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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RE 100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겠다는 목표의 국제 캠페인이다.2014년 영국 런던의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이 처음 시작한 것으로, 여기서 재생에너지는 석유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태양열, 태양광, 바이오, 풍력, 수력, 지열 등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말한다.RE100은 정부가 강제한 것이 아닌 글로벌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되는 일종의 캠페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RE100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크게 태양광 발전 시설 등 설비를 직접 만들거나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전기를 사서 쓰는 방식이 있다. RE100 가입을 위해 신청서를 제출하면 본부인 더 클라이밋 그룹의 검토를 거친 후 가입이 최종 확정되며, 가입 후 1년 안에 이행계획을 제출하고 매년 이행상황을 점검받게 된다.국내 기업 중에서는 SK그룹 계열사 8곳(SK(주),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C,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SK브로드밴드, SK아이이테크놀로지)이 2020년 11월 초 한국 RE100위원회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국내 제도는 재생에너지 100% 사용 선언 없이도 참여가 가능하나,산업부는 참여자에게 글로벌 RE100 캠페인 기준과 동일한 2050년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권고한다. 다만, 2050년까지 중간 목표는 참여자의 자율에 맡겨진다.RE100은 에너지 정책분야에서 쓰이는 전문용어인데, 최근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이와 관련한 질문을 던져 일반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졌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2-07

대통령 후보들, 문화전쟁에 응답하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국제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와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정책연구소가 세계 28개국을 대상으로 한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총 12개 항목 중 빈부·이념·정당·학력·성별·세대·종교 등 7개 영역에서의 갈등이 1위를 기록하여 ‘문화전쟁(culture war)이 가장 심각한 나라’로 분석되었다.문화전쟁의 핵심으로 지적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은 전체 국민의 87%가 인정했고, 빈부갈등(91%), 계층갈등(87%), 성별·세대·종교 갈등(80%)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우 높게 인식되었다. 이 같은 국제비교는 우리사회가 당면한 ‘갈등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통합의 시급성’을 일깨워주고 있다.물론 현대사회에서 각 집단의 가치와 이익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다면적 차원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집단갈등이 적정수준에서 조절되지 못하고 폭발할 경우,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연대의식이 사라짐으로써 국가적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특히 대선과정에서 경쟁후보들이 득표율 제고를 위해 ‘갈라치기’전략을 구사할 경우 문화전쟁은 더욱 치열해진다.따라서 대통령 후보들은 문화전쟁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온갖 포퓰리즘 공약들을 남발하면서도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문화전쟁에 대해서는 표를 잃을까봐 모른 체하는 ‘비겁한 정치인들’이 대통령 되겠다고 난리다.중병에 걸려 있는 나라의 갈등은 외면하고 선거의 이해득실만 계산하는 후보는 지도자 자격이 없다.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대통령 후보는 당면한 문화전쟁에 분명히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대통령은 ‘진영의 보스가 아니라 국가의 원수’이다. 국민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진영논리나 확증편향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윤리’와 ‘국민에 대한 책임윤리’가 충돌할 때 당연히 후자를 우선해야 한다. ‘국가통합의 상징으로서 대통령’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문화전쟁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고 있는 시대적 소명이다.이를 위하여 대통령 후보들은 문화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각종 불평등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후, 토론을 통하여 국민의 동의를 구하고, 집권하면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 후보들은 각자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상호 토론함으로써 국민의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특히 이 공론의 장에서는 문화전쟁의 ‘핵심원인이 되고 있는 승자독식(勝者獨食)’으로 인한 이념 및 정당 간의 갈등해소를 위한 정치제도 개혁, 빈부·학력·성별·세대·계층 간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경제·사회정책들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문화전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선출되는 새 대통령은 집단갈등을 경계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후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진영논리와 편 가르기, 선택적 공정과 내로남불 정치로 우리사회의 문화전쟁을 최악으로 몰고 왔다는 사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기 바란다.

2022-02-07

‘ESG 스타트업’요람으로 떠오르는 포항

포항시가 9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ESG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을 돕기 위해 300억원 규모의 ‘ESG 포항 펀드’ 투자제안 설명회를 연다. 최근 기업가치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ESG는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첫글자를 딴 용어다. ‘ESG 포항 펀드’ 설명회는 국제적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로 평가받는 스파크랩의 김호민 대표가 진행한다. 김 대표는 지난 10년간 200여 개의 스타트업을 발굴한 창업기획자이며, 앞으로 포항 펀드 운용도 책임진다. 포항시는 포항 펀드 투자 제안대상을 지역 내 기업으로 한정하지 않고, 전국기업과 해외투자자로 확대할 계획이다. 포항시는 지난해 11월 포항펀드 조성을 위해 포항을 ‘ESG 도시’로 선포한 바 있다.최근 들어 ESG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들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사례는 많다. 리하베스트는 맥주 부산물을 대체 밀가루로 만들어 화제가 된 스타트업이다. 오비맥주에서 맥주 부산물을 제공받아 생산된 리너지 가루로 에너지바, 냉동피자, 피자도우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청년에게 취약한 금융 신용점수 대신 비금융 정보를 바탕으로 신용을 평가해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크레파스솔루션, 와상 환자들이 누워서 대소변을 볼 수 있는 자동처리기를 생산하고 있는 메디엔비테크, 못난이 유기농 과일을 원재료로 ‘어글리시크(UGLYCHIC) 화장품’을 만드는 브로콜리컴퍼니가 대표적인 스타트업이다.포항은 국내 어느 도시보다 스타트업을 양성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다. 포항시가 지난달 21일 국내 벤처·스타트업 권위자 20여 명을 초청해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연 자리에서 이강덕 포항시장은 “수도권에서 오히려 포항으로 찾아오는 벤처창업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내일 출발하는 ‘ESG 포항 펀드’가 앞으로 성과를 내서, 이 시장의 말처럼 포항이 스타트업 꿈을 실현하려는 청년들이 모여드는 기회의 땅이 되길 기대한다.

2022-02-07

상식과 진실에 승복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김진국 고문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나는 문재인 정권 후계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잘못되고 부족한 정책”이라고 혹평했다. 문 대통령이나 ‘문빠’들이야 섭섭하겠지만 그러지 않고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무엇이 그렇게 잘못된 걸까? 지난달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정권교체’ 의견(56.0%)이 ‘정권 유지’ 의견(36.7%)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의 불만이다. 문재인 정부가 잘못한 일을 꼽자면 한도 없다. 그중에서도 사법 신뢰의 붕괴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법원은 힘없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다. 돈 있고, 권력 가진 사람이 많다. 주먹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엔 법이 옳고 그름을 가려주리라 믿는다. 그 믿음마저 없다면 힘없는 사람이 어떻게 살겠나.그런데 그게 무너졌다. 민감한 재판이 있을 때마다 판사 성향부터 따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비슷한 사건이 판사에 따라 유죄도 되고, 무죄도 되는 일이 벌어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나 윤미향 의원 사건에서 범죄는 진영 대결의 축이 되어 진실은 사라져버렸다. 대통령까지 ‘마음의 빚’을 얹었다. 서울·부산시장, 충남지사가 줄줄이 성폭행 사건을 일으킨 것도 기이한 일인데, 여성 인권을 외치던 사람들이 ‘피해 호소인’이란 희한한 조어로 감싸는 데는 탄식만 나온다. 치외법권 특권층인 셈이다.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씨는 유죄 확정됐지만, 사법 저울을 믿기에는 신뢰가 너무 바닥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줄줄이 사표를 냈다. 법원이 ‘제왕적 대통령’을 받드는 부속기관쯤으로 인식된다. 경찰은 원래 상명하복의 조직이지만, ‘검찰 개혁’은 검찰과 공수처까지 정권의 하청기관으로 몰았다.진실을 가리는 또 하나의 보루는 언론이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 통신… 정부 힘이 미치는 매체들은 ‘어용’이란 딱지가 낯설지 않다. ‘공정’은 언론계에서 추억이 되어간다. ‘선전 선동’을 언론의 소명처럼 주장한다. 진실은 숨어버렸다.“거짓말도 반복하면 사람들이 믿게 된다”는 요설을 거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북한은 아직도 ‘북침’이라고 주장한다. 천안함도, 대한항공 858기 공중폭파, 아웅산 폭탄테러, 김정남 살해도 모두 뒤집는다. 그게 북한만의 일이 아니다. 정치권에서 불리한 것은 무조건 뒤집는다. 진실을 뒤집는 기술자들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다. 선거는 진실과 거짓을 마구 섞어 야바위판이 됐다. 궤변가들이 전문가 행세다.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것은 ‘도청’보다 ‘거짓말’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는 일이다. 닉슨의 거짓말을 드러낸 것은 언론과 엄정한 사법 체계다.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집요한 수사로 닉슨을 궁지에 몰았다. 닉슨이 콕스 해임을 요구했다. 하지만 임명권자인 법무부 장관과 차관 모두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범죄를 감추어주면서까지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문재인 정부에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 많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1년이 넘도록 다투고, 지청장이 사건 수사를 방해한다. 주요 사건 증인이 줄줄이 자살하는데, 진실은 정권이 끝나도록 감춰진다. 범죄자가 큰소리치고, 고발한 사람은 두려움에 떤다. 경험은커녕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나라다.이게 차기 대통령 선거에까지 이어진다. 투자금의 1000배가 넘는 이익을 몰아줬지만 “너는 깨끗하냐”라며 덮어버린다. 정부 공금으로 가족 부식을 사고, 공무원이 민간인의 수행비서, 살림 비서 역할을 한 녹음과 사진이 나와도 아랫사람 탓만 한다. 개인 왕국 같다.사실을 시인하지도, 잘못을 사과하지도 않았다. 반성 없이 고쳐지지 않는다. 시의회에서 지적당한 일이 10년간 이어졌다. 수시로 뒤집는 공약이 어떻게 바뀔지 믿을 수 없다. 진심 어린 시인과 사과가 먼저다. 가뜩이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한계에 이르렀다. 상식이 통하고, 진실에는 승복하는 사회가 정말 그립다./본사고문

