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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빈자의 미학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1968년 같은 해에 ‘이재용’씨와 ‘김기환’씨가 태어났다. 이재용씨는 일류 가정교사를 통해 학업에 도움을 받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아버지의 회사에 입사하고 삼정전자 부회장이 된다. 같은 해에 태어난 김기환은 학교 다닐 때에 반장도 하고 성적도 우수하여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그럴 즈음인 1993년 대학입시 부정사건이 터진다. 부자들이 고액을 주고 대학입학 대리시험을 치게 하고 학력고사 성적을 조작하는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가난하여 대학도 들어가지 못하는 김기환은 부정한 일을 저지르는 부자들의 불공정 횡포에 대한 반감이 극도에 이르게 된다. 결국 지존파를 조직하여 부자들을 골라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사형에 처해졌다. 만일 이재용과 김기환이 바뀌어 태어났다면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예수는 “가난한 자가 복되고 부자는 천국가기 어렵다”고 가르쳤다. 물질을 초월한 디오게네스와 같은 심오한 철학자가 아닌 한 가난을 복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부자가 천국 가기 어렵다고 해서 부자 되길 포기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예수가 말한 가난한 자의 원어는 ‘프토코스’인데 이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외부적 힘에 의하여 재산과 노동력을 상실하여 가난해 진 자를 뜻한다. 이를 성경에는 ‘오클로스’라 했다. 대표적으로 잦은 전쟁으로 인하여 생긴 고아와 과부가 이에 속한다. 원래는 고아와 과부를 형제나 친척 그리고 지파공동체가 돌보게 되어 있지만 이들은 오히려 가난한 자의 가산을 삼키는 자가 되어 버렸다. 잉여자본을 억압과 착취에 사용하고 불공정 경쟁의 도구로 사용하면 불의한 부자요 천박한 자본주의가 된다. 예수는 이런 부자가 천국가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에 아무리 가난하여도 세리와 창녀가 되거나 도적이나 강도가 되지 않고 의롭게 산다면 행복할 것이라 했다. 성경에 나오는 부잣집의 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더라도 도적이나 강도, 세리나 창녀가 되지 않은 거지 나사로가 바로 그이다. 예수는 이가 죽어 천국에 들어갔다고 했다. 예수가 말한 복된 빈자는 의로운 일을 하다가 가난하게 되었거나, 가난하게 되어도 의를 잃지 않고 살아간 사람이다. 아무리 어렵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김기환과 같이 살인강도가 되지 않고 의롭게 사는 자를 향해 예수는 “행복하여라 너희 가난한 자여”라고 했다. 그 말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이들을 행복하게 하라는 실천적 선언으로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빈자의 미학이다.

2021-05-19

윤장대

정미영수필가예천 용문사는 소백산의 깊은 품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바람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단풍나무 사이를 걸으며 생각의 깃을 세운다. 나직이 속살거리는 나무의 이야기를 음미하다 보니, 어느새 회전문 앞이다.용문사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곧장 대장전을 찾았다.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전각으로 그 자체가 보물이다. 대장전 안에는 4개의 보물이 모셔져 있다. 손 회전식 경장인 윤장대 2좌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용문사에만 남아 있고, 목각후불탱,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목각탱화다.법당에서 만나는 할머니의 얼굴은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서렸다. 다소곳이 걷는 모습은 근엄했다. 향을 피우고 꾸밈도 어색함도 없이 자연스레 두 손을 모으고 거듭 절을 했다. 할머니의 작은 체구 어디에서 저런 기운이 솟는 것일까? 오직 부처와 일체가 되려는 몸짓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하다는 듯이 절을 했다.길고 정성스런 절이 끝나면, 불단 양 옆에 놓인 윤장대를 돌렸다. 불교에서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을 윤장대라고 한다. 고려 명종 때 자엄스님이 글을 읽지 못하는 중생들에게도 깨달음의 길에 이르고 소원성취 하도록 안치했다. 경전을 몰라도 책장을 한 번 돌리면 일만 번의 다라니경을 읽은 공덕을 쌓게 된다. 귀중한 문화재이기에 훼손을 우려하여 요즘은 음력 3월 3일과 음력 9월 9일에만 돌릴 수 있다.할머니가 용문사를 찾아온 이유는 윤장대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할머니였다. 경전을 읽지 않고도 부처님께 공덕을 쌓고, 죄와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하니, 각별하게 와 닿았다.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자식을 의지해 살았다. 그런데 육남매 중 세 명의 자식을 앞세웠다. 할머니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자식들이 단명했다며 통곡했다. 자식들의 죽음은 숨기고, 가리고 싶어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원망할 대상이라도 존재한다면 후회하더라도 속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바탕 퍼부을 텐데. 할머니는 슬픔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마주대할 용기를 잃어갔다. 그래서인지 점점 타인 만나기를 꺼려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입지 않으면 좋으련만. 할머니에게 이어지는 모든 관계의 줄 위에서 허둥대며 바투 다가서지 못했다.상실감이 가슴 속에서 똬리를 틀고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자식들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을 가슴으로 삭이니 몸져눕는 날이 늘었다. 할머니의 조그만 등에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업고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더욱 윤장대를 의지해 돌렸다.그러면 어느새 가슴 속에 서린 응어리가 풀렸다고 하셨다. 원망하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생활의 모든 번뇌와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단다.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을 받으니 의심하는 마음 없이 온몸으로 윤장대를 믿고 받아들였다.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벗겨지고 마모된 손잡이에는 할머니의 애절한 손길이 스며있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서 할머니는 정성을 다해 빌었다. 할아버지와 세 아들이 극락에 가서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원했다. 남은 자식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했다.대장전 가득 향내가 자욱하다. 소신공양하는 향을 보니 숙연해지며, 자손을 위해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신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경내를 떠돌던 기원의 말들이 내 두 눈에 닿아 눈물방울로 맺혀 흘렀다. 할머니를 보고 싶어 하는 웅숭깊은 마음 탓에 내 가슴마저 촉촉하게 젖어든다.할머니의 손길을 느끼고 싶어 윤장대를 돌린다. 할머니에 대한 먹먹한 기억과 다정한 추억 인자들이 손잡이에 옹이처럼 내포되어 있는 것만 같다. 품새를 찬찬히 훑어보며 눈에 담고 있는데, 바람결에 목탁 소리가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부처님의 설법인 해조음이 들리는 듯해 두 눈 감고 합장한다.

2021-05-19

물의 말씀

물은 산소와 수소의 결합이다. 산소는 별의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으로 만들어진다. 수소는 빅뱅 때 만들어졌다. 별이 폭발하면서 흩어진 산소가 우주를 떠도는 수소와 만나 물이 된다. 물은 대우주의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가 만들어낸 물질이다.물은 곧 생명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 물이 있다. 인간도 어미의 뱃속에서 물의 막(羊水)에 싸여 신체를 갖춘다. 세상에 태어나서도 물을 떠날 수 없다. 멱감고 물장구치고 고기 잡고 빨래하고, 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다.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하고 그러다가 지치면 냉수 한 사발로 목을 축이고, 가뭄이 들면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 간절히 물을 원하고, 물과 함께 누려온 삶의 정서는 많은 언어를 낳았다.윤슬 - 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물너울 - 넓은 물에서 크게 움직이는 물결.물마루 - 바닷물의 마루터기, 곧 멀리 보이는 수평선의 두두룩한 부분.물무늬 - 물결처럼 어른어른하는 무늬.물이랑 - 물이 넘실거려서 물의 표면이 밭이랑처럼 된 것.물비늘 - 햇빛을 받아 수면이 반짝이며 잔잔하게 이는 물결.물여울 - 강이나 바다에서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곳.물장구 - 헤엄칠 때 발등으로 물 위를 잇따라 치는 일.물거울 - 거울 삼아 모양을 비추어 보는 물.물보라 - 물결이 바위 따위에 세게 부딪치거나 솟구칠 때, 사방으로 흩어지는 잔 물방울.물방귀 - 물밑에 있던 공기가 물 위로 떠오르면서 꾸르륵 꾸르륵하며 내는 소리.나비물 - 세숫대야에 담겨 가로로 퍼지게 끼얹는 물.추깃물 - 송장이 썩어서 흐르는 물.물수제비 - 둥글고 얇은 돌을 물 위로 스치듯이 튀기어 가게 던졌을 때, 생기는 물결 모양.고지랑물 - 썩어서 된 더러운 물.쇠지랑물 - 비 온 뒤 썩은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쇠지랑 빛깔의 낙숫물.햇물, 헛물, 샘물, 맹물, 물결, 물꽃, 밀물, 썰물, 물꼬, 구정물, 도랑물, 마중물, 시냇물, 물거품, 물넘이, 물갈이, 물갈퀴, 물기슭, 물가늠, 물가난, 물두멍, 물들이, 물막이, 물맞이, 물멀미, 물썰매, 물앙금, 물지게, 물참봉, 물타작, 물팔매, 물함박, 물그림자, 물비린내.물을 성분으로 하는 언어는 이미지로 보나 발음으로 보나 어느 명사와 나란히 서도 자연스럽다. 물의 언어는 물처럼 투명하며 어감도 예쁘다. 물기를 함초롬히 머금은 풀잎에서 물방울 하나가 또르르 굴러떨어질 때 수면에 일어나는 물수제비, 한 줄기 바람이 물 위를 쏴아아 미끄러질 때 수면에 반짝이는 물비늘, 물이 벼랑에서 뛰어내릴 때 쏟아지는 물줄기, 물의 변화는 심상에 차오르는 감성의 수위를 찰랑거리게 만든다.물이 있는 풍경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왕버들이 바지를 동동 걷고 뛰어든 주산지의 봄여름가을겨울이 그렇고 거울처럼 하늘을 비추는 백두산 천지가 그렇다. 산 높고 골 깊은 곳마다 소(沼)가 있고 담(潭)이 있어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고 이무기가 승천한다. 물이 있는 자리에는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가 서리서리 서려있다.물의 언어는 표기에 그치지 않는다. 물의 성정(性情)을 느껴보면 말 없는 언어가 흐른다. 스미고 고이고 휘감고 떨어지고, 그 몸짓은 언어라기보다는 실천하며 보여주는 말씀에 가깝다.물은 어디든 가리지 않고 흘러간다. 단단한 바위를 만나도 망설이지 않고 천길 벼랑 아래로 떨어져도 몸을 사리지 않는다. 아무리 비좁은 틈으로도 스며든다. 골짜기든 웅덩이든 함지박이든 자신의 몸을 변형하면서 흐르고 고인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건 아니다. 기름과 만나면 몸을 맞대고 있을지언정, 자신의 성정은 바꾸지 않는다. 자신이 가야할 곳을 알고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경계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며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설파했다.인간에게는 자궁 이전의 물의 기억이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끊어진 탯줄을 이으면서 거슬러 올라가면 태고의 바다에 닿는다. 그 바닷가에는 종의 운명을 가르는 사건이 있었다. 뭍에 올랐다가 남은 자는 진화를 거듭해 인간이 되었고 바다로 돌아간 자는 고래가 되었다. 한 갈래는 땅에 살면서 찬란한 불의 문명을 이루었고 한 갈래는 바다에 살면서 어둑한 원시의 삶을 이어간다.그렇다면, 인간이 행복할까. 고래가 행복할까. 인간은 문명이 주는 편리한 삶을 영위하고 고래는 물이 주는 원시의 삶을 유영한다. 좋은 집, 좋은 옷, 맛난 음식, 삶을 즐겁게 하는 영상과 음악 그리고 지구의 정복자라는 지위, 뭐로 보나 인간이 행복해 보인다.그런데, 물속에는 중력이 없다. 부력이 중력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사는 고래에게는 중력이라는, 몸을 무겁게 하는 낱말이 없다. 중력을 벗어나려 꼬리에 불 달고 솟구치다가 추락하는 망신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고래의 몸짓을 ‘유영(游泳)’이라고 한다. /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5-19

