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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일본과 중국의 문학을 읽자

김규종 경북대 교수 지난 10월 23일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이었다. 상강 절기를 며칠 앞두고 내린 된서리와 무서리 때문에 일부 언론은 앞다투어 ‘가을의 실종과 겨울의 도래’를 재잘거렸다. 어디 그뿐인가?! 한반도에 봄과 가을이 완전히 실종된 것처럼 호들갑 떠는 자들도 적잖았다. 여기 동조하는 생각 없는 사람들을 보노라니 부아가 치미는 것이었다. 대체 왜들 저러는 걸까?!자연은 일탈하는 듯하다가도 슬며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법이다. 우주 운항의 법칙이 어느 날 돌변함은 지구 종말이 다가왔다는 신호탄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지경까지 이른 상황은 아니다. 한두 가지 변화로 전체를 예단함은 오류와 제휴하는 첩경이다. 그래서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다”하는 영어 속담도 있는 게다.각설하고, 상강 무렵이면 떠오르는 한시(漢詩)가 있다. 당나라 시인 장계(張繼)가 남긴 ‘풍교야박(楓橋夜泊)’이다. 칠언 고시 스물여덟 글자로 가을의 서정과 나그네의 우수에 찬 심사를 그림처럼 포착하는 솜씨는 달인의 경지와 멀지 않다. 나이 50이 넘어 과거에 두 번째 낙방한 우울한 마음을 서리 내리는 시절과 절묘하게 배합한 ‘풍교야박’.원문을 보자. “月落烏啼霜滿天 (월락오제상만천)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 우리말로 바꿔본다. “달은 지고 까마귀는 우는데 서리가 하늘에 가득하구나. 강가의 단풍나무는 고깃배의 등불과 마주 보고 쓸쓸하게 잠들어 있네.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는 한밤중의 종소리가 나그네의 배까지 들려 오는구나.” 여러분은 이 시를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시는가?!첫 줄에서는 깜장의 까마귀와 서리의 흰색이 대비되고, 서리 가득한 한밤중에 들리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중첩된다. 소리와 색깔의 공감각이 문득 화합한다. 둘째 줄에서는 단풍나무와 고깃배의 등불이 붉은색으로 마주하고 있다. 여기서 방점은 ‘쓸쓸하게’ 혹은 ‘슬프게’라는 부사어에 있다. 조락을 목전에 둔 단풍과 하릴없는 고깃배의 등불이 화답하듯 어울려 잠든 풍경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다.세 번째 줄에서는 장면이 고소성 밖 한산사로 일신된다. 장소변화는 정황의 급변을 불러온다. 그것이 네 번째 줄에 고스란히 담긴다. 시인이 잠들어 있는 나룻배에 들려 오는 한밤중의 종소리. 그는 지금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전전반측(輾轉反側) 불면의 밤과 대면하고 있다. 고향의 늙은 처와 장성한 자식들을 바라볼 면목이 없는 것이다.나는 ‘풍교야박’을 소주의 풍교에서 만났다. 그때 일본 관광객들이 시에 보여준 친근함은 놀라웠다. 그들은 중학교 국어책에서 ‘풍교야박’을 배웠다 한다. 우리는 어떤가. 단 한 편의 중국인과 일본인 작가의 시나 소설, 희곡도 초중등 국어 교과서에 없을 것이다. 21세기를 살면서 좌우에 포진한 나라의 문학에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닌가?! 어디 내놔도 꿀릴 것 없는 대한민국이다. 이제라도 그들의 시와 소설, 희곡을 넉넉한 마음으로 읽어보면 어떨까?!

2021-10-26

종이화폐의 위기

몇 해전 한국은행이 돈의 유통과정을 살펴 화폐의 수명이나 환수율 등을 발표한 적이 있다.화폐 중 수명이 가장 긴 화폐는 1만원권으로 10년1개월로 조사됐다. 1천원권은 4년4개월, 5천원권은 3년7개월로 가장 짧은 수명을 보였다. 5만원권은 2006년 처음 선을 보여 충분한 기간이 경과하지 못해 정확한 유통 수명을 측정하기 어렵다고 발표했다. 화폐의 수명이란 사람의 손을 많이 거치면서 더이상 사용이 불가능해 은행으로 되돌아오는 기간을 말한다. 1천원권과 5천원권이 1만원권보다 수명이 짧다는 것은 그만큼 시중에서 유통되는 시간이 길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은 또 한국 사람의 76%가 1만원 이하의 물품을 구입할 때는 현금을 쓰며 화폐 환수율이 가장 떨어지는 화폐는 5만원권이라 했다.화폐의 생성 역사를 보면 아주 오래전 물물거래하던 물품 화폐시대에서 금속 화폐로 지금의 종이화폐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카드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종이화폐도 사용률이 급격히 떨어져 지금은 비현금 결재비율이 90%에 이른다. 이런 추세에 맞춰 디지털 화폐 등장이 예고되는 것도 눈길이 간다.디지털 화폐란 금전적 가치를 전자적 형태로 저장해 유통하는 통화다. 가상화폐와 달리 정부의 통제하에서 발행됨에 따라 종이 화폐 시스템에서 등장하는 카드사가 빠지고 정부와 소비자만 존재하는 구조다. 화폐 관리가 용이하고 제조비용 절감과 위조·횡령 등의 방지도 쉽다.우리나라에서 돈 만드는 일을 전담하는 한국조폐공사가 사업 전환을 고민중이라 한다. 한때 공기업으로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쌓던 직장이 창립 후 처음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산업계 전 분야에 부는 디지털화 바람으로 종이화폐도 이제 서서히 수명을 다해가는 모습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1-10-26

대구 미래인재도시 선언, 구호에 그쳐선 안 돼

대구시가 미래인재 3만명과 미래 일자리 5만개, 한국인이 살고 싶은 국내도시 3위 등을 목표로 한 ‘미래인재도시 대구’ 비전 선포식을 어제(26일) 가졌다.청년, 교육·연구계, 산업경제계, 시의회와 지자체 등 지역사회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미래인재도시 대구의 비전과 기본방향을 공유하고 결의를 다지는 행사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 행사에 앞서 시 간부회의에서 “미래인재도시 선언은 선순환의 지역발전 구조를 만드는 인재중심의 대전환”이라며 교육도시 대구의 명성과 미래산업분야 테스트 베드 역량을 토대로 이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대구에 인재가 모이고 대규모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지역사회의 오랜 숙원이다. 대구를 미래인재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대구시의 야심찬 계획이 제대로 실천돼 250만 대구시민에게 희망을 안겨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청년의 발길이 잦아지고 첨단 고부가가치산업이 활개를 치는 대구의 미래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지금 대구는 경제는 물론 인구에서도 인천에 밀려나 전국 3대 도시의 명성이 퇴색한지 오래다. 1993년 이후 지역총생산(GRDP)이 줄곧 전국 꼴찌다. 올 6월말 기준 주민등록상 인구로 대구시는 1995년 이후 처음으로 230만명대로 추락했다. 최근 5년 사이 대구를 떠난 인구가 7만5천여명이다. 그 중 25∼29세 인구 유출이 24%(1만8천117명)다. 젊은층이 일자리를 찾아 대구를 떠나고 있다는 반증이다.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대구경북 전체 실업률은 4%이나 같은 기간 청년실업률은 9.7%다. 대구지역 근로소득자의 1인당 연평균 급여는 울산시의 72% 수준이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전국 꼴찌다. 대구상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100대 기업에 대구업체는 한군데도 포함되지 않았으며 전국 1천대 기업에 포함된 업체는 17개(1.7%)에 불과했다.대구지역 법인의 당기순이익이 전국 평균 절반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대구경제의 실상이다. 권 시장 등 역대 대구시장마다 취임 때 인재가 모이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나 늘 구호에 그쳤다. 수도권 일극주의가 만든 비정상적 경제구조로 전국 지방도시가 비슷한 처지지만 대구의 상황은 더 나쁘다. 미래인재도시로의 전환 이제는 구호 아닌 실천으로 답해야 한다.

2021-10-26

국토균형발전 논의되는 안동 박람회 성과 내길

‘2021대한민국 균형발전박람회’ 개막식이 26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안동 탈춤공연장에서 열렸다. 17개 광역자치단체가 모두 참가하는 국가균형발전 박람회는 28일까지 사흘 동안 열린다. 인구 20만명 미만의 지방 중소도시에서 이 박람회가 개최되는 것은 안동이 처음이다. 국가균형발전 박람회는 지난 2004년 시작해 해마다 열리며, 국가균형발전의 비전과 정책을 논의하고, 지역발전 성공사례를 공유하는 중요한 자리다.오늘(27일)과 내일 이틀 동안 국립안동대 국제교류관에서는 ‘지방자치 균형발전 공동 컨퍼런스’가 열린다. 이 컨퍼런스에서는 ‘지역산업과 지역일자리’, ‘농산어촌과 도시상생’, ‘재정분권에서 재정균형으로’, ‘삶의 질과 공공서비스’, ‘초광역 협력체계 및 지역주도성 강화’ 등 8개의 주제가 논의된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모두 19개의 학회 세션과 8개의 기관 세션이 열린다. 특히 안동시는 ‘안동, 위기를 넘어 미래로’라는 주제를 담은 안동형일자리사업과 바이오·백신산업, 3대문화권사업, 관광거점도시사업, 안동포사업 등 다양한 지역혁신정책과 성과를 17개 광역자치단체와 공유한다.광역자치단체들이 국가균형발전과 관련한 박람회를 열어 균형발전 정책과 성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국가균형발전이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권력과 재화를 비롯한 모든 자원의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하면서 온갖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당연히 약자 입장에 설 줄 알았던 진보정권에서도 수도권 집중화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 의석수가 국회를 압도하면서 이전 정부에서는 그래도 비수도권 눈치를 보면서 시행됐던 수도권 규제완화가 속수무책으로 진행되고 있다.지난해엔 사상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을 넘어섰다. 높은 주거비 등에 아랑곳 않고 청년층의 수도권 유입은 가속화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청년층 56%가 수도권 거주자다. 모든 권력과 사회적 자원이 지금처럼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는 한 국민은 좋은 직장과 교육 환경을 찾아 서울로 몰려들 수밖에 없다. 안동에서 열리는 국가균형발전박람회에서 비수도권의 소멸위기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2021-10-26

