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푸르러 가는 하늘에 떠도는 구름이 한가롭다. 누렇게 물결치며 여물어가던 들판에 수확의 손길이 더해지고, 언덕배기의 주홍빛 감들은 속소그레 대롱거리며 정겹게 익어가고 있다. 구절초, 쑥부쟁이가 반기는 들길을 거닐거나 산국(山菊), 감국(甘菊)이 손짓하는 산길을 오르다 보면, 문득 어디선가 피어나는 가을의 향기를 듣게 된다. 딱히 그 냄새가 보이거나 풍기지는 않지만, 지나가는 바람의 결이나 형형색색 물들어가는 잎새들의 몸짓에서 계절의 향긋함과 스산함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우수(憂愁) 배인 향수(鄕愁)같고, 여수(旅愁)가 묻어나는 애수(哀愁)같은 아련하고도 애잔한 가을의 갈피에는 왠지 모를 시름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래서 가을을 우수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인간의 생애주기를 놓고 볼 때 가을은, 혈기왕성한 여름날에 비견되는 청장년(靑壯年)을 지나 결실과 숙성의 내공으로 직장이나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나가는 장년(長年)층에 해당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장성한 자녀들이 출가를 하게 되고 삶의 척추 같은 일터에서는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돼 중책이 주어지기도 하는가 하면, 때에 따라서는 사회적인 역할과 기여가 커지는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길잡이를 해야 하기도 한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생행로에 막간의 여유와 안도의 가슴으로 주변을 살피며, 내실과 농밀함으로 새로운 도전과 비전을 지향해야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한 차제에 삶의 전반적인 요소마다 이것저것 헤아리고 가늠하며 꼼꼼히 챙기고 보살피다 보니 어쩌면 근심 걱정이 떠날 수 없게 되는지도 모른다. 근심을 뜻하는 수(愁)는 가을철에 거둬들이는 벼(禾) 옆에 불(火)이 있는 걸 밑에서 받쳐주는 마음(心)이 조합된 한자이니,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고 거북스러운 상태를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풍요로운 결실을 수확하는 중에도 짐짓 걱정이 도사릴 수 있듯이, 가을걷이 같은 풍성한 삶의 숙성기에도 모종의 우려가 스며들고 파고들 수 있음을 암시하기에 가슴 한구석이 허허롭고 알 수 없는 수심(愁心)에 잠기게 되는지도 모른다.
“서느런 바람 결에/구름밭 쟁기질로//번뇌도 빛이 되어/감감히 아려 오며//내 혼의 습기 말리는/서럽도록 부신 날!” -拙시조 ‘청추(淸秋)’전문
사람은 어찌 보면 한평생을 외롭거나 시름 속에 살아가야 하기에 끝없는 나그네길이라 하는 걸까? 정처없이 떠도는 구름도 흩어졌다 모이면서 수시로 하늘의 눈물 같은 비를 내리는데, 하물며 인간세상에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상념이 끊이질 않아 함께 있어도 쓸쓸하고 기쁨 속에서도 슬픔을 지워버릴 수 없는지도 모른다. 소리 없는 싸움터 같은 세파에 시달리는 자체가 고역일 수도 있을 터, 지치고 멍들게 하는 상흔이나 묵은 때를 지워버리는 것이 근심을 줄이는 것이리라. 눈물도 투명한 빛이 되어 흐를 것 같은 서럽도록 부신 날, 마음의 습기를 말리는 밝은 가을날을 엮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