북한 인권 실상을 정확히 알아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북한 인권 문제가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일탈성은 거론되면서도 정작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는 거론되지도 않고 있다. 정부 당국은 북한 인권문제의 제기는 남북 화해나 협상에 지장이 된다고 금기시한 결과이다. 유엔에서는 북한 인권 결의안을 상정하고 있으나 정부는 무관심하고 심지어 기권하는 실정이다. 경찰은 최근 북한 인권 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지난 가을 북한인권 정보 센터가 ‘2020 북한인권 백서’를 발표했다. 이 백서는 정보 센터의 담당자들이 탈북민들과의 개별 면접을 통해 얻은 자료이다. 여기에는 탈북자 4만8천822명에 대한 7만8천798건의 인권 실태가 누적 기록되어 있다. 현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약 3만5천 명이 1건 이상의 북한 인권 문제를 폭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백서에는 북한 주민들의 생명권, 생존권, 존엄성과 자유권, 거주권 박탈 사례가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탈북자들의 북한에서의 경험(40.8%), 목격(33.9%), 득문(18.9%), 확신(0.4%) 등이 증언의 근거가 되고 있다. 탈북민들의 응답이 다소의 확대나 과장은 있었지만 상당한 신빙성을 갖고 있다.북한의 인권 백서에는 인간 존엄성과 자유권 박탈(60.3%)사례가 가장 많았다. 북한에서 자행되는 불법 체포와 구금, 고문과 구타에 이어 수감자에 대한 강간, 공중 매달기, 신체불구 골절, 전기충격, 열이나 추위 노출도 빈번하다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주민에 대한 거주권 박탈(13.8%)은 강제 추방과 이주, 강제 송환, 여행과 이동 제한 등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심각한 것은 생명권 박탈인데 범법자의 즉결처형, 공개, 비공개 처형, 공무원에 의한 개인적 살해, 강간살해 등(10.4%)이다. 북한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울 때는 생존권이 위협받았으나 이제 북한 세습체제의 정당성을 위해 생명권 박탈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북한에서 탈북자의 증가는 북한의 인권 침해가 점점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북한 당국은 세습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체제에 반하는 정치범은 무조건 정치범 수용소에 보낸다. 북한의 소위 특별 독재구역인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 침해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 탈북자들 상당수가 탈북과정에 붙잡혀 노동단련소나 교화소, 심지어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생했던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대도 북한 헌법은 인민의 인권조항이 부활되어 있다.우리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 문제에 보다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독일은 1961년부터 1990년 통일시까지 동독의 인권 상황을 면밀히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도 북한의 인권 문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책을 세워야 한다. 북한 인권의 단순한 폭로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대북 대화나 협상에 현실적인 장애가 된다고 북한의 인권 문제를 우리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021-05-19

5월, 학교에는(下)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5월 들어 주말마다 비가 내리고 있다. 지난 주말도 어김없이 비가 왔다. 5월 비는 양면성을 가졌다. 그래서인지 다른 달에 내리는 비와는 에너지 발현 양상이 다르다. 5월 비는 잠자는 생명을 깨우던 들꽃들의 꽃 잔치는 잠시 진정시키고, 농부들에겐 더 큰 활력을 불어넣는다.최근 들꽃들의 개화 양상이 바뀌었다. 5월 중순 전까지만 해도 들꽃들은 키를 키우는 대신 최대한 땅 가까이서 땅의 숨소리를 들으며, 땅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피웠다. 그런데 5월 중순이 지나면서 키를 키우기 시작한 개망초를 시작으로 들꽃들은 줄기를 뽑아 올렸다.바람에 흔들리는 개망초 모습이 마치 출발을 알리는 신호수의 깃발 같다. 무슨 출발인지 처음에는 감을 잡지 못했는데,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 들판을 보고서야 알았다. 비가 내리는 스승의 날, 필자는 물이 정성스럽게 담긴 들판을 보았다. 그곳에는 비옷을 입은 농부들이 분주하게 논일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개망초가 응원 춤을 추며, 농사의 시작을 알렸다.스승의 날 전까지만 하더라도 들판은 일찍 논갈이를 끝낸 일부 논을 제외하고는 거의 마른 상태로 비어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 상간에 마른 논은 무논이 되었다. 써레질을 끝낸 무논은 흙탕물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하늘의 시간을 기다렸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음을 아는 농부는 하늘의 장단인 비 장단에 맞추어 다음 일을 준비하였다. 그 모습은 또 하나의 자연이었다.철을 거스르는 법이 없는 자연을 마주하면 늘 마음이 환해진다. 5월 들판을 볼 때마다 필자는 옮길 수만 있다면 학교 교실을 5월 들판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교실 혁신을 외치면 외칠수록 이 나라 교실은 자연과 학생,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희망과 학생을 가로막는 더 단단한 벽이 되었다. 학교 교실에는 엄청난 마법이 있다. 그것은 그곳을 들어갔다 나오기만 하면, 그것이 누구든 상관없이 모두 철을 잃고 만다는 것이다.교실 본연의 기능을 잃은 교실은 무법천지다. 이미 우리는 언론을 통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상 초월의 사건을 보았다. 걱정되는 것은 그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는 것과 그 무질서를 바로 잡을 사람과 명분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코로나 19로 그런 교실에조차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실은 기능뿐만 아니라 주인마저 잃었다. 그런데 너무 다행스럽게도 이제 전면 등교의 길이 열렸다. 준비 기간을 거쳐 5월 24일부터는 전교생 등교가 가능해졌다. 학생들이 매일 등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 당연한 일을 두고 우리 사회는 또 걱정과 환영으로 갈렸다. 이번만큼은 걱정보다 환영이 훨씬 더 컸으면 좋겠다. 걱정은 이미 충분히 했다. 아직도 걱정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5월 학교에는 물을 가득 담고 있는 들판처럼 학생들이 가득하길 바라고 바란다. 그 길이 열렸다. 등교 준비 점검표에 들어갈 필수 항목을 제안한다.“교과 진도를 핑계로 학생들이 이해도 안 되는 일방적인 교사 중심 수업 절대 하지 말기!”

2021-05-19

‘슬로운전’ 한달째, 교통사고 크게 줄어들었다

전국 도심지에서 주행 제한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정책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지난달 17일부터 이 정책이 시행되면서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불편하다”는 불만 섞인 반응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보행자 안전을 지키고 교통사고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정책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일단 ‘안전속도 5030’ 정책은 조기에 안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경찰청 분석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경북 도내 이 정책 시행 대상지역에서 사망 등 중상 이상 사상자 비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7.2% 줄었다. 중상사고는 174건에서 69건으로 60.3%, 사망사고는 13건에서 11건으로 15.3% 각각 감소했다. 단속건수는 1천537건에서 398건으로 74.1% 감소했다.매일 도심지를 운행해야 하는 택시, 버스 등 운수업계에서는 이 정책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 차량통행이 뜸한 시간 6차선, 8차선 도로를 시속 50㎞로 주행하거나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날 때 30㎞로 줄여 운행을 하려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한다. 전국택시산업노동조합 포항시지부 한 관계자는 “도로마다 제한 속도가 다르다 보니 직업상 매일 운전을 해야 하는 택시 운전사들은 단속에 걸릴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안전속도 5030’ 정책이 보행자 안전을 지키고 교통사고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반응도 많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 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옹호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정책 시행으로 운전자들이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속도를 줄이거나 멈춰서 확인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이 정책 시행 이후에는 차가 당연히 속도를 줄인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분하게 도로를 건넌다고 한다.주행 제한속도 낮추기는 차량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의 선진 교통문화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필요하다. 운전자 역시 차에서 내리면 자신도 보행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동차 이용의 편의성 때문에 안전이 경시돼서는 안 된다.

2021-05-19

통신비 절감 노하우

전 국민 휴대폰 시대, 통신비 절감 노하우로 ‘선택약정할인’제도를 소개한다. 선택약정할인제도는 휴대폰 개통할 때 지원금을 받는 대신 선택할 수 있는 25% 요금할인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에 의해 지난 2014년 14년 10월 도입, 2017년 9월에 25%로 상향됐고, 올해 3월 기준 총 2천765만 명이 이용중으로 가계통신비 경감에 기여하고 있다.그러나 현재 이 제도를 알지못하고, 이용하지 않는 가입자도 약 1천200만명에 달한다. 단말기 구입 시 지원금을 받지 않는 가입자 외에도 중고폰·자급제폰 이용자도 이용이 가능하고, 기존에 요금할인 및 지원금 약정에 가입했더라도 약정이 만료된 이용자도 가입 가능하며, 가입 시 2년 외에 1년의 약정 기간 선택 가능 등이 있는데 이 사실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아 이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25% 요금할인 이용 가능 여부는 간편하게 조회할 수 있으니 당장 확인해보자. 이용하고 있는 단말기나 PC로 ‘스마트초이스’ 사이트에 접속하면 할 수 있다. 단말기 사용시에는 키패드 화면에서 *#06#* 입력으로 식별정보(IMEI)를 확인한 뒤 스마트초이스 홈페이지에서 요금할인 이용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할인 대상자에 해당되면 SKT, KT, LG U+ 전국대리점, 판매점에서 신청하거나 전화, 홈페이지로 신청하면 된다. 또 약정을 원하지 않거나 단말기 교체, 통신사 변경을 앞두고 재약정이 부담스러운 경우는, 약정 없이도 이에 준하는 요금할인을 제공하는 온라인·무약정 요금제(SKT 언택트 플랜, KT Y무약정 플랜, LGU+ 다이렉트 요금) 이용도 가능하다.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니 눈 크게 뜨고 삽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5-19

신임 총리가 달빛철도 국가계획 반영 나서야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내륙철도 사업이 철도통과 예정지 6개 단체장과 지역정치권의 거듭된 국가계획 반영 촉구에도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서 빠져 실망이 크다. 달빛철도는 1999년 국가기간교통망 계획에 처음 소개된 뒤 2006년 제1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부터 4차례나 진행된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서 연속 배제됐다. 20년 동안 정부의 철도망 구축계획안에서 추가검토 사업으로만 남았다. 이는 사실상 정부가 사업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결론이다. 지난달 22일 발표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에서 배제된 달빛내륙철도는 상반기 중 정부가 확정 고시만하면 앞으로 또다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이 문제 해결을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국가철도망구축계획은 정부가 10년 단위로 수립하는 국가철도정책의 기본골격이다. 4차 구축계획안은 2021-2030년까지 시행될 정부의 철도망 청사진이다. 여기에 달빛내륙철도가 없다는 것은 향후 10년간 대구-광주간 철도건설은 없다는 것이다.달빛내륙철도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100대 국정운영 과제다. 영호남 대통합을 위한 철도며 우리나라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대표적 노선으로 손꼽히는 사업이다.이런 목적이 분명한 사업임에도 낮은 경제성을 이유로 또다시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빠짐으로써 영호남 1천700만 시도민이 받은 실망과 충격은 실로 크다.그러나 영남 출신으로 이 지역의 사정을 잘 아는 김부겸 전 의원이 국무총리 자리에 오르면서 달빛내륙철도의 국가계획 반영이 희망적일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14일 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문 대통령을 만나 달빛철도의 진전을 건의하는 등 여권 내에서도 달빛철도의 국가철도망 구축에 긍정적 신호를 낸 것으로 알려져 아직 한가닥 희망은 있어 보인다.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용섭 광주시장은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김 총리를 만나 달빛내륙철도 건설을 촉구하는 6개 시도지사 건의문을 전달했다. 대구와 광주가 2038년 아시안게임의 공동 유치에도 맞손을 잡았다고 전했다. 달빛철도의 필요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이제 김 총리가 나서 달빛철도의 국가계획 반영에 힘을 보태 오랜 숙원을 풀어야 할 차례가 됐다.

