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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악의 침전물

강영식 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부자(父子)가 닮고 모녀(母女)가 닮는다는 말이 있다. 한 집에서 살다보니 은연중에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몸에 배어 무의식적으로 닮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자 칼 융은 잠재의식이라 했고 인간의 행동은 의식보다 잠재의식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잠재의식은 그가 사는 곳의 전통과 문화와 관습에 의해 형성된다. 이것을 굴레이니, 유산이니, 업보이니, 맥이라고도 하지만 칼 융은 그것을 ‘집단 무의식’ 또는 ‘잠세태’라고 했고 예레미야는 그것을 ‘찌끼(침전물)’라고 했다. 의식이 작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행위는 모두 잠재의식에서 나오며 결국은 그 잠재의식이 우리의 삶을 주도한다. 의식은 가식(假飾)으로 숨기고 위장할 수 있지만 잠재의식은 꾸며 낼 수 없는 근본(根本)이다. 바닥에 잠재된 침전물이 근본이고 그 근본을 숨기기 위해서 덮는 의식은 가식이다. 가식은 언젠가는 바닥에 침전되어 있는 잠재의식의 표출로 드러나게 되어 결국 진실을 숨길 수 없게 된다.예레미야는 모압족속의 멸망이 악의 침전물 때문이라 했다. 그 악의 침전물을 쏟아버리지 않으면 멸망을 면치 못하리라고 했다. 예레미야 48장에 “모압은 겉으로 보면 맛과 향이 좋은 술 같지만 썩은 찌끼가 바닥에 침전되어 있기에 모압이 살려면 술 거르는 자들을 보내어 포도주를 모두 쏟아 버리고, 그릇들을 비우고, 항아리를 깨뜨려 악의 찌끼(침전물)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모압족은 시작부터 악의 침전물을 바닥에 깔았다. 롯이 타락하여 그 딸과 근친상간으로 낳은 아들이 모압이고 그 후손이 모압족이다. 이후에도 정의의 편을 버리고 발람과 같은 거짓된 자들을 발탁하여 정치를 펼쳐 나감으로 악의 침전물을 두껍게 만들었다. 이들은 악의 침전물 위에 달고 맛있고 향이 좋은 거짓 정치의 술을 담아 위장했지만 결국은 그 침전물에서 악이 배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악한 침전물에 기초하여 세운 모든 역사는 결국은 부패하여 망하게 된다고 경고했고 그 침전물을 쏟아내지 못한 모압은 결국 멸망했다.불행하게도 유독 우리 정치 역사에는 악의 침전물이 바닥에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하다. 악의 침전물을 쏟아부어 버리지 않은 채 그 위에 아무리 좋은 술을 부어 감춘다 할지라도 결국은 침전물 속에서 악한 것이 나오게 되므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악의 침전물을 제거하기 보다는 그 위에 단맛과 향을 내는 술을 부어 악의 침전물을 덮으려고만 한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그 술에 취하게 하여 바닥에 있는 악의 침전물을 보지 못하게 한다. 우리나라가 모압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악의 침전물을 쏟아내어야 할 것이다.

2022-01-12

대한(大寒)을 며칠 앞두고

오낙률​​​​​​​시인·국악인 설레며 밝아오던 새해도 벌써 며칠 지나고, 소한을 지나 일 년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에 해당하는 대한을 앞두고 있다. 대한까지 지나면 민족의 고유 명절 설날이 되는데 그때 또 한 번 우리는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누느라 너나없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예부터 사람들은 양력설과 음력 설날을 모두 지내야만 음과 양의 기운을 두루 갖춘 완연한 새해라 여겨왔다. 그러나 신정과 구정 사이에는 약 한 달여의 시간이 있는데 이 시기는 일 년 중 가장 추운 시기에 해당하므로 아마도 겨울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하는 지상의 나약한 생명들에게는 가장 힘든 삶의 고비가 되지 않을까 싶다.달력이라는 시간의 도표에는 24개의 마디가 설정되어있다. 그 마디를 24절기라고 부르며 그 24절기는 ‘절’이라는 12개의 마디와 ‘기’라는 12개의 마디로 조합되어 있다. 그 조합 또한 음양의 원리로 맞물려 있다. 그리고 그 24절기가 순환을 반복하면서 세월 또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시간이라는 것은 그렇게, 가래떡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데 우리가 나름의 크기로 종종 썰어 쓰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시간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평생을 꿈꾸며 살다가 끝내는 또 꿈을 꾸려고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생명체의 사명은 물의 순환에 있다. 식물이나 동물 할 것 없이 죄다 그렇다. 하지만 동물과 식물의 입장은 좀 다르다. 동물이라는 생명체는 동(動)적인 존재로 타자의 몸에 지닌 물을 취해야만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어쩌면 한자리에 뿌리를 박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살아가는 식물보다도 오히려 더 힘든 생을 꾸려 간다. 그것은 동물류에 해당하는 생명체들의 원죄라 할 수 있다. 해서 원죄라는 단어는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동물류의 공통적 원죄를 관통한다.새해의 초입에 들면 필자는 습관처럼 죽도시장 어판장을 찾는다. 그리고 가끔 걸음을 멈추고 생선 파는 아낙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곤 한다. 행여 새해의 힘찬 기운을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느껴볼까 해서다. 죽도시장 어판장에서 나이 칠십은 족히 넘었을 아주머니들의 표정에서 향내를 느낀 기억이 있다. 장사꾼의 돈은 개도 안 물어 간다는데 수많은 손님을 대하면서도 싫은 표정 한번 짓는 법이 없었다. 그 아주머니들의 속내는 발효가 잘되어 마치 백설처럼 하얀 것 같았다. 속이 거름처럼 썩은 게 아니고 배꽃처럼 하얗게 발효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온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려도 싱싱한 꽃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올해도 마스크 때문에 그 싱싱한 참꽃 미소를 보지 못해 못내 아쉽다.필자의 어린 시절엔 들일 나가는 소의 입에 머거리라는 마스크를 채웠다. 좁은 들길에 소를 몰고 가노라면 소가 길가에 자라는 농작물을 한입씩 뜯어먹었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려는 주인 농부의 특별한 조치였다.어쩌다가 요즘은 사람들이 죄다 소 머거리 같은 마스크를 하고 살아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2022-01-12

안철수의 물맷돌

노승욱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의 입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이름도 같이 언급됐다. 그는 자신이 거대 양당을 상징하는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다윗임을 강조한다.현재 국회의원이 3명뿐인 국민의당이지만, 마크롱이 당선됐을 때는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도 상기시키고 있다. 시계를 5년 전인 19대 대선 때로 돌려보자.안철수 후보는 그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 골리앗은 기득권을 상징하는 거대 양당이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돌풍을 일으킨 마크롱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시켰다. 한 번만 더 타임 슬립을 해보자.2013년, 서울시 노원구에서 재보궐선거를 준비하던 안철수 후보는 청소년들과 즉석 만남을 가졌다. 늦은 밤에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중고등학생들에게 그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했다. “거대한 골리앗과 맞설 때 다윗은 원래 입던 양치기 옷에 원래 쓰던 돌멩이 하나로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가장 잘하는 걸로 싸워서 이긴 것입니다.”안 후보가 말했던 돌멩이는 물맷돌이라고 일컬어진다. 물매는 가축을 맹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대의 목동들이 쓰던 투석구였다. 물맷돌은 시속 70~80㎞의 속도로 날아가면서 200미터 떨어진 곳의 목표물도 명중시킨다고 한다. 목동 출신 다윗의 비장의 무기가 물맷돌이었던 셈이다.근 10년간 안철수 후보는 다윗과 골리앗의 예화를 애용해왔다. 자신의 정체성을 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갈고닦은 물매 실력을 보여줄 때도 됐다. 그의 말대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의사이자 벤처기업 CEO 출신답게 과학기술 강국의 청사진과 코로나19 극복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안철수 후보는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안철수 현상, 안철수 신화란 말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그는 서울 시장 후보와 대통령 후보를 당시 야권에 모두 양보했다. 다자 대결 구도로 치러진 19대 대선에서는 독자 출마를 선택했다. 하지만 MB 아바타 논란으로 고전하며 3위에 그쳤다.올해 치러지는 20대 대선에서는 안철수 현상이 아니라 안철수 현실이 존재한다. 그의 선택 여하에 따라 대선판이 흔들릴 수 있다. 그는 독자 출마와 후보 단일화의 경계에서 제3지대를 구축하고 있다. 그로 인해 거대 양당 후보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1위와 2위 후보의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혀 있을수록 안철수의 존재감은 주목을 받을 것이다.안철수 후보가 독자 출마를 감행할지, 후보 단일화를 꾀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설날을 전후한 지지율 추이가 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에는 간철수가 아닌 강철수가 될 수 있을지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팬데믹이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해에는 경제 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골리앗이란 존재는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 상황일 수 있다. 안철수의 물맷돌이 비유인지, 실체인지를 증명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2-01-12