한글 생각

“말은 사람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이다. 조선말은 우리 겨레가 반만년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이다. 그 낱낱의 말은 다 우리의 무수한 조상들이 잇고 이어 보태고 다듬어서 우리에게 물려 준 거룩한 보배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은 곧 우리 겨레가 가진 정신적 및 물질적 재산의 총목록이라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이 말을 떠나서는 하루 한때라도 살 수 없는 것이다.”1947년 조선어학회가 편찬한 ‘우리말큰사전’의 머리말 일부다.일제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온갖 고난을 겪은 ‘우리말’이 흩어진 글자와 단어들, 방언과 속어들, 기억들, 옛 이야기들, 꿈과 마음들, ‘엄마’와 ‘윤슬’과 ‘미리내’와 ‘개여울’들, 그 모든 처절한 뼈와 살들을 겨우 한 데 모아 몸을 갖췄다. 한글학자들의 감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전 세계에 현존하는 약 3천 개의 언어 중 고유한 사전을 가지고 있는 언어는 단 20여개에 불과하다.2019년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헌신한 조선어학회 한글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말모이’는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주인공 김판수(유해진)는 무지에서 앎으로 나아간다. 그는 소매치기로 먹고 사는 즉자적인 인물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우리말 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말은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말은 곧 ‘우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대자적 존재로 변화한다.판수의 자기존재 전환은 까막눈인 그가 한글을 깨우쳐 나가는 학습과 함께 진행되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어의 아름다움, 우리말을 지키고자 민중이 흘린 피, 땀, 눈물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그리스 크레타 섬은 400년 동안 터키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했다. 크레타 출신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미할리스 대장’에 이런 대목이 있다.“노인은 웃었다. “내가 고생고생하면서 글자를 배운 이유, 이제 알겠지? 이 마을 벽이란 벽은 한 군데도 빼놓지 않을 테다. 교회 종탑에도, 회교 사원에도, 내 죽기 전에 써둘 테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한 글자씩 쓰고 그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자기 솜씨를 감상했다. 그는, 가로로 긋고 세로로 긋기만 해도 목소리, 그것도 우렁찬 함성이 되는 신비에 어리둥절했다. 이런 부호가 어떻게 말을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그저 텅 빈 채 묵묵히 서 있던 담벽과 대문이 이제 소리 높이 자기네 희망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었다.”조선어학회 한글학자들은 말의 해방이 곧 정신의 해방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들의 헌신과 노력은 총탄 빗발치는 전장에서 싸운 독립군 못지않은 것이다.우리는 한국어를 지켜낸 이들의 위대한 희생을 기억하면서, 노래를 지어 부르고, 시와 소설을 쓰고 읽고, 줄임말과 합성어와 신조어 등으로 우리말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해야 한다.‘말모이’ 후반부에 판수의 중학생 아들 덕진이 여동생 순희를 업고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나는 요양병원에 5년째 누워 있는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할머니는 일본군 전투기 활주로가 있던 마을에서 태어나 청력이 온전치 않았다. 당연히 말의 배움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는 ‘요이땅’, ‘벤또’, ‘요시’ 같은 일본말을 자주 했는데, 볕 좋은 날이면 혼자 마당에 앉아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하셨다.“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우리말큰사전’ 머리말에는 또 이렇게 쓰여 있다. “조선말은 조선 사람에게 너무 가깝고 너무 친한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조선 사람에게서 가장 멀어지고 설어지게 되었다”고. 우리는 모두 ‘엄마’, ‘아빠’, ‘해’, ‘달’, ‘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를 배우며 울긋불긋 말의 꽃이 피어나던 모국어 마을을 고향으로 두고 있다.얼마 전 한글날이었다. 2012년 공휴일로 재지정된 후 역사적 의미보다는 ‘노는 날’로 여겨진다. 국문학과 졸업 시험에 토익 성적을 제출해야 하고,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풍조 속에서 이런 글은 고리타분한 것일지 모른다.다만, 드라마와 케이팝 열풍으로 전 세계인들이 한글을 주목하는 지금, 나는 우리말이 세계시민의 ‘제2외국어’쯤 되는 꿈을 꿔본다. 그러면 한국에서 노벨문학상도 나올 것이다.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망상은 볕 좋은 주말 낮잠에 이미 전송해뒀다.

2021-10-26

비접종자가 살아가는 법

최근 화이자 1차 접종을 맞았다. 평소 피부알레르기를 심하게 앓고 있던 터라 백신 접종을 망설이고 있었지만, 백신 미접종자로 회사 내 카페와 식당 출입이 제한되자 오랜 고민 끝에 접종을 결심하게 됐다.그 전에 물론 피부과도 몇 차례 들러 여러 의사 소견을 들어봤지만 큰 위험은 없겠으나 부작용은 예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라고 했다.나 또한 그 말에 동의해서 접종을 결심하게 되었고 실제로 백신 접종을 해주었던 의사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호쾌하게 주사를 놓아주었다.그렇게 화이자 1차를 맞은 첫날과 이틀은 무리 없이 지나갔다. 괜히 겁먹은 건 아닐까 생각하던 와중 문제는 3일째부터 시작됐다.심장 부분이 아프면서 저릿하더니 목에는 이물감이 걸린 듯 호흡이 불편해졌다. 먹는 즉시 게워냈고 두통과 울렁거림도 찾아왔다. 근처 약국에 들려 증상을 호소했더니 진통제를 추천해줬다.다음날, 진통제를 먹고 나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자 결국 오전 업무를 중단하고 병원으로 향했다.회사 근처 내과 2곳을 들렸으나 백신 이상증세 환자는 예약이 아니라면 당일 진료를 보지 않는단 황당한 말을 들었다. 듣자하니 이상증세 환자 예약은 2주나 밀려 있어서 오늘 신청하면 2주 뒤에나 진료 볼 수 있단 말을 했다. 그 말을 두 군데서 들으니 아찔해졌다.그렇게 병원을 나와 다음 내과를 찾으러 지도를 켰으나 이미 회사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들 밖에 남지 않았다.응급실 밖에 답은 없는 것인지, 그곳에선 기다림 없이 진료와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곧 회사로 돌아가야 했고, 책상 위에는 맡은 업무가 한참이나 밀려있었다.결국 급한 마음에 눈앞에 보이는 이비인후과에 들어갔고, 다행히 그곳에선 진료를 받아주었지만 대기시간이 무려 삼사십 분 즈음 걸렸다. 겨우 진료를 보았는데 의사와 간호사의 얼굴은 지칠대로 지쳐 보였다.의사는 나 같은 환자가 하루에도 많이들 온다며, 이런 증세는 아주 흔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앓고 있는 증세에 맞게 약 몇 가지를 처방해줬다. 별 수 없었다. 30분 간 수액을 맞고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회사에선 맡은 업무를 하며 나와 같은 이상증세를 겪는 이들을 인터넷과 유튜브로 찾아보았다. 가슴 통증은 물론이고 겨드랑이 멍울, 두드러기, 미각 후각 상실은 물론이고 심할 경우 시각 상실, 심지어 사망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겨드랑이 멍울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앓고 있는데 이러한 부작용을 제대로 명시하고 있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했다.또한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대처도 피해 지원도 나서지 않고 있는 상태이니 난감했다. 이상증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병원 정보 또한 인터넷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급한대로 근처 응급실에 연락해보니 3시간 대기는 물론이고, 각종 검사 비용은 오롯이 내가 떠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검사를 받고 나면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런 와중 10월 23일자로 전국민 70% 백신 접종 완료율을 도달했다. 방역당국이 단계적 일상회복 전환 기준을 내세운 퍼센트율을 넘어선 것이다. 단계절 일상회복은 곧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뜻인데 위드 코로나란 코로나19의 완벽한 종식을 막는다기 보단, 그간의 방역 체계를 바꾸어 코로나 19와의 공존을 준비해야 한다는 전환 개념이다.현재 위드 코로나 시대에 직면하게 되면서 백신 패스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접종 완료자에 한해 공공시설 이용 제한을 완화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신 접종을 마친 이에겐 백신 패스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는 QR정보로 접종 여부를 파악하여 경기장이나 다중이용 시설 출입 이용이 허용된다.그러나 백신 패스가 강행되는 분위기가 되자 접종을 중단하려는 이들이나 미접종자들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백신 접종에 개인의 선택권이 전혀 존중받는단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기저 질환 환자는 애초부터 선택권이 없을뿐더러, 나의 경우에도 어쩔 수 없이 맞아야 하는 주변의 압박과 환경은 분명히 존재했었다. 이렇게 맞는다 하더라도 알 수 없는 부작용과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단 외면의 상황에 처하니 이젠 2차를 맞을 엄두가 안 난다.더군다나 부스트샷 권장과 새로운 AY 4.2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이라니. 미접종자들이 점점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은근한 압박과 함께 계속해서 소외될 뿐이다.