2022-02-06

나는 실존주의자다

이정희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나는 종종 주위 사람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실존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반응은 “어머, 그래요”, 또는 “그런데, 실존주의가 뭐에요”라고 묻는다.지금 이 시대야말로 실존주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양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3인방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궁극적인 질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였다. 이 질문이야말로 철학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에 끌리는 사람은 분명 실존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물론 실존주의자는 실존주의 철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지 않고서는 실존주의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존주의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해서 실존주의자인 것도 아니다.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 사르트르는 우리들이 언제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가 최고의 실존주의자로 추앙받는 이유는 진정으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철학자였기 때문이다.며칠 전 오랜만에 서점에 들렸다가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신나게 사가지고 나왔다. 실존주의는 자유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철학이며, 성실과 용기를 무기로 삼아 현실을 직시하고 사물을 철저하게 통찰하는 법을 이야기 하는 철학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그동안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실존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간단하고 단호하게 정의한 책은 없었다. 나는 진정한 실존주의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먼저,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철저히 파헤쳐 봐야겠다. 현재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는 어떻게 발생했으며, 코로나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으며,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전개 될 것인지 분석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진지하고 치열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계는 우리가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 안에 엄청난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잠재력 발견이야말로 실존주의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계획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항목이다.실존주의자를 정리하면, 무슨 일이든 해낼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 어떠한 상황이든 변명을 하지 않는 사람, 결코 나약하지 않으며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 인간의 존엄과 자존심과 위엄을 당당히 지키는 사람, 정의롭지 않은 일에 의연히 맞서는 사람, 자신과 적당히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사람, 다른 사람이 원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기를 거부하는 사람, 인생의 역경 속에서도 부단한 노력을 통해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실존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우리가 사는 사회는 끔찍하게 불공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주의자적인 자세로 올바른 삶을 목표로 살고자 한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2022-02-06

토끼가 한숨 잔 이유

유영희 인문글쓰기 강사·작가 “토끼는 거북이가 느리다고 자꾸 놀렸어요. 그러자 거북이가 토끼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했어요. 토끼는 바로 승낙하고 시합에 나섰지만 한숨 자다가 거북이에게 지고 말았어요.”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다. 거북이의 꾸준함과 토끼의 어리석음이 한눈에 대비되어 보인다. 실제로 이 우화는 거북이의 우직함을 칭찬하거나 토끼의 자만을 나무라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 간단한 이야기 같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아리송하다. 토끼의 잘못을 나무라는 것은 자기보다 많이 느린 거북이와 달리기 시합을 할 때 기를 쓰고 달렸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정말 토끼에게 거북이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달리라고 해야 하나? 한숨 잔 토끼를 게으르다고, 어리석다고 탓하는 것은 약자와 경쟁하는 기득권자를 채찍질하는 셈이다.그렇다고 거북이의 성실함을 칭찬하는 교훈으로 받아들이기에도 문제는 있다. 태생적인 약점을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특이하거나 영웅적인 사례를 일반화하여 약자를 다그치는 것은 가혹하다. 한때는 잠자는 토끼를 깨우지 않고 혼자 갔다고 거북이를 나무라는 논리가 인기 있었다. 그러나 이미 불공정한 게임에서 약자에게 강자를 도우라는 요구는 연대나 배려의 의미를 오남용한 것이다.진호(가명)는 느린 학습자라고 불리우는 소년이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해 두려움이 많다. 며칠 전 진호와 ‘토끼와 거북이’를 읽으며 거북이는 왜 토끼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했을까, 토끼는 왜 한숨 잤을까 물어보았다. 진호는 먼저 이런 말을 한다. 왜 이기는 것만 말해요? 체력이 좋아진 걸로 말하면 안 돼요? 아하, 정말 그렇구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어도 체력이 늘었을 테니 지더라도 의미가 있네. 그러자 뒤이어 이렇게 말한다. 토끼는 일부러 낮잠을 잤어요. 거북이에게 힘을 주고 싶어서요. 거북이는 이기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어서 시합을 한 거예요.학식 높은 어른들도 생각하지 못한 진호의 해석에 머리가 띵했다. 도대체 왜 우리는 토끼를 교만한 게으름뱅이로만 해석했을까? 왜 토끼가 거북이를 이기기 위해 열심히 달렸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거북이는 잠자는 토끼를 깨워 같이 갔어야 한다는 논리에 왜 동조했을까?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어른들, 공정의 프레임에 갇힌 어른들, ‘함께’를 오용하는 어른들을 진호는 멋지게 한 방 먹였다. 진호가 이런 말을 하기까지 혼자 겪었을 고통의 시간을 조금은 짐작하기에 울림은 더 컸다.그런데 진호 친구들은 진호를 위해서 낮잠을 자줄 수는 없을 텐데, 거북이처럼 달릴 수 있겠어? 네.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네. 저는 할 거예요. 진호, 참 장하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츤데레 토끼와 우직한 거북이가 많아지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2022-02-06

수(藪)를 듣다

북송리 북천수의 사계절을 들었다. 다들 숲이라 이름 붙일 때 이곳은 수(藪)라 불렀다. 수풀, 덤불이라는 뜻의 수이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느껴져 매일 한 시간 이상 걷자고 마음먹고 찾아간 곳이다.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한 해였다.북송리 북천수, 소나무 숲의 이름이 특별하다. 다른 고장에도 있을 테지만 포항은 동네 숲을 많이 간직한 도시다. 선비가 지와 예를 갖추듯 푸른 동해와 깊은 계곡까지 겸비했다. 해안선이 길어서 바람을 막고자 방풍림으로 해송을 길게 심었고, 동네마다 둘레에 나무를 심어 가꿨다. 내 어릴 적 학교 소풍 장소였던 송도 솔밭과 기계 서숲, 여인의 숲, 청하 관송전, 덕동숲, 언뜻 기억나는 곳만도 이만치이다.두내, 양촌, 천방, 큰동네, 건너각단 등으로 불리던 자연마을들은 1914년에 통합되어 북송리가 되었다. 북송리에 북천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북천수가 있어서 북송리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결국, 솔숲이 행정구역 통합을 이루어낸 셈이다. 정월 대보름날 마을 사람들은 이 숲의 제당에서 동제를 지낸 후 마을 앞산에서 산제를 지낸다. 이때 전년도에 묻어둔 간수의 상태를 보고 그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풍습이 있다. 이처럼 북천수는 수해방지림인 동시에 방풍림의 역할을 해 왔으며, 오랜 기간 마을 주민들의 신앙적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문화적·역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큰 마을 숲으로 인정받아 2006년 3월 28일 천연기념물 제46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흥해현지도’와 1938년 조사된 ‘조선의 임수’에 이 숲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조선 철종 때 흥해 군수 이득강이 북천에 제방을 쌓고 4리에 걸쳐 숲을 조성하였는데 현재는 그 일부만 남아 있다. 숲의 길이가 2천400m, 너비는 150m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광복 직전에 일본인들이 크게 훼손하여 대부분의 노송이 잘리는 운명에 처한다. 그 이후로도 수십 년 동안 무단벌목, 방치에 따른 주민 생활오물 투여, 농경지 개발 등으로 인하여 북천수는 숲으로서의 고유한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전통마을 숲 복원사업으로 일대 정비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형태로나마 남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규모는 길이 1천870m, 너비 70m(천연기념물 지정구역 면적은 21만1천923㎡)로 조성 당시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상당 정도 회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송림은 4곳으로 하동 송림, 예천 금당실 송림,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그리고 북천수이다.이 숲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숲 가운데 세 번째로 긴 숲으로 알려져 있다. 수종은 소나무와 곰솔이다. 소나무는 뿌리가 깊게 자라기 때문에 방풍림으로 제격이라고 한다. 소나무의 줄기는 붉은색을 띠고 곰솔은 검은색이다. 검은 솔이라 부르다 곰솔이 되었다 한다. 두 나무를 정확히 구분하는 방법은 새순을 보는 것이다. 소나무의 새순은 줄기와 같이 적갈색이나 곰솔은 회백색을 띤다.숲 가장자리에 서부초등학교가 자리했다. 학교 둘레에 소나무가 가득한 걸 보니, 오래전에는 이곳도 북천수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양덕동에 사는 민영 선생님은 아이들을 숲에서 뛰놀게 하려고 이 학교에 보낸다. 자신의 차가 없어서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포은도서관 앞에서 흥해로 가는 차로 갈아탄다. 서부초는 1, 2교시 합쳐서 수업하고 쉬는 시간이 30분이다. 점심시간에도 얼른 밥을 먹어치우고 밖에 나가려고 한다. 아이들은 숲에서 곤충도 관찰하고 솔방울도 주우며 산책을 즐긴다. 민영 선생님이 매일의 수고로움을 겪으면서도 이 학교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북천수라고 했다.숲 옆을 흐르는 곡강천을 옛날에는 북천이라 불렀다. 북천변에 심은 나무 북천수는 이제 거대한 마을 숲이 되어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다. 서부초에서 아이들을 키우듯, 숲에는 자연 발아유도지 4곳을 설정하여 유목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하였다. 아름드리 둥치가 숲의 과거라면 솔방울이 뿌리내려 서로 키가 다른 어린 소나무들이 숲의 미래다./김순희(수필가)

