억측일까? 어쨌든 봄은 왔고 산불은 곧 진화될 것이며 베일 같은 안개는 사라질 것이다. 널뛰기하듯 잎샘추위에 3월의 폭설까지 내리다가 화마의 엄습까지 봄은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시련과 위협 속에서 오는가 보다. 나무에는 이미 물이 올랐고 꽃은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으며 새순이 앙증스럽게 돋아나는 파릇함 속에 새들은 지저귀고 온갖 생물은 생명과 성장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겨우내 찬바람을 견디며 이기려고 몸에 힘을 줬다면 이제는 나른함을 이기려고 애를 써야 될 때, 문화의 새바람으로 봄보다 부지런히 심신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곳이 있다. 그곳은 해와 달의 고장 답게 일월의 의미를 되새기며 독특한 문화적인 아이템으로 지역의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일월문화원이다. 전통문화의 전승, 보급의 사회교육과 문화유산 보호활동으로 지역민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2012년 설립된 (사)일월문화원은, 일월문화아카데미와 문화유산답사 등의 다양한 문화강좌와 문화사업 추진으로 현재까지 매년 200여 명의 회원과 수강생이 동참해 역사와 종교, 철학 등에 대한 인문학적인 소양과 의식을 함양한 문화시민을 육성하며 새로운 문화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강의나 답사가 아닌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문화 인프라를 구축해 실질적인 문화사업 운영으로 주체적이며 지속가능한 문화발전을 담보하는 의미와 가치가 큰 문화활동이라 할 수 있다. 즉, 고품격 인문학 강의와 문화유산 방문교육·문화재 지킴이 봉사단 운영·문화유산 해설사 양성·감성계발 문화교실 등 일련의 사업을 다양하고 포괄적으로 기획하고 펼침으로써 문화의 융성과 건실한 내일을 기약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비전과 역량으로 일월문화원은 2019년 제1회 장기유배문화축제를 주도적으로 개최했으며, 재작년에는 삼일문화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설립 15주년을 맞은 일월문화원은 올해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이 포항에 터전을 둔 포항사람임을 부각시키며 일련의 추모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문화이며, 문화예술의 품격이 그 도시의 품격이고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우리 지역 전통문화의 발굴, 보존과 정체성을 탐구, 정립하여 문화유산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전승으로 현대화·미래화하는 일들은 중차대한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하고 융합·전파시키며 문화시민 저변확대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나가는 일월문화원의 기여와 발돋움이 사뭇 기대된다.

2025-03-25

기업 혁신 조건은 무엇인가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제조기업 통계를 보면, 기업에 혁신을 도입하여 중장기적으로 성공한 기업은 드물다. 그 이유는 분명히 있다. 필자가 17년여 기업 혁신 연구와 컨설팅을 하며 본 것은 기업 CEO나 조직의 수장은 혁신의 필요성을 공감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부분적으로 알지만 종합적으로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혁신은 백 명의 필하모니로 복잡한 구성을 갖고 있다. 한 사람만 피리를 잘못 불어도 음악은 제 소리를 못 낸다. 이것이 기업 혁신이다. 회사가 나아갈 방향, 자사에 맞는 혁신체계(Frame) 구성, 계층별 역할 정립, 실행 운영제도 등이 기업 혁신의 밑그림이다. 다양한 변수가 있는 혁신이기에 속 그림은 실행 과정에 발생되는 이슈를 개선하면서 함께 그려가야 한다. 이런 복잡한 기업 혁신의 조건과 성공요인은 무엇인가. 기업 혁신의 구성요건은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지며, 일반적으로 혁신의 조건과 혁신의 성공요소로 구분 할 수 있다. 먼저 혁신의 3가지 조건은 첫째, 환경적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기술 발전, 소비자 요구 변화, 경쟁 환경 등 혁신을 촉진하는 외부 요인을 보는 것이다. 연구개발 지원, 세금 혜택, 지적 재산권 등 정부 정책과 규제도 볼 필요가 있다. 둘째, 조직적 조건이다. 도전과 실험을 장려하는 기업 문화와 경영진의 중장기 비전 설정과 의사 결정력의 리더십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활동 동기부여, 혁신 인재 확보 등 인적,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기술적 조건이다. 동종 업계 한 발 앞서갈 수 있는 최신 기술 도입의 투자 및 활용 효용성과 AI, 빅데이터 등 기술 활용 능력을 갖춰야 한다. 기업이 혁신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필요한 요소는 하나, 혁신의 목적과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고 장기적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단기적 성과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혁신을 위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둘, 사내외 고객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맞춤형 혁신을 구성하는 것이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신속한 피드백 및 소통하는 애자일(Agile) 접근 방식 활용이다. 셋,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적인 시도를 장려하는 조직문화,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구조이다. 경직된 조직문화는 모든 것에 시너지를 내지 못 한다. 넷, 신속한 실행, 성과 측정 및 피드백을 통한 지속적인 개선이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 전체 공감대 형성이 필수 요소다. 이외에도 훈련되지 않은 야생코끼리를 목적하는 산 중턱까지 정해진 시간 내에 이르게 하는 끊임없는 변화관리가 필요하다. CEO, 임원층, 직책보임자, 일반 등 하나의 생각 흐름이 이어지는 계층별 마인드와 실행에 맞는 방법을 가이드 해야 한다. 변화관리를 멈추면 혁신도 멈춘다. 혁신은 생물이기에 다듬어 지지 않은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기업 혁신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환경적, 조직적, 기술적 조건이 조성되고 명확한 목표, 현업 중심 사고 및 기획, 유연한 조직문화, 실행력과 개선 노력이 결합될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2025-03-25

