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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는 일

등록일 2023-01-10 17:57 게재일 2023-01-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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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쓰는 편지는 이메일보다 낭만적이다. /언스플래쉬

2023년의 새해가 밝았다. 1월 1일 아침에는 떡만둣국을 끓여 먹었고, 한가로운 오후엔 집에만 누워 있기 심심해서 동네 대형 서점에 갔다. 그곳에서 새로 나온 여러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편지지가 놓인 작은 매대를 발견했다. 딱히 편지 보낼 일이 없지만 무언가 편지지를 꼭 사야만 할 것 같았고, 왜인지 무엇이든 써야만 할 것 같아 가장 화려한 색의 편지지를 골라 샀다.

편지에는 다양한 말들이 적히지만 주로 안부나 소식, 간단한 용무 따위를 적어 상대에게 보낸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 인류 최초의 원거리 통신 방식이었으며 고대에서부터 근대까지는 직접 종이에 글을 써서 상대방한테 전하는 중요 통신 수단이었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편지는 중요한 일을 하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이메일이나 문자 등으로 간단한 소식과 안부를 주고받고, 중요한 업무 내용을 전달하면서 손으로 적는 편지는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소중한 이와 다툼이 있거나 중요한 회의를 나눌 때에는 문자보다는 반드시 만나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한다. 실시간으로 대화가 불가능한 단순한 텍스트는 오해를 낳기 쉽고 정확한 소통을 나누기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으로 적어내는 편지는 낭만적인 부분이 있다. 특히나 수신인이 정해져 있는 편지에는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고르고 골라 일정하게 적어낸다. 그간 말로는 전하기 힘든 사랑의 말을 정돈하여 적어내기도 하고 응원과 희망 같은 밝고 환한 언어들을 잔뜩 힘주어 눌러 담기도 한다. 그렇게 담아낸 마음은 시간 간격을 두고 수신인에게 전달된다.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기 보단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우회하여 전달하고 싶을 때에 주로 편지를 택해 쓴다.

가만 보면 편지를 담는 편지 봉투의 생김새는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면서도 믿음직한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편지 종이든 크기에 맞는 편지지가 짝꿍처럼 같이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편지지는 빈 틈 없이 봉투에 꼭 맞아 들어간다. 편지 봉투는 편지지를 보호하기 위해 편지지보다 긴밀하게 두꺼우면서 사방이 막힌 네모반듯한 정직한 형태를 지녔다. 값비싼 물건을 감싸는 천 덮개나 보자기처럼 어딘가 믿음직스러워서 애정 어리게 보게 되는 구석이 있다.

수신인이 없는 편지도 있다. 미처 보내지 못하는 편지나 나에게 쓰는 편지는 꼭 일기와도 같다. 김광석의 ‘편지’라는 곡은 이미 나의 곁을 떠나버린 수신인을 향하여 가닿지 못할 말을 노랫말로 적었다. 더는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는 너에게 담담하게 이별을 읊조리며 체념하며 너의 행복과 안녕을 빈다. 격정과 분노를 뺀 정제된 언어는 편지 속의 글과 닮았고, 덜어내었기에 감미롭고 담담하기에 슬프다.

미국의 천재 시인이라 불리는 에밀리 디킨슨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마을인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평생을 자랐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생의 말년엔 집밖에 나가지 않고 은둔자로 보냈다. 에밀리 디킨슨은 일생 동안 1천775편의 시, 1천49통의 편지, 124편의 산문을 썼으나 단 7편의 시만 발표했다.

말년엔 모든 소통을 편지로 하였는데, 특히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친오빠의 아내였던 수잔 길버트 디킨슨과는 약 300여 편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보냈다고 한다. 은둔 생활 중 유일한 소통의 수단은 편지였을 정도로 그녀는 주로 고독을 말하며 썼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특히나 편지와 관련된 ‘그에게 가는구나! 행복한 편지여!’ 시에선 ‘그’라는 대상에게 가기 위해 얼마나 ‘내 손가락들이 허둥대는지’,‘얼마나 조심스럽게 움직이는지’,‘문장이 얼마나 힘겹게 쓰이는지’에 대해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문장으로 적어 편지에 봉인한다. ‘그에게 가는구나! 행복한 편지여!’는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감정과 부끄럽고 서툰 마음을 편지를 쓰듯 간결하면서도 자유로운 언어로 표현하고 있으며 애정이 담긴 위트와 애달픈 긴장을 느낄 수 있어 더욱 느릿느릿 읽어 내려갔던 시다.

결국 나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무언가 쓰고 싶었던 이유에는 까닭 없는 명랑함을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편지는 첫 문장이 어색하고 다소 어두울 지라도, 내용의 끝에 다다를수록 아주 간단히 명쾌한 문장을 마주하게 된다. 한 해의 시작 앞에서 무언가 두렵다거나 또는 지나친 걱정을 앞세우더라도 끝내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나를 위한 건강한 사랑을 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올해도 무엇이든 명랑하게, 무사한 안녕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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