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코로나19 감염병 때문에 이태가 넘도록 답답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침공이 온통 화젯거리로 식을 줄 모른다. 국내 뉴스도 서로 헐뜯는 감정대립에다가 자기유익만 강조하니 너무 식상하고 암담하다. 이런 상황에 인터넷에 널리 알려진 동화가 언뜻 떠오른다.
담장아래 꽃밭에 해바라기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해바라기들의 발밑에는 나팔꽃이 자라고 있다. 나팔꽃은 먼저 A해바라기에게 부탁한다. 자기 혼자서는 설 수 없는 존재라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자라야 꽃을 피울 수 있다. 내가 너에게 기댈 수 있게 해 준다면 나의 아름다운 꽃을 너에게 줄 수 있다고. 이 말을 들은 A해바라기는 가당치도 않다는 투로 되받아친다. 내게 거추장스러운 존재는 딱 질색인데 내 몸에 칭칭 감고 올라가겠다는 것이 아니냐? 네가 나를 꽁꽁 묶어 어떻게 할 작정이냐? 어림도 없으니 다른데 가서 알아봐. A해바라기의 매몰찬 거절에 나팔꽃은 주눅이 든다.
그렇다고 넝쿨식물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척 미안한 마음으로 B해바라기에게 고개를 돌려 눈치를 살핀다. 그런데 B해바라기는 나팔꽃에게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 미소에 힘을 얻은 나팔꽃이 용기를 내어 부탁한다. B해바라기야 내가 기댈 몸이 되어주겠니? 허락만 해 준다면 나의 가장 아름다운 꽃을 너에게 줄 테야. B해바라기는 흔쾌히 나팔꽃 아가씨의 버팀목이 되어주겠다고 한다. 사실은 해바라기끼리 해만 바라보며 남보다 더 크게 자라려고 경쟁하는 삶이 너무나 각박한 터였다. 하늘의 해를 향해 더불어 살면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이로 지내자고 오히려 위로하는 자세다.
기꺼운 허락을 받은 나팔꽃은 기쁨에 겨워 B해바라기의 몸을 감싸안으며 자라 오른다. 마침내 나팔꽃은 진분홍 꽃을 가득 피우며 바깥세상의 아름다움도 구경할 수 있게 된다. 거기다가 나팔꽃의 깜찍하고 독특한 색채가 B해바리기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고 우아하게 보인다. 노란색 꽃 한 송이만 달랑 피어있는 다른 해바라기들이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어느 날,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친다. 밤새도록 불던 비바람이 잔잔해지고 아침 해가 돋는다. 나팔꽃은 아침을 맞이하려고 부랴부랴 꽃을 피우면서 단단하게 끌어안았던 몸을 느슨하게 풀고 주위를 살핀다. 그때 나팔꽃이 A해바라기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목이 꺾인 채로 흔들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밤의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목이 부러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비바람을 맞아도 B해바라기는 거뜬하게 서서 나팔꽃과 가볍게 입맞춤한다.
거센 비바람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나팔꽃도 무서움에 떨며 B해바라기를 바짝 끌어안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해바라기야 무서워. 너도 무섭지?” 밤새도록 서로 감싸고 보호했던 것이리라. 아침의 따사로운 해를 바라보며 B해바라기와 나팔꽃은 함께 행복했다.
서로 밀어내는 전쟁보다 함께 끌어안는 공동체가 목을 부러뜨리는 힘에도 견딜 수 있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