2021-10-26

시는, 노래한다

김소월이 1925년 낸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표지. 시는 노래한다. 저만치서, 계속해서. 노래하고 있었다, 저만치서 계속해서, 언제까지나.시란 본디 언어의 일정한 나열에 음률을 붙여 노래하기 위한 목적의 것이었다. 조금 과장을 덧붙인다면, 음률을 붙이기 위해 정형화된 시는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많은 가수들의 노래 가사나 마찬가지였던 것이 아닐까. 음악이 먼저였을지, 언어의 나열이 먼저였을지, 그것은 알기 어렵지만 말이다. 음률에 신경써 언어를 나열하려면, 단어나 음절의 개수에도 신경 써야 하고 반복에서 오는 맺음과 이어짐에도 신경 써야 한다. 이른바 두운이나 각운이다. 학생 시절, 음수율이니 음보율이니 그것이 노래인지도 모르고 배웠던 시의 운율은 사실 노래였다. 그것을 알고서 나는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다.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형식적 규칙이 있는 시들은 대개 누군가 거기에 음률을 붙여 노래를 불렀던 것들이다. 향가니, 고려가요니, 악장이니 시조니, 하는 것이 모두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 어딘가에 새겨진 문자의 특별한 나열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거기에 깃들어 있던 누군가의 노래는 휘발되어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러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언어는 노래의 흔적이다. 지금은 노래를 목 놓아 불렀던 그 사람의 그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던 절박한 마음이나 악기의 소리나 목소리 역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치 오랫동안 어떤 집에 살았던 누군가 떠나간 다음에 그를 모르는 다른 사람이 그가 남겼던 흔적을 통해서 그의 삶의 활동들을 짐작해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시를 읽으며, 그 노래를 떠올리는 것은.노래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언어의 자유를 획득한 자유시의 이념이 제기되고 그것이 일반화된 지금, 시는 읽는 것이다. 서가에서 시집을 골라 펼치고 눈으로 읽는다. 유독 세계를 받아들이는 감수성이나 그것을 포착해내는 언어의 해상도가 뛰어난 시인이 만들어낸 놀라운 언어의 연결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물론 자유시를 읽는 것은 귀가 즐거운 경험은 아니지만, 눈을 즐겁게 하는 경험이다. 그렇게 지금 시와 노래의 가사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 김소월 시인. 하지만, 가끔씩, 눈앞에 펼쳐지는 현란한 언어에 눈이 피로해질 때쯤, 서가에 꽂힌 김소월(1902∼1934)의 시집을 펼치면, 시는, 노래한다. 시가 노래하기 시작한다. 비록 ‘진달래꽃’의 원본은 구경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귀해져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그 재현물에 불과하지만, 시인 김소월이 시를 공부하고 언어를 고르며 흥얼거렸을 콧노래는 흔적으로도 남아 있지 않지만, 김소월의 시를 읽으면 분명 노래가 내 귀를 울린다.김소월은 우리 시인들 중에서 가장 많이 노래로 불린 작가이다. ‘진달래꽃’이나 ‘개여울’, ‘엄마야 누나야’,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등 예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가수들이 김소월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김소월의 시집을 펼쳐 읽으며 내가 흥얼거리는 멜로디는 사실 그 가수들의 노래일지도 모른다. 시에 노래가 한 번 깃들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고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문자의 나열로만 남은 김소월의 시를 그토록 많은 가수들이 노래로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은 그의 시가 민요에 뿌리를 두고 있어 형식적 정형을 띠고 있기 때문일 테지만, 단지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김소월의 시 속에는 천연덕스럽게 노래로 부르고는 있지만, 말로는 못할, 말로는 못했던 복잡한 감정의 잔여가 들어 있다. 시를 처음 읽을 때는 그 형식적 정형이 완벽해서 그 복잡한 감정을 눈치 채기 어렵지만, 세상을 살아가다가 무심코 말로는 바뀌지 않은 감정이라는 경험을 공유했을 때, 김소월의 시를 제멋대로 흥얼거리게 될 때, 시는, 노래한다. 비로소 노래하기 시작한다./송민호 홍익대 교수

2021-10-25

신라 사찰의 분포와 왕경의 형성과정

신라 왕경은 내외를 구분하는 외성(外城)이 없어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신라 당대에는 자연 지형이나 환경 등이 그 구분을 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아울러 사찰, 왕릉, 산성과 같은 국가적 중요시설 등도 그 경계로 이용한 듯하다. 신라 왕경의 사찰은 그 분포양상을 보았을 때 중고기 때에는 서천 주변, 6세기 중엽 월성 주변, 7세기 후반 낭산 일원과 토함산 북록, 8세기 중엽 형제산, 토함산 남록, 8세기 후반 이후에는 오늘날 경주시 외곽지역까지 단계적으로 확장되어 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사찰의 분포양상과 입지는 신라 왕경의 형성 과정과 방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신라 중고기 사찰의 분포는 당시 경주 분지의 고지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를 비롯해 서천 동안에 분포하는 중고기 사찰은 대부분 구하도나 습지를 피해 미고지(微高地)에 건립됐다. 이러한 양상은 마랍간기 경주 분지 내 적석목곽묘가 용천천이나 습지를 피해 축조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6세기 초까지 신라 왕경의 중요시설은 수해로부터 피해가 적은 안전한 장소를 선택해 입지했다.진흥왕 14년(553) 월성 동쪽에 신궁(新宮)을 지으려고 시도했다. 이때의 신궁은 단순히 기존의 왕궁인 월성에 더해지는 의미보다는 지리적 한계가 있는 월성을 극복하고 대신하기 위한 시설이다. 진흥왕은 신궁 건설을 통해 왕경의 새로운 구도를 개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월성 동북쪽에 습지로 남아 있던 넓은 공간을 신궁 조성의 대상 부지로 선택했고, 이곳을 매립하고 개간했다. 비록 왕궁을 짓지 못하고 사찰, 즉 황룡사로 고쳐짓게 되었지만 분명 진흥왕의 신궁 건설은 왕경의 대대적인 개발을 염두 한 것으로 보인다. 황룡사 조성 후 왕경의 도시기반시설과 중요 건축물은 월성과 황룡사 주변에 집중되었고, 천주사, 분황사와 같은 국가사찰이 주변에 건립되었다. 이후 왕경의 개발은 황룡사 동편인 낭산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낭산은 7세기 전반 선덕여왕릉이 입지하면서 주변 개발이 점차 이뤄지고, 사천왕사(679년), 황복사(구황동 삼층석탑·692년 조성)와 같은 중요사찰이 조성될 무렵 낭산은 왕경 중심부에 완전히 포함되었다.신라 중대 전반 왕경의 사찰은 낭산 일원에서 가장 활발히 조성되었다. 이 시기 낭산은 왕경의 내외의 경계를 짓는 장소로 인정되며, 이 경계지점에 호국사찰의 상징인 사천왕사가 조성된 것은 매우 의도적인 입지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사찰 분포의 변화는 7세기 후반 문무왕대 대규모 토목공사에 따른 왕경의 재개편과 관련된다. 또한 682년 감은사 조성 이후 왕경과 동해안을 오가는 경로가 활성화 되는데, 이 경로는 낭산 북쪽을 지나 명활산, 천군동사지, 고선사, 기림사로 이어져 동해안 감은사로 연결된다. 특히 이러한 사찰들은 왕경과 동해안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요지에 입지하고 있어 각 사찰의 역할이나 기능이 매우 다양했을 것이다.신라 중대 후반에도 여러 사찰이 새롭게 조성되었지만, 가장 주목되는 것은 토함산의 불국사일 것이다. 앞선 시기 낭산 주변으로 분포하던 사찰은 토함산 일원까지 그 분포 범위가 확대 되었다. 이는 성덕왕 21년(722) 축성된 모벌군성(毛伐郡城·722년), 즉 관문성과 관련될 수 있다. 즉 관문성 축성 이후 오늘날 경주 외동일대까지 안전한 방어체제가 구축되었고, 이에 왕경의 중요시설은 토함산 일원까지 확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이 경로에는 신라 중대 후반부터 여러 사찰과 함께 왕릉(성덕왕릉, 원성왕릉 등)이 조성된다. 한편 이 무렵에는 동해안으로 오가는 또 하나의 길이 형성되었다. 오늘날 토함산 남록을 통한 길인데, 이 길에는 불국사(740년경)와 장항리사지(8세기 중엽)와 같은 사찰이 입지한다.신라 하대에는 왕경 전역에 중·소규모의 사찰의 수가 많이 늘어났다. 주변 산지에 들어선 소규모 불교유적(마애불 등)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훨씬 많다. 이러한 현상은 신라 하대가 되면 지방 호족의 후원이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지방에서 많은 불사가 있었다고 하는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경주지역 신라 사찰의 분포 현상을 참고한다면 신라 하대에도 왕경 외곽에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문무왕대 이어 애장왕7년(806)에 사찰 창건과 불사에 대한 금령(禁令)을 제정한 것은 신라 하대 들어서 그만큼 많은 사찰이 새롭게 건립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동하경주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 신라 중고기나 중대에는 비교적 특정 지역(서천 주변, 월성주변, 낭산 주변, 왕경-토함산 일원)을 중심으로 사찰이 분포했었다. 또한 신라 중대까지 왕경 내 주요사찰의 분포를 살펴보면 가장 북단은 현곡면의 나원리사지(7세기 후반·북단)이고 가장 남단은 토함산의 불국사(8세기 중엽·남단)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신라 하대에는 사찰의 분포가 왕경 외곽으로 보다 더 넓게 퍼져있다. 즉 왕경 중심부를 기준으로 사방에 모두 사찰이 들어서는 변화를 보인다. 왕경 북쪽은 오늘날 현곡면을 넘어 안강읍, 강동면 일대까지 사찰이 분포하고, 동남쪽은 외동읍, 남쪽은 내남면 일원까지 사찰이 건립되었다. 동쪽에는 주로 토함산, 운제산, 함월산 등 동해안 경로 상에 사찰이 추가적으로 조성되었으며, 서쪽으로는 서천을 지나 오늘날 서악동, 효현동, 율동, 건천 일대까지 사찰이 분포하는 양상이다.신라 왕경의 사찰은 신라 중고기 서천주변에서 시작해, 6세기 중엽 월성 주변, 7세기 후반 낭산 일원과 토함산 북록, 8세기 중엽 형제산, 토함산 남록, 8세기 후반 이후에는 오늘날 경주시 외곽지역까지 단계적으로 확장되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찰의 위치나 분포만으로 왕경의 범위나 발전의 전 과정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찰의 분포양상은 신라왕경의 형성과정과 순서, 그리고 경로 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2021-10-25

감나무와 새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 무엇을 해도 좋을 가을날이 정갈하게 여물어간다. 억새가 손짓하는 산과 들을 찾아 깊어가는 가을날의 정취에 젖어보는 것도 좋고, 도시의 한적한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기에도 좋으며, 풍성한 축제마당에 빠져 코로나 블루의 갑갑증을 떨쳐버리는 것도 좋을 일이다. 풍요로운 계절에 마음마저 넉넉해지는 때가 되면 유난히 먹거리에 대한 추억이 감미로움을 더해 주기도 한다. 그 중의 하나가 가지마다 주황색의 등을 켜는 감에 대한 얘기다.유년시절의 가을, 고향집 뒷밭과 언덕에는 온통 주홍빛 감이 오지게 익어가고 있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이 지나면 논밭의 모자라는 일손을 거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한편으론 다 익은 감을 따서 껍질을 벗겨내고 곶감으로 말리거나 큰 단지에 감잎과 함께 탱탱한 감을 켜켜이 쟁여놓는 일을 할머니와 수시로 하곤 했었다. 냉장고가 아직 보급되지 않아서 겨울날의 꿀맛 같은 별미와 허기를 달래기 위한 채비를 가을부터 했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감조리개를 이용하거나 큰 감나무에 올라서 감을 따는 일은 결코 만만찮은 일이었다. 긴 대나무 장대 같은 막대기 끝에 V홈을 파서 감이 달린 가지를 끼워 돌리는 방식으로 꺾어서 감을 따는 것은, 장대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팔의 힘과 끝부분을 가지에 정확하게 맞추는 집중력이 있어야 했다. 또한 ‘감나무에서 떨어지면 약도 없다’는 말처럼 약하고 미끄러운 가지를 잡거나 디디고 감을 따는 것은 위태롭기 이를ㅑ 데 없었지만, 공중곡예(?) 하듯이 노련하게 손발을 옮겨가며 몇날 몇일 감을 따야만 했었다. 그렇게 감을 따다 보면 더러 홍시도 나오기 마련인데, 감밭에서 먹는 홍시는 그야말로 꿀보다 더한 맛이랄까! 그러한 꿀맛 같은 감 맛이 어릴 때부터 입에 배어선지 필자는 감나무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좁지만 우거(寓居)의 뜰에는 감나무가 십 수년째 네 그루나 자라고 있다. 해마다 이맘 때면 담장 곁으로 단감이나 대봉감이 익어가는 모습에서 입맛을 돋구며 은근 슬쩍 한 개씩 따먹곤 했었는데, 아뿔싸 올해는 그러한 기대가 무너지고 말았다. 수년째 까치밥을 먹는 재미삼아(?)로 봄날부터 집을 찾아드는 몇 종의 새들이 감이 채 익기도 전에 먹잇감으로 쪼아먹어 거의 모든 감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새들의 지저귐이 그저 좋고, 때에 따라 새들의 미세한 움직임에서 미묘한 소통의 방식까지 읽게 된 필자로서는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마도 새들끼리는 “저 집에 가면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이 항상 있어” “가을이면 맛있는 감들이 우릴 기다려” 라고 짹짹거리며 자주 폴폴 날아와 떫은 대봉감까지 저지레를 한 것으로 보인다.먹이를 가까운 곳에서 쉽게 구하며 재잘대는 새들이 가을의 한자락을 앗아간 것 같아 약간 떨떠름(?)하지만, 새들과의 공생은 마냥 정겹고 아름답지 않을까?

