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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자 VS 약자

불어 ‘르상티망’의 사전적 의미는,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패배주의적 분노나 아등바등한들 늘 제자리 걸음하기도 벅찬 삶의 허무함에 대한 억압적 감정이다. 약자들의 강자들에 대한 르상티망은, 질투나 시기심, 원한 감정 또는 분노다. 강하다는 것은 도달하고 싶은 것이면서, 동시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 강자와 약자 사이를 방황하는 존재. 이것이 인간이다. 강자는 스스로를 증명한다. 그는 비교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으며, 자신이 가진 힘을 세계로 흘려보낸다. 그 힘은, ‘폭력적일 필요도 없고, 지배적일 필요도 없다.’ 창조하고, 책임지고, 감당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강함이다. 그러나 강함이 드러나는 순간 세계는 조용히 갈라진다. 약자는 증명할 꺼리가 없다. 그는 타인과 비교하며, 변명하며, 자신이 가진 원한 감정을 세계로 흘려보낸다. 겉으로는 강자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정의를, 공정을, 평등을 말한다. 창조하지도, 책임지지도, 감당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약함이 드러나는 순간 강자는 조용히 지배당한다. 약자는 강자를 직접적으로 쓰러뜨릴 힘이 없다. 그래서 강함 자체를 문제 삼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약자에게 강함은, 위험한 것, 부도덕한 것이다. 약자의 르상티망은 격렬하지 않다. 오히려 조용하며, 차분하고, 논리적이며, 도덕적이기까지 하다. 칼을 갈 일이 없다. 르상티망은, 찌르지 않아도 깊이 스며든다. 경쟁을 악으로, 탁월함을 의심의 대상으로 바꾼다. 약자는 묻는다. “왜 저 사람은 저 자리에 있는가?”라고. 때로는 정당한 이 질문에 르상티망이 개입되면 질문의 의미는 강자에 대한 단죄로 바뀐다. 약자는, 강자를, 아니 강함을 약화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은 약자 스스로 강해지기 위함이 아니다. 약자가 원하는 것은 ‘아무도 강하지 않은 세계’다. 이곳에서는 비교할 필요도 없고, 열등감을 느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약자의 르상티망 속에서 강자는 서서히 지쳐간다. 이것이 약자가 강자를 약화시키는 방식이다, 강자의 힘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강함의 의미를 소진시킨다. 약자가 결국은 승리한다. 그러나, 승리의 축배를 들어도 약자는 행복하지 않다. 여전히 약자이기 때문이다. 르상티망은 단순한 원한 감정이 아니라, ‘책임지지 않으려는 의지’다. 르상티망에 공격당한 강자는 끊임없이 사과해야 한다. 이유 없이 미안해야 한다. ‘왜 더 가졌는지’ ‘왜 더 빨리 갔는지’ ‘왜 더 잘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설명이 끝나면 또 다른 설명이 요구된다. 르상티망은 교묘하다. 언제나 선한 얼굴을 한다. 그러나 그 선함에는 기쁨, 웃음, 여유, 삶을 긍정하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 약자들이 무너뜨리고 싶은 강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폭력적이지도 않고 지배하지도 않지만, 그토록 르상티망을 자극하는 강함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강자의 진정한 힘은 무엇인가? 돈 한 푼 없었고, 아무런 지배를 하지 않았던 부처와 예수는 강자인가 약자인가. 부처가 약자라면, 그가 강자에 대한 원한 감정이 있었을까. 예수가 약자라면, 그에겐 아무런 창조하는 힘도,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을까. 그대는 강자인가 약자인가. /공봉학 변호사

2025-12-22

국가와 국민

민주주의 국가의 성립에 대한 근거로 흔히들 사회계약설을 든다. 사회계약설은, 국가의 권력이 국민들의 합의(계약)에서 나온다는 이론으로, 개인들이 자연 상태의 불안정함을 벗어나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서로 약속(계약)하여 국가를 만들고, 이 계약을 통해 형성된 국가에 권력을 위임한다는 사상이다.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등이 주창한 이론으로, 핵심은 국가를 개인의 자연권 보장을 위한 수단으로 본다는 점이다. 국가의 형태와 흥망성쇠는 그 시대를 사는 개개인의 삶과 운명을 결정짓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전제군주 국가의 백성은 통치자의 자비에 의존하며 자유와 인권을 제한받는 삶을 살았고, 식민지 백성은 주권을 상실한 채 민족적 정체성의 위협과 억압, 경제적 착취 등의 고통을 받았다. 후진국 국민은 빈곤과 불안정한 정치, 낮은 사회 인프라 속에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반면에 선진국 국민은 잘 갖춰진 사회 안전망, 높은 수준의 교육과 의료 혜택, 그리고 법치주의 속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기회를 얻게 된다. 21세기의 국가는 과거의 단순한 통치 체제를 넘어 글로벌 경쟁 시대의 주체이자 복합적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국경의 의미는 약화되지만, 국가가 개인에게 제공하는 ‘소프트 파워‘와 ‘안전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국민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백성‘이 아니다.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주권자이며, 투표와 정치 참여를 통해 국가의 정책과 방향을 결정하는 능동적인 주체다. 국가는 국민의 봉사자로서, 국민의 의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가 괄목할 만큼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다. 지구상에 완전무결한 이상국가는 없을진대, 온갖 우여곡절과 끊임없는 저항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건국 80년사는 눈부신 성장의 역사였다. 하지만 통탄스럽게도 그런 역사를 폄훼하고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들이 지금 이 나라를 장악하고 있다. 6·25전쟁 이래 국가 체제가 이토록 위태로운 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한민국의 입법, 사법, 행정은 물론 언론까지 장악한 좌파세력들에 의해 법치가 무너지고, 반공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아니다. 건국 이전부터 끊임없이 준동하고 암약해온 불순분자들과 그들과 결탁한 정치세력과 사회단체, 또한 그들에 의해 좌경화된 국민들이 합세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전혀 위기감이나 경각심을 갖지 못하는 국민들이 과반수인 실정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없이는 지금의 사태를 수습하고 국가 동력을 회복할 전망이 어두워 보인다. 다만 한 가지 희망의 불씨라면, 상당수 젊은이들이 각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다하지 않았다면, 봄의 새싹처럼 밀치고 올라오는 이 새로운 기운이 불의한 세력을 평정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12-22

이분법과 양비론

오늘은 24절기의 22번째인 동짓날이다. 우리나라가 속한 북반구에서 동짓날은 연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여름의 정점인 하지(夏至)와 비교하면 대략 5시간 정도 낮의 길이가 짧은 날이 동지(冬至)다. 어둠을 꺼리는 만큼 우리는 동지를 기점으로 다시 생의 약동을 꿈꾸기 시작한다. 밤이 가장 깊은 시각은 동시에 동트는 새벽의 전령이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새삼 이분법을 돌이키도록 인도하는 것은 우리 생의 여러 모습이다. 한여름 소나기 지나간 자리에 찬연하게 빛나는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삶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천변만화에 기초하여 진행되는 인생의 고빗길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관계와 인연과 사연이 자리한다. 그러하되 우리는 명쾌하고도 특정한 시각으로 인간과 세상을 재단한다. 이분법은 우리가 의지하는 매우 친근한 관점이자 행동 방침이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 친구와 적, 선과 악, 미와 추, 정의와 불의처럼 단순하고도 강력한 분별과 차이가 이분법의 고갱이다. 예를 든 대상 가운데 전자는 우리의 영원한 벗이자 우방이며, 후자는 원수이자 악마로 화한다. 여기서 한국 사회의 모순과 충돌, 대립과 갈등, 불화와 반목(反目)이 발원한다. 양자택일의 관점에 기초하기 때문에 이분법은 상당히 강력하지만, 중간지대를 포기하기에 포용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야’에 등장하는 폴리페모스는 외눈박이 괴물이다.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의 외눈을 찔러 맹인(盲人)으로 만들어버리고 시칠리아를 탈출한다. 폴리페모스처럼 하나의 눈으로만 대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이다. 이분법과 달리 양비론(兩非論)은 제3의 시선을 전제한다. 양비론은 너희 둘 다 틀렸다는 관점에 기초한다. 양비론자들은 자기네의 관점만이 옳다는 전제 아래 이분법에 기초한 자들을 비난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다. 하지만 그의 관점이 변증법적인 논리에 기초하지 않는 한, 양비론도 사태의 핵심을 포착하지 못한다. 회색의 중립지대에서 그들은 지적인 유희에 탐닉한다. 1년 넘게 이어지는 내란 정국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엇갈린 시선이 상호 충돌하면서 여론 매체가 들끓는다. 여론을 추동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이분법적인 사고에 기대고 있으며, 일부 현학적인 지식인이나 언론인은 포장만 그럴듯한 양비론을 제시한다. 양자를 넘어서는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안의 출발점은 역사 인식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와 미래세대를 위한 올바른 선택의 근저에 지나간 날들의 오류와 실패가 자리해야 한다. 성공과 승리가 아니라, 실패와 패배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위인전의 쓸모는 위인들의 업적보다는 그들이 겪은 처절한 좌절과 절망의 출구 모색과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강렬한 의지의 발현에 있다. 동지는 음기(陰氣)가 절정에 이르는 날이지만, 양기(陽氣)가 소생하는 첫 번째 날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선인들은 동짓날을 ‘일양(一陽)이 생겨나는 날’이라 보았다. 장쾌한 시각에 기초하여 이분법과 양비론을 넘어서는 위대한 통합과 전진을 염원하는 동짓날 아침이 환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22

동지팥죽

오늘은 동짓날이다. 1년 24절기 중 22번째 절기에 해당하는 날로 양력으로 대개 12월 22일이 해당된다. 이 날은 세시풍속으로 가정마다 팥죽을 끓여 먹는다. 우리의 선조들은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하여 작은 설로 여길 정도로 동짓날을 의미 있는 날로 대접을 했다. 동짓날에 팥죽을 끓여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생각도 했다. 팥죽 속에 찹쌀로 만든 새알을 넣고 나이만큼 새알을 먹는 풍속이 있다. 팥을 고아 팥죽을 만들고는 가장 먼저 동네 사당을 찾아간다. 사당에서 동지고사를 지낸 다음, 집안의 각방과 장독대 헛간 등 곳곳에 팥죽을 놓아둔다. 팥죽이 식으면 가족들이 모여 죽을 먹는데, 팥의 붉은 색이 악귀를 쫓아내는데 효능이 있다고 믿은 탓이다. 새해에도 농사가 잘되고 가족들이 무탈하기를 바라는 일종의 의례기도 하다. 동지는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날씨가 춥고 밤이 길어 호랑이가 교미를 한다고 하여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도 불렀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을 비유해 “동지섣달의 해는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또 우리 속담에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는 말이 있다. 동지가 지나면 온 세상이 새해를 맞을 준비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우리의 선조는 자연의 변화를 경험으로 관측하고 동지 이후 다가올 새해에 대한 희망을 노래했다. 올 한해도 어느덧 끝자락에 이르렀다. 동짓날에 팥죽을 끓여 먹었던 우리 선조들의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지혜를 생각하면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우정구 논설위원

