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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말로는 부족한

양태순 수필가 마음에서 말이 되기까지 순간일 적이 있다. 멋진 풍경을 볼 때, 늘 보던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여쁜 돌,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 떼, 서늘한 바람에 묵묵히 버티는 억새, 가을날 선물꾸러미를 터뜨리듯 툭 터지는 석류, 한겨울 몰래 피운 야생화들. 그것들을 마주하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온다. 예쁘다와 좋다.울주군 간월재에 갔다. 억새가 일품이라고 너도나도 인증샷을 올려놓아서 가보고 싶어서다. 모처럼 나선 산길을 걷자니 눈이 시원해진다. 산 능선을 따라 오색 물결이 넘실거렸다. 골짜기와 골짜기가 겹쳐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풍경은 명화 부럽지 않았다. 가을은 고개 위에서 떡갈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내려오고 있었다. 잎들을 개구쟁이 붓질하듯 휙휙 물들이며 오고 있었다.억새평원은 장관이었다. 좋다는 감탄사를 남기고 부리나케 간월재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밀려드는 사람이 많아서다. 그다음 주변 풍경을 둘러볼 여유가 되었다. 동서남북 두루 둘러볼 수 있었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고 억새는 그 위를 덮을 듯 무성했다. 바위와 억새가 만들어내는 가파른 길은 아득하였으나 색색의 옷들이 무늬를 더해 절경이었다. 다른쪽은 억새 뒤로 산 능선이 그윽하게 둘러쳐져 포토존으로 사람들이 복작였다. 은빚억새 위로 사람꽃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나는 억새 사이로 난 산책길을 걸으면서 냄새를 맡고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가을 안으로 들어간 듯하였다.산을 오르며 연신 좋다는 감탄사를 뱉었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굽이진 길을 오르내리며 다가왔다 멀어지는 풍경 앞에서, 스스로 잎을 떨구는 나무 아래서 보라색으로 존재를 알리는 꽃향유를 보며, 가족끼리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에, 좋다를 고명처럼 얹었다. 그리고 저 홀로 익어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잎들과 잎들이 만들어내는 가을잔치에 마음을 빼앗겼다. 밖으로 나온 말은 좋다는 한마디였으나 속에서 일어난 감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감정은 섬세하게 분화한다. 좋다는 두루뭉술한 덩어리에서 여러 결로 나뉘어진다. 내 처지나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파동이 다르다. 바꾸어 말하면 똑같은 감정이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밖으로 나온 말이 같아도 다르게 읽히는 순간이 있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믿음이 있을 때는 따로 해석이 필요치 않고 저절로 필터를 거쳐 들어온다. 좋다는 말에 숨어있는 뉘앙스랄지 미묘한 차이를 캐치할 수 있다.좋다는 말을 열 번 한다고 같은 뜻이 아니다. 얼키설키 감겨오는 감정의 결에는 차이가 있다. 특별한 것이어서, 설레고 기뻐서, 영원할 것 같아서,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서, 동행한 사람과의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다시는 못 볼 아름다움을 숭배하기 위해, 수없이 읽어서 너덜너덜해진 시집의 구절 등이 모두가 좋다는 말에 포함되는 다른 무엇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는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얼렁뚱땅 좋다는 말속에 밀어넣고 만다.간월재 억새평원을 걸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말들이 어째서 꼭 필요한 순간에는 숨어있는가. 그동안 읽은 책 속의 명문장들을 복기한 것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가. 나는 자연이 보여주는 풍경 앞에서 기껏 좋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인가. 내가 느낀 감동과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어서 머릿속이 쑥대밭이었다.시의 행간에 숨은 뜻을 읽어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몇 번을 읽고 나서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다. 감정을 말로써 조곤조곤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생각을 끄집어내려 해도 마음 안에 뭔가가 있는데 건져지지 않을 때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느껴봤을 순간이다.마음의 눈이란 말이 있다. 사물을 볼 때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뒷면을 보는 것이다.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어서 바람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는 이유를 알아야 풍경 속의 풍경을 풀어낼 수 있으리라. 아직도 나의 글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지 못하고 닫힌 문 앞에서 소멸하고 만다. 가을산에 촤르르 펼쳐진 멋진 문장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깝고 안타깝다.솜씨를 부린 글이 아니라 질그릇에 담아내는 정(情) 같은 글을 쓰고자 뾰족하게 날을 세우는 가을이다.

2021-11-10

붉음, 그 마지막 정열을 사르다

겨울로 가는 길목, 수목원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찬바람이 이 골짝에서 저 골짝으로 불자 나무들이 서둘러 다른 색깔로 잎을 물들인다. 사람도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수목원을 찾는다. 이들의 왁자한 소음을 잘 버무리면 푸짐한 가을 한 상이다.붉은 꽃등이 내준 길을 따라 걷는다. 바람 한 자락에 나뭇잎이 화르르 떨어진다. 단풍나무가 잎을 떨어뜨려 푹신한 융단을 깔아 놓았다. 단풍의 해사한 빛에 이끌려 나무 아래 머문다. 나무가 뿜어내는 붉고 고운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뭇잎 하나, 둘 주워 손바닥에 살포시 올린다. 군데군데 벌레가 갉아 먹고, 서로 부딪쳐 바스러진 잎이 제각각이다. 단풍잎의 크기는 비슷해도 색깔은 다르다.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하늘을 요즘에는 자주 올려다본다. 하늘이 맑아 고개를 들면 손에 잡히는 듯하다. 신발 끈 매고 나서면 하늘이 내려 준 풍경을 오롯이 내게 들일 수 있다. 추위가 몰려오기 전에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 나뭇잎을 보는 것은 황량한 겨울을 건너야 하는 인간에게 다음을 기약하는 위안이다.붉은 丹, 바람 楓, 은행나무 잎이나 갈색으로 변하는 나무도 단풍이라 부른다. 나무의 특성에 따라 잎을 각기 다르게 물들인다. 조금 빨리 물을 들이고 햇볕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붉은 단풍나무 아래 서자 나도 붉게 물든다. 붉음은 사람을 모이게도 했다. ‘붉은 악마’가 거리에 모여 토해내는 열정은 얼마나 붉고 뜨거웠던가.보이는 것이 전부인가, 단풍나무가 주는 화려한 것만 보았다. 나뭇잎들은 왜 떨어질까, 왜 가장 곱고 아름다울 때 잎을 떨어낼까, 뙤약볕의 여름을 잘도 견디고 비와 바람, 몇 번의 강한 태풍에도 제 가지를 잘 챙겼는데, 나뭇잎은 가장 화려할 때 사람을 불러들이고 잎을 떨어뜨리려 하는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찬바람이 불면 나무는 미련 없이 잎을 버린다. 때를 놓치면 후회할 일이 생기니까. 버릴 때를 알았다. 그동안 광합성을 하느라 고생한 잎을 떨어뜨리기 전, 마지막 혼신의 힘으로 아름답게 핀다.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운 이유는 생의 마지막에 단풍이 단풍다운 본연의 색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닐까.그냥 서서 엄동설한을 견뎌야 하는 나무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필요하다. 가지가 많아 잎이 풍성하면 넉넉한 양의 수분이 필요하다. 가진 게 많으면 나무도 겨울을 견디기 힘이 든다. 긴 겨울 동안 얼어붙을 수도 있고, 가지마다 매달린 잎들이 눈보라에 마주할 일이 더 생길 수 있다. 나무는 추위가 엄습하기 전에 우리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물하고, 서둘러 몸을 가볍게 한다.내 어머니는 가난했다. 잠시도 몸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다. 흙 묻은 옷이 마를 틈 없이 밭에서 살았다. 비 오는 날이 돼서야 어머니는 우리 차지였다. 가난해서 밀가루로 만든 먹거리뿐 이었지만, 항상 배가 불렀다.우리는 추운 겨울, 서로 아랫목을 차지하려고 싸웠다. 사실은 누가 더 어머니 곁에 앉을 수 있을까 경쟁했다. 아랫목에서 피어나는 어머니의 옛이야기는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자랐고, 지난한 삶에도 조금씩 볕이 들었다. 들창으로 스미는 햇살이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때, 어머니는 큰 병을 얻었다. 이순혜​​​​​​​수필가 어머니 곁에 자식들이 머물고 치료를 도왔다. 하지만, 부모·자식이라는 끈은 정성만으로 버틸 수 없었다. 온갖 약을 써도 어머니는 점점 쇠약해지셨다. 어느 날, 이제는 안 되겠다며 자식들을 불러 모았다. 깊게 파인 어머니의 주름만큼 투박하지만, 누런빛이 나는 것을 슬며시 꺼내셨다. 손을 내민 우리에게 어머니는 팔찌를 하나씩 채워주셨다. 서로 의지하고 양보하며 둥글게 살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얼굴에 붉은 꽃이 벙긋했다.어머니 얼굴에도 마지막 꽃을 피웠다. 어머니가 평생을 몸담은 곳에 기부하라고 부탁했다. 어머니의 마음이 자꾸 그쪽으로 향한다며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적지만 큰 베풂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자식들의 형편을 알았지만, 평생 흙 만지며 번 돈으로 어머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달았다. 어머니의 마음이 가는 곳, 그곳을 바라보며 참 많이 기뻐하셨다. 어머니의 마지막은 단풍처럼 붉었다.단풍나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알았다.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버려야 할 때를 알았다. 가장 아름다울 때. 이제는 무거워진 것을 하나둘 내려놓을 때이다.

2021-11-10

내일 생각은 누가 하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자본주의가 가진 최대 약점은 무엇일까? 자본이 중심이 되어 세상만사가 돌아간다. 지상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린 돈. 돈 많은 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일들을 드물지 않게 목격하는 유전무죄와 돈이 없으면 감수해야 한다는 무전유죄. 돈이 힘이 되는 세상이 아닌가. 약육강식과 약자도태도 금력의 정도 차이로 나타난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망하면 죽는다’는 적자생존 인식을 공포스럽게 그리고 있다. 돈의 힘은 과연 세다. 하지만, 이 모든 말초적이고 표피적인 ‘머니게임’의 뒷 자리에는 보다 더 싸늘한 약점이 도사리고 있다.누구도 ‘내일’을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좋은 이웃’이 되고자 하는 이는 뉴스거리가 된다. 거의 비정상이다. 둘러보아도 진지하게 ‘다음세대’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말이 좋아 백년대계라는 교육을 누가 진정으로 걱정하는가. 인류최대의 난관이라는 기후위기를 고민하기는커녕 속속들이 이해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은가. 자본주의의 강고한 ‘쩐의 논리’는 내 주머니만 고민하게 하고 내 가족만 추스르게 한다. 공연히 남을 생각하는 이는 바보가 되고, 혼자서 선의을 떠올리는 자 공상가가 된다.내일을 걱정하고 남들을 돌아보다가는 오늘을 놓치고 기회는 흘러간다. 착한 생각과 미래 걱정에 돈이 함께 할 턱이 없다. 오늘 눈 앞에 펼쳐진 기회에 집중해야 하고, 돈 앞에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어려운 이웃은 못 본 척 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는 잊어야 한다. 단기에 집중해야 하고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모두의 눈을 멀게 한다. 적절하게 눈을 감아야 성공하고, 철저하게 매정해야 겨우 이긴다.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은 ‘내일 생각’을 잊게 하는 데 있다. 돈을 사랑하게 하여 남 생각을 못하게 하는 데 있다.정치는 달랐으면 하는 게 소박한 국민들의 생각이다. 우리 정치가 나라의 미래를 꿈꾸게 하고 다음 세대를 걱정했으면 한다. 자본주의가 모두에게 미래와 선의를 끊임없이 망각하게 하지만, 국민을 대표하는 당신들은 달랐으면 한다. 당장 20대와 30대가 힘들다고 하지 않는가. 그들을 진심으로 보듬고 함께 내일을 기획해야 한다. 누구도 우리 교육의 내일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길고 긴 미래를 확보하려면, 교육의 틀부터 바꾸어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미래와 다음 세대를 회복하는 일이다. 자본주의의 약점을 극복하고, 내일을 향한 비전을 찾아야 하고 남들을 향한 배려에 나서야 한다.자본주의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공감 능력을 낮추려 하지만, 우리는 그 약점을 간파하여 지혜롭게 이겨내야 한다. 내일을 향해 생각을 열어야 한다. 멀리 바라보아야 나라가 산다. 함께 살아야 하는 이웃에 살피는 시선을 돌려야 한다. 이웃이 웃어야 모두가 행복하다. 자본주의의 약한 부분을 이겨내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편해진다.

