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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에게 안녕이라고 말하기까지

등록일 2022-10-24 17:55 게재일 2022-10-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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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
‘애프터 양’ 포스터.

‘애프터 양’은 근원적인 슬픔을 내포한 영화다. 이 슬픔은 두 가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하나는 삶의 주기가 다름에서 오는 것이다.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함께 살고 있는 시기를 알 수 없는 미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일정한 성장과 성숙의 속도를 가진 인간에 비해 안드로이드의 탄생(생산)과 죽음(폐기)은 필요성에 의해 그 시기가 결정되며 인간과의 그것과는 다른 양태를 띤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과 생산되어 폐기되기까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안드로이드. 서로의 시간은 상대적이다. 일정한 삶의 주기를 살다가는 인간의 변화하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안드로이드는 성능에 따른 삶의 주기를 변화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아니 작동한다고 해야할까.

시간의 상대성은 ‘필요에 의해 설정된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관계는 역전된다. 인간의 가족관계는 세월이라는 서열의 관계지만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관계는 그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성장과 쇠퇴의 주기를 가진 인간과 지속적인 성장의 능력을 가진 안드로이드와의 차이 속에서 내재된 불균형의 슬픔이 담겨 있다.

제이크와 카이라 부부는 중국인 아이 미카를 입양한다. 미카를 위해 중국인이라는 뿌리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중국에서 생산된, 중국인의 정체성을 이식한 안드로이드 ‘양’을 집안에 들인다. 그리고 ‘양’이 어느 날 작동을 멈추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대체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다. 집안의 가전제품이 작동을 멈출 때 그것을 수리하거나 새로운 제품으로 대체한다. 안도로이드 ‘양’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구매한 제품으로 시작해 대체될 수 없는 그 무엇인가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가전제품을 대체할 때 기준은 기능과 성능이다. 안드로이드의 경우 기능과 성능만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난감함과 함께 결이 다른 슬픔이 다가온다. 양이 작동을 멈췄을 때 불편함과 함께 당혹스러웠던 감정(소멸된 기능)이 다른 방향으로 번져간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정식 경로로 구매하지 않았던 양의 수리를 위해 여러 업체를 전전하면서 제이크는 양의 중심에 감춰진 기억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주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처럼 시각화된 양의 기억 장치 속에 기록된 시간은 제이크의 가족뿐만 아니라 그 이전까지 양이 거쳐왔던 관계들의 사소하면서 파편화된 순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저장된 기억의 기준은 무엇인가.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인식되었던 ‘기억을 통한 사유’의 과정이 안드로이드 양의 메모리에 자리잡고 있다. 제이크와 양의 대화 중에서 양은 “장소에 관해, 시간에 관해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두서없이 기록된 것과 같은 양의 기억은 ‘진짜 기억”에 대한 자유의지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추억에 대한 자유의지와 중국인의 정체성이 이식된 프로그램의 발현일지도 모르지만 나비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안드로이드. 모두 주체성을 가진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 의지는 인간이 그렇듯이 기억 속에 자리잡은 타인과의 관계, 인연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져 있다. 양은 이식된 프로그램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갖는 존재로 진화하며 인간다움의 질문을 던진다.

인간인 제이크의 기억과 안드로이드 양의 기억이 함께 놓인다. 제이크도 몰랐던 양의 기억 속에서 대체할 수 없는,

제품이 아닌 이제는 떠나보내야하는 존재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인간의 관계처럼 이제 추억을 떠올리며 슬픔을 비로소 슬픔을 감내해야하는 시간이 다가왔음을. 온전히 슬픔이 남은 자의 몫일 때, 안드로이드 양도 “그래서 슬픈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주)Engine42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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