2021-10-25

四面楚歌 국민의힘…통합의 리더십 절실하다

국민의힘 대선레이스가 종반을 향하면서 대선후보들간의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여론조사 문항을 놓고 후보 본인들끼리 직접 맞붙는 사태도 발생했다. 다음달 초 시작되는 여론조사를 앞두고 홍준표 의원이 “끝까지 기상천외한 여론조사를 고집한다면 중대결심을 할 수도 있다”고 하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중대결심을 하든 말든 본인이 판단할 문제”라고 응수했다.국민의힘은 오는 11월 5일 일반국민 여론조사 50%, 당원 투표 50%를 합산해 대선후보를 선출한다. 국민여론조사는 11월 3~4일, 당원투표(모바일·ARS)는 1~4일 진행한다. 윤석열 ·홍준표 후보가 충돌하는 부분은 역선택 논란이 일고 있는 국민여론조사 방식이다. 사실상 여론조사 문구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수 있어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최근 윤석열·홍준표 후보캠프가 당내인사들을 영입해 몸집키우기 경쟁을 벌이는 것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 대선후보가 결정되더라도 선대위구성 과정에서 당이 깨질 수도 있는 후폭풍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이준석 대표는 최근 “윤석열 캠프는 조직을 너무 키운다. 홍준표 캠프는 바람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양 캠프의 조직확장을 경계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최근 이준석 대표가 당 선대위원장직에 대한 의향을 묻자 선대위가 후보캠프 중심으로 구성될 경우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윤 전 총장이 설령 후보가 되더라도 지금 경선캠프는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지도부는 지금 당이 사면초가(四面楚歌)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 24일 이재명 후보와 만나 정권재창출에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원팀으로 뛸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제3지대에서 조직과 정책을 다져온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대선링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이러한 외부환경 모두가 넘기 어려운 장애물이다. 국민의힘이 정권교체라는 목표아래 야권후보 단일화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비관적인 여건을 모두 극복할 수 있는 후보를 만들어내야 한다.

2021-10-25

메르켈 리더십이 한국정치에 주는 함의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독일의 위대한 정치지도자, 앙겔라 메르켈(Angela D. Merkel)은 최초의 여성·동독·과학자 출신 총리이자, 최연소(51세)·최장수(16년) 총리이며, 스스로 물러나는 최초의 총리다. 독일은 물론 각국의 언론·학자·정치인들이 “세계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지도자”, “폭풍 속에서도 믿을 수 있는 정신적 지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 등 그녀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다.이러한 존경과 박수는 어디에서 오는가? 메르켈이 독일과 유럽 그리고 세계에 커다란 업적과 교훈을 남겼기 때문이다. 독일경제의 회생과 정치적 양극화의 극복,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중재외교를 통한 EU의 안정화, 시리아 난민문제의 해결 등 내정과 외교의 성공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이른바 ‘무티(Mutti·엄마) 리더십’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티 리더십의 실체를 분석해보면 ‘합리·실용·신중·중재·포용·통합·행동’ 등의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다. 메르켈의 신중함은 토론과 타협, 그리고 합의를 이끌어낸 힘의 원천이었다. 과학자로서 합리주의는 이슈를 사실에 근거해서 논리적으로 다루고, 그 대책을 합리적으로 모색케 했다. 독일 보건장관 슈판(J. Spahn)은 “메르켈이 과학자처럼 일한다.”고 했는데, 이는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고 선입견을 갖지 않음을 말한다. 과학적 근거에 대한 신뢰, 열린 토론, 예측가능성은 과학자로서의 ‘합리적 규범’이 정치에 투영된 것이었다.무티 리더십은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며, 개혁과 통합의 열린 정치를 추구한다. 메르켈은 중재와 협력을 위하여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대연정(大聯政)을 세 차례나 성공시킨 ‘협치(協治)의 달인’으로서,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였던 독일정치를 혁신하였다. 이를 두고 영국의 포트러프(M. Qvortrup) 교수는 “독일 정치판을 정치보다 정책 토론장으로 바꾸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말보다는 결과로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한 메르켈의 실용적 리더십이 가져온 결과였다.메르켈 리더십이 한국정치에 주는 함의는 매우 크다. 베버(M. Weber)는 “민주주의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념윤리가 아니라 책임윤리”라고 했다. 국민에 대한 ‘책임윤리에 철저했던 메르켈수상’과 자신의 ‘신념윤리에 매몰되었던 문 대통령’의 행태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야당과의 관계에서 메르켈은 ‘정책토론’으로 성과를 거두었지만 문 대통령은 ‘정치공방’으로 허송세월했다. 메르켈은 포용력을 발휘하여 ‘행동으로 협치’를 증명하였으나 문 대통령은 ‘말로만 협치’를 외쳤을 뿐이다. 독일은 메르켈의 합리적·실용적·포용적 리더십으로 국론분열이 가장 적은 민주국가로 발전한 반면, 우리는 대통령의 편협하고 독선적인 리더십 때문에 나라가 완전히 두 동강 나버렸다.“무지와 편협의 장벽을 허물어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메르켈의 설파는 외눈박이 진영정치에 갇힌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2021-10-25

1인가구 복지정책, 지자체도 본격 준비나서야

경북 포항시와 문경시, 대구시 서구와 북구 등이 여성가족부 지원의 1인가구 사회관계망 지원사업 시범 운영 지자체로 선정됐다. 1인가구 사회관계망 지원사업은 1인가구의 고독·고립을 막고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위한 생애주기별 교육상담, 사회적 관계망 형성 등을 돕는 사업이다. 그동안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1인가구 대상 복지정책을 펼쳤지만 그 범위가 넓지 않았다.여가부의 이번 정책은 정부차원에서 1인가구에 대한 복지정책을 본격화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부는 전국 12개 지자체를 시범운영기관으로 선정하고, 내년에 6억원의 예산도 지원한다. 포항시는 지역기업과의 연계를 통한 지역맞춤형 1인 근로자 프로그램 사업을 시행한다. 인천시 경우 1인 1일 1취미 프로젝트 소모임 운영 프로그램을 시도한다.우리나라 1인가구는 급속히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5년 27.2%이던 1인가구는 2020년말 31.7%로 증가했다. 통계청의 예측보다 1년 이상 빠르게 증가했다. 행안부의 주민등록인구 통계에서는 작년말 우리나라 1인가구는 전체의 4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1인가구수만 936만 가구로 집계됐다. 10가구 가운데 4가구가 1인가구다. 노령화와 미혼인구 증가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특히 미혼인구의 증가는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주거문제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이유야 어쨌던 1인가구 증가에 따른 다양한 대책이 필요할 때다. 특히 그동안 3~4인 가구 중심의 정책이 일반화돼 1인가구는 거의 정책에서 소외돼 왔다. 정부가 1인가구 사회관계망 지원사업에 나선 것도 1인가구의 급격한 증가에 따른 맞춤형 지원책이 필요해서다. 포항시 등 시범기관으로 선정된 지자체는 자체 프로그램 운영과 더불어 1인가구를 위한 정책 개발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이제 1인가구가 대세다. 복지정책의 한 분야로 자리잡기 위한 정부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나홀로 죽음이 급증하면서 고독사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우리나라도 독거노인의 고독사가 가끔 언론에 조명되고 사회 부적응 30∼40대의 고독사도 늘고 있다. 1인가구를 위한 정부 정책이 시작됨을 계기로 지방자치단체도 1인가구 문제에 더 적극 대응해야 할 것이다.