2022-02-06

관직은 손님처럼

백선기 칠곡군수 ‘재세여려 재관여빈(在世如旅 在官如賓)’이라는 경구(警句)가 있다. 세상살이는 나그네처럼 하고 관직 생활은 손님처럼 하라는 뜻이다.조선 후기 문인 성대중은 규장각에서 교서관 교리의 벼슬에 있을 때 이 글을 좌우명으로 삼아 벽에 써 붙여놓고 공직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는 관직을 자신의 특권이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익을 버리고 미래를 내다보며 청렴하게 업무를 처리했다.돌이켜 보면 필자도 모든 혼과 열정을 군정에 쏟아붓고 칠곡군 최초의 3선 군수라는 영광을 얻었지만 결국 손님처럼 왔다가 오는 7월 후임 군수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손님처럼 떠나야 한다.개인 백선기는 자연인으로 돌아가지만, 칠곡군수 자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리더의 선택은 조직과 지역의 운명을 좌우하기에 후임 군수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고자 한다.첫째, 현재보다 미래를 내다보며 기본과 원칙을 지켜나갔으면 한다.2011년 취임 당시 칠곡군은 전국 82개 군(郡) 단위 자치단체 중 예산 대비 채무 비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한 해 이자로만 30억원 이상을 지출했다.심지어 시중 금리보다 훨씬 높은 6% 이상의 고이율 지방채도 떠안고 있었다. 무엇보다 ‘재정 불건전단체’로 낙인이 찍혀 군민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필자는 일부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눈앞의 인기보다 미래를 내다봤다. 2012년부터 ‘재정건전화 로드맵’을 마련해 채무 청산 작업에 본격적인 속도를 냈다. 채무상환을 위한 재원은 고질 체납세 징수, 낭비성 예산 감축, 행사 경비 절감, 선심성 보조금 관리강화 등을 통해 마련했다.또 군수 관사를 매각하고 부채상환을 위해 각종 ‘경상경비 10% 절감’을 실천해 매년 8억원의 비용을 아꼈다.이를 통해 재정 건전성이 향상되자 지역의 명운을 결정할 대형 국·도비 사업을 본격적으로 유치할 수 있었고, 2018년 군비 부담 일반채무를 전액 상환해 국·도비 사업과 코로나19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군의 재정 건전성 확보로 차기 군수의 어깨가 가벼워지고 더 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둘째, 포퓰리즘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선거를 앞두고 정부에 이어 지방자치단체장들도 경쟁적으로 선심성 정책을 펼치고 있다. 농민수당, 출산장려금, 육아 수당 등 지자체의 현금복지 경쟁은 우려스러울 정도다. 2017년 지자체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는 53.7%를 기록했으나 지자체가 앞 다퉈 무상복지에 뛰어들면서 지난해에는 48.7%로 50%대를 밑돌았다. 포퓰리즘의 망령에 사로잡힌 현금복지로 인해 재정난이 심화되어 정작 필요한 사업에 재정을 투입하기 어렵게 됐다. 차기 군수는 미래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포퓰리즘을 멀리했으면 한다.셋째, 지도자는 청렴해야 한다.다산 정약용 선생은 청렴은 백성을 이끄는 자의 본질적 임무로 모든 덕행의 근본이라며 청렴하지 못하면 관리의 자격이 없다고 했다. 지도자는 본인뿐만 아니라 조직의 청렴도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011년 취임 당시 칠곡군이 국민권익위원회 청렴도 평가에서 최하위인 5등급에 이름이 올라 충격을 받았다. 강력한 자구책을 통해 청렴도가 점진적으로 상승해 현재는 경북도 최상위권인 2등급을 기록하고 있다.넷째,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과거에는 절차를 무시하고라도 목적 달성을 위해 밀어붙이는 강한 추진력이 주효했다면, 지금은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와 이해집단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설득할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필자는 지역민의 다양성에서 오는 불협화음을 군민 대통합 위원회를 통해 하나의 목소리로 순화 시켜 계층 간 화합을 이끌어냈다.끝으로, 군수는 벼슬이 아닌 공복으로 봉사자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군민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군수를 군민들은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주도하고 민간부문에 일일이 간섭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자율, 경쟁, 책임의 원칙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중시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읽고 군정을 꾸려나가야 한다.손님은 잠시 머물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빈손으로 떠난다. 후임 군수는 다음 손님을 생각하며 행정을 펼치는 아름다운 손님이길 기대해 본다.

2022-02-06

상부상조 정신

좀도리라는 말이 있다. 전라도 지방의 방언으로 절미(節米)란 뜻이다. 경상도에서는 종도리라고도 부른다. 아낙네들이 밥을 준비할 때 쌀이나 보리를 한줌 씩 덜어 항아리에 담아두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부엌의 한쪽에다 좀도리 항아리를 놓아둔다.좀도리 항아리에 어느 정도 곡식이 쌓이면 제사를 지낼 때나 집안에 갑자기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이를 꺼내 사용한다.경우에 따라서는 시장에 내다 팔아 딸아이의 꽃신발이나 양말을 사기도 하고 또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도 썼다. 식량이 넉넉하지 못했던 옛 시절 우리의 주부들은 이런 방법으로 근검절약 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또 이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전해져 왔다.십시일반(十匙一飯)의 시(匙)는 숟가락이고 반(飯)은 밥이다. 열 사람이 자기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씩 덜어 다른 사람을 위해 밥 한 그릇을 만든다는 사자성어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다수가 힘을 모은다는 뜻으로 쓰인다.과거 조선시대 향약은 마을 단위의 자치규약이다. 이 규약에는 마을주민이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자고 한 약속을 담아 두었다. 나라의 개입 없이 주민들 스스로가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상부상조 정신을 담은 규약인 것이다.지난해 연말에 시작한 이웃돕기 성금이 1월 말로서 초과 달성했다. 법인보다는 개인이 더 많은 이웃돕기 행렬에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대구는 112억원, 경북은 169억원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쓰일 예정이다.특히 이웃돕기 성금 모금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불경기를 뚫고 목표달성을 무난히 했다는 것이 뿌듯하다. 지역민들의 상부상조 정신이 빛나 보이는 결과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2-06

“독감처럼 관리” 동네 의료기관 참여가 관건

정부가 3일부터 코로나19 진단과 치료역량을 고위험군 환자에 집중하는 새로운 방역체계로 전환해 시행에 들어갔다. 60세 미만 저위험군은 동네 병의원에서 진단검사를 받도록 하고 자가격리 기준도 완화했다.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되면서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4만명 가까이 치솟고 있는데도 정부가 방역체계를 완화한 것은 오미크론의 치명률이 델타 변이의 5분의 1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 때 1천명을 넘던 위중증 환자가 현재는 200명대에 머물러 있고, 중증 병상가동률도 16%선에서 여유가 있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확진자가 증가하더라도 위중증 환자 수나 치명률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의료계 준비상황 등을 종합 검토해 확진자를 계절독감 환자처럼 관리하는 의료체계로의 전환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설연휴 이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하루 1만명 가량씩 늘어나는 지금 추세라면 이달 중 하루 10만명 발생도 가능해 정부가 말하는 ‘위드 오미크론’ 계획이 순조로울지 알 수 없다. 아직은 코로나 확진자 수의 정점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완벽한 준비만이 코로나를 독감처럼 관리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위드 코로나가 실패로 끝난 상황을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그동안 정부의 코로나 대응은 늘 뒷북이거나 안일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3일 동네병의원의 진단검사 참여도 명단 공개부터 늦어진 데다 의료현장의 준비 부족으로 첫날부터 대혼란을 초래했다.주말인 5일과 6일 이틀 동안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하루 4만명 가까이 발생, 국내 누적 확진자가 이제 100만명을 넘었다. 재택 치료자도 12만여명에 이른다.‘위드 오미크론’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간절하다. 하지만 정부의 완벽한 방역체계 준비가 먼저다. 또다시 시행착오를 겪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독감처럼 관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네 병의원의 적극적 참여가 관건이다. 동네 의료기관들이 믿고 참여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부터 정부가 먼저 내놔야 한다.

2022-02-06

장예모(張藝謀)를 생각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 1950년에 출생한 현대 중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장예모의 ‘원 세컨드 (1초)’가 상영되고 있다. 대구에서도 상영관이 희귀하여 한 군데서만 영화를 볼 수 있다. 모택동의 문화혁명 당시 하방을 경험한 반동 집안 출신 지식인 장예모의 아픈 기억을 담은 영화다.3년에 걸친 하방을 마치고 갖은 고생 끝에 그는 모택동이 죽고 난 다음인 1978년에야 북경 영화학원의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영화 인생 밑그림을 그린다.1982년 대학 졸업과 함께 ‘광서영화제작공사’의 촬영기사로 입사하여 본격적으로 영화와 만난다. 1982년 5세대 감독의 선두주자 진개가(陳凱歌)의 영화 ‘황토지’의 촬영감독이 된다. 1987년에 그는 ‘오래된 우물’의 촬영감독 겸 주연배우로 이름을 알린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장예모는 1988년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 영화제 대상인 황금곰상을 받아 세계적인 감독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1992년 ‘귀주 이야기’, 1999년 ‘책상 서랍 속의 동화’로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는다. 1994년에는 ‘인생’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다. 이외에도 그가 받은 국제 영화제의 수상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가 세계 영화제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것은 현대 중국의 복잡다단한 사회·정치문제의 천착이 바탕이다. 소품을 만들되 소품 이상의 사회적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과 날카로운 시각을 소유했던 덕이다.1999년 ‘집으로 가는 길’로 대약진운동 시기의 사회상을 그려낸 장예모의 영화 세계는 2002년 ‘영웅’을 기점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한다. 천하를 통일하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국가)를 위해 소(개인과 가문)는 얼마든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일관되게 관철되기 시작한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2008년 북경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총괄하는 총감독 자리에 오른다. ‘어용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다.1990년대 중국 영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찬탄의 대상이 되었던 장예모의 영화는 서서히 관객들에게 잊히기 시작한다. 여전히 뛰어난 색감과 활달한 무협을 바탕으로 한 ‘연인’이나 ‘천리주단기’ 혹은 ‘황후화’ 같은 영화도 속절없이 망각(忘却)되기에 이른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원 세컨드’로 귀환했다. 단 1초를 위해 고군분투를 마다하지 않는 어떤 아비의 삶을 그려내는 따사롭고 온정이 넘치는 영화.고희를 넘긴 그에게 문화혁명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는 듯하다. 대수롭지 않은 싸움으로 여덟 살짜리 딸과 생이별하고 오랜 수형생활을 해야 했던 사내의 고통과 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강렬하게 그려져 있는 ‘원 세컨드’. 그와 함께 어린 동생의 소원을 들어주려 도둑질도 마다하지 않는 누이의 살가운 혈육사랑도 애틋하게 묘사된다.‘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장예모의 시선과 연출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특히 부드럽게 춤을 추는 사막의 모래가 연출하는 기막힌 능선의 풍경을 잡아내는 렌즈는 아, 하는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영화 인생 후반기가 환하게 열리기를 기원한다.