2021-11-10

월성 1호기 7천억 날리고 기어코 해체인가?

고리 1호기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원전인 월성원전 1호기가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7천억원의 수리비를 들여 연장운영에 들어갔던 월성 1호기 폐쇄를 두고 그동안 경제성 평가 조작과 사회·경제적 비용 낭비란 거센 비판이 있었지만 정부의 탈원전정책 기조 속에 기어이 해체 과정을 밟는 모양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9일 “월성원전 1호기의 해체 로드맵이 이사회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에 한수원은 해체계획, 안전성 평가, 부지복원 등 최종 해체계획서를 작성하고 주민의견 수렴과 품질보증계획서를 첨부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으면 해체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해체 비용은 8천129억원으로 추산된다 했다.원전은 수명이 종료되더라도 안전에 문제가 없으면 수명을 연장해 가동한다. 미국 등 전 세계가 그렇게 한다. 월성 1호기도 2012년 11월 설계수명이 끝나 가동을 중단했지만 7천억원의 수리비를 들여 2022년까지 연장운영에 들어가기로 했다.그러나 현 정부 들어 탈원전정책이 추진되면서 월성 1호기는 2018년 가동이 중단됐다. 수리비에 투입된 비용과 원전기술 사장, 원전기술자 양성과 이탈 등의 문제로 탈원전에 대한 반발 여론도 만만찮았으나 정부는 여전히 탈원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현재 국내에는 고리 2호기를 비롯 10년 내 수명종료를 앞둔 원전이 7기나 된다. 월성 1호기와 같은 방법으로 이들 원전도 운영을 종료한다면 국내 에너지 수급에는 상당한 지장이 초래된다. 월성 1호기 중단 등 현재 탈원전정책만으로 한전의 적자가 갑자기 불어나는 등 각종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특히 이번 해체에 들어가는 월성 1호기는 감사원 감사결과 “경제성이 낮게 평가됐다”는 결과가 나와 사법당국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앞으로 이와 관련 어떤 논란거리가 더 등장할지 알 수 없다.월성 1호기 해체에 소요되는 비용 8천여억원과 보수비용을 합치면 1조5천억원 이상의 국가적 손실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부담을 늘리고 에너지 수급 불안정으로 전기료도 올려야 할 판이다. 경제적 약자인 서민이 가장 심한 타격을 입어야 한다.국민의 67%가 원자력 사용에 찬성이다. 국제적으로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중립이 대세다. 우리도 동참을 선언했다. 원전없는 탄소중립은 현실성이 없다. 월성 1호기 해체는 재고돼야 한다.

2021-11-10

대선 테마주의 허상

대선 테마주가 증권시장을 뜨겁게 달구곤 한다. 대선 테마주는 여야의 대선 후보와 관련있다는 기대심리 확산으로 주가가 오르는 주식을 가리킨다.그러나 전문가들은 공약에 따른 정책 수혜 기대감이 아니라 대표의 인맥 등 별다른 근거없는 대선 테마주 투자는 위험하다고 조언한다.대표적인 것이 바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의 대표적 테마주로 꼽힌 경남스틸과 삼일이다. 이 종목의 지난 9일 종가는 4천170원으로 5일부터 9일까지 3거래일 간 77.45% 추락했다. 올초 경남스틸의 주가는 주당 1천875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홍 의원이 대선 출마 선언일(17일) 이후 5천원대로 치솟았다. 이후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홍 의원이 유리한 결과가 나오면 주가는 더욱 뛰었다. 최고 1만1천950원(9월28일)까지 올라서기도 했다. 이렇게 올랐던 주가는 홍 의원의 경선 패배와 함께 고스란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삼일 주가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7월말 2천800원에 불과하던 주가가 홍 후보와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한달여 만에 최고 9천300원(9월13일)까지 3배 이상 폭등했다가 홍 의원의 경선 패배와 함께 2천700원선으로 내려앉았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테마주로 꼽힌 서연, 서연탑메탈, NE능률, 크라운제과, 깨끗한나라, 덕성 등도 대표이사, 최대주주, 사외이사 등이 윤 후보와 같은 파평 윤씨라거나 동문이라는 이유로 테마주로 묶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테마주도 대표가 경기도 성남 출신이라거나 이 후보와 동문이라는 이유로 테마주로 분류됐다.별다른 근거없이 대표 인맥에 따라 분류된 대선 테마주의 주가 널뛰기는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10

농사에 필수적인 요소비료도 바닥… 농가 비상

요소 대란의 피해가 전 산업분야로 확산하고 있어 걱정이다. 물류, 운송, 건설, 정유 분야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경고음이 들리는 가운데 농업용 요소비료 품귀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요소비료는 화학 비료 중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서 요소 수출을 규제하고 있는 것도 요소비료 부족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비료업체들로부터 비료를 다량 구입해 농가에 판매하는 경북도내 대부분의 농협에서 요소비료는 이미 재고가 거의 소진됐으며, 요소가 포함된 복합비료도 아주 소량만 남아있다. 지난 9일 현재 안동농협의 경우, 요소비료가 지역 전체를 통틀어 약 200포가량만 남아 있어 1인당 구매 수량을 1포로 제한하고 있다. 경주농협에도 약 200포의 재고가 있어 1인당 5포로 구매를 제한해 판매하고 있지만, 곧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포항, 구미, 의성, 예천 등 대부분 지역 농협에서는 요소비료 재고가 동난 상태다. 농협과 비료업체가 연초에 정하는 비료 가격은 1년간 유지되지만, 요소 가격 상승으로 당장 비료업계에선 내년 계약 때 요소 가격 상승분을 단가에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인 요소비료 공급망 차질로 추후 비료 가격 인상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당장은 수요가 제한적이라 불행 중 다행이지만, 요소 대란이 내년 영농철까지 계속되면 농가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당분간 수출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요소 품귀현상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이 나오고 있다. 농민들은 “일반적으로 벼농사는 2월쯤 해당 토지를 해동시키기 전에 밑거름용 요소비료를 뿌려둔다. 요소 비료가 제때 투입되지 않으면 대부분 작물의 생산량이 최대 절반가량 준다. 특히 벼농사를 짓는 농가에서 가장 심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9일부터 비료회사들이 참여하는 긴급회의를 갖고 비료수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고 하지만,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에 요소비료 수급안정을 위해 총력을 쏟아야 한다. 특히 국내 중소 비료제조업체들이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요소비료 생산을 중단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하니 하루빨리 대응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2021-11-10

11월 나뭇잎 표정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세상 모습이 변하고 있다. 매년 경험하는 것이지만 이맘때 보는 자연의 변화는 경이로운 마법 그 자체다. 자연의 마법은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에겐 효과가 탁월한 처방전이다. 그 처방전을 받기 위해 전국 산하에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은 거대한 파도 같다.11월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바람이다. 굳이 큰 바람까지 필요 없다. 작은 바람이면 된다. 나무에게 있어 작은 바람은 위로다. 작은 바람 한 번이면 나무는 지난 계절 동안 지켜온 시간을 흔쾌히 놓는다. 그 모습에 주저함이나 머뭇거림, 망설임 따위는 전혀 없다.자유로운 것이 무엇인지, 또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우리 가까이에 그 방법이 있다. 무조건 부정부터 하는 억지 마음을 내려놓고 도로의 배경으로 묵묵히 서 있는 가로수를 보라. 그러면 나무가 내는 길과 저마다의 춤사위로 자유의 춤을 추며 기꺼이 길을 나서는 나뭇잎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마음의 눈을 크게 뜨면 신명에 겨운 나뭇잎의 표정과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겸허한 마음까지 마음에 담을 수 있다.나뭇잎의 표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알지 못함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애써 찾자면 “초월(超越)”이 아닐까! 가지를 떠난 다음의 일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뭇잎이 나뭇가지와의 시간을 놓을 수 있는 것은 떠난다는 사실조차 넘어섰기 때문이 아닐까!그 마음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지 안다면 세상은 지금처럼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학교에서 이런 것을 학생들에게 찾도록 하는 교육을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시험 문제로 낸다면 어떨까? 정말 이런 교육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교육일까?자연이 한결같은 이유는 인정(認定)함을 알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부정(否定)이 없다. 상황이 변하더라도 자연은 그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결과를 겸허히 기다린다. 결과를 바꾸기 위한 편법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자연에는 실패가 없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순리요, 자연의 섭리이다.11월은 학교 교육에 있어 가장 큰 결실이 있는 달이다. 입시(入試)! 학생 수가 줄어 곧 문 닫을 학교(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들이 속출할 거라고 하지만 이 나라에는 지옥 같은 입시판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입시판에서 죽을 힘을 다하는 학생에게 나뭇잎 표정을 운운하는 것이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인지도 모른다.그래도 필자는 나무들이 나뭇잎을 다 털고 동안거에 들기 전에 꼭 학생과 선생님이 교실과 교과서의 사각 틀에서 벗어나 나이테를 키우는 나무 앞에 서기를 바란다. 그래서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의 이야기를 듣고, 한 해 동안 최선을 다한 나뭇잎의 표정을 꼭 보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 표정을 닮으려는 마음을 들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필자가 이토록 강하게 원하는 이유는 만약 코로나 이후에도 이 나라 교육이 지금과 같다면 이 나라 교육에는 희망은 없기 때문이다.