2021-10-25

팬데믹 vs 엔데믹

팬데믹(Pandemic)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즉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것이라면 코로나 엔데믹(Endemic)은 코로나19와 함께 동행하는 위드 코로나시대에 코로나가 특정한 지역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그런 현상 또는 그런 병으로 취급되는 것을 말한다.엔데믹 종류로는 인플루엔자(독감), 말라리아,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일본뇌염, 장티푸스, 콜레라 등이 있다. 이같은 진단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역내거시경제조사기구(AMRO)가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병을 뜻하는 팬데믹에서 주기적 감염병을 뜻하는 엔데믹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한 데 따른 것이다.최근 세계보건기구인 WHO에서도 코로나19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처럼 영원히 소멸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감염병이 발생하는 엔데믹이 올 수 있다고 했다.실제로 모든 식당과 카페의 영업제한을 풀고도 7개월째 코로나를 잘 억제해온 나라가 있다. 바로 덴마크다. 지난 4월부터 클럽까지 봉쇄를 풀었지만 3차 대유행때의 1/4수준으로 4차 대유행을 막고 있다.특히 코로나 사망자는 100만명 당 1명 아래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덴마크가 코로나 엔데믹으로 성공한 요인은 코로나19가 주는 국민의 정신적 고통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백신 부작용 가능성을 처음부터 투명하게 알려 신뢰도를 높였고, 16세 이상 성인인구 접종완료율 73%를 달성할 수 있었다. 자율성을 강조해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 등 방역지침이 일상생활에 스며들도록 했다.결국 높은 백신접종률과 국민의 자발적 방역이 위드 코로나의 성공비법이자 코로나 엔데믹 시대의 묘방이라는 얘기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10-25

함께 끄는 대한민국

조현태​​​​​​​수필가 유럽 어느 목장에 종자가 좋은 말이 있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그 말 네 마리를 구입하였다. 그는 이 네 마리의 말들은 나란히 매어 마차를 끌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멀쩡해 보이는 말들이 농부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말들이 만나기만 하면 사납게 날뛰고 서로 싸우며 무섭게 으르렁거리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런 말들을 나란히 매어 마차를 몰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말들이 따로 흩어져 있으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함께 모이기만 하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먹이를 주며 달래보기도 하고 채찍으로 벌을 주기도 해 봤으나 사이가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농부는 고민에 빠졌다.오랜 고심 끝에 수의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그 말들을 잘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가르쳐달라고 했다. 수의사도 농부의 설명을 듣고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될지 여러모로 궁리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수의사는 네 마리의 말들을 마구간에 몰아넣었다. 그리고는 한 마리씩 따로 있도록 칸을 질렀다. 말들은 여전히 옆 칸에 있는 말을 의식하며 소란스럽게 으르렁거렸다. 수의사는 칸막이에 적당한 창을 뚫었다. 그리고 창마다 몇 가지 놀이 기구를 매달아 두었다. 말들이 머리로 툭툭 받아치며 돌릴 수 있는 바퀴모양의 장난감, 발굽으로 쳐서 한 쪽에서 다른 칸으로 넘길 수 있는 공, 끈에 매달아 흔들리도록 만든 알록달록한 인형 등의 놀이 기구였다.말들은 이런 장난감에 많은 흥미를 보였다. 말들이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자 수의사는 한 주간에 한 번씩 말들의 자리를 교대로 바꾸었다. 놀이기구를 통해 서로 호감을 조금씩 나타내며 장난감을 함께 갖고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마리의 말들은 차츰 차츰 서로간의 적대감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네 마리의 말들은 매우 친한 사이로 변했다. 드디어 네 마리 말을 한 마차에 나란히 매어도 괜찮았다. 오히려 서로 머리를 부비고 핥아주며 친해졌다. 네 마리 말들은 마차를 놀이기구 다루듯 주거니 받거니 재미있고 신나게 몰게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혁명’중.사람들이 사는 사회에도 여러 가지 공동체가 있다. 가정, 학교, 직장, 종교, 각종 단체 이를테면 체육, 음악, 미술, 문학, 과학, 농업, 상업, 공업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저항감과 반발심, 적대감이 있을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하여 불평하고 미워하여 지나치게 거북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공동체나 개인이 그 수의사와 같은 처방을 받을 수야 없지만 적어도 적개심은 없어야 동행이 가능하다.어떤 형태로든 같은 방향으로 달리거나 행동해야 공동체 또는 전문인이 아니겠는가. 동행하지 않으면 위의 책에서 말하는 말들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 대한민국이 넘어야 할 고지가 바로 코앞이다. 누리호 발사를 온 국민이 지켜보며 필시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까 같은 생각이 곧 동행이다. 함께 뭉치지 않으면 경제적, 정치적 식민화가 닥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2021-10-24

10월의 마지막 날

윤영대수필가 10월 달력을 자세히 보니 국경일 2개, 법정기념일 7개 외에도 많은 ‘~의 날’이 있는 문화의 달이다. 또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도 있어 노란 국화꽃으로 화전도 부쳐 먹고 유자를 잘게 썰어 꿀물에 타서 화채를 만들어 마시기도 하는, 가을의 으뜸가는 상달이라는데 벌써 마지막 주일이다.풀잎에 찬 이슬이 맺히는 한로(寒露)는 벌써 지났고, 하얀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을 맞고 보니 산과 계곡엔 울긋불긋 단풍이 절정이고 아름답게 활짝 핀 국화를 시샘하듯 들판엔 코스모스와 구절초의 무리가 한창 나풀댄다. 기러기 날아가는 황금 들판에는 농부들이 추수를 마무리하며 겨울 맞을 준비로 바쁘고 겨울잠을 자야 하는 벌레들은 숨어버린다. 이렇게 자연은 풍요롭고 알뜰한 계절을 베풀어 주는데 복잡한 정치벌판에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무슨 씨를 뿌리는지 온갖 시끄러운 말과 행동이 어지럽다. ‘된서리가 내리면 온 천지가 깨끗해진다’는 말처럼 서리 내려 맑게 씻었으면 한다.이번 10월은 날씨가 참 변덕이 심했다. 월초엔 30도를 웃도는 110년 만의 무더위가 덮치더니 곧이어 수도권에 113년 만의 가을 폭우가 내렸었고 또 보름도 지나기 전 중순엔 64년 만에 전국적으로 이른 한파 특보가 발령됐었다. 갑작스런 기록에 ‘가을이 사라졌다.’는 우려 섞인 말들도 나왔다. 경기 성남의 대장동이라는 조용한 마을에 택지개발 사업을 벌여 수천 배의 떼돈을 번 50억 클럽 얘기도 떠도는 것을 보니 기후위기와 함께 우리 사회도 위기가 온 탓일까 매우 걱정된다.이제 반소매, 짧은 바지, 엷은 속옷 모두 벗어 빨아 넣고, 긴 옷에 두꺼운 옷을 꺼내입고 추워지는 계절에 대응하듯 우리 국민들도 정치계의 비바람에 진흙탕물 튀기지 않도록 맑은 마음으로 조심해 가야겠다.시골집 대문간의 작은 감나무에는 주먹만한 홍시가 여남은 개나 열렸고 석류도 탐스럽게 입을 벌리는데 이른 아침 나가보면 그 밑자락엔 단풍잎이 떨어져 가을바람에 휩쓸려 다니고 겨울의 전령사 흰서리가 돌담 아래서 희끗거린다. 코로나 거리두기도 완화되어 다음 달이면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어 모임이나 영업시간 제한도 풀리고 코로나와 같이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니 반갑다. 국내외서 백신 여권 말이 나오자 벌써 자가격리가 없는 11월을 내다보며 해외여행의 주문도 늘고 있다고 해서 나도 쓸쩍 꿈을 꾸어본다.문화의 달 10월엔 많은 축제가 몰려있다. 포항시도 스틸아트페스티벌, 거리예술축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려 문화도시로의 위상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였고 이제 그 축제들도 끝나고 있다. 10월의 마지막 날은 할로윈데이다. 어린이들은 큰 호박에 눈 코 입 등을 파서 괴물 마스크로 변장하고 장난도 치겠지만, 가족들과 차분한 마음으로 예술회관이랑 미술관 등으로 문화 나들이를 하는 것도 좋겠다.10월의 마지막 날이 오면 즐겨 불러보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떠오른다. 가로수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툇마루에 앉아 고구마 구워 국화주 한 잔 마시며 이 계절을 노래하고 싶다.“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2021-10-24

코로나19 재택치료 확대… 국민불안 크다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가 다음달 초 위드코로나 전환을 예고함과 동시에 재택치료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재택치료 확대 이유는 무증상이거나 경증인데 굳이 병원 혹은 생활치료센터에 격리함으로써 의료인력과 의료시설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재택치료시스템을 보면, 코로나19 확진자가 원할 경우 보건소에서 확진자의 건강상태나 거주환경을 확인해, 적절성 여부를 판단한다. 대상자로 결정된 확진자는 건강관리 앱을 설치하고 하루에 2번씩 건강 모니터링을 실시하는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비대면 진료를 통해 약을 처방받는다. 감염자의 격리관리를 위해 대상자는 GPS기능이 탑재된 안전보호 앱을 설치해야 한다. 확진 후 10일째가 되면 검체검사 후 격리해제 되는 식으로 운영된다.방역당국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재택 치료를 받는 환자는 2천280명(수도권 2천176명·비수도권 104명)이다. 재택치료에 대해 일선 보건소에서는 인력도 없고 경험도 없다며 답답해 하고 있다. 정부는 생활치료센터와 유사한 수준(환자 100명당 간호사 최소 3~5명, 의사는 최소 1~2인 정도)으로 보건소에 의료인력을 배치할 예정이지만, 보건소에서는 이미 백신 접종과 선별진료소 운영으로 과부하가 걸린 상황에서 재택치료까지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수도권 보건소에서는 이미 재택치료자를 내버려둔다는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감염병 전문가 중에는 재택치료 확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재택치료 환자가 늘어나면 관리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우선 환자가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시스템이 안 갖춰져 있다. 지난 20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재택치료를 받던 환자가 확진 다음날인 21일 병원 이송 중 숨진 사건은 이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응급 상황에 대비해 재택환자가 입원할 병원이 미리 지정돼 있어야 하는데, 이 원칙이 안 지켜져 병원을 수소문하는 과정에 치료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고 한다. 재택치료 환자가 외부에 몰래 돌아다녀도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무단이탈을 막으려는 조치인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애플리케이션(앱) 의무 설치가 아직 유명무실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에 의하면 “재택치료가 끝날 때까지 앱을 설치하지 않았는데도 아무 제재가 없었다”는 환자 반응도 있다. 재택치료 규정상 보건소 협력병원은 하루 1, 2차례 비대면으로 확진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데, 환자가 자신을 담당하는 의료기관도 모른 채 지내다가 재택치료 시작 5일째가 돼서야 협력병원의 연락을 받은 경우가 있다고 한다.재택치료에 대한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모델이 확립되기까지는 전국 지자체가 이 시스템을 동시에 가동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확진자가 급속도로 쏟아질 수 있고 위중증 환자관리도 제대로 안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위드코로나는 반드시 국민적 합의를 거쳐 시행돼야 한다.