무인상을 떠올리며

오전 내내 시끄러웠다. 아래층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망치를 치고 두드리는 뭇소리까지 들려왔다. 공사를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현장을 보러 갔다. 유리 슬라이딩 문 안에서는 벽면의 타일을 깨고 이젠 쓸모없어진 장식물을 부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닥엔 자재가 뒹굴고 꽉 닫힌 공간으로는 먼지가 빠져나가지 못해 뿌옇게 고여 있었다.안쪽을 들여다보자 나이든 늙수그레한 인부 한 사람과 러시아계의 노동자 두 사람이 제대로 마스크도 하지 않고 등산용 스카프로 대충 입을 가린 채 먼지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입구에 작업을 지시하는 사장님을 잠시 불러내서 “마스크라도 좀 드릴까요?”라고 의견을 제시하자 “저들도 숨쉬기 힘든데 일이 빨리 진척이 없어 짜증을 내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가변 벽 너머 창문이 있으니 일부를 부수면 먼지가 빠져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옆방으로 가서 밖으로 난 창문을 힘껏 열어 젖혀두었다.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다시 가서 보니 먼지는 좀 가라앉고 가변 벽이 부서져 뼈대만 남은 채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작업하던 인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부서진 벽의 잔해 등을 실어 나르고 식사를 하러 간 모양이었다. 카페가 있던 자리도 이용의 목적이 달라지니 남김없이 벽면과 장식이 부서지고 사라진 상태였다.올여름 시 낭송을 야외에서 한다며 간 원성왕의 무덤인 괘릉이 생각난다. 작은 연못이 있던 자리를 돌로 메워 그 위에 묘를 만들었는데 물이 자꾸 배여 나와 왕의 시신을 땅에 놓아둘 수 없어 허공에 매달아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래서 걸 괘(掛)자를 써서 괘릉이라고 부른다는 설화이다. 그 능 앞의 무인상과 문인상은 정교한 조각이 훌륭해 여러 예술작품에도 제법 인용이 되곤 한다.그 무인상의 부리부리한 눈매와 곱슬한 머리를 보아 신라와 활발하게 무역을 하던 때 흘러들어온 페르시아 사람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한다. 손에 든 긴 칼을 보면 신라왕의 호위무사를 하겠노라 달려온 용병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인상의 뒷모습을 보니 주머니를 차고 있다. 이국땅에 가서 돈을 벌어 오겠노라 고향을 떠나온 상인이었을까를 상상해본다. 그들이 아마도 안강읍에 위치하는 흥덕왕릉의 호위무사로도 간 모양이다. 신라인에 비해 덩치가 크고 단호하면서 부리부리한 눈매가 신뢰를 주었을 것으로 짐작해본다. 그들이 보디가드를 했다면 왕도 훨씬 편하게 눈을 감고 이승을 떠나지 않았을까. 저승에 간 후까지 왕을 호위하는 무사로 곁에 두고 싶었던 모양이다.그러고 보니 1960년대에 서독으로 갔던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광부와 간호조무사들이 그 험한 곳에서 살아남아 당시 대통령을 만나 눈물 흘리던 모습은 늘 마음의 한구석을 무겁게 만든다. 시체를 알코올로 닦거나 병원에서 모두가 외면하던 가장 더럽고 힘든 일을 해야 했던 이들과 컴컴한 탄광 속에서 이빨만 하얗게 드러내고 웃던 이들. 탄광의 저주인 진폐증에서 그들도 자유롭지 못했다. 배문경수필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사람들은 살아 숨 쉬고 있다. 영하의 날씨에도 새벽 노동은 이루어지고 한여름 폭염에도 공사는 진행될지니, 우리의 삶이 영속적이듯이 노동의 하루도 그렇게 이어진다. 새벽 어두컴컴한 도로의 길섶에 버스가 선다. 그곳에서 벗어난 외국인노동자들이 어둠과 함께 걷는다. 그들만의 언어로 피곤한 밤을 견딘 동료들과 대화가 깊다. 이제 따뜻한 잠자리에서 편안한 아침을 맞길 바라는 마음으로 옆을 스친다.카페가 사라진 자리로 종합 검진실이 자리 잡을 것이다. 새롭고 환한 의료 환경이 제공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바닥은 무엇으로 채워질지 광고 간판은 어떤 걸 사용할지 얼마 후 이전 개업하게 될 새로운 공간이 먼 곳에서 달려온 낯선 사람의 손에 의해 다시 만들어질 것이다. 나의 삶도 두 손이 만들어낸 하나의 생(生)이란 건축물이다. 한 사람의 건축물이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며 인간의 역사가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해 잠시 무인상을 닮은 노동자들의 안녕을 마음으로 빌어본다.

2022-01-12

임인년…육십갑자와 함께 명리인문학 여행 떠나보자!

류대창 명리연구자 인간은 자신의 운명과 인생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인류는 많은 방법으로 운명 해석에 몰두했다. 명리인문학은 그런 지혜를 축적한 학문이다. 코로나19의 창궐에 지친 독자들에게 육십갑자를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 해 위안과 안식을 드리고자 한다. ‘류대창의 명리인문학’은 격주 목요일마다 독자들을 찾게 된다.인간은 본성적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기를 원한다. 인간 본성에 내재한 길흉화복을 알고자 하는 욕구를 천명한 말이다. 하늘이 점지해주는 능력을 깨달아 자기의 분수와 능력을 알고 과욕을 부리지 않으며 분수에 맞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명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므로 정해진 사주팔자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마음 자세에 따라 길흉은 상당한 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돈, 둘째는 자식문제, 셋째는 건강문제다.중국 당나라 때, 유종원(柳宗元·773~819)이 영주(永州)라는 곳에서 오랫동안 귀향살이를 하고 있을 때 일이다. 그곳 사람들은 누구나 헤엄을 잘쳤다. 어느 날 강물이 무섭게 불어났는데도 그곳에 사는 대여섯 사람이 자그마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고 했다. 강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배가 부서져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강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쳤다. 같이 헤엄을 치던 사람들이 “우리들 가운데 가장 헤엄을 잘 치는 자네가 오늘은 어째서 뒤로 처지는가?”라고 물었다. 그 사람이 대답하길 “나는 허리에 동전을 천 냥을 차고 있어 자꾸 뒤처지는구먼”이라고 말했다. 같이 강을 건너가던 사람들이 “어째서 그것을 버리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지쳤지만 계속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딴 일행은 이미 강을 건너가 반대편 언덕으로 올라갔다. “아니, 이 어리석은 친구야! 돈에 심장이 뒤집히고 눈이 멀었군! 너 하나 죽고 나면 그 돈은 무엇에 쓰려고 그러는가?”라고 나무라면서 큰소리로 그 사람 이름을 불러댔다. 그래도 그 사람은 고개만 설레설레 젓다가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 일은 나를 매우 슬프게 했다. 돈 있고 권세 있는 몇몇 사람들이 스스로 쌓아 놓은 그 엄청난 돈더미에 깔려서 죽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유하동집(柳河東集)’에 나오는 이야기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 ‘오징어 게임’, ‘지옥’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변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은 더욱더 가열되어 가고 있다. 마치 불나방처럼….신축년이 지나고 임인년이 도래했다. 자연은 우리의 삶과 무관하게 운행되고 있지만 인간은 자연법칙이란 테두리를 벗어나 살 수 없다. 신년이 도래하면 올해의 운수가 어떻게 되는 지 궁금해 철학관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방법으로 한 해의 운수를 알고자 한다.옛말에 이르기를 ‘천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아는 자는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간은 어떻게 하면 천명을 알 수 있으며 나 자신을 알 수 있는지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하늘의 때도 알고 땅의 유리함을 얻어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는 법을 알아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생존을 위해 이고득락(離苦得樂·고통을 멀리하고 즐거움을 취한다)을 원하고 있다. 인간은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속성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과 결과에 목말라하고 있다. 이것의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명리학이다. 하늘의 이치(天文)를 인간의 문학(人文)으로, 하늘의 비밀을 인간의 길흉화복으로 해석하려는 것이 명리학의 주된 목적이다.기해년(2019년), 경자년(2020년) 추운 겨울이라 활동이 움츠렸던 시기다. 신축년(2021년)은 하늘은 매섭고 찬바람이 휘날리는 신(辛)이지만 땅은 축(丑) 소의 눈망울 같은 순하고 순수한 해였다. 많은 이들을 사랑하고 따뜻한 눈으로 봐주지만 매울 신(辛) 때문에 묵묵히 지켜보는 형상이었다.임인년(2022년) 하늘의 기운 임수(壬水)는 지혜와 큰 바다 같은 포용력을 보여준다, 땅의 지령인 호랑이가 배가 고플 인시(寅·새벽 3시~5시)이기에 냉정하고 내적인 힘이 있어서 뭔가 준비를 하고 시작하려는 시기이기도 하다. 인목(寅木)은 봄의 계절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1347년 이탈리아를 강타한 흑사병(페스트)으로 유럽의 인구 1/3이 사망했고, 그래도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남았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의 경제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며, 우리 서민의 살림살이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허탈감이 든다. 그러나 이 고난을 극복해야 하고 이겨내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서다. 호랑이 같이 용맹스러운 기운이 도래하고 있으니 서두르지 말며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많지않음을 알고 자기 처지에 맞는 역량으로 이 고난을 헤쳐 나가야겠다.-1951년 대구 출생-서예가 동애 소호영·문강 류재학 사사-불화장 이수자 본연 전연호 사사-제2회 불교미술 본연문도전(2008년) 개최

2022-01-12

수능은 학종과 겨루는가

장규열 한동대 교수 나라에 할 일이 많다. 진작 풀었어야 할 문제를 적시에 해결하지 않은 탓에 문제가 켜켜이 쌓인 가닥들도 여럿이다. 해마다 겪으면서 지나고 나면 거듭 잊으며 지내온 숙제가 있다. 대학입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의 의미가 왜곡되고 교육현장 부조리의 뿌리가 대학입시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전국의 교육청들이 제아무리 개혁적인 프로그램을 구사해도 대입제도의 벽은 넘어설 방법이 없다. 유아교육과 초중등 교육이 인성바르며 바람직한 사람을 기르고 싶어도 대학으로 가는 길에서 모든 선의가 무너져 내린다. 불공정의 대명사처럼 누더기가 되어버린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은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불러오는 꼴을 보이고 있다.학종 대 수능. 극한의 경쟁구도를 완화하고 사교육의 폐해를 줄여보기 위해 교육계의 지혜를 모아 만들었던 학종이 아니었던가. 수시와 정시로 대학입학결정 시점에 차이를 두고 학종과 수능을 나누어 배치한 듯한 구조가 문제였을까. 학생부 종합평가의 본질과 취지에는 문제가 없다. 학교현장에서 적용하고 운용하는 방식과 대입전형에 반영하여 학생을 평가하는 방법에 다소 개선의 소지가 보인다 하여 이를 전면 부정하는 태도는 옳지않아 보인다. 일부 대선후보들조차 교육정책을 제안하면서 학종과 수능을 서로 대척점에 놓고 입안하는 일은 교육의 관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학생의 노력을 넘어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사교육과 극한경쟁의 조건이 수능의 진행과 결과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능은 그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시험한다는 모양인데, 오늘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진로와 학문영역의 문턱에서 대학에 들어가 수학할 능력을 포괄적으로 평가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정규 교육과정을 적절하게 마친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여 수학할 최소한의 능력을 인증하는 정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학생의 실력을 평가한 결과로 줄을 세워 대학입시전형의 성적표로 사용하는 오늘의 방법은 교육적으로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그것도 일 년에 단 한 번 전국단위 시험으로 대입의 운명을 결정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도 않으며 이해하기도 힘들다. 수능점수의 수준에 따라 특정대학과 학과에 입학이 가능하다는 식은 낡아도 너무 낡은 습관이 아닌가. 수능이 더이상 석차를 갈라놓는 기능을 하지않아야 한다.수능과 학종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수능의 역기능을 극복하고 보완하기 위해 도입되었던 학종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 수학능력인증시험으로서 수능과 학생부종합평가를 전형자료로 삼아 대학은 학생을 면담한 결과를 토대로 입학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 수시와 정시의 시점 구분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특정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로 사람의 능력과 가치를 판단하는 인식과 잣대도 바뀌어야 한다. 대학은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여하는 기관으로서 최선을 다하면 그뿐이 아닌가. 수능과 학종은 모두 건져야 한다.