2025-12-21

메타세쿼이아 숲의 정수, 익산 아가페 정원

우리나라 국민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민간정원은 어디일까. 공신력을 인정받은 국가기관 산림청이 선정해 발표한 곳 중 하나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 결정의 언저리에는 대국민 온라인 선호도 조사와 전문가의 현장심사를 통해서 선정되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전북 익산에 있는 아가페 정원은 색다른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통영 동백커피식물원, 정읍 들꽃마당, 제주 생각하는 정원, 울주 온실리움, 구례 천개의 향나무숲정원 등과 함께 선정되었다. 고흥 쑥섬, 해남 문가든, 괴산 트리하우스, 제주 생각하는 정원 등도 포함된 ‘아름다운 민간정원 30선’ 중의 한 군데이기도 하다. 참고로 ‘민간정원’은 법인‧단체 또는 개인이 정성을 다해 가꿔온 정원을 국민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개방하는 정원이다. 전국에 150여 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아가페 정원의 소유자는 천주교재단이다. 1970년 고(故) 서정수 신부가 노인복지시설인 아가페정양원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설 내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자연 친화적인 수목 정원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2021년 3월에는 늘 푸른 숲을 시민들에게 개방해 휴식과 정서함양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로 민간정원으로 등록하였다. 수선화, 튤립, 목련, 양귀비 등 아름다운 꽃들이 계절마다 피어나 찾는 이의 마음을 은혜로움으로 만들어 버리는 장소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1970년이라면 무척이나 척박했던 시절이다. 거처도 보호자도 없던 노인 30여 명을 모아 무료 양로원을 세웠으나 문제는 운영비였다. 기부금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어려워 고민 끝에 생각해 내었던 게 지금의 정원이다. 정원을 가꾸고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를 팔아 운영비를 충당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호미와 삽을 들고 흙을 일구었다. 나무들이 자라는 만큼 자부심도 양로원도 조금씩 커나갔고 그 기간이 무려 50년에 달했다. 쌓였던 세월의 연수만큼이나 나무의 수종도 점점 늘어나 지금은 17종 1416주다. 아가페 정원의 산책로는 1670m에 달한다. 계절마다 펼쳐지는 꽃과 나무의 향연을 고스란히 두 눈으로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평안한 길이다. 정원 곳곳에 스며 있는 메타세쿼이아, 공작단풍, 섬잣나무, 잣나무, 향나무, 백일홍 등 수많은 수종이 탐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봄의 목련을 시작으로 영산홍과 튤립, 수선화가 축제를 열고, 가을의 초입에는 꽃무릇과 맨드라미가 붉은 기운의 물결을 일으키고 공작단풍이 화려함의 극치를 장식한다. 아가페 정원의 초입은 좌우에 두 개의 대리석이 있고 붉은 벽돌담이 이어지는 형식이다. 좌측 대리석에는 “사회복지법인 아가페정양원”이란 글자가 눈으로 들어오면서 전방에는 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게 보인다. 문을 들어서면서 우측의 향나무 사이로 진입로가 연결되는 데 화장실과 정원의 휴게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방문객들은 진입로를 따라 조용히 걸으면 되는데, 첫 번째 맞이하는 숲이 향나무 숲이다. 향나무 아래에는 8월과 9월에는 맥문동이 피어나고, 10월에는 맨드라미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조금 느리게 걷는 것도 괜찮아”라는 흰 팻말이 시선을 끈다. 산책로는 좌측으로 꺾이면서 소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수종들이 나타나고 길은 아기자기하게 연결이 된다. 조금은 너른듯한 공터가 나타나면서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라 적힌 팻말이 지시하는 지점에, 마치 병풍을 친듯한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하늘을 반 정도 가리면서 서 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아가페 정원의 정수다. 정원의 설립 초기에 심어두었던 500여 그루가 어느새 높이 40m에 이르는 장대한 나무로 성장해 탐방객들을 맞이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에 서면, 지나간 세월에 녹아들었을 수많은 어르신의 피와 땀들이 오롯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하여 괜히 가슴이 짠하다.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일렁이며 소리를 내면서 격하게 흔들린다. 그들의 마지막이 영원한 안식으로 구원받았음을 증명하는 날갯짓이리라. 마음마저 정화되는 듯한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걸어본다. 더는 표현하기 어려운 벅참의 연속이다. 수런수런 나무들이 내는 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히고, 정갈하면서도 정적인 느낌의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영원히 진한 여운으로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아가페 정원의 중심은 유럽식 정원의 전형이라는 영국식 포멀가든(Formal Garden)이다. 정교하게 대칭을 이루는 화단에 고전적 조형물, 대리석 분수, 그리고 계절마다 바뀌는 색색의 꽃들이 그것을 대변한다. 어느 누군가는 고요한 품격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람을 위한 사랑의 공간이라는 말이 저절로 가슴에 와닿는다. 사계절 내내 언제 찾아도 좋은 민간정원이다. 봄에는 유채와 데이지, 여름에는 루드베키아와 라벤더, 가을에는 상사화와 공작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정원을 온통 황금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이는 곳이다. 아가페 정원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인 황등석산과 12분 거리의 미륵사지를 연계할 것을 권한다. 황등석산은 한 세기 동안 돌을 캐던 거대한 채석장이, 요즘 들어 MZ세대들이 일부러 찾아드는 힙한 ‘감성 핫플’로 재탄생한 곳이다. 지난 10월 25일에 일부분이 개장되었는데 약 1개월여 만에 약 2만 명을 돌파하며 전북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되었다. 예전 이곳에서 채굴되었던 황등석은 국회의사당, 대법원, 청와대 영빈관의 13m 기둥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익산 미륵사지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백제 최대의 사찰터다.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설화로도 유명한 사찰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동양 최대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아가페 정원의 입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입장료와 주차비는 무료이며 정기 휴무일은 매주 월요일이다. 주말 및 공휴일 방문 시에는 방문 2주 전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주말의 예약전화는 (063)843-7294이다. /지홍석 수필가

2025-12-21

내연산 산신 할무당 이야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끔찍이도 산신을 섬겨 왔다. 어느 산에든 산신이 있다고 믿었기에 아직도 산에서 시신을 매장하거나 묘사를 지낼 때에는 산신제부터 지내는 풍습이 있다. 사찰 뒤편엔 으레 산신당이 있을 정도다. 산신 중에서도 문헌에 전하는 이름난 산신이 더러 있다. 삼국유사에는 석탈해왕이 죽어 토함산 산신이 되었다 하며, 박혁거세 왕비인 알영부인은 선도산 성모(聖母)가 되었다 한다. 또 제2대 남해왕의 부인 운제부인(雲帝夫人)은 운제산(雲梯山) 성모가 되었다고 한다. 성모는 신모(神母), 즉 여신을 말한다. 지리산 산신은 지리산 성모이다. 석상으로 새겨져 오랫동안 천왕봉을 지키고 있던 중 수난을 받아 조각난 채 흩어져 있다가 현재 경남 산청군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 포항을 대표하는 산, 내연산에는 어떤 산신이 있는가? 바로 ‘할무당 할매’다. 물론 지리산 산신처럼 여신이다. 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2리(산령전) 마을 뒷산 중턱에는 백계당(白啓堂)이라는 현판이 붙은 신당이 하나 있다. 바로 내연산 밑에서 오랫동안 내연산의 은혜를 받으면서 살아온 송라면, 청하면 일대의 주민들이 신봉하는 산신인 할무당(姑母堂) 할매를 모시는 신당이다. 신당 안에는 조성 연대가 불분명한 석조 신상을 모셔 두었다. 얼굴이 경주 남산 부처골 감실여래좌상을 조금 닮았기도 하고, 의자에 앉은 모습이 삼화령 미륵불을 연상케 하는데, 신격으로서의 할무당 할매의 좌정담을 담은 신화가 있다. 옛날 보경사에 박씨 성을 가진 보살이 한 분 있었다. 가족도 없이 보경사에 들어와 주로 공양간에서 스님들의 공양 준비를 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한 번씩 부처님께 호랑이 밥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해 눈이 조금 내린 겨울날 아침, 공양간에 할머니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방으로 가보았는데, 신발만 보이고, 방문이 열린 채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눈이 조금 덮인 마당엔 호랑이 발자국이 보였다. 사람들이 호랑이 발자국을 따라 가니 문수봉과 삼지봉 사이에서 할머니 옷가지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평소 할머니의 소원을 부처님이 들어주셨고, 산신인 호랑이가 업고 갔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사당을 지어 모셨다. 이 신당은 원래 현재의 신당 위치에서 위쪽으로 약 4km쯤 떨어진 내연산 문수봉과 삼지봉 사이 할무당재에 있었으나, 약 100년 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한때 ‘우상숭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신상이 산기슭에 버려지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지만, 할무당 할매를 신봉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시 제자리에 모셔지게 되었다. 할무당 할매를 신봉해 온 사람들은 대체로 내연산에서 풀을 베거나 땔감을 얻고, 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인근 14개 마을의 주민들이다. 이들 주민들은 일찍이 백계당숭봉계를 조직하여 할무당 할매를 모셔 왔다. 할무당 할매가 모셔진 백계당 앞에서 우마를 타고 지나가면 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든지, 조사리의 장모 씨는 환갑이 되도록 무자식이었는데 할매한테 공을 들인 후 60세가 넘어 자손을 봤다든지, 6·25 전쟁 때 격전지였지만 이 신당만은 폭격을 면했다든지, 1986년, 이곳에서 산판 사업을 하던 사람이 산판길을 뚫는다며 이 신당 앞에 있는 아름드리 노송 세 그루를 베어내고 길을 냈다가 신당 앞에서 차가 전복되어 현장에서 즉사했다든지 하는 영험담들은 할매에 대한 신앙심을 강하게 떠받치고 있다. 할무당 할매를 모시는 곳은 내연산에 위치한 백계당 신당을 중심으로 여러 곳이다. 보경사에서 연산폭포 방향 약 500m 지점에 위치하는 첫달목이란 곳에도 신당이 하나 있다. 첫달목 신당은 바위 밑에 위패(姑母堂神之位)만 모셔져 있는 형태인데, 매년 사월초파일 새벽에 내연산 계곡 하류에 사는 주민 대표로 조직된 연산계에서 제사를 받든다. 그와는 별도로 또 중리(중산1리), 학산(중산2리), 덕곡(중산3리), 두곡(대전1리)에서는 동제당에 입향조 외에 할무당 할매 위패를 모셔 두고 마을제사 때 잔을 올리는 전통이 이어내리고 있다. 포항은 동해안에 위치한 지역의 특성상 그 동안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전하는 일월신(日月神) 연오랑·세오녀가 주목을 받아 왔다. 포항시에서는 이를 지역의 정체성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고, 상당한 성과도 냈다. 포항이 긴 해안선을 끼고 있는 임해지역이지만, 북서쪽엔 고봉준령들에 둘러싸인 산악지역도 넓게 분포돼 있으며, 이와 관련한 전통문화도 잘 전승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이제 시야를 넓혀 내연산 산신 할무당에도 관심을 가질 만도 하다. 할무당은 포항의 정신문화사에 매우 중요한 존재다. 할무당 할매는 오랜 세월 동안 내연산 자락에 사는 주민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온 신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현재도 광범위한 지역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포항을 대표하는 산신이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12-21

환단고기 논란을 보다가

지난 12일 정부 부처 업무 보고를 받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단고기’와 ‘환빠’ 논쟁에 대해 질문한 일이 있다. ‘환단고기’는 환웅과 단군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한 역사서이고, ‘환빠’는 ‘환단고기’ 맹신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때 대통령이 ‘환단고기’가 문헌이다,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 역사학계는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비판의 소리가 크다.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환빠’라고 한 것만 봐도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다만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인지하는지, 역사관을 어떻게 수립할 것이냐의 질문 과정 중 하나였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런 단군 관련 이슈에 특별한 관심이 가는 것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 1909년 나철이 민족 종교인 대종교를 중광했는데 대종교에서는 환인, 환웅, 단군을 삼신 한얼님이라고 하여 모두 믿는다. 중광(重光)은 한국에 단군과 천신을 모시는 전통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나철이 그것을 재건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종교는 아버지와 인연이 있다. 아버지가 만주에서 사실 때 대종교 3대 도사교였던 윤세복이 이웃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에 몇 번 방문한 적도 있다. 대종교의 경전은 ‘삼일신고’와 ‘신사기’인데, 특이한 것은 대종교에서는 1917년에 발견된 ‘천부경’도 경전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삼일신고’는 온전히 수행에 관한 책이고 ‘신사기’는 역사서라고 할 수 있지만 ‘환단고기’처럼 실재 사실처럼 서술했다기보다 신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천부경’ 역시 수행과 관련이 깊다. 대종교가 ‘환단고기’를 수용하거나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환단고기’를 역사적 사실로 신봉하는 사람들이 극단적 민족주의 경향을 띠는 것과는 달리, 대종교에서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관점은 수행론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고 대종교가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종교 신자들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대종교를 중광한 나철은 일제 탄압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자결하였고, 2대 도사교 김교헌은 1919년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으며, 3대 도사교 후보였던 서일은 독립운동을 위해 도사교를 마다하고 대한정의단을 발족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많은 대종교인들이 참여하였다. 이런 일련의 활동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지향한 활동이 아니다. 대통령이 왜 ‘환단고기’와 ‘환빠’를 언급했는지 배경은 알 수 없지만, 만약 지금도 ‘환단고기’를 실제 역사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면, 제대로 대응해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것이 옳다. 다만, 엄밀한 역사학이라는 명분으로 고대에 대한 상상력까지 말살하지 않기를 바란다. ‘환단고기’는 수용하지 않더라도 환웅과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민족 정체성과 관련해서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12-21