2021-11-10

‘오징어 게임’식 한국 선거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오징어 게임’이라는 영화가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영화 ‘오징어 게임’은 어린 시절 즐겼던 6개의 추억의 게임을 통해 456억 원의 상금의 주인을 가리는 극한 경쟁을 그린 작품이다. 대형 상금이 걸려 있는 오징어 게임은 처절한 경쟁 속에서 승리하려는 인간 욕망을 잘 표출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약육강식과 정글의 법칙만이 통하는 경쟁구도에서 승리하기 위한 몸부림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미국의 NYT는 ‘오징어 게임’ 자체를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한국인들의 이야기로 평가했다.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것은 적자생존의 욕망을 담아낸 이 영화가 우선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한국 사회의 각종 선거 역시 일종의 오징어 게임이다. 지방의원, 국회의원, 대통령이 되기 위한 각종 선거도 결국은 승자를 가리기 위한 치열한 게임이다. 이 처절한 게임의 최종 승자는 처음부터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데 매력이 있다. 선거 초반에는 단연 일등을 유지하다 갑자기 추락하는 후보가 있고 후발주자가 앞서가 성공한 경우도 허다하다. 한국 정치도 ‘오징어 게임’과 같이 무수한 실패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이 비정한 게임에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도박에 목숨을 걸 듯이 뛰어 들고 있다.한국의 정치판에도 ‘오징어 게임’처럼 비정한 규칙은 존립한다. 지지층을 중심으로 진영으로 갈라 줄다리기 놀이까지 등장한다. 선거법이라는 그럴듯한 규칙이 존재하지만 승리하기 위해서는 변칙이 다반사로 발생한다. 법망만 피한 상대에 대한 비난과 흠집, 마타도어와 흑색선전인 네거티브가 자행되는 것이다. 승리를 위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모술수가 동원될 수밖에 없다. 최종 승자가 456억을 독점하는 ‘오징어 게임’처럼 대선의 승자는 온갖 특권을 누린다. 사실 선거라는 제도는 대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민주주의 편의적 방식이다. 선거의 결과는 다수결의 결과일 뿐 결코 분배 정의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 역대 대선에서 노무현이나 박근혜 대통령 당선처럼 2∼3%의 차이로 운명이 달라진 경우도 많다. 이번 대선도 5%내외로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이번 선거도 결국 승자가 독식하는 네거티브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선거의 승자는 정의가 되고 패자는 ‘오징어 게임’의 탈락자처럼 비참하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는 선거를 폐하고 과거처럼 권력의 세습이나 체육관 선거로 돌아갈 수 없다.이번 대선에도 초장부터 일확천금을 노리는 ‘오징어 게임’처럼 참가들이 엄청 많았다. 누가 정치를 단기 투자로 가장 장기적 재미를 보는 비즈니스라고 했다. 그러므로 4∼5년마다 재개되는 게임은 흥행될 수밖에 없다. 이 정치판에도 오징어 게임이 불가피하다면 게임의 규칙부터 바로 잡고 참가자들이 철저히 지켜야 한다. 신자유적 경쟁은 피할 수 없고 치열한 경쟁은 능률을 수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나라 선거가 적자생존의 오징어 게임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내가 살고 너는 죽는 처절한 경쟁만이 능사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공생의 정치는 언제쯤 가능할까.

2021-11-10

타인의 눈으로 본 포항

류영재​​​​​​​포항예총 회장 포항시가 법정문화도시에 선정되어 국비지원의 문화도시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오랜 세월동안 철강생산 중심의 산업도시로 문화의 불모지라 인식되어 온 포항이 국가에서 법으로 인정하는 문화도시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이다. 시행 1기에, 더구나 최우수 문화도시로 선정됐으니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기 지정을 앞두고 있는 올해에 그 문턱을 넘기 위해 진력(盡力)하고 있는 도시들의 면면을 보면 경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순천만국가정원의 생태문화도시 순천과 도시 자체가 예술인 통영 등 16개 시군이 총력을 기울여 경합중이며 그 중에서 6개의 도시가 지정된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한지 짐작 가능한 일이다.포항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문화도시 사업의 중 예총이 주관하는 것으로 ‘포항에서 한 달 살기-받아쓰기? 바다쓰기!’라는 프로젝트가 지난 주말 마지막 평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사업은 타 지역 예술가들이 한 달간 포항에 머물면서 지역문화를 체험하며 지역의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본인들의 작품 제작을 위한 영감을 얻기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지역과 타지역의 예술 활동이 연결되도록 하는 네트워크 프로그램이다. 과연 타인의 눈으로 보는 포항의 느낌은 어떤지, 포항의 예술적 자산은 무엇이며 문화도시로 정착 발전 가능성은 어떠한지를 진단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예술가를 환대하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고, 타 지역 예술가들의 눈과 입과 영감을 통하여 포항의 문화적 가치를 진단하고 예술가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데 활용하려는 전략이다.초대된 작가들은 구미에서 온 동화작가와 시각디자이너, 대구에서 온 패션그래픽 작가, 그리고 내년도 문화도시 예비지정을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고흥에서 영호남의 경계를 넘어 참가한 화가 등이다. 그들은 구룡포의 ‘아라예술촌’과 송라의 전원주택 작업실 등에 거주하면서 한 달 동안 오감을 활짝 열고 포항의 곳곳을 누볐다. 해양문화에 관한 워크숍을 열었고, 바다가 전해주는 말을 받아 적기도 하였고, 내연산 등 명소를 탐방하였고, 축제, 공연, 전시 등 문화행사를 체험하며 포항을 느끼고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초대 작가들의 공통적인 감동 포인트는 바다와 산, 그리고 도시가 잘 어우러져 예술적 아우라가 풍부한 고장이라는 것이었다. 다양한 포항의 색깔에 반했고 이를 본인들의 작품에 표현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그들은 완성작품을 제출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하였다. 바다 테마의 동화를 쓸 것이라 했고, 바다 이미지를 패턴화한 굿즈 제작, 해양 일러스트, 포항 인상의 회화작품과 시화 등으로 전시회를 열자하였다.고흥에서 초대된 화가는 필자의 대학동기생이다. 그는 포항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며 대학동기 4명을 구룡포 ‘아라예술촌’으로 불렀다. 40년 세월을 넘어 초로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만난 그들은 ‘포항으로의 일탈’이라며 유쾌하게 웃었고, 곳곳을 돌아보며 매력적인 도시 포항에 탄복하여 1970년대 윤정희 주연의 영화 ‘화려한 외출’을 소환하였다. 밖에서 본 포항은 불황의 도시도 삭막함도 아닌 문화가 넘치는 도시였다.

2021-11-09

메타버스, 가상의 세계로의 초대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 요즘 IT분야 최대 화두 하나를 꼽으라면 ‘메타버스(Metaverse)’가 아닐까. 메타버스는 초월이라는 뜻의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가상현실과 같은 실감 기술의 도움으로 가상의 정보와 실재하는 공간이 하나로 합쳐진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융합된 세계를 뜻한다. 메타버스는 1992년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 쓴 스노우 크래쉬(Snow Crash)라는 SF 소설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다.소설의 배경이 된 메타버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가상 세계 속 내 모습인 ‘아바타’이다. 메타버스에서는 현실 세계의 모습이 아니라, 가상 세계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모습으로 활동한다. 주인공 히로는 현실에서는 피자를 배달하는 전직 프로그래머인데, 메타버스 속에서는 세계 제일의 검객이다. 두 번째 특징은 도시 공간의 개발 방식이다. 스노우 크래쉬 속 메타버스는 원래 아무런 특징이 없는 검은 행성이다. 그곳에는 행성의 둘레 전체를 잇는 폭 100m, 길이 65,536(=216)㎞의 직선도로인 ‘더 스트리트’가 있으며, 그 도로를 중심으로 도시가 만들어진다. 메타버스에서 부동산 개발을 하려면, 독점적 권한을 가진 ‘규약 단체 협의회(Global Multimedia Protocol Group)’의 승인하에, 공터를 사들이고 지역 개발 승인과 각종 허가 사항을 득해야 한다. 기업들은 더 스트리트에 가상의 건물을 짓고 영업하기 위해 돈을 내야 하며, 그 돈은 신탁 기금으로 들어가 더 스트리트를 유지·확장하는 비용으로 사용된다.최근 메타버스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역할이 컸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인간의 기본 욕구인 사회적 관계와 대면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현실 세계를 능가하는 사회, 문화, 경제적 활동이 가능한 메타버스 세상 속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게 된 것이다. 실제로 대학의 입학식, 기업의 신입사원 교육, 인기 아티스트의 공연, 정치인의 선거유세, 지역 축제, 기업의 신제품 런칭 등 주로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던 활동들이 메타버스 공간으로 대거 이동하는 모습은, 더 늦기 전에 메타버스에 올라타라는 독촉의 소리에 힘을 보탠다.30년전, 가상공간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의 소설이지만, 스노우 크래쉬 속에 묘사된 디스토피아적 메타버스는 그 후 수많은 SF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에서도 닐 스티븐슨의 표현과 유사한 디스토피아적 메타버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선지적 능력을 지닌 천재들이 한 마음으로 메타버스를 디스토피아로 표현한 것은 어쩌면, 개인이나 기업은 물론, 정부와 지자체까지 합류한 지금의 메타버스 열풍 현상에 대한 우려와 경고가 아니었을까? 목적지도 모르는 메타버스 열차에 무조건 올라타기보다는, 그 실체와 본질에 집중하여 인간에게 이로운 메타버스가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2021-11-09

첫눈

김규종 경북대 교수 9월의 궂은 나날이 가고, 10월의 화려한 가을날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축복처럼 보태진 11월의 며칠 동안 화사하고 기막힌 가을의 끝이 신속하게 사라진다. 입동(立冬)이 지나고 불어오는 찬 바람 속에서 첫눈의 기억이 아련하게 찾아든다. 첫눈은 언제나 무한한 설렘과 기대와 함께 찾아온다. 어느 날 홀연히 첫눈은 갑작스레 환한 얼굴로 지상으로 하강한다.아주 어렸을 때 첫눈이 오면 마구 뛰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동네방네 뛰어다니곤 했다.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음은 분명하다.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 내면의 어느 깊은 곳에서 그렇게 하도록 인도하는 어떤 힘이 있었을 터였다. 그런 시절이 아스라히 사라진 지금도 그 시절은 언제나 그리워진다.얼마 전에 폴란드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를 보면서 기억에서 떠나보냈던 첫눈이 새삼스레 떠오는 것이었다. 1986년 4월 26일 일어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를 소재로 만든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 영화는 우리를 낭만과 기대로 가득한 환희의 시공간이 아니라, 인류가 맞닥뜨린 재앙의 과거과 현재를 돌이키도록 한다.1945년 8월 일본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앞으로도 이런 가공할 재앙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음은 자명한 사실 아닌가?! 그런데 영화의 끝은 아주 아름답고 풍성하다. 하얀 폭설로 작은 도시 하나가 완전히 뒤덮여가는 환상적인 장면으로 가득하다.첫눈에 담긴 뜻이 무엇일까요, 하는 물음에 예기치 않음, 기다림, 설렘이라 답하는 사람에게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는 노래를 들려줬다. 사실 이 노래를 들은 것은 나도 이번이 처음이다. 노래를 듣지 않고 지나간 세월이 제법 길다. 엔진 오일 교환하러 들른 정비공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시디에 실려있던 노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아, 이런 노래가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한꺼번에 찾아들었다. 노랫말도 곡도 대단한 노래를 여태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집으로 오는 길에 자꾸만 들어도 질리지 않는 절창(絶唱). 4년 전이라는 노래의 생성연대를 돌이키노라니, 세월이 참 무상하게 흘러가는구나, 그런 생각이 떠온다.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떠나가거나 찾아오는 주체는 언제나 남성이었는데, 이번 노래에서는 노래하는 여성이 연인을 찾겠다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21세기 변해버린 세상과 인연과 관계를 잠시 떠올린다. 남성에게 의지하는 나약하고 순종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길을 찾아 담대하게 나아가는 신여성의 모습이 듣기에도 좋았다.그래서 올해 첫눈이 언제 내릴 것인지, 내기를 걸었다. 학부 다닐 때 무려 3년 연속 첫눈 오는 날을 맞췄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술 한잔 내기로 했다. 첫눈이 내리는 그날이 오면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하얀 보도를 오래도록 걷고 싶다. 첫눈이 오면!