2022-02-06

대선 D-30…야권 후보 연대 시간이 없다

대선이 3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야권후보 단일화, 또는 야권연대는 한발짝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주에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당내 현역의원으로선 처음으로 “지금부터라도 당장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측과 단일화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도 늦었다”고 말했다. 그는 “들쑥날쑥한 여론조사 지지율만 믿고 자강론을 펼칠 만큼 여유로운 대선이 아니다”며, 야권연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자력승리를 장담하는 당내 분위기를 비판했다. 윤 의원이 지적했듯이, 국민의힘 내에선 설 연휴 이후 나온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한 자리 수로 내려가자 후보단일화보다는 자강론으로 당론이 기우는 분위기다. 현재의 2강 1중 구도로 가더라도, 보수 지지층을 현 상태로 결집시키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윤 후보도 최근 단일화보다는 원팀을 강조하며 보수 지지층 결집에 전념하고 있다.야권이 연대하지 않고 이번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설 연휴전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리스크가 터질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탔다. 정권교체를 원하면서도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중도층 민심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본선에 들어가 윤 후보 지지율 하락 요인이 발생할 경우 결집력이 취약한 야권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여권은 본선에 들어가면 탄탄한 조직력과 여론장악력, 고도의 선거전략을 구사하면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오는 15일부터는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다. 후보 등록을 해 버리면 야권 연대는 더 어렵고 성사되더라도 효과가 반감된다. 윤석열 후보의 40년 지기인 석동현 국민의힘 선대본부 상임특보가 최근 “윤 후보는 반드시 안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한다. 하루라도 먼저 안 후보에게 다가가 공동정부를 꾸려가자고 해야 한다”고 한 말을 윤 후보는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윤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원활한 국정수행을 위해서는 국민의당 협조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

2022-02-06

‘작심삼일(作心三日)’은 정상적 반응이다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지난 칼럼 ‘새해 결심’에서 비록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이 송두리째 변했지만, 명확한 목표가 있는 사람이 목표가 없거나 구체적이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좋은 성과를 보이기에 ‘새해 결심’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바 있다.갈등이론의 대가로 200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토머스 셜링(메릴랜드대) 명예교수도 새해 결심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갈등할 때 “할 것인가”로 결정하라는 것이 갈등 이론의 핵심 이론이다.미국 설문조사 기관 통계뇌조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새해 결심을 연말까지 그대로 지키는 사람은 8%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새해결심이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이다.왜 우리의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이 될까? ‘작심삼일’은 뇌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로버트 마우어(미국 UCLA 의과대) 교수에 의하면, 뇌의 ‘방어 반응’때문이다. 급격한 행동의 변화는 뇌의 입장에서는 오랜 세월 유지했던 행동을 방해하는 것이므로 거부감을 보이는 ‘방어 반응’을 불러일으킨다.즉, 안 하던 공부나 운동을 갑자기 하면 뇌는 마치 “호랑이 같은 맹수가 나타났다”고 느끼고 ‘방어 반응’이 작동되는 것이다. 이 때 뇌는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드레날린과 코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들이 스트레스를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안타깝게도 3일 정도 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3일이 지나면 더 버틸 힘이 없다는 것이다.새로운 변화가 새로운 습관으로 자리 잡기 위해 뇌가 새로운 변화를 기억해야 한다. 뇌가 새로운 변화를 기억하려면 3주간 새로운 일을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단기 기억으로 입력된 정보가 뇌 전체에 정착됨으로써 중기 기억으로 이행 저장돼 새로운 변화가 새로운 습관 회로로 바뀔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다.그런데 이것이 중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이 되어 새로운 습관 회로를 만들어 새로운 습관이 되려면 평균 66일이 필요하다.뇌 과학과 마음의 원리에 따른 ‘작심삼일’을 벗어나 기어코 새해 결심을 이루어 내는 두 가지 제언을 하려한다.첫번째 전략은 전래동화 ‘3년 고개’에서 찾았다. 넘어지면 3년 밖에 못 산다는 어느 산골 마을, 그 고갯길에서 넘어져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깊은 고민을 본 손자가 “계속 넘어져 넘어질 때마다 계속 3년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 않느냐”고 알려준 고정관념을 깬 역발상이 있는 반전의 이야기이다.‘작심삼일’이 됐다면, 또 ‘작심삼일’하면 된다. ‘작심삼일’을 7번 반복하라. 3일을 7번 반복하면 21일이 된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 해석을 잘해야 하는데, 시작은 반이지만, 두 번 시작한다고 ‘합해서 완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수학적으로 7번 연속해야 확률이 99%가 된다. 21일이 되어야 뇌 변화의 기초가 마련되고 평균 66일이 되어야 비로소 새로운 습관 회로가 만들어지며 정신적 요소까지 감안 한다면 최소 100일은 돼야 새로운 회로가 굳건해진다.두 번째 전략은 “과잉 목표를 세우지 마라”이다. 자넷 폴리비(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실패를 거듭해도 계속해서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하는 행위에 대해 ‘헛된 희망 증후군(false hope syndrome)’이라고 했다.새해 결심이 매번 실패하는 이유는 방법론이나 내·외부 상황 탓보다 가능한 목표가 아닌 과시하기 좋은 과잉목표를 세우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뇌 습관 회로를 단기간에 급속한 변화를 이끌어 내려하기에 뇌의 ‘방어 반응’에 막혀 실패하는 것이다.큰 변화보다는 작지만, 점진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좋다. 로버트 마우어(미국 UCLA 의과대) 교수는 ‘스몰 스텝(small step)’을 제안한다.즉 평소 안 하던 운동을 새해를 맞아 갑자기 하루 1시간 일주일 내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10분, 주 몇 회’처럼 가볍게 시작함으로써 뇌의 ‘방어 반응’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우리의 옛 조상들도 새로운 목표를 한 순간에 모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스몰 스텝(small step)’을 강조했던 것이다.터무니없고 무리한 결심으로 인한 반복된 실패로 마틴 셀리그만이 말한 학습된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자포자기 하지말자. 실패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했을 때 끝난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인디언 기우제처럼 성공할 때까지 반복하자.무리하지 않게 포기하지 않고 뇌의 ‘방어 반응’을 잘 달래면서 반복을 통해 습관을 잘 들이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계획대로 목표에 다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임인년(壬寅年) 2022년에는 뇌 과학과 마음의 원리를 알고 새해 결심을 이루기를 응원 드린다.

2022-02-06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는 총체적 부실 탓

이재혁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최근 국내 대기업이 건설 중이던 광주의 한 아파트가 무너졌다.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처참했다.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한국건설신화와 자존심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거주공간인 아파트의 붕괴사고는 예전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린 것과 분명 결이 다른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왜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 것일까? 건설현장에서 붕괴사고는 거푸집공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거푸집이란 콘크리트 타설시 유출 방지 및 타설 후 강도를 발현, 경화하기까지 작용하는 내·외부 환경으로부터 콘크리트를 보호해 형상과 치수를 확보하는 가설구조물이다. 거푸집 붕괴사고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고 다수가 부상당하거나 사망하는 중대재해로 이어진다.이번 사고를 살펴본 전문가들은 콘크리트의 품질을 우선 지적했다. 최상층까지 콘크리트를 쉽게 올리기 위해 물을 많이 배합해 점성을 낮추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이렇게 되면 거푸집이 받는 압력이 커지고 콘크리트와 철근이 잘 붙지 못한다고 한다. 사고현장에 콘크리트 가루가 많은 점이 의혹의 핵심이다.또 콘크리트에 들어가는 자갈·모래 등 골재를 잘못 관리했거나 배합 비율을 제대로 맞추지 않았을 공산도 크다. 콘크리트 강도를 높이기 위해 넣는 혼화제나 시멘트 관리가 부실한 업체 등 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한 업체 10곳 중 8곳이 품질 관리 미흡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곳이었다고 한다. 레미콘업체에서 사용하는 골재에 대한 전수조사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골재의 출처와 강도가 적절한지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부실시공도 큰 문제였다. 통상적으로 14일의 굳힘 과정과 28일의 동바리(공사 중의 중량물을 일시 지지하는 가설기둥)의 설치 기간이 필요하지만, 사고당일 작업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37층까지 동바리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콘크리트 타설 또한 35층은 7일, 36층은 6일 만에 타설 공정을 마쳤다고 한다. 시공과정의 허술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실이다.설계는 잘 지켰을까? 광주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는 건축물 뼈대를 보 구조물이 없이 기둥과 슬래브로 구성하는 무량판 구조로 설계됐다. 사업 승인시 6개의 기둥을 세우기로 돼 있었는데 시공 도면에는 기둥이 2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건설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감리과정도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6월부터 3개월에 1회씩 총 11권 분량의 감리보고서가 사업승인주체인 구청에 제출되어 자재, 시공 및 구조안전 모두 적합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붕괴사고를 통해 결과적으로 건축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감리 과정 또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났다.필자는 과거 건축자재중 난연샌드위치패널의 문제점을 알리고 화재에 약한 가짜난연샌드위치패널을 건축현장에서 퇴출시킨 경험이 있다. 공인된 시험기관이 업체에 로열티를 받으며 일반스티로폼과 철판사이를 난연 접착제로 접합한 엉터리 기술을 업체에 넘겨 생산했다. 이를 국토부와 시험기관이 비호하고 현장단속에 제외하는 것도 모자라 불량난연패널 시공 된 곳에 덧대어 시공했다. 이런 심각한 상황을 언론과 경찰의 도움으로 바로 잡을 수 있었다.건설현장과 건설자재, 건설시공의 문제는 일일이 나열하기가 버거울 정도이다. 건축자재의 부실은 시공을 아무리 잘해도 사고와 직결된다. 건축자재의 품질 기준을 엄격히 지키고 시험기관의 비리를 확실히 바로 잡아야 건설현장의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중요한 인부 수급 문제나 전문성 결여도 심각하다. 인력부족으로 현장 기술직에 숙련되지 않는 인력들이 투입되고 이마저도 인부를 구하기 어려워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들로 충당하고 있다. 오죽하면 불법 외국인들이 없으면 현장이 멈춘다고 할까. 이를 빌미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서로 상대의 현장에 확성기를 단 차량으로 연일 집회를 일삼는다. 주변 시민들이 소음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이다.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정부와 국회는 과거 여러 사고와 마찬가지로 땜질 처방만 할 것이 분명하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현장방문과 국감 등에서 호통치는 모습 외에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 국토부는 현재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2달간 운영해 사고원인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한다고 한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지만, 이번만은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이 제대로 나오길 희망해본다.광주시는 피해자 긴급지원 대책과 겨울철 사용하는 한중콘크리트의 품질관리 강화를 발표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제도개선과 건설현장에 대한 행정지도, 지도점검을 정확하게 했다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도 기업에게만 책임을 돌리지 말고 제도개선을 통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데 노력해야한다. 누구의 책임을 묻기 전에 각자 위치에서 다시는 붕괴사고가 나지 않게 노력을 이제라도 시작했으면 한다.

