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난다. 그는 취임하면서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5년 임기를 마친 오늘 그는 어떤 마음으로 걸어 나올까. 5년 전 그는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닷새 전 “우리가 이룬 성과에 대해서 자부하고 있다”는 그의 자평은 진심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지금 국민은 유례없이 갈라져 있다. 옳고 그름도 없다. 누구 편이냐가 기준이다. 그는 또 “승자도 패자도 없다…함께 손을 맞잡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5년 내내 적폐 청산에 매달렸다. 퇴임 직전에야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저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의 공과 과가 있는데…그 역사를 청산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말처럼 적어도 취임 초에는 새 정부가 하는 걸 지켜보는 게 정상이다. 국민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정 운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쟁이다. 민주당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는 윤 당선인을 ‘0.73%포인트짜리’라고 깎아내렸다. 적은 표 차로 당선됐다는 말이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정당 득표율(33.4%)은 미래통합당(33.8%)보다 적었다. 지역구 득표율도 과반에 못 미쳤다. 그런데도 대선 직후 다수의 힘을 더 휘두른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가로막고, ‘검수완박’ 법안을 온갖 꼼수로 밀어붙이고, 법사위원장 배정 합의도 뒤집으려 한다. 민주당 정부 총리였던 한덕수 후보까지 발목을 잡아, 내각 없이 취임하고, 한동안 그렇게 굴러갈 판이다. 문 대통령은 퇴임 직전까지 소금을 뿌리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도 굽히지 않는다. 당장 급한 건 당선인이다. 그런데도 강수로 밀어붙인다. 마주 달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 당장 한미 정상회담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 핵 도발을 어떻게 대처하며, 빅스텝 파도는 견뎌낼 수 있을까. 결국은 대통령의 거부권 남발, 시행령 정부, 공안 정국이 이어지며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상생이다. 상대에 대한 인정,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한 존중이다. 나만 옳다면 정당이 여러 개 있을 이유가 없다. 서로 다른 처지와 생각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우리 정치가 일당 독재의 승리 지상주의, 독선에 빠졌다. 모의법정의 변호사와 검사처럼 이기는 데만 몰두한다. 정말 민주주의가 걱정이다. 민주당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당내에 생각이 달라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드는 진영논리와 학연·지연·혈연에 따라 내 편을 챙기는 온정주의가 팽배해 있다”라고 지적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조문, 부동산 등 대선 패배 책임론, 최강욱 의원 성적 비속어 발언…. 곳곳에서 내 편 감싸기를 보였다. 20대 위원장의 쓴소리에 기성 정치인 반응은 시큰둥하다. 나잇값을 못 한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여지는 남겨야 한다. 그래야 소수도 숨을 쉴 수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공격하는 요즘 정치가 두렵다. 정치적으로 나와 다른 생각을 청산, 박멸, 척결하자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독일의 나치나 중국의 문화대혁명, 스탈린의 대학살에서나 보던 태도다. 유일사상에 대한 신앙이다.
지금 이 나라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정부와 국회 정부, 국민의힘 정부와 민주당 정부다. 민주당은 선거 막판에 다당제 연합정치를 위한 정치개혁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 비대위원장은 “(대선에서) 졌을지라도 국민께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했다. 정치지도자들이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야 하지 않나.
문 대통령은 5년 내내 잘못을 시인한 적이 없다. 물러나는 날까지 ‘남 탓’했다. 부동산도, 경기도, 고용도 이전 정부, 야당, 국민 탓이다. 남 탓의 유효 기간은 짧다. 잘못이 쌓여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윤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적어도 자세는 그래야 한다. /본사 고문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