어린이의 질문에, 포항이 답해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역 아동센터에 다니는 ○○입니다.” 얼마 전 의회로 뜻밖의 선물이 도착했다. 포항의 한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초등학생이 직접 쓴 편지였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어린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또박또박 담겨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가끔 생각해보면 어른들은 참 좋지 않은 것을 하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건강에 나쁘다고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욕하지 말라고 하면서 운전할 때 욕하는 어른들도 봐요. 어린이들이 보는 곳이든 안 보는 곳이든, 우리에게만 하지 말라고 하면 될까요?" 그리고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을 배웠다며, 도대체 누가 윗물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규칙 같은 법도 있다는데, 어른들이 그것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이야기로 편지는 마무리돼 있었다. 어린이의 문제의식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지역아동센터가 있는 건물임을 알면서도, 바로 아래층이나 주변에서 어른들이 담배를 피우는 현실, 그로 인해 겪는 간접흡연의 고통을 또렷이 짚어냈다. 이 편지를 읽으며 ‘민원’이라는 말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떠올랐다. 우리가 보호해야 할 어린이들이 오히려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을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독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는 어른들이 정작 자신에게만은 지나치게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모범을 보여야 할 어른들을 향해 단호하게 질문을 던지는 어린이들의 태도 앞에서 숙연해지기도 했다. 포항시의 대부분 행정은 지역 현안과 개발, 예산 논의가 중심이고, 아동과 청소년의 생활환경을 세밀하게 살피는 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아동, 청소년들은 민원을 제기하기도 어렵고, 자신의 불편을 제도로 연결할 통로도 거의 없다. 그렇기에 이 편지는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의정활동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편지를 받은 뒤 해당 지역아동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직접 찾아가 보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4여 년 동안 많은 민원인을 만났지만, 이렇게 정성스러운 민원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고, 가장 어린 민원인들의 민원이라 더 감동적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안전한 공간에서 신나게 놀고, 존중받는 환경에서 자라는 동네. 그것은 단순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기본 조건이다. 어린이들이 잘사는 동네는 결국 모두가 살기 좋은 동네가 되고, 그런 동네가 모여 포항이라는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의정활동 4년을 마무리해 가는 지금, 어린 민원인의 목소리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도시를 잘 만든다는 것은 거창한 개발계획 이전에, 가장 작은 시민의 일상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 그것이 포항시를 제대로 만들어가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다시 마음에 새기며, 정성스럽게 편지를 보내준 나의 첫 어린이 민원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025-12-21

킥보드 사고, 킥보드 업체의 책임은?

아들이 킥보드 사고를 냈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타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이 녀석 매일 같이 킥보드를 타고 다녔던 모양이다. 내리막길 인도에서 속도 조절을 못해 정차해 있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차량 운행자는 처음엔 같은 아들 가진 엄마로서 이해한다며 수리비만 조금 받겠다고 했는데, 점점 요구하는 수리비가 늘어나더니 나중엔 차에 타고 있다가 놀랬다는 아들과 자신에 대한 위자료 조의 금원까지 요구했다. 자식 가진 게 죄라고 혹시나 모를 소년보호처분이라도 떨어지는 걸 막으려고 결국 요구하는 수백만 원의 돈을 다 주고 합의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아들을 한바탕 야단치고 나자 문득 아이들이 킥보드를 타는데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은 킥보드 업체들에 대한 울분이 생겼다. 학교 옆 길가에 잔뜩 서 있는 연두색 킥보드들. 탈 수 있게 해놓고 저렇게 유인한다면 아이들은 과연 그 유혹을 뿌리치기 쉬울까? 도로교통법상 킥보드는 개인형 이동장치(PM)로 16세 이상이면서 원동기 면허나 자동차 면허를 소지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킥보드는 운전면허 없이 탈 수 있다. 킥보드 대여 애플리케이션을 깔아보니 면허를 등록하라는 안내 문구는 나오지만 필수 절차가 아니어서 면허 등록 없이도 운행이 가능했다. 아예 면허 인증 안내가 없는 킥보드 앱도 있다고 한다. 아들 사건 이후 킥보드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중학교 앞에 좌판을 깔고 헐값에 담배와 술을 팔면서 사 가더라도 실제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면 다 너희 잘못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싶었다. 면허 없이 킥보드를 마음껏 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킥보드 업체의 책임도 분명 아들과 그 보호자인 나의 잘못만큼은 법원이 인정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물어준 배상금의 일부를 책임지라는 구상금 소송을 해보려 했으나 사는 게 바빠 어찌하다보니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그 이후 청소년들의 킥보드 사고는 크게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등 PM에 대한 무면허 단속 건수는 2021년 7164건에서 지난해 3만5382건으로 3년 사이 5배 급증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킥보드는 앱만 깔면 면허 없이 탈 수 있다. 거리엔 헬멧도 없이, 혹은 둘이 함께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이 흔하다. 지난 10월 18일 인천에서 무면허 중학생 2명이 몰던 전동킥보드가 어린 딸을 보호하려던 30대 엄마를 치었다. 엄마는 중태에 빠졌다가 의식을 찾았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은 무면허 운전 방조 혐의로 킥보드 대여업체 책임자와 업체를 불구속 입건했다. 킥보드 업체를 무면허 운전 방조죄로 입건한 첫 사례라고 한다. 첫 사례라는 것이 놀라웠다. 3년 전 그 때 내가 소송을 했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킥보드 사용시 면허 입력을 필수화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킥보드 업체에 대해선 무면허 운전과 업무상과실치상 등의 범죄에 대한 방조범을 인정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며, 과태료와 영업정지 같은 강한 행정제제도 가해져야 한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5-12-18

치매머니가 사냥감

있어도 못쓰는 돈, 치매머니. 노년기에 치매가 찾아오면 인지능력이 떨어져 내 집도 내 돈도 내 것인 줄 모르는 상태에 이른다. 평생 벌어놓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쓸 수가 없다. 치매머니는 치매환자가 보유한 소득이나 자산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나라도 올해 처음으로 치매머니 규모를 전수조사한 적이 있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환자가 보유한 금융자산과 부동산 등을 포함한 자산규모는 154조원이다. 이를 치매환자 수로 나누면 1인당 보유 치매머니가 2억원 정도 된다. 전체 규모는 GDP의 6.4%다. 인구 대비 자산 비중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빨리 시작된 일본은 치매머니 규모가 2030년에 가면 수천조에 이를 거란 전망이 있다. 치매머니는 주인이 있어도 쓸 수가 없으니 돈이 순환되지 않아 경제에 장애가 된다. 당연히 경제에는 나쁘다. 또 사회적으로 치매머니를 노리는 범죄까지 기승을 부리게 되니 치매머니 관리가 사회의 큰 이슈 거리가 된다. 우리나라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고령 치매환자가 늘고 있다. 그들이 보유한 치매머니도 증가하고, 그를 노린 범죄도 갈수록 는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치매환자의 재산을 노린 범죄의 다수가 환자를 돌보던 요양시설 종사자이거나 지인 등 가까운 사람한테서 일어난다고 한다. 치매환자 수가 100만명을 넘었다. 우리 사회가 치매문제에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장수를 축복이라 부르기엔 치매문제가 우리들 코앞에 있다. 치매환자의 돈이 범죄의 사냥감이 되고 그를 보호할 사회적 안정망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면 장수시대를 찬양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12-18

0.93%의 생존 – 인문사회연구의 위축

0.93%에 의존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 말이다. 0.93이라는 숫자는 한국의 연구개발(R&D) 예산에서 인문사회 분야에 할당된 비율을 의미한다. 현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R&D 삭감을 만회하기 위해 2026년 35조3000억이라는 예산을 편성했고, 이는 전년 대비 19.9% 증가한 규모라 한다. 하지만 예산 상승의 대부분이 이공 분야를 중심으로 집중되다 보니, 인문사회의 비중은 오히려 1.2%에서 0.93%로 하락했다. 인문사회연구의 지원 방안과 필요에 대한 대학과 연구소, 교수와 연구자, 대학원생 등의 다각적인 검토와 토의,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이들 논의는 결국 전체 R&D 예산의 1% 내외 수준에서 이루어진 고민에 불과했던 것이다.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나만 해도 그저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석박사 과정을 거쳤을 뿐, 이 분야 연구를 통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애초 돈을 목적으로 무언가를 모색했다면 인문계열 대학원에 진학할 리 있겠는가. 아마 대다수가 그럴 텐데, 문제는 공부와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최소한 여건조차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대학원 시절을 돌아보면 공부보단 등록금 마련을 위해 3~4개 알바를 전전했단 기억이 더 선명하다. 또한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자들은 박사과정을 수료해도 학위논문을 쓰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용되는데, 그동안의 생계와 공부를 유지하기 위해 분투했던 경험을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면 어떤가. 졸업한 거의 모든 박사들은 R&D 예산의 1%도 안되는 지원을 받기 위해 매달리지만 대체로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설 뿐이다. 사실 이런 경험 자체는 또래의 다른 분야나 직종의 사람들과 별다를 게 없을 것이다. 각박한 게 인문사회 연구자만 그러하겠나. 하지만 연구자로 살아남기 위해 연구는 연구대로 지속하면서도 생계는 생계대로 따로 챙겨야 하는 이 외줄타기의 삶에 대해 정부에 호소할 권리는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개(?)의 사회인은 자기의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자기의 일(=연구)로만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반대로 연구자들은 자기의 일(=연구)에 열심히 매진하면 할수록 생계가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일=연구=노동’과 ‘생계=생활’의 철저한 분리가 연구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물론 노동과 생활의 이러한 분리가 문제인 이유 역시 자기의 연구를 지속할 수 없다는 위기에서만 비롯된다. 연구자의 생계를 책임져 달라는 게 아니라 공부를 계속하고 싶을 뿐이라는 것이다. 연구자가 연구에 매진케 할 수 있는 제도적 방책으로써 R&D 예산의 확보는 그래서 중요하다. 과연 인문사회 연구의 중요성이 한국 연구개발 분야의 1%도 되지 않을까? K-컬처 신드롬과 한강의 노벨문학상, AI리터러시와 기술윤리, 알고리즘 해석과 현대문명 비판 등이 어떠한 지적 배경 위에서 성립될 수 있었겠나? 대체 왜 우리가 여전히 인문사회 분야 지식의 가치가 0.93%보단 높지 않겠냐고 사정해야 하나? 이 문제는 국가적 의제로 다시 살펴져야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12-18