2022-02-06

밝은 봄날을 맞고 싶다

윤영대​​​​​​​​​​​​​​수필가 쓸쓸한듯 설 명절을 보내고 나니 바로 입춘(立春), 봄의 문턱에 선다. 그러나 아직 진정한 봄은 아니다. 겨울이 끝난다는 느낌을 가슴에 안을 뿐…. 일일 평균 기온이 5~10℃, 최저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아야 초봄이 된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은 벌써 새 생명이 태동하는 첫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의 입춘 절입 시간은 2월 4일 오전 5시51분. 입춘방을 붙이려면 동트기 한참 전인 새벽이라 어렵겠지만 그렇게 해야 복이 온다고 하니 어쩌랴. 작년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을 붙였으나 올해는 대선도 있고 하니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써 볼까? 아니면 코로나 난리에 우울한 마음을 풀고 문 활짝 열어 마당 쓸며 황금 주워 복 받을 욕심에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로 할까? 아니, 올해는 검은 호랑이 해이니 호랑이 호(虎)자를 크게 써 붙여볼까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춘첩 붙이는 것이 굿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도 있으니 먹 갈아 한 장 멋있게 써 붙여야겠다.중부지방엔 흰 눈이 흠뻑 내려 산과 들을 하얗게 덮어 아름답지만 이곳 동해안에는 건조주의보가 내려져 참한 겨울 풍경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입춘에 맑고 바람불지 않으면 풍년이 든다 했으니 만족하자. 새해 첫날 새벽 마을로 나가 처음 듣는 짐승 소리로 그해의 운수를 점친다는 청참(聽讖)의 풍속에는 까치 소리는 풍년과 행운을, 참새의 재잘거림은 흉년과 불행이라고 한다. 선거 바람 타고 들려오는 소리는 까치인가 참새인가? 빌딩 숲속에서는 새소리도 듣기 힘드니 만나는 이웃과 덕담 인사를 밝게 나누어야겠다. 아침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귀여운 꼬마의 배꼽 인사가 바로 까치 소리다.이제 복조리 풍습도 잊은 지 오래다. 내 서재에는 수년 된 복조리 1쌍이 아직도 걸려있어 또 동전 몇 푼 넣어두어야겠다. 복조리는 쌀을 일어 낱알을 고르듯 그해의 행복을 일상에서 일어 얻어려는 기원이리라. 대나무를 잘게 쪼갠 죽사(竹絲)로 엮어 만들거나 사서 방이나 부엌 귀퉁이, 대청마루 기둥에 달아 돈과 엿 등을 넣어두곤 했지만 지금은 새벽녘에 복조리 사라 외치며 팔러 다니는 장수들도 없다. 올봄에는 밝은 정신으로 복조리 하나 잘 엮어서 나라를 맡길 인재를 잘 골라내자. 봄은 ‘보다’의 어원을 갖는다 말이 있다. 모든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자연과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대해서도 밝은 마음과 올바른 눈, 긍정적인 생각으로 내다봐야 하며, 특히 올해는 잘 살펴보아야 참된 봄을 맞을 것 같다.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라 한다. 봄은 영어로 spring- ‘튀다 솟아오르다’의 뜻처럼 봄기운에 땅이 녹으면 샘물도 힘있게 솟고 식물도 대지의 기운을 끌어올려 새싹을 틔운다. 서설(瑞雪)이 내려 덮인 대지의 껍질을 뚫고 생명의 봄날을 올리는 것이다. 이 계절을 많은 음악가도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하고 시인도 따뜻한 마음으로 얘기해 왔다. 봄은 모든 생명의 교향악이기도 하다.화창한 봄날에 봄바람 살랑 부는 봄동산에 올라 봄나들이 나온 어여쁜 봄처녀가 부르는 봄노래 들으며 봄꽃 한아름 안고 봄맞이를 하고 싶다.

2022-02-03

입춘첩(立春帖)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일 년을 24등분 한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는 중국 주(周)나라 때 만들어 졌다고 한다. 동이족으로 알려진 희화자(羲和子)라는 사람이 주나라 책력을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지구에서 보기에 태양이 하늘을 일 년에 걸쳐 이동하는 경로인 황도(黃道)를 기준으로 해서 달을 기준으로 한 음력(陰曆)과는 맞지 않는다. 태양의 기울기에 따라 변하는 온도의 차가 농경사회에서는 중요한 조건이었기 때문에 따로 24절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황도 좌표의 경도(經度)를 황경이라 하는데 춘분을 기점(0°)으로 하지는 90°, 추분은 180°, 동지는 270°, 다음 춘분까지는 360°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충렬왕 때 도입이 되었고, 2016년 12월 1일 중국의 신청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입춘(立春)은 이십사절기의 시작인 첫 번째 절기다. 봄이 들어선다는 의미가 있지만, 중국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서 우리나라에서는 한참 이르다. 아직은 겨울이 가시지 않았지만 설명절과 겹치니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고, 봄을 좀 가불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입춘첩을 써 붙이는 등 한 해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는 풍습은 지금도 남아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대궐에서는 설날에 문신들이 지어 올린 연상시(延祥詩) 중에서 잘된 것을 선정하여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다 입춘첩을 써 붙이는데, 이것을 ‘춘첩자’라고 한다. 경사대부 및 도시나 시골 할 것 없이 일반 민가와 상점에서도 모두 입춘첩을 붙이고 새봄을 송축한다. 이것을 ‘춘축’이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민간에서는 입춘첩으로 그 해의 행운을 빌고 축원하는 상서로운 글귀를 써서 대문이나 대들보, 부엌문 등에 붙였다. 주로 쓰이는 입춘첩으로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댜경(建陽多慶)’,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거천재(去千災) 래백복(來百福)’, ‘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자손만대영(子孫萬代榮)’,‘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사방무일사(四方無一事)’등이 있고, 사대부들은 좋은 글귀를 새로 지어 쓰거나 혹은 옛사람들의 문장 중에서 좋은 구절을 골라 쓰기도 했다.나라가 하 수상해서 입춘첩이라도 써 붙이고 싶은 심정인데, 이 시국에 어울리는 문구로는 어떤 것이 좋을까. 우선은 ‘괴질극복, 평상회복’이었으면 좋겠다. 2년 동안이나 조금도 누그러질 기미가 없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온 세계를 불안과 우울의 그늘로 뒤덮고 있다. 올해는 부디 그 먹구름이 걷히기를 기원한다. 또 하나는 대선이 임박한 때이니 만큼 제대로 된 인성과 식견을 가진 사람이 선출되어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는 의미로 ‘양재선출, 정상국가’를 써 붙이고 싶다. 특히나 북한의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급변사태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굳건하고 긴밀한 한미 동조로 일단 유사시에 대한 철저한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확고한 한미동조’야 말로 ‘확실한 통일한국’의 첩경이다. 위태롭고 불안한 정권은 바꾸어야 한다.

2022-02-03

영부인 검증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영부인(令夫人)’은 원래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에 대한 존칭으로 쓰이다가, 현대에는 대통령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선출직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영부인은 법적 직책이 아니다. 따라서 의전과 예우 규정은 있지만, 법적 책임과 권한은 전혀 없다. 하지만 정치 현실에서 영부인은 대통령에 대한 사적 영향력이 워낙 큰데다 실제로 최고 권력을 구성하는 핵심으로서 관행처럼 정치·사회적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다.우리나라에서 영부인의 지위와 역할을 가장 인상적으로 구현한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 부인 고 육영수 여사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초대 영부인이자 유일한 외국인 영부인이었으나 공적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에 육 여사는 권위적이고 외골수였던 박 대통령을 목련처럼 온화한 기운으로 감싼 현숙한 부인 이미지에다 어린이와 장애인 등 약자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던 사회운동가로서 활동을 많이 해 생전에 ‘국모(國母)’칭호를 들었다.전·현직 대통령의 영부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도 조사 결과, 육영수 여사가 과반수를 넘는 65.4%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민주화 이후 영부인의 역할이나 정체성도 바뀌었다. 김대중 대통령 부인 고 이희호 여사나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국모’대신 대통령과 동지적 지위와 역할을 한 사례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나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동지적 역할보다는 내조에 더 치중한 영부인으로 평가된다.시대적 흐름에 따라 그 역할과 정체성이 바뀌고 있지만 영부인은 대선 후보의 러닝메이트란 점에서 언제든지 쟁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영부인 검증이 핫이슈가 되고 있다.지난 연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가 모 언론사 기자와 7시간 통화한 내역이 방송을 통해 공개돼 국민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이번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부인 김혜경씨가 황제의전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논란은 경기도청 전직 7급 주무관 A씨가 자신의 상관이었던 전직 5급 사무관 배씨와 나눈 문자 등을 언론에 제보하면서 시작됐다. 이 후보의 경기지사 시절 배씨와 A씨는 의전 업무를 위해 각각 비서실과 총무과 소속 별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A씨는 김씨의 약품 대리 처방, 음식 배달 등의 개인 심부름,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등을 제기했다.이 후보 측과 민주당은 가족 문제가 불거진 데 대해 사과하면서도 5급 사무관인 배씨가 7급 주무관이었던 A씨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며 김씨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배씨도 김씨와 무관하게 자신이 A씨에게 지시한 것이라고 했지만 궁색한 해명이다. 특히 공무원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경기도 법인카드를 생활비로 쓴 게 사실이라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행위다.부부는 일심동체라 했다. 영부인 검증은 후보검증에 맞닿을 수 있다. 한 점 의혹없이 사실규명이 이뤄지길 바란다.