2021-10-24

중국산 김치 공포

중국에는 김치와 전혀 다르지만 김치의 대표적 번역어로 파오차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파오차이는 채소를 염장한 중국의 절임배추를 이르는 말이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국의 김치를 그렇게 부른다. 만드는 방식이나 모양도 김치와 다르다. 오히려 서양의 피클에 가깝다.파오차이는 한국 김치가 중국으로 본격 수출되기 전에는 중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쓰촨지방의 향토음식에 불과했다.그러던 것이 2020년 11월, 중국의 환구시보가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을 받아 국제 김치시장의 기준이 됐다는 보도를 하면서 마치 중국이 김치 종주국인 된 듯한 논란을 자주 일으키고 있다.올 1월에는 중국의 최대 유튜버 ‘리즈치’가 김치를 직접 담가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물에는 중국의 전통요리라는 해시태그까지 달아 이를 본 우리 국민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중국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김치가 한류를 타고 국제적으로 크게 인기를 누리자 이를 계기로 중국이 김치 종주국 행세를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동북공정처럼 김치를 통해 또다시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도 했다.이런 가운데 중국산 김치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동영상이 최근 또다시 나돌아 충격을 주었다. 붉은색 양념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한 여성이 밟고 있는 모습의 영상이다. 과거 알몸 배추로 국민에게 쇼크를 주었던 중국산 김치의 비위생적 제조과정을 다시 연상케 한 동영상이다. 식약청이 비식품 물질이라고 뒤늦게 해명을 했지만 중국산 김치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불신감은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 식탁 깊숙이 들어온 중국산 김치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스럽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24

배터리산업 중심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포항

포항시가 지난 21일 영일만 산업단지에서 에코프로 4개 자회사인 에코프로EM, AP, CNG, Innovation 공장 준공식을 가짐으로써 명실상부한 2차전지 산업의 세계적인 중심도시로 떠올랐다. 정부는 현재 2차전지를 반도체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주력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2차전지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충전을 통해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는 전지를 말한다. 반도체가 우리 몸의 머리 같은 존재라면, 배터리는 동력의 원천인 심장에 비유될 정도로 배터리산업은 차세대 주요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2차전지 매출은 2030년이 되면 세계시장의 40%를 차지할 전망이다. 이날 준공한 4개 자회사중 에코프로EM은 2차전지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BM과 삼성SDI가 합작으로 설립했으며, 에코프로AP는 하이니켈계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BM과 에코프로EM에 양극재 부원료인 고순도 산소와 질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회사다. 그리고 에코프로CNG는 사용 후 배터리에서 원료를 추출하며, 에코프로Innovation은 리튬소재를 가공하는 회사다. 에코프로는 지난 2018년부터 영일만1·4 산업단지 내 13만5천여평 부지에 ‘에코 배터리 포항캠퍼스’라는 2차전지 종합생산 클러스터를 조성해 오고 있었다. 에코프로는 그동안 이 클러스터에서 에코프로GEM과 에코프로BM공장을 가동해 왔다. 에코프로가 향후 5년 내 이 클러스터에 투자 계획인 금액인 2조2천억 원에 이르며 신규 고용인원도 2천4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포항시는 지난 7월 포스코케미칼 2차전지의 핵심소재인 양극재 공장을 유치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포스코케미칼은 포스코와 함께 리튬, 니켈, 흑연원료 등의 자원개발과 선제적 투자, 소재연구 개발로 2차전지 사업경쟁력을 높여왔다. 도시경쟁력 확보를 위해 신성장 기업 유치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는 포항시의 노력이 차츰 결실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든든하다. 포항시는 앞으로 이들 배터리산업 관련 기업들이 영일만항에서 생산규모를 키우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서 이들 기업들이 포항의 세계화에 주역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21-10-24

백신접종률 70% 도달, 경각심 풀지 말아야

23일 우리나라 인구대비 백신접종 완료율이 70%를 넘었다. 지난 2월 백신접종을 시작한 이후 240일 만이다. 누적 1차 접종자 기준 전체 인구비 접종률은 79.4%다. 보건당국은 해외 주요국과 접종률이 유사하거나 높은 수준이라 했다. 국민의 적극적인 백신 참여와 잘 갖춰진 의료체계 및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 덕분이라 하겠다.백신접종 완료율 70%는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가는 위드코로나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정부는 이미 발표대로 11월부터 위드코로나 체계로 전환한다고 한다. 이에 앞서 정부는 이미 출범시킨 국무총리와 민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일상회복지원위원회를 통해 오는 29일 일상회복 지원을 위한 구체적 방안도 발표한다.위드코로나로 전환된다고 당장 마스크를 벗는 것은 아니다. 위드코로나로 가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접종을 서둘러야 추가 확산을 막을 수 있다. 돌파감염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어 돌파감염도 간과해선 안 된다. 특히 국민들이 코로나가 잡힌 것으로 생각하고 경각심을 늦추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위드코로나라 하더라도 기본방역 수칙을 잘 지켜야 점진적으로 일상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위드코로나는 사망자 방지와 위중증 환자를 집중 관리하는 의료체계다. 격리치료가 아닌 재택치료를 확대하는 것도 위드코로나의 핵심적인 대책 중 하나다. 또 다중이용시설 운영제한이나 행사, 모임 제한도 서서히 완화해서 일상을 점차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지난 20일에는 재택 치료 중이던 60대 환자가 이송체계 미흡으로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재택 치료자가 늘어날 위드코로나 방역체계에 대한 더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정부는 코로나19 위기기간 동안 중단했던 소비쿠폰을 다시 재개해 소비를 진작시키겠다고도 했다. 위드코로나 전환에 맞춰 정부가 소비 진작을 서둘 일은 아니라 본다. 방역체계를 완화하면 업소의 운영시간이 풀리고 시중 소비는 자연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당장의 소비 진작보다는 위드코로나에 따른 방역체계 관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아직 한 번도 백신을 맞지 않은 미접종자가 1천만명이 된다. 이상반응을 우려하는 이들에 대한 대책이 먼저다. 정부도 국민도 위드코로나에 들떠 경각심을 늦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21-10-24

혁신적인 인구정책만이 미래를 보장한다

고윤환 문경시장 인구지진(Age quake)이 가속화 되고 있다.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는 27만 명, 사망자는 30만 명으로 사망자수가 출생자수를 추월하는 데드크로스가 시작되며 우리나라는 인구지진의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이로 인해 도시 지역은 계속되어 상승하고 있는 높은 집값, 교통 혼잡, 환경 문제 등 과밀·혼잡 비용이 증가하고 있고, 여기에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반면 농촌의 경우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출 심화로 활력은 저하되고 지속 가능성마저 우려되고 있다.문경의 경우에도 인구구조 변화와 기간산업의 사양화에 따른 도시성장의 정체로 사회·경제·문화 등 지역쇠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문경시 인구는 석탄산업 시기인 1970년대 최대 16만 명까지 증가했으나 1980년대 이후 폐광과 함께 급속히 감소되었으며, 현재는 7만~8만 명으로 인구가 유지하고 있으나, 청년 인구 및 40대 인구 감소세, 50대 인구 증가 둔화, 60대 이상 고령인구 증가의 양상을 띄고 있다.먼저, 청년층이 희망하는 가치 있고 보람된 일자리, 높은 집값에서 벗어난 안정된 사회 정착에 대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곳, 장·노년층이 희망하는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 인생 이모작, 사회적 인정 등에 대한 욕구를 달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 공간으로 농촌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귀농·귀촌·귀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그동안 문경시는 귀농인 보금자리 운영, 귀농인 소득작물 시범 사업, 체계적 영농 교육과 경영컨설팅 지원 등 적극적인 귀농·귀촌 시책을 추진해 2019년 1천 51세대, 1천350명, 2020년 1천164세대, 1천399명을 문경에 정착시켰다.또한, 문경의 2020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1.29명으로 전국 평균 0.837명, 경북 평균 1.00명에 비해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농촌의 빈집을 활용해 예비 귀농인들이 1년간 살아보도록 하는 귀농인 보금자리 사업은 농촌살이를 체험하며 주택과 영농기반 확보, 영농컨설팅과 현장교육 등 정착을 위한 임시거주지 역할을 하며, 2014년부터 61세대 142명이 이용해 정착 인원은 37세대 84명에 이른다. 많은 귀농·귀촌 희망자들의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바로 거주지이다.농촌에 방치되거나 적절히 관리되지 못하는 빈집은 마을과 지역사회의 치안과 안전, 경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을 내 기존 주민이 고령화로 사망하거나 요양시설로 거처를 옮기면서 빈집이 발생하고, 타 지역에 거주하는 자녀가 상속받아 관리가 소홀해지는 경향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방치되고 있는 빈집의 주된 원인은 소유자가 빈집을 매매 또는 임대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농촌 빈집을 정비·활용하는 데 주요한 장애 요인이 된다.반면, 신규택지를 개발하여 분양하는 경우 막대한 설계비, 상하수도, 도로, 터 닦기, 그 외 기반시설비 등 비용이 많이 들어 구매자에게 높은 가격에 분양할 수 밖에 없고,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정책으로 도시민들이 2억 원을 초과하는 농어촌주택 구입 시 1가구 2주택 적용으로 세제상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문경에서는 최근 문경살리기 범시민운동 추진본부가 출범하고, 문경을 살리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경사랑 주소갖기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농촌에서 살아보기를 준비하는 도시민들에게 주거를 임대·지원하는 문경형 경량철골조 모듈주택사업 예비 수요조사가 실시됐다.경량철골조 모듈주택 사업은 귀농·귀촌을 고민하고 있지만 막상 집을 구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반영해 농촌에서 살아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귀농·귀촌에 대한 실패확률을 줄여 안정적인 정착을 유도하고자 구상됐으며, 귀향·귀농·귀촌인에게는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고 시골 곳곳에 방치되었던 폐가나 빈집을 정비함으로써 지역에는 주거 환경개선 효과와 지역경기활성화 등 1석 3조의 효과가 기대 된다.