애매한 밥값 이야기

이걸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의 예절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만 몇십 년 전만 해도 여자가 밥값 내는 행위를 시건방지게 생각했고 설사 남자가 돈이 없어 여자가 내야 할 때도 탁자 밑으로 돈을 건네주어 남자가 내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고, 우린 이런 행위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연장자에게 얻어먹는 것은 당연했고 후배가 밥값을 낸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그래서 선배 대접 제대로 받으려면 밥값 정도는 항상 챙겨 다녀야 했다. 이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아니란 게 놀랍다. 얼마 전만 해도 남자라는 ‘거들먹’이 몸에 남아 밥값 정도는 내가 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건만, 세상은 변했고 나도 변했다. 이젠 여자가 밥값을 내는 행위에 익숙해져서 별로 어색하지도 않다. 대구 수필가이신 김상립 선생은 나이 어린 사람과 식사 자리에서 밥값을 거의 전담하셨다. 너무 얻어먹는 것이 죄송스러워 몰래 몇 번 내기도 했지만, 선생은 결코 신발 끈 맨다고 우물쭈물하신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자리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항상 도리를 다하고 사셨기에 거리낌이 없었고 당신 속에 있는 말씀을 다 하셨다. 결코 구질구질하게 눈치를 보며 주위 지탄을 우려해 주례사만 읊는 법이 없었다. 그런 당당한 모습에 반해 언제부터인지 선생처럼 되어보려고 따라 하다가 집구석 거덜 날뻔했다. 아무나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요즘은 연로하신 분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린 인간이 밥값을 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용돈 받아 쓰시는 분에게 밥값을 전가한다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이래저래 애매한 상황이 많이 벌어진다. 우리말 뿌리 찾기 ‘어원사전’을 내신 국어학계의 거목 고(故)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를 알만한 분들은 다 안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어원을 제대로 오랫동안 연구해 찾아낸 분이다. 작고하신 지 몇 년 후에 제자들에 의해 책이 마무리되어 출간되었다. 북한이 고향이었던 이기문 교수는 소문난 ‘평양냉면 마니아’였다. 그래서 후배들이나 제자들을 데리고 냉면집을 자주 찾았던 모양이다.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학문적 업적보다는 교수님은 절대 후배나 제자들이 식사비를 못 내게 했다는 것을 더 기억하고 있어 웃음이 난다. 제자들이 이제는 연로하신 교수님을 대접하려 하면 교수님은 ‘아무리 제자가 돈을 벌어도 스승이 사는 법’이라며 크게 화를 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단다. 이름을 남기려면 제자를 잘 키워야 하고 제아무리 살아생전 출중한 업적이 있어도 그 업적을 인정해 줄 후학들이 없으면 사후 얼마 되지 않아 이름 석 자는 사장되고 만다는 것이 현실이다. 혼자 똑똑한 척 잘난 척하며 우쭐대면서 거들먹거리는 인생을 살아도 주위에서 알아주지 않으면 다 헛짓거리라는 말이다. 밥을 사고 안 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생으로서 스승으로서의 인격이 보이면 후학들이 추앙하게 되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일 때는 앞에서는 가식적인 웃음만 날리고 있다가 사후 그 어떠한 기억도 지워버리는 것이 요즘 세태라는 말이다. 학식과 덕망도 갖춰야 하고 지갑도 두둑해야 하니,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노병철 수필가

2025-12-18

국민이 지킨다

2025년이 열흘 남짓 남았다. 우리는 한 해를 ‘실패한 계엄’이 남긴 상처 입은 민심과 함께 보냈다. 총과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는 발상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대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안도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허약하다. 무너지지 않았을 뿐, 단단해졌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흔히 밖에서 들여온 제도쯤으로 여겨왔다. 교과서 속 개념이고, 헌법 조항이며, 선진국으로부터 수입해 온 이상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은 분명히 확인해 주었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외부에서 이식된 장치가 아니라, 우리 국민이 일상의 자리에서 벽돌처럼 하나씩 쌓아올린 구조물이었다는 것을. 광장에서, 직장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공론장에서 국민은 스스로 민주주의의 기둥이 되었다. 민주주의를 위협한 쪽은 오히려 기득권 엘리트들이었다. 국가와 질서, 안보와 위기를 앞세우며 헌법의 근간을 주무르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언제나 거창했지만, 그 끝에는 권력의 연장이라는 낡은 목적이 놓여 있었다. 반면에 이들을 막아낸 것은 아무런 직함도, 무기도 없는 국민들이었다. 제복도 계급장도 없이, 다만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 나라를 지켰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아득했던 길목마다, 악한들은 움켜쥔 자리에 남아 있었다. 민주주의의 건강한 전개를 방해하는 세력은 퇴장하지 않았다. 실패했을 뿐이다. 제도를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며 시민의 피로와 망각을 치밀하게 계산하는 방식으로 다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민주주의는 단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씩, 조용히, 일상 속에서 마모된다. 그래서 새해에도 우리는 신경줄을 놓을 수 없다. 민주주의는 완성 상태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다. 잠시 방심하여 ‘설마’하는 사이에 균열은 벌어진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다’라는 헌법상 문장은 조문으로 남을 때 가장 위태롭다. 살아있는 규범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감시와 참여, 질문과 비판이 필요하다. 지켜냈다는 안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킨 다음에도 눈에 불을 밝히는 국민이어야 한다. 권력의 언어를 해독하고, 제도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며, 불의가 상식으로 둔갑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선의에 기대어 작동하지 않는다. 경계와 참여, 기억과 행동 위에서만 호흡을 이어간다. 2026년을 앞두고 우리가 다시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다. 민주주의는 누군가 지켜주는 제도가 아니라, 국민이 계속해서 감당해야 할 삶의 방식이라는 것. ‘불편한 책임’을 내려놓는 순간, 민주주의는 가장 먼저 우리를 떠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언제나 되돌리기 어려운 후회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어느 틈에 경제적 선진국으로 올라섰듯이,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의 기준점을 제시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 공동체가 민주와 평화의 가치를 온전히 지켜낼 것인지를 이제는 온 세상이 주목하고 있다. 해를 넘기며 우리는 각오와 다짐을 새로이 하여 나라와 국민이 공동체적 생명력을 이어가야 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12-17

사전을 읽어보자

글을 쓰면서 제 자리에 들어설 어휘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쓴 글을 읽고 나면 그때야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기도 하고, 왜 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을까, 이땐 이런 단어를 썼어야지 자책하게 된다. 그러면서 심히 부족한 나의 어휘력을 깨닫는다. 남의 좋은 글을 읽을 때면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히 든다. 며칠 전 이문열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풍부한 어휘들이 적재적소에 놓여 만들어진 문장을 줄 쳐가면서 읽었다. 그래 이럴 때 이런 단어를 쓰니 참 맞침 맞은 표현이 되네. 읽은 문장을 다시 또 읽은 적이 수십 번은 되었다. 요즘은 필요한 단어나 표현을 쉽게 찾는 휴대폰이 있어 단어의 소중함을 잊고 살고 있었다. 더구나 공부를 더 이상 안하게 되면서부터는 사용가능한 어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생각도 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궁리해낸 것이 큰사전을 꺼내 읽는 도전을 해볼까였다. 어디 있나 둘러보니 책장 꼭대기에 새우리말큰사전이 눈에 띄었다. 꺼내서 펼쳐보니 깨알 글씨에 상하 두 권 합해서 3856페이지다. 일단 먼지를 닦고 책상 위에 두었다. 예전엔 국어사전이 참 가까이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할 때 부상으로 받은 사전은 항상 책상 위에 있었고 필요할 때 펼쳤던 기억이 있다. 숙제를 할 때도 사전을 펼쳤고, 심심할 때도 아무 페이지나 펼쳐 무심히 읽었다. 대학 때까지도 국어사전은 영어사전과 같이 늘 나의 책상 위에 있었다. 한참 지나서는 백과사전까지도 소장하자 큰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말 사전은 1911년 말모이원고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사전 원고였으나 240자 원고지에 붓글씨로 쓰인 부분적인 원고만 전해진다. 1914년 주시경 사망 후 출간되지 못했으나, 현존 최종 원고는 2012년 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 2020년 보물 제208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말 큰사전은 1929년 편찬을 시작했으나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중단됐고 원고마저 없어졌다. 해방 후 1945년 서울역 창고에서 일제에 압수되었던 사전 원고를 되찾으며 다시 추진되었다. 1947년 한글날 조선말 큰사전 1권을 간행하였으며, 이후 1957년까지 10년에 걸친 한글 사전 편찬이 마무리되었다. 이 사전의 원고는 2020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기록유산이다. 이 파란만장 갖은 신고(辛苦)를 겪었던 조선어사전 원고와 말모이 원고를 합해 ‘근대한국어사전 원고’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되어, ‘내방가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무국에 제출했다. 이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의 심사 등을 거쳐, 2027년 상반기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집행이사회(UNESCO Executive Board)에서 최종 등재 여부가 결정될 예정으로 알고 있다. 올해는 우리말 사전의 역사에 의미 있는 방점을 찍는 해이기도 하니, 커다란 사전의 첫 페이지를 펼쳐볼 만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부족한 어휘력을 채울 공부가 첫 번째 목적인데 나의 성실성을 시험해 볼 기회이기도 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12-17

손목에서 생기는 신경포착

손목은 작은 공간 안에 여러 힘줄과 신경이 지나가며 이 구조가 일상적인 사용이나 반복된 작업에 의해 쉽게 붓고 압박을 받게 된다. 이렇게 손목에서 신경이 눌리는 대표적인 질환이 바로 터널 증후군과 가이온 터널 증후군이다. 모두 손저림과 통증을 일으키지만 눌리는 신경과 증상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감별이 중요하며 적절한 시기에 정확한 치료가 이루어져야 한다. 터널 증후군은 손목의 좁은 통로인 수근관 안에서 정중신경이 압박될 때 발생한다. 이 안에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굵은 힘줄이 지나가는데 반복된 손목 사용과 과로로 힘줄 주변이 부어오르면 수근관 내부 압력이 올라가며 정중신경이 눌린다. 엄지, 검지, 중지 쪽의 저림이 특히 뚜렷하게 나타나며 밤이나 새벽에 저림이 심해 잠을 깨기도 한다. 오래 방치되면 엄지 쪽 근육이 위축돼 단추 채우기나 집는 동작이 서툴어질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오래 쥐는 습관, 키보드 작업, 설거지나 요리처럼 손목을 반복적으로 쓰는 행동이 주요 원인이다. 가이온 터널 증후군은 손바닥 새끼손가락 쪽에서 척골신경이 눌릴 때 발생한다. 가이온 관은 수근관과는 위치와 구조가 다른 또 하나의 좁은 통로로 자전거 핸들을 오래 잡거나 손바닥에 지속적인 압력이 가해지는 직업이나 운동 시 흔하게 발생한다. 저림은 약지와 새끼손가락 쪽에 집중되고 심해지면 손을 꽉 쥐는 힘이 약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손바닥 아래쪽 인대와 두꺼운 조직이 신경을 직접 누르는 형태라 압박이 해소되지 않으면 증상은 개선되지 않는다. 이처럼 신경 포착은 단순 압박이 아닌 손목의 반복적 스트레스, 조직 부종, 근육·인대 긴장 등이 누적되어 생기는 결과이다. 기혈 순환의 정체와 근육, 인대의 과긴장이 원인이라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소해 주면 신경 압박은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는 편이다. 특히 초음파를 이용한 가이딩 치료는 정중신경과 척골신경의 실제 모양과 깊이를 보면서 시행되기 때문에 약침과 침 치료의 정확도를 높여 주변 부종을 줄이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준다. 혈액순환 저하를 개선시키면 압박이 빨리 개선되기 때문에 한약 복용이 효과적이며 경추와 어깨·팔꿈치까지 이어지는 상지 전체의 정렬을 바로잡으면 재발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처음에는 저리고 찌릿한 느낌 정도로 시작하지만 점차 감각이 무뎌지고 근력 약화로 이어지며 신경 전도 속도가 떨어지면 일상생활에 불편이 커진다. 저림이 밤에 심해지기 시작한 단계 그리고 손가락 감각이 예민하게 변하는 시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좋다. 생활 관리도 빠질 수 없는데 손목을 구부린 채 스마트폰을 오래 들고 있는 습관, 힘을 주어 손바닥을 누르는 작업, 장시간의 타이핑은 모두 악화 요인이 된다. 손목 각도를 자연스럽게 유지하도록 환경을 바꾸고 손바닥 압박이 많은 운동 시 보호 장비를 착용하며 온열 관리와 스트레칭을 병행하면 치료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손목에서 생기는 신경 포착은 충분히 회복 가능한 질환이다. 중요한 것은 초기에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신경을 누르는 조직을 풀어주며 다시 눌리지 않도록 생활 패턴을 바로잡는 것이다.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손저림도 구조를 잘 이해하고 적절한 치료가 더해지면 오래 앓을 필요가 없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12-17