2021-05-19

부부는 기적이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어떻게 만났을까. 저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 만난 그 한 사람. 평생 배필로 살아가는 운명으로 짝지워 졌다는 사람. 가족의 모양이 여러 가닥으로 바뀌어 간다지만, 일단 만나고 나면 헤어지기도 그리 쉽지는 않은 사람. 부부라 부르는 인연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인가. 둘이 만나 이룬 가정을 통해 생기는 자녀들. 부모에게 아이들은 얼마나 큰 선물이며 아이들에게 부모는 기적같은 만남이 아닌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시작하는 그 모든 사건과 이야기들도 두 사람의 만남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세상의 모든 스토리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서 비롯하여 가지를 치고 넝쿨이 된다. 만남이 소중한 만큼 함께 걷는 길도 아슬아슬할지언정 흩어지지는 않았으면 싶다. 그런데 세상이 어디 그렇게 쉬운가.5월 21일. 부부의날이라고 한다. 핵가족시대의 가정과 사회의 핵심인 부부가 화목해야 청소년 문제나 고령화 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법정기념일이라고 한다.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쉬울 수가 없다. 만나는 게 신통한 인연이었겠지만 오래 살아내는 일은 만만찮은 기적인 셈이다. 크고 작은 다툼이 없을 수 없으며 따라오는 갈등이 늘 골칫거리다. 다툴 수 있다는 건 오히려 아직 젊은 표식이라는 게 아닌가. 온갖 정이 다 식은 나머지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부부도 드물지 않다. 젊은 시절 뜨거웠던 사랑은 기억에도 없다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듣자 하니, 세기의 갑부도 등돌린 부부가 되었다는 모양인데, 평범한 엄마와 아빠는 사랑의 끈을 어떻게 묶어낼 수 있을까.러시아 속담 한 자락. ‘전쟁터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 한 마디를 더하고 싶다. ‘아직 기도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기도하라.’ 여지껏 곁을 지켜준 일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가정의 한 축을 든든하게 버텨주기를 기도해야 한다. 당신이 있어 생긴 아이들과 집안의 웃음에 감사해야 한다. 오늘의 행복이 내일에도 이어질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전쟁보다 아니 바다보다 거친 게 결혼이라면, 그 길을 함께 걷는 당신은 용감하고 대단한 사람이 아닌가. 행복한 부부는 ‘사랑의 달인’이 아니라 ‘생활의 달인’이라고 한다. 부부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서로를 챙겨주는 게 아닐까.부부의날을 지어낸 이에게 고맙지 않은가. 자칫 잊고 지낼 뻔한 무덤덤함을 깨워준 수고에 고마울 따름이다. 처음 만났을 적에는 닭살 돋는 말들을 술술 잘도 하더니만, 일주일 내내 몇 마디도 안 건네는 게 중년 부부의 일상이라고 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고 신경끄는 게 상책이라면 같이 살아야 할 까닭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억지로라도 서로 응원가를 불러주었으면 싶다. 그동안 고마웠노라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혹 노여웠으면 이젠 풀어도 보자고. 정말로 섭섭했으면 이제부턴 이해도 해 보자고. 미안했다고. 고마웠다고. 부부는 기적이다.

2021-05-19

광활한 풍경에 한 개의 점으로 남은 사람

‘노매드랜드’는 관람자의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읽힌다. 무너진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치유되는가의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사회의 중심에서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밀려난 이들의 삶의 궤적으로 볼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 무너진 이들의 떠도는 삶에 시각을 맞출 수도 있다. 시각차이에 따라 관람객의 시선은 풍경, 자유, 치유, 연민, 고독으로 이어진다. 아예 국내 개봉 포스터에는 “영원한 작별은 없어요” “낯선 길 위에서 만난 기적같은 위로’라고 시각을 고정시키기도 한다.이것은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처럼 그들이 길 위의 삶을 살아가는 저마다의 이유만큼 다양한 시각과 그에 따른 시선이 머무르고 떠나는 길 위의 카라반처럼 얽힐 수 있는 영화다.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주(定住)한다. 집과 일터,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일정한 반경 속에 머무르며 살아간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다른 지역, 다른 도시, 다른 국가로 이동을 하지만 이는 더 나은 정주 조건을 위해서이다. 정주민의 위치에서 영화 ‘노매드랜드’에 나오는 유목민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시각은 ‘자유로움’이다.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 풍요를, 이동하고 머무름에 있어서 정주민보다 덜 제약적이며, 타인의 의지보다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이 더 넓은 이들.정주민이 바라보는 유목민의 삶은 부러움과 함께 정주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불안감이 함께 한다. 분명히 유목민은 정주민보다 많은 자유라는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에 비례해서 상대적인 불안감과 쉽게 예측되지 않는 행로가 그들 앞에 놓여 있다.정주민은 ‘일탈’ 이후에 돌아가서 해결해야 할 숙제를 남겨둔 존재다. 매주 찾아오는 주말과 휴일, 휴가가 끝나고 다가오는 ‘일상의 복귀’가 무겁게 짓누르는 이들이다. 유목민은 남겨둔 숙제를 떨쳐내고 현재, 곧 지금에 머무르는 존재들이다.‘정주’와 ‘유목’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의 선택이다. 영화 속에서의 시작은 정주하던 이가 어떻게 유목의 길로 들어섰는가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인 유목하던 이가 다시 정주하는 선택을 보여 주기도 한다. 선택의 이유는 있지만 논쟁하지 않는다.영화 속 대사 “집은 허상인가 아니면 마음의 안식처인가?”에서 정주와 유목을 가르는 상징적인 아이콘인 ‘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는 단정짓지 않는다. 집은 누군가에겐 허상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안식처일 수도 있다.영화에 등장하는 밥 웰스(15년째 유목생활을 하고 있는 실존인물이며 유목민들의 캠프행사를 이끌고 있다)는 “내가 답을 줄 수는 없지만 여기서 답을 찾기를 바랍니다.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서”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면 이곳에서라도 답을 찾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선택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유목론(노마디즘)’을 통해 탈근대적 사유를 하고자 했던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주저 ‘천 개의 고원’에서는 ‘유목주의’를 저항과 창조의 양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미 굳어진 관계, 즉 정주의 삶이라는 관계를 뚫고 나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유목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유목은 정주처럼 고정된 관계와 질서를 거부하며 지배적 다수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소수로서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영화 속에서 ‘펀’을 바라보는 정주민의 시선은 동정에 가깝다. 경제적인 문제와 불안정한 삶에 대한 애정과 우려의 표시다. 그 시선 속에서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동반된다. 하지만 영화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적어도 영화 속 유목민들은 어쩔 수 없이 중심에서 이탈된 비자발적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그린다.영화의 시작은 ‘펀’의 짐을 창고에 둘 것과 작은 밴에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여정 속에서 물건들은 점점 줄어든다. ‘펀’의 여정은 비움의 과정이 된다. 영화 마지막엔 창고에 쟁여 두었던 살림살이들까지 나눠주고 그녀가 살았던 마을과 빈집을 둘러보고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정주민에서 시작해 유목민의 삶을 살아가다가 좀 더 깊은 차원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정물과도 같은 삶을 살다가 자연의 풍경처럼 머물더니 마침내 광활한 풍경에 한 개의 점으로 남길 각오한 외로운 순례자의 모습으로 남는다./영화기획사 엔진42 대표

2021-05-17

유적에서 찾은 신라의 나무

나무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사용하기 적당한 무게와 크기를 가지며, 다른 재료에 비해 다루기 쉬워 많이 이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또한 나무는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므로 식기, 도구와 같은 작은 유물부터 대형 건축물이나 구조물에 이용할 수 있는 재료로서 유일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무는 잘라서 이용한 후 새로 심으면 다시 이용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나무를 잘라 톱, 도끼, 낫, 칼 등의 여러 도구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생활용기와 제작에 필요한 도구, 그리고 주택, 다리 등 건축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건축부재 등 나무를 이용하여 인류의 행위가 남겨져 전해지거나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을 목제유물(木製遺物)이라 한다.목제유물의 자연과학적인 분석은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되는 유물의 형태와 기능에 대한 것 외에도 그 나무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환경적 의미와 재료로서 선택된 의도와 같은 정보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자연과학적 성과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인과 옛 환경 복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목제유물은 나무를 구성하는 세포를 관찰하여 어떤 나무인가를 밝혀낼 수 있다. 이렇게 밝혀진 사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어떤 목적에 어떠한 나무를 선택해 이용했는지 알 수 있다. 나무는 생태적으로 적합한 환경에서만 생육이 가능하므로 출토된 유적의 당시 환경과 비교하면 나무 또는 목제유물의 교역(交易) 등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무가 자랐을 당시 기온, 강수량 등 기후의 변화는 나이테를 통해 다양한 생장패턴으로 나타난다.이렇게 만들어진 나이테를 분석하면 나무가 살아있었던 연대, 기후 등을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나무의 껍질인 수피(樹皮)가 붙어있을 경우, 나무가 잘려진 시기, 계절까지 알 수 있다. 자연목일 경우, 죽은 원인이 되는 사건(산불 등)이 일어난 계절을 알 수 있다. 또한 나이테의 폭, 동위원소 분석 등을 통해 나무가 자랐던 당시 기후(강수량·기온)를 복원할 수 있다.경주 월성 성벽과 해자(垓字)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목제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해자에서 다량 출토되고 있다. 이는 해자가 갖는 독특한 환경 때문이다. 물이 차 있던 해자는 일종의 저습지(低濕地)로 다른 곳보다 지면이 낮아 항상 물이 고여 축축한 상태가 유지되는 곳이다. 나무는 유기물질로, 시간이 흐를수록 곤충, 세균, 화학적 변화 등으로 분해되고 파괴되어 그 형태를 잃고 결국에는 없어진다.그러나 저습지에서는 흔히 뻘층 또는 진흙층에 의해 밀폐된 환경이 형성되어 분해활동을 제한하는 저산소 또는 무산소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는 일반적인 환경보다 분해속도가 더뎌지며, 나무의 주성분이 분해된 공간에 물이 채워져 목제유물이 묻힌 당시의 모습에 가깝게 남아있게 된다.월성의 발굴조사로 출토된 목제유물의 분석 결과 대부분은 참나무, 밤나무 등 활엽수로 밝혀졌고, 침엽수로는 소나무가 확인되었다. 확인된 활엽수 중 대부분의 수종은 참나무 중 우리에게 익숙한 상수리나무가 대부분이었다. 소형 목제유물의 경우, 소나무와 상수리나무의 비율이 비슷하게 분석됐다.이는 활엽수에 비해 침엽수인 소나무가 섬세하게 가공하기 쉽고 건축부재와 같이 많은 하중에 버티거나 큰 강도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해자에서 출토된 목제구조물 중 나무기둥, 나무판재 등의 제작에는 대부분 활엽수가 선택적으로 사용됐으며, 특히 상수리나무를 많이 사용했다.남태광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따라서 월성 성벽과 해자의 목제구조물이 만들어진 당시 주변지역은 온난하고 다습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상수리나무가 생육하기 좋은 환경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강도가 커서 자르기가 힘든 상수리나무를 자르고, 가공하는 도구나 기술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뛰어났을 것이다.현재 출토된 목제유물의 수종분석 등 일부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향후 출토된 유물의 도구흔적, 가공방법, 크기, 형태 등의 형태적인 분석을 통하여 삼국시대 신라 건축에 대한 자료를 확보할 예정이다.그리고 목제유물의 나이테 폭과 산소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연대분석 및 고기후 추정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실시하여 당시 월성 주위의 식생을 복원함에 있어 보다 많은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1-05-17