2022-01-12

TK, 한몸처럼 움직여야 성장 비전 생긴다

지방자치단체가 시·도를 넘어서 초광역권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성장동력 산업을 추진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개정안이 그저께(11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시·도 단체장이 관계부처와 협의해 자율적으로 5년 단위의 초광역권 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대구시와 경북도는 지난해부터 추진중인 ‘특별지방자치단체’라는 별도의 조직설립을 통해 초광역권 협력사업의 구체적 내용과 일정을 수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자치단체가 특정 목적의 광역 사무를 처리할 필요가 있을 때 공동으로 특수한 형태의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지방자치단체는 기존 시·도와는 다른 별개의 자치단체이며, 광역 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어 효율적인 사무 처리가 가능하다.권영진 대구시장은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이 개정돼 로봇, 미래형모빌리티, 바이오·메디컬 산업을 초광역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대구경북특별지방자치단체 설립을 통해 교통, 관광 등 초광역 협력사업이 투트랙으로 추진이 가능해졌다”고 밝혔다.권 시장이 언급한 것처럼 시·도간 협력사업에는 미래성장산업을 비롯해 특별지방자치단체가 맡을 광역 교통사업, 문화 관광 사업 등이 포함될 계획이다. 현재 시·도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 업무도 특별지방자치단체 사무에 포함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지방자치단체들이 초광역화를 통해 지역발전비전을 찾고 있는 것은 이제 하나의 흐름이 됐다. 비록 무산되긴 했지만 대구경북 행정통합을 비롯해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추진 등도 비수도권 지자체들이 힘을 뭉쳐 지역발전 비전을 찾아보자는 몸부림이다. 양 시·도 공무원이 함께 일하며 협업하는 조직인 특별지자체가 설립돼 성과를 내면 장기적으로 대구경북 행정통합도 가능해질 것이다.

2022-01-12

구미형 일자리 출범, 경제 회복 신호탄 되길

구미형 노사상생 일자리 사업인 LG BCM 구미공장이 드디어 착공했다.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착공식을 가진 LG BCM 공장은 구미 국가5산단내 부지 6만6천㎡에 7만5천㎡ 규모 건물로 짓는다. 단일공장 기준으로 세계 최대 양극재 생산공장이다. 2019년 7월 이차전지 핵심소재인 양극재 생산공장 유치를 위해 노사민정이 상생협약을 체결한 이후 2년6개월만에 거둔 결실이다. LG BCM은 이곳에 2024년까지 4천754억원을 투자, 국내 최대인 6만t 규모의 양극재를 생산한다.올해부터 직접 고용을 시작해 공장이 완성되면 고용효과가 8천700명에 달한다. 김용기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한해 1조5천억원가량 생산이 이뤄져 구미산단 연간 생산액이 4%가량 증가할 것이라 했다. 침체에 빠진 구미경제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구미는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메카다. 2010년까지만 해도 국내 수출을 대표하는 산업도시였다. 그러나 삼성 등 대기업의 해외 및 수도권 이전과 협력업체의 탈 구미로 이 지역 수출은 2013년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이다. 구미 인구도 2018년부터 줄어 작년에는 사상 최대 폭인 3천741명이 감소했다. 구미경제 퇴조를 그대로 반영했다.구미형 일자리사업은 노사민정이 합의한 상생형 일자리 사업이다. LG는 투자금액을 조성하고 경북도와 구미시는 부지 및 세제 혜택을 지원한다. 늦었지만 그나마 성공적이어서 다행이다.구미시는 이제부터 LG BCM 공장이 지역에 잘 안착하도록 행정적 지원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 다른 대기업의 상생형 일자리사업 유치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구미국가산단은 향후 건설될 군위 소재 통합신공항과도 인접해 물류이동이 매우 용이한 곳이다.대기업의 구미 회귀를 위한 자치단체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 주거환경 및 교육·문화 인프라 개선과 교통망 확충 등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도 당연하다. 경제적 위기에 몰린 구미로서는 모처럼 좋은 기회다. LG BCM의 투자를 계기로 구미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길 바란다.

2022-01-12

긍정 에너지

조현태​​​​​​​수필가 미국에 흑인으로 최초의 호텔 총주방장이 된 사람이 있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고급 호텔 ‘벨라지오’의 제프 핸더슨 총주방장이다.그는 가난과 범죄가 난무하는 LA 뒷골목에서 출생했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하며 마약 밀거래에 빠지고 말았다. 소중한 20대를 교도소에서 보내고도 인생의 방향을 확 바꾼 계기는 자신의 천직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교도소에서 꿈을 찾은 뒤 자신이 가장 간절하게 원한 것은 ‘배움’이었다고 한다.그는 교도소에서 마당청소를 맡았으나 매우 게을렀다. 그러자 재소자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설거지 일을 배정받아야 했다. 1천500명분의 식기를 하루 세 번씩 닦아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하루는 주방에서 빵 굽는 조리실을 보고 흥미를 가졌다. 커다란 반죽기와 발효기, 프라이팬에서 튀겨지는 도넛을 보며 요리사가 되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설거지부터 온갖 잡일을 하면서 하나씩 기술을 익혀 교도소 생활 10년 만에 보호관찰로 석방된다. 요리를 배우면서 책과 신문을 읽기 시작했고 좀 더 수준 높은 요리를 배우기 위해 최고의 인물을 찾아다녔다. 수없이 많은 주방을 거치고 다양한 요리사들을 만나면서 한 단계씩 한 단계씩 올라갔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최고급 호텔의 총주방장이 된다.흑인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코치로 활동하는데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흑인들은 자신의 범죄 이유가 사회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도 총을 겨누며 범죄하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다. 그 선택은 바로 자신이다. 자기를 희생양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저서 ‘나는 희망이다’에서 강조한다. 생각을 바꿔라. 목표를 정하면 절대 포기하지 마라. 이것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과 다르다. 왜냐하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가난, 부모 이혼, 도둑질, 퇴학, 마약 그리고 감옥. 거기서 설거지하며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던 것이다. 희망이 싹트면서 자신을 바로잡는 방법은 꾸준히 참아가며 맡은 바를 충실히 하는 것이다. 흔들리거나 절망하지 말고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남들이 강요하는 것보다 더 줄기찬 에너지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긍정 에너지가 아닐까 한다.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얼마나 간절한 가의 차이는 있겠으나 그 바람이 절실할수록 생각의 전환에 따른 긍정 에너지가 커져야 한다. 주변에서 조롱하거나 방해하는 사람들이 왜 없었으랴. 내가 곧 희망이라는 긍정이 아니면 설거지에서 총주방장으로의 과정을 견딜 수 있었겠는가.대형 산불은 늘 조그마한 불씨에서 비롯된다. 건조한 날씨에다 몰아치는 바람은 걷잡을 수 없는 산불로 키워간다. 대한민국 사회에도 대형 산불 같은 상황을 불러일으키려는 사람이 몇 있다. 자신이 추구하려는 일에 건조함과 바람 같은 에너지가 더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온 정성을 쏟고 있다. 그러나 제프 핸더슨을 빗대어 보자.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기보다는 자신이 에너지를 만들어 마침내 성공하는 케이스다. 하물며 많이 배웠고 이미 성공했으나 더 큰 최고치를 원한다면 스스로 긍정 에너지를 휘몰아쳐야 하지 않겠는가.

2022-01-11

말과 공약

이명균창원대학교 명예교수·영문학 성서에 의하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한다. 이 표현은 그 심오한 뜻을 종교적·신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으나, 언어의 일반적 특성에 비춰 해석하더라도, 우리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전한다 하겠다.사람은 말(소리와 문자 통틀어)을 사용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이다. 사람이 일단 말을 습득하면 그 후로는 모든 생각과 행위를 말을 통해 이루어내게 된다. 말은 인간에게 제2의 자연이라고도 한다. 사물(事物)이나 현상과 개념까지도 말을 통해 생겨나고 인식되며 형성된다. 생각한 내용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생각한 뒤에 그것을 소리나 글로 표현하게 된다. 이처럼 말은 우리 인간의 모든 의식과 행위가 일어나게 하는 작용을 한다. 가족 간에, 친구나 이웃 사이 또는 사회의 여러 조직 내에서 생겨나는 어떤 갈등이나 문제도 말로 충분히 소통이 이루어지면 잘 해결될 수 있다. 서로의 생각을 숨기지 않고 말로 진솔하게 나눈다면 국가 간의 웬만한 전쟁까지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다소 다른 얘기이지만, 우리나라의 세계적 유수기업인 삼성반도체가 1993년 세계 최초로 64D램을 개발한 이후 반도체 산업에서 ‘세계 최초’를 휩쓸면서 가장 창조적 기업이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러 해 전 어느 신문기자가 삼성전자 사장에게 회사가 어떻게 현재처럼 성공했느냐고 물으니, 그 사장은 “회의 방식에서 전무부터 대리까지 함께 자리한다. 누구든 반박한다. 서슴지 않는다. 누구나 말할 수 있다. 또한 삼성은 기술자, 연구원 외에 매니저도 함께 고민하면서 의사결정을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한다. 이는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서 구성원들 사이의 참된 말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떠한 효과와 결과를 낳게 되는가를 잘 보여주고 설명해주는 실례(實例)이다.여기서 말이란 참말, 바른말을 가리키는 것이지 거짓말이나 궤변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참말로 솔직하게 소통하며 뜻을 모은다면 인간사회의 어떤 문제점들도 해결 가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창조도 이루어낼 수 있으나, 거짓말이나 왜곡된 말이 작용한다면 문제와 갈등은 증폭되며 개인이나 사회를 파멸로 몰아갈 수도 있다.한편 사람은 평소 그가 하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 자질 성품 등 거의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차마 얘기 꺼내기 싫은 사항이지만, 올해는 나라경영의 지도자를 뽑는 해이다. 지도자가 되려는 인물들의 현재 소속 정당들을 보면 어느 당 할 것 없이 정말 심하게 짜증이 난다. 그렇더라도 누구든 한 사람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후보자의 번지르한 공약이나 선동적 어휘에 속지 말고 그 사람이 평소에 하는 말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나라가 벼랑으로 떨어지느냐 아니면 국운회복 쪽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느냐의 방향을 잡는 선택이 될 것이다. 참되고 진실한 말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할 것 같은 사람, 거짓말이나 궤변을 덜 할 것 같은 사람이 꼭 선택받기를 손 모아 빈다.