2021-11-09

포퓰리즘으로 대통령 되겠다는 생각 버리길

정부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전 국민 추가 재난지원금 지급을 연일 공언하면서 여당 지도부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민주당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그저께(8일)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과 관련해 “추가세수가 대략 10조∼15조원 정도면 전 국민에 가능한 금액은 20만∼25만원 정도”라고 언급했다. 시기 및 방식과 관련해서는 “올해 안에 3차 추경은 촉박하고, 본예산이나 대선 전 (추경)이냐 대선 후 (추경)이냐 등의 경우의 수를 놓고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도 “국민들은 가계부채로 쓰러지는데, 기재부가 국민들한테 25만∼30만원을 주는 것에 벌벌 떨면 되겠느냐”며 정부를 비난했다.정부는 여전히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재정여력이 없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재명 후보의 추가 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에 “여건상 올해는 추가경정예산이 있을 수도 없을 것 같고 여러 가지로 어려울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재정 당국 입장에서는 피해계층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거듭 반대 의견을 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 60%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5~6일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1천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60.1%가 ‘재정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지급반대 여론은 연령별로는 20대(68.0%), 지역별로는 대구·경북(70.5%)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선진국 35국 중에서 가장 빠르다고 한다. 올해만 해도 우리나라 살림은 90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에 이어 적자국채발행액이 100조원을 넘어섰다. 국가재정상태가 이런데도 이재명 후보는 올해 초과 세수가 40조원이나 돼 나라곳간이 꽉꽉 채워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집권여당이 국가부채의 급속한 증가에 대한 리스크를 가볍게 여기면 나라가 큰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대선후보들이 포퓰리즘으로 선거를 이기겠다는 생각은 버리길 바란다.

2021-11-09

희망퇴직

1997년 11월 21일은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키로 공식 결정한 날이다. 그해 12월 3일 우리나라는 IMF와 공식협약을 맺었다. 20여 년 전 있었던 외환위기는 기업의 줄 도산과 실업자 양산 등 서민들의 삶에 큰 생채기를 남기고 우리나라 역사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특히 직장인들에게는 IMF를 이유로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고, 정년이 보장되는 고용시장은 살얼음판 걷듯 불안해지기 시작했다.희망퇴직은 근로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사직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퇴직 의사를 사전에 묻는 절차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일반 퇴직과는 성격이 다르다. 희망퇴직은 퇴직을 하고 싶지 않은데도 사퇴하는 경우도 포함되고 있다는 뜻이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경영난 극복을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지만 직원은 일생일대 중대 고비점이 된다.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금융계와 유통계 등 국내 산업계 전반으로 희망퇴직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계서만 40∼50대 직장인 4천여 명이 연말까지 희망퇴직으로 직장을 떠난다는 소식이다. 일부에서는 IMF 초기의 분위기를 느낀다는 말도 나온다. 직종에 따라 희망퇴직금의 차이는 있으나 희망퇴직을 하는 사람들은 수억원의 퇴직금을 들고 또다시 새로운 인생 출발점에 서야 한다.가족의 생계를 거머진 가장으로서는 출발 자체가 두렵고 걱정도 앞선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오래가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희망퇴직 역시 비대면 문화 확산 등 코로나 영향이 적지 않다. 희망퇴직에 나선 이들이 과연 말 그대로 희망의 길을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09

공공기관 지방이전 현정부 임기내 추진해야

포항을 비롯 전국 비혁신도시 9개 단체장은 8일 서울에서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위한 토론회’를 갖고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채택했다. 비혁신도시 단체장이 모여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촉구한 것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 반드시 혁신도시에만 국한돼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지역별 특성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고려해 이전도시의 범주도 넓혀야 한다는 의미다.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은 소멸위기에 봉착한 지방 도시라면 누구나 환영이다. 그만큼 지방도시가 안는 위기감이 크다는 뜻이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이제 유치를 희망하는 도시도 혁신도시를 넘어 비혁신도시까지 확산됐다.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촉구 건의에 참여한 도시는 포항과 구미, 상주, 문경, 충주, 제천, 공주, 순천, 창원 등 9곳이나 된다.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인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경북 안동에서 열린 대한민국 균형발전박람회에 참석한 김부겸 총리가 “대선국면에서 추가 이전추진은 매우 어렵다”고 밝힘으로써 현정부 임기내 이전 전망을 어둡게 했다.8일 비혁신도시 단체장과 만난 자리에서도 김 총리는 “우리 정부가 이전과 관련한 로드맵과 기준을 확실히 정리해놓아야 다음 정부에서 차질없이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말해 사실상 2차 공공기관 이전은 무산됐음을 확인했다.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믿고 기다려 왔던 비수도권 자치단체로서는 매우 실망스럽고 의아하다. 김 총리의 말대로 대선 코밑이라 힘들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대선이든 지방선거든 이미 예고된 행사였고, 그것이 문제라면 그 전에 서둘렀어야 했다. 2018년 이해찬 여당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122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약속했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정부가 게을리 한 것이다.오히려 시간을 끌면서 지역간 갈등의 소지만 키웠다. 비혁신도시 단체장은 건의문에서 “지방도시의 저출산과 고령화, 일자리 위기, 지방대의 위기 등 지금 지방은 총체적 위기에 당면해 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이전은 이제 지방 생존권의 문제가 됐다. 정부와 여당은 현정부 임기내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지금이라도 구체화해야 한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차기 정부의 몫으로 미루는 것은 책임 회피로 보일 뿐이다.

2021-11-09

산림, 또 다른 한류 그리고 일자리의 새로운 寶庫(보고)

조병철 남부지방산림청장 우리나라 추억 놀이 이름에서 나온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의 흥행이 예사롭지 않다. 세상에 공개된 지 불과 한달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시청자가 1억명을 가볍게 넘어섰고, 250억원에 불과한 투자액은, 1조원이 훌쩍 넘는 수익이 되어 돌아왔다.‘오징어 게임’에서 절정을 보이는 한류는 90년대 중반 이후로 아시아에 한정되어 유행했던 것과는 달리,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에 유행이 시작되더니, 어느새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으로 이어져 세계 문화를 선도할 정도에 이르렀고, 김구 선생님이 갈망했던 것과 같이 드디어 우리나라의 문화적 자존감을 높여주고, 동시에 큰 경제효과를 보여주고 있다.△또 다른 한류… 우리 나무, 우리 숲, 그리고 일자리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거리에는 겨울 분위기를 한껏 로맨틱하게 만들어주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한다. 바로 이 크리스마스트리로 쓰이는 나무가 우리나라 토종 나무인 ‘구상나무(학명: Abies Koreana, 통상 외국에서는 korean fir로 불리며 직역하면 한국 전나무)’임을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1920년대 하버드 식물분류학자인 어니스트 윌슨이라는 학자가 제주도에서 이 나무를 발견하곤, 새로운 수종으로 등록하고 트리 용도에 맞게 개량해 현재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나무가 되었다고 하니, 구상나무도 어쩌면 한류의 시작 중 하나 일지도 모른다.이와 함께 우리나라는 UN이 인정한 전후(戰後) 황폐했던 산림을 복원한 세계적으로 유일한 국가로 뛰어난 산림복원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 기술은 또 다른 한류의 하나로 우리나라의 높은 산림분야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지구 차원의 기후 생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일례로 매년 봄이면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가 고통 받는 황사의 원인 중 하나인 사막화를 막기 위해 우리나라의 자금과 기술로 2008년에 조성된 몽골의 룬솜 지역의 숲이 어느덧 10m가 넘을 만큼 자라나 사막이 확대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한다.국내에서도 그동안 가꿔온 숲은 이제 다양한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목재로써의 가치는 물론이며, 숲이 가진 아름다운 경관은 또 다른 한류 콘텐츠로 활용될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2019년 숲길을 조성하기 시작한 영양자작나무숲은 지금까지 약 8km가 조성됐으며, 기반 시설은 2023년까지 조성 중으로 아직 정식 개장 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오징어게임’, ‘구상나무’에서 보듯 우리나라 대중문화, 산림환경은 한류로써 무궁무진한 잠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한 경제적 가치도 물론이다. 이제는 우리가 가진 숲을 적절히 보호하고 활용하는 보전과 이용의 균형을 달성 할 수 있는 현명함을 견지하고, 숲을 바라본다면 숲은 우리에게 높은 경제적 가치와 함께 다양한 새로운 일자리을 제공하는 새로운 보고(寶庫)가 될 것이다.

2021-11-09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의 새로운 씬

지난 여름부터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 푹 빠져있다.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는 국내를 대표하는 여자 댄서들이 참가하여 댄스 경연을 펼치는 배틀 프로그램이다.첫 화부터 뜨거운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매 회가 거듭할수록 대단한 파급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예능 부분에서 4주 연속 콘텐츠 기능력 1위를 차지했으며 비드라마 화제성 부분에선 5위의 기록을 달성했다고 한다.2021년 최고의 화제 프로그램이라는 수식어와 걸맞게 SNS에만 접속해도 스우파의 인기를 쉽게 실감할 수 있다.그들이 만들어낸 유행어가 밈이 되어 돌아다니고, 팀별로 펼치는 댄스 경연 장면은 하이라이트 편집본으로 제작되어 조회수 2억 회에 달하고 있을 정도다.게다가 라이브 무대로 열리는 콘서트 또한 1분도 안 되어 서울 포함 총 5곳 지역의 표가 전부 매진될 정도라니, 아이돌 못지않은 거대 팬덤을 지니게 된데다 화보촬영과 인기 예능 출연 등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사실 그간 여러 댄스 경연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대부분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혹평을 받기 일쑤였다. 비슷한 플랫폼과 서사를 지녔음에도 이와 반대로 스우파가 뜨거운 화제성을 낳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그동안의 경연 프로그램은 철저하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냈으며 단순 스토리와 악마의 편집으로 자극적인 흥미만을 이끌어내는 것에 그쳤다.하지만 이러한 전형적인 폼에 질린 시청자들은 스우파에서도 어김없이 진행됐던 악마의 스토리에 속지 않았다.오히려 시청자들이 잘못된 편집점을 찾았을 정도였고 전 출연진이 여성인만큼 강렬하고도 능동적인 우먼 파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화려한 춤과 노래를 뽐냈던 아이돌 발굴 경연 프로그램과는 달리 정제되어 있지 않은 말투와 리액션을 보여주어 새로움을 가져다주었다는 호평이 크다.그들은 춤을 통해 자신만이 품고 있는 색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표현해내며 정형화되어 있던 여성의 이미지를 탈피하여 새롭고도 힘 있는 결을 보여줬다는 것이다.경연이기에 라이벌 구도가 선명히 드러나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이 초반에는 있었지만 가질 수밖에 없던 오해를 풀면서 그들은 서로의 열정을 위로하고 공감하며 특유의 폭발적인 에너지 분출로 유쾌한 장면을 만들어낸다.시선을 잡아끄는 퍼포먼스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머뭇거림보다는 직진에 가까운 열정과 충실함에는 숨을 멈추고 멍하니 장면을 보게 한다.음악이 시작되면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신체의 일부분을 높게 들거나 뻗으며 상대를 제압하거나 표정으로 의사를 표시하기도 하고 가벼운 손짓과 눈빛엔 정확한 감정과 의도를 담아 스테이지를 장악한다.춤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댄서들은 인상 깊은 씬을 여럿 보여주었다.파이널 무대로 선 ‘훅’팀은 ‘엄마가 아이에게’라는 곡으로 그간 보여주었던 파워풀하고 재기발랄한 춤에서 벗어나 수화를 통해 모성애를 담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춤은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많은 언어를 전달하여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도 한 사실을 알았다.‘프라우드먼’팀에서 보여준 무대 또한 잊지 못할 것 같다.맨 오브 우먼 미션에서 보여준 무대에선 남성과 여성이라는 고착화된 관념에서 벗어나 ‘나’라는 개인은 의견과 리듬 그리고 가치관을 통해 이루어져 있으며 미디어에서 제시하는 여성 또는 남성의 이미지에 그치지 않는다는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사실 경쟁 무대인만큼 가장 화려하고 파워풀한 무대를 보여주어야 눈에 잘 띄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이들은 대중들이 선호하는 잘 만들어진 무대나 익숙함을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것을 무대 위로 이끌어 보여주었다는 것에 감명 깊었다.댄서란 무대 위의 가수 뒤를 보조하는 역할을 해 오는 걸로만 생각했었다.하지만 한 명의 가수와 무대를 빛내게 하는 것은 여러 댄서들의 퍼포먼스와 열정 덕분이라는 걸. 한 분야에 있어 진심을 다하는 이들의 행보는 얼마나 근사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달았던 가쁜 경험이었다.비단 댄서만이 아닌 이 스트리트 위에 서 있는 모든 이에게도 해당 되는 것임이 분명하다.눈에 띄지 않지만 묵묵히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이다.