육군 아미타이거

새 군가의 중요성을 말한 남영신 육참총장. /연합뉴스“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군가 ‘전선을 간다’다. 이 곡이 ‘최후의 5분’과 함께 군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군가인 이유는 간단하다. 노래가 좋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뮤지컬의 개척자이자 피아니스트로도 활동한 작곡가 최창권의 곡에 영화기획자 우용삼이 가사를 붙였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시작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도입부를 지나 야수의 함성으로 포효하는 클라이맥스까지, 기승전결 구조의 선율에 서정적이고 또 격정적인 가사가 어우러져 명곡이 됐다. 부르다보면 가슴이 벅차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나는 아직도 가끔 군가를 부른다. 특히 중요한 일을 앞뒀을 때, 이를테면 소개팅 가는 차 안에서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오늘을 산다.…” ‘멸공의 횃불’이라든가 “높은 산 깊은 물을 박차고 나가는 사나이 진군에는 밤낮이 없다…” ‘진군가’를 목 터져라 부르면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면서 남성성이 극대화된다. 그러면 자신감이 생겨 말도 잘하고, 상대에게 당당한 인상을 준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삶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도 모르게 군가를 흥얼거리며 마음을 다잡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군대에서 군가 부르는 게 유쾌할 리는 없지만, 그마저도 멜로디가 후지거나 노랫말이 저질이면 정말 부르기 싫다. 군가는 병사들의 사기와 연대감을 고양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부르는 노래다. 때문에 역동적인 4박자 행진곡풍이 대부분이다. ‘푸른 소나무’, ‘조국이 있다’, ‘육군가’ 등이 명곡으로 꼽힌다. 지난 2011년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전사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영결식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벌겋게 물든 눈을 섬광처럼 번뜩이며 ‘나가자 해병대’를 합창하는 장면은 피를 끓게 했다.최근 육군이 신곡을 발표했다. 제목은 ‘육군, We 육군’이다. 이 곡은 현재 복무중인 장병들에게 부끄러운 ‘흑역사’를 생성해줄 가능성이 높다. 뜬금없이 영어를 넣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더니 노랫말은 더 해괴하다. “육군 아미타이거 육군 육군 육군 Go Warrior Go Victory 육군 육군 육군(…) 워리어 플랫폼 최강의 전사 AI 드론봇 전우와 함께…” 이게 대한민국 육군 군가인지 ‘파워레인저’나 ‘후레쉬맨’ 따위 아동용 액션 영화 주제가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가사도 그렇지만 행진곡과는 거리가 먼, 쉼표와 셋잇단음표가 자주 등장하는 지루하고 난해한 멜로디도 괴이하다. 태평소와 꽹과리를 넣은 국악풍 멜로디에 Warrior, Victory 같은 영어 가사가 얹어져 부조화를 이뤘다. 따라 부르기도 어렵고, 따라 부르고 싶지도 않다. 군가는 부르면 기운이 나야 하거늘 ‘육군, We 육군’은 한 소절 부르자마자 자괴감이 밀려온다. 네티즌들은 “있던 애국심도 사라진다”, “전시에 부르면 총 맞아 죽기 전에 웃겨 죽겠다”라며 혹평 일색이다.지난달 22일 육군 최고 지휘부 회의에서 남영신 참모총장은 “새 군가를 기도문처럼 암기하고, 부대마다 가창 점검을 해 잘하는 부대에 포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장병들은 이 노래를 입이 닳도록 불러야만 한다. 배식은 부실하고, 코로나19 대응도 엉성한 마당에 창피한 노래까지 불러야 하는 장병들이 불쌍하다. 사기 떨어지는 소리가 철책을 넘어갈까 걱정이다.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3사관학교에서 장교 임관훈련을 받을 때, 음악을 전공한 동기 김경록 군이 작곡하고 내가 작사한 ‘9중대가’는 힘찬 4박자 행진곡이었다. “우리들 가슴속 불꽃은 팔월의 태양보다 뜨겁고 우리들 외치는 함성은 폭풍 속 천둥보다 우렁차. 폼생폼사 최강 9중대! 날개를 펼쳐라. 너와 난 혼자가 아니야. 우린 영원히 함께야. 폼생폼사 최강 9중대! 더 크게 외쳐라. 우린 절대 포기하지 않아. 나가자 최강 9중대. 강하자 최강 9중대!” 일개 사관후보생 둘이 만든 이 군가를 모든 중대원이 즐겨 불렀다. 부르면 전우애가 솟았다. 국방부는 저작권료를 내고 정식 군가로 채택하는 게 어떨까. ‘9중대’를 ‘해병대’라든가 ‘수색대’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 “육군 아미타이거”보다는 훨씬 낫고, 박목월이 작사한 ‘전우’에 이어 또 한 곡 시인의 명군가가 될지 모른다.

2021-05-17

보고 듣고 만지는 요즘 장난감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팝잇 푸시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팝잇 푸시팝은 실리콘 틀 위의 튀어나온 반구를 손가락으로 눌러 반복적인 동작을 하며 즐기는 손 장난감이다. 외형 또한 실리콘 얼음 틀 같은 단순한 모양인 데다 누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놀이 기능도 없음에도 힘을 주어 구멍을 누르는 촉감과 소리는 특유의 쾌감과 묘한 중독성을 이끌어 낸다. 멍하니 포장용 에어캡을 터뜨린다거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손바닥 안에서 호두 알을 굴리던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팝잇 푸시팝은 색깔이나 모양, 크기도 다양하다. 휴대하여 플레이 할 수 있는 미니 버전부터, 가방에 달 수 있는 열쇠고리 버전, 기존 사이즈보다 2~3배의 몸집을 자랑하는 빅 버전도 있다. 구매처도 학교 근처 완구점이나 인터넷 문구 쇼핑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가격도 천 원에서 만원 안쪽으로 저렴하다.현재 팝잇 푸시팝은 유명 인터넷 문구 쇼핑몰에서 전체 장난감 베스트 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반에서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라니 말 다 했다. 유튜브에선 팝잇 푸시팝으로 재밌게 노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의 조회 수가 272만 회가 넘을 정도다. 여기에 단순 구매 후기나 플레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풍선이나 종이박스, 물감을 이용해서 직접 만들어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한다. 팝잇 푸시팝을 직접 DIY 해서 만드는 영상은 조회 수 250만 회를 자랑한다.이런 종류의 장난감을 ‘피젯 토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피젯 토이는 성인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피젯 토이는 fidget(꼼지락거리다)+toy(장난감)의 합성어로 손장난하는 장난감을 뜻한다. 단순 행동 반복으로 인해 안정감을 얻고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인데, 그도 그럴 것이 피젯 토이는 처음 1990년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위해 만들어졌다. 한 자리에 앉아 집중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개발한 것으로 ADHD 환자들의 집중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손가락으로 튕기면 회전하는 피젯 스피너, 조이스틱을 돌리거나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워 돌리는 피젯 링, 말랑한 재질의 스트레스 볼 등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대표적으로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피젯 큐브는 주사위 모양으로, 볼펜의 딸깍 소리가 나는 버튼이나 돌릴 수 있는 롤러, 조이스틱, 회전판, 스위치 등이 각 면에 달려 있다. 이걸 무의식적으로 반복 행동하며 일정 클릭음에 안정감을 느끼고, 정교하고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며 심리적인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피젯펜은 공부하거나 회의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펜을 돌리거나 손을 끊임없이 만지고 움직이는 등의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펜 전체를 구부리거나 뚜껑에 달린 동그란 볼을 떼는 등 손을 계속해서 움직이는 동안 창의적인 생각을 고안해낼 수 있다고 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심지어 antsy labs에서 나오는 피젯 큐브는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다. 피젯 토이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많은 페이크 제품이 만들어졌는데, 국내 또한 페이크 제품을 파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정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해외 배송이나 중고 거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빠르게 품절 되어 쉽지 않다.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집중하기까지 힘겨운 사람, 손톱을 자주 깨물거나 입술을 뜯는 사람, 정적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피젯 토이는 단순한 장난감만은 아닐 것이다. 직접적인 촉감과 소리로 인해 스트레스와 강박을 풀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며, 스마트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소하고도 새로운 재미가 되어준다. 피젯 토이는 처음 초중고 학생을 위주로 유행했지만 나아가 취업준비생, 수험생, 회사원들의 인기 장난감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의 자리에서 느끼는 학업 스트레스나, 극심한 경쟁으로 인한 괴로움 등 누군가의 삶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21-05-17

행복의 메아리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산에는 메아리가 산다. 골이 깊거나 뫼가 높으면 메아리가 더 많이 울린다. 산림이 울창할수록 메아리가 더욱 짙푸르고 계곡물이 맑을수록 메아리가 한결 청아하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잎새 소리도 어쩌면 산의 울림, 자연의 메아리가 아닐까 싶다. 자연은 시시때때 빛깔과 향기로 무언의 형체를 드러내고 소리와 울림으로 묵언의 수행을 일삼는 듯하다. 메아리를 머금은 산은 천년만년 무덤덤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만물의 변화무쌍함을 품으며 내밀한 울림으로 웅숭깊음을 채워가고 있다.사람에게는 행복의 메아리가 있다. 감사와 기쁨과 만족에서 비롯되는 행복의 메아리는 늘 가까운 곳에서 피어나고 있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행복의 메아리를 듣거나 울리지 못하고 엄벙덤벙 살아가는 듯하다. 작은 만족이나 배려와 존중, 이해와 공감, 도덕과 윤리, 사유와 교감, 역할과 기여, 노력과 성취 등 행복의 원천은 결코 어렵거나 거창한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듣거나 느끼고 만들어가는데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색하기만 한 것 같다. 자연과 멀어져서 부자연스러움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행복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모든 일들은 마음먹기에 달렸듯이,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생각이 결정되고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같은 일이나 현상을 두고도 생각이나 관점에 따라 인지하고 판단하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음은 각자의 마음자리나 마음씀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 (一切唯心造)는 말처럼, 행복이나 불행도 결국 자신의 마음자락에서 결정되고 생겨나는 것이다.즉 마음의 밭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행복을 가꾸고 환희로 키워내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코로나19의 터널이 행복의 메아리를 멎게 한지 2년째, 언제 끝날지도 모를 환난에 여전히 일상을 잠식 당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메말라가는 코로나블루에 단비 같은 백신접종이 시작된지 수개월 째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각자 자기 자신을 잘 돌보는 마음 챙김을 잘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른바 ‘마음 챙김’이란 현실에 처해진 자기연민으로 마음을 다잡아 어렵고 불편하고 힘겨움에도 차분하고 신중하게 자신과 주변을 성찰하여 긍정과 능동의 마음근육을 키우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고통과 괴로움을 구분하여 참고 줄일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로 희망을 싹틔워 활로를 모색하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을까?평온한 마음과 자기확신의 샘에서 행복의 물방울이 샘솟아 날 수 있다. 조급하고 불안함, 시기나 짜증에서는 살핌의 여유도 챙김의 따스함도 스미기 어렵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밝은 표정과 따뜻한 말 한 마디, 진심 어린 가슴과 다정한 손길로 다독이고 격려하는 마음결에서 행복의 여울이 잔잔하게 흐를 것이다.산에 옷을 입히듯 나무를 심고 가꾸면 메아리가 살아나듯이, 사람에게도 긍정과 배려의 몸짓, 칭찬과 감사의 표현을 켜켜이 쌓아가면 속속들이 행복의 메아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행복도 결국은 자신이 하기에 달린 미지의 선물꾸러미다.