2022-01-11

군위군 대구편입 임박, 만반의 준비를

경북 군위군의 대구편입 법이 11일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14일 국회로 넘어간다.경북도와 대구광역시 간 관할구역 변경에 대한 법률안(군위군의 대구편입법)은 지난해 12월 22일까지 입법예고를 완료했고, 법제처 심사와 차관회의를 거쳐 이날 국무회를 통과했다.중앙선관위와 행정안전부는 군위군의 대구편입법은 오는 6월 1일 치러지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에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음 달 18일까지 모든 절차가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고 쟁점 법안도 아니어서 국회 통과는 순조로울 전망이다.군위군의 대구편입은 2020년 7월 군위 소보면과 의성 비안면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공동후보지로 선정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시도민의 합의 과정에 상당한 진통도 없지 않았지만 대구와 경북의 더 큰 미래를 위해 시도민이 서로 양보한 약속이다. 새롭게 건설될 통합신공항을 중심으로 대구와 경북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군위군의 대구편입은 상징성이 있는 행정절차다. 성공적 안착이 필요한 이유다.대구는 군위군의 편입으로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맞는다. 전국 특광역시 중 가장 넓은 면적의 도시가 되기도 하지만 공간구조가 주는 변화를 잘 활용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단순히 면적이 넓은 도시여서는 안 된다. 공간구조와 경제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준비가 지금부터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통합신공항은 10조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대구와 경북의 대역사다.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은 대구경북 100년을 내다본 사업의 출발점이라는 역사적 인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군위군을 새로운 식구로 맞이하는 대구시와 대구시교육청 등 각 기관단체의 행정적 절차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편입과정에서 빚어질 혼란이나 후유증 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지금은 글로벌 시대인 동시에 치열한 도시 간 경쟁 시대다. 도시 경쟁력이 없는 도시는 몰락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시기다. 군위군의 대구편입이 대구와 군위의 상생 발전의 계기가 되고 나아가 대구와 경북이 함께 더 큰 미래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22-01-11

脫원전 vs 親원전

최근 유럽연합(EU)이 원자력 발전을 녹색경제와 연관지어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하는 정책 초안을 채택해 주목을 끌었다. 독일 등의 반대로 논란도 있지만 선진국의 원전정책은 탄소중립 달성의 강력한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친환경쪽이 큰 흐름이다.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 간 정책대결이 활발히 전개되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지속 여부가 관심이다. 이미 대선후보들이 이와 관련, 입장을 조금씩 밝혀 현 정부의 원전정책 기조가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면 달라질 것으로 보는 전망이 많다. 특히 원전을 많이 보유한 경북의 입장으로서는 탈원전 정책의 기조변화가 줄 영향이 커 대선후보들의 정책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한 모임에 참석, “탈원전의 방향성에 공감을 하지만 추진방식이나 속도 등에 있어서는 현 정부와 차별화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가동중이거나 건설중인 원자력발전소는 그대로 두되 새로이 짓지는 않겠다는 감(減)원전 정책을 언급했다.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원자력 발전소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했다. 원자력 없는 탄소중립은 허구라고도 했다. 두 후보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중단된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는 윤 후보가 당선되면 재개되고 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재개 여지는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7천억원을 투입하고도 5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는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 운명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탈원전 정책 후 울진경제는 깊은 침체 늪에 빠져 있다. 사람은 떠나고 소비가 줄고 문 닫는 가게는 늘었다. 문 정부의 섣부른 탈원전 정책이 낳은 비극이다. 탈원전이 이제 기로에 섰다./우정구(논설위원)

2022-01-11

설에는 골목상권에 活氣 넘쳤으면…

심충택 논설위원 정부가 이번 주부터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방역패스’ 대상에 추가로 포함시키자 수도권 주요언론사들이 일제히 비판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 시설을 이용하는 소비자 입을 통해 방역패스 적용에 대한 부당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집중 보도하고 있다. 예를들면, ‘임신이나 기저질환, 백신 부작용이 있으면 백신을 맞지 않은 게 아니라 못 맞는 것인데 갑자기 장도 볼 수 없는 죄인으로 만드느냐’, ‘대형마트는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돕는 생필품을 판매하는 곳인데, 모든 고객이 모바일로 방역패스를 확인해야 하는 절차를 거치게 됨으로써 고령 고객들의 불만이 높다’, ‘고객 불편이 증대되고 기본권을 보장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등의 논리다. 취재내용에 수긍은 가지만, 한편으론 생필품을 꼭 대형마트에서 구입해야 되느냐는 생각이 든다. 집주변에는 전통시장도 있고, 동네가게도 널려 있다.여기에서 대형마트에 대한 일부 언론사들의 보도태도를 언급하는 것은 지난 2013년 ‘대형마트 규제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을 때도 이들 언론사들이 대형마트 입점규제와 의무휴업을 문제 삼는 기사를 약속한 듯이 쏟아낸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대형마트 규제법은 중소도시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대형 유통시설이 골목상권을 붕괴시키자 일요일을 포함한 공휴일 월 2회 의무휴업을 해야 하고, 점포를 개설할 때 주변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하도록 등록요건을 강화한 내용이었다.당시 이들 언론사들은 대형마트가 일요일 휴업을 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의 피해사례를 집중 부각시키며 영업규제에 대한 반대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형마트들은 당시 수도권 언론을 마치 전단지처럼 활용하며 광고비를 뿌려댔다.그동안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이용할 경우, 골목 가게들과는 달리 안심콜이나 QR코드만으로 입장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주부터는 전자출입명부 QR코드 등으로 백신 접종 완료 인증을 하거나 PCR 음성확인서를 제출해야 입장할 수 있게 됐다. 일주일의 계도기간을 거쳐 다음주(17일)부터는 방역패스를 위반할 경우 해당 시설은 물론 개인에게도 과태료가 부과된다.정부가 이번에 대형유통시설에 대해 방역패스를 확대한 것은 집단감염 위험성에 대비한 측면도 있지만 타 시설과의 형평성 문제를 많이 고려했다. 자영업자들과 학부모들은 그동안 식당과 학원, 독서실, 도서관은 방역패스를 적용하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왜 포함시키지 않느냐는 불만을 많이 제기해 왔다.설 연휴가 이제 보름 남짓 남았다.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이번 설 장은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이나 주변가게에서 봤으면 좋겠다. 똑같은 돈을 골목상권에서 쓰는 것과 대형마트에서 쓰는 것은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다르다. 대형마트에서 쓰는 돈은 당일 서울본사에 입금되지만, 골목상권에서 쓰는 돈은 곧바로 지역사회로 환원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번 돈은 은행에 들어갈 여유도 없이 생계비로 쓰여진다.

2022-01-11

2030 겨냥한 유력후보 1월승부전 주목

유력 여야 대선후보들이 새해들어 2030(MZ) 세대를 겨냥한 대선캠페인을 본격화하면서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흥미롭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최근 MZ세대를 겨냥한 일정과 정책공약을 이어가고 있다. ‘매타버스(매주타는 민생버스)’ 투어때는 청년과 대학생, 신혼부부들을 집중적으로 만나고 있다. 유튜브 주식채널과 게임채널에도 출연해 젊은층과의 친근도를 높이고 있다. MZ 투자자들이 몰리는 가산자산 시장보호, 청년면접 완벽지원 서비스 등의 공약도 내놓았다. ‘홀로서기’를 선언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변화모습은 놀라울 정도다. 윤 후보는 MZ세대들이 선호하는 짧고 간결한 메시지를 통해 이들과의 소통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페이스북 한줄 메시지다.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라는 메시지에 이어 발표한 ‘여성가족부 폐지’ 게시글에는 1시간도 안 돼 1천700여개의 댓글이 달렸고, 하루가 지나자 1만개가 넘는 댓글이 이어졌다. ‘병사봉급 월 200만원’ 공약도 반응이 뜨거웠다. AI(인공지능)윤석열과 59초짜리 쇼츠(짧은 동영상)도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윤 후보의 이러한 변화모습은 이준석 대표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실제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1천300만명이 넘는 MZ세대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의 승패를 결정하는 캐스팅보터로 지목되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2030세대 부동층이 40%를 넘을 정도다. 이들은 보수·진보라는 이념과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지지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투표당일까지 표심을 알 수 없는 세대다. 유력후보들이 유튜브체널과 AI, SNS를 통해 집중적으로 공약을 발표하는 것도 스마트폰과 일상을 함께하는 MZ세대들의 특성 때문이다.두 유력후보가 설 연휴전까지 벌일 1월 승부의 결과는 윤 후보에겐 특히 중요하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 구도에 주요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윤 후보가 이달 중 확실한 양강 구도를 구축한다면 단일화 국면에서 안 후보를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

2022-01-11

내가 바라는 삶

인생을 살면서 종종 길을 잃어버린 기분을 느낀다.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특별한 사건이 벌어져서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무 것도 잘못되지 않았고 특별한 일도 없을 때, 모든 것이 평소처럼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느낄 때면 그런 기분을 느낀다. 전에는 이런 기분을 느낄 때면 친구들에게 그 기분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네가 살만해서 그렇다’는 말을 들은 이후론 그런 이야기도 잘 하지 않게 되었다.그건 한편으로 맞는 이야기다.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을 때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것이었나?’하는 기분은 들지라도, 완전히 길을 잃고 떠밀려가고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버리곤 하니까. 오히려 그럴 때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더욱 확고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일에 치이며 정신없이 흘러가는 지금과는 다른 삶의 모습 말이다.그때 내가 원했던 건 아주 단순하고 명료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삶,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글을 써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공부를 하고 삶을 이어가며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였다.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게 한편으로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공부를 계속하고 글을 계속해서 써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걸 이루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종종 힘겨웠던 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마 그런 목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원했던 삶이라는 걸, 지금의 나는 반쯤은 이룬 것 같다. 적은 돈이지만 글을 쓰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공부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완전하게 글을 쓰는 일만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된 건 아니지만, 다른 일을 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있으니까. 좀 더 지출을 줄이고, 삶을 소박하게 꾸려간다면 지금도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지향했던 삶의 목표에 어느 정도는 다다른 것이 아닐까 싶다.그런데 요즘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원했던 삶이라는 건 참 단조롭고 볼품없는 삶이었구나 하는 생각. 종일 집에 머물면서 타인과 마주칠 일 없이 혼자 글을 읽고 쓴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그런 순간이 기쁘고 행복하게 그려질 수 있었던 건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삶’이라는 사이에 숨겨진 괄호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우리는 종종 꿈과 삶의 외관을 착각하곤 한다.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과 과학자처럼 살고 싶다는 것을 착각하는 것처럼, 혹은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꿈과 연예인처럼 살고 싶다는 것을 착각하는 것처럼, 나 또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과 작가처럼 살고 싶다는 삶의 외관을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어린 내가 바랐던 것은 좋은 글을 쓰려 분투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작가의 삶이 아니라, 조금의 여유를 갖고 우아하게 책을 읽고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그런 삶이었던 것 아닐까.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삶’이라는 선망 사이에 숨겨진 괄호는 바로 그 여유와 우아함이었을 것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어쩌면 내가 그때 꾸었던 것은 꿈이 아니라 타인의 삶의 외관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건 글 쓰는 일에서 나오는 매혹이 아니라, 내가 가정한 여유로움과 우아함에서 나오는 착각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건 지난하고 무기력하며, 패배감 넘치는 사투의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나는 내가 꾸었던 것이 꿈이 아니라 막연한 동경이나 선망에 지나지 않았던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원했던 삶이라는 건 다음과 같이 수정되는 것이 마땅하리라.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삶’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여유롭고 우아하게) 먹고 사는 삶’으로. 내가 길을 잃은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는 건, 그 괄호를 인식하지 못해 생긴 방향감각의 상실이었던 것 같다.이제 나의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 할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은, 그런 생각을 해야 할 시간이라는 알림 같은 것이었으리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여유롭고 우아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그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쓰고 싶은 글이 있는 것인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한 것인지. 그 질문들 사이에서 삶의 목표를 재설정해야 할 시간이다. 나의 삶을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게 만들어줄 하나의 문장을, 여유롭고 우아한 삶의 외관이 아니라 정말 목숨을 걸고 싶어질 만큼 매력적인 질문을 찾아내고 싶다.