‘尹 선고’ 후폭풍, 정치권이 도발하지 말라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그저께(24일) 기각된 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사건 선고일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법조계에서는 빠르면 이번 주 후반 선고가 가능하지만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4월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전직 대통령 탄핵심판이 모두 금요일에 선고된 점과 선고 전후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하면 금요일인 28일 선고될 가능성이 크긴 하다. 그러나 헌재가 한 총리 선고 당일에도 평의를 열어 윤 대통령 사건을 논의한 점으로 미루어, 선고일이 기약 없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윤 대통령 사건 선고가 미뤄지면서 우려되는 점은 보수·진보세력 간의 시위형태가 격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에서는 탄핵 찬반집회가 진지전(陣地戰)을 연상케 할 정도로 험악해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주 들어 헌재가 윤 대통령 파면을 선고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며 광화문에 천막당사를 만들었다. 당 지도부가 여기에 상주하면서 헌재를 압박해 탄핵 인용 결정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법원이 집회를 불허하긴 했지만, 전국농민회 총연맹 산하 ‘전봉준 투쟁단’은 트랙터와 트럭을 동원해 서울 시가지에서 시위를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도 거칠어지고 있다. 여당 의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탄핵 기각·각하’ 집회에 직접 참석하고 있다. 지난 주말 집회에서 한 중진 의원은 “반(反)국가 세력과의 전쟁 선포”라고 했고, “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나오는 모양이다. 여야 정치권 모두 격화하고 있는 진영싸움을 말리기는커녕 앞장서서 충돌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 총리가 직무에 복귀하면서 정부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사실상 지금도 국정은 마비상태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리더십을 상실한 여권은 정국을 수습할 역량이 없고, 야권은 거리집회와 탄핵공세를 강화하면서 경제·외교·안보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도발에 대처할 국군통수권도 실제 공백상태고, 금융시장은 연일 휘청거린다. 우리사회가 지금의 혼란에서 벗어나려면 정치권이 냉정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결과에 대해 여야는 물론 국민이 모두 승복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헌재의 탄핵선고에 승복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은 앞선 탄핵심판 변론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로 자신에게 잘못이 없음을 항변했다. 이 대표는 지난 22일 전남 담양에서 “윤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섬뜩한 말로 들린다. 이러다 정말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경제안보 위기와 나라 미래를 진심으로 염려한다면 이제라도 두 사람은 국민통합을 위해 헌재와 법원의 판단에 대한 승복 의사를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여야 의원들도 그간의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같은 테이블에 앉아 협상하는 정치인다운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헌재 선고 결과에 대한 불복을 정치권이 오히려 부추겨서야 되겠나.

