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쳐다본다는 것

등록일 2022-10-23 17:13 게재일 2022-10-24 18면
스크랩버튼
유영희 작가
유영희 작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죽음이 가깝다는 것을 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논쟁은 말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리된 것 같다.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오늘 있었던 모임의 한 참가자는, 의사가 자신의 암 재발 소식을 알리면서 최대 5년 살 수 있을 거라고 무덤덤하게 말하더라며 웃었다. 그녀가 웃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준비를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준비도 못 했는데 갑자기 죽음이 닥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죽은 이에게도 많은 회한이 남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죽은 사람이 등장하는 문학 작품을 종종 볼 수 있다. 극작가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에도 그런 사람들이 나온다. 이 작품은 1938년 퓰리처 상 희곡 분야 수상작으로, 무대 감독이 해설자 역할을 하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잔잔하게 보여준다.

극의 여자 주인공 에밀리는 출산하다 갑자기 죽게 된다. 공동묘지에는 죽은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묘지에 막 들어선 에밀리는, 먼저 죽은 이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해설자에게 전생으로 가고 싶다고 졸라 자신의 열두 번째 생일로 돌아가서 가족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금세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는다. 엄마는 에밀리 생일이라고 구하기 어려운 선물도 준비해주었고, 아빠도 강연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에밀리의 생일을 축하했지만, 에밀리는 그들이 서로 쳐다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에밀리가 이 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데 왜 서로 쳐다보지 않느냐고 외치지만 소용이 없다.

가족뿐 아니라 자신이 누리는 물건들이나 커피 한잔 하는 자신의 일상조차 제대로 느끼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너무나 아름다워 진가를 몰랐던 모든 사물에게 작별하며 에밀리는 이승을 완전히 떠난다.

쳐다보기를 제대로 못 하는 가족이 에밀리 네만은 아닐 것이다. 서로 생일도 챙기고 여행도 하는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라도 속을 들여다보면 그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 뿐 정작 중요한 서로 쳐다보기는 못하는 가정이 많다. 작은 충격이라도 들어오면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아슬아슬한 가정도 많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맹목의 열정에 사로잡혀 언제나 분주하게 친구를 만나거나 재물을 모으거나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쳐다보기를 못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그런 성취 역시 허울만 좋은 가족처럼 덧없다.

무대 감독은, 산다는 것은 무지의 구름 속을 헤매면서 괜히 주위 사람들 감정이나 짓밟고, 마치 백만 년이나 살 듯 시간을 낭비하고, 늘 이기적인 정열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면서, 인간과 항상 함께 하는 데도 인류가 까맣게 잊고 있는 영원한 무엇이 있다고 한다.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사람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 에밀리의 이 물음은 우리가 죽음을 대비하는 가장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것이 무대 감독이 말한 영원한 그 무엇과 함께 하는 것이다.

유영희의 마주침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