2022-01-11

1월에는 1월의 일을

1월은 이상한 달이다. 연말만큼의 설렘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각오하게 만든다. 한 해의 시작이면서 가장 조급한 마음이 드는 때이며 하루하루가 버려지고 있다는 생각에 매분 매초가 아쉽고 아깝게 느껴진다.작년을 반성하며 올해는 제대로 살아내겠다고 다짐한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문득 오늘이 며칠이더라, 하고 달력을 마주한 순간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벌써 1월이 이렇게나 지났어? 이러다 곧 2월 되겠어!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절규해보지만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째깍째깍 흘러갈 뿐이다.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염연히 같지만 12월 31일의 나와 1월 1일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목욕탕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차이와 비슷하다. 온몸에 덕지덕지 쌓여있던 케케묵은 먼지를 씻어낸 뒤의 가뿐한 기분.개운한 발걸음으로 찬바람을 맞을 때의 희열.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왜인지 모를 힘이 퐁퐁 솟아오른다. 어제의 나라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세포 구석구석을 휘감는다.어쩐지 강인한 힘을 가지게 된 것 같은 나는 신년을 맞이하면서 올해의 다짐을 빼곡하게 적는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조깅하자. 빈속에 커피 마시는 일은 그만두자. 귀찮더라도 아침밥을 꼭 챙겨 먹자. 원고는 미리미리 써놓고 마감 날짜가 닥치면 괴로워하지 말자. 읽으려고 마음먹었던 작가들의 책을 독파하자.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를 미루지 말자. 자극적인 배달음식을 줄이고 건강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섭취하자.이러한 다짐을 계획하는 순간만큼은 이미 다 이룬 것처럼 의기양양해진다. 그래, 이제는 정말 달라지겠어. 모두가 나의 부지런함에 깜짝 놀랄 거야. 주먹을 꽉 쥐고 허공에 흔든다. 올해만큼은 다르다고 자부하며 당차게 고개를 끄덕인다.이 굉장한 결의는 침대에 눕는 순간 모두 휘발되어 버린다. 해야만 하는 일은 어째서 미루고만 싶은 건지. 뜨끈한 전기장판에 등을 지지면서 보는 유튜브 영상은 왜 이렇게 재밌는 건지. 새콤한 귤을 까먹다가 스르르 빠져드는 단잠은 얼마나 달콤한지.눈을 떠보면 날은 이미 어둑해져 있고 고요한 방 안에 놓인 건 평소와 다름없는 한심한 나 자신이다. 지금이라도 나가서 산책이라도 할까? 이런 생각이 들면 재빨리 고개를 젓는다. 이불 밖은 너무 춥고 어쩐지 온몸이 쑤시는 것만 같다. 함부로 밖에 나갔다가 괜히 감기라도 걸리면 손해이지 않은가.죄책감이 뱃속을 쿡쿡 찌른다. 이러다간 작년과 똑같은 한 해를 보내게 될 거라고 누군가 귓속에 속삭이는 듯하다. 잠시나마 몸을 일으켜 억지로 움직여보지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영 불편하다.결국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 간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조용히 되뇐다. 아직 1월은 지나지 않았으니 내일부터는 정말 열심히 살아보자고.작년의 나도 재작년의 나도 지금과 같았을 것이다. 새해의 다짐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를 분명 깨달았음에도 또다시 새로운 나를 기대한다. 내년의 나도 내후년의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나를 다짐하고 몇 시간 뒤에 침대에 누워 시간을 허비할 것이다. 애당초 새해라는 건 사회가 편의에 의해 만들어 놓은 가상의 시간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자조하면서.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올 한 해를 현명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어리석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지키지 못할 계획일지라도, 이뤄지지 않을 소망일지라도, 우리는 자꾸자꾸 무언가를 바라야 한다. 내가 달라지기를 기대하고 세상이 나아지기를 원해야 한다.바뀌지 않는 것들에 분노하고 덧없는 시간 속에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또 일어나서 새로운 마음으로 결심하고 계획해야 한다.그렇다. 좌절은 이르다. 아직 1월이 지나지 않았으니. 후회는 2022년 연말의 내가 해야 하는 몫이다. 지금은 여러 계획을 다짐하고 그것을 지킬 수 있다고 믿어야 할 때다. 그렇게 1월이 가고 2월이 가고 봄이 오고 다시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결심하고 후회하고 포기하고 다시 기대하면서. 부지런히 매월의 몫을 해내다 보면 느리게 나아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2022-01-11

남을 것인가, 귀환할 것인가

“우주선 시각 19:00에 나는 발사 플랫폼으로 갔다. 발사관 입구의 승무원들이 옆으로 비켜선 가운데 좁은 계단을 내려가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과학소설가인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 ‘솔라리스’의 맨 첫 단락이다. 매년 이맘때면 이 책을 읽는다. 연말에 시작해 그해 마지막에 끝나던가, 연초를 넘기기도 하면서 수년 동안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습관이 되었다. 많은 책 중에서 왜 하필 이 책이며, 이 기간동안 반복적으로 읽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연말과 연초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머나 먼 미지의 행성으로 출발한다는 묘한 긴장감이 서린다.한 해를 돌이켜보거나 새로운 계획을 구상할 시기,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행성 솔라리스로 간다는 것.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불가해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 풀리지 않는 사건을 끌어안고 새해를 맞는다. 연말과 연초, 마지막 날과 첫 날, 정리와 시작이며, 반성과 약속의 의미가 가득한 시기를 모호한 미지의 가상 세계 속에서 보내다 돌아오는 반복된 습관이다.소설 속 주인공 켈빈은 솔라리스라는 외계 행성의 탐사기지로 파견된다. 켈빈이 태어나기 100년 전. 서로 마주보고 회전하는 두 개의 태양을 공전하는 독특한 행성을 발견한다. 이후 행성 탐사에 이어 행성과의 본격적인 ‘접촉’을 시도하던 인간들은 뜻하지 않은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도 유사한 줄거리를 가진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는 전개와 내용에 있어서 확연히 다른 길을 걷는다. 소설은 과연 인간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인식론적 고찰을 다루고 있다. 이에 반해 영화는 애초부터 그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비록 원작의 내용을 가지고 왔지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인간이라는 ‘정체성’에 집중한다. 같은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데 함의는 다른 곳으로 향한다.소설과 영화 모두 ‘접촉’에서 시작된다. 100년 전 발견된 독특한 행성에 대한 본격적인 접촉을 시도한 이후 불가해한 상황이 펼쳐진다. 차이가 있다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영화 시작 단계에서 이미 원작에는 없는 존재론적 물음을 시작한다.소설은 인간이 규정한 생명체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넘어선 존재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우주에 대한 인간의 사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날 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규정지을 수 있는가. 소설 ‘솔라리스’는 인간적 사고의 한계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우리는 우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죽었던 사람이 재구성되어 등장하게 되면서 겪게되는 감정의 변화를 보여준다. 자신으로 인해 불행해졌던 죽은 사람이 물질로 완벽하게 구성되어 나타났을 때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단계의 과정이 펼쳐진다. 과학이라는 합리적이고 지극히 이성적인 영역 속에서 그것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마주했을 때, 과학은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동요한다.절대적 진리가 무너지면서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그것의 해결책으로 타르코프스키는 인간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깊고도 지루한 철학적 사고를 영화 ‘솔라리스’ 속에서 반복한다.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 존재와의 ‘접촉’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미지의 존재는 우리의 어떤 기억으로 오는가’에 대한 전개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소설과 영화는 갈래를 달리하며 우주를 대상으로 한 ‘인식론’과 ‘정체성’에 대한 각자의 길을 걷는다.비록 존재의 실체에 대한 결말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소설과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집요하고 끌고가면서 나라면 ‘솔라리스에 남을 것인가 지구로 귀환할 것인가’라는 선택에 놓이게 만든다. 이것이 매년 소설 ‘솔라리스’를 읽고, 가끔씩 영화 ‘솔라리스’를 다시 보는 이유다. /(주)Engine42 대표

2022-01-10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질 것이다 (Ⅱ)