2021-11-09

밥섬 식도의 위대한 밥상

동해도 근사하지만, 때로는 서해만이 가진 ‘쓸쓸한 아름다움’이 사무치기도 한다.고요하고 내밀한 휴식이 필요할 때면 나는 서해의 작은 섬 식도로 간다. 주민이라고 해봐야 60세대 200명이 채 되지 않는, 면적 0.86㎢의 작은 섬이다.섬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여객선 안에는 격포에 장을 보러 갔다가 섬으로 돌아오는 어르신 몇이 전부였다. 뱃고동 소리와 함께 여객선이 접안하자 어르신들은 손수레와 보따리를 양손에 짊어지고 다시 섬을 밟았다. 나도 그분들을 따라 낚시가방을 들고 배에서 내렸다.식도에 올 때면 늘 찾는 한 민박으로 향했다. 서해의 작은 섬들이 보통 그렇듯 식도에도 변변한 식당은 없고, 그나마 민박과 밥을 겸하는 서너 곳이 다.그런데 섬에 상수도 공사가 벌어져 공사 노동자들이 지내느라 빈 방이 없다고 한다. 다행히 식도리 이장님이 근처를 지나다가 자기네 집에서 묵으라고 하신다. 이장님 집도 민박과 식사를 겸하는데, 공사 인부들이 묵긴 하지만 남는 방이 있다고 했다.이장님 차에 사모님과 함께 셋이 끼어 타고는 마을 몇 군데를 다니며 멸치를 내려다 줬다. 집에 도착하니 이장님께서 안방을 내어주며 편하게 쓰라고 하신다. 너그러운 인심이 따뜻한 물살을 퍼뜨렸다.가방을 풀고, 낚시 준비를 해서는 방파제 석축에 섰다. 혼자 고요함을 찾아 온 섬, 마음에서 수런거리는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우럭을 먹을 만큼만 잡고 낚시를 접었다.욕심을 버리는 순간 그동안 내 안의 소음 때문에 듣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석축에 부딪치는 파도가 뭐라고 말을 한다. 할 말을 오래 참아 붉어진 입술처럼, 저녁노을이 나를 보며 옴짝달싹한다. 일찍 떠오른 낮달이 허밍으로 노래한다. 먼 산 나뭇가지에서 흔들리는 단풍잎이 자꾸만 내 이름을 부른다.외부의 풍경이 내 안으로 들어와 풍경과 내가, 세계와 내가 경계 없이 몸을 섞을 때 오랫동안 잊었던 마음 깊은 곳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우럭 몇 마리 챙겨 이장님 집에 오니 인부들은 이미 저녁을 먹고 방마다 고단한 몸을 누였고, 이장님 가족은 거실에 앉아 화투 놀이하느라 정신없다. 사모님이 식당에 있는 반찬과 찌개를 마음껏 꺼내 먹으라 하신다.우럭 회 한 접시 뜨고, 반찬통을 열었다가 그만 황홀해지고 말았다.꽃게장, 어묵볶음, 장조림, 오이소박이, 방풍나물, 멸치볶음, 버섯볶음, 파김치, 알타리김치, 물김치 등 온갖 맛깔스런 반찬들이 정갈하게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릇 하나에다 반찬 두세 가지씩 함께 담았다. 냄비에는 묵은지와 비계 숭덩숭덩한 촌돼지 고기가 가득 들어간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한 그릇 떠서 상에 올리니, 마음부터 배부른 위대한 밥상이 완성되었다.식도(食島)가 왜 ‘밥섬’인지 이제야 알겠다. 예로부터 어장이 풍부해 먹고 살 걱정은 없었다는 섬, 먹거리보다 인심이 더 풍요롭다.“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뜨거운 우렁된장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밤새 울음,/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별 몇 점 떠있고 냉수 사발 속으로/ 아, 새까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베어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 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트림 몇 번으로 꺼트리며 사립 나서면/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숨이 가뿐 듯 비틀대는/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친 숨소리/ 아, 그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이재무, ‘위대한 식사’)라는 시가 절로 떠오르는 밥상 앞에서 뭉클해졌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을 밥 한 덩이와 함께 목구멍으로 쑥 넘기고, 차가운 소주로 달아오른 가슴을 식히는 동안 저녁은 깊고, 저쪽 거실에서는 찰싹찰싹, 화투패 달라붙는 소리가 풀벌레 울음처럼 정다웠다.아침놀이 창문을 붉게 물들이는 6시 50분. 기상 악화로 7시 20분 첫 배 이후엔 배가 안 뜬다는 방송 소리를 들었다. 서둘러 옷을 입고 나서려는데, 사모님이 아침 먹고 가라 하신다. 공사 인부들과 함께 앉아 또 한 번 뜨거운 것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인부들과 나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食口)’가 되었다. 비록 짧은 몇 분이지만, 나는 낯선 식구들과 말없이 정든 밥상을 떠나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사람의 일생이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온 세상을 떠돌아 헤매는 일이 아닌가. 나는 ‘밥섬’ 식도에서 그 밥 한 끼를 먹었다. 이만하면 성공한 생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2021-11-09

메타버스와 바로크 미술의 귀환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metaverse)는 4차 산업혁명이 일으킨 첫 번째 거대 파도이다. 메타버스는 IT기술을 통해 사람과 세계가 관계 맺는 새로운 방식이다.‘미술과 기술’이라는 대명제 아래 선보이고 있는 뉴미디어 미술창작물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디지털 환경에서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에 특정 알고리즘을 부여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유형이다. 다음으로는 특수 감지센서 등을 이용해 어떠한 변화에 반응하고 이를 경험하게 해 주는 작품이 있다. 세 번째로는 딥러닝이나 머신러닝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작품이 있고, 넷째로 증강현실을 이용해 현실공간에 가상을 작품을 구현하거나, 다섯째로 가상공간에 가상의 작품을 경험하게 하는 작품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소리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거나 연출하는 작품이 있다.자연이나 대상 등을 가상세계에 모방하고 감상자는 기계장치의 도움으로 그것을 경험한다. 가상의 공간에 모방된 현실은 현실에 대한 또 다른 인식과 경험을 가능케 해 준다. 하지만 문제는 모방된 가상세계와 그 가상세계에서의 경험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떠한 가치를 지니느냐는 것이다. 단지 현실을 기술적으로 모방하는 것으로 도래할 미래의 미술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연의 모방과 가상의 창조는 서양미술사에서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2D를 3D로 바꾸는 혁신적인 기술이었고, 17세기 바로크 미술에서는 어떠한 기계장치의 도움 없이 오로지 미술기법으로 실제 건축공간에 가상현실을 구현했다.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맞선 가톨릭교회의 반종교개혁으로 탄생한 양식이다. 가톨릭교회로부터 멀어진 신자들을 시각적으로 압도해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출현한 바로크 미술에서는 건축, 조각, 회화의 경계가 사라졌다.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고전미술을 모범으로 삼았다면 바로크 미술은 이성적 판단과 인지능력을 무력화 시킨 초감각적 가상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자연의 빛이 창을 통과하는 순간 강하게 응축돼 교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그 빛은 금색 장식물들에 부딪혀 찬란한 광채를 뿜어낸다. 건축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그림 속 인물이 조각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더니 어느새 다시 그림이 되어 허공을 떠다닌다.바로크를 수용한 프랑스 절대왕정의 결정체 베르사이유 궁전 곳곳에도 현실과 가상이 뒤섞여 있다. 절대왕정의 이념을 상징하는듯 기하학적이고 대칭적 형태로 가꾸어진 정원 곳곳에는 신화를 그리고 있는 조각상들이 놓여 있다. 회화가 그렇듯 조각 역시나 과거를 현재로, 가상을 현실로 불러내는 그들의 방법이었다. 거대한 정원 사이사이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연극이 펼쳐졌다. 연극이야 말로 가장 오래된 메타버스의 원형 중 하나이다. 왕의 집무실과 침실에 접한 ‘거울의 방’에서도 여러 의미에서 현실과 가상이 교차한다.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운 거울은 현실을 비춰주지만 사실은 가상을 불러내는 장치이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면 호수와 정원 그리고 운하가 시선을 압도한다. 여기서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과 가상이 관계한다. 창밖 풍경은 사실이자 현실이지만 규모와 조성 방식이 너무나 인공적으로 완벽해 오히려 가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음악에 맞춰 분수가 춤을 추면 베르사이유의 가상현실은 현실의 공간에서 완성된다. 메타버스에서 논의되는 가상현실, 현실과 가상의 융합, 현실의 확장이 이미 17세기에 일어났던 것이다.서양미술사는 오랫동안 현실을 과장하고 왜곡해 스펙터클을 연출한 바로크를 퇴폐, 타락, 악취미로 여겼다. 여기서 유래해 서구에서는 규범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바로크적’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로크 양식은 백년 남짓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다가 로코코라는 과도기를 거쳐 신고전주의에 완전히 자리를 내줬다. 고전적 미학을 재부활시킨 신고전주의에 자리를 내어준 이후 바로크의 미술사적 의의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다 20세기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우리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메타버스와 미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바로크의 잔향이 감지된다. /미술사학자 김석모