2021-10-24

탐추

독서모임에서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고 느낌을 나눴다. 밑줄 친 문장 중에 풍류에 대해 정의를 해 놓은 부분이다. 그림 설명해주는 손철주님은 봄이면 탐매하러 가자고 지인들에게 연락한다. 몇 날 몇 시에 모여서 2박 3일 일정으로 매화 향기를 느끼러 가니 참석하라고 말이다. ‘탐매’라는 낱말이 국어사전에 나온다. 탐매하다, 탐매객, 이런 표현이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매해 탐매를 떠난다고 하니 그게 바로 풍류라고 한다. 그럼 나도 풍류객이다. 계절마다 피는 꽃을 찾아 나서니 말이다.지금은 가을, 오늘은 구절초를 보러 갔다. 서악동 도봉서당 뒤에 구절초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지 몇 년째인데 이제야 가게 되었다. 일하는 지인들의 시간에 맞추다 보니 어스름 녘에 찾아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눈앞이 환하다. 삼층탑 주변에 하얀 꽃잎으로 수를 놓았다. 구절초가 언덕을 덮고 있다.해가 산 너머 집으로 서둘러 가느라 붉은 그림자가 서악동에 내렸다.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꽃밭을 눈에 넣어야 했다. 차에서 내리니 서늘한 기운이 골짜기에 가득할 뿐 늦은 시간이라 인적은 끊겼다. 그래서 구절초밭이 온통 우리 차지였다. 밭고랑 사이를 거닐자 은은한 가을 저녁 향내가 풍겼다. 아, 좋다~하는 소리가 서로의 입에서 나와 미소짓게 했다.언덕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탑 주변을 하얀 구절초 병정들이 에워쌌다. 그 옆으로 서당 기와의 색이 짙어 꽃이 더 환하게 돋보였다. 골짜기를 둘러싼 소나무 숲은 어두워져도 꽃밭엔 어둠이 더디게 내렸다. 덕분에 천천히 구절초를 탐하는 시간을 가졌다.일행 중에 오 학년 사내아이 둘이 구절초 사이로 뛰어다녔다. 사진을 찍어 저녁을 먹은 후 포토제닉상을 뽑겠다고 했더니 카메라를 향해 열심히 포즈를 취해준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박중훈과 안성기의 명장면도 재현하고, 어깨동무도 했다가 슈퍼맨도 되어주었다. 별 이야기 아닌데도 까르르 웃고 조잘거리는 소리가 꽃이 피어나는 소리와 닮았다.깜깜해져 꽃이 보이지 않을 때 즈음 산을 내려왔다. 구절초를 간직한 서라벌 하늘 위로 달이 둥실 떠올랐다. 달이 이지러진 곳 하나 없이 동그랗다. 오늘이 보름인가, 달력을 찾아보니 음력 시월 십육 일. 어제가 보름이었다. 낮 동안 포항은 종일 비가 내려 꽃을 보러 못 가겠구나 했다가 오후 5시쯤 구름이 걷혔다. 경주로 와보니 땅이 젖지 않아 여긴 비가 오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이래서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또 느꼈다.도솔 마을에서 경주의 맛을 느끼며 찍은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멋진 사진의 주인공에게 문화상품권을 주기로 해서인지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른 셋이 사진을 돌려보며 어느 게 더 좋다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두 아이에게 ‘천원이라 미안해’하며 만 원짜리 상품권을 줬더니 받자마자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그 얼굴이 구절초처럼 방싯거린다. 아이들이 꽃보다 곱다.가장 행복할 때는 맛있는 거 먹으면서 다음에 뭐 먹을지 의논할 때이다. 구절초 보고 와서 남은 가을에 어디로 탐추하러 떠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양의 핑크 댑싸리가 시월 말이면 절정이고, 안동 시내 낙동강 둔치의 핑크뮬리 보고 헛제삿밥 먹는 코스도 좋다. 경주 최제우 동상이 있는 천도교 성지 용담정으로 가는 길이 은행나무 가로수이다. 곧 노랗게 물들어 우리를 부를 것이다. 조금 멀리 눈을 들면 순천만의 낙조가 보인다. 갈대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면 우리도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노을을 보면 좋은 곳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 파주출판단지 지혜의 숲의 높은 책장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면 더없이 좋은 여행이 된다. 가을을 탐할 곳이 끝도 없이 튀어나온다.배불리 가을을 채우고 경주의 밤거리를 걸었다. 보름달이 더 높이 솟았다. 아이들이 신나서 앞서서 뛰어갔다. 달을 배경으로 한 컷의 꽃 사진을 더 찍었다. 신라의 달밤이다. /김순희(수필가)

2021-10-24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골프장 변호하는 경주시

경주시 천북면에서 골프장 공사를 하는 (주)태영건설이 1만㎡가 넘는 산림을 불법훼손한 사실로 인해 사법처리가 진행 중인 과정에서 경주시가 골프장 준공인가를 내준 것에 대해 특혜의혹을 제기한 본지 보도를 두고, 경주시가 이례적으로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골프장 업체를 대변해 그 내막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경주시는 지난 7월 태영건설이 천북면 성지리 일원에 24홀 규모 골프장과 진입도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1만715㎡ 규모의 산림을 무단훼손한 사실을 파악했다. 이에따라 경주시는 지난 9월2일 태영건설과 공사 책임자 박모씨를 산지관리법위반혐의로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고발했으며, 검찰은 지난 7일 태영건설과 박씨에게 벌금형 처분을 내렸다.이 과정에서 경주시가 산림 원상복구명령 등 산지관리법 위반에 대한 행정·사법절차가 진행 중인데도 태영건설 골프장에 실시계획변경인가와 준공인가를 내줘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경주시는 “태영건설에 내려질 예정이었던 원상복구명령은 태영건설이 앞서 제출한 사업계획 변경 신청건이 9월 16일 승인되면서 해당 의무가 면제됐다”고 밝혔다. 태영건설 골프장은 지난 7월 경주시가 산림훼손사실을 적발하기 직전(6월) 골프장부지 면적추가와 진입도로 선형변경을 위해 경주시에 사업계획변경절차를 신청했다. 경주시는 지난 17일 ‘태영건설 골프장 특혜논란에 대한 경주시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지형파악이 어려운 산지개발 특성상 사업시행자가 지속적인 측량을 시행해 산림훼손 예방에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태영건설이 이를 소홀히 한 것으로 판단된다. 산림훼손의 대부분을 차지한 진입도로의 소유권은 준공 후 경주시에 기부채납돼 이를 특혜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보도자료를 보면, 태영건설이 골프장 건설을 위해 산림훼손을 한 이유가 ‘산지개발 특성상 지형파악이 어려웠다’는 전제가 있고, 또 산림훼손한 지역이 대부분 진입도로이며, 그 진입도로는 경주시에 기부채납됐다는 내용이다. 누가봐도 골프장 건설업체 입장을 비호하고 있는 내용이다. 경주시에 묻고 싶은 것은 △지형파악이 어려운 점 △진입도로 기부채납이 산림불법훼손과 무슨 연관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명백하게 불법행위를 한 골프장 측을 위해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무리하게 변호하는 경주시를 두고 어느 누가 특혜조치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2021-10-21

전기차 선도도시 대구, 충전 인프라는 뒷전

대구가 최고의 친환경 전기자동차 선도도시를 추구하면서 정작 충전소 인프라 투자에는 매우 인색했다는 국회 자료가 나왔다.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양금희 의원(국민의 힘)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대구에 등록된 전기자동차는 모두 1만3천974대이나 급속충전기는 677기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급속충전기 1대가 감당해야 하는 전기차 수는 20.64대로 전국 평균(13.48대)보다도 크게 뒤떨어졌다. 대구시의 전기차 등록 대수는 경기, 서울, 제주에 이어 전국 4위다. 급속충전기는 17개 광역지자체 중 꼴찌권인 15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대구시는 지역산업 구조의 획기적 전환을 위해 일찍부터 미래형 자동차산업 육성쪽으로 정책을 펼쳐왔다. 그 일환으로 전기차 선도도시를 추구했으며 그 결과 2020년에는 전기차 선도도시로 국가브랜드 대상을 3년 연속 받기도 했다. 또 세계 전기자동차협회가 전기자동차산업 발전에 공헌이 큰 도시에 주는 전기차 모범 도시상도 아시아태평양지역을 대표해 받는 영광도 안았다.대구시는 2016년 전기차 200대 보급을 시작으로 1년만인 2017년 10배 수준인 2천127대를 보급했고, 2019년에는 누적 1만대를 돌파했다. 특별광역시 중 인구수 대비 전기자동차 등록비율 전국 1위를 했다. 이에 발맞춰 대구시는 2030년까지 전기자동차 50만대를 보급하고 지역내 등록차량의 50%까지 전기차를 보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발표했다.그러나 정작 전기차와 동시에 확장해야 할 급속충전 시설은 등한시했다. 결과적으로 대구시 정책을 믿고 전기차를 구입한 시민들만 불편하게 된 꼴이 됐다. 전기차 선도도시로서 대구시의 이미지 관리에도 나쁘다. 대구시는 완속충전가를 포함하면 대구의 충전기 인프라가 나쁘지 않다고 하나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말이다. 바쁜 세상이다. 급속충전기로 교체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추세다. 대구시가 전기차 선도도시를 유지하려면 전기차 보급뿐만 아니라 충전기 인프라 등 모든 분야에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양 의원의 자료에 의하면 대구에는 61대의 수소차가 등록돼 있으나 수소차 충전소는 겨우 2곳뿐이라 한다. 친환경도시와 산업구조 전환을 바란다면 대구시의 분발이 있어야 겠다.

2021-10-21

마피아

우리나라 표준국어대사전에 마피아의 정의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근거로 한 강력한 범죄조직, 자국에 정치적 폭력을 행사하고 도박, 금융 따위에 관련된 거대한 범죄조직”이라 표현했다.우리가 통칭 사용하는 마피아는 폭력적 집단이며 불법적 범죄 조직이란 뜻이다. 흔히 정치 마피아, 법조 마피아, 관피아 등의 호칭을 쉽게 사용하지만 마피아란 말의 뜻을 찬찬히 따져보면 상당한 모독적 의미가 담겨있다.정치권에서 특혜시비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드러난 법조인의 모습을 보면 법조 마피아라는 말이 그냥 나오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법관, 변호사 등 우리사회를 선도해 나갈 법조계의 역할을 생각하면 국민에게 안겨준 실망감은 크다 할 것이다.원래 마피아의 발상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다.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활약한 비밀결사대 혹은 조직 폭력배를 이르는 말이다. 1900년 초중반 이 조직이 미국으로 건너와 국제적 범죄조직으로 명성을 알리게 된 것이다. 지금은 기업형 범죄조직이란 보통 명사로 쓰이는 말이다. 일본의 폭력 조직인 야쿠자를 일본 마피아로 부르는 것 등이 이런 케이스다.1972년 상영된 영화 ‘대부’는 마피아 조직의 단면을 볼 수 있었던 영화로 유명하다. 범죄 영화로서 역사상 최걸작으로 평가된다. 영화 속의 마피아가 지나치게 미화돼 비판도 제기됐으나 마피아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한 공로는 크다.정치권의 대장동 개발 특혜시비 공방 속에 여당 대선후보의 국제 마피아 연루설까지 등장, 논란을 키우고 있다. 대선전의 품격이 떨어진 느낌이다. 사실 여부야 밝혀지겠지만 혼탁해진 대선전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어둡다./우정구(논설위원)