꼭두방재*

꼭두방재* 미물(微物)로 살다가 사람으로 살자 다짐한다 꼭두방재에 오르면 언덕에 올랐다가 산에서 내려온다** 포항에서 안동을 거쳐 서울로 가거나 개의치 않는다 다만 밥 먹고 똥 누며 어울려 사람으로 살고 싶을 뿐, 오직 도달하지 못할 중도(中道)의 고갱이는 무엇일까, 의지와 신념과 기회와 능력을 몇 조각 구름으로 엿 바꿔 먹을 교조주의를 까부수는 낮달, 이마에 선연한 낮지도 않은 혹은 높지도 않은 꼭두방재에서, 비우고 내려감이 심히 어려움,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언젠가 국토의 가랑잎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경상북도 청송군과 포항시 죽장면을 연결하는 고개. **영화 ‘잉글리쉬 맨’의 원래 제목에서 빌림. … 그냥 거기에 갔다. 직선이나 혹은 효율적으로 길을 잘 만들어 버렸으니 찾아올 손님이 없다. 당연히 휴게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가끔은 외진 곳에서 마음을 돌아보고 가다듬어야 한다.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젠가 세상에서 외면당할 일만 남아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12-17

알람브라 궁전, 시간의 문을 열고

햇살이 새뜻하다. 나는 알람브라 궁전 기념품 가게에서 샀던 책을 펼치고 있다. 스페인 dosde 출판사에서 한국어로 출간한 ‘그라나다의 알람브라’다. 매번 여행에서 돌아오면, 일상은 내게 익숙한 언어로 다시 말을 걸고 익숙한 길을 걷게 만든다. 그럴 때 여행지에서 구입했던 책을 꺼내 책장을 넘기면 이국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 책은 풍경과 이야기로 가득하다. 알람브라의 역사와 무데하르 양식의 문양이 사진과 언어로 피어나 있다. 책갈피에서 나뭇잎 하나가 떨어진다. 언제 끼워 넣었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무척이나 반갑다. 바스러질 것처럼 얇고 마른 잎에서 알람브라 궁전에서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초록으로 일렁이던 정원의 나무들이 다시 피어올라, 그때의 시간 속으로 나를 데려간다. 지난 해 겨울, 나는 알람브라 궁전을 거닐며 시간의 경계에 머물렀다. 나는 현재에 살고 있는데 수많은 조형물을 마주할 때면, 과거 나스르 왕조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아랍 왕들의 발소리를 상상하며 걷다 보면 익숙함과 낯섦, 현재와 과거 사이에서 흔들렸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단순한 건축이 아니었다. 돌과 도자 타일에 새겨진 아랍어 문구, 아라베스크 문양과 기하학적 곡선을 바라보며 나는 거대한 역사책을 읽는 것 같았다. 세월을 직조한 겹겹의 시간 속에 사람의 손길과 기도의 숨결이 배어 있었다. 나는 벽에 손을 대보았다. 그 순간 그라나다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이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에게 남겼던 부탁이 떠올랐다. 그는 정복자에게 쫓겨 가면서도 알람브라 궁전만은 무너뜨리지 말라고 간청했다. 보아브딜 왕은 북아프리카로 건너간 뒤에도 아름다운 궁전을 잊지 못했다.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알람브라보다 못하지만 비슷한 궁전을 지어 그리움을 달랬다고 전해진다. 내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사자의 안뜰’이었다. 회랑과 마찬가지로 궁전의 여러 방을 연결해 주는 네모난 마당에 사자 분수가 설치되어 있었다. 중앙 분수에서 흘러나온 물이 흰 대리석 바닥 위로 흘렀다. 열두 마리의 사자상은 말없이 입을 다문 채 세월을 지키고 있었다. 긴 역사를 거쳐 오면서 학자들은 궁금해 했다. 열두 마리의 사자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의견이 분분했다.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 솔로몬 왕의 신전에 있던 철로 만든 황소, 일 년의 열두 달 혹은 열두 별자리를 상징한다는 설까지 다양한 해석이 뒤따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것은 술탄의 권력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무하마드 5세가 궁전을 건축한 시기에 사자 분수대도 같이 만들어졌기에, 사자들은 술탄의 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술탄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예술은 남았다. 사람은 유한의 존재이고 예술은 무한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회랑은 음영의 교향곡처럼 빛과 어둠을 조율했다. 내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공간을 넘어 흐르던 시간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가 귓가에 울려오는 것 같고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물소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 작곡가 타레가의 기타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으며 책장을 넘긴다. 책에는 군데군데 QR 코드가 있어, 스캔하면 영상이 펼쳐진다. 궁전 내부와 공예품의 영상을 보노라면, 아름다움에 다시 매혹된다. 기념품 가게에서 책을 샀던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언젠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잊힐지도 모를 여행의 감동을 되짚게 하는 선물로 이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책은 가슴속에 고이 접어온 여행지에서의 감탄과 설렘을 불러와 주었다. 여행의 기억은 연기처럼 흩어진다. 그러나 책 속 문장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햇살에 반짝이던 중정의 물소리가 종이에 흔적처럼 남아 있다. 나는 문장을 음미하며 회랑을 걷고 분수 앞에 멈추며 정원의 나무 그림자 안에 머물 것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의 추억은 시간의 문을 열고 내 안에서 깨어나리라. /정미영 수필가

2025-12-17

절벽으로 내몰린 한국 청년들

‘번아웃(burnout)’이란 삶이 주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지 못해 정신적·육체적으로 낙담과 절망에 빠진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다. 이른바 ‘번아웃이 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태가 된다. 당연지사 위험하다. 한국 청년 3명 가운데 1명이 번아웃을 경험했다는 조사가 최근 발표됐다. 젊은 세대가 절망과 낙담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안한 진로(39.1%)’ 탓이었다. ‘과중한 업무’와 ‘일에 대한 낮은 보상’ 등도 주요한 이유였다. 밝은 미래를 설계하기 힘든 2025년 말 우리나라 상황이 청년들을 번아웃에 빠뜨리고 있는 것. 사실 젊은층이 받는 과도한 스트레스는 이전부터 지적돼 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16일 발간된 국가데이터처의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는 위에 언급한 문제를 수치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19~34세 청년 자살률은 10만 명당 24.4명. 2011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았다. 삶의 만족도 역시 하향하는 추세였다. 10점 만점에 6.7점으로 조사된 청년들 삶의 만족도 수치는 38개 OECD 회원국 가운데 31위. 학력이 낮을수록 삶의 만족도 역시 낮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청년 여성의 번아웃 경험률이 36.2%로 조사돼 청년 남성(28.6%)보다 대폭 높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체감하는 것에 보다 민감했기 때문일까? 갓 성인이 된 19세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청년들이 희망과 꿈보다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건 한국의 앞날이 어둡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을까.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12-17

감각 차단술의 함정

이상하게도 나는 길 위에서 예상치 못하고 반갑지도 않은 만남을 자주 겪는 편이었다. 대뜸 팔을 붙잡히거나, 무례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사람을 마주치거나 사이비 종교인들이 순수한 의도인 척 설문조사를 부탁해 오거나 하는 유쾌하지 않은 만남의 연속. “그냥 무시하면 돼. 대꾸도 하지 말고 눈길도 주지 말고 그냥 모른 척하는 게 최고야.” 한 친구는 해탈한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나는 그게 잘 안되던데, 내가 말하자 친구는 그것도 기술이야, 연습해야지, 대꾸했다. 친구의 조언에 따라 나는 이상한 사람을 마주쳤을 때 순간적으로 모든 감각을 차단하는 나만의 기술을 연마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별건 아니었다. 그저 정면에서 살짝 아래로 시선을 내리깐 채 그곳에 구멍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구멍에 빠지지 않도록 모든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말을 걸어오는 낯선 목소리 따위가 아득히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 기술을 익힌 후로는 웬만한 사람들을 손쉽게 차단한 채 지나칠 수 있었다. 한 교육 업체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국가 지원 사업을 통해 온라인 강의를 개설하고 교육을 진행했는데, 중간에 낙오되는 수강생이 없도록 독려하여 강의를 무사히 마무리 짓도록 돕는 것이 나의 주 업무였다. 대부분의 강의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으므로 사무실에는 교육팀 직원들뿐이었으나, 예외로 오프라인 강의가 한 번 개설된 적이 있었다. “거기 좀 이상한 사람 있어요.” 어느 날 직원 한 분이 조심스레 말했다. “왜요?” 다른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웬 남자분인데, 목소리도 엄청 크고 강사님한테도 막 시비를 건다네요. 생긴 것도 영…”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사무실이 있던 건물은 보안이 좋은 편이었고, 각 층을 지키는 보안 직원들까지 있었다. 그냥 목소리가 좀 괄괄하고 경우 없는 사람인가 보다, 짧게 생각하곤 넘겼다. 마주칠 일 없는 이상한 남자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당장 내게 닥친 업무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로부터 며칠 후, 사무실 근처를 서성거리는 검은 인영을 보았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며칠 전 들었던 ‘이상한 남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목소리가 크고 강사에게도 시비를 걸 정도로 경우 없는 사람. 생긴 것도 영… 그렇다는 사람. 사무실 앞을 기웃거리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통화하는 척 핸드폰을 볼 옆에 갖다 댔다. 어, 여보세요? 낯부끄러운 연기도 펼쳤다. 그러자 남자는 나를 따라오며 소리를 질러댔다. 깜짝 놀란 나는 감각 차단술을 펼쳤다. 그는 이젠 내게 “야! 야!”라고 소리치며 손을 있는 힘껏 흔들었다. 안 보인다, 안 보여.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를 피해 무사히 카드키를 찍은 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문밖을 내다보니,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붙박인 듯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그 이상한 사람 봤어요, 내가 직원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려던 찰나,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중얼거리며 나간 그녀를 막을 새도 없었다. 나는 엉덩이만 들썩이며 그녀가 무사히 사무실 안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몇 분쯤 지났을까, 홀가분한 얼굴을 한 그녀가 자리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에요?” 옆자리 직원분이 물었다. “수강생인데 오늘 처음 오는 거라 강의실을 못 찾고 있었대요.” 나는 놀라 되물었다. “그런데 왜 소리를 지르셨대요?” 직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짧게 대답했다. “청각장애인 분이시더라고요. 손에 노트를 들고 계셨는데, 그거 봐달라고 그러신 거였어요.” 아아, 다들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업무를 이어갔다. 익숙한 타자 소리와 전화벨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가 내게 소리를 질렀던 것은 길을 묻기 위함이었고, 손을 흔들며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손에 든 노트를 내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문밖을 조심스레 건너다보았다. 그림자 하나 없이 고요하고 텅 빈 바깥만 보였다. 감각 차단술은 나의 위안이자 보호막이자 안전장치였다.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곤란한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낯선 이에게 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 다양한 이유로 많은 이들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중에는 정말 무시가 최선인 상황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도움이 간절한 사람도 있지는 않았을까? 내가 차단한 것이 정말 ‘이상한 무언가’였는지, 아니면 그저 내 주위를 돌고 있던 세상 그 자체였는지 도무지 확신할 수 없어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양수빈(소설가)