만식의 첫 인공 장기는 심장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부정맥으로 고생을 했다. 인공 심박동기를 왼쪽 쇄골 아래에 심었고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진료와 검사를 받았다. 그러던 중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좁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고전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을 사용하거나 스텐트를 넣어 혈관을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나노 로봇을 이용해 혈관을 청소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만식에게 누군가 인공 심장 이야기를 했다. 너무 비싸서 시도해보지 않았을 뿐이지 협심증이나 부정맥 환자에게도 훨씬 나은 효과를 보일 것이라 하더군요.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인공 심장에 대해 설명을 듣기 위해 인공 장기 회사의 한국 지점에 연락을 했다. 독일 본사의 기술 팀장이 직접 한국으로 왔다.-연료 배관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타이밍 벨트를 바꾼다고 해서 자동차 엔진이 좋아지겠습니까? 이미 수십 년 사용한 것인데 말입니다. 차를 새로 살 수 없다면 엔진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제일 좋은 거지요. 엔진이 신품이면 차도 신품이 되는 겁니다. 디자인은 좀 구식이겠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만식은 인공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만식의 나이 일흔 넷이었다. 필립이 서른아홉이 된 해이기도 했다. 만식은 수술동의서에 직접 사인을 한 후 필립을 보았다. 가까이 오라 손짓을 했고 침대 가드레일에 손을 얹고 서 있던 필립은 만식의 곁으로 왔다.-의사들은 나에게 말한 것을 너에게도 말할 것이다. 동의니 서명이니 하는 것들을 받겠지. 수술 중 그리고 수술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기계의 오작동 가능성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최악의 경우 내가 죽거나 죽은 사람과 같을 수도 있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다. 건강하게 수술실을 나올 것이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가,’ 따위의 말은 하지 않겠다.-당연한 말씀입니다.필립은 만식의 손을 잡았다.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입원실에서 눈을 뜬 만식이 필립을 보며 말했다.-너는 지금 웃는 것이냐, 우는 것이냐? 너의 표정으로는 알 수가 없구나.-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깨어나셔서 웃는 것입니다. 아버지마저 잃을까 두려웠습니다.필립은 이불을 끌어 올려 만식의 배를 덮었다. 만식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수술 전 내리던 비가 멈춘 것 같았다.-기대를 했었냐?필립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만식의 목소리가 작아 듣지 못한 듯 했다. 필립은 침대 옆에 가져다 두었던 의자를 제자리에 옮겨 놓은 뒤 방을 나갔다.이후 인공 심장 프로그램 업그레이드가 세 번, 배터리 교환이 네 번 있었다.-더 이상 교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생체 전류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충전이 가능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비상 배터리까지 장착되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코디네이터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면 됩니다.마지막 배터리 교환 후 인공 장기 회사가 만식에게 한 말이었다.만식은 몇 번의 수술을 더 받았다. 간과 우측 콩팥을 인공 장기로 대체했다. 심각한 질환이 있어 이식 수술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만식은 오래된 장비를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라 여겼다. 인공 장기 회사의 기술 팀장에게서 들었던 자동차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다.-몸이 자동차라고 치면 말이지. 게다가 새 자동차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면 말이야.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태어날 때 가지고 난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게 우리 몸이잖아. 그런데 지금 내가 타는 자동차가 칠팔십 년 되었어. 이게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거잖아. 정상일 수가 없지. 운전을 잘 하지 못해서 난 사고는 어쩔 수도 없고 내가 감당할 몫이라 치더라도 부품이 낡아서 사고가 나는 것은 좀 억울하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 부품이라도 갈아야지. 디자인? 그건 어쩔 수 없지. 바라지도 않고.누군가 물었다. 김강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그 자동차는 언제까지 달리고 싶답니까?사람들이 웃으며 만식을 보았다. 만식은 두 손을 들어 핸들을 잡는 흉내를 냈다.-길이 있는 한, 달려야 하는 길이 있는 한 멈추지 않을 걸세. 달리는 것, 그게 자동차의 본질이자 운명이니까.인공 심장 이식 수술 이후 몇 번의 입원과 수술 그리고 퇴원 시에 필립은 병원을 찾지 못했다. 만식이 오지 말라 했다. 걱정하는 모습, 안도하는 모습, 아쉬워하는 모습. 그게 무엇이든 만식은 보고 싶지 않았다.-필립아, 네가 나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네 녀석을 싫어한다는 것도 아니야. 그저 병원에 있는 동안 너를 보는 것이 편하지 않을 뿐이다. 네 형이 그리되던 날, 네 엄마가 죽던 날 모두 네가 그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필립은 가만히 들었다.

2022-01-10

연초부터 물가 인상 러시… 서민가계 옥죈다

연초부터 물가인상 움직임이 심상찮다. 작년 하반기에 시동이 걸린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올들어서도 계속 이어지는 분위기다. 커피 등 식음료 가격이 연초부터 오르고 대선 이후는 전기료와 가스료 등 공공요금 인상도 대기 중이다. 작년 기준으로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이미 10년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중에는 물가불안 분위기가 상당히 고조돼 있다. 불안한 기름값과 함께 전기료, 가스요금까지 오르게 되면 제조업의 생산 부담이 커진다. 물가 상승 압박요인이 전방위적으로 커지는 것도 걱정거리다.서민들이 즐겨 찾는 커피 가격이 13일부터 오른다. 커피업계 대표주자 스타벅스 코리아는 판매 중인 53종의 음료 중 아메리카노 등 46종의 음료가격을 100∼400원씩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커피전문업체인 동서식품도 14일부터 제품출고 가격을 평균 7.3% 인상키로 해 시중 커피점의 가격인상 도미노도 우려된다.지난달 치킨값이 오르고 롯데리아와 노브랜드 버거가 제품가격을 인상한 데 이어 이달부터는 버거킹도 제품가격을 평균 2.9% 인상했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1분기 전기료와 가스요금 인상을 동결한다고 했지만 이는 선거용 꼼수임이 드러났다. 한전은 4월부터 기준연료비를 2회에 걸쳐 9.8원/kw인상하고 한국가스공사도 원료비 연동제에 따라 5월부터 소비자 부담액을 올린다고 했다.지난해 은행금리가 인상된 데 이어 올해는 최저임금도 5%가 올랐다. 시중에 유동성이 커지면서 인플레가 우려되는 가운데 물가인상마저 이어져 서민경제가 핍박을 받고 있다. 정부의 조속한 물가 안정책이 필요하다.국내 물가는 작년 10월 3.2% 올랐고 11월 3.8%, 12월 3.7%가 올라 고공행진 중이다. 정부는 올해 물가상승률을 2%대로 잡겠다고 하나 현재 시중 유동성과 물가인상 조짐으로 보아 쉽지 않을 것 같다.물가가 오르면 가장 고통받는 계층은 서민이다. 곧 다가올 설날 제수용 물가도 걱정이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다. 정부의 특단대책으로 서민층의 가계 부담을 덜어야 한다. 이 상태로 가면 못살겠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것이 뻔하다.

2022-01-10

빅블러 시대

코로나19 팬데믹 확산과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전세계에서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블러(Blur)는 사전적으로 흐릿해진다는 의미로, 빅블러는 빠른 변화로 인해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특히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인공지능(AI), 드론 등 4차 산업혁명의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하면서 빅블러 현상이 대두됐다. 예컨대 금융회사 대신 핀테크를 이용해 해외 송금을 하는 것이나 온라인 지급결제 서비스가 온라인 가맹점을 내는 것, 온라인으로 신청해 오프라인으로 서비스를 받는 우버(Uber)나 에어비앤비(Airbnb) 등이 이에 해당된다.최근에는 간편 송금으로 대변되는 토스의 등장과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의 금융업 진출로 금융 소비자들은 기존 금융사 DNA와 다른 기업이 금융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보다 더 간편하고 편리한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다.블록체인, 가상자산,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와 같은 새로운 디지털 자산의 등장 역시 금융사 중심의 지급결제 시스템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이 전세계의 비대면 생태계를 가속화하면서 금융사들의 대면거래, 대면영업이라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비대면거래가 일상화됐다. 이 와중에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반의 빅테크 업체들의 금융시장 진입은 기존 금융권을 긴장시키고 있다.막강한 사용자 기반과 편의성, IT와 디지털을 무기로 금융은 물론, 유통, 물류,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며 빌 게이츠의 말처럼 ‘은행 없는 은행 서비스’가 가능한 시대에 이르렀다. 세계는 이미 빅블러 시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2-01-10

‘의료폐기물 소각장’ 경북에 집중 이유 있나

안동시 풍산읍민들은 4년째 ‘의료폐기물 소각장’과 관련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주)상록환경이 지난 2019년 9월부터 읍내 신양리에 하루 처리용량 60t 규모의 의료폐기물 소각장 설치를 추진하면서 현재 성사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지난 주말에는 안동시청 앞에서 코로나 집단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항의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의료폐기물 처리업의 인·허가권을 가진 대구지방환경청은 지난해 11월 이미 업체 측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대해 적정 통보를 했으며, 사업자는 도시계획 시설 결정 신청서를 안동시에 접수한 상태다. 안동시는 이에 대해 “사업에 불법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 한 막을 방법이 없다”며 두 손을 든 상태다. 소각장 설치 예정부지는 낙동강 본류와 5㎞ 떨어져 있으며, 인근에는 안동과 예천 5개 마을 266가구 49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주민들은 “왜 청정지역인 농촌마을에 전염위험성이 있는 의료폐기물 소각 공장이 들어서느냐”며 사업추진이 취소될 때까지 반대집회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4년 전부터 특위를 구성해 주민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안동시의회의 김백현 의료폐기물 특위 위원장은 “경북도는 일일 의료폐기물 159t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현재 대구와 경북의 일일 의료폐기물 발생량은 59t으로 따로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건립할 필요가 없다.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의료폐기물을 왜 안동에서 처리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김 위원장이 언급한 것처럼 현재 전국 의료폐기물 전체 처리량의 30% 이상이 경북도내에 있는 공장에서 처리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해 전북, 강원, 제주도에는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한 곳도 없다. 경북지역에서 소각하는 의료폐기물에는 소각장이 없는 지역의 폐기물이 유입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유행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전국 의료폐기물 3분의 1을 처리하는 경북지역에 또다시 민간업체 소각장 설치가 추진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대구환경운동연합 관계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2022-01-10

‘15분 도시’

남광현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요즘 ‘15분 도시’라는 도시계획 용어가 서울, 부산, 대전 등 우리나라 주요 도시의 정책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15분 도시’는 ‘15분 지역생활권 도시’의 약칭으로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여 15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의 범위를 말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전기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와 같은 PM(Personal Mobility)은 이용하지만 승용차나 버스 그리고 지하철은 굳이 이용할 필요가 없는 정도의 생활권 범위를 말한다.그리고 ‘15분 도시’ 생활권 안에서 통학, 쇼핑, 운동, 산책, 치료 및 관공서 업무는 물론이고 심지어 일터가 있어 출퇴근도 가능하다.‘15분 도시’는 프랑스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이 지난 2020년 재선에 성공할 때 ‘15분 도시’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크게 주목 받았다. 파리의 도전적 실험이 미국 디트로이트, 호주 멜버른,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세계 주요도시에서 크게 호응 받으면서 전 세계로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15분 도시’와 같은 N분 도시가 선거공약으로 발표되면서 큰 이슈가 되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 먼저 미래로, 15분 도시 부산’이란 슬로건으로 부산시를 15분 도시로 가장 먼저 전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이처럼 많은 도시들이 ‘15분 도시’ 만들기에 열광하는 것은 우선 시민들이 각종 활동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교통비도 크게 줄일 수 있어 만족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지금 전 세계를 고통 속에 몰아넣은 코로나19와 같은 불의의 대형 감염병 사고에도 거리두기가 매우 유효해서 효과적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통과 물류 등 도시 내 사람과 상품의 이동으로 인해 배출되는 탄소와 미세먼지 등 각종 환경 오염물질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IoT, ICT, AI 등 최신 스마트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그간 도시생활을 위해 필요했던 시간과 거리의 한계를 충분히 극복가능 해졌기 때문이다.결국 이러한 ‘15분 도시’로의 변모는 우리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설정한 시간적 마지노선인 2050년까지 나무에 흡수되고 땅속에 포집될 수 있는 소량의 탄소 외에는 추가의 탄소는 전혀 배출하지 않은 탄소중립의 미래시대를 준비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연말 대구시는 탄소중립 시민협의체와 함께 2050 탄소중립 전략 시민보고회에서 ‘시민중심! 탄소중립 선도도시 대구’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핵심전략사업으로 ‘15분 도시’ 만들기 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사업을 제안하였다.그런데 대구시 통계DB에서 2019년 기준 통근·통학이 대구시의 총 통행목적의 약 58%나 되는데, 여기에 소요시간은 20분미만이 약 25%에 불과하고 20~60분은 67%이며, 60분이상도 8%나 되었다. 주요 교통수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승용차가 43%로 가장 많고, 시내버스와 철도가 41%인 반면, 자전거와 걷기는 11%에 불과하였다. 우리가 ‘미래 탄소중립 15분 도시’로 전환하기 위해서 얼마나 갈 길이 먼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22-01-10