2021-05-17

부부로 사는 참인생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부부(夫婦)란 결혼한 남녀로 남편과 아내를 말한다. 순수한 한국어로 가시버시라는 말로 부부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다. 따뜻한 마음, 진실한 마음, 아껴 주는 마음, 서로 보듬어주고, 나에게만 잘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 좋은 음식을 당신 앞으로 밀어 놓는 것, 이것이 부부이다. 부부로 살다 보면 미움, 아픔, 사랑을 함께하는 것이 부부의 정이다.부부 사이에 싸움이 없을 수는 없다. 필자도 지금보다 젊은 시절에 부부 싸움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필자보다 아내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면서 부부 싸움은 없다. 그래서 아내와 일상생활 중에 규칙적으로 같이 하는 취미활동이 있어야 한다. 요즘은 함께 걷는 운동을 한다. 전국 지도를 펼쳐 놓고 함께 걸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걷고 온다. 너무 행복하다. 아내가 좋아하는 아주 작은 것 핫도그를 먹고 온다. 작은 행복은 더 큰 기쁨으로 돌아온다.그리고 어떤 일에 대해 너무 심각하지 않은 자세를 취하고 유머있게 대처하고 건강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아내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공감하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 역지사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부부 싸움을 하더라도 욕하지 않고 상처 주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 사과하고 책임을 지는 태도도 필요하다.부부의 날은 1995년 5월 21일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을 담아 이날이 지정되었다. 세계 최초로 경남 창원에서 권재도 목사 부부에 의해 시작 되어서 2003년 민간단체 ‘부부의 날 위원회’가 제출한 ‘부부의 날 국가 기념일 제정을 위한 청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결의되면서 2007년 법정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둘이 만나 하나처럼 산다고 21일이 부부의 날이다. 아직 부부의 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부부의 날을 통해 배우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앞으로도 건강한 가족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갈등은 사소한 데서 연유한다. 사소한 말투나 행동을 통해 사이가 틀어지는 부부는 상호 배려를 통해 풀어나가는 게 좋다. 함께 서로 사랑하는 날 사랑하는 부부가 되자.요즘은 부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처럼 사는 방법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체적인 각자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상호 심리적 물리적 공간을 존중하고 사는 것이 행복한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여인처럼, 때로는 부부처럼, 때로는 절친처럼 살아가는 새로운 부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정답은 없다. 존중하고 신뢰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이번 5월 21일 부부의 날은 아주 작은 것 하나씩 원하는 것을 들어 주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퇴근할 때 언제 집에 들어가는지 알리는 전화 한 통이 더 좋은 부부 관계에 도움이 된다. 작은 일이 큰 기쁨을 가지고 온다. 마지막으로 늘 서로를 유혹하는 태도를 가지고 살자. 여보 사랑해요. 부부로 사는 참 인생을 느끼며 살자.

2021-05-17

도지코인 열풍

도지코인은 지난 2013년 12월 6일, IBM 출신 빌리 마커스와 잭슨 팔머가 만든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다. 도지 코인이란 이름이나 로고는 Shibe doge 밈에서 따왔다.도지 코인은 원래 비트 코인을 위시한 암호화폐 시장의 열풍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난식 화폐다. 그래서 도지코인은 실험성과 재미를 위해서 운영되는 측면이 강했다. 이 코인의 가장 큰 특징은 공급 정책이 무제한이란 점이다. 이에 따라 출시하고 약 2년이 흐른 2015년엔 1천억번째 코인이 발행됐고, 4년이 흐른 2019년도엔 그 규모가 달에 닿을 정도가 됐다. 그렇기에 도지코인의 가격은 매우 낮게 책정됐다. 일례로 대다수의 암호화폐가 거품이 꺼지고, 유일하게 30일 동안 가격이 160%나 오른 2018년 하반기에 5원, 2년이 지난 2020년 1월엔 약 3원으로 거래됐다.도지코인의 가치가 껑충 뛰어오른 것은 일론 머스크의 발언 때문이다. 올 4월초까지만 해도 100원도 안됐던 도지코인이 일론 머스크가 도지코인에 힘을 실어주는 말을 계속하자 800원까지 올랐다가 방송에서 부정적인 말을 하자 400원대로 추락했고, 그후 도지 코인을 스페이스X 계획에 지불 수단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히자 다시 700원대로 올랐다가 현재는 600원대에 머물고 있다.국내에 도지코인 열풍이 분 것은 삼성전자에 다니던 사람이 도지코인에 투자해 400억이 넘는 돈을 갑자기 벌면서 퇴사했다는 놀라운 뉴스가 전해지면서부터다.급기야 영끌대출을 해 가상화폐 투자에 나선 이들의 소식이 들리고 있다. 가상화폐로 벼락부자가 되겠다는 꿈은 도박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얘기다. 과유불급이다. 지나친 욕심은 반드시 화를 부르기 마련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5-17

2030세대의 반란에 응답하라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그것은 반란이었다. 정부 여당의 무능과 실정, 오만과 위선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2030세대의 분노가 4·7 보선에서 무섭게 폭발했다. 그 충격으로 ‘멘붕’이 된 문재인 정권은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 여당은 청년들의 ‘이유 있는 반란’에 대해 성실하게 응답해야 한다.작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2030세대가 가장 큰 비토(veto)그룹으로 돌변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대답은 명쾌하다. 경제정책의 실패로 집값은 폭등했고, 부의 양극화를 구조화시킴으로써 ‘미래세대의 미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딸은 ‘용’을 만들기 위해 온갖 부정을 저지르면서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에서 신음하는 청년들에게는 ‘가재·개구리·붕어’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 위선에 참을 수가 없었다. 3포·5포·7포로 좌절된 청춘들을 위해 본질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돈 몇 푼 던져주고 결혼과 출산을 지원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미래에 희망이 있어야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할 것이 아닌가?이처럼 무능하고 위선적인 정권에 자신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청년들은 ‘고위험·고수익’의 주식과 가상화폐에 눈을 돌리고 있다.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 청춘들이 ‘폭탄 돌리기’와 같이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투기판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도박판에 ‘빚투’하는 이중적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위험한줄 알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계층 사다리’를 건널 수 있다고 항변하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미 군 병영에서도 주식·코인 광풍(狂風)이 불고 있다니 상황이 심각하다.정치권은 2030세대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들은 상황과 이슈에 따라서 가장 합리적 선택을 하는 ‘스윙보터(swing voter)’들이다. 정권이 잘못하면 돌아서는 속도가 부모세대보다 훨씬 빠르다.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며 현실적으로 판단한다. 사고는 매우 유연할 뿐만 아니라 정치성향도 다양해서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회초리를 들 수 있다.따라서 노회(老獪)한 기득권의 시선으로 이들을 가르치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역사 변화의 추동력은 맑고 깨끗한 청년들에게 있기 때문이다.이제 정치권이 답해야 할 차례다. 특히 국정을 책임진 정부 여당이 진솔하게 응답해야 한다. 그 전제는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다. 이번에도 ‘영혼 없는 반성’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면 내년 대선에서는 정권이 넘어가게 될 것이다. 투전판에 뛰어든 청년들을 비난하기 전에 그렇게 만든 책임을 통감하고 미래가 있는 삶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2030은 취업·주거·결혼·육아·교육 등의 문제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 3년 사이에 정신과 병원을 찾은 2030이 6배나 급증했다. 이 심각한 고통에 ‘포퓰리즘 진통제’ 처방을 해서는 안 되며,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정교한 수술법이 시급히 개발, 적용되어야 한다.

2021-05-17

바이오랩 유치에 거는 포항시민의 기대 크다

이강덕 포항시장이 지난 주말(14일)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을 만나 ‘K-바이오 랩센트럴(바이오 랩)’이 포항에 들어서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다. 이 시장은 이 자리에서 포항은 이미 바이오 벤처·스타트업 육성과 글로벌 진출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 등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점을 일일이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12일 포항을 비롯해 대전과 인천, 청주(오송)가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 바이오 랩의 후보지 모집공고를 냈다. 바이오 랩은 실험시설, 사무 공간, 네트워킹 등을 제공해 바이오분야 벤처·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사업이다. 포항시는 이미 지난달 6일부터 ‘바이오 랩 유치 추진위’를 조직해서 조직적인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당시 유치위 출범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 김무환 포스텍 총장, 장순흥 한동대 총장, 정해종 포항시의회 의장, 장상길 경북도 과학산업국장을 비롯해 포항지역 의료기관장, RD기관장, 바이오기업 대표 등이 주요위원으로 참석했다. 추진위는 이와함께 정보의 상호 공유와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실무추진단도 구성했다. 실무추진단에는 포스텍 생명공학연구센터, 한동대 생명과학연구소, 포항테크노파크, 포항지질자원실증연구센터, 바이오 기업 대표 등이 참여하고 있다.유치위나 실무추진단 구성에서 보듯이 포항에는 산·학·연·병원에 걸쳐 바이오 벤처·스타트업을 위한 다양한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포항의 최대강점은 교육이 연구로 연결되고, 연구가 산업으로 발전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제넥신 같은 바이오벤처 40여 개가 활기있게 운영되고 있고, 지난해에는 대형 제약회사인 한미사이언스와 3천억 규모의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지난해 준공한 바이오오픈이노베이션센터(BOIC)는 바이오 랩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랩 센트럴의 실질적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최적지라고도 할 수 있다. 바이오 랩이 미래도시의 성장동력과 연결돼 있는 만큼 각 지자체들은 현재 치열한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력 등 외부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신중하고 객관적인 입지 선정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2021-05-17