2022-02-03

중산층의 붕괴

중산층은 상류층과 하류층 사이에 중간 정도의 부를 가진 집단이다. 먹고사는 걱정은 안 하지만 부자라고 보기에는 어렵게 느껴지는 계층이다.과거 직장인 상대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중산층을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자, 월급여 500만원 이상, 자동차 2천cc급 중형차 소유, 예금 1억원 이상 소유자 등을 기준으로 본다고 대답했다.OECD는 중산층의 기준을 소득 중간값의 75∼150% 소득계층을 말하고 있다. 중위소득의 75% 미만은 빈곤층, 150% 이상을 고소득층으로 본다는 것이다.서구에서는 중산층을 소득보다는 생활방식이나 태도를 판단 점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사람은 외국어 하나쯤은 구사할 줄 알아야 하고 영국 사람은 불의와 불법에 대처하는 정의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또 미국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정의감이 중산층 분류 기준에 포함된다.지난해 대선에 출마한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는 중산층 경제론을 내세운 바 있다. 중산층이 두터워야 국가 경제도 튼튼하다는 뜻이다. 중산층은 나라마다 기준은 다르나 국가 경제의 허리라는 데는 생각이 같다.최근 통계청이 밝힌 2021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가구소득이 600만원 이상인 사람의 91%가 본인은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중산층 이하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나왔다. 상당한 수준의 소득이 있으면서도 대다수가 상류층은 아니라는 것이다.이는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근로소득과 지산소득 간 격차가 커진 것에 따른 인식의 변화로 풀이되고 있다. 집이 없는 무주택자는 소득이 많아도 자신을 상류층으로 분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파트 가격 폭등이 낳은 또다른 사회적 부작용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2-03

신공항, 미래지향의 인프라 조성에 총력을

2028년 개항을 목표로 하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사업은 올해가 매우 중요한 고비가 된다. 통합신공항 시설 규모와 주변지역 개발의 밑그림 등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대구와 경북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을 통합신공항을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주변지역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는 대구시와 경북도의 노력에 크게 좌우된다. 자치단체가 중앙 정부와 소통하여 기획과 행정력을 잘 발휘한다면 더 좋은 세계적 공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여야 대선후보들도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에 국가 차원의 지원을 이미 약속한 마당이라 대구경북 미래 100년을 위한 신공항 사업이 가지는 의미는 새삼 중요하다 하겠다.경북도가 신공항 주변 개발계획과 더불어 공항관련 신사업 발굴에 적극 나선다고 한다. 공항신도시와 항공클러스터 조성에 대한 중장기 발전 전략 수립용역이 올해 시행되고, 신공항을 경제·물류 거점공항으로 육성하기 위한 연구용역도 시작한다. 때마침 국토부가 대구경북권 4개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제2차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반영했다고 밝혀 통합신공항 접근성도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특히 북구미 나들목-군위 분기점 구간이 신설되고, 읍내 분기점-군위 분기점 구간의 확장은 통합신공항을 중심으로 산업과 관광, 농업 등에 혁신적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군위와 의성지역에 걸쳐 건립될 신공항은 대구경북의 미래 먹거리 창출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시작한 사업이다. 단순한 공항 이전이 목적이 아니라 신공항을 활용한 신사업 개발과 배후 산업단지를 활성화 시켜 지역경제를 끌어올려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중장거리 수송이 가능한 국제거점공항으로 조성돼야 하고 경제와 물류가 중심이 되는 특화공항으로 조성돼야 하는 이유도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함이다.신공항은 위치적으로도 대한민국의 중심에 있다. 신공항을 기반으로 하는 자치단체의 인프라 투자는 신공항의 승패를 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적이고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2022-02-03

해외 나간 기업 국내 복귀는 인건비가 관건

대구시가 그저께(2일) “지난해 산업부 선정 국내복귀기업 26개사 중 3개사가 대구로 유턴해 경남, 충남 다음으로 많았으며 그 중 2개사와 투자협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발표했다. 대구 1호 유턴기업은 고려전선(주)으로 미얀마에서 성서3차 STX중공업 부지로 유턴했다. 고도화 전력케이블을 생산하는 고려전선은 2024년부터 가동한다. 2호 유턴기업 성림첨단산업(주)은 전기차 모터 핵심소재인 희토류 영구자석을 제조한다. 중국에서 대구테크노폴리스로 유턴했으며, 이미 공장을 짓고 있다.대구시는 이들 기업에 대해 총투자액의 최대 50%까지(국비 300억원 한도) 투자보조금을 지원하고, 대구TP 컨설팅을 통해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다. 이와함께 10∼50년간 부지 무상임대 공급, 4년간 최대 28억8천만원의 고용창출장려금 지원 등의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대구시가 처음으로 유턴기업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실적은 해마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유턴법이 시행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 복귀한 기업은 모두 140곳에 불과하다. 지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 기업의 해외 신규 법인 설립 건수가 2만2천405건에 달하고 있는 것에 비춰보면 얼마나 초라한 실적인지 알 수 있다.유턴기업에 대해 대구시가 다양한 지원정책을 펴고 있듯이 정부도 해마다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있지만, 해외진출 기업이 국내복귀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 때문이다. 어떠한 인센티브도 고임금을 상쇄할 만한 당근책이 못되다 보니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다. 유턴법이 시행된 2013년에 시간당 4천860원이던 최저임금은 2022년 9천160원으로 거의 2배 가까이 올랐다.중국에 있는 우리 기업들이 외국인 투자기업 환경이 나빠지자 국내가 아닌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옮기고 있는 이유도 대부분 인건비 때문이다. 차기정부에서는 해외진출기업들이 꼭 국내복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획기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발굴해 내야 한다.

2022-02-03

일요일 아침의 페미니즘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나에게는 7살 4살, 두 딸이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했다. 미투(ME TOO) 운동 등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던 일련의 사건들을 목격하고, 우리 아이들이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갈 것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낑낑대며 읽고 있던 어느 주말로 기억한다. 소파에 누워 소꿉장난을 하는 두 아이를 보고 있었다. 큰 아이가 엄마, 작은 아이가 아빠 역할이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언니가 매번 엄마 역할을 하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왜 나만 자꾸 아빠 역할을 해야 하는지 따져 물었다. 동생의 투덜거림에 큰 아이는 너무나 당당하게 “너는 머리가 짧고 나는 머리가 길잖아”라고 답했다. 머리카락의 길이와 엄마/아빠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차분히 설명했지만, 찜찜한 기분은 감출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은 주말 아침.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아내가 세탁이 막 끝난 빨래를 건조대에 널기 위해 가져왔다. 별 생각 없이 아내에게 빨래를 받아서 널고 있는데, 큰 아이의 말이 귓가에 내리 꽂혔다. “아빠가 왜 빨래를 널어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큰 딸이 왜 머리카락의 길이와 엄마·아빠를 연결시켰는지 말이다. 부끄러웠다.대선을 앞두고 ‘이대남’의 마음을 얻기 위한 거대 양당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성폭력 무고죄 신설, ‘여성가족부’ 폐지 등과 같은 공약이 들린다. 이 와중에 페미니스트를 자처했던 젊은 여성 정치인은 자기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힘 있는 야당에 입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치가, 정확히는 ‘힘’있는 ‘정당’이 정말 젠더평등을 만들 수 있을까?제도가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상이 제도를 만든다. ‘이대남’을 의식한 정치권의 정책도 ‘취업’이란 일상에서 이대남이 느낀 분노로부터 시작된 것 아닌가. 취업을 위한 ‘공정’과 ‘경쟁’이란 원칙은 최소한의 규칙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정부가 무능력하고 위선적인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서? 그럼 정권이 바뀌면 달라질까?지금의 취업 전쟁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정치계와 경제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공정’과 ‘경쟁’이란 원칙은 ‘위계’를 동반한다. 2020년 인천국제공항에서 벌어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 싼 논쟁을 생각해보자. ‘내가 이 스펙을 쌓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데….’로 요약되는 분노는 결과적으로 정규직·비정규직의 위계를 강화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왜 우리는 정규직·비정규직이란 구도를 벗어나기 어려운가? 젠더평등이란 단순히 남성·여성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 등과 같은 이분법적 사회 체계 전반을 겨냥한 언어이다.이런 일상에서 아이들이 학습하는 젠더 감각은 어떤 것일까? 나의 일상과 무의식을 다시 돌아볼 때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공범이 될 수 있다.

2022-02-02

③ “해양치유 - 안온함을 얻다”

