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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권리, 그리고 배려와 나눔

등록일 2022-05-11 20:25 게재일 2022-05-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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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나누어 가져야지요 // 하나의 막을 사이에 둔 / 농도가 다른 액체가 / 농도를 맞추기 위해 애를 쓰듯 / 그렇게 나누어 맞춰야지요. // 그대의 새벽잠과 / 나의 저녁잠 / 혹은 그대의 휘파람과 / 나의 한숨 / 나누어 가져야지요 / 그대의 약냄새와 / 나의 술냄새 / 그대의 30시간과 나의 18시간.”

삶의 존재론적 의미라는 주제를 다감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따뜻하게 보듬는 박상천 시인의 시집 ‘말없이 보낸 겨울 하루’에 실린 시 ‘삼투압’의 일부이다. ‘그대’와 ‘나’는 삶의 패턴이 다르다. ‘그대’가 휘파람을 불며 넉넉한 삶을 즐길 때, ‘나’는 삶의 무게가 버거워 한숨을 내쉰다. ‘그대’가 약으로 몸의 질병을 다스릴 때, ‘나’는 술로 마음의 통증을 삭여낸다. 이런 그대와 내가 나누고 함께할 때 ‘우리’는 모두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평등한 세상은 어느 때,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슬프지만 앞으로 오지도 않을 것이다. 공정한 세상의 실현 역시 의구심이 든다. 그대와 내가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고 평등을 원치도 않는 사람들이 꾸려가는 세상에서 공정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궁이와 굴뚝 청소를 하면서 재를 묻히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더 쉬울 듯하다.

지난해 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운행 방해 시위를 시작했다. 평일 출근 시간대의 시위로 많은 시민들은 불편함을 겪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이 시위를 비난했다.

나의 지인도 “장애인 이동권 중요하다. 또한 내 출근할 권리도 중요하다.”라고 짧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SNS에 올렸다. 불편과 불쾌함을 애써 누른 표현이었는데, 그 생각 속에 장애인의 이동권을 인정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래도 한마디를 해야 할 것 같아 “모든 사람의 권리는 중요하다. 그러기에 자신의 권리를 챙기기 어려운 이들-소수자, 약자-의 권리는 다수자, 덜 약한 이들이 챙겨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른 사회이고 민주 사회이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두 주 전쯤 어느 신문에 식당에서 ‘혼밥’ 점심을 즐기려다가 방해받은 경험을 한 기자의 기사가 올라왔다. 혼자 앉아있던 테이블에 공사 작업복을 입은 모르는 사람이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 수저를 놓고 앉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내 돈 내고 내가 편하게 먹을 혼밥의 권리는 중요하다. 양해 없이 불쑥 남의 자리를 침범한 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다. 그러나 짧은 점심 시간에 넉넉지 않은 돈으로 좁은 식당에서 빨리 밥을 먹고 일어서야 하는 노동자의 어려움을 더 생각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권리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땀내 나고 피곤한 사람들이 좁은 식당에서 내 자리를 침범했을 때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주는 배려와 관용이 더 아름다운 가치가 아닐까?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다. 권리를 함께 나누는 세상, 서로를 배려하는 세상을 그려보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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