2025-03-25

산불, 기후변화가 주범

우정구 논설위원 올 1월 7일 미국 LA에서 발생한 산불은 같은 달 31일까지 불길이 이어졌다.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산불로 기록된 화재다. LA 카운티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 산불은 긴 시간만큼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불탄 면적이 샌프란시스코 면적을 능가할 정도였고, 불탄 자리는 핵폭탄을 맞은 히로시마에 비견되기도 했다.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재민만 20만명이 넘었다. 미국의 한 미디어그룹은 피해 규모를 2750억 달러(한화 400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산불로 LA 전역은 심각한 대기오염이 유발됐으며 예정된 스포츠 경기 등은 모두 연기됐다. 산불을 틈타 빈집털이가 성행해 경찰이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산불이 몰고 온 사회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이며 복잡했다. LA뿐 아니라 지금은 북미와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산불이 자주 일어나 나라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2023년 하와이에서는 산불 발생으로 100명이 숨지고 1300명이 실종되는 일도 벌어졌다. 산불 발생의 직접적 원인은 사소한 부주의에서 일어나지만 발화한 산불이 급속도로 커지는 데는 기후변화라는 숨은 이유가 존재한다. 지구 온난화 후 일어나는 폭염과 가뭄 등 이상기후 현상이 사실상 산불 발생의 주범이다. 가뭄에 말라버린 식물은 불쏘시개가 되고 강력한 강풍은 화마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우게 된다.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군 등에서 발생한 산불이 며칠째 불길이 잡히지 않은 것도 건조한 대기와 강한 바람 때문이다. 지구환경에 순응하는 인간의 진실된 노력이 없다면 인간은 감당키 어려운 재앙에 직면할지 모른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3-25

‘국가물산업클러스터 2.0’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후변화가 일상이 된 시대, 물은 더 이상 흔한 자원이 아니다.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고, 해마다 여름철에는 하천과 호소에 녹조가 과다 번성하며, 신종유해물질로 인한 수질오염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낙동강의 수질 저하와 미량유해물질 검출, 취수원 이전 논란 등 시민의 물 안전과 직결된 이슈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물은 생명이며, 삶 그 자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중함을 종종 간과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물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산업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정부는 지난 2019년 9월, 대구 국가산업단지 내에 ‘국가물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하였다. 물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개발과 기업 육성, 나아가 물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투자였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는 정수 및 하·폐수처리, 물재이용, 수질 모니터링 등 물 전 분야에 걸친 기술개발과 실증을 지원하며, 국내 물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촉진하는 통합지원 플랫폼이다. 2023년 말 기준 110여 개 물기업이 입주하였고, 지난 5년간 총매출 5조537억 원, 총수출액 3189억 원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예컨대 (주)아쿠아웍스는 고효율 산기관 기술을 바탕으로 2년 만에 매출을 7배 이상 성장시켰으며, 블루센(주)은 스마트 수질측정 기술을 기반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는 대구에서 출발한 물기술이 세계 물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는 ‘국가물산업클러스터’가 제1기 운영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2.0 시대’의 원년이다. 단순한 기술개발을 넘어,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정책과제와의 연계가 요구된다. 대구시는 이미 ‘물관리기술 발전 및 물산업 진흥계획’과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국가물산업클러스터 2.0’은 이러한 지역 전략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물기업 육성, 청년 창업 지원, ESG 기반 기술개발 등으로 이어지는 지역형 물산업 생태계 조성에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다. 지난 3월 22일은 유엔이 지정한 제33회 ‘세계 물의 날’이었다. 이날을 계기로 물을 둘러싼 갈등이 아닌, 물을 매개로 협력과 공존의 길을 모색하고자 전 세계가 함께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 2.0’은 이러한 의미를 살리기 위해 단순한 기술개발 공간을 넘어, 갈등을 줄이고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물산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물순환을 실현하고, 지역 간 상생과 협력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물은 도시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며, 동시에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기준이다. 대구경북은 낙동강이라는 생명의 수계를 품은 만큼, 지속가능한 물관리와 물산업 발전을 통해 대한민국 녹색전환의 선도 지역으로 도약할 것이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 2.0’은 그 중심에 있다.

2025-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