스위스의 한 고급 호텔, 세계적인 지휘자 ‘프레드 밸린저’는 이곳에서 지인들과 함께 휴가를 보낸다. 가벼운 산책과 마사지, 목욕 등으로 하루를 채우며 과거를 회상한다. 가족과 친구, 직업, 예술혼 등 가벼운 대화가 오간다. 평생을 지휘자로 살아온 예술가답게 곳곳에서 소명의식이 묻어난다. 물론 대화의 진짜 화두는 ‘나이 듦’이다.세계적인 영화 거장 ‘파울로 소렌티노’의 2016년 작품, 영화 ‘YOUTH’(유스)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젊음과 쇠퇴하는 육체를 주제로 묵직한 울림을 던진다. 동시에 대자연의 풍광과 머드 마사지, 물의 이미지로 영상미를 추구한다. 의사와 함께 건강상태를 확인하며 목욕과 산책, 마사지하는 모습이 무한 반복된다. 유영하는 신체는 신비와 노화의 양극단을 오간다. 휴양의학을 풍경 삼아 인생 황혼기를 의미심장하게 그려냈다는 평가가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휴양의학의 관심이 높다. 휴양의학은 산과 바다, 기후에 숨어있는 치유자원을 의학적으로 활용해 질병 예방과 증상완화, 재활을 돕는 의학이다.영화에서처럼 노년층의 항노화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심리·재활치료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아 코로나 이후 각광받고 있다. 바닷가 해양치유자원을 활용한 휴양의학의 경우, 현재 시범 사업에 들어가 태동기를 맞는 중이다.실제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테레인쿠어(Terrainkur·지형요법)를 진행하는 치료집단을 만난 적이 있다. 해양 테레인쿠어는 백사장이나 해안 산책로를 걷거나 뛰는 운동치료로 해양지형요법이라고 한다. 도심의 평지보다 운동효과가 좋고 지구력 향상에 제격이다. 당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대오를 갖춰 백사장을 걷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해풍을 맞으며 파도소리에 집중했다.해풍 또한 해양치유자원의 하나로, 음이온이 풍부해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해양수산부는 완도와 태안, 울진, 경남 고성에서 해양치유 시범사업을 추진, 해양치유센터를 건립 중에 있다.해양치유, 아직은 생경한 단어다. 해수와 해풍, 머드 등 해양치유자원을 활용한 자연치유법으로, 휴양의학의 한 분야다. 프랑스와 이스라엘,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치료 효과가 입증돼 실제 처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천식이나 폐쇄성 폐질환 환자의 경우, 의사 처방으로 해양치유센터에서 휴양 치료가 권해진다.프랑스에서는 탈라소테라피(thalsso-theraphy)라는 해양치유법이 하나의 의료체계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의 드라보나디르 의학박사에 의해 처음 도입된 치유법으로, 의료인과 해양자원 전문가 등이 참여해 치유 대상과 목적, 치유방법 등을 면밀히 살펴 만성 호흡기 질환과 피부질환, 불면증 등을 치료한다. 이 외에도 해양치유법에는 해양 테레인쿠어(Terrainkur·지형요법-해안가 걷기)와 해풍욕, 솔트테라피(Salt therapy·소금치료요법), 헬리오테라피(Heliotherapy·태양광선요법), 해초요법 등 다양한 치유법이 존재한다.해양수산부는 지난 달 ‘해양치유자원의 관리 및 활용에 관한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26년을 목표로 세부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형 해양치유 모델(K-Marine Healing)을 창출, 해양치유 자원을 발굴하고 해양치유 서비스 인프라를 조성한다고 한다. 해양치유 전문인력 양성기관을 지정하고 전문자격 이수 과정도 설계한다. 해양치유 전문가와 함께 바다를 벗 삼은 치료를 받는 날도 멀지 않았다.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배경으로 모래성을 쌓다보면 안온한 몰입을 경험하곤 한다. 칼 구스타프 융의 모래놀이라는 전문적인 심리 치료법을 언급하지 않아도 모래 놀이의 효능은 이미 입증돼 있다. 정현미작가 필자 역시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감을 따사로운 햇살 아래 해풍을 맞으며 날려 보내곤 했다. 아이와 함께 모래동굴을 파고, 바닷물을 길어와 채우며 바다를 만끽했다. 의료진과 해양치유자원 전문가가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었는데도, 효과와 효능은 그 어떤 항우울제보다 탁월했다.관계는 존재를 선행한다. 오롯이 혼자 존재하는 이는 없다. 코로나19 이후 단절된 관계는 존재를 흔들었고,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이 났다. 결국 다시 회복이다. 해수부에서 내건 슬로건 역시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을 바다에서 치유하라’고 권한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지고 바다는 흐른다.이번 주말, 가족들과 함께 겨울바다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불안은 던져두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래사장을 걸어보자. 눈 시린 겨울바다를 응시하며,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안온함이 느껴질 것이다.

2022-02-02

마음 계산법

양태순수필가 울진 매화리에 갔다. 만화 원작을 그린 벽화가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골목길을 걷다 보니 추억이 돋는 그림이 많다. 만화가 이현세가 직접 그렸다는 벽화 앞에서 천천히 읽으며 걸음을 옮겼다. 나는 이 만화를 고등학생 때 읽었다. 전체적인 줄거리만 기억날 뿐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으면서 엄지는 왜 오혜성보다 마동탁을 더 좋아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나를 위해 야구 경기에서 져달라는 엄지의 부탁 앞에서 기가 막혔다. 혜성이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되어 가슴이 쩌정 울렸다. 그때도 지금도 엄지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가정은 만약을 포함한다. 만약에 이런 상황이라면, 만약에 그렇다면을 생활에서 사용할 때가 있다. 이런 말은 대개 어떤 대처 방법을 묻는 뒷말이 따라붙는다. 듣는 상대방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게 된다.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가사로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영화가 있었다.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로 만든 것이었다. 영화 개봉과 동시에 주제가는 온통 거리를 점령했다. 커피숍과 백화점을 비롯하여 젊은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있었다. 데이트하는 연인 사이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 기뻐하는 일이면 다 해줄 거야? 이런 질문으로 연인을 시험에 들게 하여 답이 마음에 안 들어 다투기도 했다. 친구는 이 노래를 좋아했고 우리는 손잡고 다니며 흥얼거리기도 했다. 내 젊은 시절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만화였다.나는 학생 때 만화가게에 자주 갔다. 안타나 홈런처럼 깔끔한 직설화법에 매력을 느꼈다. 시리즈로 빌리면 다섯 권에서 열 권이 넘는 것도 있었다. 용돈 대부분을 거기서 썼다. 밤새 읽느라 눈동자가 뻑뻑했다. 주제는 주로 축구, 야구, 복싱 등 스포츠 경기에서 갖은 고난을 이겨내고 선수로서 성공하는 스토리였다. 결론은 뻔했지만 만화책을 놓을 수 없었다. 소설처럼 문장이 화려하거나 사건을 베베 꼬지 않는 단순 명쾌함이 좋았다.나는 지금도 해피앤딩을 좋아한다. 드라마에서 고생 끝에 성공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살게 되었다는 결말에 웃음이 난다.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고 시청자의 상상에 맡기는 열린 결말을 만나면 짜증이 난다. 현실이 갑갑한데 드라마라도 행복하면 엔도르핀 충전으로 다운되었던 기분이 업되고 피곤한 뇌도 쉴 수 있으면 일석이조라고 생각한다.매화리에서 나에게 물어본다. 상대방을 위해 뭐든지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외인구단 오혜성은 시합에 져주기 위해 일부러 야구공에 눈을 맞기도 했다. 내 몸을 다치거나 꿈을 버리면서까지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내것을 아무것도 잃지 않는 선에서 타협할 확률이 높다. 아마 신체나 정신 둘다를 포기하지 않는 가정하에서 최선이란 이름을 붙일 것이다.나는 아직도 둘을 주고 하나를 얻는데 익숙하지 않다. 반값에 물건 사는 것은 좋아하지만 마음 계산법은 다르다. 목도리를 선물하면 장갑을 받고 싶고 밥을 샀으면 커피는 얻어먹고 싶다. 늘 받기만 하는 것은 미안해서 거리가 멀어지고 늘 주기만 하는 것은 쪼잔해서 불만이 쌓일 것 같다. 서로 간의 마음이 오고가야지 일방통행은 찜찜하고 눈치가 보여서 싫다. 마음을 쌓는데는 똑 부러지는 계산 말고 넉넉한 어림이 좋지 싶다.요즘은 언택트 시대다. 마주 앉아 밥 한번 먹기도 어렵다. 이 시기만 지나면 얼굴 보자는 인사를 한 지 2년이다. 그 사이 연락처에 오른 인물들 대부분과 마음의 거리가 늘어났다. 가족과 친구 몇 명만이 전화와 잠깐의 만남을 이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주파수 반경을 벗어났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과 나누는 정을 대신하는 것은 없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연결선 선로를 보수해야겠다.곧 봄이 오고 매화가 필 것이다. 찬바람을 맞으며 홀로 고군분투하여 만개한 매화는 늘 반갑고 어여쁘다. 힘들여 꽃을 피워 대가 없이 향기를 멀리까지 나누어 준다. 참 대견하다. 이번 봄에는 마음 계산법을 내려놓고 줘도 줘도 더 주고 싶은 일방통행 사랑법을 실천하리라. 두루 봄소식을 전하는 전화기에서 단내가 나고 웃음이 넘쳤으면 한다. 매화나무가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2022-02-02

새해 아침, 대한민국 정치인들에게

장규열 한동대 교수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코로나와 대선정국은 새해라 하여 긴장과 혼돈을 멈추지 않는다. 새롭게 시작하고자 해도 두 해를 넘게 넘실거리는 코로나의 기운은 감염자 하루 이만명을 넘기며 머물고 있다. 새 대통령을 뽑으면 새로운 나라가 펼쳐질 것인지 의심스럽지 않은가. 밖에서 들어온 코로나와 안에서 자란 대선판은 새해가 되어도 희망과 기대를 불러오기보다 체념과 실망을 안기는 모습이다.새해 덕담은 후보들 험담에 쓸려가고 호랑이해의 기대는 코로나 긴장에 발목이 잡혔다. 어느 해라고 똑같을 수 없겠지만, 올해 설 풍경은 사뭇 서먹하고 서글프다. 그렇다기로 남은 기운마저 꺾을 수 있을까. 새롭게 만날 새날들을 낙담과 실망으로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나라와 겨레는 용기와 희망을 기대하지 않을까.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 코로나로 바뀐 세상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긴 힘들 터이다. 만남과 소통, 문화와 경제, 디지털과 온라인은 예견해 오던 ‘완전히 다른 세상’을 당기고 말았다.학교와 직장은 비대면교육과 원격근무가 기본이 되었고 인간의 일상은 만나지 않고 거의 해결하게 되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낭만과 즐거움은 모니터와 유리벽 너머로 해소해야 한다. 고약한 대선판은 인간존재의 바닥을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지 처연하고 부끄러운 밑바닥을 흔들며 보여주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된들 바람직한 사회문화적 품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 설득하기보다 남의 흠결을 끝없이 들추며 공격과 험담으로 채우는 선거판은 ‘투표의 의미’를 거의 잊게 만드는 게 아닌가.코로나도 선거도 곁으로 밀고서 새해에 보았으면 하는 징조들을 헤아려 보자.새해에는 정치뉴스를 조금 덜 보았으면 한다. 일상이 정치로 오염된 나머지 보통 사람들 속내까지 다툼과 혐오가 물든 세상은 바른 모습일 수가 없다. 정치가 뭐라고 편을 가르고 진영을 나누어 당신은 어느 편인지 굳이 묻게 만드나. 어느 한쪽이 언제나 맞거나 온통 틀렸던 적도 그리 없으니 이제는 그만 좀 하시라고 외치고 싶구만, 대선에 나선 후보들은 쉬지도 못하고 흠결만 나눈다.새해에는 일상에 성실한 나날을 되찾고 싶다. 정치가 일상을 왜곡하게 하기보다 일상이 정치를 흔들어 정신차리게 해야 할 모양이다. 자기네들 싸움판에 국민을 핑계삼는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오로지 국민의 삶이 나아지도록 심혈을 기울이는 정치를 찾아와야 한다.새해에는 더 넓게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배우고 싶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데, 우리는 아직도 좁은 국토에만 갇혀 있을까. 생각의 지평이 길었으면 하고 바라보는 시각이 넓었으면 한다. 특별히 다음 세대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광각의 시야를 심었으면 한다. 우물 안에서만 복닥거리며 다툴 게 아니라 너른 세상으로 눈길을 돌렸으면 한다.‘그래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아직도 많다’는 걸 배웠으면 한다. 코로나도 대선도 지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이제부터 헤아리며 기다려야 한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2022-02-02