2021-11-08

경주 남산, 수행의 공간

경주 남산은 최고봉의 이름 따 금오산, 고위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남산 앞에 ‘신라불교문화재의 보고’, ‘천년고도의 노천박물관’, ‘민중 신앙의 산’ 등의 다양한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계곡 곳곳에 산재한 다수의 불적(불상·석탑 등)은 남산이 이러한 별칭을 얻는데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식어 때문에 생긴 막연한 기대와 경외심은 오히려 남산의 역사적 실재를 알아가고 증명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남산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는 무엇일까? 남산은 신라 당대 사람에게 어떤 장소였고, 어떤 연유로 그렇게 많은 불적이 조성되었을까?남산 불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왕경 가까이에 위치한 단일 산록에 다수의 불적이 밀집·분포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계곡에 다수의 불적이 짧은 거리를 두고 각각 위치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특히 어떤 불적의 경우는 도저히 사람이 거주하거나 생활하기 어려운 장소에 입지한 예도 있다. 실제 발굴로 확인된 삼릉계나 열암곡 불적은 많은 사람이 장기간 머물면서 예불을 드릴 수 있는 환경조건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산의 불적은 왜 평지가 아닌 험한 산지를 선택했고, 왜 하필 남산에 그 많은 탑상을 조성했던 것일까?남산의 불적은 개개의 사찰로 이해하더라도 그 곳에 많은 사람이 거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험한 산지계곡이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대규모 사역을 형성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하다. 이러한 주변 환경을 고려할 때 남산의 불적은 매우 개인적인 공간이면서, 또한 속세와는 분리된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남산의 불적이 단순히 예불목적으로만 조성했다면, 한 계곡에 많은 불적이 입지할 필요는 없다. 즉 불자는 기왕에 만들어진 탑상(塔像)에 예불을 드리면 되지, 굳이 가까운 거리에 새로운 탑상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남산의 수많은 불적은 끊임없이 탑상을 만들어가야 할 필요성에 의해 생긴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황룡사, 사천왕사, 분황사와 같은 왕경의 사찰을 발굴하면, 흙으로 만든 작은 탑(小塔)이 종종 출토된다. 발굴된 소탑 중에는 매우 정성스럽게 만든 탑도 있지만, 거칠고 투박한 모습을 한 탑도 적지 않다. 이러한 소탑은 그 조형성이나 예술성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거 같다. 즉 공덕을 쌓기 위한 조탑 행위 자체가 핵심이므로, 그 모양이 다소 투박하더라도 상관없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조탑 신앙은 680년경에 한역된 ‘조탑공덕경’이나 704년에 한역된 ‘무구정광대다리경’의 영향을 받아 실제 왕경 내 많은 탑을 조성하게 한다.한편 ‘삼국유사’ 의해 ‘양지사석’조 말미에는 향가 ‘풍요(風謠)’가 전해진다. ‘풍요’는 영묘사의 장육상을 조성할 때 성 안의 성인남녀가 진흙을 나르면서 불렀던 노래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장육상을 만들기 위해 그 불사에 참여하는 것을 공덕을 닦는 행위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산의 수많은 탑상을 수행의 과정·결과로 생각한다면, 산지나 계곡의 험한 환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인의 종교적 염원이나 깊은 불심은 최소한의 공간만 허락해도 그 장소에 탑상을 조성할 수 있는 충분한 배경이 될 수 있다.남산은 ‘돌산’이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수행자가 저비용으로 공덕을 쌓을 수 있는 매우 적합한 장소라 할 수 있겠다. 즉 조탑(造塔), 조상(造像)을 위한 재료가 산천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종교적 염원만 있으면 얼마든지 공덕을 쌓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된다. 더불어 산은 속세와 분리되어 있어 수행의 장소로서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의 조건이다. 이러한 환경과 조건을 염두에 둔다면, 남산에 형성된 수많은 탑상 중 상당수는 수행자가 공덕을 쌓기 위한 결과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하​​​​​​​경주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 최근 일본학계에서는 수행과 법회를 위해 산속에 지은 불당, 사원을 ‘산림사원’이라 부른다. 이 산림사원의 특징은 두 가지로 정리하는데, 첫 번째는 불교적 수행이고, 두 번째는 평지가람과의 유기적인 관계이다. 즉 평지가람에서는 수학(修學)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산림사원에서는 깨달음을 위해 불교적 수행이 행해졌다. 평지가람에서의 수학과 산림사원에서의 수행이 각각의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돼 있다. 일본의 산림사원은 기본적으로 당탑을 가지고 있으며 회랑을 갖춘 사찰이 많다. 하지만 카스가 산중(春日山中)의 호산 이존석불, 지옥곡의 성인굴마애불, 나라시대 일부 산악의 석불이나 마애불과 같은 유적 등은 그 입지나 주변 환경이 경주 남산의 불적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학계에서는 이러한 불상 역시 산림수행과 관련한 존상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경주 남산의 불적도 일본의 산림사원과 같은 승려의 수행과 관련한 장소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평왕9년(587) 기사 속에는 대세(大世)와 구칠(仇柒)에 대한 세속의 외면과 그들의 깨달음에 대한 염원 등이 감지된다. 대세는 어려서부터 세속을 떠날 뜻이 있었다. 그는 명산에서 깨달음을 얻고,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나 신선(神仙)을 배우려고 했다. 그는 친구를 구하다가 처음 담수(淡水)를 만났지만 끝까지 같이하지 못했고, 이후 그와 같은 뜻을 품은 구칠(仇柒)을 만나 바다로 향해 함께 떠났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두 사람이 처음 찾아간 곳이 바로 ‘남산의 절(南山之寺)’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곳에서 그들은 각자 품은 뜻을 서로 확인했다. 물론 이 이야기 속에서 수행의 직접적인 행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앞서 살펴본 일본의 사례를 비춰볼 때 이야기 속 ‘남산의 절’은 배움과 관련한 수학(修學)의 장소라기보다는 깨달음과 관련한 수행의 장소에 더 무게를 둘 수 있다.

2021-11-08

새 생명을 불어넣는 개선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가을이 되면 들녘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고 땀방울을 흘리며 추수하는 농부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는 언제부터 추수한 곡식을 저장하고 서로 가진 것을 사고팔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농경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농사기술이 발전하여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 것이다. 수확량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남는 곡식을 저장하고 다른 필요한 물건들을 서로 물물교환하면서 많은 저장과 이동이 동반되었고 유통(流通)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을 것이다.유통은 생산과 소비 사이에 존재하며 양자를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생산과 소비 사이에는 장소, 시간, 사람 간의 이격이 존재한다. 예컨대 식탁에 오르는 생선은 근해나 원양에서 오는 것으로 이렇게 생산과 소비 사이에는 장소적인 이격이 존재하며, 이를 연결하는 것이 ‘운송기능’이다. 또 쌀은 가을에만 수확하여 연중 소비가 발생하므로 생산과 소비 사이에 시간적 이격이 존재하며 이를 연결하는 것이 ‘보관기능’이다. 그리고 쌀을 생산한 사람은 본인이 필요한 양을 제외하고 쌀을 사려는 사람에게 팔아 현금화하여 다른 필요한 물건을 사고 싶어 하므로 이를 연결하는 것이 ‘판매기능’인 것이다.이처럼 장소, 시간의 이격을 매워주는 것을 우리는 물적유통(物的流通) 즉 ‘물류’라고 하며, 사람 간의 이격을 매워주는 것을 상적유통(商的流通) 즉 ‘상류’라고 한다. 그 중 제조현장은 물류의 개선이 중요하며 핵심은 장소와 시간적 이격을 줄여 생산하는 물건이 낭비 없이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생산현장을 보면 종종 물류의 핵심 개선 포인트를 잊어버리고 필요 이상으로 저장공간을 많이 두거나, 시간적 이격으로 인해 재공, 재고가 늘어 제품 회전이 늦은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필자가 지도한 회사 중에 1천종류 이상의 내화물을 생산하는 공정이 있었는데, 가열로에서 나온 내화물을 종류와 사이즈 별로 팔레트에 적재 후 별도의 저장공간에 하나의 통로를 통해 저장 후 다시 꺼내어 포장공정에서 포장하여 최종 제품을 공급하는 생산라인이 있었다.내화물의 종류가 많다 보니 넓은 저장공간이 필요하였고 하나의 통로를 통해 입, 출고를 하고 있어 역물류 발생과 포장할 제품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이를 제품 종류별 생산 로트(Lot) 크기를 줄여 재고량을 줄이고, 입고와 출고 통로를 별도로 구분하여 물건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개선하여 하루에도 수백번씩 발생하던 역물류와 시간을 줄인 예가 있다.물류는 ‘사물(物)이 흐른다(流)’를 의미한다. 즉 생산하는 제품의 행선지와 두는 곳을 정하고 시간과 수량을 정해 최적으로 흐르도록 물품에 일종의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적지와 시간이 없는 것은 죽은 물건이 되는 것이다. 제조현장의 모든 생산품에 대하여 생명을 불어넣고 장소, 시간의 이격을 줄이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직원은 낭비를 발굴하는 역량이 향상되고 회사는 제품의 빠른 회전을 통해 경쟁력이 한층 더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2021-11-08

함께 한다는 것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모든 것들이 차츰 제자리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산자락 어딘가엔 열매가 익어 저절로 떨어지고 땀이 서린 들판엔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손길이 분주해진다. 풀잎이나 잎새는 마르거나 물들어가며 조락(凋落)을 기다리고, 벌레나 짐승들은 제 나름의 몸짓으로 먹이를 모으거나 땅을 파며 동장(冬藏)을 채비하고 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이 지나선지 쌀쌀해진 날씨가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의 미틈달은 결실과 수확, 정리와 준비로 제자리를 채워가는 시간이다.세상만물은 모두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구름이 흘러가다가 비를 내리듯이(雲行雨施), 자연은 만물이 두루 은택을 받아 잘 생장하고 완성된다.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이치 속에 온갖 생명체는 생멸을 거듭하고 만남과 헤어짐은 다반사이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정체되면 발전이 없듯이, 우리는 환경과 사물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 버물리고 제자리를 찾아가며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작고 변변찮은 미물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교감과 상호작용으로 자연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미상의 바이러스도 공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여건이 세상을 움직여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코로나19라는 희대의 바이러스와 싸우며 버텨온지 꼬박 2년이 다돼 간다. 설마설마하던 바이러스가 공포와 불안의 회오리를 일으켜 지구촌은 신음과 침체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조마조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친 엄청난 충격과 파장은 수많은 이변과 변화, 생소함과 이질적인 양상으로 나타나 혼돈과 암울의 안개를 여전히 묶어 두고 있다.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모색과 낯선 듯 익숙한 적응으로 난국을 헤쳐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단계적 일상회복’이 11월부터 전면적으로 이행되고 조금씩 삶의 제자리 찾기가 시작된 것 같다.단절과 고립을 걷어내는 포용적 방역관리로 국민들의 피로감을 감소시키고 사회, 경제 등 각 분야의 손실과 피해를 최소화시키며 새로운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적절한 시기의 조치로 여겨진다. 다만, 시민의 자율과 책임에 기반한 방역을 통해 모두에게 소중한 일상으로의 회복을 추진하여 ‘더 나은 내일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솔선수범과 배려와 존중, 신뢰와 공감으로 가정과 이웃을 함께 지켜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 한다는 것은 보듬고 감싸며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또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다독이며 뜻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함께 한다는 것은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서로가 어울려 위로하고 격려하며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뜩이나 혼미하고 흉흉해진 세상일수록 우리는 자신과 서로를 챙기고 사랑하며 더불어 함께 지켜가는 아량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피할 수 없다면 당당히 맞서서 받아들여야 한다.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자연과 인간은 공생해야 공존할 수 있다. 어차피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세상이라면, 희망과 행복의 바이러스를 불러들여 일상의 제자리를 되찾고 평온한 미래를 함께 열어 가길 기대해본다.

2021-11-08

대장동게이트, 특검을 해야 하는 이유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제왕적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대선 게임은 공정해야 한다. 게임의 규칙이나 심판이 불공정하면 부정선거가 된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발화된 ‘대장동게이트’는 인화성이 높아서 선거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 때문에 권력게임에 참가하는 선수(후보)와 심판(검찰·법원)은 물론, 이를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국민)의 관심이 뜨겁다.대장동게이트를 둘러싼 정치게임에서 후보와 국민이 모두 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중립적이고 공정한 수사를 담보할 수 있는 심판, 즉 ‘특검’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장동게이트는 여당의 대선후보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최종 결재권자로서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권력의 시녀가 된 현재의 검찰로서는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야당과 대다수 국민의 판단이기 때문이다.검찰에 대한 불신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수사책임을 맡고 있는 검찰총장 김오수는 임명되기 전까지 성남시의 고문변호사로 일했음이 밝혀졌고,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위반 최종심을 맡았던 권순일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대장동개발 추진사업체 ‘화천대유’의 고문을 맡았으며, 구속된 유동규는 이재명 후보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법조계와 정치계 등 다수의 전·현직 권력들이 이 사건에 개입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범죄의 본거지인 성남시청에 대한 압수수색은 수사 착수 22일 만에 이루어졌으니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준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검찰이 졸속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고 있으니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 “부끄럽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권력의 눈치를 보는데 익숙한 검찰의 편향성에다가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총장까지 성남시의 고문변호사로 일했으니 어떻게 공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권력 해바라기 검찰이 대선을 의식해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야당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이 이재명캠프의 서초동 지부라는 말을 듣게 생겼다.”고 강하게 비판했다.최근 여론조사들은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없으니 특검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코리아정보리서치의 조사에 의하면 김오수 검찰의 수사에 대한 국민의 불신(67.1%)이 신뢰(13.3%)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또한 ‘이재명게이트’라고 생각하는 사람(54.2%)이 ‘국힘게이트’라고 생각하는 사람(33.3%)보다 훨씬 많다. 때문에 특검의 수사에 대해서는 캐이스탯리서치(찬성 73%, 반대 21%), PNR(찬성 61,3%, 반대 28.9%), 한국리서치(찬성 63.9%, 반대 26.8%) 등 모든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반대보다 2배∼3배 이상 많다.검찰을 믿을 수 없으니 특검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야당과 국민의 여론인데, 이를 무시하고 대선을 강행하면 공정성이 문제된다.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는 이재명 후보도 특검을 수용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만약 특검을 하라는 주권자의 명령을 거부하면 대선에서 국민이 직접 후보자를 심판할 수밖에 없다.