깨어 있는 바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추울수록 겨울바다의 빛깔은 깊고 진하다. 멀리서 보면 바다는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쉴 새 없이 뒤척거리며 물결이 움직이고 있다. 해변의 모래톱으로 긴 여울 자락을 펼치며 나울거리는 파도는 육지의 안부를 묻는 잔잔한 속삭임 같고, 갯바위에 철썩거리며 흰 포말로 부서지는 너울은 간간이 응축된 힘을 발산시키는 물살의 함성같이 들린다. 혹한의 계절에도 바다는 온갖 생명체와 유기체를 온전하게 품으며 재우고 걸러내고 찰방이고 있다. 은빛 햇살 부서지는 한적한 해변에 갈매기들의 겨울 나들이가 시작됐다. 추위에 떠는듯 깃을 접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먹이라도 발견한 걸까? 시퍼런 물살이 일 때마다 조금씩 깃을 터는 갈매기들, 이윽고 몇 마리가 날아오르자 마치 군무라도 펼치는 듯 연이어 날갯짓하며 끼룩끼룩 퍼덕퍼덕 그들만의 어설픈 외침으로 일제히 순식간에 날아오르며 비상의 나래를 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갈매기 날갯짓 따라/파랑(波浪)으로 손짓하며/짙푸른 함성인 듯/근육으로 이는 물살/벅차게 용솟음치는 꿈/깨어 있는 자의 삶//자정(自淨)의 먹을 갈아/뭍의 배설물을 삭히며/트인 가슴으로/넘실대는 사유의 자락/수평선/가뭇한 언저리에/각인되는/올곧음’ -拙시조 ‘깨어 있는 바다’전문(1994)바다는 어쩌면 동경의 대상이었다. 탁 트인 전경에 가슴이 절로 시원해졌고 가물가물 수평선이 자꾸만 마음을 꾀는 듯했다. 한없이 너른 품새로 모든 것을 받아주다가 집어삼킬 듯 요동치는 격정의 몸부림은 사람의 성질이나 삶의 양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면서 바다는 언제나 쉼없이 찰랑이고 삭히고 밀어내면서 평상심으로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는 듯했다. 중 2때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 가면서 처음 본 동해바다의 설레임과 신기함에, 속내 깊은 바다의 진중함과 유장함이 투영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나서 인 것 같다.바다는 늘 깨어 있기에 파도치는 것이다. 살아있기에 움직이고 열려 있기에 깨어 있는 것이다. 깨어 있고 포용하는 가슴을 열어 바르고 곧은 사유를 일깨우는 것이다. 생각의 물길이 파도로 출렁이고 근육 같은 물살이 일렁이며 꿈을 외치는 것이다. 넘실대는 물의 평정(平靜)이 올곧은 수평선으로 뜨기에 비늘 같은 햇살을 쪼며 갈매기들이 화답하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늘 깨어 있는 의식으로 자신을 채근하며, 파랑의 몸짓으로 꾸준히 뒤척이고 노력하고 진취해야 하는 것이리라.지구의 2/3 이상을 뒤덮고 있는 어머니 같은 바다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일깨우지만, 문명의 진화에 수반되는 온갖 해악과 해양 쓰레기는 갈수록 바다를 피폐하고 신음하게 만들고 있다. 바다로부터의 일깨움은 소소한 삶의 편린일 수 있지만, 인류와 미래의 생존과 지속에 직결되는 심대한 영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밤낮없이 읊조리는 바다의 그침 없는 해조음에 귀 기울이며, 바다 살리기와 탄소중립 실천의 시대적 요구와 역할에 늘 깨어 있는 삶을 추구해보자.

2022-01-10

여론은 ‘정권교체’… 담을 그릇이 없다

20대 대통령 선거는 강력한 ‘정권교체’ 열망으로 시작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정권 재창출’이 아닌 ‘정권교체’를 원했다. 지난 12월 초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 55.1%가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37.8%였다. (이하 여론조사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 가치에 대한 결핍감이 절박하다.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 이후 공정 문제는 시대적 화두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윤미향 의원의 위안부 후원금 유용 의혹은 ‘가재·붕어·개구리’들에게 배신감을 안겼다. 부동산 가격 폭등, 취업 대란이 그 근본적인 배경이다.서울·부산·충남 광역자치단체장의 잇따른 성 추문은 도덕적 타락상까지 노출했다. 오죽하면 이재명 민주당 후보마저 ‘4기 민주 정부’보다 ‘이재명 정부’라고 부르고, “정권교체인지는 모르겠지만 권력 교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주장하겠는가.그런데 후보 지지도는 다르게 움직인다. 알앤써치의 지난 4~5일 조사에서도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0.3%로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윤 후보 지지율은 34.2%에 그쳤다. 정권교체 하려는 열망을 담아줄 정당도, 후보도 찾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5일 45.8%(PNR)에서 불과 두 달 사이에 회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지경으로 추락했다.처음부터 윤 후보에게 쉬운 승부가 아니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민주당에는 선거 전문가가 많다. 전략적 사고에 익숙하다. 목표 지향적으로 작전해왔다. 그에 반해 윤 후보는 정치 초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국민의힘에 치밀한 전략가도 부족하다. 후보감이 없어 밖에서 초보운전자를 데려오고, 전략가가 아쉬워 나쁜 기억이 남아있는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을 다시 모셔 왔다.어느 정도 풍파는 예상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난장판일 줄은 몰랐다. ‘민주당에 갖다 바친다’는 표현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민감한 부인 문제를 아무 준비 없이 불쑥불쑥 외부로 토로했다. 사과는 시간도 놓치고, 진정성 전달도 실패했다. 후보와 총괄선대위원장, 당 대표는 불통했다. 냉소와 가시 돋친 메시지만 난무했다. 노력해서 얻은 표가 없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 열망마저 4할은 실망과 좌절 속에 던져버렸다.축구 선수가 서로 슈팅을 욕심내면 이길 수 없다. 민주당은 ‘머리’가 많다. 후보가 있고, 대통령, 당 대표도 있다. 그러나 모두 이재명 후보가 빛나게 물러섰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이라고 선언했다.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모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노태우 후보를 위해 ‘6.29 항복선언’을 연출해줬다.국민의힘은 거꾸로 움직인다. 다 주인공이고, 다 잘났다. 윤 후보가 초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정치 비전이나 정책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말을 할 때마다 설화다. 하지만 그런 줄 다 알고 데려온 것 아닌가. 당에서 다듬고 챙겨줄 수밖에 없다. 생색을 낼 일도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선거를 앞두면 누구나 화장한다. 중간 표를 노려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동운동가이던 이재호·김문수 전 의원을 영입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 전 총리와 손을 잡았다. 그렇다고 후보가 정체성을 버렸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국민의힘에서는 그런 노력이 후보 간 대결이 되기도 전에 당내 분란으로 번진다. 윤 후보가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혼란스럽다.지금은 후보의 시간이다. 국민의힘 당헌은 “대통령 후보자는… 당무 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하여 가진다”(제74조)고 규정하고 있다. 당내에서 갈등할 시간이 없다. 국민의힘이 무능해 국민의 지지를 못 받고 자멸하는 것이야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민심은 분명한데 그것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상황은 비극이다. 엉뚱한 다툼에 정작 필요한 미래 비전을 둘러싼 후보 간 대결이 실종된 것도 안타깝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2-01-09

포항지진, 위기를 기회 만든 반전 드라마

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출발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세계사에서 이보다 더 극적일 수가 없는 대반전의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16세기까지만 해도 바다를 지배하고 있는 유럽 최강대국 스페인의 위상에 눌려 해상 변방국에 불과했던 영국은 200년 후 비교가 되지 않는 절대 열세의 해군력으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침 시킨다.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절대 열세의 영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기동력과 기습공격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전술과 영국 최고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리더십을 말 한다. 전선으로 출격하는 군인들에게 ‘그대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리더를 만날 수 있어도 나보다 그대들을 더 사랑하는 리더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평생 미혼으로 보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연설은 단연 압권이다. 환호하는 영국해군의 사기는 하늘을 집어삼킬 듯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지난해 12월 초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포항 11.15 촉발지진 범시민 대책위원회 활동 시민보고회’가 열렸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29분에 포항에서 규모 5.4도의 대형지진이 발생했다. 외형적으로 나타난 강도는 5.4도였지만 진원지가 지표면 얕은 지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지진이라는데 모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였다.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하고 대입 수능이 일주일 연기될 만큼 사상 초유의 국가 대재난 이었다. 이런 와중에 참으로 놀랍고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려왔다. 포항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공지진일 가능성이 높다고 세계적인 학술정보지인 미국의 ‘사이언스’에 게재한 두 교수의 용기 있는 발표는 2019년 3월 정부조사 연구단이 두 학자의 발표와 동일한 결론을 내림으로써 포항시민들에게 어둠속의 한줄기 빛과 같은 선물을 안겨주었다.정부조사단의 발표와 거의 비슷한 시점에 포항 11. 15 ‘촉발지진 범시민 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포항시를 대표하는 57개 사회단체에서 77명이 참여할 만큼 메머드 급 규모였다. 이날의 시민 보고대회는 위원회가 걸어온 2년여의 험난한 여정과 눈부신 활동으로 가득 채워 졌다. 어쩌면 지방자치 시대의 관, 학이 서포트(Support)하고 민(民)이 주도하는 단체의 성공한 모델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경이로운 성과를 도출하고 있다.범시민 대책위원회는 대 시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촉발지진을 일으킨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국회, 산자부, 청와대로 보폭을 넓히며 지진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특별법 제정이 지지부진하자 여야당사 항의집회와 2019년 10월에는 총 3천여명의 시민들이 청와대 상경집회를 통해 그해 연말 드디어 지진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에 이르렀다.잘 아는 바처럼 촉발지진 범시민 대책기구는 4인의 공동체제로 출발한 그대로 마무리하고 있다. 포항사랑과 책임감으로 다져진 이들 4명의 리더십도 주목할 만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조직의 균열이나 잡음하나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완벽한 찰떡공조를 이룩해낸 열정어린 노력은 포항시민들의 눈높이를 충족하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세상에 그저 되는 부자는 없듯이 저절로 굴러 들어온 기회보다는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한 기회가 훨씬 소중한 것이다. 좌절과 시련은 괴롭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세계 역사에는 국가나 개인도 예외 없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2세기 세계최강 마케도니아 제국의 건설은 5만의 군사로 40만 다리우스 황제의 페르시아 대군을 궤멸시키는 위기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고조 유방도 항우에게 쫓겨 간 파촉 지방에서 와신상담하며 통일제국 한나라를 건국하였다. 개인도 예외는 아니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일리노이 주의원을 시작으로 부통령, 상원의원 등 7번의 선거에서 낙선한 링컨은 실패를 교훈삼아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정약용의 생애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그는 유배지에서 독서와 저술에 온 힘을 기울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을 쏟아냈다. 유배지에서 자책과 울분으로 세월을 보냈다면 결코 해 낼 수 없는 업적이다.포항에는 철강도시 이후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의료, 관광분야를 망라한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가야하는 막중한 책무가 기다리고 있다.아무리 깊어도 세월이 지나면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 내진설계를 강화하고 친환경적인 정책을 실천하는 유산을 물려준다면 포항지진의 아픔보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포항시민인 것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주지하는 바와 같이 새해는 검은 호랑이 해다. 숲을 지배하는 흑호는 뛰어난 리더십과 열정, 용맹함을 자랑한다. 포항의 지도자, 시민이 하나가 되어 호랑이의 기운을 듬뿍 받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더불어 51만 포항시민에게 전화위복, 부위정경의 반전의 드라마를 쓴 지진대책 위원회의 노고에 진심어린 신뢰와 감사를 표하고 싶다.