동서교통망 구축에 한 목소리 내는 지자체들

지난 14일 경북도 의회와 전라북도 의회는 양 지역을 연결하는 SOC 사업의 조기 건설을 촉구하는 공동건의문에 서명하고 두 지역은 앞으로도 협력과 상생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약속했다. 경북과 전북을 잇는 전주-김천간 철도사업과 전주-무주-성주-대구간 고속도로 건설 사업은 두 지역의 오랜 숙원 사업이다. 그러나 두 SOC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에 선정되지 않거나 비용편익분석의 벽을 넘지 못해 국책사업에서 번번이 제외됐다. 대구-광주간 달빛내륙철도 사업처럼 경북과 전북을 잇는 동서교통망 역시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정부의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되지 못하고 십수 년을 허송세월하고 있다.같은 날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경북도와 충북, 충남 등 3개도 12개 시군 시장군수와 국회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중부권 동서횡단철도의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반영을 촉구하는 결의대회가 열렸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는 경북울진-봉화-영주-청주-서산을 잇는 330km 길이의 철로로 3조7천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된다. 이날 엄태항 봉화군수는 “봉화군이 지방소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SOC 사업뿐”이라고 말했다. 달빛 내륙철도와 전주-김천간 철도사업, 또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등은 이제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지역의 절박한 숙원사업이 됐다. 숨이 목 턱까지 찬 사업이다.올해 국가사업에 반영되지 않으면 이 사업은 국가 심사기준에서 영원히 멀어질지도 모른다. 인구와 경제력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마당에 허약해진 지방의 경제구조로서는 비용편익분석의 벽을 넘기란 불가능하다.대구-광주간 달빛내륙철도가 그러했고 김천-전주간 철도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도 마찬가지다. 지방의 초라한 현실을 정부는 국토균형개발이라는 안목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기존의 잣대로만 저울질한다. 6월 확정되는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지방의 단체장들이 이처럼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은 지방의 사정이 더 참을 수 없이 심각해진 탓이다.수도권 일극체제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자꾸 수도권으로 정책을 집중하는 국가사무의 모순에 허탈감만 커진다. 자치단체가 공동 대응에 나서는 시대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2021-05-17

건강힐링도시 문경에서 새로운 도전을

고윤환문경시장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으며 모든 산업을 비대면, 뉴노멀로 변화시켰다. 교육 현장도 비켜갈 수 없었다. 친구들과 등교해서, 책상에 앉아 선생님과 대화하며, 공부하던 학교생활도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고, 학교를 마음대로 갈수 없는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격일제, 격주제로 저마다 온라인상에서 선생님을 만나며 각자의 집에서 공부하고 있다.글로벌로 연결되어 있던 세상은 자국 중심으로 변해가고, 재택근무라는 커다란 근무형태의 변화는 대도시 중심의 세상에서 벗어나 지역중심, 그중에서도 일과 삶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자연친화적이고 청정한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직장인들은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었고 자연스레 답답한 도시공간에서 물리적 공간이동이 가능해지며 전원생활에 대한 관심과 수요도 늘게 되었다.이러한 변화 속 나와 가족을 보호 할 수 있는 안전하고 청정한 삶이 가능한 곳! 바로 문경이다. 문경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수가 전국 평균 대비 1/7 수준이다. 주흘산, 황장산, 조령산, 희양산, 대야산 등 명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기가 맑으며, 오미자, 사과, 약돌돼지, 약돌한우, 표고, 친환경 쌀 등 몸에 좋은 먹거리 또한 풍부하다.문경에서도 조금 시골에 위치한 용흥, 당포, 희양, 농암 초등학교 등 작은 학교들은 청정한 자연 속에 위치해 상대적으로 이러한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다. 교사와 학생들 간의 깊은 유대와 관심은 자칫 소홀해 지기 쉬운 정서적인 교류를 높일 수 있도록 가슴 따뜻한 소통을 하고 있다.‘예술 감성 올림 프로그램’과 ‘꿈과 끼를 살리기 위해 특화된 방과 후 수업’ 등 학생들의 소질을 개발하고 지원해 줄 다양한 교육 과정과 프로그램지원으로 시골학교의 장점을 살리면서 명품 교육 도시 다운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문경은 코로나이후 교육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아날로그 감성과 첨단 에듀테크의 강점을 활용해 사회나 지자체가 교육을 위한 하나의 큰 플랫폼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고 있다.문경의 친환경 먹거리와 깨끗한 공기는 다양한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도시의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중요한 장점으로 부각되었고 특히 지리적으로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전국 어디서나 1~2시간대의 일일 생활권이 가능하다.2023년 개통하는 중부내륙철도는 1시간 19분 만에 서울로 진입이 가능한데, 아이들과 건강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부모들이라면 솔깃한 소식이다.이와 관련 문경시는 다양한 전입과 교육 지원을 아낌없이 추진하고 있다. 문경으로 전입 시 전입이사비용과 주택수리비 최대 200만원, 다자녀 가정 장학금 지원 사업으로 초·중·고생은 물론 대학생 까지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문경은 귀농귀촌하기 좋은 도시로 귀농·귀촌인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시작부터 정착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한다.빈집을 리모델링해 일정 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제공하며, 집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문경형 건강기능주택 표준설계안을 제공하고, 농업창업의 경우 3억 원 이내, 주택마련(신축)은 7천500만원 이내 지원해 농가주택 마련에 도움을 주고 있다.더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건강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분들을 위해 문경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문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시길 바란다.

2021-05-16

그~대 모습은 보랏빛처럼♪♬

“쌤, 우리 아파트에 라일락이 피었어요. 놀러 오세요~.” 동료로 만나 친구로 지내는 E선생님이 보낸 사진과 인사말이었다. 사진을 클릭해서 보니 라일락이 아니라 등꽃이었다. 내가 보기에 등나무꽃처럼 보인다 하니 몇 년을 잘못 알고 있었다며 웃었다. 보랏빛처럼 맑은 사람이다.‘흰눈’이라는 시가 있다. 공광규 시인이 봄꽃을 노래한 것을 그림책 작가 주리가 콜라보로 만나 시를 그림으로 피어나게 했다. 겨울에 내리다 못 다 내린 눈이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못 다 내린 눈이 벚나무, 이팝나무, 아까시, 산딸나무, 쥐똥나무 울타리와 찔레꽃 위에 앉다가 앉다가 더 앉을 곳이 없을 때 할머니 머리에 가만가만 앉는다는 옛날이야기 같은 시이다.봄이 오면 출발선의 첫 테이프를 하얀 꽃들이 끊는다. 그러다 노랑 개나리가 언듯 고개를 내밀다 5월이 오면 분홍색의 물결이 뜰과 산을 덮는다. 아버님 뜰에는 내가 시집오기 전에 옆집에서 한 뿌리 얻어다 심은 산작약이 뭉싯거리고, 담장마다 얼굴을 내민 미스킴라일락의 볼이 발그레하다.요며칠 등꽃이 피는 계절이라 집 근처 초등학교 마당을 찾아다녔다. 운동장 둘레 콘크리트 벤치에 꽃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는 대개 등나무이다. 수도산 밑에 자리한 포항초등학교의 등꽃은 막 피기 시작했던 날인지 향기가 수도산 등산로까지 따라오더니, 항구초등학교의 넝쿨은 만개해서인지 그 아래에 서 있어도 그닥 많은 향이 나지 않았다. 대신 풍성한 송이들이 바닷바람에 종소리를 보라보라하게 들려 주었다.영주로 출장 가는 길, 영덕에서 시작되는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고속도로가 으레 그렇듯이 산을 깎아 길을 낸 도로다. 그 길을 따라 온통 연보라 꽃등이 내걸렸다. 창문을 열지 않아도 등꽃향이 밀려오는 기분이다. 연보라 꽃등 행렬은 영주에 내려설 때까지 이어진다. 저 많은 등나무를 일부러 심었을라나, 산속에 자생하는 것일까? 고속도로가 깊은 산과 산을 뚫고 다리를 놓아 지나가게 해놓았으니 길이 생기기 전부터 토박이로 살던 등나무였을 것이다. 등나무는 아파트 벤치 위에나 학교 교정에만 있는 뜰 안에 꽃인 줄 알았는데, 딱 등꽃의 계절에 이 길을 지나니 등나무의 고향이 산이었단 걸 깨닫는다.영광여중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동네를 산책했다. 오래전 영주역이 있던 자리여서인지 골목길 담벼락에 기차 그림과 80년 역사가 그대로 덧입혀진 관사가 아직 기적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더 걸으니 영광중학교 운동장에 점심 먹은 배를 꺼치는 소년들의 소란함이 가득했다. 교훈이 크게 보여 읽으며 지나다 보니 운동장 한구석에 보라빛 그늘이 한들거렸다. 등나무 벤치였다. 멋진 그늘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달콤한 향기로 손을 흔들어도, 자신들이 더 빛나는 꽃이라는 듯한 녀석도 등꽃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지나가는 과객인 나라도 얼른 사진을 찍어주어 등나무의 절정을 기록했다.문헌의 기록을 보니 등나무의 나이가 상당하다. 영조 41년(1764년)에 신하들이 걷기가 불편한 임금을 위하여 만년 등이라는 등나무 지팡이를 만들어 바쳤다고 한다. ‘고려도경’에는 종이가 모두 닥나무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등나무 섬유를 써도 된다고 나와 있어 옛날부터 생활용품으로 많이 쓰였다.경주 현곡면 오류리에는 용등이라는 신기하게 생긴 늙은 등나무 두 그루가 애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 때 이 마을에 두 자매가 사모한 청년이 전쟁터에 나가 전사했다는 소문에 얼싸안고 연못에 빠져 죽어 그 넋이 한 나무처럼 서로 엉켜 자라 등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에 청년은 죽지 않고 돌아와 자매의 사연을 듣고 역시 연못에 몸을 던져서 팽나무로 환생해 서로 얼싸안은 듯 휘감고 수백 년을 자라왔다고 한다.사연을 가득 담은 등나무는 이산 저산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궁궐 안까지 자취를 남겼다며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연보라색으로 환하게 웃는다. 분홍분홍하던 봄이 보랏빛으로 깊어간다. /김순희(수필가)

2021-05-16

부부는 일심동체일까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부부는 일심동체’가 맞는 말일까?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말이지만, 좀 더 다른 의미에서 보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부부는 일심동체’도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우리가 흔히 쓸 때는 ‘부부는 한마음이고 한몸’이라는 뜻이다. 부부는 서로 잘 통하기 때문에 항상 서로 마음을 잘 알아서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상대가 몸이 편안한지 아픈지 등 서로 잘 이해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즉 ‘이심전심’이 되는 상태이다.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렇지 못하다고 너무 실망하거나 우리 부부관계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괜히 이것 때문에 부부싸움 하지 마시고 ‘부부는 일심동체’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처럼 배우자를 잘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항상 배우자를 대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부부관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실제 많은 경우에는 ‘일심동체’가 아닌 ‘이심이체’이고 ‘동상이몽’인 것이 현실이다.부부는 부모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 또한 다르다. 부부란 완전히 타인끼리 만나서 한 팀을 이룬 것이다. 서로 의견이나 생각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오히려 ‘이심이체’인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부부가 정말로 ‘일심동체’가 되려면, 부부가 ‘이심이체’라는 현실을 서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실 부부관계에서의 불협화음은 배우자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 각자가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배우자에게도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고 자기중심적 사고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직 자기중심으로의 ‘일심동체’를 바라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원만하지 못한 부부관계로 진료실에 상담하러 오는 부부들이 있다. 상담하러 온 부부들은 진료실에 들어와서도 부부싸움의 연장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서로 당연한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고 ‘다름’이 서로에게 불편함을 넘어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이다.또 “네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나?”, “너 만나 고생만 했다”는 등 대개 자신만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리고 부부 싸움의 원인을 너무나 쉽게 배우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심지어 배우자를 잘 못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배우자의 선택은 자신이 한 것이다. 부부 싸움이나 부부 갈등의 원인은 배우자가 아니라 자신과 배우자의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신의 공감능력 부족에서 찾아야 한다.또 “당신이 바뀌지 않으면 결코 같이 살 수 없다”고 서로를 향해 절규한다. 그런데 사랑은 능동적인 행위이다. ‘배우자가 나에게 얼마나 맞춰 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배우자를 위해 얼마나 맞춰 주느냐’의 문제이다. ‘배우자가 나를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배우자를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해주느냐’의 문제이다. 사랑은 내가 배우자에게 받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은 내가 배우자에게 주는 능동적인 것이다.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해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부부가 서로를 이해해가는 대화이다.그러나 부부간 마음이 소통되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부부상담 후에 많은 부부들이 “집에서는 대화만 하면 싸움이 났었다. 오늘 의사 선생님 앞에서처럼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고 고백하곤 한다.두 사람이 서로에게 원하는 기대치가 클수록, 특히 비합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기대가 많을수록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 된다. 아무리 부부라도, 서로가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고,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이해의 바탕에서 출발해야 한다.그리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 예를 들면 취미생활도 같이하려고 노력해보고, 만약에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들다면 배우자가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상담과정에서 서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미처 배우자의 마음에 대해 깨닫지 못한 점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진료실을 들어올 때는 이혼 직전의 상태이고 원수지간인데, 나갈 때는 잉꼬부부처럼 나간다.통계청의 이혼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이혼 건수는 10만7천건, 혼인 건수는 21만4천건으로, 혼인 대비 이혼 비율은 50%이다. 결혼이 하나의 선택이듯이 이혼도 하나의 선택일 수도 있다.그러나 법원에 가기 전에 정신건강의학과에 와서 서로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법원에 가지 않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찾아왔다는 그 자체가 희망이다.진정한 일심동체, 같은 생각 같은 몸을 가진 것처럼 이상적인 부부가 되고 싶으면 자기중심적 사랑에서 벗어나자. 배우자를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 먼저 부부가 이심이체라는 것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수용하는 진정한 대화를 나누자. 다가오는 21일이 ‘부부의 날’이다.