2025-12-17

중립기어의 필요성

마피아게임이라는 놀이가 있다. 사회자가 참가 인원 중 몇 명을 마피아로 지목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선량한 시민들 사이에 숨어든다. 선량한 시민들은 회의를 통해 의심 가는 사람을 마피아로 지목하고 투표로 그의 생사를 결정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마피아를 모두 색출해내면 선량한 시민이 승리하고, 마피아는 잡지 못한 채 선량한 시민만 죽이다 보면 마피아가 승리하는 놀이다. 이 놀이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하나 있다. 선량한 시민들이 누군가를 마피아로 지목하면 투표 이전에 최후의 변론 시간을 준다는 점이다. 지목된 사람은 최선을 다해 자신이 선량한 시민임을 주장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선량한 시민들의 판단은 반드시 그 변론이 끝난 뒤에 이루어진다. 선량한 시민이 선량한 시민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행여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억울함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 지목된 사람의 주장 또한 귀 기울여 듣는 것. 시민의 선량함은 거기서 나온다. 한 해가 다 끝나가는 이 시점에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학교폭력, 갑질, 연애스캔들 등등 다양한 이유로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매체들은 보통 톱스타 A씨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거나, 그에 대한 제보가 있었다는 식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그것이 모두 사실인지, 아니면 일부만 사실이거나 아예 사실무근인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유보된다. 그러나 일단 그런 기사가 올라오면 당사자는 대중들의 강력한 비난과 질타를 마주해야 한다. 많은 대중들이 그러한 기사 속 의혹과 제보, 주장 같은 것들을 빠르게 사실로 받아들이는 탓이다. 물론 정말로 그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는 경우가 흔하기는 하다. 그러나 때로는 최초의 의혹 중 일부 혹은 전부가 왜곡된 것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사실을 바로 잡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고 작성되더라도 의혹을 제기했던 그 기사에 비하면 훨씬 주목을 덜 받게 되곤 한다. 당사자의 억울함이나 손해는 끝내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대중은 다소 섣부르게 의혹과 주장을 받아들이고 비난부터 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향해 비난의 스탠스를 취하고 그러한 의도를 담아 댓글 하나 달고 게시물 하나 올리는 것이 별로 심각한 것이라고 인지하지 않는 탓이 있을 것이다. 내가 쓴 몇 마디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질 리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 하나가 다른 비난을 부르고 또 그것이 다른 비난을 불러 결국 당사자는 눈덩이처럼 커다란 비난을 마주해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의 태도 탓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믿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글을 다시 게시하거나 자신이 던진 비난의 화살을 거두어들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비난은 그대로 거기 남아있게 된다.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는 우리가 누군가가 스캔들에 휘말리고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보며 묘한 쾌감 같은 걸 갖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것이다.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떤 유명인이나, 심지어 별 관심도 없었던 누군가가 그렇게 되는 과정을 보며 알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던 적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한 경험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어떤 일이 사실이기를 바라게 만들고, 또 끝내 그것이 사실이라 믿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가끔 요즘 언어로 ‘일단 중립기어 박는다’는 댓글을 마주하면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든다. 이 말은 아직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우니 중립의 태도를 취하겠다는 뜻이다. 득달같이 달라들어 재빠르게 비난의 화살을 쏘지 않아도 언론이 움직여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것이다. 법리적인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면 그 결론을 기다린 뒤에 나의 의견을 정리해도 늦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고, 그 중에는 당연히 당사자의 이야기도 포함된다.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지, 아니면 억울함을 호소하는지 들어보고 그 이야기의 신빙성을 따져보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마피아게임 같은 걸 할 때도 최후의 변론을 할 기회를 주는데,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면 그 정도 시간은 할애할 수 있지 않을까. 죄 지은 모든 이들이 그에 합당한 벌을 받기를 바란다.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은 비난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한 적절한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억울한 한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수천 명의 죄를 밝혀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선량한 시민이기에. /강백수(시인)

2025-12-17

연예계 비리가 소환한 ‘스타의 사회적 책임’

최근 박나래 논란을 비롯한 연예인들의 비리·일탈 행위는 그들의 공적 책임에 대한 사회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스타 또는 셀럽(유명인)들의 언행 하나하나는 MZ세대의 준거기준이 될 수도 있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커질 수 있다. 사회학에서는 사회문제를 다룰 때 ‘준거(reference) 집단’이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준거집단은 자신의 신념·태도·가치나 행동방향을 결정하는 데 기준으로 삼고, 스스로를 동일화하는 그룹이다. 자신이 소속돼 있는 집단일 수도 있고, 소속되고 싶은 집단일 수도 있다. 외부세계와의 소통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가족이나 학교, 직장이 준거집단에 속했지만, 각종 매체가 러시를 이루는 지금은 개인의 준거집단이 매우 다양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주로 MZ세대가 대부분인 팔로워들의 준거집단 역할을 한다. 인플루언서들의 말투나 생각,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제품이나 라이프스타일도 팔로워들의 소비 대상이 된다. 준거집단이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의 95%를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MZ세대들에겐 주로 준거집단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대구의 젊은 직장인이 서울 강남을 준거집단으로 삼으면 심한 박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같은 맥락으로 방송에 출연해 부동산 자랑을 하는 연예인들의 신중하지 못한 행위가 저소득층에게 얼마나 큰 박탈감을 느끼게 할지는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이 클수록 자신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이는 다시 사회적 고립감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빈부격차가 큰 나라도 드물다. 국가통계포털(KOSIS)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하위 20%(1분위) 가구의 평균근로소득은 401만원, 상위 20%(5분위) 가구의 평균근로소득은 1억2006만원으로 격차가 약 30배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예인들의 반사회적인 탈세행위도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정일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열린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법인 전환을 통해 세금 과소 납부, 법인명의 자산 편법 취득, 법인카드 사적 유용 등의 연예인 탈세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겠지만, 연예인이 가족 명의 1인 기획사를 설립하는 방법으로 탈세하거나 세금을 적게 내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개인 소득 10억원에 대한 세율이 45%인데 비해 법인 매출 10억원의 세율은 19%에 불과하다. 똑같은 금액을 벌어도 개인은 4억5000만원을 내지만 법인은 1억9000만원만 내 약 2억6000만원을 적게 납부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부모나 친인척을 대표로 둔 연예계 ‘1인 기획사’가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측면에서 스타 연예인이나 셀럽들의 사회적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들의 물질적인 과시나 일탈행위는 불필요한 박탈감을 낳게 되고, 결과적으로 미래세대의 삶까지 위태롭게 만든다.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12-16

해외 토픽감이 된 한국의 불수능

수능의 난이도가 어려우면 불수능이란 이름으로 호되게 비판을 받는다. 수능시험이 어렵게 출제되면 수험생들의 사교육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험을 쉽게 내면 물수능이란 비판을 뒤집어 써야 한다. 대학 수능시험의 난이도 조절은 시험 때마다 자주 도마에 오르는 주제다. 시험의 변별력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난이도 조절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모든 수험생의 눈높이에 맞는 난이도를 구성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 힘들다. 2026학년 대학수학능력 시험의 영어 영역을 둘러싼 난이도 논란이 시끄럽다. 논란 끝에 불영어란 불명예를 쓰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사태를 들여다 본 해외 언론들이 한국의 수능 영어 영역을 조명하고 나서는 등 뉴스 소재로 삼았다. 영어의 본산인 영국의 BBC 방송은 “한국의 대학입시 시험은 악명 높게 어렵다”고 설명하고 올해 출제된 영어 영역 문제를 두고 일부 학생들은 고대문자 해독에 비유하는가 하면 일부서는 “미쳤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한국의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 불수능으로 불릴 정도로 어렵다는 소식과 함께 올해 출제된 영어 문항을 소개하고 독자들이 직접 풀어보는 온라인 퀴즈를 내기도 했다. 또 일부 해외 언론은 한국의 과열된 입시경쟁 구조가 청소년의 우울증이나 극단적 선택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입시문제가 청소년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한국의 수능이 해외 토픽감이 됐다. 좋은 의미보다 부정적 의미가 컸다. 32년 전통의 수능방식, 고민할 때 된 것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12-16

살육의 서막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인류는 폭력과 살육의 연속이었다. 무지한 인간이 신념을 지니면 더욱 무서운 법, 만약에 신이 있다면 인간이 얼마나 광폭한지, 얼마만큼 폭력적이고 악해질 수 있는지, 자신의 이익에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를 실험 중일 것이다. 과거로 돌려보내는 것은 기억이고, 미래로 가는 것은 꿈이다. 발칸반도 폭력의 중심에 섰던 권력, 유고내전과 보스니아 전쟁, 그리고 민족을 앞세운 권력욕에 매몰된 인간들에 의해 자행된 코소보 살육의 현장은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대한민국 해방정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정권에서 자행됐던, 당대 유명한 오제도(吳制道) 검사가 기획하고 이승만이 승인한 국민보도연맹사건(國民保導聯盟事件)에서 죽어간 수만 명의 억울한 주검 앞에 그 누구도, 백주대낮의 세상이 도래했다고 해도 책임지는 이가 없는 세상이다. 희대의 살육자 김일성이 일으킨 한국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이다. 뒤이은 월남전, 중동전쟁을 넘어 인간 스스로가 인간을 청소한다면서 자행한 제노사이드가 21세기에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강대국은 이익이 나지 않은 곳에 눈 돌리지 않는 법, 어쩌면 재고 넘치는 순 구제 무기라도 팔아먹으려면 그마저도 부추겨야 하는지도 모른다. 일평생 호위호식하며 몸을 살찌우고 이름 없이 죽어간 인물은 부지기수다. 그나마 악에 물들어 추호의 의심도 없이 살육에 앞장선 인물에 비하면 다행이다. 그러나 지독한 고독을 이겨내고 인류 평화를 밝혔던 역사 속 인물이 주는 메시지는 결국 꿈과 희망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현실보다는 역사에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 듯하다. 조선의 폭군 연산군조차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했다. 이것이 ‘기억의 힘’이다. 되돌아보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서두르지도, 넋을 놓아서도 안 된다. 아무리 두려워도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 과거에 아픔이 있더라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 깊은 곳을 탐사하는 내시경으로 활용할 일이다. 유네스코세계자연유산 플리트비체 물길 따라 흐르는 장엄한 풍경, 아드리아해 진주 아름다운 항구 두브로브니크 성벽에 올라서서 윤슬 반짝이는 바다는 여전히 추억에서 반짝이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중세 골목골목을 누벼가며 장검을 찬 기사가 된 양 폼을 잡고, 골목 비탈길에 앉아 나 홀로 맥주를 홀짝거려본 기억도 그립다. 달마티아 해변에서 항구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시간, 달마티아 출신 최초로 로마 황제에 오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만년을 보낸 궁전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에 압도당했던 기억은 여전히 설렌다. 성도미니우스대성당의 고즈넉한 맛과 함께 신을 향해 흐르는 인간의 물결은 보이지 않는 신의 에너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자그레브 밤거리를 대한민국인 양 휘청거린 경험은 치기의 아찔한 추억이다. 자그레브 옐라취치 광장에서 어린 학생들 단체사진을 찍어준 일, 이 모든 것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명강사는 목소리 높여 외치지 않는다. 삶처럼 베테랑 여행자일수록 꾸러미가 간소한 법, 길을 걷다가 보면 소도 보고, 중도 본다. 청산(靑山)과 녹수(綠水)가 산 입에 거미줄 치게 두겠는가, 어찌 소인처럼 작은 이익과 아름다움에만 얽매이겠는가. 삶은 길에서 배운다. 유랑민의 본능이 살아나면 폭력의 아픔과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아름다움에만 빠져 하늘을 우러러 찬사의 목청만 높일 일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드리아해 진주 두브로브니크 성에 올라 둘레를 몇 발자국만 걸어도 과거 아픈 상헌흔이 채 아물지 않은 채 생살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몬테네그로 자칭 용사들이 한 명의 크로아티아인도 남겨두지 않겠다며 무차별적인 포격의 현장이다. 크로아티아가. 일명 ‘문화전쟁’이라며 문화재를 총알받이로 앞세운 전략이었다. 세르비아 연방군을 문화재 파괴의 주범으로 몰기 위해 텔레비전 중계까지 준비하고 파괴하기만을 기다리는 크로아티아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13세기에 건축된 두브로브니크 성이 화염과 포염에 휩싸인 모습을 상상을 해보면 마냥 아름답고 이국적인 정취에 흠뻑 젖을 수만은 없다. 크로아티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유고전쟁 당시 연방군과 크로아티아군 살육전은 소름 돋는 역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극우조직 우스타샤는 나치 지원 아래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에 살던 세르비아인 35만(부상자 포함 70만?) 명을 학살했다. 순박하게 생긴 청년들, 밤에만 피는 박꽃 같은 여인들, 팁이라고 내민 손을 부끄럽게 만든 할아버지와 동방의 끝자락에서 날아온 이방인을 향한 비아냥대는 청소년들의 얼굴과 겹쳐진다. 보스니아에서 세르비아, 세르비아에서 크로아티아로 넘을 때, 국경선 군인들 눈초리는 여전히 이들의 가슴에는 폭력의 앙금이 완전히 씻어지질 않았다고 대변하고 있다. 이제부터 21세기 우리 한반도와 닮은 발칸반도 폭력의 역사를 이야기할까 한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12-16