2022-01-09

공정과 효율성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공정성이 효율성을 보장 할 것인가.때로는 이 질문에 깊은 의문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효율을 위해 공정성을 조금 희생할 수는 없을까?산업경영공학에는 OR(Operations Research) 또는 운용공학이라고 불리는 과목이 있다.시스템의 최적화를 위한 여러 가지 기법을 배우는 과목인데 여러 가지 기법 중에 ‘대기행렬 이론’(Queuing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OR은 전체적으로 확정적 모델과 확률적 모델로 나누는데 대기행렬 이론은 확률적 모델에 속한다. 확률적인 상황에서 최적을 구하는 것이다. 즉 은행창구 같은 곳에서 무작위로 방문하는 고객들을 한 줄로 세울 것이진, 여러 줄로 세울 것인지 어느쪽이 더 효율적인지 검토하는 이론이다.요즘 공공장소에 가면 ‘한 줄 서기’ 운동을 장려한다. 기차표를 살 때도 여러 개의 창구가 있어도 창구마다 줄을 서지 말고 한 줄로 서라는 의미이다.“왜 한 줄로 서는 것이 좋은가”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잠시 생각하다가 나오는 답은 “공정하니까”라는 답을 한다.훌륭한 답이다.여러 줄로 서면 늦게 온 사람도 줄만 잘 서면 먼저 표를 살 수 있는데 반하여 한 줄로 서면 적어도 뒤에 온 사람이 앞에 온 사람보다 먼저 표를 구입할 수는 절대로 없다.그런 의미에서 ‘한 줄 서기’는 확률적으로 공정성을 보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공정성보다 더 중요한 한줄서기의 효과는 대기행렬에 있는 사람들의 대기시간의 합이 확률적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이다.이는 수학적으로 간단히 증명 가능하다.맨 앞줄의 사람이 티켓구입에 시간을 많이 끄는 경우 한 줄 서기는 그 손님만 제외하고 다른 창구에서 빠른 순환을 할 수 있지만 여러 줄 서기에는 그 손님 뒤에 서 있는 사람들 모두의 대기시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이 예는 ‘공정과 효율성’은 서로 상관관계가 높다는 대표적인 예이다. 즉 시스템이 공정하게 돌아가면 효율도 올라간다는 것으로 OR에서 자주 인용되는 예이다.한국 건설 현장에 가면 ‘돌관공사’라는 말이 있다. 빠른 속도로 공사를 한다는 것인데 부실공사를 만드는 요인도 된다. 적당히 하면 효율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창피하게도 수백 명의 사망자를 만든 건물 다리 붕괴 등 대충주의에 의한 사고도 잦고, 이러한 공정을 해친 적당주의에 따라 세계적으로 교통사고율이 높다.공정과 효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가 신호등 없는 사거리의 차의 주행이다. 소위 한국에서 말하는 꼬리 잇기를 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이다.한국에서는 신호등 없는 네거리에서 대부분 멈추지 않고 꼬리 잇기를 한다. 일견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자동차 사고가 여기서 많이 난다. 한국의 신호등 없는 사거리는 바닥에 하얀 페인트로 차 사고 표시를 한곳이 유난히 많다. 잘못된 교통질서 지키기와 함께 잘못된 신호체계도 문제다. 차량이 거의 없는 새벽에는 교차로의 신호등은 깜빡등으로 처리해야 하는데도 많은 경우 신호등이 방치돼 있어 빨간불 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으로 달리는 차를 흔히 볼 수 있다. 삼거리에서 마주 오는 차량에 우회전과 직진을 줄 때 내게는 직진을 줄 수 있는 데도 빨간불로 막는 예도 있다.일부 신호체계의 모순은 운전문화의 후진성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선진국에서 보편화돼 있는 ‘비보호 좌회전’이 우리에게 일반화되지 못하는 것도 급하게 좌회전하는 ‘빨리빨리’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경적소리를 남발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선 거리에서 경적소리를 거의 듣기 어렵다고 한다.한국 교통문화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이러한 후진성이 공정성을 파괴하는‘적당주의’와 관련이 있고, 그런 적당주의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생각도 해봤다. 왜 미국은 과학, 의학 등 분야에서 노벨상을 300여 명도 넘게 받고 우리 한국은 한 명도 없는가? 그건 공정성을 해치는 적당주의를 거부하는 엄격한 제도 때문 아닐까?한국의 ‘적당주의’는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오래전 일어난 삼풍백화점 및 성수대교 붕괴, 태풍 매미 참사 같은 대형사고, 연구업적 부풀리기 같은 학계의 문제, 또 정교한 정책질문이 아닌 호통으로 일관하는 국회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사회, 학계, 정치 모든 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오는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종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 그러한 공약에 공정성이 정밀히 검토되지 않고 표를 얻기 위한 것만이 기준이 된다.공정을 해치더라도 효율(득표)만 된다고 생각하면 공약을 발표한다. 그러나 유권자는 그렇게 가볍고 단순하지 않다. 대통령 후보자들이 공정성이 효율을 가져온다는 즉 공정한 정책이 득표를 가져 온다는 ‘대기행렬 이론’을 공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022-01-09

후임 시장에 대한 바람

고윤환 문경시장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여정은 낯설고, 어렵다.더 나은 시민의 삶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늘 고민하고, 혁신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혜로운 인물이 시정을 이어나가길 바란다.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지방도시의 인구감소 문제는 사회·경제 전반으로 큰 영향을 미치며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제 지방도시는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문경시는 탄광산업이 호황이던 1974년에 16만 명이라는 최대 인구를 기록하고, 폐광을 기점으로 3년만인 1994년에 인구 10만, 그 이후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4년부터 지금까지 인구 7만명 사수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해왔다. 전국적으로 출생아 수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파격적인 출산장려정책을 시행하여 2019년, 2020년 2년 연속으로 출생아 수가 증가했고, 합계 출산율도 1.291명으로 전국 260개 시군구에서 26번째로 높은 수준이다.고령화된 인구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청년을 지역에 정착시키고자 문경시 청년 기본조례를 제정하고, 달빛탐사대 출범, LH 행복주택 준공, 지역정착맞춤형학과 개설 등 다양한 방안도 모색했다. 또 맞춤형 귀향·귀촌·귀농 정책과 인구증가시책을 추진했다. 우리 시 귀농·귀촌인구는 2012년 121명에서 2020년 1천399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해 이 같은 노력의 결과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처럼 지난 10년간 출산과 양육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고령화시대의 대응기반을 구축하는 등 모든 시책을 시민의 보다 나은 삶을 바탕으로 인구증가에 중점을 두고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구감소라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의 2배가 넘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고, 청년층의 이농현상이 가속화되는 시대의 조류를 탓할 수도 있지만, 인구는 지역의 성장 동력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아니, 포기해서도 안 된다.이런 현상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지방행정의 선도적인 노력과 함께 재정의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이번 대선 의제 1위가 집값 안정, 즉 주거문제 해결이다. 우리 시는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혁신적인 인구정책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새문경 뉴딜정책을 구상해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제시했다.귀향·귀촌·귀농인의 조기 정착을 위해 충족돼야 할 필수조건인 보금자리를 제공함으로 안정적인 정착을 돕고, 도시민의 유입으로 만성적인 농촌 일손 부족문제를 해결하며, 마을 내 폐가와 빈터를 정비함으로 농촌주거환경 개선이 함께 이루어진다.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큰 산업축인 건설수요가 활기를 찾으며, 지역 경기를 이끌고, 무엇보다 늘어난 인구만큼 내수가 진작되게 된다. 영순 의곡리에 설치한 모듈주택 3동은 입주자 공모결과 31명이 지원했으며, 공평동 모듈주택 10동은 63명이 신청해 6.3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며, 안정적 정착을 바라는 도시민의 수요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입주자 모집 시 취업 또는 창업하는 청년세대를 우선적으로 선발해 출산 및 취학아동이 있는 젊은 세대가 많이 정착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어린이집, 학교의 폐교를 미연에 방지하고 도시가 젊어져 기업체의 구직난 해소로 기업이 유치되는 선순환의 인구구조를 만들어 갈수 있다.문경을 이끌어갈 차기 시장이 시민의 삶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혁신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혜로운 분이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여정은 낯설고, 어렵지만, 그만큼 값어치 있는 길이다. 주어진 틀 안에서 관습적으로 접근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인구문제, 지방소멸 문제 어렵지만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지혜를 모으고, 마음을 모으면 해낼 수 있다.예산 확보를 위한 준비와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 국가예산확보는 예로부터 단체장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설명되기도 했다. 정부 정책방향에 맞추어 세밀하게 계획을 수립하고 중앙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책 동향자료 수집 등 중앙부처 예산편성 요구 단계부터 직접 챙겨야 한다. 부처예산에 반영되지 못한 사업이 정부안에서 다시 살아나거나 부처예산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금액이 정부안에서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후 국회 확정시까지 체계적으로 대응해 국가예산 확보 의지와 활동을 한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2022-01-09