2021-11-08

일본제철의 구조조정, 지방도시 몰락을 불렀다

본지가 연재한 ‘일본 산업도시의 아픔’(11월 1일, 8일)은 거점산업 하나에 매달려 있는 지방도시의 몰락 과정을 보여준 교훈적 사례다. 특히 일본제철의 구조조정으로 이미 고로가 폐쇄된 이와테현 가마이시시, 히로시마현 쿠레시와 올해 또다시 1기를 폐쇄키로 한 이바라키현 카시마시 등에서 나타난 기업도산과 인구감소 등 도시 쇠락은 철강산업을 축으로 하고 있는 포항시가 반면교사 할 부분이 많다.1950년 창업한 일본제철은 매출 6조2천억엔, 종업원 수 10만6천명의 세계 굴지의 기업이다. 60년 넘게 일본경제를 견인했고, 세계 철강산업의 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던 일본제철이 중국의 등장과 공급과잉에 따른 채산성 악화로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먼저 일본 제철산업의 발상지로 불리는 가마이시 공장의 고로 2기를 폐쇄했다. 이 도시는 단숨에 쇠락의 길로 갔다. 1963년 철강산업 번성기 9만2천여명에 달했던 이곳 인구는 작년 3월 3만2천명으로 내려앉았다.또 철강이 도시의 랜드마크였던 쿠레시도 지난 9월을 끝으로 고로 2기가 가동을 중단하면서 고용인구의 절반 이상이 떠나는 타격을 입었다. 식당이나 숙박업소 등 간접 영향까지 포함하면 쿠레시가 받은 경제적 타격은 막심하다. 일본제철이 압연공장을 비롯 하공정까지 전면 폐쇄할 계획이라 쿠레시의 도시 브랜드인 철강산업은 머지않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올해 3월 일본제철은 동일본제철소 카시마지구의 고로 2기 중 1기를 2024년 말까지 폐쇄키로 발표했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은 제철소가 소재한 카시마시다. 카시마시는 가마이시시의 전례를 따를까 고심하고 있다. 가마이시시와 이바라키현이 나서 일본제철의 체제 존속을 설득했으나 협상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일본제철의 구조조정은 앞으로 더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어 쇠락위기 도시의 고민은 날로 깊어가고 있다.국내 최대 철강생산도시 포항을 비롯한 단일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지방도시도 비슷한 산업 환경에 있다. 저출산과 청년의 탈출 등으로 위기에 내몰린 지방도시에서 거점산업이 붕괴한다면 도시 몰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지역 거점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지방정부 차원의 다양한 고민과 대책이 준비돼야 한다. 철강산업 지원을 위한 포항철강거점센터 건립은 이런 면에서 바람직한 투자다.

2021-11-08

영부인 가방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6월 영국 콘월 미낙극장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배우자 프로그램을 마친 후 미국 대통령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 캐리 존슨 영국 총리 부인과 기념촬영을 할 때 들었던 스테파니백이 ‘영부인 가방’으로 화제가 됐다.한때 에르메스 백이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으나 화제의 가방은 국내업체인 쿠론의 ‘스테파니 클래식 백’이었다.지난 7월 중순 출시한 ‘스테파니 클래식 31’ 카라멜 카페 색상 가방과 브라우니 케이크 색상 가방은 영부인 가방으로 화제가 되면서 날개 돋힌 듯 팔려 지난 4일 기준 판매율이 각각 95%, 94%였다. 패션업계에서는 판매율이 90% 이상을 기록한 경우 완판으로 보고 있다. 공식 온라인몰에서는 이미 품절됐으며, 오프라인 일부 매장에서만 구매 가능하다. 두 상품은 각각 500점, 50점 한정 수량으로, 가격은 각각 63만8천원, 83만8천원이다.스테파니 클래식 백은 2012년부터 쿠론을 대표하고 이끌어온 모델로 2014년까지 7천개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또 하나의 영부인 가방이 있다. 김 여사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차 이탈리아 방문 중에 선보인 한지 핸드백이다. 해당 가방은 국내 비건 가방 브랜드 ‘페리토(PERITO)’가 ‘동물의 희생 없이 아름답고 좋은 가방을 만든다’는 취지로 선보인 ‘블레드 깃털백’으로 벌써 품절상태다. 현재 예약 주문만 가능하다.영부인이 해외 출장때 국내 기업이 만든 가방을 들고 나가 우수한 품질과 디자인을 널리 알린 것은 좋은 내조로 읽힌다. 영부인의 소소한 배려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해도 좋을 듯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1-08

野 선대위, 내분요인 차단이 ‘원팀’보다 우선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종 선출됐지만, 경선 경쟁자였던 홍준표 의원이 ‘비리 대선에 불참하겠다’고 밝히면서 원팀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홍 의원은 지난 7일 SNS에 “사상 최초로 검찰이 주도하는 비리의혹 대선에는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면서 “저를 열광적으로 지지해준 2040들의 놀이터 청년의꿈 플랫폼을 만들어 그분들과 세상 이야기하면서 향후 정치 일정을 가져가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2040세대를 동력으로 해서 향후 독자적인 정치노선을 걷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홍 의원 측에 따르면 그의 인스타그램 구독자 수는 지난 5일 경선 직후 이틀새 3만명에서 4만9천620명으로 급증했고, 카카오톡 채널 메시지엔 3천여 응원메시지가 쏟아졌다고 한다. 윤 후보는 이와관련 “(홍 후보의 지원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거 아니겠냐.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홍 의원은 특히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주축으로 꾸려질 선거대책위원회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후보와 이준석 대표는 김 위원장을 선대위 총괄위원장에 임명하는 문제에 대해 이미 의견일치를 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당 선대위 구성과 관련해 그동안 경선과정에서 윤 후보 캠프에 합류한 인사들에 대한 ‘옥석가리기’를 주문한 점도 향후 상당한 갈등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윤 후보 캠프에는 내년 6월 지방선거 공천을 노리고 합류한 인사들이 많다. 내년 지방선거(6월 1일)는 대선(3월 9일) 직후에 치러진다. 두 선거의 간극이 100일도 안 나는 까닭에 대선 후보(혹은 신임 대통령)와의 정치적 친소관계가 지방선거 공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이 대표의 우려처럼, 국민의힘 선대위 인사에서 지방선거 공천을 노리는 사람들이 대거 발탁될 경우 당내 분열은 피할 수 없다. 실제 윤 후보 캠프에 있는 박진(서울)·윤한홍(경남) 의원과 유정복(인천)·심재철(경기)·이장우(대전) 전 의원 등은 자천타천 광역단체장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국민의힘은 대선레이스에서 절대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한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히 그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2021-11-08

이유 있는 반항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1950년대 미국 청소년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제임스 딘’은 이 영화 한 편으로 청춘을 상징하는 불멸의 아이콘이 됐다.영화 속 주인공인 세 명의 청소년은 겉으로는 단란한 가정의 아이들 같았지만,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상태였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것은 이 세 명의 청소년이 ‘정신병적 장애’를 가진 자가 아니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들이라는 것이다.‘질풍노도’란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라는 뜻으로 청소년기의 격동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부모의 말이라면 곧잘 듣던 우리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충동적이고 이유 없는 반항을 할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그렇다고 청소년의 ‘질풍노도’를 단지 ‘철없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현대정신의학의 발달로 인해 청소년들이 보이는 ‘감정 반응’이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입증되고 있다. 전두엽(frontal cortex)은 자기를 인식하고 감정·충동을 조절하고 행동을 계획하는 역할을 하는 이성의 중추이다.변연계(limbic system)는 감정의 중추로, 특히 편도체(amygdala)가 분노, 흥분, 공격성 등 즉각적이고 강렬한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청소년 시기의 뇌는 감정을 통제하고 뇌의 관제탑 역할을 하는 전두엽은 완만한 속도로 발달하는 데 비해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변연계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달한다.따라서 청소년의 뇌는 감정 반응의 브레이크 작용을 하는 ‘차가운 뇌’인 전두엽의 힘이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뜨거운 뇌’인 변연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장 격차가 벌어지는 시기이다. 청소년의 뇌는 성인처럼 전두엽이 성숙하기 전까지는 의사결정, 감정반응, 행동이 ‘뜨거운 뇌’인 변연계의 지배를 더 받게 된다.이런 이유로 청소년은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 감정을 잘 주체하지 못하고, 충동을 잘 억제하지 못하고, 본능에 더 민감하고, 쉽게 흥분하거나 좌절하게 된다.안타깝게도 청소년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모는 자녀의 부정적인 감정 반응에 직접적으로 맞대응하고 급기야 다그치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부모의 ‘무지’와 ‘이해 부족’이 많은 참사를 낳기도 한다.그렇다면, 부모는 청소년 자녀의 부정적 감정 반응에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첫째, 청소년 자녀의 부정적 감정 반응으로 부모가 화가 나고 좌절감을 느끼더라도 이런 감정으로 자녀를 마주해서는 안된다. 부모가 분노하면 청소년의 뇌는 더 큰 분노로 반응한다. 부모는 침착하고 냉정함을 유지하며 부모가 ‘차가운 뇌’ 전두엽의 역할을 보여 줘야 한다.둘째, 부모의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표정조차 청소년 자녀의 뇌는 부정적으로 느끼기 쉽다. 부모는 자녀의 부정적 감정 반응에 직접 맞대응하기보다는 사랑과 공감의 눈빛으로 조용히 곁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청소년의 ‘뜨거운 뇌’가 식기를 기다리는 것이다.세번째, 잔소리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부모의 잔소리는 청소년 자녀 뇌의 이성적 사고를 경감시키며 오히려 부정적 감정을 악화시킨다.또 잔소리는 자녀에게 반박이나 논쟁거리를 제공해 힘겨루기 양상이 되기 쉽다. 다만, “그런 말(행동)을 하면 엄마(아빠) 마음이 어떻겠니?”이라고 부모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핵심은 부모의 생각이 아닌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생각은 청소년 자녀의 몫으로 두는 것이 자녀의 ‘이성 뇌’인 전두엽을 발달에 도움이 된다.끝으로, 감정과 정서는 경청하고 수용해야 한다.예를 들면, “참, 힘들었겠다”, “많이 속상했겠다” 등의 표현으로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한다. 그래야, 감정을 쌓아 두지 않게 된다.다만, 공격적 행동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공격적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는 인식을 시켜주어야 한다. 단, 화가 난 큰 목소리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 톤으로 힘 있게 단호하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필요한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을 묻고 합리적인 제재가 있어야 한다. 합리적인 제재를 가할 때도 선택권을 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너의 행동에 대해 3시간 후에 반성문을 쓸 수도 있고, 3시간 후에 의견으로 말할 수도 있다. 너는 어떤 것을 원하니?”이라고 한다.청소년기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과정이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의 신체뿐 아니라 뇌와 마음의 발달에 따른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청소년기에 성호르몬이 분비돼 ‘이차 성징’이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가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듯, 청소년기의 ‘질풍노도’는 뇌와 마음의 발달과정에 나타나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이해하면 어떨까?그렇다면, 청소년의 ‘이유 없는 반항’은 뇌와 마음의 발달 면에서는 거쳐야 할 정상적인 ‘이유 있는 반항’일 수 있다. 다만, 부모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올바른 대처를 못 한 것은 아닐까.

