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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Ⅲ>

등록일 2022-10-03 19:31 게재일 2022-10-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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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이건욱

영산시는 노인 복지에 있어서는 항상 다른 지역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 노인들의 의료보험 본인 부담금을 지자체가 모두 부담하는 정책, 노인 전용 무료 급식 식당의 개설, 노인용품 바우처 제도 등의 정책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었다. 영산시에서 먼저 정책을 시행하면 주위의 다른 시에 사는 노인들이 볼멘소리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의 다른 시에서도 영산시에서 하고 있는 정책을 흉내 냈다.

영산시에서 인호는 영권의 대리인이었다. 인호는 영권을 대신해서 영산시장을 만나고 정책을 건의하고 관철시켰다. 영산시에서만 다섯 번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영권의 아들, 인호의 건의는 영산시장에게는 명령과 같았다. 시장이 인호의 건의를 거부할 명분도, 필요도 없었다. 예산이 부족합니다. 시장이 이야기하면 인호는 영권을 통해 해결해 주었다. 다른 시의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영권을 찾아와 왜 영산시만 그렇게 혼자 튀려고 하느냐. 혼자 가지 말고 협의해서 같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 불평을 하는 날이면 영권은 인호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했다, 칭찬을 했다.

영산시에서는 노인과 관련된 행사가 끊이지 않았다. 가로등과 현수막 거치대에는 거의 매일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주말이면 문화회관이나 운동장의 주차장에서는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실버 건강 걷기 대회부터 실버 마라톤, 실버 문학 대전, 실버 음악 대전, 실버 미술 대전, 실버 사진 대전, 실버 연극제, 실버 예술 주간, 실버 체전까지. 그리고 이 모든 행사들을 총 정리하는 실버 대제전까지.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도시 이름이 실버라 생각했을 것이다.

영산시는 노년의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곳이었다. 노인들은 생업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다녔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산책을, 아침 식사를 한 뒤 텃밭에 물을 주고 탁구장이나 배드민턴 코트에 들러 운동을 하는 것. 노인 급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집에서 쉬거나 작업을, 저녁은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이 그들의 하루 일과였다. 주말에는 동호회에서 만난 지인들의 다른 행사를 찾아 응원을 하고, 행사가 없는 날은 찻집에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문학기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야 살맛나는 세상이라 생각했다. 건강한 노인들의 이야기였다.

건강하지 못한 노인들의 삶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정기적인 병원 방문과 약물의 복용을 도와주는 도우미들이 있었다. 그들은 병원이나 약물 복용뿐만 아니라 병을 앓고 있는 노인과 독거노인들의 식사나 잠자리 등을 살펴 주었다. 남아 있는 약의 개수를 살펴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했는지 살폈고, 냉장고의 내용물과 부식의 잔량으로 노인의 식사를 확인했다. 정기적인 산책과 일조 시간의 확보 등도 도우미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일시적인 질환, 예를 들면 장염이라든가, 가벼운 감기라 하더라도 신청만 하면 단기로 도우미들이 배정되어 서비스를 제공했다. 영산시에서 모든 경비를 감당했다.

더욱 힘든 노인들, 거동이 힘든 노인들은 시에서 운영하는 요양병원 혹은 만성 질환자 관리 병원에 입원을 시켜서 치료했다. 질병의 치료만 담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노년을 관리했다. 병원 내에서도 병원 밖과 마찬가지의 활동들,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죽음의 순간을 함께 했다.

건강한 노인이든 건강하지 않은 노인이든, 노인들의 활동은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었다. 병원의 운영과 도우미들, 각종 행사를 위한 기반 시설의 운영 등 공공기관을 통한 고용의 증대와 각종 행사의 개최, 각종 단체에 대한 지원금, 질환의 치료, 약물 및 입원비용의 지급 등 공공기관의 지출 증가는 결국 지역민의 소득으로 이어졌다. 사적으로는 노인들이 각종 동호회에서 배우는 각 분야에 필요한 용품들, 행사를 치르기 위한 장소들, 식사 및 뒤풀이 등. 하다못해 축하 꽃다발까지. 노인들이 움직이는 모든 지점에서 소비가 있었다. 이 모든 소비에 내가 있지. 인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중앙 정가에서 활동하는 영권과는 달리 인호는 지역사회에 밀착하려 했다. 몇몇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한 것 뿐 아니라 시에서 주최한 각종 강좌에 개인 자격으로 신청을 해 수강을 했다. 다른 수강생과 똑같이 연단에 나가 자기소개를 하고 수업을 듣고 질문을 하고 뒤풀이에 참석했다.

그중 인문학 교실은 그가 처음부터 기획을 하고 사람을 모아 십칠 년째 유지해오고 있는 모임이었다. 주제 선정부터 강사 섭외까지 인호가 직접 했다. 졸업생이 사백여 명이 되었으니 작은 모임은 아니었다. 인호는 노인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함께 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다. 틈 날 때마다 젊은 사람 어디 없냐며 모임에 참석한 노인들에게 진담 반 농담 반 섞어 이야기했다.

그러게. 이, 삼십 년 전만 해도 이런 모임에 와서 자리를 둘러보면 군데군데 젊은 사람이나 가정주부들이 보였었는데 말이야. 나만 해도 그렇지. 그때는 가정주부였으니까. 아무리 바빠도 수요일 저녁은 나의 시간 이렇게 정해놓았었지. 남편한테 애들 맡기고 강의 들으러 쫓아다녔었는데. 요즘에는 이런 자리에서 애 엄마들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니까.

/김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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