2021-10-21

이재명 vs 윤석열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유력주자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한 사람은 능수능란한 언변과 순발력으로, 또 한 사람은 ‘1일 1실언’으로 곤욕을 치르는 후보다. 바로 여당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얘기다.여당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번 주초 현직 경기도지사 자격으로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대장동 개발특혜의혹과 관련,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아냈다. 이 지사는 특유의 달변으로 정면돌파를 시도, 일정부분 성공한 듯 보인다. 확신에 찬 말투와 안색으로 대장동 개발은 단군이래 공공이익을 최대로 공익환수한 모범사업이라는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청산유수처럼 매끄러운 말솜씨에 여유로운 얼굴 표정으로 야당 의원들을 농락했다. 대장동 개발을 주도하고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당한 유동규가 측근 중의 측근임이 확연한데도 측근이 아니라고 잡아뗐다. 새로 제기된 조폭과의 연루설에 대해선 첨부한 돈 사진이 다른 데서 쓰였던 사진이니, 모두 헛소리라 치부했다. 푼돈으로 급조한 법인에 수천억원의 초과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초과이익 환수조항이 빠진 계약서를 결재하고도 “환수논의가 있었는 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초과이익 조항을 추가하자는 직원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대장동 개발사업을 자신이 설계했다고 해놓고, 유동규가 구속되자 개인의 범행으로 몰고 관리책임을 인정하는 선에서 덮으려한다. 이미 과거 형수에게 쌍욕을 한 것은 욕 할만하니 했다고 넘어갔고, 여배우와의 염문설도 터무니없다고 잘랐다. 그의 화법은 나치시대 선동가인 요제프 괴벨스를 연상시킨다. 괴벨스는 “선동은 문장 한둘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고 했다.이에 반해 국민의힘 대권주자 가운데 선두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올해 정치판에 뛰어든 정치초년병이다. 토론회나 기자회견에서 말하는 걸 보면 아마추어티가 역력하다. 카메라만 보면 긴장돼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습관 하나 고치려 해도 잘 안된다. 잇따른 설화사건도 그렇다. 정치권 언어에 익숙하지 못한데다 비유를 들어 생각을 설명하려다 꼬투리 잡히는 일이 너무 잦다. 정치판에서는 앞뒤말 자르면 오해하기 쉬운 말들은 경쟁자들에게 공격의 빌미가 되지만 그걸 체득하고 실천하기엔 물리적 시간이 너무 짧았다. 억울하다 싶은 사안을 해명할 때 얼굴색이 붉게 달아오르고, 어떻게 대답해도 곤란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질문에도 굳이 대답하려 애쓴다. 구렁이 담넘듯 동문서답 하는 일이 없다. 너무 다른 두 후보를 견줘본다. 말을 잘하는 게 좋지만 자신의 허물을 가리는 데 쓰이니 오히려 감점이다. 귀는 움직이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그러니 필자는 달변보다, 서툴게 더듬거리는 눌변(訥辯)에 더 마음이 가는 셈이다. 진솔한 마음에서 우러난 말이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건곤일척의 선거에서 이기려면 표심을 얻어야 한다. 과연 두 후보 가운데 누가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얻을 지 두고볼 일이다.

2021-10-21

요행과 확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대략 815만분의1 정도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당첨이 안 될 확률이 99.99…%라는 얘기다. 벼락을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배나 낮은 것이 로또복권 일등 당첨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도 매주 8백만 매 이상 복권이 팔린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그만큼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위험부담이 적으면 버리는 셈치고 해보게 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심리일 것이다.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는 데도 요행을 바라고 투기를 하는 것은 남달리 사행심이 강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일 터이다.‘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인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거액의 빚을 지고 삶의 막장으로 몰린 사람들이 456억 원이라는 거액에 눈이 멀어 0.2%의 확률에 목숨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이 드라마의 내용이다. 전혀 아무런 탈출구가 없다가 일확천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풍족한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이성을 마비시켜버린 거라고나 할까. 아무리 돈이 절박하더라도 죽을 확률이 99.8%인 게임에 목숨을 건다는 건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인 오늘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세상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건 너무 끔찍한 현상이 아닌가.카메라 앵글은 최후의 승자인 주인공을 쫓아가지만 그동안 죽어간 사람들은 아무런 해결도 없이 더 참담한 결과만 남겼을 뿐이다. 참가자 456명 중에 455명이 죽고 단 한 사람이 살아남는 건 사회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가 비록 거액의 상금을 손에 쥐었다 한들 456명 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대다수가 처참한 일을 당한 사회라면 그게 바로 지옥이 아니고 뭐겠는가. 지금 한반도의 북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도 거기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오징어게임’ 만큼이나 매스컴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게 ‘대장동사건’이다. 일확천금이라는 점에서는 양자가 닮았지만, 한 쪽은 목숨을 걸고 수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은 데 비해 다른 쪽은 땅 짚고 헤엄을 쳤다는 점에서는 천양지차다. 몇 사람이 수천억 원의 돈을 챙기면서 남을 죽이기까지 한 건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편취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징어게임’ 승자가 차마 그 돈을 쉽게 쓰지 못한 것과는 달리 대장동사건 관련자들은 6년 근무 직원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주는 등 로비자금이다 고문비용이다 흥청망청 광란의 돈 잔치를 벌인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사행심이나 한탕주의가 횡행하는 사회는 분명 병든 사회다. 의식주가 절박하던 시절에 비해 몰라보게 경제사정이 좋아졌지만, 그것이 물질적 속박을 벗어나게 한 것은 아니었다. 물질에 집착하고 예속되는 현상은 오히려 더 심해진 게 아닐까 싶다. 물질문명에 경도되어 정신적 가치를 등한시해서는 삶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가 없다. 풍요롭고 균형 잡힌 사회로 가려면 교육이나 언론도 중요하지만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지금의 대권후보들 중에는 그런 인성과 지성과 품격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2021-10-21

점입가경(漸入佳境) 의 대선 레이스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옛 중국에 전국에서 그의 그림을 구경하러 올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리는 고개지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런데 그는 사탕수수를 늘 단맛이 적은 줄기부터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친구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고개지가 “갈수록 더 좋은 경치를 보고 싶은 것처럼, 갈수록 더 단맛을 느끼고 싶어서 그렇다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점입가경은 어떤 일이나 풍경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재미있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의 레이스가 점입가경의 맛을 주고 있다.이번 경기도 국정감사는 경기도지사인 이재명 여당의 대통령 후보를 놓고 흡사 대선 토론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막을 내렸다.공익환수를 더 철저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와 그 원인이 야당에게 있다는 방어로 불꽃 튀는 설전을 벌였다. 대장동 사업에 대한 이 후보의 역할에 대한 비난과 그에 대한 정당성 방어가 팽팽히 맞선 가운데 국민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는 결론으로 끝을 맺은 듯하다. 어쨌든 경기도 국정감사는 끝났고 여당의 최종 후보인 이 지사의 대선 행보는 많은 화제를 뿌리면서 본격화할 전망이다.이런 가운데 야당의 최종 후보 선발을 위한 긴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두 번에 걸친 압축과정을 겪어 최종 4명의 후보가 마지막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이 2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서 둘 중에 한 명이 최종 주자가 될 확률이 높은 상태에서 여론은 팽팽히 갈라지고 있다.윤 전 총장이 아직 정치 초보인 건 맞지만, 새로운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는 것은 과거 그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직성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하는 실언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가 국회의원도 한번 해본 적 없는 신인이라는 점에 오히려 점수를 주고 있다.반면 홍준표 의원의 오랜 의원직 경험과 지사로서의 행정 경험을 높게 사는 사람들은 ‘홍카콜라’라는 별명처럼 바른말을 속 시원하게 잘 던지는 모습을 좋아한다. 정치 행정 경험이 풍부한 것도 그의 장점이 될 수 있다.그런 면에서 20, 30대 젊은 표가 행방을 가를 전망이라는 관측도 있다.점입가경인 것은 미세하지만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윤 전 총장이 그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지, 홍 의원 등 다른 후보들이 반전을 해낼 수 있을 지가 관전의 포인트다. 앞으로 다섯 번의 토론을 더 한다고 하고 그리고 11월 5일 전당대회를 열고 최종 대선 후보를 발표한다고 한다. 이후 4개월간의 여당, 야당 두 후보의 대결은 더 흥미로울 것이다. 이것은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민주주의를 가진 국가의 국민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이다.정정당당한 대결을 통해 국민의 결정이 내려지고 한국의 민주주의의 모습이 세계인에게 존경받는 그런 모습을 기대해 본다.

2021-10-21

인명 구조소

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배의 침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해안 지역에 보잘 것 없는 인명구조소가 있었다. 몇 밖에 없는 구조원들은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구조활동을 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졌다. 세월이 흐르고 이들이 구조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후원회를 조직하고 후원을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후원자들을 관리하고 친목하는 일이 구조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되었다. 급기야 구조소는 후원회원들의 친목회관으로 전락하게 되고 구조소는 그 본래적 목적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뜻있는 사람이 다시 구조소 본래적 사명으로 돌아가 구조만을 위한 새로운 구조소를 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지게 되었고 생명을 구조 받은 이들은 이 구조소의 후원자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이 구조소 역시 회원들의 친목회관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일은 이후에도 계속 반복되었다. 웨델의 ‘인명구조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세 명의 기독교인이 나오는데 모두가 다 기독교를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부정적 내용으로 채워졌다. 80∼90년대 이전의 기독교 대중문화는 영화 ‘낮은 대로 임하소서’와 ‘사랑의 원자탄’ 등에서 보듯 대중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는 대중문화 속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교회학자는 한국교회가 양적인 성장을 통해 물질주의신앙에 빠지면서 본래적 사명을 잃어버린 겉만 화려한 무덤교회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야웨신앙에서 가장 경계했던 신앙은 바알종교였다. 바알종교는 농업이 주 산업이었던 당시에 노동력의 확보를 위한 다산과 농사와 축산을 풍요롭게 하는 부의 신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바알종교를 함께 섬기는 혼합신앙에 급속히 빠져 들었고 점차적으로 물질만능과 물질풍요만을 쫓는 신앙이 되어 버렸다. 엘리야는 천박한 물질자본주의 바알종교를 개혁하기 위하여 목숨을 건 대결을 벌여 공의와 도덕과 자비와 믿음을 상실한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했다.한국교회의 첫 시작은 비록 보잘것없는 오두막집에서 시작했으나 인명구조를 위한 본래적 사명에 충실하였다. 하지만 오늘의 교회는 양적성장과 함께 바알종교화 되어 구조소라기 보다 회원들의 친목회관으로 변질되고 우리 사회 역시 바알종교에 물들어 버렸다. 무엇이든 확장되고 비대해지면 본질을 잃고 변질되기 쉽다는 것을 잊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2021-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