2021-11-07

코로나19 백신패스, 못마땅하다!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정부는 11월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 방안을 발표하면서 실내체육시설과 유흥시설, 노래연습장, 목욕탕 등 고위험 다중이용시설과 의료기관, 요양병원, 중증장애인 및 치매시설, 경로당 등 고령층 방문시설에 대해 백신 패스를 적용한다고 발표했고 해당 시설에는 백신 접종을 모두 완료한 시민들만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만약 백신 접종을 마치지 않았을 경우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검사를 통한 음성확인서를 지참해야 하며, 이밖에도 만 18세 이하 아동·청소년, 완치자, 백신 임상시험에 참가했거나 항암 치료를 받는 경우, 또는 백신 1차 접종 후 부작용을 겪는 등의 의학적 사유에 의한 백신접종 예외자는 방역패스 대상에서 제외된다. 백신패스 없이 시설을 이용하게 될 경우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시설 이용자는 10만 원의 과태료, 관리자에게는 최소 150만~300만 원의 과태료와 최소 10일에서 최대 영업장 폐쇄 명령이 내려진다.백신패스는 왜 나온 것일까? 정부는 코로나19 접종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백신패스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은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으로 불안하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백신접종을 못하고 있는 국민을 배려하지 않고 정부의 입장만을 생각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백신 확보를 못해 온갖 핑계를 대던 정부, K방역이라고 자만하다가 이물질 주사기로 체면을 구기고 유해물질로 범벅된 검사용 면봉 사건으로 할 말을 잃게 한 정부, 코로나19 사태 초기 봉쇄정책을 눈치만 보다가 때를 놓쳤고 코로나19 감염확산을 정치, 종교적 이슈도 몰아간 정부 등 언급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대처에 문제가 많았었다.백신을 접종완료 통계에만 집착하고 중요한 항체의 생성 유무는 확인하지 않고 있어 의아할 따름이다. 백신을 접종하더라도 돌파감염 사례가 빈번하고 백신마다 항체 생성률이 다른 마당에 무조건 백신 맞은 접종자만을 위한 백신패스가 바람직한 것일까?지금까지 코로나19가 심해도 허용하던 시설에 대한 출입을 제한한다는 것은 근거도 없이 정부의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시간제한, 인원제한도 사실 국민들에겐 조롱거리가 된지 오래되었다. 오후 6시부터 또는 밤 10시가 되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활동을 시작하는 것도 아닌데 시간제한이 이루어졌다는 조롱이고 유명무실한 인원제한도 마찬가지였다.물론 코로나19 방역이 필요하고 백신 접종도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내용을 상세히 알리고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 어떤 정책이든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국민들에게 조롱받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고통과 부담을 더 주는 정부정책을 마냥 찬성할 수만 없다.PCR검사도 시점에 따른 오차(바이러스 배출 시기 이전에 음성판정 가능)가 존재하고 특정질환으로 접종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 차별이 우려스럽고 접종완료자 역시 바이러스 전파 우려가 분명히 있다. 결국 백신을 맞았다고 반드시 감염이나 전파 위험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닌데 미접종자만 차별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고 인권침해의 소지가 다분한 상황이다.‘위드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노력중이지만 또다시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4차 유행이 진행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일일 확진자수가 3만 명을 넘어서고 있고 독일도 확인자수가 1만 명을 넘어 선진국도 코로나19의 방역정책이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경우도 확진자수가 2천 명을 넘어 향후 수천 명이 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특히 델타변이 바이러스의 경우 접종완료자라 해도 미접종자와 똑같은 수준의 전파력을 지닐 가능성이 있어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모든 사람의 호흡기 점막에 침투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비를 무엇으로 세우고 있을까?‘백신 패스’는 사실상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이다. 국민들을 불안하게만 했던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백신 미접종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코로나19로 무너진 자영업자들에게 희망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사지에 몰아넣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코로나19는 현재 상황에서 퇴치는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제 공존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력이 약화되었고 계속되는 변이의 출현으로 상당기간 코로나19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그러므로 확진자수에 집착하기 보다는 고위험군을 집중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의료자원의 재분배를 준비하고 방역 완화시 감염자 폭증을 대비하여 병상 확충 등의 의료체계의 정비가 필요하다. 방역조치가 특정계층에게 몰리지 않도록 거리두기 및 손실보상 범위도 조정해야 한다. 국민이 불안한 이유를 정부는 곰곰이 생각해 보고 ‘위드 코로나19’시대를 제대로 준비해주길 바란다. 국민은 백신패스가 못마땅하다!

2021-11-07

백스(Vax)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을 편찬하는 옥스퍼드 랭귀지가 백신의 줄임말인 백스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사전편찬 대표는 “매우 파급효과가 컸기 때문”이라고 선정 배경을 언급했다.옥스퍼드 랭귀지는 영어권 세계뉴스에서 수집한 145억개의 단어를 훑어 그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분위기를 잘 대변한 단어를 골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다. 과거에는 셀피(셀카 사진), 베이프(전자 담배를 피우다) 등이 선정된 바 있다.올 10월 말 기준 지구상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이 500만명을 넘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를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고도 한다. 중국 우한에서 첫 사망자가 나온지 1년 10개월만의 수치다. 국가별 누적 사망자는 미국이 76만명으로 가장 많고 브라질 60만명, 인도 45만명의 순이다.팬데믹은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인류 역사상 팬데믹에 속하는 질병은 14세기 중세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과 1918년 5천만명 이상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 그리고 1968년 100만명을 희생시킨 홍콩독감 등이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1948년 설립한 이래 세 차례 팬데믹을 선언했는데, 홍콩독감과 신종플루, 코로나19다.코로나 바이러스로 500만명의 인류가 사망한 것은 매우 놀라운 사건이다. 미국 LA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거대한 도시 하나가 통째로 소멸한 것과 같다.그러나 코로나19는 아이러니하게도 부유한 나라에 더 많은 타격을 준 질병이라는 점에서 색다른 여운도 남기고 있다. 옥스퍼드 랭귀지가 선정한 짧고 강렬한 이미지의 백스는 후대에는 수많은 인류의 희생을 초래한 악명 높은 질병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1-07

국가부채를 가볍게 여기는 정치권력

심충택 논설위원 요즘 신문 광고란을 보면 ‘상속한정승인’ 공고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신문공고일로부터 일정기간 안에 공고인에게 채권을 신고하지 않으면 부채청산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이다. 부모의 빚을 상속한 자녀가 법원판결을 받아 부모 채권자들에게 빚잔치를 하겠다는 광고다. 부모의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녀가 빚잔치를 하기 위해 송사를 벌이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안타깝다. 자식에게 가장 해서는 안 될 일이 빚을 물려주는 것이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부모의 상속을 포기하는 절차는 까다롭기 짝이 없다. 1순위 상속인(직계비속·자녀, 손자녀)이 상속포기를 하면 2순위(직계존속·조부모), 3순위(피상속인의 형제자매), 4순위(4촌 이내 친족)에 차례대로 넘어간다. 사망한 부모의 빚 때문에 일가친척 모두가 원수처럼 지내는 집이 비일비재한 것은 이처럼 빚이 4촌 친척에게까지 대물림되기 때문이다.국가 부채도 가계 빚과 마찬가지다. 국가가 빚을 갚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는 우리국민의 경우 IMF사태 때 너무나 혹독하게 겪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 감당하지 못할 빚을 차기 정부에 상속하면 그 국가는 빚잔치하는 자녀처럼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된다. 국가신용등급 하락과 함께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해외투자가 철회되거나 끊기면 전 국민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지난주 국회 예산정책처가 우리나라 빚이 8년 뒤에는 2천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보다 8.4% 증액된 내년 예산안 수준의 재정 팽창 기조가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계산한 결과다. 나랏빚 500조원(2014년 533조원)이 1천조원(2022년 1천73조원) 되는 데 8년 걸렸는데, 1천조원이 2천조원(2029년 2천30조원) 되는 데는 7년밖에 안 걸린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 채무가 408조원 늘어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의 증가액 351조원을 훨씬 웃돈다.현재 집권여당 대선주자인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보다 국가 빚에 대한 경각심이 더 없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 후보는 김부겸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재정여력이 없다”고 밝혔지만, 최하 30만~50만원의 전국민 6차 재난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 위험수위에 도달한 국가부채는 뒷전이고, 포퓰리즘으로 내년대선에서 이기겠다는 생각만 머리에 꽉 차 있는 것 같다. 이러니 야당에서 ‘자유당시대 고무신선거와 다름없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이다.이재명 후보는 지난주 열린 민주당 선거대책 위원회에서 “우리나라 국가부채비율이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도 좀 인지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우리나라 빚은 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수직상승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세계 최악이다. 2023년부터는 국가채무의 연간이자가 20조원을 넘어선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처럼 일시적으로 국민에게 돈을 푸는 것은 서민생계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청년과 퇴직자, 실직자들이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 마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치권력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2021-11-07

윤석열과 국민의힘 존재가치는 정권교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됨에 따라, 내년 3월 9일 치러지는 20대 대선의 대진표가 완성됐다. 윤 후보는 이날 열린 전당대회에서 본경선 최종득표율 47.85%로 1위를 차지, 41.50%를 기록한 홍준표 의원을 6.35% 포인트 차이로 이겼다.국민의힘은 이제 윤 후보를 중심으로 일심동체가 돼 정권교체라는 시대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이 전심전력을 쏟아야 한다. 윤 후보도 수락연설에서 “우리가 내년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모두가 승리자가 될 것이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패배자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이번 경선에서 아깝게 패배한 홍 의원이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국민적 관심을 끄는 것이 제 역할이었다”며 선거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 것은 국민의힘으로선 정말 다행한 일이다. 유승민 전 의원과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도 곧바로 선거결과에 승복하며 원팀을 다짐해 국민의힘 대선레이스는 일단 순탄한 출발을 하게 됐다.현재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열망은 뜨겁지만, 윤 후보 앞에 놓인 과제는 산적해 있다. 우선 경선이 과열되면서 홍 의원 등 경쟁자들과 감정의 골이 깊어졌던 만큼 내부결속을 다지는 것이 급선무다. 원팀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경쟁캠프에서 활동했던 다양한 인사를 중용하는 ‘화합형 선대위’ 구성이 꼭 필요하다.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대선 완주 의사를 밝힌만큼, 윤 후보 입장에선 야권후보 단일화 문제도 풀어야할 현안이 됐다. 여야가 초박빙 승부를 펼치는 상황에서 안 후보가 무시못할 지지도를 기록하며 대선 막판까지 강공모드를 이어갈 경우 자칫 야권 후보 단일화가 물건너갈 수 있다. 이와함께 당 혁신과 정책 대안 제시를 통해 ‘정치 신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수권 능력을 입증해 보이는 것도 윤 후보의 중요한 숙제다.윤 후보가 “이제 우리는 원팀이고 정권교체의 대의 앞에 분열할 자유도 없다”고 말했듯이, 국민의힘 존재가치는 오직 정권교체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당 전체가 이번 대선이 나라의 존망이 걸린 절체절명의 선거라는 점을 인식하고, 윤 후보를 중심으로 청년층을 비롯한 전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총력을 쏟아야 한다.

2021-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