잠금 이후

작년에 새 노트북으로 바꾼 후 일 년을 나의 호흡처럼 품고 있었다. 손끝이 닿을 때마다 수업의 문장들이 깜빡이며 살아났고 미완의 글들은 밤의 잔열을 머금은 채 잠들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노트북은 나를 배척했다. 늘 통과하던 비밀번호가 더는 문이 아니었다. 기계는 침묵했고 나는 의아함과 불안함이 번갈아 오고 갔다. 서비스 센터에서는 백업이 불가하다 하여 외부 수리에 맡겼지만 문을 통과하지 못한 원인은 간단했다. 해킹, 누군가 나의 공간에 들어와 비밀번호를 바꾸었고 나는 나의 방에서 추방되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초기화였다. 그 단어의 무정함은 늘 정확했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혹은 시스템의 명령에 의해 기억은 지워졌다. 이전 노트북에서 옮겨 놓은 수많은 수업자료와 켜켜이 쌓아온 문장들, 밤마다 키워온 내 삶의 비유와 숨결들. 자식 같은 글이라는 표현이 과장 같을지 모르나 글을 써 본 사람이면 안다. 문장은 태어나기까지 오랜 진통을 치르고 태어난 뒤에도 수없이 넘어지며 자란다는 것을. 그 아이들이 한꺼번에 몽땅 사라졌다. 기계의 망각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인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같은 주, 시아버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병실의 밝은 불빛 아래에서 우리는 수없이 아버님을 불렀다. 자식들의 부름은 공중으로 흩어졌고 아버님의 몸은 그저 누운 채로 저 깊은 수면 상태로 시간은 흘러갔다. ‘반응 없음’ 의료 기록의 차가운 문구는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파고들었다. 해킹은 더 이상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에 침입해 문을 잠그는 행위, 기억의 경로를 바꾸고 접근 권한을 박탈하는 폭력이었다. 나의 노트북이 그러했고, 아버님의 몸도 그러했다. 뇌라는 서버에 갑작스러운 오류가 발생하자 아버님이 평생 축적해 온 얼굴과 목소리, 하물며 사랑의 암호까지 모두 접근 불가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늘 대비하며 산다고 믿는다. 백업을 하고, 보험도 들고, 검진도 미루지 않고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삶의 취약점은 우리가 방심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순식간에 열린다. 보안은 완벽할 수 없고 건강은 영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아는 것과 몸으로 겪는 일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초기화 이후의 노트북은 말끔했다. 공백은 깔끔했고 빈 바탕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애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지워진 것들 위에 새로 쓴다는 것은 상실을 전제로 한 창조였다. 지금의 나의 저울은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이전의 기억을 더듬는 데 더 기울어져 있었다. 아버님이 계신 병실에서 우리는 손을 잡고 체온을 확인하고, 숨의 리듬을 읽었다. 기술은 반응을 숫자로 보여주었지만 우리는 숫자 너머의 미세한 떨림을 기다렸다. 삶은 언제나 데이터보다 느리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만 회복된다. 나는 다시 문장을 쓴다. 기억을 백업하고 비밀번호를 바꾸며 동시에 사람의 손도 더 오래 붙든다. 기술은 보호막이지만 결국 삶을 지키는 것은 주의와 애정의 지속이다. 아버님의 침묵은 아직 풀리지 않은 암호처럼 남았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로그인을 시도한다. 이름을 부르고 기억을 들려주고 사랑의 키를 바꿔간다.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시도 자체가 우리의 삶을 해킹으로부터 지키는 최후의 보안이라 나는 믿고 싶다. 해킹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침입자는 로그를 지웠고 시스템은 정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용자는 어딘가 달라졌다는 것을 안다. 아버님의 맥박도 규칙적이라고 기계는 말했지만 우리가 알던 아버님의 리듬은 사라졌다. 정상과 온전함 사이의 간극에서 우리는 매일을 건너고 있다. 잠금은 늘 풀릴 수 있고 잠금 해제는 예고되지 않는다. 우리가 믿어온 ‘안전’이 얼마나 임시적인지 생각한다. 기록은 기계에 남기되 삶의 의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남기고 나눠야 함을 다시 한 번 나에게 로그인한다. /김경아 작가

2025-12-16

혁신주상과 삶의 프레임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며 행동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기준 틀’을 삶의 프레임(Frame)이라고 한다. 살면서 얻는 지식과 경험이 삶의 프레임이 되고 세상을 보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같은 현실을 겪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느끼고 선택하는 이유가 바로 이 프레임 때문이다. 무엇을 중요하게 보고, 무엇을 문제로 인식하며, 어떤 기준으로 선택과 포기를 결정하는가를 규정하는 내면의 사고 구조이다.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의 잣대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면 지혜롭게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제조 기업의 안전과 작업 환경, 생산 경쟁력을 위해서 공장 내 수작업 장이 이슈가 되곤 한다. 일을 하는 데 돌아가거나 넘어가거나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것은 일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안전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작업장 레이아웃(Layout) 최적화를 해나가야 한다. 사람, 자재, 설비, 정보의 흐름을 기준으로 작업자의 동작 낭비를 최소화하고 생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극대화하도록 작업 공간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수작업 공정에서는 설비보다 사람의 이동·동작·판단이 성과를 좌우하므로 작업 품질과 속도를 결정하는 공간 설계인 레이아웃 최적화가 중요하다. 레이아웃 최적화의 핵심 조건은 첫째, 흐름 중심 설계(Flow)이다. 작업 흐름에 맞는 설비 배치와 자재 입고, 가공, 검사, 포장, 출하가 역류 없이 직선 또는 U자 형으로 흐르게 한다. 둘째, 작업자 동작 최소화이다. 수작업에 필요한 공구·치구·비품·용품 등을 허리-어깨 높이, 팔꿈치 반경 50cm 이내 일하기 쉽게 배치한다. 셋째, 생산과 일의 흐름화이다. 일의 흐름에 맞게 작업 통로를 만들고 지그재그 작업을 강물이 흘러가듯 작업 흐름화로 만들어 간다. 넷째, 표준과 시각화이다. 작업 통로 선을 긋고, 이를 중심으로 물건의 위치 구획선, 비품, 공구의 이름을 VM(Visual Management)하여 찾아 쓰기 쉽게 시각화 한다. 제철소 FINEX부 ‘혁신주상만들기‘ 할 때의 일이다. 쇳물을 생산하는 주상을 ‘산모가 아기를 낳는 신선한 곳’으로 정의하고, 열악한 환경과 작업 조건 개선을 시작했다. 3시간마다 쇳물 흐르는 탕도 위치가 바뀌고, 뚜껑이 열릴 때 다량의 연기(Fume)가 발생한다. 탕도 주변은 경사져 있어 지게차, 작업자 이동시 미끄럼 위험이 상존한다. 주상 바닥은 설비 중심부 외는 콘크리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서장의 생각 프레임이 있었다. 작업자의 안전 위협과 일의 비효율성을 근거로 주상 전체 평탄 작업 필요성을 인지시켰다. 모래·왕겨 운반 차량과 안전 통로를 확보하고, 주상에 필요한 물건들을 허리 높이부터 어깨 높이 사이에 배치하여 일을 쉽고 안전하게 했다. 부서장의 생각 프레임에 바닥 평탄 작업을 못했다면, ‘혁신주상’ 레이아웃 최적화는 실패했을 것이고, 환경, 안전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식과 경험으로 고정 관념화 되는 생각 프레임은 중요 의사 결정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에 멈춘 삶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유연성을 갖고 미래를 향한 가치관으로 내일을 열어가야 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12-16

소리를 담금질하는 정가(正歌)의 울림

연말이면 으레 길거리에서 들리는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가 정겹고 훈훈하게 여겨진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타고 따뜻한 이웃사랑의 울림이 잔잔히 퍼져 나가고 있다. 매년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세계 100여 국에서 울려 퍼지는 자선냄비 종소리가 우리나라 명동에서도 100여 년째 울리면서 따뜻한 불우 이웃돕기와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 만들기에 기여하고 있다. 길거리에 자선냄비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이 연말에는 이러저러한 음악회나 발표회 등이 잇따라 열리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살고 사랑하며 수고한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다가오는 새해의 희망과 안녕을 기원하는 음악회가 다채로운 선율을 타고 위로와 위무의 마음으로 흐르고 있다. 음악과 소리는 그만큼 상황과 느낌에 따라 마음을 이완시키며 위안과 치유로 더할 수 없는 감동과 감흥을 주기도 한다. 소리를 재료로 하는 복합적인 시간예술인 음악은 대부분 악기나 음향장비를 이용하여 리듬이나 멜로디, 하모니, 음색 등을 표현하고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게 된다. 다양한 음악의 장르 중 특히 우리 고유의 음악이라 할 수 있는 국악은 한국의 전통음악을 일컫는 말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예술적 표현활동인 전통음악·전통무용·전통연희와 이를 재해석·재창작한 공연예술을 가르킨다. 그중 정악(正樂)·정가(正歌)는 한국 전통 성악곡의 정수이자 조선시대 선비 문화의 미적·정신적 가치를 보여주는 음악 장르로, 고려와 조선시대의 궁중과 상류층에서 연주·향유된 ‘바른 음악’을 의미한다. 정악(正樂) 가운데 대표적인 가곡·가사·시조창을 성악곡이라 하여 ‘정가’라고 통칭하고 있다. 즉 정악정가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 정신과 예술적 미학을 담고 있으며, 전통 성악곡의 미학과 선비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음악 장르로 오늘날까지 전승, 보존되며 그 예술적인 가치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첨단 문명의 정보화로 전통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우리의 뿌리 깊은 소리를 배우고 익히며 전승하는 일은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가곡·가사·시조창에는 선조들의 얼과 풍류가 스며 있고 우리 고유의 정서가 배어 있기에, 정가를 현대적으로 계승, 보급,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참으로 바람직하며 적극 장려해야 되리라고 본다. 그러한 차제에 최근 정가의 맑은 울림으로 겨울의 인사를 나누듯 소리의 향연을 다소곳하게 펼쳐 보인 곳이 있어서 주목된다. 지난 주말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일원에서 포항정가보존회의 정가 발표회가 담담하고 구성지게 열린 것이다. 옛날 선비들이 사랑방에서 거문고나 장구의 장단에 맞춰 가곡이나 시조창을 멋들어지게 불렀듯이, 좁은 실내지만 음향시설 없이 대금을 곁들여 가곡·가사·시조창에 민요까지 다양하고 이채롭게 펼쳐 보여 상당히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방 안에서 그야말로 정가 특유의 방중악(房中樂)으로 부르고 연주하며 춤까지 어우러진 시간 내내 품격과 감흥을 더하며 탄성과 추임새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전통의 가치를 창(唱)과 소리로 담금질하며 소중한 정가의 맥을 이어가는 활동과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12-16