2021-05-16

창조도시의 조건

윤대식 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창조도시(creative city)의 개념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전문가는 물론이고 정치가와 행정가에게도 여전히 창조도시는 화두(話頭)이다. 그만큼 도시와 지역발전을 논의할 때 주목해야 하는 키워드(key word)이기 때문이다.창조도시의 개념을 창조계층(creative class)의 개념과 접목시켜 설명한 세계적인 석학이자 도시학자인 리차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창조적 사고를 실천하는 계층을 창조계층이라 명명하고, 이들이 창조도시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특히 그는 창조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3T(talent, technology, tolerance)가 꼭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인재(talent), 기술(technology), 관용 혹은 포용력(tolerance)이 함께 있어야 창조적 사고를 하는 창조계층이 도시와 지역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창조도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이제 산업생산체계를 잠시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경우 값싸고 부지런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전통산업은 이미 쇠퇴한지 오래고,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업종들이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선진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소품종 대량생산방식에 근간을 두고 있는 포드주의(Fordism) 산업생산체계는 쇠퇴한지 오래고, 다품종 소량생산방식에 근간을 둔 포스트 포드주의(Post Fordism) 산업생산체계가 많은 업종에서 도입됐다.이러한 산업생산체계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인재의 덕목은 역시 창조성이다.리차드 플로리다가 도시와 지역발전을 위한 핵심요소로 본 3T 가운데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요소는 관용 혹은 포용력이다.창조계층의 구성원인 창조적 인재는 도시의 다양한 생활양식과 문화, 쾌적성(amenity)을 중시하며, 그들의 창조성이 편안하고 쾌적한 일상생활과 결합이 가능한 도시나 지역에서 정착하길 원한다.결국 리차드 플로리다가 얘기하는 3T는 상호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것이고, 그 핵심은 관용 혹은 포용력이라고 볼 수 있다. 관용 혹은 포용력은 문화적 다양성과 함께 종교와 정치적 다양성도 함께 포함하는 것이다. 아울러 다양한 생활양식과 공동체가 공존하고, 이들 공동체의 정체성(identity)이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이제 세계적인 창조도시의 집합체로 볼 수 있는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어떤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실리콘밸리는 미국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지역적 특성을 가진 캘리포니아 주의 북부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 있는 명문 스탠포드대학교와 버클리대학교와의 산학협력에 힘입어 성장했다.실리콘밸리는 원래 양질의 포도주 생산지였지만, 이들 두 명문대학교와 산학협력을 통해 전자·정보통신·컴퓨터 산업 등을 육성하고 유치해 세계적인 첨단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게다가 내로라 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둥지가 됐다.실리콘밸리의 가장 원천적인 경쟁력은 날씨와 주변 환경에 있다. 태평양 연안에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사계절이 모두 따뜻한 것은 물론이고, 여름에도 기온은 높지만 습도가 높지 않은 기후적 특성이 큰 장점이다.이런 기후적 특성과 태평양 연안을 끼고 있는 환경적 특성(amenity)으로 인해 고급 인력들이 실리콘밸리와 그 주변지역에 와서 살려고 하는 원초적 욕망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실리콘밸리와 그 주변지역이 갖고 있는 자유분방한 지역적 분위기가 실리콘밸리의 성장에 한몫을 했다는 점이다.1960년대 중반 기존의 물질문명과 가치관, 제도, 사회적 관습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과의 직접적인 교감 등을 주장하며 자유로운 생활양식을 추구했던 히피(hippie)가 최초로 출현한 곳이며,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반전(反戰)운동이 시작된 곳도 바로 이곳이다.그리고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에서 마약규제 등 각종 규제가 가장 느슨한 곳이기도 하다. 리차드 플로리다는 창조도시의 조건으로 관용 혹은 포용력을 중요한 요소로 간주함으로써 창조적 사고를 하는 창조계층이 정착할 수 있는 필수조건으로 제시했다.그는 도시와 지역발전의 핵심전략으로 문화적 다양성과 인적 환경(people climate)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단선적 사고와 행동, 지나치게 보수적인 지역분위기만으로는 대구·경북이 발전하는데 한계가 있다.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당면한 문제의 해법을 찾아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이제 우리의 산업구조도 지식산업과 첨단산업 위주로 재편되고 있어 우수한 인재가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고 문화적 다양성을 고양하는데 정치가, 행정가, 그리고 시도민들이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2021-05-16

개방형 직위로 뽑은 구미시 경제기획국장, 이대로 괜찮을까

김락현 경북부구미시가 최초로 4급 국장직을 개방형직위로 공모해 뽑은 경제기획국장에 대한 평가가 냉혹하기 그지없다.구미시는 경제기획국장을 개방형직위로 선발하기로 결정하고 지난해 6월 선발 공모를 냈다. 이에 여론이 찬반으로 나뉘어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찬성하는 측은 공무원이 아닌 경제 실무를 아는 외부 인사가 국장직을 맡게 되면 기업 유치나 구미시가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산단 조성과 산단 대개조 사업 등의 주요현안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했고, 반대하는 측은 경제기획국은 경제 분야 외에도 기획, 예산 등 행정적인 업무도 담당하고 있어 외부인사가 맡을 경우 행정의 연속성과 책임성 결여, 조정력 부재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찬반양론에도 구미시는 2차례의 공고를 거쳐 지난해 10월 12일 양기철씨를 경제기획국장을 임명했다. 임기는 2년이다.7개월이 지난 현재 구미시가 4급 경제기획국장을 개방형직위로 공모한 것에 대한 평가는 실패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지난해 12월 14일 제245회 구미시의회 정례회 5분 자유발언에서 장미경 시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양기철 국장의 국적이 캐나다이기 때문일까.솔직히 국적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시 구미시의회 예산결산특위에서 양 국장은 시의원들의 질문에 대부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임명이 된지 불과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구미시 행정 전반을 파악한다는 것을 불가능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그럼에도 양 국장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날 수록 나아지는 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그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이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구미시가 당초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4급 국장직을 개방형직위로 공모한 이유는 바로 스마트산단, 산단대개조, LG상생형일자리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양 국장은 7개월 동안 이 사업을 위해 과연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오는 6월 초 진행 될 구미시의회의 행정사무감사에서 양 국장이 그동안 구미시의 주요 현안 사업과 관련해 어떠한 일을 했는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만약 개방형직위에 걸맞지 않은 성과를 보였거나, 혹은 당초 공모한 이유와 전혀 다른 사업만을 진행했다면 그 책임을 스스로 져야할 것이다.장미경 시의원을 말을 빌려 말을 하자면 구미시는 국장 견습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kimrh@kbmaeil.com

2021-05-16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유머의 장’이 돼야 한다

6·11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 내부에서 서로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거친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소장파들이 대거 합류한 당권주자들 간의 신경전과 무소속 홍준표 의원의 복당 문제가 얽히면서 막말 퍼레이드가 계속 심해지고 있다. 이에 당내 중진(5선)인 정진석 의원이 지난 13일 당 대표에 도전하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 복당을 요구하는 무소속 홍준표 의원의 발언이 거칠다면서 “막말 정당 프레임을 다시 뒤집어쓸 작정인가”라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SNS에서 “당의 중진 의원을 아저씨로 불러선 안 된다. 우리 당의 많은 분이 영입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육우, 수입산 소고기로 비유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홍 의원을 향해서도 “거센 말 제발 거둬 달라. 검찰총장 지낸 이를 조폭 리더십이라고 하면, 홍 대표님이 몸담았던 대한민국 검찰이 조폭인가”라고 되물었다.정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 정치권은 그동안 품격을 떨어뜨리는 독설과 막말로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아왔다. 올해 초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사면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고 발언했던 당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공업용 미싱’을 선물하겠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그 며칠 뒤에는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고민정 민주당 의원을 향해 ‘후궁’ 발언을 해 후폭풍이 거셌다.막말을 이용한 ‘노이즈마케팅’이 정치인의 인지도를 높이고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크게 잘못됐다. 국민들 눈에는 소영웅주의로 비칠 뿐이다. 최근 국민의힘 당내에서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진행되고 있는 거친 언사들은 당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자해행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은 외연확장을 위해 대화합의 장을 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막말 퍼레이드를 여기서 그쳐야 한다. 대신 품격이 있는 언사로 국민을 감동시키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인의 유머는 영향력이 엄청나다. 시대정신을 담은 유머러스한 말 한 마디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막말 경연장과 다름없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어느 국민이 귀를 기울이겠나.

