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꿈결 같은 설악산 단풍산행

등록일 2022-10-10 18:02 게재일 2022-10-11 18면
스크랩버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 가을채비를 나서는 발길이 가뿐하기만 하다. 계절의 수레는 어김없이 빛과 색과 열매를 드러내며 부지런히 굴러가고 있는데, 너무 바쁘거나 궁색(?)하게 계절의 변화와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아집에 사로잡혀 외곬스럽게 살아갈 수 있으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이웃과 사회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인데, 좀 더 열리고 트인 가슴으로 자연과 교감하고 만상(萬象)과 공감하는 여유와 감응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하루는 연휴 내내 이불 속에서 뒹굴어도, 바깥에서 활기차게 움직여도 어김없이 지나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떠났을까? 근 5년만에 설악산에 다시 올랐다. 1990년 초에 처음으로 대청봉을 오르고 그 풍광에 매료되어 자주 찾아야지 해놓고는 쉽사리 가지 못해 아쉬움이 컸었는데, 그나마 5년만에 다시 오를 수 있어서 다행스럽기만 했다. 톱니바퀴같이 돌아가는 일상을 벗어나서 마음이 끌리고 몸이 향하는대로 누구라도 홀가분히 떠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현실의 짜인 일들과 주어진 역할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낡은 일상의 반복으로부터 떠날 수 있다는 것은, 아직은 가슴이 뛰고 심신의 건재함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나름의 주관이 뚜렷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연 설악산은 명산답게 새벽부터 등산객들로 붐볐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시작되는 본격적인 새벽 등산코스는 초입부터 상당히 가팔랐다. 랜턴을 비추며 수많은 계단과 비탈길을 오르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발길은, 어쩌면 살아가면서 차근차근 밟고 지나가야 하는 삶의 단계적인 수순과 절차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힘들면 쉬엄쉬엄 숨을 고르며 완급을 조절하고, 갈증과 허기를 달래는 물과 주전부리는 등반의 추동력을 유지시키는 연료 같은 것이었다. 마침 서녘하늘에서 반기던 새벽달이 넌지시 등을 밀어주는 것 같아서 산행의 발걸음이 한결 수월해진 것 같았다.

“구름이 넘나드는 숨막힐 듯 우뚝 솟은/암봉(巖峰)에 달라붙어 기는 듯 줄을 타고/각고의 끈덕짐으로 한 걸음씩 옮긴다//쭈뼛쭈뼛 칼날바위 안간힘으로 오르고/위태위태 바위부리 부여잡고 지나며/아찔한 공룡의 등짝 곡예하듯 밟는다//험난함이 커질수록 비경(秘境) 외려 빛나던가/추색(秋色) 짙은 천화대 하늘에 핀 꽃송이들/골골이 뼈대같은 기암 염주처럼 얽혔네//한시름 넘기면 또 한고비 다가오듯/시련의 마루터기 악착같이 넘고 나니/마등령 갈림길에서 들려오는 산의 말씀” -拙시조 ‘설악산을 오르며’

운무가 수시로 끼고 걷히는 선경(仙境)같은 능선을 타면서 더해지는 감흥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부터 오른다(登高自卑)는 것을 보여주며 지위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낮춰야 함을 새삼 일러준다. 또한 정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듯이 높은 곳에 거처하면 떨어질 것을 생각한다(居高思墜)는 평범한 가르침이 떠오르기도 했다. 새벽안개가 피어나는 서북능선의 몽환적인 단풍숲에 꿈결처럼 파고드는 아침햇살은 그야말로 절정과 찬탄의 서정시를 쓰고 있었다.

心山書窓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