민심은 윤석열·안철수 단일화에 주목한다

설연휴가 끝났다. 3일로서 대선은 D-34일. 역대 대통령 선거를 보면 선거 한 달 전 지지율 1위 후보가 최종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여야는 이번 연휴를 대선의 향배를 가를 핵심승부처로 보고 민심잡기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모두 이번 설연휴를 반전 모멘텀으로 삼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민족대이동’이라고 할 만한 친인척 만남이 차단된데다, 대선후보들의 활동도 크게 부각된 게 없어 판세를 흔들만한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휴 중 계획됐던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일대일 토론까지 무산되면서 대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지 못했다.지금까지의 선거 흐름을 보면, 이번 대선은 막판까지 혼전 양상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여야 후보, 또는 가족 의혹과 관련된 네거티브전은 이미 식상한 이슈가 돼 버렸기 때문에 박빙의 흐름을 깰 수 있는 마지막 변수는 야권후보 단일화로 보인다. 열흘 뒤면 대선 후보 등록일이고 15일부터는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일정을 고려하면, 조만간 쏟아져 나올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에 따라 단일화가 추진될 가능성은 다분히 있다.민주당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상승 지지세를 유지하면서 4자 대결구도로 가는 것이 최상의 상황이다. 국민의힘에선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는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후보단일화가 최대과제다. 국민의당 또한 “국민의 눈높이에 부적격한 후보들과의 단일화를 생각할 수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안 후보 지지율이 최근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마음이 다급해진 상태다. 안 후보의 경우 지지율이 선거비용보전 마지노선인 15%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단일화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앞으로 정권교체를 원하는 야권 지지층의 단일화 요구는 점점 거세질 것이다. 윤석열·안철수 두 후보는 지지층의 이러한 여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조만간 서로 손해 보지 않고 명분도 있는 최적의 방식을 찾아내 단일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2022-02-02

설날 코로나 최다 발생…연휴 이후가 더 걱정

설날인 1일 코로나19 하루 확진자가 전국에서 2만명을 넘었다. 대구와 경북에서도 2천명에 육박했다. 지난달 26일 국내서 처음으로 1만명을 돌파한 코로나19 하루 확진자는 일주일만에 2만명을 돌파했다. 2년 전 국내에서 처음 확진자가 나온 후 가장 많은 숫자다.방역당국에 의하면 2일 0시 현재 전국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2만270명이고 대구는 1천147명, 경북은 777명이다. 수도권이 1만1천600명으로 절반을 넘었지만 비수도권도 8천670명(42.8%)이 발생, 전국 곳곳에서 확진자가 무더기 발생하고 있다. 오미크로 변이가 우세종으로 등장하며서 확산세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오미크론 바이러스 검출률이 1월 3주차 50.3%에서 4주차(23∼29일)에는 80%까지 상승했다. 검사 양성률도 9.3%로 1월초 3%대보다 3배나 높아졌다.문제는 설연휴 이후다. 보건당국도 오미크론 확산이 본격화되면서 환자가 폭증했고 설 연휴 이후 환자 발생이 더 급증할 것이라 했다. 전문가들도 “확인되지 않은 확진자 규모가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라며 “2월 중순에는 하루 3만명대 신규 확진자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고 한다.방역 당국이 3일부터 오미크론 대응단계를 전국 단위로 전환해 방역대응 체계에 나서고 있으나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행히 오미크론 변이의 위중증화율 및 치명률이 낮아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으나 대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지금부터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불안감도 적지 않다.당국의 선제적 대응 필요하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당국의 대응력을 신뢰하기에는 미덥지 못한 구석이 많다. 이달부터 동네병의원의 코로나 진료 참여가 순조로울지도 걱정이다. 참여기관이 많지 않은 데다 기존 환자와의 동선이 겹치는 문제 등 당국의 치밀한 준비가 없으면 진료과정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오미크론 변이의 대확산에 대비한 보건당국의 철저한 준비와 개인 방역수칙 준수가 연휴 이후 코로나 확산세를 막을 중요한 기준이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22-02-02

포모 증후군

포모(FOMO)증후군은 영어로 ‘Fear Of Missing Out’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말로, 자신만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심각한 두려움 또는 세상의 흐름에 자신만 제외되고 있다는 공포를 나타내는 일종의 고립공포감을 뜻한다.예를 들어 비행기나 기차를 놓칠까 봐 걱정하는 것이나 몇억 원씩 오르는 아파트 가격을 보고 영끌해 집을 매수하는 현상, 주식시장의 무서운 상승세에서 수익을 냈다는 지인들을 보고 빚투나 몰빵을 하는 사례가 포모증후군 때문일 수 있다.원래 포모 현상은 마케팅 분야에서 유래됐다. 1996년 마케팅 전문가 단 허먼이 처음 이런 현상을 확인하고, 논문을 ‘브랜드 관리 저널’에 발표했다. 그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어떤 기회나 기쁨을 놓칠지 모를 가능성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소비자 심리학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했다.그 이후 벤처투자가 패트릭 J. 맥기니스가 2004년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의 매거진 ‘하버스’에 기고한 글에서 ‘포모’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홈쇼핑 방송에서 ‘매진 임박’, ‘한정 수량’ 등을 강조하는 것 역시 포모 마케팅의 사례다. 일종의 사회적 불안인 포모증후군은 소셜미디어의 부상과 함께 널리 알려졌다. 이 증후군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계속 알고 싶어 하는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소셜미디어에 빠져들게 하는 특징을 갖는다.포모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비행기나 기차를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출발 1~2시간 전 공항이나 기차역에 도착하게 한다. 다만 주식 투자자들은 이 증후군에 빠져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대다수의 개인투자자들로 하여금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투자를 시작하게 하고, 투기적 자산에 거액을 베팅하게 하기 때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2-02

설 명절 연휴는 어떻게…

윤영대수필가 이번 설 연휴는 5일이다. 국민의 일상생활과 각종 여가활동을 계획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발표하는 달력 제작 기준인 ‘월력요항’을 보면 일요일 52일에 국경일, 설날 등 공휴일 19일을 합하여 71일이 휴일인데, 올해는 석가탄신일, 추석, 한글날, 성탄절 등이 일요일과 겹쳐져 그 4일을 빼면 67일이나 된다. 여기에 토요일까지 포함하면 전체 휴일 118일 중에서 가장 긴 연휴이고 여기에다 유급 휴가를 잘 쓰면 최장 9일간을 쉴 수가 있다고 한다. 대체공휴일 때문이다. 공휴일이 토·일요일이나 다른 공휴일과 겹치는 경우 대체공휴일을 지정할 수 있는 제도이며 설·추석날 전·후와 어린이날 등 7일만 적용되었으나 2021년 8월15일부터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국경일 4일이 추가되어 11일로 늘어났다. 그래서 일 년 중 1/3쯤 쉬게 되는데 올해는 3일 이상 연이어 쉬는 날들이 6번이나 있다. 우리에게 휴일의 의미는 바쁜 직무와 일상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쉬는 날이었고, 토요일도 조기 퇴근도 없이 살아온 지난날에 비하면 토요일 휴무제가 있고 최저임금 탓인지 퇴근 시간이면 칼같이 직장을 빠져나오고 야간근무도 거의 없어진 듯한 지금, 쉬는 것은 그냥 일상이 된 듯하다. 우리의 전통명절에는 설날, 정월 대보름, 단오, 칠석, 추석이 있어 피곤한 삶의 중간중간에 가족과 이웃, 지인들과 따뜻한 정을 느끼고 민족의 하나 됨을 느끼기도 하지만 점점 희미해져 가는 현실에서 고유한 풍속들의 가치를 잊고 명절 휴일의 의미는 그냥 ‘논다’는 것이 아닐까?올해 가장 길다는 이번 설 연휴도 마음 느긋이 가족들과 어울려 행복을 느껴보는 것이 좋겠지만 벌써 2년째 법석을 떨고 있는 코로나19의 오미크론 변이 사태로 불안한 마음에 진정한 명절 휴일을 느껴보기 힘들 것 같다. 갑자기 8천 명대를 넘어 여태껏 기록을 경신하더니 이제 1만 명 선을 넘었다. 설 연휴 비상사태를 염려한 각 지방자치단체도 특별방역대책을 세우고 선별진료소를 증설하고 강화된 시민 행동수칙을 알리고 있다. 귀향하기 전 예방접종을 완료하고 가능한 방문을 자제하며 거리 두기 등으로 모임 자체를 줄이라고 한다. 차례도 소규모 가족으로 지내고 온라인 성묘를 권하며 어른들에게는 비대면 세배를 드리란다. 귀향 때 개인차량 운행 시 고속도로휴게소도 가능한 패스하라고 한다.이러한 연휴에 택배노조의 투쟁으로 배송 대란이 우려되고 그에 따른 배송지연과 파손, 훼손, 분실 등의 피해도 염려된다. 물류뿐만 아니라 통신 서비스 문제를 걱정한 통신3사는 안정적 서비스 제공을 위해 시설의 집중관리 체제를 점검 보완하여 통신 인프라의 품질향상에 힘을 쏟고, 자가용 운행 증가에 따른 고속도로 정체 구간의 트래픽에 대한 대책도 강구하며 비대면 가족 모임을 돕기 위해 무료 영상통화를 제안했다니 고맙다. 또 설 연휴 기간 중 택배 선물과 안부 인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위험도 우려된다고 한다.명절을 명절 같이 보내지 못하는 요즈음의 세상, 참된 시민질서의식을 발휘하여 질병의 큰 파도를 넘어 밝은 우리의 명절을 즐기도록 하자.

202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