2021-05-16

공공기관 이전, 대통령 임기 내 추진돼야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김사열 위원장은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대해 현 정부안에서 반드시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방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내년 대선 이후로 미뤄질 것이란 항간의 추측을 부인하면서 “대통령 임기 내 추진할 것”을 명확히 했다.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민주당 21대 총선공약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2018년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선포식에서“노무현 정부보다 더 발전된 국가균형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며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그해 9월 “수도권에 있는 122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할 것”을 선포하기도 했다.그러나 대통령과 여당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의지에도 정부는 이와 관련, 그동안 그 어떤 내용도 구체화 한 적이 없다. 여당은 선거 때가 되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약속하곤 했지만 말뿐이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공공기관 이전에 공감하지만 대통령 임기 내 실행은 어려울 수 있다”고도 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선거용으로 악용된 것 아니냐는 비난도 나왔다.민주당은 4·7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하자 이번에도 국정 분위기 반전을 위해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김 위원장이 밝힌 임기 내 이전 발언과 맥락을 같이하는 듯해 실천 여부가 관심이다.문 정권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가장 강력하게 추진할 정부로 기대를 모았으나 실상은 아니었다. 문 정부 출범후 수도권은 더 비대해지고 지방의 낙후도는 날이 갈수록 추락했다. 2019년말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사상 처음으로 제쳐 인구비율 50%를 넘었다.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절반 가까운 105곳이 인구소멸 위험지구로 조사됐다.수도권은 배불러 터지고 비수도권은 배고파 죽을 지경에 도달하고 있는 형국이다. 김 위원장이 밝힌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이야말로 여당이 할 수 있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최고의 해법이다. 이전기관의 반발이 있다고 하나 노무현 정부 때도 반발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 더이상 선거용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지방도 잘 살 권리가 있다는 희망을 꺾는 일이 없도록 대통령 임기 내 추진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2021-05-16

국민의힘 그릇이 이렇게 작나

심충택논설위원무소속 홍준표 의원이 서울과 대구에서 잇달아 가진 국민의힘 복당 선언 기자회견에서 “나의 복당을 논쟁거리로 만드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국민의힘 지지층 65%이상이 찬성한다”며 당의 빠른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6월 11일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힘은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그의 복당문제에 대해 선뜻 결론을 낼 것 같지 않다.전당대회가 임박하자 발언수위를 높이고 있는 주자들 중 홍 의원의 열성지지층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복당을 지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들은 대구·경북을 비롯해 주로 영남권에서 광범위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홍 의원과 우호전선을 구축할 경우 투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반면 홍 의원의 복당을 반대하는 측은 강성이미지를 가진 홍 의원에 대한 반감을 가진 당내 세력이 상당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것이다.대체로 국민의힘 중진들은 그가 당에 복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SNS를 통해 “홍 의원은 오랫동안 당을 위해 헌신한 분이다. 복당을 요구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당권 도전에 나선 주호영 의원도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은) 남북통일도 국민통합도 하자는 정당이다. 대통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의원 복당에 대해 거부감을 표명하고 있는 측은 주로 소장파 당권주자들이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호남출신 김웅 의원은 홍 의원의 복당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영남당’, ‘꼰대당’이라는 당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세대교체를 원하는 초선의원들의 표를 얻으려는 속셈이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어쨌든 소장파 당권주자들의 거침없는 공세는 홍 의원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대선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내 초선의원들의 거부감부터 극복하는 게 우선이다. 국민의힘은 4·7 재보궐선거이후 초선의원들과 소장파 당원들의 역동성이 커지면서 당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낡은 정당’이라는 색채를 지우기 위해서는 2030세대가 참여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당 안에서 커져야 한다. 홍 의원도 최근까지 젊은 의원들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개별적인 만남을 꾸준히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들의 거부감은 여전하다. 홍 의원이 명심해야 할 것은 젊은 정치인들이 다소 거친 언사를 쓰더라도 맞상대를 해서 막말을 해선 곤란하다. 너그럽게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중진답게 당에 헌신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인상을 후배 정치인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맞다.국민의힘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포용력을 가지고 당의 외연을 확장해야 할 때다. 성공적인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당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 개개인의 이해타산에 따라 유력 대선주자의 복당을 저울질하는 것은 편협한 행위다. 국민의힘 내에서 특정인이나 특정지역을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올 경우 당의 기반인 대구·경북 민심부터 돌아설 수 있다.

2021-05-16

노련함과 패기의 대결

‘노련하다’는 많은 경험으로 하는 일이 익숙하고 능란하다는 뜻이다. 국어사전에는 연숙(鍊熟)하다와 동의어로 사용된다고 하는데 역시 경험과 숙련의 의미를 포함한다. 노련미(老鍊味)란 많은 경험에서 나오는 능수능란한 멋을 일컫는 말이다. 노련은 어떤 일에 상당한 경력이 쌓여 위엄이 생긴 관록과도 비슷한 말이고 프랑스어의 베테랑과도 비슷하다. 백전노장(百戰老將)은 경험 많은 베테랑이라는 뜻이다. 맥아더 장군은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 했다. 그 말의 뉘앙스는 백전노장의 노하우를 우습게 봐선 안 된다는 뜻이 함축된 것이다.‘패기’란 어려운 일이라도 해낼 굳센 기상을 표현한 말이다. 나이가 젊은이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패기만만(覇氣滿滿)하다는 패기로 가득찬 모습을 일컫는다. 이순신 장군은 “지금 우리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으니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말로 부하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패기란 용기와 같아 이처럼 뜻밖의 무서운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노련함이냐 패기냐 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것과 비슷하다. 국민의 힘 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신구 세대 간 경쟁이 주목받고 있다. 초선의원 중심으로 당 혁신을 위한 당 대표 세대교체 주장이 거세다. 신진세력 다수가 당권 도전에 나서 관록의 중진과 맞장을 뜨는 형국이다. 다선의원의 실패한 경험으론 당 쇄신을 이룰 수 없다는 목소리다. 초선의원의 도전에 중진의원도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계파와 연공서열을 중시하던 관례에서 벗어난 초선의원의 당권 도전은 신선한 느낌이 있어 좋다. 그러나 국민은 경륜과 신예의 대결보다는 시대적 흐름을 이끌 역량있는 정치인의 등장을 더 희망할지도 모른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05-16

‘스승의 날’ 생각

윤영대수필가스승의 날 40회째 기념행사를 충남 강경고에서 한다기에 ‘50년은 넘을 텐데?’ 하고 보니, 1963년 충남 강경여중고등에서 ‘은사의 날’로 시작한 후에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 15일로 정해졌고 그동안 스승의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며 감사해왔는데 73년 국민교육헌장선포로 묶였다가 82년에 ‘옛 스승 찾아뵙기’ 행사로 부활했다고 한다.교권존중과 스승 공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교원의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제정되어 사제 간의 존경과 사랑 속에 참된 학풍을 이어온 스승의 날이 요즈음 여러 가지 사회적 풍토 변화로 그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는 듯하여 안타깝다.스승의 날 행사는 빨간 카네이션 꽃 한 송이를 작은 선물과 함께 드리면서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드리는 소박한 것이었는데 난데없이 김영란법이라는 청탁금지법이 만들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선물은 5만 원 이하이고 카네이션도 학생대표만 전달할 수 있으며 종이로 만든 꽃은 되지만 생화는 피하는 추세란다. 촌지 때문에 이날 휴교하는 학교도 있다고 하니 교단에서의 사랑도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참된 인간관계를 엮어가야 하는 교실에서 사회부정의 꼬투리를 잡고 사제 간의 윤리를 어둡게 하며 교권이 추락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참된 학풍을 이어가겠는가.‘스승’은 인간의 도리와 이치를 가르쳐서 좋은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또 옛날에는 참으로 인격과 학식이 높고 덕업이 있는 사람을 ‘선생’이라 일컬었으며 임금까지도 어렵게 대했던 인격체들이었다. 그러나 선생이라는 호칭이 일제 강점기에 남용되어 현재로 이어지면서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교사’로서 또 ‘~선생’이라는 세속화된 인칭으로 사용됨으로써 우리는 스승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지식을 가르쳐주는 직업인으로 보게 된 것이리라.스승의 날에 대한 한 설문 조사에서도 ‘자긍심이 떨어진다’ 32.4%, ‘부담스럽다’ 26.2%로 부정적이고, ‘자부심을 느낀다’가 겨우 5.8%로써 이날을 교육의 날로 바꾸고 싶다는 반응이 81.6%라고 하니 우리나라 교육계의 현주소가 암울하다. 또 제자에게 연락을 꺼리는 선생님들도 있다고 하니 교직에 있는 모두 스스로를 돌아봐야겠다.그렇다고 해서 그 사명감을 버려서는 안 된다. 전인(全人)을 만들겠다는 교육관과 교육애를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교육 의식을 몸소 실천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가르치는 일을 노동으로 생각하는 듯한 ‘교원노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든다. 교육의 한자를 분석해보면 ‘효자가 되라고 등을 두드려주고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는 의미가 있는데, 그 제자들이 참된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가르치는 그 행위가 과연 노동으로 여겨지는 걸까. ‘선생은 있지만 스승은 없다’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참스승을 만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꽃 한 송이, 음료수 한 병을 교탁 위에 올려놓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라고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주던 제자들이 다시 보고파진다. 기억나는 선생님에게 짧은 손편지라도 전해드리자. 스승이나 제자 모두 사랑과 존경으로 제자리를 지켜야 할 것이다.

2021-05-16

명함전단지와 풀뿌리 민주주의

강길수수필가출근길마다 사무실 입구에서 하는 일이 있다.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지만 벌써 몇 년째다. 명함전단지(名銜傳單紙)를 한쪽 구석으로 모으는 일이다. 보통 네댓 장, 많은 날은 여남은 장이 될 때가 있다.보기 지저분해 처음엔 투덜대며 어쩔 수 없이 손으로 일일이 주워 사무실 쓰레기통에 버렸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버려진 명함전단지만 줍는 연로한 분들이 생겨났다. 그 후부터 한쪽 구석진 곳으로 모아둔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어떤 날은 손으로 주워 한곳에 모아두거나 어느 날은 발로 툭툭 차 한곳에 모이게 하기도 한다. 점심때 나가면 명함전단지들은 그사이 누가 다 가져가고 없다.어느 날 광고 내용을 한번 보고 싶었다. 모두가 돈을 급전으로 빌려준다는 광고였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도 여전히 급전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물이었다. 하지만 널브러진 전단지들이 거리를 너저분하게 하여 보기 좋지 않고 쌓여 부패하면 위생 등 다른 문제를 불러올 수도 있다. 또, 전단지를 뿌리는 사람이 일하는 현장이란 것 역시 사실이다. 흔히 하는 말로 제작자, 광고주, 뿌리는 근로자들의 생존권이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약 반 시간 정도 걸어 출근 시간에 명함전단지를 뿌리는 젊은이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은 위험이 따르는 이 도로 저 도로 가릴 것 없이 내달리며 명함전단지를 뿌렸다. 한 손은 오토바이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명함전단지를 건물 쪽으로 화살처럼 쏘아대며 달렸다. 꼭 자동기계의 동작 같았다.어떤 날 걷는 내 얼굴 앞으로 휙 소리를 내며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명함전단지를 만나 움찔 놀라기도 했다. 순간 한 손으로 어떻게 던지기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지나갈까 감탄하는 마음이 들다가 이내 ‘무질서의 현장’이란 생각이 밀려들었다. 또, 작은 마케팅 폭력으로 보이기도 하였다.우리 국민은 소위 생존권이란 명분으로 공공질서가 유린 되고 묵인되는 현상을 사회에서 많이 겪으며 살고 있다. 개인의 생존권은 과연 공동체의 질서에 해를 끼쳐도 되는 것일까. 개인이 없으면 공동체도 없다. 역설적으로 공동체가 없으면 개인도 없다.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 가야 할까. 이 문제는 유사 이래 줄곧 인류사회가 직면하고 또, 나름대로 해결하며 살아왔다.오늘날 자유민주주의 지방자치제도의 꽃이랄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어떻게 실현되는 것일까. 올곧은 국가 사회는 하늘이 내리는 것도, 다른 나라가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다. 또, 슬로건이나 말로만 되는 것도 아닐 터다. 풀뿌리의 주인인 주민들과 그 대표들, 공공기관, 여러 시민모임의 구성원들이 말 그대로 풀뿌리처럼 낮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사회의 낮고 구석진 곳들을 잘 살펴 고칠 것은 고쳐 나아가고 지속할 것은 이어나가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명함전단지만 하더라도 위험할 뿐 아니라 거리를 지저분하게 하는 오토바이 뿌리기 대신 방문 전달로 바꾸어 가는 지혜를 사업주와 지역 의회 등 지역사회가 협동하여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길일 테니까.

2021-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