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경제·문화 강국 한국의 저급한 정치 위상

등록일 2022-10-23 19:42 게재일 2022-10-24 16면
스크랩버튼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의 ‘오징어 게임’은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부분에서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을 수상했다. 송강호의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에 이어 이번 수상은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등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가 이제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그 우수성을 세계가 인정받은 결과이다.

작품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빈부의 갈등구조, ‘오징어 게임’은 적자생존의 치열한 자본주의적 경쟁구도를 리얼하게 묘사하였다. 한국인 특유의 성취 욕구와 경쟁의식, 조급한 성공 스토리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구조를 잘 반영해준 결과이다.

과거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업신여기고 비하하는 열등의식을 가진 적도 있다.

이제 우리는 한국적인 정서와 끈기가 선진국에서도 먹혀든다는 확신마저 갖게 되었다. 한국의 영화, 음악, 음식, 언어까지 세계인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무척 다행한 일이며 한류(韓流)라는 이름의 우리의 문화가 한국의 국격을 높이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우리가 해외여행을 나서면 일본인이냐고 자주 물어 곤혹스런 적이 많았다. 당시 일부 여행객 중에는 일일이 대답하기 귀찮아 ‘예스’라고 해버린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근년 세계 속의 한국 위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세계 어딜 가나 한국을 알아주고 ‘코리아’하면 엄지를 치켜세운다. 올림픽과 월드컵 4강 신화 시절 필리핀 어느 섬으로 봉사 활동을 떠난 적이 있다. 필리핀 오지의 초등학생들까지 우리 일행을 보고 붉은 악마의 구호 ‘대-한-민-국’을 외쳐 깜짝 놀랐다. 당시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될 때 거리가 조용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경제 규모면에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 우리 경제가 2020년 기준 1인당 GDP가 일본을 앞서고, 최근 미국 와튼 스쿨에서는 한국의 국력이 세계 8위 일본을 앞질러 6위가 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하고 있다.

우리 정치의 위상은 어떠한가. 1970년대 미국인들은 한국 정치를 미국에 수출하려는 현대 포니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비아냥댔다. 이제 우리의 반도체와 스마트폰, 전기 자동차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한데도 유독 우리 정치는 아직도 저질의 3류 정치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그간 군부 쿠데타와 권위주의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였다. 우리 정치는 형식적인 제도적 측면의 민주정치의 틀을 갖추었으나 아직도 선진 민주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두 번이나 정당 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아직도 정쟁으로 치닫는 여야가 격렬하게 맞붙어 싸우는 네거티브 정치가 일상화 되었다. 정치의 본질이 ‘권위의 합리적 배분’ ‘갈등의 완화’ 과정인데 우리 정치는 너무 비합리적인 낭비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플러스의 정치가 아닌 너 죽고 나 살겠다는 마이너스 정치가 자행되고 있다. 우리 정치는 조선왕조의 노론백파와 남인의 당파 정치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혼탁한 정치판에서 언론마저 책임을 방기하고 정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우리 정치 현실은 공정한 심판도 선수도 없는 진흙탕 싸움판이 계속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질 낮은 정치의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는가. 치열했던 지난 대선이 끝나고 여야의 입지가 바뀐 지 오래지만 여야는 선거 시의 마타도어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소수의 백로마저 찾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국회에서 여야는 정책 대결이 아닌 사사건건 대립되고 고소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 사회도 진영으로 갈리고 합리적인 무당층이나 중도층은 회색분자로 치부되어 침묵하는 실정이다. 이럴수록 진영에 착 달라붙은 ‘디지털 극단주의자’들이 정치의 갈등을 더욱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양심적인 시민들의 정치인들에 대한 냉소와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정치를 이 나라의 경제나 문화 수준만큼이라도 끌어올릴 수는 없을까. 어디에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가슴이 답답하다.

여야 정치인들부터 각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저질 정치의 일차적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겉으로 민생과 공생을 외치지만 그 내면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여야의원들은 적대적 공생을 통해 권력과 특권을 향유하면서 차기 공천을 위한 충성 경쟁, 줄서기 정치에 몰입되어 있다.

우선 여야는 우리 정치의 후진적이고 비생산적인 갈등 구도를 풀기 위한 특단의 긴급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당은 조건 없이 지난 정권을 향한 ‘보복 정치’를 중단하고, 야당은 집권 세력을 향한 ‘발목잡기 정치’부터 중단해야 한다. 그러한 ‘역사적 대타협’이 상생의 출발점이기 되기 때문이다.

시사포커스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