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가정의 달에 생각하는 ‘가족’

등록일 2022-05-10 18:15 게재일 2022-05-11 18면
스크랩버튼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자식과 부모, 반려자에 대해 숙고하고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시간은 소중하다. 일상 속에서 무뎌지기 쉬운 관계의 유지와 지속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처럼 챙겨야 하는 아이와 양가 부모님이 계시는 세대들에게 가정의 달은 경제적, 육체적으로 피곤한 시기이기도 하다. 보통의 가정에서 아이 선물과 양가 부모님 용돈, 외식 몇 번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매년 반복되는 5월 가정의 달. 올해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도권에서 사는 형님네를 찾았다. 양가의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 전이지만 자연스럽게 화제는 아이 교육 문제로 옮겨갔다. 형님은 아이 교육을 위해 중국 주재원을 생각하고 계셨고, 나는 미국으로 연구년을 떠날 계획이 있다. 둘 다 아이 영어 교육이 해외로 나가는 중요한 목적이었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경쟁’에 대한 걱정과 분노를 공유했지만, 동시에 어떻게 우리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평범한 아빠였다.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를 기억한다. 교수 아빠와 엄마가 ‘부모찬스’에 불법까지 저지르며 자식의 스펙을 만들어 대학에 보낸 사실이 드러나고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검찰의 과잉 수사가 논란이 되었지만, 그와 별개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준 자식 사랑이 공론화된 사건임은 분명하다.

최근 윤석열 정부 장관 후보자들의 자식 사랑도 남다르다. 누군가의 자식은 아빠가 병원장으로 있는 대학에 편입학을 했고, 학교 본부에 신고도 없이 아빠 수업을 들었다. 어느 후보자의 고등학생 딸은 두 달 만에 논문 5편을 학술지에 투고했으며, 1년 만에 영어로 된 전자책 10권을 출간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자식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좌·우를 떠난 공통된 현상이라고 해야 옳겠다.

이러니 결혼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당연한 귀결이다. 경제력을 갖춘 특권 계급의 자식 사랑에 대다수 부모가 초라해지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아이를 낳고 싶을까? 자본 시장과 긴밀하게 연결된 경제 공동체로서 가족 개념은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다. 여성·남성의 노동 이원화 정책 속에서 출산과 양육을 여성 주도의 사적 영역에 묶어두는 편이 국가 산업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도 아이를 키우는 일이 오로지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혈연·경제 공동체로서 가족의 의미는 오히려 강화되었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얽혀 있어서 쉽사리 해결책을 찾기 어렵지만,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혈연·경제 공동체로서 가족이란 범주를 넘어설 수 있는 상상력이다. 우리는 특권 계급의 자식 사랑을 비판하지만, 내 자식만큼은 그렇게 키우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욕망에 충실한 것이 나와 사회의 발전에 보탬이 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단언컨대 지금은 우리 사회에 안 좋은 영향만 줄 뿐이다. 매년 반복되는 가정의 달에 뻔한 가족의 의미만 추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일상의 발견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