자유를 생각함

하나의 책이 엉성한 대로나마 마무리를 향해 간다. 얼마 전부터 아직 써야 할 게 남아 있다고 느꼈다. 시간이 가면서 그 부담감이 더 커졌다. ‘자유’라는 큰 주제가 남았던 것이다. 생각하면, 자유는 무상으로 주어진 것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도 같다. 꼭 짝을 지어 평등과 함께 소중한 것이라 말하고 그뿐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옛날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이라는 책에서다. 자유는 필연의 인식이라 했다. ‘꼭두서니’에서 알리자딘이라는 염료를 얻을 수 있으면, 우리는 그에 관한 자연법칙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려니 했다. 만약 필연, 곧 자연법칙을 다 알지 못하면 우리는 자연의 ‘노예’인가? 국회도서관에서 대의제에 관한 책을 찾을 때였나? 자유민주주의는 유럽의 사민주의에서도 그 토대를 이룬다고 했다. 사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그러한 이념을 놓고 경쟁하는 근본적 사회정치적 토대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일제 강점기 때 작가 이효석은 ‘산’·'들'·'소라'의 연작을 남겼다. 이중 ‘산’에서 주인공인 머슴 중실은 자신을 핍박하는 주인집에서 나와, 다른 주인을 찾아가지도 않고, 서울 같은 도시로 가지도 않고, 산으로 올라간다. 한 계절을 산에서 보내고 나니 자신도 산의 나무들 같은 나무가 되어간다고 느낀다. 중실은 ‘나무의 자유’를 찾아 ‘사회’를 떠나 ‘자연’으로 향했던 것이다. 이 대목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 밀은 인간은 나무처럼 자유로와야 한다고 말했다. 비유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 여기서 나무는 부자유하지 않다. 자연은 자유의 토대요, 사회는 속박의 조건이다. 만해 한용운의 시 ‘복종’은 ‘자유’를 노래한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이 당신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화자는 그에 대하여 스스로 복종하는 ‘자유’를 누리고자 할까? 이 한용운의 ‘조선 독립의 서’는 이렇게 말한다.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바뀌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 도대체 자기 목숨을 터럭같이 여기게도 하는 이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란 생명체의 본연의 자기 존속의 원리일 것 같다. 생명은 본디 생명력을 추구하고 소모하기를 근본으로 삼는 존재이고, 이 지향은 무조건적이고 원리적이다. 이러한 생명체적 본성을 인간의 언어로 옮긴 말이 바로 자유일 것이다. 자유는 자기 몸과 마음에서 말미암음이며 구속이나 복종조차도 자유일 때만 의미와 가치가 있다. 한국 작가와 시인은 이것을 어떻게 사유해 왔던가? 남은 문제가 너무 크다. 연말인데도 즐겁지가 않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12-15

노무현을 팔아먹는 자들

칼 마르크스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다. 정치가 언제부터 토론의 영역이 아닌 신념의 영역이 되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대신,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먼저 묻는다. 이때부터 정치는 토론이 아니라 충성의 문제가 된다. 이런 상태를 두고, ‘정치가 종교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라고 한다. 정치가 종교처럼 어떤 상황을 비판할 수 없는 영역으로 격리된다고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인가. 정치가 종교가 된다는 것은, 특정 이름과 가치가 질문으로부터 보호된다는 의미다. 보호되는 순간, 사유는 멈춘다. 질문은 곧 불경스러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 진보 정치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점점 이런 성역의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 처음 이 이름이 불리었을 때, 그것은 한 개인의 선택과 실패, 용기와 고독을 함께 떠올리게 했다. 기득권과 싸웠고, 패배를 감수했으며, 권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권력을 불편해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하나의 질문이 아니다, 노무현은 어느새 정의가 되었고, 정의는 진보가 되었으며, 진보는 현재의 특정 정치 세력과 동일시되었다. 이러한 등가와 연쇄가 작동하는 방식이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다. 누군가 현재의 정책을 비판하면, ‘노무현의 가치를 부정하는가? 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여기서 논의는 끝이다. 비판하는 자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문제 제기는 내부 총질이 되고, 자연스럽게 ’입틀막‘으로 가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이 스스로 이 연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종교에서 신이 성스러운 이유는, 비판과 사용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성스러워지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 된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지금 그런 위치에 놓여 있다면, 그것은 그를 존경해서가 아니라, 그를 정치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용 가치가 아닌 교환 가치가 된 것이다. 돈과 권력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성스러워진 이름은 그 이름이 가졌던 좋은 것들을 제거한다. 예컨대, ’왜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나‘ ’왜 권력은 늘 기득권의 편으로 기우는가‘ ’왜 진보조차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가‘ 같은 질문들이 사라진다. 대신 상징만 남는다. 상징은 질문을 요구하지 않는다. 과거의 희생은 현재의 정당성이 되고, 죽은 자의 이름은 살아있는 자의 방패가 된다. 믿음은 반복되지만, 의미는 갱신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이름으로 하는가이다. 이데올로기는 늘 이렇게 작동한다. 거창한 선언으로 출발하지 않는다. 아주 익숙한 동기에서 출발한다. 노무현=정의. 정의=진보. 진보=지금 우리. 이 등가와 연쇄가 완성되면 현재의 권력은 스스로 성찰할 필요가 없어진다. 노무현을 팔아 돈과 권력 장사를 하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은 ’노무현 성전‘을 세워 신도들을 그러모아 기도하게 하고, 헌금을 바치도록 한다. 지금 당장 성전을 허물고, 노무현을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려 놓기 바란다. 정의롭고 당당하게 열심히 일한 인간 노무현을 신으로 격상시켜 죽이지 않길 바란다. 신 노무현이 아닌 인간 노무현의 가치를 이어받고 싶다. 누가 노무현의 바울인가···. /공봉학 변호사

2025-12-15

앙상한 절약 비법

세밑 달 중순 첫날이다. 앙상한 활엽수 가지들이 초겨울 유리알 하늘에 매달렸다. 쓸쓸하다. 정열 불태우던 단풍잎들은 봄에 나서, 늦가을에 떠나는 짧은 생만 살고 가는 기분이 어땠을까. ‘하루살이도 있는데, 세 계절이나 살았으니 여한 없다’라고 할까. ‘나무는 수십 년씩 사는데, 우리는 겨우 세 철을 살게 하다니요. 하느님 너무해요’하고 원망이라도 할까. 생기 찬란했던 봄날도, 성숙 일렁이던 여름철도, 황금 들판 빛나던 가을도 가고 초겨울이 왔다. 지난 한 해 햇볕과 공기와 물로 양분을 만들어 자신도 살고, 나무도 키워온 나뭇잎들. 오늘은 왠지 앙상한 나무가 마치 우리나라 같다. 자칫 나라가 겨울로 갈 수도 있는 요즈음일 테니까. 나라란 나무는 기관, 기업, 단체 등 생산‧유통‧소비자를 망라한 국민일 터.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나뭇잎이 단풍들어 낙엽 지는 건 나무의 ‘생존 전략’이라고…. 광합성의 촉매제 엽록소 결합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 줄기나 뿌리로 비축되며 단풍이 물든다. 활엽수는 잎에서 수분이 증발한다. 겨울엔 뿌리의 수분 흡수가 어렵다. 때문에, 나무는 코르크 세포 장벽 떨켜를 만들어 낙엽 지게 해 ‘수분 절약’을 한다. 곧, 활엽수는 겨울을 ‘앙상한 절약’으로 살아낸다. 결국, 나무는 살기 위해 나뭇잎을 떠나보내고 낙엽은 나무를 살리기 위해 떠난다. 한 해 동안의 행복했던 삶이, 단풍이란 아름다움과 낙엽이란 아쉬움으로 마감되는 자연의 섭리가 깔끔하다. 이론(異論)도, 미련도 없다. 낙엽은 나뭇가지에 새 눈을 남겼고, 나무는 다음 한해살이를 위해 새 눈들의 도입 교육에 들어갔으리라. 지금, 나라에 겨울을 예고하는 징표들이 나타나고 있다. 낙엽 져 가지들이 앙상하듯, 우리 경제란 나무도 그래 보인다. 거침없던 성장의 잎사귀들은 정치 바람에 낙엽처럼 흩어지고, 억지로 버티는 앙상한 가지들만 남았다. 원화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외환 위기 우려가 커진다. 제2의 IMF가 온다는 소리도 떠돈다. 국민연금으로 환율하락을 막겠다는 보도가 국민 심장을 찌른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안’같이 괴상한 법률들이 입법부 단상에 막무가내로 진상(進上)되고, 물가는 돌아서면 오른다. 가계 수입이 같아도 실질소득은 줄어든다. 한미환율협상 후유증으로 비어가는 상가와 공장들이 늘어난다. 나랏빚이 천문학적인데, 위정자는 ‘민생지원금’이란 구실로 빚을 내서 공짜로 나눠준다. 누가 갚으라고···. 각자도생이란 말이 가슴에 박혀도 기댈 언덕이 안 보이는 세태다. 하지만, 앙상한 나뭇가지가 ‘수분 절약’으로 설한풍에 맞서 도생을 꾀하듯, 국민도 ‘절약’으로 닥칠 나라 겨울을 견뎌내야 한다. 정부도 앙상한 가지같이 ‘절약’해야 겨울을 견딜 것 아닌가. 예전 IMF 때, 국민이 근검절약하고 금 모으기 정신으로 외환 위기를 이겨냈듯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엽 졌다’라는 탄식보다 새잎을 피우기 위한 용기와 절약이다. ‘앙상한 절약’이 우리나라에 내려주는 하늘의 든든한 국가 도생 비법일 테니까···. /강길수 수필가

2025-12-15

AI 시대에도 인간의 연주가 사라질 수 없는 이유

인공지능의 작곡·연주 기술이 급속히 고도화되면서 음악 경험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AI 연주는 여전히 리듬게임처럼 딱딱한 감이 있으며 인간 연주의 미세한 뉘앙스와는 구분된다. 그러나 방대한 연주 데이터를 기반으로 템포 루바토, 다이내믹, 터치 등을 학습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간극은 점차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연주를 기계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는 사실 100년 전쯤 ‘자동연주 피아노’에서 시작되었다. 사전에 입력된 데이터를 토대로 특정 연주자의 연주를 그대로 재생하는 방식이다. AI 기술은 이를 넘어, 동일한 악보를 연주할 때 연주자 간 스타일 차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본다. 이론적으로는 고(故)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윤이상의 피아노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전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연주’라는 행위는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일까. 연주의 핵심에는 기교뿐 아니라 해석, 표현, 구조 이해, 소통, 그리고 감정이 포함된다. AI가 구현하는 감정 표현은 대규모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장 그럴듯한 패턴을 산출한 결과이다. 반면 인간의 감정 표현은 삶의 경험과 기억, 신체 감각이 통합되어 나타난다. 예술 행위는 ‘체화된 인지’의 산물이며, 인간 연주의 감정은 호흡과 근육 긴장, 미세한 시간 지각이 함께 작동하는 체화된 정동적 사건이다. 즉 연주자의 삶 자체가 연주에 스며드는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을 떠올려보면 더욱 분명하다. 절망의 시기를 통과하며 탄생한 이 작품은 인간 연주자가 그 서사를 감각적으로 해석할 때 비로소 청중에게 강한 울림을 전달한다. 반면 AI는 감정의 원천이 되는 생애 경험을 가질 수 없으며, 감정을 ‘유사 패턴’으로 처리할 뿐이다. 특히 클래식 음악에서 연주자는 악보라는 추상적 기호를 시간 속에서 실제로 구현하는 능동적 해석자다. 동일한 악보라도 연주자에 따라 음악이 전혀 다른 이유는, 해석이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연주자의 인식과 신체, 경험이 결합된 수행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AI는 해석의 결과를 모방할 수는 있어도, ‘왜 이러한 해석을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 해석의 동기가 결여된 결과만을 산출한다. 음악 경험은 또한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공연 현장에서 연주자와 청중은 동일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호흡과 긴장, 침묵의 밀도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 이는 무대 예술의 핵심 개념인 ‘현존성’과 직결되며, 단순한 물리적 존재를 넘어 상호 감각적 조응 속에서 생성되는 관계적 에너지다. AI는 이러한 상호작용의 구조에 참여할 수 없다. AI 기술은 완벽함을 구현함에 의미가 있지만, 기술적 완성도가 곧 예술적 깊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AI는 인간이 느끼고자 하는 감정을 정교하게 건드릴 수는 있어도 그 감성의 근원은 비어 있다. 그렇기에 연주는 여전히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며, 연주자는 AI 시대에도 마지막까지 남을 예술적 직업 가운데 하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예술의 가치는 인간의 삶과 감정을 비추는 데 있으며, 기술은 그 ‘살아 있음’을 대체할 수 없다. /박정은 객원기자

2025-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